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1일는 “권력에 미친 딴쉐”라는 글이 들어간 시를 썼기 때문에 징역2년 형을 받은 “버마시인 서웨”가 석방 되어야 하는 날이지만 미얀마정부는 그를 안 풀려줬다.

 

그는 지난 2008년 1월 21일에 발간한 “사랑 저널”에 “12월 14일”이라는 시를 썼다. 시인 서웨가 쓴 시는 8줄로 구성 되어있는데 앞 글자들만 합치면 “권력에 미친 딴쉐”라고 뜻이 된다. 그 후 그는 나라의 명예 훼손 혐의로 징역2년 받았다.

 

하지만 지금 2년이 되는 대도 정부는 그를 안 풀려주고 언제 풀려줄 것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 교도소장도 그를 언제 풀려 주라는 정부의 지시를 아직 못 받았다.

 

그가 석방될 날을 2년 내내 손꼽고 기다렸던 부인도 애타는 마음으로 그의 석방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석방 된 날이 오는데도 그를 불려주지 않기 때문에 정부관계자들에게 석방 요구 편지를 보내려고 준비 하고 있다.

 

시인 서웨가 부인에게 “나 같은 시인을 갇혀 넣어서 이들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면 계속 나를 갇혀 넣어도 좋다. 감옥에 있으면서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가질게 됐다”라고 하며 부인에게도 인내심을 가지고 힘내라고도 말했다.

 

부인이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교도소 기관에 가서 물어봐도 아무도 그의 석방 날을 모르고 있다. 시인 서웨의 변호사도 석방될 날이 오면 석방 되겠지 라고 만 말할 수 있다. 도와주는 사람, 구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신고조차도 할 수 없다고 부인이 말 했다. 감옥 생활하면서 이질(적리) 병이 걸린 시인 서웨는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있어서 부인의 걱정이 너무나 크다.

 

미얀마군정부의 심한 탄압 속에 살아가면서도 용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시인 서웨 에게 미국에 있는 인권감시기관 (Human Rights Watch)가 (Hellman/ Mammett Award)상을 줬다.

 

석방된 날이 오는 대도 석방 해주지 않기 때문에 아시아 인권위원회 변호사 우민루엥가 이 문제를 국제 인권단체에게 신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가 “시인 서웨는 심하게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에는 법이 존재하지 않다. 정부는 죄가 없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구금하고 심하게 고문을 하고 있다. 고문 때문에 생긴 상처, 증상이 나질 때 법원으로 데고 가서 소송한다. 그리고 중형을 내린다. 판결에 나온 중형에 포함 된 구금기간을 언제부터 계산해야 할지 변호사들도 모른다. 변호사조차 양심수들이 석방 되는 날이 언제인지 몰라서 여러 사람에게 문의하는 것에 애쓰고 있다”라고 버마의 인권상황을 서명했다.

 

미얀마 독재 최고 위원장 딴쉐 에게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용감한 시인의 석방을 간절히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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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0 01:29 2010/02/10 01:29

지난 1995년도

내 나이 20살

한국으로 떠날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 나 그리고 나의 부모님이 서로 멍하며 보고 있다.

두 눈에 눈물로 가득한 엄마의 얼굴이 내가 20년 동안 봤던

엄마의 모습들 중 가장 힘들어 보였다.

내 두 손을 꽉 잡고 너무나 걱정하고 나에게 너무나 미안해하고 있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인식을 지키려 노력하시는 아버지의 모습도 참 힘들어 보인다. 나에게 “미안하다, 아버지 대신 가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너를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라고 이야기 하셨다. 20년 동안 부모님 곁에서 아무걱정 없이 살아 올 수 있었던 내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감사 드려야 하는데...

비행기에 올라가야 할 시간이 되자 엄마는 온 몸을 떨면서 울고 아버지도 울기 시작했다. 가족을 떠나 혼자서 세상을 덤벼야 할 나도 걱정과 슬픔을 견디지 못해 울었다.

