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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 해를 보내며 써보는 반성문

늦은 시간, 사무실에서 아무 생각없이 노트북을 멍하니 쳐다볼 때가 있다. 하루종일 뒷 머리가 땡길정도 정도로 고민을 했지만 해결이나 방책을 찾기는 커녕 몸의 기운만 소진한 날이거나, 그 피곤을 잊어볼 생각으로 못먹는 술이라도 홀짝거린 날이 이런 날이다.


이런 날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은 어떤 자료를 정리하거나, 선전물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사가 귀찮고 아무런 행위도 할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에 무작정 책상에 덩그러니 앉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두드리고 매일노동뉴스, 참세상 속보를 검색해본들 물끄러미 컴퓨터 화면만 쳐다볼 뿐, 기사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 들어 이렇게 무기력한 상황이 자주 반복되는 듯 하여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다. 나는 어려운 상황에 대하여 진저리 칠 정도로 대면하고 싶지 않은 버릇이 있다. TV를 보다가 수개월째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든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라든지, 혹독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이야기...등등.

그들의 눈물과 고통은 너무나 가슴을 쥐어짠다. 게다가 국가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프로그램. 700국으로 시작하는 전화를 하면 천원이 쌓이는 류의 프로그램은 견디지 못해 번번히 채널을 돌리고 된다.

사실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나도 어려운데 나 보다 더 어려운 사람의 일을 계속해서 보다가는 TV프로그램이 유도하는데로 전화기 버튼을 누를까봐 외면한 일이다. 눈물이 마른 것인지 가슴이 메마른 벌판인건지....

 

그런데......
사실 실제상황에서 외면하고 싶은 일은 더욱 많이 벌어진다.
안산 대우9차의 천막농성. 인천 송도의 천막농성이 그렇다. 하루 하루가 지날 수록 그 현장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연대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안산과 인천의 천막농성의 시작은 다르지만 내용은 날이 갈수록 동질성을 갖는 변화가 있다.


이른바 팀장은 사용자라는 것이다. 부실시공을 막아보고자 책임자의 신원을 명확히 해보자는 의도로 시작된 시공참여자 제도가 이렇게 노동자의 권리를 막아설 줄 누가 알았을까?

대다수의 국민들이 얘기하는 노가다 막노동꾼들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인권을 얘기하고 근로기준법을 건설현장에서도 지켜달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수의 건설노동자들이 그랬고, 광양, 순천, 대구에서 올라온 건설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는 이제 전 건설현장에 불이 붙고 있는 것이다.

 

2005년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설움을 온 몸으로 저항하며 보여줬던 울산플랜트 건설노동자들의 투쟁과, 덤프연대의 연이은 총파업만의 얘기는 아니다.
건설노동자의 의식이 성장한 것인지 아니면 건설노동조합의 성장이 가져온 소식인지는 아직 잘 모를 일이지만 2005년 전국 각지의 건설현장에서 울려퍼진 목소리는 같았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다단계하도급 금지”, “8시간 노동준수”, “안전시설 안전관리”, “사용자는 교섭에 나와라”는 요구를 내걸고 2005년 건설노동자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임금은 떼이기 일쑤이고, 일요일도 없는 장시간 중노동, 변변한 화장실, 탈의실이 없어 길가에서 창피함을 무릎쓰고 작업복을 갈아입어야 하는 현실, 안전시설이 없어서 떨어져 죽은 사람들...
하물며 하청업체 현장소장마저 현장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은 건설현장이 얼마나 열악하고 낙후한 현장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문득 공사장 옆을 지나며 불쾌감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며 공부 안하면 너 커서 저 사람들처럼 된다며 손가락질 해대는 버스속 아주머니의 얘기도 떠오른다. 
길가의 행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바지를 내려 용변을 보는 모습을 보고 자기 아이에게하는 얘기였다.  그 모습이 불쾌하기만 했을 뿐 '그들이 왜 길가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는지'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형 굴지의 회사들이 시공하는 현장에도 탈의실이 없는데 길가 작으마한 상가 짓는 현장에 화장실, 탈의실이 어디 있겠는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한 해가 1970년이다.
35년 전 스스로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를 떠올리는 건 건설노동자의 현실을 아는 사람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2005년에도 우리는 그 외침을 단 하루도 그친적이 없다. 35년전 열사의 외침은 아직도 울려퍼지는 진행형이다.

이는 사회가 힘없는 건설노동자에게 휘두르는 야만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건설노동자들은 하루 일을 하지 못하면 그 고달픔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했던가? 

일하지 않는 자가 일하지 못하는 자의 고통을 알 리가 없다.

부당한 노예계약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인천 송도의 형틀목수와 부당노동행위에 저항하였단 이유로 명령불복종에 해당한다며 하루 아침에 해고자 신세가 된 안산의 철근공의 투쟁에 대하여 천막농성한지 안산은 2달을 넘어섰고 인천은 1달이 지나고 있다.

 

하루의 일당 아니 수십일의 밥벌이를 포기하고 투쟁의 길에 나선 사람들. 날이 갈수록 지쳐가고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이들의 의지와 행동에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의 투쟁에 파고드는 나의 무력감은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 것인가? 정말이지 2006년에도 이러한 싸움이 계속될까 두렵고 더욱 외면하고 싶어질 것이다.

 

사실과 직면한다는 것은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올 한해도 이제 떠나간 기억으로 남게될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 그저 바람과 같은 기억으로 보내고 싶지 않다.

 

2006년!
힘내자! 건설노동자의 힘!

 

200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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