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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22 빈민탁아에서 보육노조건설까지 (3)
  2. 2005/01/12 관계맺기..우리가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것들...
  3. 2004/12/12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되나? (1)
  4. 2004/11/26 하나씩 그 존재를 느끼면 아름답죠. (3)
  5. 2004/11/19 트랙백놀이-네버엔팅스토리 (4)
  6. 2004/11/16 사랑을 쓰려면 연필로 쓰세요오~~
  7. 2004/11/16 바둑이 이야기
  8. 2004/11/12 예전에.. (1)
  9. 2004/11/12 꽃이 나비에게? 날 두고 떠나지마..라고?
  10. 2004/11/10 날 두고 떠나지마..꽃으로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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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탁아에서 보육노조건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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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본 탁아운동의 역사

-빈민탁아에서 보육노조 건설까지-


 

1990년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던 해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3월9일에는 다섯 살, 네 살 먹은 혜영이 용철이 남매가 연기에 질식해 죽은 바로 그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파출부와 경비로 일을 나가야 했기에 아이들은 잠긴 방안에 있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며 찾아간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 남영동 사무실에는 최선희 선배가 있었습니다. 이제 막 졸업한 새내기가 탁아활동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 선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영광도 없고, 사회적 주목도 없으며, 오랜 헌신만이 있는 이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부천 오정동에서 탁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엄마에게 일할 권리를! 아이들에게 보호 교육받을 권리를!


부천에 단 세 개뿐인, 동네에 단 하나뿐인 탁아소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엄마들을 만나며, 어린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돌보는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맘 편히 일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때 선배들은 탁아법 제정을 위해 치열하게 준비했고, 탁아소 막내인 나 역시 부천 역에서 엄마들과 함께 피 세일을 하고, 서명을 받고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꿈이 모여진 탁아법안은 정부의 책임성을 삭제당한 채 1991년 민자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되었습니다.

이제 제도적 공간으로 들어 온 탁아는 보육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고, 정부의 여성인력활용이라는 정책적 필요에 따라 민간시장에 맡겨진 채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마구 양산되던 보육시설은 수익성 있는 여성부업 정도로 인식되어 방송은 앞다투어 보육시설 운영의 투자성에 대해 홍보하였고, 많은 여성들은 단기과정을 통해 보육교사로 양성되었습니다.

1997년 한국보육교사회로 전환한 우리의  슬로건은 보육의 공공성 확보! 영유아보육법을 개정! 보육의 질 향상! 이었습니다.

이제 어린이집은 아이를 맡기는(탁아) 곳이 아니라 보호하고 교육(보육)하는 곳이라고 불립니다. 때문에 보육교사들은 이름에 걸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동네마다 어린이집 놀이방 간판이 즐비하지만, 여전히 언론에서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부모들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대부분이 영세한 민간자본으로 운영되는 보육사업은 여전히 보육교사들에게 직업적 헌신을 강요하고 있고, 보육교사들의 노동시간은 내가 일하던 때인 10여 년 전보다 겨우 2시간 정도 줄어들어 하루 10시간을 육박합니다.


행복하게 자랄 권리! 행복하게 일할 권리!


2004년 1월 영유아보육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법 제정에 걸린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보육교사의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육교사의 질 관리를 위해 양성과정을 강화하겠다고는 하나, 보육교사의 처우는 별다른 고려의 대상이 못되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참아야 하는지 좀 헷갈립니다.

이제는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말에 많은 분들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보육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 과정뿐 아니라, 그들이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2001년부터 시작한 조직논의 끝에 우리는 작년 한해를 보육노조 건설에 올인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1월 행복하게 자랄 아이들의 권리와 행복하게 일할 보육교사와 부모들의 권리를 모두 담아 전국보육노조가 출범하였습니다.


다시 혜영이와 용철이를 생각하며


지금 내 아이 또래였을 혜영이와 용철이를 생각합니다.

살아있다면 성년이 되어갈 그 아이들의 아까운 죽음과 탁아운동 선배들의 노력을 기억합니다. 처음 남영동사무실에서 내 앞에 놓여있던 삶의 불확실성에 두려워하던 스믈 넷 젊은 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앞에 놓여질 새로운 길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제는 든든한 짝이 옆에 버티고 있고, 우리는 새로운 과제를 받아 안을 것입니다.


