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2010.01.03
 
밴드의 뜨거운 공연 장면. 맨 왼쪽이 소모뚜.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 '오늘은 나의 월급날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 한참동안 받지 못했던 월급을 돌려준대요 / 나의 소중한 가족들 사랑하는 부모님 / 이제는 나의 손으로 행복하게 해줄게요 / 오 사장님 안녕하세요 / 오 사모님 내 월급을 주세요'(스탑크랙다운 2집 수록곡 '월급날')

'아이언 크로스'는 미얀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헤비메탈 밴드이다. 밴드의 기타리스트 칫산마웅은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이들을 보고 음악에 빠진 청년은 한국으로 건너와 이주노동자가 됐다.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음악을 잊지 않았던 그는 2003년 11월 성공회성당의 농성장에서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을 결성했다. 그후 6년, 두 장의 앨범을 내며 꾸준히 활동해오던 밴드는 지난 10월 주축이었던 미누의 강제추방 이후 단 1명이 남은 원맨밴드가 됐다. 여전히 '스탑크랙다운'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그 사람은 ‘아이언 크로스’의 팬이었던 음악청년, 소모뚜씨다.

지난해 11월26일 홍대에서 열렸던 밴드 결성 6주년 기념 공연 '미누야 보고 싶다'의 감상을 묻자 소모뚜씨는 담담했다.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어요. 우리는 무언가를 바라고 밴드를 한 것이 아니에요. 모두가 사람이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국적이 다른 멤버들이 모여 '다문화밴드'를 6년이나 꾸려 올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강제로 추방당해야 한다는 것이 슬펐어요. 하지만 우리가 쪼개져 있는데도 공연을 하고 예전같은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건 기뻤습니다. 비록 흩어지게 되었지만 우리는 큰 충격을 받지 않아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가 하나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되니까."

소모뚜가 기타를 치고 미누는 노래를 부른다. 밴드 연습중이다. 왼쪽이 소모뚜, 오른쪽이 미누.


인터뷰 내내 그는 '우리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스탑크랙다운 밴드 멤버, 이주노동자 방송국 MWTV 대표,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버마행동' 총무 등 수많은 직함을 지닌 그가 제시하는 다문화사회의 원칙이 거기서 출발한다. 사람이기에 같을 수밖에 없고, 다문화사회는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다문화 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미얀마, 네팔, 방글라데시, 몽골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여하는 다문화교육 모임도 만들어 놓았다. 외국인근로자 인권을 위한 모임이라는 단체 중심으로 초등학교를 찾아가서 한 시간 정도 다문화교육을 진행한다.

"가르치고 나면 아이들의 변화를 피부로 느껴요. 한 시간이라도 우리 서로 정들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똑같은 사람으로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아이들은 이해해요. 수업이 끝나고 같이 사진을 찍을 때 거리낌 없이 저한테 어깨동무를 하죠."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각별하다. 가장 강력한 소통 수단으로서 음악을 신뢰한다. 그래서 그는 밴드 활동을 택했다. 음악으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음악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음악은 사람들을 화합하게 해 줘요.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돼요." 음악에 대해 얘기할 때 그는 잔뜩 흥분한 어조였다. 처음으로 전자 기타를 안아 봤을 때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마치 자기 자식을 안은 기분이었단다.

미얀마 사원 사진이 담긴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는 고국 미얀마로 돌아가는 것도 소모뚜의 꿈이다.


한국에 와서 그가 놀란 점 역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음악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서점에 가면 기타 교본이 있고 인터넷으로 원하는 악보를 다운받을 수 있다. 미얀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좋아하는 메탈리카의 악보 하나 얻기도 힘들었다. 그는 음악의 기초를 오로지 독학으로 익혔다.

"음악에 열 두 개의 음이 있다는 것, 코드 구성, 그런 걸 전부 혼자 터득했어요. 그만큼 어렵게 만나왔기 때문에 음악은 내게 너무나 소중합니다. 내가 음악인지 음악이 나인지 모를 정도로 사랑해요."

그는 '스탑크랙다운'밴드의 활동이 그 자체로 희망이라고 말했다. 무대에 선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주노동자들은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이 그가 한국에 온 이유가 됐다.