우리 모두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꿈과 희망을 위해 서로의 눈물을 외면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내 가족, 내 고향, 내 친구들, 내 그리움 모두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서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오자 엄마가 나에게 마지막 한 미디를 하셨다.

“네가 우리에게 무엇 보다 중요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건강히 들어와 줘”

“꼭 건강히 들어 와줘

들어 와 줘야 해....”

........................................................

지난 2003년도

정부가 한국에서 4년 이상 체류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강제추방 하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미등록노동자들이 걱정 속에 빠져 잠은 못자고 일하고 있어도 일이 손에 잡지 않고

있다.

대대적 강제 추방이라....

우리가 무엇을 잘 못 했기에..

우리가

IMF 외환위기 때 한국 경제 회복을 위해 월급 반만 받고 사장님과 함께 라면을 먹으면서 한국경제 살리기에 함께 했던 것들...

2002 월드컵 때 좋아하는 유럽 팀들을 외면해 한국 팀에게 “대~한~민~국”이라고 목 터질 정도 응원했던 추억들...

아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했던 우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니어서 강제 추방으로 인연을 끊으려고 하는 것인가?

“.......?”

강제 단속 시작했다.

단속 시작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이 자살한 소식이 하나들씩 일어났다.

더 이상 공포에 버티지 못해 전동차 앞으로 뛰어 내렸던 이주노동자 “비꾸”

400만원의 브로커 비용을 들며 한국에 입국했는데 단속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되어 심한 정신적 압박을 받아 결국 죽음을 선택한 이주노동자 “브로흔”..

목매어 죽는...

바다로 뛰어 내리는...

단속이 무서워 아픈데도 병원을 못가서 결국에 숨지는...

추운 겨울 속 얼어 죽은 ....

보호소 화재로 ....

한국이 이주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땅이 죽음의 땅으로 되어가고..

더 이상 희망을 위해 희생자들 없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나는 “친구여 잘 가시오”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우리의 친구여 동지여 편안하게 가시오

저 세상 끝에서 보아라 너를 위해 우리 기도해

오~ 잘가

오~ 너를 위해 우리 기도해

우리 친구여~ 동지여~ 얼마나 힘들었나

더 이상 이런 죽음 없게 널 위해 기도 하네

우리 함께 기도 하네”

(다국적 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노래)

나의 노래를 들으신 분들 모두가 눈물 흘리면서 그들에게 안타까움을 전했다.

나의 노래를 불렸던 보컬 미누도 결국에 강제 추방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누는 자살한 이주노동자들처럼 몸과 마음 모두 다 한국을 떠났지 않고 한국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한국에서 남겨서 네팔로 떠났다. 고마울 줄 알고 사랑을 할 줄 아는 평범한 인간다운 모습을 끝까지 보여 줬던 것이다.

나마스때....

........................................................

2003년도부터 진행 해온 강제 단속이 이제 2010년도가 되니 7년이 됐다.

한사람의 인생을 바꾸려면 4년이면 충분하다는 말이 있어서 7년이 너무 긴 시간이다.

하지만 2003년도부터 18만 명이 되는 미등록 노동자 수가 아직도 그 정도 남았으니 한국 사회가 미등록 노동자들 없이 안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7년 동안 강제추방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잘 못 된 건가?

미국에도 한국인 미등록노동자가 25만 명이나 있다하던데...

7년이 충분한 시간이다.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 보다 어떻게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주말에 친구들 모임에 가면 미등록, 고용허가제 등 여러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미등록 친구들은 강제단속 때문에 고통스럽고 고용허가제 친구들은 과도한 일과 하늘같은 사장을 모셔야 하는 일상에 지치고 있다. 다들 공동적으로 받고 있는 것이 사업 내 욕설, 폭행에 대한 스트레스다.

참자!!

우리의 희망을 위해...

우리의 가족을 위해...

함께 사는 것에 행복해야만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될 것이다.

........................................................

지난 16일에 고용허가제 네팔 이주노동자 레미가 자살했다.

자신의 몸과 맞지 않는 일을 계속하게 되어 몸이 점점 약해지고..

