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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05 행복한 청소부
  2. 2004/11/05 직업에 대해
  3. 2004/11/05 전 막스를 읽은적이 없습니다만.. (4)
  4. 2004/11/04 무단복제 (1)
  5. 2004/11/03 연애의 힘 (5)
  6. 2004/10/30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다. (2)
  7. 2004/10/29 1도의 작은 차이로 벌어진 선은 길어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진다. (1)
  8. 2004/10/27 더덕밭이 이럴수도 있구나... (2)
  9. 2004/10/26 이대로 얼마쯤 계속가면, 고집불통 늙은이가 되어있겠지.
  10. 2004/10/23 첨엔 시험문제를 보고 많이 웃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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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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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쭌모님의 [직업에 대해]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이 그림책 보면서두 비슷한 감동을 느꼈었는데.. 왜 덧글에는 그림이 안들어가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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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5 04:25 2004/11/05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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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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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 아침 출근을 안해도 된다는 느긋함이 이밤을 여기서 계~속 놀도록 만드네.

 

오늘 낮에 사무실에서

보수도 한달에 100만원 이하로 받는,

게다가 하루 노동시간도 어마 어마 긴,

더군다나 그 노동의 성격이라는 것도 육체+지적+정서를 동반해야 하는

심지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 대접도 못받는

보육교사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일테면.

아이들이 좋아서.

여자에게 적당한 직업인것 같아서.

그저 할게 별로 없어서.기타등등..

 

그러나 그녀(그)들이 이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몇년을 지내다 보면

아주 관성적으로 변하게 된다.

아이들 똥닦아주고, 밥먹이고. 짧은 시간이지만 뭔가 교육적일것 같은 프로그램도 해야하고

청소도 해야하고, 빨래도 해야하고, 부모상담에 온갖 서류까지...

이런 일들속에서 그녀(그)들은 서서히 지쳐간다.

 

그러다가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 돈으로 언제까지 먹고 살수 있을까?

뭐 그런 걱정이 든다.

 

그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

전문성(?)을 쌓기위해

색종이접기도 배우고

새로운 경향의 유아교육이론도 배우고

재롱잔치 준비용 무용도 배우고

이도 성에 안차면 대학원에 진학할 것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다양한 노력을 통해서도 

자신이 선택한 그 일에서 어떤 지점에서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나중엔 직업이 그저 호구의 수단이 된다.

호사스럽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살아보기엔 충분하지도 않은 호구지책.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면,

보육교사나, 변호사나, 의사나, 청소부나 몇가지 항목에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 만찬가지인것 같다.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북한소설이 한참 유행처럼 나오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읽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이었는데,줄거리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한 지점에서 내가 받은 감동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한 노동자가.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서 끊임없는 개선의 방향을 찾고 확산시키려고 한다.

결국 그는 그로 인해 당으로 부터 인정을 받는 해피앤딩이다.

 

그때 내가 받은 막연한 감동은

일은 하고 산다는 것이 단지 생계가 아닌 무엇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직업과 여가를 분리해서,

일하는 시간은 일하고, 그 나머지 시간은 나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보낸다.

주5일 근무도 된 마당에...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은것 같다.

 

그런데,

그게 잘 분리가 되려나. 사는데 그 큰 한부분을 완존히 포기하고 살아가는게 즐거울까?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도사..에 대해 이야기한 장면이 있었던거 같은데..

뭐 배달의 달인...뭐 그런 자신의 일에 전문가가 된 그런 사람이 도사라고 했던거 같던데.

도사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선택한 일에서 나의 의미를 찾는것이 내 인생의 죽어버린 시간을 되살리는데 필요한거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내가 내 노동의 내용과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할까?

 

보육교사로 돌아와서.

월간유아 프로그램집을 배껴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동관이 반영된 보육과정을 기획하고.

그 과정이 진행되고.

나와 아이들 사이의 교감이 생겨나고.