그래서 그에게 국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 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그는 고국 미얀마를 염려하는 만큼 한국의 현실을 걱정한다. "한국에 살면서도 차별 없고 편한 세상을 원했어요. 내 나라뿐만이 아니라 내가 와 있는 곳에도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거죠."

그는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이주노동자 문제를 중심으로 한 문화 활동가로 변신했다. 이미 다국적 밴드를 꾸리며 다문화사회를 실천하고 있는 그는 미래를 낙관한다. 동료들의 추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항상 일을 찾고 일을 벌이는 것이 자신의 일상이란다.

지금 한국에서의 삶이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힘들고 어렵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행복해요. 어디에 있었어도 지금같은 활동을 했을 거예요."

김수진 기자 sj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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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4 19:54 2010/01/0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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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함께 하는 다문화사회
소모뚜 
필자는 한국에 15년 동안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한국 내 이주민의 인권을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 나가고 있다. 그 동안 수많은 이주노동자들과 결혼 이주여성들을 만나 그들이 한국 사회에 전하는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다문화사회의 미래를 고민 해 왔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속 에서 자본을 통해 희망을 실천하려고 수많은 이들은 더 잘 사는 나라로 이주해 이주노동자로서 살게 된다. 약 1억 7천만 명이 되는 이주자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꿈을 위해 살아가고 있고 그들의 존재로 인해 지구는 세계화, 다문화 세계로 자연스럽게 변해가고 있다.
 한국은 1988년 올림픽 개최로 세계에 알려졌고 그로 인한 경제 발전에 따라 생겨난 3D업(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 일자리들이 이주노동자들을 보이지 않은 손으로 초대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 속 한국의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외국인노동자들의 대거 유입과 결혼 이민자들, 그 이외에 유학생 등 국내 외국인 인구는 현재 약110만 명 (한국 총 인구의 약 2%)에 이르러 한국은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향하여 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 동남아계 이주외국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범죄자, 불법체류자, 여성 관련 범죄자, 위험한 존재, 테러리스트(특히 이슬람 문화권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각), 불쌍한 사람들(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주 결혼 여성들, 임금 체불되고 공장에서 일만 하는 사람들, 한국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사람들)로 비춰진다. 반면에 서구권 외국인들은 멋지고 예쁘며 잘사는 나라에서 온 동경의 대상으로 비춰진다.
이주노동자들의 자원봉사, 재해 구조 활동, 학교에 가서 자기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문화 이해교육 활동, 한국의 근로 기준법, 산업안전 보건법 등 노동법을 배우며 이주민들을 교육시키고 노동권리 문제를 상담해주는 활동과 여러 문화 활동을 통해 한국인과 이주민 사이 다리 역할을 하는 활동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등록 노동자들의 약점을 악용해 임금체불, 폭행, 욕설, 산재보상금 무지급,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와 의사소통의 문제로 인해 사업장내에서 인종차별적 언어폭력, 폭행 등을 당하고 있다.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일 할 수 있는 고용허가제는 고용주가 권력을 가지는 제도라서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노예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에 우선적으로 해결 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인권을 존중 하는 사회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 보다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미리 예방 될 수 있어야한다. 의사 수가 많아지는 것 보다 환자 수를 줄여 가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이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주로 각 나라 공동체 활동으로 서로를 보호해주고 문화 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며 미디어 활동으로 그 부당함을 한국 사회에 알리고 이주민들의 인권, 노동권리 쟁취를 희망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는 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부터 시작해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해주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봐 주는 것이 필요하고 이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활동들에 관심을 보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의 자발적 활동은 미약하고 지속적으로 하기에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문화사회를 희망하는 과정에 이들의 활동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해야만 다문화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요즘 한국인이랑 결혼하는 이주여성을 상당수가 남편의 시부모님과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으로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처음부터 사랑으로 시작 된 결혼이 아닌 경제적 목적으로 시작된 결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 많은 결혼 이주여성들은 한국에 들어온 후 본인들의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회에 참여하고 싶어 하고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한다. 본인들이 선택한 길이지만 늘 눈물 글썽이며 걸어가는 이들과 다문화사회의 길을 함께 간다면 눈물 젖은 다문화 사회밖에 될 수 없을 것 같다. 이주민들에게 조금만 어 가슴을 열어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고 이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국 국민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기회들이 많이 필요하겠다.
(이 글은 필자가 성공회 대학교 신문에서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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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17:29 2009/12/1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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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이주민의날 한국대회 기념 이주민발언대 - 난민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이주민의 날 한국대회 기념 이주민발언대에서 난민을 대표해 발언을 하고자 하는 버마행동한국의 총무 소모뚜 입니다. 이주민의 날을 맞아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또 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직접 한국 사회에 전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희 버마행동한국은, 군부독재 통치 하에 있는 우리들의 나라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한국에서 생활하던 이주노동자들이 뜻과 힘을 모아 만든 정치단체입니다. 버마행동한국의 13명이 난민신청을 하였고, 그 중 저를 포함한 8명이 현재 법무부의 난민인정불허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 중에 있습니다.

