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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생산한다는 것 2..

허균의 혁명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허균, 최후의 19일>>(김탁환 지음,  민음사, 2009) 중 하권의 내용 중에서 발췌함(370~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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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과 여인 이재영의 대화 중에서..> 

 

"백성들을 위해서 세상을 바뀨겠다고?" (여인) 

"...... 꼭 그것만은 아니지. 자넨 가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나? 나는 있다. 그러나 나는 나를 갖지 못했다......" (허균) 

"그게 무슨 말인가?" 

"배고픔과도 같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걸세. 젊었을 때에는 세상에 반대하는 것으로 희망의 근거를 찾았지만, 이제는 누구를 반대하거나 누구를 도와주기 위해서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라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어서라면 이해하겠나?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배불리 먹고도 허기가 지는 것처럼, 쭉 그렇게 지내 왔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나의 이 지독한 배고픔이 모두 해결되는 순간을 보고 싶네." 

여인! 

자네도 그렇지 않나? 깊은 밤 홀로 깨어 나의 몸과 마음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면, 늙고 병든 한 사내가 오들오들 떨며 엎드려 있다네. 세상의 온갖 불행이란 불행이 사내의 두 어깨에 얹혔고, 사내에게는 그 무게를 지탱할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네.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삶이라고나 할까? 그럴 때 자넨 그 사내에게 무슨 이야길 하겠는가? 어떤 시가 그 사내를 위로할 수 있을까? 그 밤, 나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네. 세 치 혀가 만들어 내는 넋두리조차 사내에겐 또 다른 짐일 테니까. 다만 나는 사내에게 두꺼운 이불과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내밀고 싶었을 뿐이야. 하룻밤이라도 사내에게, 이 순간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선물하고 싶었거든. 여인! 우린 그 사내보다도 훨씬 가여운 족속이라네. 배가 고픈데도 허기를 느끼지 못하고 사지가 바들바들 떨리는데도 추위를 염려하지 않는 족속이지. 나는 그들에게, 하여 나 자신에게 삶의 냉혹함을 가르쳐 주고 싶다네. 눈부시게 행복한 순간으로부터 처참한 지난 날을 돌이키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니까. 

"그런 순간이 올까?" 

"올 걸세. 점점 그 순간을 향해 가고 있어." 

"도대체 자네가 만들고픈 세상은 어떤 건가?" 

허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나의 풍경이 떠오르는군. 서당에서 함께 서책을 읽고, 그 서책에 적힌 대로 이 세상이 살아 볼 만한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는 아이들! 동틀 무렵 들판으로 나가 황혼이 찾아들 때까지 땀 흘려 일하는 어른들! 죄수를 가두는 감옥은 텅 비었으되 곡식을 쌓아 두는 곳간은 차고 넘치는 나라! 누구나 창고로 들어가서 원하는 만큼의 곡식을 꺼내 올 수 있으며, 태어난 곳이 북삼도나 전라도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첩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당하지 않는 나라! 중국을 섬기지 아니하고 외침을 받기 전에 군법을 철저히 시행하는 나라! 밤에는 들일에 지친 몸을 편히 누이고 휘영청 둥근 달을 바라보거나, 청주 한잔을 곁들인 노랫가락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도 좋겠지." 

"참담한 현재를 견디려는 기만책은 아닌가?" 

"기만책이라고? 지평선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차근차근 옮기자는 게 어떻게 기만책이겠는가? 이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면 일러 주게. 자넬 따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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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생산한다는 것..

허균의 혁명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허균, 최후의 19일>>(김탁환 지음,  민음사, 2009) 중 상권의 내용 중에서 발췌함(360~3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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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이에게 부치노라. 

 

(중략) 

 

그 다음 너는 그 누구도 닮지 말고 너만의 시풍을 만들어라. 명나라 사람으로 시를 짓는 자들은 선뜻, 나는 성당이다, 나는 이두(李杜, 이백과 두보)다, 나는 육조(六朝)다, 나는 한위(漢魏)다라고 스스로 표방하여 모두가 문단의 맹주가 될 수 있다고 여기지만, 내가 보기에는 혹은 그 말을 표절하고 그 뜻을 답습하여 집 아래 집을 얽음을 면하지 못하면서도 과장되게 스스로를 내세우는 쓰레기와 같다. 너는 절대로 그런 놀음에 말려들어 성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해라. 

