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체불임금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4/03
    동지가 가고자 했던 길이 건설노조가 가야 할 길입니다
    건설현장을 바꾸자

동지가 가고자 했던 길이 건설노조가 가야 할 길입니다

건설노조 조합원 동지에게 길을 묻습니다.
동지가 가고자 했던 길이 건설노조가 가야 할 길입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비보를 우리는 들었습니다.
한 겨울 11월부터 2월까지 손등 터지고 얼음장보다 차가운 철근을 엮고 손이 쩍쩍 달라붙을 만치 얼어붙은 삿보도 받아치며 일한 현장이었습니다.
밀린 임금 450만원을 달라고 그것도 이미 4개월 이상 밀려있는 임금을 달라고 요구했단 이유로,
일용노동자 주제에 감히 현장소장에게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의자로 어깨를 내려 찍히고 대형 옷걸이로 옆구리를 가격당하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체불임금을 달라 요구했다고 돌아온 건 온갖 폭언과 폭행...그리고 살인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이 현장소장은 툭하면 고 이철복 동지의 머리를 때리고 일하고 있는데 걷어차곤 했다합니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혹여 자신이 서울에서 강릉까지 데려온 동료들이 잘릴까봐 밀린 임금을 못 받을까봐 피눈물을 삼키며 일을 했다 합니다.
만45세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들어선 건설현장이다보니 철근공으로 꼬박 30년을 일했습니다.

일 끝나고 소주 한잔 들이키며 고인이 일하던 현장이 체불임금 없는 건설현장, 쓰메끼리 없는 건설현장으로 되어야 한다는 눈물어린 푸념은 끝내 고인의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인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고인의 흔적을 되돌아보며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


  
건설노동자 흔히 말하는 건설노가다 일당쟁이에게는 그동안 걸어온 길과 또 다시 걸어가야 할 두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원청의 사용자성 책임인정이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쟁취라는 끝도 없는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하여도 건설노동자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말도 안되는 현장 통제와 고 이철복 동지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폭언과 폭력을 감내하고, 관행이라는 이유로 비합리적인 조건을 강요받아온 굴욕의 여정이었습니다. 

노동기본권이 뭔지는 몰라도 이렇게 사는 것은 분명 인간답지 못한 삶이기에... 고인은 숱한 체불임금으로 고통을 당하고 돈을 떼이고서야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염원과 투쟁을 생각했고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처음으로 팔뚝질이 그리도 신나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폭언과 폭력만을 일삼던 현장소장 앞에서 당당하게 내 노동의 댓가...한겨울 손등 터지는 피눈물의 댓가를 달라고 마음껏 소리도  질러 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무엇이고 노동조합으로 단결된 노동자의 힘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척박한 건설현장을 바꿔낼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고인의 삶은 희망으로 가득차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건설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 너무 많은 가시밭길입니다. 고 이철복 조합원 동지가 30여년간 걸어온 길이 험난했듯이 남아있는 자들의 앞 길 또한 시원한 탄탄대로는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꾸불꾸불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울퉁불퉁 흔들리고 부딪치며 힘을 모아 헤쳐 가야할 때도 있고, 때로는 원칙만을 고집하기에는 우리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되돌아봐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친기업위주 노동정책과 비리로 얼룩진 건설자본에게 죽임을 당한 고 이철복 동지에게 건설노조 활동가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15년 먼저 노동조합을 알게되었고 15년 먼저 삶의 중심에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동지를 잃고 나서야 느슨해진 팔뚝과 약해진 마음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돌아가고 흔들리고 깨지며 가더라도 건설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향한 마음과 투쟁 의지는 이미 현장을 바꿔나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건설노조는 잘 알고 있습니다.

노조의 계획된 사업과 활동만을 생각하며 동지들의 뜻을 잊어버리고 일에 매몰되는 차가운 현실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현실의 문제는 욕을 먹더라도 과감히 덮어두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도 이제는 알아야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건설노동조합에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노동자의 자존심과 노동의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고 노동기본권도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들입니다.
우리는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구슬땀을 흘리고 열심히 일을 하지만 노동자로 불리지도 못하고 대접도 못  받는 특수고용노동자들입니다.
수 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전봇대 꼭대기에서 안전장구 하나 없이 자신의 안전보다 모두의 편안한 삶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조차 내걸고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입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져야 합니다.

소박한 건설노동자의 따뜻한 시선과 높은 헌신성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우리의 노동이 좀 더 가치가 있고, 인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면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남들처럼 주5일노동, 주40시간 노동의 요구는 내걸지도 못하지만 주44시간 하루 8시간 노동이 건설현장에서도 불가능한 길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길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탁 트인 시원한 길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친 길, 힘든 길 일수록 그 열망은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하루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길 !
임금이 체불되었을 경우 발주자와 원청이 책임을 지고 직접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투쟁 !
불법하도급으로 발생된 모든 책임은 원청에게 실질적 책임을 다하도록 만드는 투쟁 !
온갖 불법이 난무함에도 회사 입장만 대변하는 노동부 관료들의 썩어빠진 정신을 뿌리뽑아내는 투쟁 !

건설노동자의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쉼 없이 달려온 그 길.
우리는 이렇게 투쟁을 통해 단련되며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건설노동자의 희망을 조직하는 투쟁의 길 그 위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건설노조 조합원 동지에게 길을 묻습니다.
고 이철복 동지가 가고자 했던 그 길이 건설노조가 가야 할 길입니다.
억울한 죽임에 눈 감지 못하는 고 이철복 동지의 명복을 비는 길입니다.

 

2008. 4. 2  김병융

건설노동자 고 이철복 조합원 동지를 추모하며 씁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