 저는 저희들이 법무부에 난민신청을 했던 2004년 이후 5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국에서 난민으로 또 난민신청자로 살면서 느꼈던 ‘난민’에 관한 생각들, 한국사회와 정부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드리고자 합니다.

 


- 난민신청자의 경우


 먼저 아직 한국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정치적ㆍ인종적ㆍ종교적 활동 등을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어 난민 신청을 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버마행동한국의 회원들 또한 오랜 시간 난민신청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4년 법무부에 난민신청을 한 뒤, 2008년 가을까지 법무부로부터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습니다. 난민신청을 하는 과정에 적절한 통역이나 법정 대리인에 대한 지원이 없고 법무부 직원들의 태도는 대부분 고압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난민신청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일부터가 당사자들에게는 어려움의 시작입니다.

 한편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으면 최소한의 사회보장이나 합법적으로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만, 저희의 경우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원은 물론, 합법적인 취업이 불가능하다보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회사에서 면접을 볼 경우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난민신청자임을 밝히더라도 사업주가 법무부 난민실로 연락을 해 문의할 경우 당연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는 신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에 난민신청자들은 신청 이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생계수단에 대한 아무런 보장 없이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지원책도 없었던 한국 정부가 올해 들어 난민신청 후 1년이 지난 후에는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도로 마련된 내용조차 난민 인정 신청 후 1년간의 생계문제나 취업활동이 불가능한 신청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난민신청자의 경우, 오랜 시간 기다리는 동안 한국에서 난민으로나마 최소한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 정도를 가질 수 있으니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법무부로부터 불허 통보를 받는 대다수의 난민신청자들은 더욱 막막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난민인정 불허 결정을 받은 경우


 법무부 출입국 난민실에 난민 신청을 하면 신청 이유에 대한 성의 없는 인터뷰를 한 번 하고 4,5년 후에 불쑥 난민 인정 혹은 불허를 통보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난민제도입니다. 인정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불허를 했을 경우 신청 이후로 몇 년간 신청자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와 불허 통보를 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난민행정입니다. 이는 난민 인정 신청 이후 수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신청자의 정치적 활동이 얼마나 활발했고 본국 상황은 얼마나 변화했는지 등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4,5년 전의 대략적인 인터뷰 내용을 기준으로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법무부에서 2차까지 난민 인정을 불허할 경우 많은 신청자들이 선택하는 것은 소송입니다. 법무부 난민 심사위원들이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당사자에 대한 직접 인터뷰나 추가 자료 요청도 없이, 난민신청자들을 그저 어떻게든 한국에서 살아보려는 외국인 정도로만 취급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법무부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재판을 통해 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최근에는 법무부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가 재판을 통해 승소해 난민으로 인정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것은 법무부의 난민 절차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재판부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난민 인정을 원하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고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받을 수 있는 박해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는 결정도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일하거나 비슷한 활동에 대해 전혀 다른 판결이 내려지는 등 난민 인정에 대한 재판부의 명확한 기준이나 일관성이 없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당연히 난민으로 인정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소송에서마저 패해 막막한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제가 속한 버마행동한국도 현재 난민 인정 재판 중입니다. 버마행동한국의 1심 소송 결과만 보더라도, 재판부는 한국의 상황과 잣대만을 기준으로 삼아 8명 전원을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예를 들면, 버마에서 생활할 때 본인 명의의 여권을 만들어 출국했다는 사실만으로 재판부는 이것이 바로 버마로 귀국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증거라고 판단하는 식입니다. 더구나 무려 6년 이상 꾸준히 버마민주화를 위해 매진해 온 우리들의 활동을, 단지 난민 인정을 위한 고의적인 노출을 노린 것이라는 등의 인신공격성 언급마저 있었습니다. 한편 버마 태국 국경지대의 무장단체 활동 등을 이유로 난민 인정 신청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스스로 증거를 입증하지 않으면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난민협약에 비준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고 UNHCR의 이사국이기도 한 한국이  이러한 결정들을 내리는 것은 매우 편협하고도 비인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난민인정불허 결정을 받은 사람들에게 주는 인도적 체류 허가라는 것도 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은 할 수 없지만 본국의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한국에서의 체류를 허가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체류를 허가할 뿐,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미등록 체류에 대한 벌금으로 수 백 만원을 납부할 경우에만 외국인등록증을 발급해주는 등, ‘인도적’ 체류 허가라는 이름이 무색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난민신청자들은 아무런 생계지원책 없이 불안하게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정부가 이들에 대해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면, 체류를 허가한 국가의 정부로서 최소한의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 난민인정자의 경우