한국 입국 때 필요한 비용을 위해 빌려온 빚을 갚지 않고 네팔로 들어가지도 못 하고..

결국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

나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눈물 흘리면서

울고 있던 부모님들 생각이 많이 나다.

네팔인 레미도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 온 모든 이주노동자들도 나와 똑 같이 공항에서 눈물 흘리면서 잘 갔다 오겠다고 가족들 에게 약속을 했었을 거야.

그들의 가족들도 그들에게 건강해야해, 잘 다녀와야 한다고 얘기 했을 거야.

마지막 시간 까지 반복해서 라도...

“모두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소중한 가족이 있고

아름다운 희망이 있는 것처럼

한국에 들어 와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

난 더 이상 “친구여 잘 가시오”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아...

                                                                                     모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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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22:33 2010/01/2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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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독재정권 국가평화위원회 (SPDC) 위원장 딴쉐이는 지난 2009 군의 기념행사, 퇴역 총회, 전국SPDC총회, 2010 독립기념일 등에 정부는 올해 2010년에 자유롭고 동등 하는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여러 밝혔다.

 

국제 여러 나라 대표들과 만남에도 SPDC 총리 떼인세인-장군과 녜안윈-외교부장관 등이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자유롭고 동등 하는 선거를 2010내에 실시할 것이라고 똑같이 여러 약속했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가 2008년도에 만든 헌법 내용 민주 기준에 맞지 않은 내용들을 함께 수정한다면 선거 참여하는 것에 생각해주겠다는 민족민주동맹(NLD) 넓은 의미를 가진 좋은 제안을 정부는 아무 답을 해주지 않고 외면했다.

 

또한 이제 선거를 실시할 2010년도가 되는데도 정부는 아직도 자유롭고 동등 하는 선거를 위해 필요 하는 자유 발언, 자유 언론, 선거에 참여할 당을 자유롭게 결성과 지역 선거운동 활동 등을 허락 해주지 않고 또한 선거관련 , 규칙 필요한 정보 제공, 발표도 해주지 않고 있다.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오히려 지난달에 흐라흐라윈 이라는 여기자에게 국제 단체 연계, 해외 미디어와 연계 때문에 징역 20 형을 내렸다. 다른 기자들도 정부의 심한 감시를 당하고 있다. 인터넷, 위성TV 보는 국민들에게도 여러 제재를 가하고 있다.

 

 

정치 수감자 모두 석방, 자유롭게 결성과 선거운동을 대신 NLD당원들, 활동하는 승려들, 주민들과 학생들을 계속 끌어 잡아가 감옥에서 잔혹한 고문을 하고 있다.

 

 

주민들을 탄압하는 조직들을 없애주지 않고 오히려 이들에게 폭행 하는 교육을 강화해서 가르쳐주고 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 해외 민주세력들에게도 정부와 함께 있는 방향을 찾는 대신 이들에게 여러 방식으로 탄압을 계속 하고 있다.

 

 

미얀마 독재 지도자 딴쉐부터 선거를 실시 하겠다는 약속한 시기가 가까이 올수록 정부의 탄압이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

 

 

정부는 반대 세력들에게 더욱더 심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편에는 정부와 잡는 , 조직, 단체, 정치인들에게는 자유롭게 활동하게 허락 해주고 있다.

 

이렇게 행동이 달리 독재 지도자 딴쉐와 그의 부하들에게 무엇이 자유롭고 무엇이 동등 하며 어떻게 해서 모두가 참여하는 선거가 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소모뚜(버마행동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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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14:53 2010/01/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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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말이라면 다 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습니다.이에 대한 어린 시절 동자스님 생활 하면서 불경에서 배운 것을 참고 해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바른말 하기"라는 글을 작성 해 봤습니다.
도움이 됐음 좋겠습니다.*^^*
소모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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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6 종류의 말을 하고 산다.
(1)   사실이 아니고 듣기 싫고 효과 없는 말

(2)   사실이고      듣기 싫고 효과 없는 말

(3)   사실이 아니고 듣기 좋고 효과 없는 말

(4)   사실이고      듣기 좋고 효과 없는 말

(5) 사실이고      듣기 싫고 효과 있는 말

(6) 사실이고      듣기 좋고 효과 있는

이 6종류 중 우리가 정말로 사용해야만 하는 말이 2종류 밖에 없다. 5번 하고 6번 이다.