꼭 하나 네가 명심할 일은 시를 읽고 쓰다가, 시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하라는 게다. 이백과 두보의 오랜 여행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방랑이 단순한 멋 부림이 아니고 삶의 비밀을 캐내기 위한 악전고투였음을 살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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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깨우침..

허균의 혁명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허균, 최후의 19일>>(김탁환 지음,  민음사, 2009) 중 상권의 내용 중에서 발췌함(163~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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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허균의 이인생에서 가장 큰 영영향을 끼친 사람은 둘째 형 허봉이었다. 

일찍이 허봉은 서애 유성룡, 손곡 이달, 석봉 한호 등과 교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허균에게 문과 시 그리고 서채를 가르치도록 했다. 허균이 열여덟 살 때에는 허봉이 직접 백운산에서 고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가 조선 제일의 감식안을 자랑하게 된 것도 허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균은 허봉에게서 청운의 길과 백운의 길, 인생의 환희와 치욕을 동시에 목도했다. 약관 스물두 살에 과거에 급제한 허봉은 성절사(聖節使, 중국 천자의 탄신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는 사신)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고, 예조좌랑과 이조좌랑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사림이 동서로 나뉜 조정에서 동인의 중론을 이끄는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허봉은 계미년(1583년)에 율곡 이이를 탄핵했다가 창원부사로 좌천되었고 뒤이어 갑산으로 유배되었다. 그때부터 허봉은 청운의 꿈을 접고 무자년(1588년) 금강산에서 죽을 때까지 팔도를 유람하며 백운의 길을 즐겼다. 

병술년(1586년)에 백운산에서 허봉을 만나자마자, 허균은 이렇게 물었다. 

"형님!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왜 이런 곳에서 세월을 죽이고 계시는 겁니까?" 

"울분의 근원을 찾고 있느니라." 

"울분의 근원이라면......?" 

"처음엔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였었지. 허나 지금은 그런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한심한 내 몰골에 대한 분노가 앞서는구나. 이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는 한적한 곳에 머물러야겠지." 

"울분의 근원을 다스리게 되면, 다시 세상으로 나가실 겁니까?" 

"물론!" 

허균은 알고 있었다. 을유년(1585년)에 귀양이 풀린 다음, 서애 유성룡이 그토록 조정으로 돌아오라는 서찰을 띄웠음에도 불구하고 허봉이 왜 나아가지 않았는가를. 허봉은 세상을 등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부둥켜안기 위해 홀로 고뇌하였다. 그 여름이 끝날 무렵 오랜 벗인 사명당이 찾아왔을 때, 지는 해를 바라보며 허봉이 뱉어 내던 말들을 잊을 수가 없다. 

"대사! 조정으로 돌아오라고 서애가 아무리 독촉해도 나는 가지 않을 것이외다. 공자 왈 맹자 왈로는 사바세계의 중생이 억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애야 맑디맑은 위인이지만 서애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바다와 나무가 온통 탁하니, 어찌 중생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소이까? 나는 탁하디탁한 만물을 한꺼번에 불사르는 법을 찾고 있소이다. 단 한 번의 깨우침으로 열반묘심(涅槃妙心, 불생불멸의 진리)을 이루기 위해, 이 더운 여름날에도 둔한 머리를 다스리고 있다오." 

단 한 번의 깨우침! 

허균은 그 말이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았다. 그것은 결코 허봉 개인을 위한 깨우침이 아니었다. 허봉은 이 땅의 백성들이 억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유교라는 사상, 조정이라는 제도 안에서는 그 길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곳을 떠나 그곳 밖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그 길이 무엇이었을까? 더 깊은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허봉은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석씨를 가까이한 것도, 신선술에 관심을 가진 것도 허봉의 영향이었다. 허균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유교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불교로, 불교가 부족하면 도교로 깨달음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균아!" 