또 성인 누군가로 부터 내 노력을 지지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면 가능할까?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 낼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근데 그게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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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5 03:36 2004/11/05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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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막스를 읽은적이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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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아샬님의 [노동교]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식의 논쟁에 끼는 건 별로 안좋아 하는데..

왜냐면,
대화는 서로를 변화시키지만, 논쟁은 자신의 논리를 더 강화하는 방식이 되어버리니까요.
결국 간극을 더 키운다고나 할까요?

 

그치만 잠 안오는 오늘 같은 밤은  몇자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군요.

 

우선,
전 막스 읽은적 없습니다. 그리고 시오니즘의 구체적인 뜻도 모릅니다.

그저 선민의식이라고 해야하나? 이정도로만 알고 있니다.
그러나 "성매매가 노동이다"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엔 동의가 잘 안되는군요.

 

 



1.
그건 그 일이 추악하고, 천하고, 악한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섹스 자체가 추악하고 악하고 천한건 아니니까요.
인간이 임금을 받고 하는 행위 모두가 노동이다라고 해석해야 한다면, 성매매도 노동이 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노동이란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노동의 신성함을 지키려는 변태적 생각인가요?

 

2.
사실 우리 사회가 소수자들의 생각은 늘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소수자들이 죽을 힘을 내서 소리쳐야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은 들리게 되는거지요.
여성은 이 사회의 소수자이며(양은 물론 50%지만 소수자인건 맞죠?)

그런 너희들이 또다른 소수자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 문제에 대해 그리고 무심할 수 있었느냐..라는 문제제기에는 물론 겸허하게 반성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성과 사과 이후에는 새롭게 대책을 강구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그 새로운 대책의 강구가 시도를 뒤업을 정도가 되어야 할까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성매매방지법을 제기한  여성단체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철거를 강행하는 회사에 비유해서 이야기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그래서 처음의 시도와 의미가 다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요.

 

3.
강압적인 부분이 있었다면..이 아니라,

첫발은 어떤 의미로 들여놓았을지 몰라도 그 다음 순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강압적인 일 부분이 있고 그걸 해결해야 한다가 아니라,

그 전체 구조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실제 성매매문제에 집중하고 그 여성들과 만나고 있는 분들을 만나보면 -전 직접 성매매여성을 만나본 적이 없기에 그분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받고 있습니다만-그렇게 말하십니다.
그러니 강압적인 일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봐지는거지요.

 

4.
다른 노동의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생계대책으로...

물론 첨엔 한 일년만..그럼 작은 가게자리라도 얻어서 손털고 남들처럼 살아야지..했겠지요. 그러나 그게 일년이 되고 이년이 되고..자꾸만 빚은 늘고 그렇게 한 오년 갇혀 살고나면, 더 이상의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도 안보이게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밖에 없는것 같고..그렇게 될것 같지 않나요?

사실은 성산업의 발전이 여성들에게 다른 가능성말고 자꾸만 그곳으로 발걸음하게 만들고 있는건 아닌가요?

여성들이 해 먹고 살 일이 없다는 거-요즘 같아서 딱히 여성들만이 아니지만 여성들이 더 심하니까요.- 에 주목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을 걱정해주면서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보다 더 그들을 위하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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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5 02:18 2004/11/05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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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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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보다 먼저
당신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당신 자신은 불행한데
다른 누구를 위해 산다는 것은
참다운 희생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기 본위로
당신의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십시오.


그것이 결국은 당신 자신을 위하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행복이란 큰 바다와 같습니다.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
당신부터 먼저 행복하십시오.


                                                              - 내 삶을 기쁘게 하는 모든것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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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4 23:15 2004/11/0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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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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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이 한참 꼬여있는 후배를 만났다.

그 상황이 옆에서 보기도 참 힘겨울듯 싶은데 예상외로 그 후배는 덤덤하니 그 상황을 이겨내고 있었다.

 

허허.

과연 평소와 다른 이 모습은 무엇인가?

아마도 얼마전 부터 시작한 연애의 힘이 아닌가 싶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곡이 있다.