 법무부의 결정이나 소송의 승소 결과로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 2009년 상반기까지 총 116명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장기체류허가를 받을 수 있고 외국인등록증과 건강보험증 그리고 해외출국을 할 수 있는 여행증명서 등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버마 민주화활동가들 중에도 소송 등을 통해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난민’이 되었다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쁨의 축하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난민 인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이제 겨우 체류의 안정을 얻은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의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당분간’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난민인정자들에 대한 적절한 취업 지원이나 쉼터 제공 등 사회보장을 위한 여러 대책이 미흡한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 정부는 난민인정자의 가족결합을 지원하고 난민 협약 상에 명시된 난민의 권리 실현을 위해서도 마땅한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UN이 정한 세계이주민의 날을 맞아, 이주노동자로 또 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한국 사회에 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UN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 정부가 UN난민협약이 보장하는 난민의 권리 실현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함께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와 난민들이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요구


- 형식적이고 무성의한 난민인정 절차를 개선하라!

- 난민신청자에 대한 취업지원과 최소한의 사회보장책을 마련하라!

- UN난민협약이 정한 난민의 권리를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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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14:47 2009/12/0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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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으로 희망을 나눠요 

2009년 12월 06일

지유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물망 ‘이매진피스’가 5일 마포구 소재 성미산 학교에서 제3회 ‘희망을 여행하라!’ 축제를 열었다.

이날 열린 축제는 ‘여행은 소비가 아닌 관계’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여행소품을 만들어 보는 여행공작소, 팔레스타인 올리브 오일로 스파게티 만들기, 공정무역 커피 나눔, 공정무역을 통해 얻은 설탕으로 달고나 만들기, 여행자 평화 헌책방, 여행자 벼룩시장 등 다양하고 풍성한 프로그램들로 마련됐다.

   
▲ 공정무역을 통해 얻은 설탕으로 달고나 만들기. ⓒ천지일보(뉴스천지)
   
▲ 저렴하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여행자 평화 헌책방’에서 아이들의 책 읽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더불어 공정 여행자들의 기발한 생활 노하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 안의 국경’을 통해 참여한 시민과 아이들로 하여금 마음이 따뜻해지는 의미 있는 시간이 진행됐다.