마침내 허공의 목소리가 다시 들여왔다. 이번에는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찾는다고 보일 대상도, 찾지 않는다고 사라질 목소리도 아니었던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요순을 이 땅에 재현하는 것이냐? 참과 거짓, 공과 사를 명명백백하게 구별할 수 있는 군왕을 세우는 것이냐?" 

"아닙니다." 

"너를 따르는 무리들 중에는 교산이 용상을 차지하기 위해 일을 도모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너는 정녕 용상을 위해, 허씨 왕조를 세우기 위해 군관과 역관과 땡초와 시정잡배를 끌어들였느냐? 그들을 위해 벌써 관직을 준비해 두었다는 것이 사실이냐?" 

"아닙니다."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서냐? 너를 가두고 모함하고 협박하는 이들의 수족을 자르기 위해 뜻을 세운 것이냐? 억울하게 죽어간 벗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고 수군거리는 무리도 있다. 그게 정녕 네가 원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백성을 위해서라고 대답하겠구나.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들을 위해서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 네 뜻이냐? 내가 삼십 년 전에 품었던 뜻을 네가 이루겠다는 것이냐? 나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금강산에 머물렀지만, 너는 그 뚯을 위해 관송의 심장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하려느냐? 과연 너는 백성을 위한 마음뿐이었느냐? 그 마음은 어디서 비롯되었느냐? 네가 읽은 서책들 속에서, 네가 만난 여러 사람들 속에서, 네가 본 천지 만물의 움직임 속에서, 그 깨달음이 찾아들었다고 대답할 작정이냐?" 

"형님!"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우러렀다. 소리의 근원을 찾았지만 지독한 어둠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고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완전히 바꾸어 버리지 않고는 가슴속의 울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금상을 죽이고 북인 정권을 무너뜨린다고 이 울분이 사라질까요?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 이들에게 높은 벼슬과 귀한 보석을 안긴다고 분노와 회한이 사라질까요? 사람만 바뀔 뿐 울분은 그대로라는 걸 누구보다도 형님이 더 잘 아시질 않습니까? 다시는 그런 울분을 느끼지 않도록 단칼에 세상을 바꾸렵니다. 이씨의 나라도 허씨의 나라도 아닌 만백성의 나라를 만들렵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도덕과 제도를 단숨에 지워 버리렵니다. 두렵지 않냐고요? 두렵습니다. 허나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면, 형님, 이 아우를 도와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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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에 대하여..

허균의 혁명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허균, 최후의 19일>>(김탁환 지음,  민음사, 2009) 중 상권의 내용 중에서 발췌함(160~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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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허균의 아들)에게 부치노라. 

이제 너도 이 아비가 처한 상황을 알겠구나. 의금부의 관원들이 널 잡아들이기 위해 혈안이라고 하니, 무사한지 걱정이 앞선다. 네가 보고 들은 것들을 믿지 마라. 이 아비에 관한 그 어떤 소문도 진실이 아니며, 숭례문의 흉격을 둘러싼 그 어떤 논의도 사실이 아니다. 확실한 건 이 아비에 관해 떠드는 자들은 심심풀이로 그 짓을 한다는 게고, 아비는 이 일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다. 왜 그따위 일에 목숨을 걸었느냐고 따지는 너의 얼굴이 떠오르는구나. 네 나이 이제 겨우 열세 살이니, 역모의 주동자인 아비를 받아들이기 힘들 게다. 기정승을 탄핵했다고 집을 나간 네가 아니더냐? 