사실이고 효과(듣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 뜻)가 있다면 듣는 사람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사실이고 효과 있다고 해서 듣기 싫은 말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때와 장소를 봐 야 한다.

어느 때와 어느 장소 인가?

예를 들어 기어가는 나이 정도의 아이가 있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에 어려운 나이 이기 때문에 쪼개진 항아리 조각을 먹는 것인 줄 착각해 먹으려 입안으로 넣고 있다. 이를 보는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입안에 있는 항아리 조각을 빨리 꺼내주는데 아이는 자기가 먹는 것이 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버지가 꺼낸 것을 마음에 안 들어 울어 버린다. 우는 것보다 아이의 생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는 아버지처럼 사실이고 효과가 있다면 당사자가 듣기 싫어하고 안 좋아한다 해도 상황을 잘 파악해서 말을 할 필요가 있다.

버마에 아웅산 장군(수지여사의 아버지)이라는 독립 지도자가 계셨었다. 버마를 영국과 일본 식민지하에서 독립 해준 최고의 권력자, 지도자 인데도 암사 당해서 들어 가셨을 때까지 가진 것이 속옷 몇 개 밖에 없다. 나라를 정말 사랑하고 성실해서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분이 셨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신  아웅산 장군이 연설을 할 때 마다 버마국민들이 가져야 할 의지, 인식과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고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마다 거칠고 욕이 섞은 말투로 하셨다. 듣기 좋지 않아도 나라를 위해 하셨던 그의 수고와 진심한 마음을 국민들이 100프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장군의 욕이 국민들에게 꿀물 보다 달콤했고 오히려 그런 욕이 없는 연설이 재미 없게 됐었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하는 욕이 섞은 그 진실한 마음으로 한 말을 기뻐하면서 받아 들어줄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계실까요? 우리의 올바른 행동과 수고가 수 없이 많아야 하고 그 행동과 수고가 국민(주변인들)을 위해서 되었다면 우리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하는 욕도 국민이 미소를 지으면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 이다.

올바른 말이 라고 해서 무조건 하면 안 된다. 다리가 짧은 사람에게 Short다리라고 부르면 안 된다. 또한 말을 할 때 예의 바르게 해야 한다. 예의 바른 말이 듣기 좋기 때문에 그 말을 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얻고자 하는 성과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달콤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게 하는 목적 보다 그 사람에게 억누르려는 의지를 가지고 하는 말투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듣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게 하는 목적으로 말을 할 필요가 있다.

어떤 말은 바른 말이지만 자기의 말 때문에 듣는 사람들 간에 갈등을 발생 하게 하는 일도 있다.

그래서 바르고 성실하고 예의 바른 말이지만 듣는 사람들 간에 갈등이 생기고 서로 싫어해지게 만드는 말도 삼가 해야 한다. 서로 하나로 되게 만드는 말, 갈등을 없애주는 말, 힘이 생기게 해주는 말들을 해줄 필요 하다.

 또한 때, 장소 와 듣는 사람의 상황과 수준을 봐서 말을 할 필요 있다. 때가 안 되는데 말을 하게 되면 잘못된 길을 가리키게 됐고 좋은 성과 보다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자기의 말을 받아 줄 수 없는 장소에 가서 얘기 하게 될 때 오히려 가치가 있는 말 인데도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가능 성이 있다.