이때 이주노동자 음악밴드 스탑크랙다운의 기타리스트 소모뚜 씨와 방글라데시에서 온 쇼하크 씨가 참여해 주민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기타리스트 소모뚜 씨와 주민들의 소통의 시간.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날 소모뚜 씨는 이주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오랜 시간 한국에서 일을 했다”는 말로 시작해 “지난 1997년 IMF로 인해 사회뿐 아니라 회사도 어려울 당시 사장님과 함께 라면을 먹으며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었다. 또 2002년 월드컵 때는 운동을 잘하는 브라질을 응원하는 대신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응원했다”며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이 아플 때에도, 기쁠 때도 함께했다. 비자라는 도장이 없을 뿐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 ‘이매진피스’. 그들이 말하는 ‘공정여행’이란 여행이 단지 취미와 휴식활동을 넘어 지출되는 여행비용 속에 대기업의 과도한 수익 회귀 구조가 있지는 않은지, 현지인들의 환경과 문화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지, 인권을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고려한 ‘희망 여행’이다.
요즘 환경과 인권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 축제 ‘희망을 여행하라’는 환경과 인권, 평화를 사랑하는 ‘착한 여행 문화’를 만들어 가는 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이날 모인 수익금은 전 세계 분쟁지역 평화도서관 만들기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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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14:38 2009/12/0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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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탑크랙다운 6주년 기념공연, 희망을 노래하다
 
 
 
배문희기자
 
 
ⓒ박현수기자

합정동 지하의 작은 공연장에 사람들이 발 디딜틈도 없이 몰려 들었다. 곧이어 공연장에서는 재즈부터 락,
가야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소리와 '와와'하는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지난 11월 28일 합정동에 자리한
소규모 전시장겸 공연장인 요기가표현갤러리에서 다국적노동자밴드 '스탑크랙다운'의 6주년 기념공연이 열렸다.
 
이날 공연장에는
이주노동자들부터 대학생과 직장인,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 80여 명이 모였다.
 
스탑크랙다운은 2003년 정부의 강제추방에 맞서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였던 서울 태평로 성공회대성당에서 결성됐다. 스탑크랙다운 멤버들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노래로 전하고
한국인과 이주민들을 잇는 소통의 다리를 마련하기 위해 망치스패너 대신 기타와 마이크를 들었다.
 
멤버는 네팔에서 온 미누(보컬),  버마에서 온 소모뚜(기타)와 소띠하(베이스),
인도네시아에서 온 해리(키보드), 한국인 송명훈(드럼) 등 5명으로 결성됐다. 현재 미누와 해리씨가 강제출국돼 이번 공연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관객들의 열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뜨거웠다.
 
이날 공연에는 주인공인 스탑크랙다운 외에도 민중노래패 '
꽃다지', 티벳가수 카락뱀, 캐비닛싱어롱즈, 연영석, 아나야, 뇌태풍, 뭐라도, 춤추는 소라 라무, 정민아, 레인보, 배꼽(푸른꿈 고등학교 밴드) 등 국적과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음악가들이 게스트로 참여해 열기를 더했다.

ⓒ박현수기자

게스트로 참여한 밴드 ‘뇌태풍’의 보컬 류태씨(25)는 미누가 그랬듯 빨간
목장갑을 끼고 노래해 눈길을 끌었다. 손목이 잘린 노동자들의 애환을 표현한 빨간 목장갑은 ‘미누의 상징’이었다. 그는 "미누씨를 추억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한 끝에 빨간 목장갑을 선택했다"며 "근처 가게에서 500원에 샀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공연 중간에는 특별
이벤트로 네팔에서 생활하고 있는 보컬 미누씨가 한국인 친구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가 소개됐다. 스피커 고장으로 미누씨의 음성을 들을 순 없었지만 관객들은 미누씨의 목소리를 마음으로 전해 들었다. 
 
좁은 공연장을 가득 메운 80여 명의 관객들은 공연 내내 환호했으며 공연의 막바지에 스탑크랙다운 2집 앨범 '자유'에 실린 '와'를 노래하자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한데 어울렸다.
 
'
피부 서로 달라도, 문화 서로 달라도, 우리 서로 아름다운 동지,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면 좋은 걸. 함께 사는 이 세상 우리를 위하여'
 
자유의 노랫말처럼 피부 서로 달라도, 문화 서로 달라도 함께 소통하며 살아간다면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이날 공연에서 스탑크랙다운은 관객들과 하나가 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스탑크랙다운이 노래를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그건 사람이었다.

 

 
문화저널21 배문희기자
baemoony@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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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4 01:17 2009/12/0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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