그래서 이렇게 매일, 하루에도 서너 차례 붓을 드는 건지도 모르겠구나. 이런다고 네가 날 완전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좁은 공간에서 널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것뿐이구나. 이 서찰은 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글이면서 동시에 널 이해하기 위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 앉아 물끄러미 네 안을 들여다본 적이 있느냐? 타인에게 들키지 않은 너의 너다움을 본 적이 있느냐? 그 너다움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집을 떠난 적이 있느냐?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달아나지 못하고 결국 되돌아와서 너다움과 다시 대면했을 때의 심정을 너는 아느냐? 이 아비는 사십오 년 동안이나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쳤었다. 이건 내가 아니라고, 나의 탈을 쓴 괴물이라고 부인하며 팔도를 떠돌았던 게다. 그리고 오 년 동안, 나는 철저하게 나의 나다움을 들여다보며, 오직 그 나다움을 버팀목으로 지내 왔다. 꼭 한 번은 이 나다움을 향한 시선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 싶다. 그것이 반백 년, 이 아비의 삶을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는 유일한 길이니까. 그 길의 끝에서 아비는 지금 의금옥에 갇혀 있는 게다.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괴물답다고 평하한다. 마지막으로 인간답게 말하고 움직인 순간들의 나를 그들은 마치 원숭이 보듯 한다. 너도 나를 원숭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이건 네게 던질 물음이 아니구나. 원숭이면 어떻고 원숭이가 아니면 또 어떻겠느냐. 

아비의 마지막 거사가 성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점점 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것을 느낀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 역시 중요한 법이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죽음을 준비하는 나를 방해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다. 거사가 성공하면 할 일들은 이미 준비를 끝내 놓았다. 이십 년이 넘도록 구상하고 살핀 일들이므로 구태여 이곳에서 다시 되새김질을 할 필요도 없다. 허나 죽음은 다르다. 지금까지 나는 죽음을 준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지금 죽음은 삶만큼이나 내 코앞에 확 다가와 있다. 나는 이제 죽음의 얼굴을, 냄새를, 걸음걸이를 생각한다. 죽음 앞에서도 낯설지 않은 웃음을 웃고 싶다. 

이 아비는 네가 마음에 걸린다. 거사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너의 인생은 이 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질 게다. 네가 그런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아비도 알지만, 이제 너도 운명이라는 놈의 버릇없음을 인정해 주기 바란다. 

처음에는 아비의 인생을 찬찬히 반추할 생각이었으나 그만 두는 편이 낫겠다. 아비의 인생은 아비의 인생이고, 너는 또 너만의 인생을 걸어가야 하니까. 아비는 네가 부끄러워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너도 인생을 살다보면 참으로 고마운 이들을 많이 만날 게다. 훌륭한 스승, 따뜻한 이웃, 믿음직한 벗, 아내 그리고 자식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그들을 위해서라면 너의 모든 것을 주고서도 아깝지 않아야 한다. 네 인생의 주인이 너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너의 인생은 네가 만난 사람들, 네가 읽은 책들, 네가 본 사물들과 풍광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게다. 그리고 너 역시 그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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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 자식에게 남기는 말..

허균의 혁명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허균, 최후의 19일>>(김탁환 지음,  민음사, 2009) 중 상권의 내용 중에서 발췌함(109~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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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너만의 고뇌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늦은 밤 홀로 깨어 세상의 문제를 헤아리고 앉았노라면, 숨이 턱턱 막히고 오금이 저려 당장이라도 첩첩산중으로 달아나고 싶어진다. 허나 탈주는 비겁이다. 너는 더욱 엉덩이를 무겁게 하여 세상의 중심을 노려보아라. 그 중심을 너 혼자 힘으로 안아 들어야 한다. 스승과 벗이 있긴 하지만, 결국 인생이란 너 혼자의 몫인 게다. 매일매일 너의 전부를 돌이켜보아라. 말과 웃음과 걸음걸이와 가슴과 배와 머리와 이와 눈물까지도. 그것들이 만들어 가는 너의 인생을 꽉 움켜쥐어야 한다. 인생을 시간에 내맡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단다. 세상의 시간이 너를 탁월한 자리로 밀어 올린다 해도, 그 자리는 네 것이 아닌 게다. 얄팍한 감상이나 개인적인 아량으로 너의 고뇌를 덮을 생각은 버려라. 넌 이제 홀로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너의 자유이고 운명임을 명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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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혁명>>(김탁환 지음,  민음사, 2014) 중 제2권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함(109~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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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쌓는 중이다. 외로운가? 너는 쌓는 중이다. 슬픈가? 너는 쌓는 중이다. 아픈가? 너는 쌓는 중이다. 분노가 치미는가? 너는 쌓는 중이다. 바람을 쌓은 후에야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다. 