[우리네아이들]의 첫 제호가 [함께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네아이들을 위해 함께 가는 길에 더 많이 이들과 손잡을 수 있을거란 희망찬 기대를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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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2 03:52 2005/01/22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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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맺기..우리가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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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관계맺기와 성인과의 관계맺기에서는 늘 좀 다른 점을 발견하곤한다.
아이들과는 관계맺기는 뭔가 좀 쉬운듯 싶기도 하고, 매듭이 생겨도 잘 풀리기곤 한다.
그런데 성인들과의 관계에서는 한번 생긴 매듭을 풀기가 몹시도 힘들다.

 

암튼,
문제의식은 거기에서 출발했다.

관계맺기에 관심이 많은 구성원들과 함께했던 모임에서
우린 이 문제의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갈등이 발생했을때,
그 대상이 아이들인 경우 심각한 문제가 안되는데 성인들과의 갈등은 해결하기 힘든가..하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나와 관계맺는 대상이 아이들이기에 갈등이 발생해도 나의 태도가 좀더 성숙(?)하고
여유있으며,좀더 교육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했었다.

 

진행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임 리더이신 선생님이 메모지에 몇가지 단어를 적었다.

 

-기대..

-용서..

-헌신적 관계..

-완전한 신뢰..

-겉과 속이 같음..

-열려있다..

 

뭐 이런 단어들이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미루어짐작하실 수 있으실런지...

.



(그날 이야기 되었던 내용의 전부를 올곧이 옮기지 못하는게 무쟈게 아쉽다.)

 

성인들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가 무너졌을때, 분노하거나, 서운해 하거나, 상대방에 대해 포기하거나 하기 쉽다.
그러나 아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때에도 상대방에게 분노하거나 그로 인해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여전히 새로운 기대로 대한다.

 

성인들은 마음으로 부터 용서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용서보다는 냉담에 차라리 더 익숙한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은 쉽게 용서한다. 방금 치고받고 쌈하던 친구와도 시간이 좀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놀이에 열중한다. 좀 전에 자신을 야단치던, 그래서 자신을 몹시도 서운하게 했던 선생님에게도 좀 지나면 다시 맑게진 얼굴로 미소지으며 달려온다.

 

성인들은 타인과의 관계맺기에서
맘 속으로 이해득실을 따지기도하고(더러는 그게 드러나보이기도 해서 민망해지기도한다),
때론 뭔가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면 관계맺기에 멈짓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선 이득을 고려하여 맺는 관계는 없다. 아이들은 관계맺는 사람에 대해 온몸을 던져 애정을 보낸다. 아이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매우 헌신적이다. 아이들은 타인과의 관계맺기에서 완전한 신뢰를 보여준다.


성인들처럼 상대방이 나에게 거짓을 보여주는지, 혹은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지 기타등등 골치아픈 의심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성인들처럼 싫어도 좋은척 한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관계를 포장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겉과 속이 같다.

 

아이들은 열려있다. 늘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이다.
성인들은 어떠한가? 타인을 완전히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많은 규정과 '나'가 있지 않은가.

 

다시 생각해 보면,
아이들과의 관계맺기가 성인과의 관계맺기와 질적으로 다른것은.
관계맺는 대상이 아이냐 성인이냐에 따라 나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타인과 관계맺기를 하는 매우 훌륭한 자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임 리더선생님의 마지막 질문은

"성인들도 아이들과 같은 관계맺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누군가의 대답은

 

"있다. 언제냐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이다." 였다.

 

우리는 아이에서 성인으로 자라면서 진실한 관계맺기의 방식을 아주 잊은건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잊고 있었고, '사랑의 대상'을 매우 한정지어 놓았던 것 같다.

 

근데 난 결론이 아주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넘어간 것에 대해 쫌 석연치 않았다.

 

왤까?

사방천지에 넘처나는 '사랑'의 담론에 질려서?
혹은 그 퇴색된 '사랑'의 의미들의 너덜한 모습이 떠올라서?
아님 그 상식적 대답이 허무해서?