가사야 사랑이 쫑 난 후의 쓸쓸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중 한귀절은 연애의 힘을 잘 나타내 주는 대목이 있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것들 그 빛을 잃어버려.."

 

그렇다.

사랑을 하면 세상은 날 중심으로 돈다.

뭐 다른거야 안그렇다쳐도 러버와 나의 관계에서는 그러하다.

그게 연애의 힘인가?

 

또 다른 후배와 연애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 실체를 함 들여다 보았다.

 

최소한 연애관계속의 둘은 서로에 대해 무조건적인 애정과 헌신을 가진다. -얼마 동안은..

때문에 이러한 연애관계 속의 둘은 세상이 어떤 험난한 상처를 주더라도 결코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날 사랑하는 이가 있고, 그(그녀)는 나란 존재가 매우 중요한 사람임을 순간 순간 각인시켜주니까.

 

암튼. 그래서 연애하는 이들은 생기가 돌고, 어려움을 잘 견디고. 즐겁다.-잘 될 때는..

 

 

 



연애가 주는 힘이 자존감이라면.

그 자존감이 타인으로 부터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아.물론 스킨쉽도 있고.거그엔 알수없는 화학반응도 있다긴 하지만.

신뢰.기타등등 이러한 덕목에 의한 거라면.

 

왜 우리가 늘상 만나는 여타의 인간관계에서는 그거이 가능하지 않을까?

다시 관계로 돌아왔다.

 

그거이 가능하지 않은 여러가지 이유중에 하나를 더듬어 보면 이런거 아닐까?

 

자본주의가 인간의 생활을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으로 이분화하면서, 쉼과 회복의 장소로 가정과 사생활이라는 영역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 사적영역은 개인만의 것으로 불가침 영역으로 존재한다. -라고는 하지만 자본주의는 가지가지 방식으로 이 부분도 필요에 따라 구성하지...

 

대신, 공적영역에 사적영역의 감정들을 끌고 들어오는 것은 매우 나쁜 짓이며,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그래서 아마츄어적이다.

 

때문에, 공적영역에서의 관계는 일과 연관된 최소한의 것이어야하며, 일이 유연하게 풀릴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과하거나 모질라서 일이 빠킹이 나면..그건 아마츄어적인것이다.

 

우린 이런 관계에 점점 익숙해지고, 공적영역에서의 삶이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됨으로 다른 영역의 삶에 대해서는 점점 잊는다. 그 관계의 방식조차도..

이러다보니 사적영역이라는 부분은 결혼한 배우자.직계가족.연애관계의 두사람...뭐 이렇게 줄어드는거 아닌가? 그래서.. ->삼천포로 가는 중->->->

 



여타의 다른 이유들에 대한 탐색은 다음날 맑은 정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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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03:39 2004/11/03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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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도 웃지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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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ookofbunnysuicides.com/

 

 

 

Andy Ri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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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30 00:48 2004/10/3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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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의 작은 차이로 벌어진 선은 길어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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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의 작은 차이로 벌어진 선은 길어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진다. 한없이~
내가 국민학교에서 배운 이 수학적 진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종종 만나게 된다.

 

퇴근길..
혈기왕성한 할아버지 한분이 버스에 올라탄다. 주위를 한번 휘리릭 흟어보시고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다음순간 쩌렁한 목속리로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정견발표.

 

"이게 나라가 어떻게 될려고 이러는지...공산주의를 하자는 건지....요즘 젊은 것들이
전쟁을 안겪어 봐서 그렇지 북에 김정일이 눈이 벌게서 살아있는데..어쩌구 저쩌구.."

 

고단한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모자란 잠을 벌충하려던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나는 그 할아버지의 정견발표가 끝날때까지 벌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한다.

 

대게는 그런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100에 99.999%는 나와 다른 의견이고, 또 억지스럽다.
아니, 나는 억지스럽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난 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속이 벌렁거리고.
또 그 할아버지는 그 버스 안에서 그렇게 떠들어야만 할까?