 

너는 제자리걸음을 익혀라. 나아가진 않지만 너는 여전히 걷고 있다. 

 

너는 봉우리를 탐내지 말라. 봉우리에선 평지보다 더 먼 곳을 본다. 네 눈이 좋아서가 아니라 네가 선 곳이 봉우리인 탓이다. 사람들이 봉우리를 오를 때 너는 차라리 물을 따라 내려가라. 때로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흐르는 물에 입을 맞추고 목을 축여라. 그리고 깨달아라. 봉우리에 오르는 이들만큼 강가를 거니는 이들이 낯설다는 것을. 강가의 사람들은 먼 곳의 소식에 밝다. 네가 태어난 곳, 네가 걸어온 곳의 풍경을 훤히 읊어댄다. 낮은 강가에선 발뒤꿈치를 들거나 두 발을 힘껏 차고 뛰어오르지 않는다. 신령스러운 기린이 목을 길게 뽑는다 한들 야트막한 언덕 너머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낮은 강가의 사람들은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배들이 전하는 말을 듣는다. 봉우리의 사람들은 눈이 크고 강가의 사람들은 귀가 길다. 

 

너는 신나게 울어라. 사람들이 기뻐할 것이다. 너는 신나게 소곤거려라. 사람들이 귀 기울일 것이다. 너는 신나게 굶어라.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다줄 것이다. 너는 신나게 걸어라. 사람들이 너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자처럼 길 위에 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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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즐김..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혁명>>(김탁환 지음,  민음사, 2014) 중 제2권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함(69~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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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능선을 탔다. 한 달 전 산불이 난 탓에 검은 재가 그득했다. 불바람을 피하지 못한 토끼며 노루며 멧돼지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일흔 살을 넘김, 삼옹(森翁)으로 통하는 늙은이만 능선을 바삐 오갔다. 그가 과연 능선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때 황소를 잃고 곡을 하는 농부의 집에서 나오다가 삼옹을 발견하고 손목을 쥐었다. 

"매일 능선에 가서 뭘 하오?" 

삼옹이 천으로 덮인 지게를 고쳐 메곤 답했다. 

"궁금하면 따르십시오." 

비탈로 접어들자마자 검은 재들이 풀풀 날리며 신발과 바지를 더럽혔다. 삼옹은 무거운 지게를 지고도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재가 전혀 흩날리지 않았다. 능선에 오르니 어제까지 삼옹이 심어 놓은 어린 나무들이 보였다. 홀로 이곳까지 와서 나무를 심은 것이다. 삼옹이 지게를 내리고 천을 걷었다. 오늘 심을 어린 나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바위 밑에 숨겨 둔 삽과 괭이를 가져와선 어린 나무 한 묶음과 함께 내밀었다. 

그렇게 반나절을 삼옹을 따라 허리를 숙인 채 나무만 심었다. 삼옹은 때때로 사러졌다가 나타났다. 물지게를 지고 계곡까지 내려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방금 심은 나무에 물을 그득 부어 주려고 열 번도 넘게 비탈을 오르내렸다. 준비해 간 나무를 모두 심은 뒤에 내가 물었다. 

"그대 땅이오?" 

"아닙니다. 여긴 농사도 짓지 못하니, 누가 가지려고 탐을 낼 곳이 아니지요." 

"한데 왜 나무를 가져와서 심는 게요?" 

"움직이는 나무들이 좋아서입니다. 불이 난 후론 능선이 너무 고요합니다." 

"나무들이 움직인다고 했소? 나무들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게요? 움직이지 못하기에 불이 나도 달아나지 못하고 모조리 불타 버린 게 아니오?" 

삼옹은 하산길에 나를 데리고 잠시 참나무 숲으로 갔다. 불길이 미치지 않은 숲은 그림자가 짙고 시원했다. 삼옹이 턱을 들며 말했다. 

"잘 보십시오. 나무들이 얼마나 신나게 움직이는지." 

산바람이 불어내렸다. 가지가 흔들리면서 잎이 덩달아 춤을 추었다. 어린 나무들은 줄기까지 휘청대기도 했다. 내가 따져 물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지 않소? 나무는 다만 흔들릴 뿐이고." 