 

그러나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사랑'이면 어떻고 '아침'이면 어떠냐.
각자의 맘 속에 소망하는 그 어떤 감정의 실체는 존재하는 것을..

 

함께한 모임성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넘처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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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2 03:53 2005/01/12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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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가도 서울만 가면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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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일은 사회 공동의 책임이며,

한 가정의 몫으로 남겨져서는 안되며, 보육정책이 좀더 국가적 책임성을 가지고 가야한다고 설득하기 위해 우린 출산율 저하와 세대재생산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을 들이 대면서 나는 항상 ..이건 아닌데 하면서 뒷꼭지가 땡긴다.

 

이런 껄적지근한 느낌 뒤에는

과연 보육정책이 잘 완성되면 출산율의 저하가 변화할것인가? 하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다.

세째아이, 낳기만 하면 정부에서 키워줍니다! 라는 구호가 가임 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 수 1.17명인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이 하나 낳을 때 마다 격려금을 준다고 해서 과연 출산율이 높아질까 하는 의문.

 

작년에 일본에서 온 교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있었는데..우리보다 보육제도가 잘 정비된 일본 역시 출산율1.32으로 급격한 인구감소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보육제도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다고 그 분은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가지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출산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직접적인 육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도 여성의 사회 진출의 어려움이나,  육아에 대한 사회의 가치평가 등의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하리라  추측되긴 한다.

 

또 다른 측면의 우려는 

우리가 보육의 문제를 아동의 권리로 접근하지 않고,

출산율이나 세대재생산으로 접근했을때 우리는 이후 몇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세대재생산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완성된 보육제도 속에서 보육의 목표는 훌륭한 미래 시민의 양성이다. 그러니 당연히 보육시설에 다니는 아이들의 '현재'는 준비된 시민으로서 자랄 준비를 하기 위한  '준비기'가 될 것이다.  세대재생산이라는 목표는 우리 아이들의 '현재'를 미래를 위해 희생하도록 만들며, 그렇게 우리는 보육의 내용까지도 양보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우려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다행이도 출산율이 다시 높아지고 나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다.

우리의 출산정책은 태어날 아동과 아이를 임신할 여성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이루어져 왔다.

 

격세지감이지만.

내가 어릴때만 해도 '둘만낳아잘키우자!' '잘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부럽다!' 등등의 구호들이 있었고. 실제로 정부에서는 현행법상 불법인 낙태를 묵인하며 출산율 저하를 위한 피임 정도로 여기고 있었고-이건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에 대한 관점과는 별개의 지점이다.-정관수술을 하면 수술비도 지원해 주고..기타등등의 정책을 통해 출산율을 조절하여 왔다.

 

다시 본론으로,

우리가 출산율을 보육정책의 국가적 책임성의 근거로 들이 댄다면,

그런데 어쩌다 인구밀도가 다시 높아지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보육정책이 다시 후퇴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목표를 달성했음으로..

 

2003년 프랑스보다 낮은 우리나라의 출산율에 의한 쇼크로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해서 내 놓고 있다.

보육정책 역시 이에 발맞추어 영아보육을 활성화 방안, 두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는 경우 보육료를 지원등의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도, 그 호들갑스런 언론도,

보육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20명의 아이들이, 한명의 어른과, 1인당 0.8평의 공간에서, 하루 8시간 이상을

지내야 하는 현실에서는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니,

누군가 목청껏 떠들어도, 

이 아이들의 실제의 삶은, 시설 운영의 현실적 어려움과 보육 예산의 부족 등을 이유로 항상 뒤로 밀린다.

 

그 아이가 부유한 부모를 만났든지, 가난한 부모를 만났든지,

그 아이가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 사회에 때어난 아이들 모두는 보호받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아이가 다음세대의 노동력이어서가 아니라.

그 아이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가지게 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보육의 국가적 책임성에 대해 설명할 더 이상의 근사한 논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가끔은 ... 지금 뭘 해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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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2 02:29 2004/12/12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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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그 존재를 느끼면 아름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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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jineeya님의 [일명 스노우캣 놀이]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 넘들은 우리 쭌이의 애장품이었답니다.