 듣는 사람의 수준도 잘 파악 할 수도 있어야 한다. ㄱ, ㄴ, ㄷ, ㄹ 등 글자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르는 아이 에게 명문을 가르치면 아이도 괴롭고 가르치는 사람도 지칩니다.물 위에다가 그림을 그려도 그림이 나오지않다는 말 처럼.  아무리 좋은 이야기, 좋은 가르침이라고 해도 이해하기에 아직 부족한 사람한테는 이해하기 쉬운 말을 해줘야 하고  아니면 이해 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조심해야 할 말은 잘 못 된 인식을 만드는 말이다. 잘 못 된 인식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독물을 뿌려주는 잘 못된 행동을 하게 하고 그런 행동이 습관화 되어 성격으로 변해 좋지 않은 운명을 만들어 간다.

 끝으로 좋은 악기에서 좋은 음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이 늘 성실하고 바른 자세에 써있으며 본인이 연주한 아름다운 소리를 본인이 직접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는 멎진 연주자가 된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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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7 00:21 2010/01/0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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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신문 인터뷰 때 기자분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소모뚜씨, 한국에서 눈을 처음 보셨죠?

버마에서 못 보는 눈을 보게 되어 기분이 어떴습니까?^^"

 

"..."

"음..눈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눈이 내리면 여인들이 예쁜 추억을 만들을 수 있고

아이들이 눈싸움을 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하지만 저에게는 눈이 아름답게 보이는것 보다

한 때는 오히러 적으로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내 대답에 놀란 기자분이

"네?

눈이 어떻게 소모뚜씨에게 적이 되였었나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버마에서 못 보는 눈을 보면서 생활을 할거 라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컸었죠.^^

하지만 그 기대감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보게된 눈과 함께 살아졌어요."

 

"이유는

제가 전에 일했던 공장이 박스공장이였어요..

종이로 크고 작고 다양한 박스상자들을 만드는 거죠."

 

"그런데 공장이 너무 작지만

주문을 많이 받아서  작업전 종이들(원단),작업한 박스들 등을

공장안에다 싸놓은 자리가 부족해서

밖에서 나무 빠렛트를 깔아서 싸놓아요."

 

"종이라서 일반 물건들과 달리 물에 젖으면

안되니까 비가 올 때 눈이 올 때

비닐으로 덮으느라  난리죠."

 

"일이 항상 밤 늦게 끝났고 공장 숙소에는 저혼자 살기 때문에

새벽에 갑자기 비나 눈이나 올 때 밖에 싸놓은

물건들을 비닐으로 혼자 나가서 덮어야했어요."

 

"공장 근처 사는 사장님하고 공장장님이 오실 때는 이미

제가 절반 정도 일을 끝냈었죠.

밤 늦게 까지 일해서 피곤한데도 새벽에 오는 비와 눈을 외면 하고

안나갈 수도 없기에 해결방법을 찾았죠..."

일이 밤 늦게 며시에 끝났든 상관없이

공장에 있는 모든 분들 퇴근하기 전에 꼭 붙잡아서

밖에 싸놓은 물건들을 비닐으로 덮은 일을 했었죠.

그래서 항상 일이 끝나면 밖에있는 물건들 덮은 일을 하기 때문에

최소 30분은 잔업 수단 못받고 물건 덮은 일을 해 왔죠.

 

그것 뿐만 아니라 공장이 위치한 곳은 언덕이라서

눈이 오면 다음날에 길이 너무 미끄러워져 일하다가 넘어지고

 

공장안에 물건이 꽉 차서 지나갈 길이 없어서

작업한 물건을 들고 공장 밖으로 나가서

눈 속에서 걸어가서

공장뒤 창고로 이동해야 하고

 

바닥이 눈 때문에 너무 미끄러워

지게차가 못가서 물건들을 일일이 손으로 날려야하고

 

또 미끄러워서 물건을 실으러 온 큰차가 못들어와

물건들을 작은 차에다가 싣고 도로로 나가서 다시 큰차에다가

실어 줘야하는

그런 고통들은

눈와 함께 오는 동반자 이기 때문에

저는 눈만오면 짜증이 저절로 나와요ㅜㅠ

 

"눈이 아름답죠..하지만 저에게 그 아름다움이

잔인한 미소 같아서

저는 눈이 오면 싫었어요"

(눈이 오면 고생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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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4 20:56 2010/01/04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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