"바람도 움직이긴 하지요. 하지만 나무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바람을 만나 춤출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사람이나 들짐승들은 대부분 좌우로 움직이지만 나무는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이 어린 나무가 어떻게 저와 같이 크고 긴 나무로 자라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자세히 살피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지, 나무는 매일매일 움직입니다. 우선 하늘을 향하여 쑥쑥 올라가지요. 줄기를 곧게 뻗고, 또한 그 줄기에서 가지를 내보냅니다." 

"아래로 움직인다는 건 무슨 말이오?" 

"저 땅속에서 나무가 하는 일을 떠오려 보십시오. 나무의 뿌리는 깊은 곳을 향햐여 파고들어 갑니다. 뿌리가 깊이 내려갈수록 높이 솟구치는 법이지요. 이래도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하시겠습니까?" 

솔직히 잘못을 인정했다. 

"내 생각이 짧았소. 한데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이야 눈대중으로 살피며 즐길 수 있으나, 그 뿌리가 땅으로 파고드는 것은 흙을 덜어 내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지 않소? 아래로 향한 움직임은 어떻게 즐긴다는 게요?" 

"눈으로 꼭 봐야만 즐기는 건 아닙니다. 줄기의 굵기와 길이, 또 가지의 벌어진 꼴과 잎의 모양을 세세히 살피며, 뿌리가 얼마나 넓은 땅을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지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위가 아름다우려면 아래가 튼튼해야 합니다. 아래가 건강하지 않고는 햇빛이 아무리 좋아도 나무는 썩어 부러지고 맙니다." 

삼옹이 서둘러 숲을 내려왔다. 나는 그의 빈 지게를 쳐다보며, 뿌리를 백성에 빗대어 보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다고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을 되뇌며 농부의 집으로 삼옹과 함께 들어갔다. 곡소리가 어느새 노랫가락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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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황소의 죽음..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혁명>>(김탁환 지음,  민음사, 2014) 중 제2권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함(65~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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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소리에 잠을 깼다. 옆집 늙은 황소가 간밤에 죽었다. 늙은 농부는 쓰러진 황소 옆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수십 년 정이 들면 사람이 짐승보다 낫다는 말도 있어 참고 넘기려 했다. 점심까지 곡이 이어졌기에 옆집으로 갔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인 농부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소를 키웠다. 여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혼인을 했는데 사별한 것인지 아내가 집을 나간 것인지 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았는지는 그때그때 말이 달았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니 그만 슬픔을 거두라고 권했다. 농부가 울음을 삼키곤 물었다. 

"부모 친척의 상(喪)을 제외하고 생명붙이를 위해 하루종일 운 적이 있습니까?" 

"없소." 

"왜구들이 침탈하여 많은 이들이 죽거나나 끌려갔습니다. 그때 혹시 울지 않았습니까?" 

"울지 않았소." 

"흉년이 들어 또 마많은 이들이 굶어 죽은 해를 기억하시지지요? 그때 혹시 울지 않았습니까?" 

"울지 않았소."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뒤이어 돌리병 때문에 열두 마을의 주민들이 몰살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혹시 울지 않았습니까?" 

"울지 않았소." 

"그렇다면 내가 우는 것을 말릴 자격이 없습니다." 

"울어 보지 않았다고 어찌 이치를 따지지 못한단 말이오? 울음에 으르지 않더라도 알고 행해야 하는 일이 이 세상엔 가득하오." 

"슬픔을 느끼지 않고 이치만 따지기 때문에 백성이 정치가를 믿지 못하는 겁니다. 왜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죽임을 당하는 일, 흉년이 들로 돌림병이 도는 일, 또 수십 년을 함께 산 황소가 갑자기 숨을 거둔 일, 이 불행들을 어떤 이치로 명쾌하게 설명하시렵니까? 우는 것 외엔 답이 없는 일도 꽤 많습니다." 

비로소 그 농부가 땅땅만 갈고 곡식만 시심는 이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노을이 깔리자, 곡소리가 멈추고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농부의 선창에 이어 수많은 목소리가 소리를 받았다. 집 안은 물론 마당과 길까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소 모는 소리>를 부르는 중이었다. 