 

 

................주류의 목소리만 들리는 사회.
아무도 내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
내가 떠들어도 뭐하나 바뀔것 같지 않은 사회.
내가 느끼는 그 갑갑함을 그 할아버지도 느끼고 있는게 아닐까?

 

아니다.
1도의 작은 차이로 벌어진 선은 길어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진다.
그러나 그건 그 선이 직선일때만 그렇다.

 

 




우리가 그 선을 구부려 하나로 만들 수는 없을까?
하나가 되진 못하더라도 가깝게 함께 할 수 있도록 쯤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말하고 싶은데..말할 수 있는 장이 없는건 아닐까.
시청앞의 그 넓은 잔디밭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목 안 가득 하고 싶은 말이 꽉 찬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이하 즐거운 상상

 

 

-난 성매매 방지법 싫어. 니들이 남자들의 넘쳐나는 성욕을 아냐?

 

-오모 오모 그러세요? 아저씨는 무자게 성욕이 넘치나 보다. 근데요.. 난 밤이 무서워요.
아자씨들이 우릴 죄다 길거리에 널려있는 먹거리로 생각하는거 같아서.

 

-아냐. 좀 놀겠다 싶은 애들만 그렇지 선량한 아가씨들한테는 아무도 안그래.

 

-어머 아저씨도,

좀 놀겠다 싶은 애랑 아닌애랑 구별하는 법이 헌법에 있는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 기준에 맞춰서 옷입고 다니고 그래요?

 

-하룻밤 돈주고 가서 해결하는게 낫지.
애인만들어서 잠 한번 자려면 시간들여 공들여 돈들여 지레 죽고 말겠다.

 

-아이고 아저씨도 애인이랑 잠만 자나요? 외로운 세상에 의지도 되고, 재미있게 놀러도 다니고
그러지.

그리구요.. 여자는 뭐 성욕이 없나요? 많이들 참고 사는거죠. 생각해 보세요.
요즘도 결혼할때 여자가 과거가 있네 없네 따지고 그러는데 어떤 여자 땡긴다고 그냥 막 자고
그러기가 쉽겠어요? 그러니 오래 사귀면서 이남자랑이라문 결혼도 하고 뒷탈도 없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야 잘 결심도 하고 그러죠.

 

-그래도 결혼할 사람도 아닌데 매번 밥사고 영화보고 때되면 선물도 하고 돈너무 많이 든다.

 

-아저씨, 여잔요. 남자랑 같은 일 해도 돈 더 적게 벌어요. 그러니 매번은 좀 그렇지만.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아저씨가 좀 쓰시는게 공평하죠.
나도 열에 세번쯤은 내가 내요. 월급비율로 따져서 말이죠.

 

-그치만 나처럼 얼굴도 딸리고 직장도 딸리는 남잘 어떤 여자가 좋다고 하겠냐?

 

-아자씨 왜 아까부터 반말이냐? 시정하세요!
 
-내가 뭐 거그에 가고 싶어 가냐...요?

회식하고 다들 가자고 하는데 나만 안가면 이상한 놈 취급하니까 빠질 수도 없고 하니까 가는거지..요.

또 나 같은 놈한테 여자들이 좋다고 줄서 있는 것도 아니고.. 수도승처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쵸, 저도 그건 동의해요. 여자들은 얼굴 좀 맘에 안들고 살집 좀 있으면 취직도 안된다니까요.
이건 완죤히 생존권 문제라구요. 언제부터 사람들이 얼굴만 보고 살았냐구요.

또 왜 대학나온 사람하고 아닌 사람하고 월급차이는 그렇게 많이 나요?

사는데 꼭 필요한 일하는건 의사나 청소부나 마찬가지 아니예요?

그럼 일한 시간 만큼 똑 같이 돈줘야지 누구는 굶어죽지 않을 정도만 주고 그러냐구요.

어떤 일이 더 중요하다고 헌법에 있나?