 

이랴이랴 워디위디 이랴이랴이랴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쉬지 말고 어서 가자. 

이 밭 갈아 옥토 삼고 씨앗 심어 길러 보세. 

이 곡식을 거둬들여 부모 봉양 다하고서 

자식 놈들 입고 먹여 이 한세상 살고 지고 

이랴이랴 워디 이래이 쯔쯔쯔쯔 이랴 

가자 가자 어서 가자 ㅅ쉬지 말고 어서 가자. 

 

노래가 끝난 후 마을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고깃국이 나눠졌다. 구경꾼인 내게도 국 사발이 왔다. 새벽에 죽은 황소를 끓여 만든 것이다. 뒤이어 탁주도 한 사발씩 돌았다. 농부에게 물었다. 

"종일 곡을 하기에 황소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겠거니 여겼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 불러들여 함께 노래하며 먹고 마시는 까닭이 무엇이오?" 

농부가 한심하다는 듯 헛웃음과 함께 답했다. 

"언덕에 묻으면 나만 황소를 기억하지만, 이렇게 나눠 먹고 즐기면 마을 사람 모두 우리 집 황소 덕분에 배를 채운 밤을 잊지 않을 겁니다. 여기선 누구나 이렇게 삽니다." 

술이 한 순배 돌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황소에 얽힌 이야기를 한 토막씩 꺼냈다. 온갖 황소들이 이야기판에 출몰했다. 사냥 나온 황을 구하고 정오품 벼슬을 받은 황소, 늑대 울음을 우는 황소, 발이 여섯 개, 일곱 개, 여덟 개인 황소, 공자님 말씀엔 귀 기울이지만 맹자님 말씀엔 고개 저으며 뒷발을 차 대는 황소, 풀 대신우 흙만 먹는 황소, 10년 동안 황소였다가 죽을 땐 암소로 변한 황소, 반대로 암소였다가 황소로 변한 황소, 하늘을 나는 황소, 바다 밑을 걷는 황소, 말보다 더 빨리 달리는 황소, 뿔로 바위를 부순 황소, 손바닥 하나에 쏙 들어가는 황소, 나라님 계신 궁궐보다 더 거대하게 자란 황소. 

농부는 황소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함께 웃고 마시고 노래하다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모든 황소를 합쳐도 오늘 죽은 황소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농부의 황소는 보름달이 뜨면 긴 울음을 먼저 울었고, 농부가 빈 손으로 나오면 다시 울어 술병을 챙기도록 했으며, 등에 탄 농부가 아무리 빨리 가자 채근해도 그윽한 풍광을 충분히 즐기기 전에는 걸음을 떼지 않았고, 취한 농부가 길을 찾지 못해도 스스로 적당한 때를 택하여 돌아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1000리를 하룻밤에 달리는 명마(名馬)를 칭송하지만, 그 밤 10리밖에 못 가더라도 농부에게 넉넉한 여유와 즐거움을 선물하니 이 황소야말로 명우(名牛)라는 이야기다. 말을 탔다면 놓쳤을 세상의 묘(妙)한 구석을 느린 황소 덕분에 만끽한 셈이다. 농부의 젖은 눈은 순하디순한 황소의 눈을 닮았다.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 상하지 않는 시집을 읽는 기분이 이와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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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론과 경험론의 대결(삼봉과 동자의 대결)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혁명>>(김탁환 지음,  민음사, 2014) 중 제2권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함(35~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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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간 뒤 무지개가 떴다. 마루에 앉아 구경하는 내 곁으로 동자가 슬금슬금 엉덩이를 밀며 다가왔다. 오늘은 또 무엇이 궁금한 걸까, 내색 않고 기다렸다. 

"왕성 사람들은 모두 나리처럼 지냅니까요?" 

동자는 태어나서 영주를 벗어난 적이 없다. 이 나라 도읍지가 북쪽인지 남쪽인지도 몰랐다. 영주를 돌아다니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나이였다. 왕성에서 벼슬을 살다가 내려왔다는 중늙은이가 서책 읽고 문장 쓰고 산책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곳 생활이 궁금해진 듯했다. 

"아니다. 서생은 글을 읽고 쓰지만, 장사꾼은 물건을 팔고 장인은 옷이며 가구며 농기구를 만들지." 

동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입니다요. 난 또 우린 열심히 농사짓는데, 왕성 사람들은 놀고먹는가 싶었네요." 

"넌 내가 놀고먹는 것 같으냐?" 

"나라에 큰 죄를 짓고 유배 오셨단 소릴 듣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벌 받으시는 것 같진 않네요. 옥에 갇히지도 않고 곤장을 맞지도 않고. 오히려 가끔 관아에 가셔서 술 대접, 밥 대접을 받고 오시지 않습니까? 그런 게 벌이라면 저도 달게 받겠습니다요." 

귀양의 힘겨움, 왕성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나날의 답답함을 어찌 동자가 알랴. 

"가끔 밤늦도록 잠도 자지 않고 끼적이시는 거 압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종이를 찢거나 물로 씻어 버리시더군요. 찢거나 씻을 글을 왜 저렇듯 낑낑대며 여러 번 고쳐 쓰는지 솔직히 답답했어요." 

계속 놀림을 당하긴 싫었다. 

"나도 일한다." 

"무슨 일 하십니까요?" 

"이 마음에 들어 있는 나라를 문장으로 옮기지." 

"또 그 마음속 나라 타령이십니까. 나리의 나라는 무척 작은가 봅니다. 마음에 쏙 들어갈 만큼. 나리의 나라는 무척 만들기 쉬운가 봅니다. 문장으로 옮겨 간직할 만큼." 

당돌한 지적이다. 

"왜 그리 여기느냐?" 

"나라를 문장으로 옮기는 건 고민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저 언덕 무지개를 말로 담기 어렵다는 것쯤은 압지요." 

동자의 시선을 따라 잠시 무지개를 쳐다보았다. 

"나리는 저 녀석이 몇 가지 색깔로 보이십니까요?" 
"다섯 가지! 그래서 오색 무지개 아니냐?" 

"저는 볼 때마다 달라지던데요. 어떤 날은 다섯인데 어떤 날은 일곱이고, 또 어떤 날은 팍 줄어 셋이고. 무지개의 크기나 길이도 알쏭달쏭합지요. 여기서 보면 언덕 이쪽에서 저쪽까지만 걸친 듯한데, 막 달려가면 무지개가 점점 크고 길어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더라고요. 무지개 보면 재수가 좋다며 춤추는 이도 있고, 무지개 보면 불행이 찾아든다고 아예 고갤 숙이고 걷는 이도 있지요. 아직 저 무지개를 만졌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드럽다 축축하다 딱딱하다 말들은 많지만. 전부 추측일 뿐이에요. 무지개 하나만 놓고 따져도 이러한데 나라를 문장으로 옮기려면 얼마나 복잡할까요. 나라를 마음에 넣기도 어려운 일, 넣어둔 나라를 꺼내 문장으로 옮기기도 어려운 일! 나리는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을 하십니까. 그냥 편히 뒹굴뒹굴 지내면 누가 야단이라도 칩니까" 

집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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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마음.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혁명>>(김탁환 지음,  민음사, 2014) 중 제1권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함(185~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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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화두로 삼을 문장은 이것이다. 

"대인은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동자라고 어찌 두려우움이 없었으랴. 누렁이가 작심하고 달려들면 급소를 물려 중상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자는 누렁이의 처지를 밝게 짐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두려움을 이기고 도움을 줬던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니 사람과 개의 구별조차 중요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지킬 것이 많다며 나누고 거리를 두고 벽을 쌓으려 든다. 사방이 뚫려 바람과 냄새와 또 짐승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곳에서 단 하룻밤도 편히 잠들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는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떠나가는 모든 것들을 아쉬워한다. 처음 만나는 것들이 낯설긴 하되 위험하다며 피하진 않는다. 먼저 마음을 열고 먼저 손을 내민다. 나 역시 아이의 마음으로 이 나라 백성을 만나고 싶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가 품고자 했던 아이의 마음을 어디에 두고 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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