 

-아..거야 관습에 따라..,

아니 듣고 보니 열받네요.
나도 하루 죙일 한눈 안팔고 열심히 일하는데 쥐꼬리 보다 쫌 많은 월급받고.

언 놈은 하루종일 골프나 치러 다니고 그래도 돈에 치어 죽을 지경이고.

대학 못 나오고 배경 좀 없다고 이거 이래도 되는거야?

말 나온 김에 우리 학력차별 철폐하라고 데모나 하러갑시다.

 

-그러까요?

 

킥. 킥. 킥. 즐거운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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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9 02:16 2004/10/29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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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밭이 이럴수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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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돌 & 쑨님의 [더덕밭]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우연히 돌&쑨님 블러그에 갔다가 한껏 챙겨놓으신 사진들을 즐겁게 감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나의 사기결혼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서른해가 넘은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우리 남편 만나 시골집에 인사드리러 간 날.

더덕 심어놓았다고 밭한번 보러 간다고 날 데리고 간게 그 더덕밭이었다.

조각땅에 더덕을 심어놓고 잘 자라고 있나 보러가서는 찬찬히 챙겨보고,

더덕 몇 뿌리를 가져다 집뒤에 소중히 심어 놓으면서 어디서 잘 자라나 보겠다고 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천상 농군같고, 믿음직하고..기타등등..

 

그런데 알고 봤더니

우리 남편 농사보다는 사람이 좋고,

내 집 살림보다는 동네 일이 더 걱정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살다 얼마쯤 지나 더덕 구이 먹고 싶다고 졸라 더덕밭에 갔었다.

풀인지 더덕인지 구별안되는 그 밭에서 어렵사리 몇개를 건저 올리긴 했는데

어른 엄지만한 놈들은 다 썩어 껍질만 남아있고.

아이들 중지만한 놈들만 얼추 골라서 집에 가져왔다.

 

그 쬐그만 더덕들을 까서..그래도 무농약이니까..하면서 맛있게 먹었었다.

근데 왜,

그때는 시장에 나와있는 그 튼실한 더덕들을 떠올리며 남편을 의심하지 않았는지...

 

하긴.

눈에 콩껍질이 쒸어서 지풀에 그러려니 했던것을 사기결혼이니 뭐니 할껀 없지만..

오늘 이 더덕 밭을 보는 순간.

우리 남편한테 속아도 한참 속았었구나 싶다.

 

그래도 덕분에 아주 행복했던 기억 한토박 건저 올려 기쁘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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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7 01:09 2004/10/2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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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얼마쯤 계속가면, 고집불통 늙은이가 되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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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나는 단정적으로 말한다.

예전엔

늘 조심스런 말끝으로 말하다 보면 끝이 흐려졌었는데...그때는 그런내가 참 싫었다.

뭐하나 딱부러지게 의견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랜 침묵 생활로 대인기피증이 온 때문인것 같기도 하고.

 

근데 요즘 내 귀를 통해 들려오는 내 말법은 언제나 단정적이다.

'...그렇지않아?'

'...그래야 하잖아'

 



요즘 들어 느끼는 단정적 말법의 문제는  그저 말투의 문제만은 아니다.

말법은 내 사고의 틀도 그 안에 가두어 버린다.

어쩌면 역으로 사고의 고정이 말법으로 나타난것일수도 있다.

 

사건->경험과 직관에 의존함..->더이상 생각하기 싫음..->다른 의견은 받고자 하지 않음..->일단 정했으면 그냥 감..->이견이 들리면 무시함 ->헛점이 보이면 수선함

 

이 얼마나 한심한 사고과정인지.

 

대화란 '답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언제부턴가 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설득하거나,

설득당하는 -심지어 설득 당하지도 않는다. 타협해주는 정도지.-과정만 있다.

 

왜 내가 소통에 계속 집착하는가 생각해 보니, 바로 내가 모든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 있기 때문인것 같다.

 

이대로 얼마쯤 계속가면, 고집불통 늙은이가 되어있겠지.

난 우아하게 늙고 싶다.

 

다시 한번 사고과정을 수선해 보자.

사건->경험과 직관에 의존함->그리고 늘 의심할것->그 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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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6 00:18 2004/10/2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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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시험문제를 보고 많이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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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쭌모님의 [정답해설서]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첨 시험문제를 보고 많이 웃었습니다.
재미있어서요.

그리고 이 양반이 미술과목에서 시험이라는게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을 가진

그래서 반항해보는 기인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정답해설서를 보고는 참 많은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그 양반이 그 수업을 얼마나 즐겼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또 학생들에게 얼마나 찬찬한 관심을 가지고 수업에 임했는지
기타등등..

그리고 본디 교육이라는 것이 그래야 하는것이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일부 명문대에서 고등학교에 등급을 메겨놓고 학생을 뽑아서 나라가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전교조 위원장은 삭발단식을 하고, 학부모들은 연일 시위를 하고...

그 일부 명문대의 변명과, 일부 명사들의 칼럼등을 보면

-몇일 전 여성신문에서도 그런 논조의 칼럼이 있었는데 밑에 본지의 의견과 다를수 있습니다..뭐 그렇게 나와 있더군요.

문제는 고교내신이 변별력이 없다는 거지요. 변별력이 없으니 좋은 학생을 뽑을 수 없고, 그래서 고육책으로 고교등급제를 했다는..그러니 결국,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대학가는 셤공부 기간이고, 변별력을 가지는 셤을 봐야 한다는 거겠지요? 그래야 우수인재가 양성되고, 국가경쟁력도 높아지고 기타등등 멍멍..

일단. 고교등급제가 참 치사하다는거는 인정하고.
-이건 마치 모든 남성은 모든 여성에 비해 우월하다..는 전근대적 여성관의 판박이 같지 않습니까?

이단으로,

교육이 뭐냐는 의문이 듭니다.
학생들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과정을 즐기며.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교수가

학생들이 얼마나 수업에 열심히 임했는가를 성적 변별력으로 삼고자 시도했는데

이제까지, 정상적 변별력-지식테스트-의 범주에서 먼 셤 문제를 냈다는 이유로 면직이 되었답니다.

과연 교육이 뭐냐는 의문이 들만하지 않습니까?

아..뭐..그래도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요.
근데, 그런 얘기말고

현실이 옳으냐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미래에는 뭐가 좀 바뀌지 않을까요? 

잠깐 인용해 보면 어떤 책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 책 구입 원하시면 메모남겨주세요

"교육에 필요한 것은 프로페셔널리즘이 아니라 아마추어리즘이다. 아마추어(amateur)란 흔히 체육이나 스포츠 분야에서 그것을 본업으로 삼아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과 대립되는 용어로 사용된다. 체육이나 스포츠를 하나의 취미로서 사랑하고 즐기는 자가 곧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래 아마추어란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amator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반드시 체육이나 스포츠와 괸련해서 사용해야 되는 용어는 아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어떠한 활동을 그 자체로 좋아하기 때문에 수행하는 사람, 이른바 ‘애호가’가 곧 아마추어이다. 지금 교육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들 아마추어이고 그러한 사람들의 교육적인 삶의 기본자세이며 태도인 교육 아마추어리즘이다. "

정교수님의 정답해설서를 보면서 

그 양반이 가르치는 일과 학생들에 대한 참 많은 사랑이 있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단으로,
설령, 이 양반이 단지 셤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위해 이런 문제를 냈다쳐도.. 그게 그리 큰 문제여야 하냐는 겁니다. 선배들로 부터 대대손손 물려오는 노트필기, 시험족보가 토씨하나도 안틀리게 평생을 교단에 서는 교수님들도 많은데 말이죠.

우리 사회,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회 맞습니다.

그러니 수도이전하는데 헌재에서 관습법이 어떻고 그러지 않겠어요?

근데 국민투표는 언제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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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3 03:40 2004/10/23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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