 

집앞 슈퍼에 가면 꼬맹이들을 꼬시는 자잘한 것들이 많은데 그 중 쭌이 꼿친것이 바로 이넘들이었는데

계란보다 작은 계란모양의 초콜렛이었는데 매일 한개씩 구입해서는

초콜렛은 바둑이 한테 던져주고

그 안에 들어있는 조립장난감은 할머니에게 만들라고 조르고..

결국 눈이 안좋은 할머니는 포기하고..

그 넘들은 내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죠.

 

매일 밤.

하나씩 조립하는 노동을 해야했었는데

중국제품이었는데 어찌그리 종류도 다양한지 별로 겹치는 것도 없이 매일 매일 쌓여가다가

결국은 그렇게 모여진것들이 급기야는 커다란 통에 하나가득 차게 되었고.

 

쭌이의 장난감으로 집이 발디딜 틈 없어진 어느날

동생들가져다 주자고 꼬셔서는 어느 모임에 가져갔는데

결국 아무도 그걸 안챙겨가서는 다시 집으로 가져와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을때

jineeya가 구조해 간 거랍니다.

 

무더기로 있을 때는 버려져야할 쓰레기로 보이더니만

넘들의 독사진을 보니 나름대로 아름답네요.

 

언젠가 보육교사들과 모임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진짜, 정이 안가는 애가 있다. 그럴때 죄책감을 막 느낀다. 나의 교사로서의 자질에 대한 고민까지도 든다. 이런 상황 어쩌면 좋을까???

 

이 말에 경력 10년차 샘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 아이를 아주 자세히 관찰해라, 어떤 모습이든.

음식을 먹는 모습이라면.. 어떻게 씹는지. 숫가락질은 어떻게 하는지. 또 표정은 어떤지.

맛없는 음식을 먹을때의 표정과 눈빛까지도.

그렇게 자세히 그 아이를 보면, 사랑하게 된다...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이야기였죠.

 

우리가 무언가를 아주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그 존재의 느낌과 통하고.

그러면 그 존재의 가치가 느껴질것이고..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질것 같긴 하죠?

 

아~~ 그럼 세상도 평화로워질것 같은데...................................................................

 

오늘도 하나 조립했습니다.

작은 새가 들어있는 새집이었는데 불량이어서 만능테이프로 붙여서 겨우 모양을 유지했지요.

 

다시 모으기 시작했으니 조만간 또 한통이 차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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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6 00:39 2004/11/2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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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놀이-네버엔팅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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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재미있더라구요. 꼭 끝말잇기 같죠? 

 

예전에, 아아주 예전에 꼬마였을 때 친구들이랑 이야기 만들기 놀이 했던 기억이 나요.

 

먼저 누군가 스토리 하나 말하면,

그 뒤에 상대방이 잇고. 또 내가 잇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야기가 진전이 안되면 그걸 다시 억지로 돌려놓으려고 이야기를 이상하게 꼬아 버리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려고 더 이상하게 꼬아 버리거나 했었는데..

그렇게 서로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완성해 가는거였죠.

 

요기서도 이렇게 놀면 재미있을것 같은데..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겁니다.

 

어떤 이야기를 누군가 먼저. 그리곤 그 이야기에 이런 제목을 붙이죠.

 

1-트랙백놀이-네버엔딩스토리-(뒤에 제목을 붙여도 좋고)

 

누군가 이 이야기의 뒤를 잊고 싶다면..뒷 이야기를 쓰고 또 이렇게 제목을 붙이죠.

 

2-트랙백놀이-네버엔딩스토리

 

그런데 또 누군가는 두번째 스토리가 맘에 안든다면,

첫번째 이야기의 뒤를 이어 이야기를 만들고 이렇게 제목을 붙이면되죠.

 

2-1 트랙백놀이-네버엔딩스토리

 

이렇게 자꾸만 자꾸만 이야기를 만들면,

끝나지 않을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생겨나겠죠?  재미있을것 같지 않아요?

 

근데 제목이 무쟈게 길어질 수도 있겠다.

그치만 제목에 순서를 정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엉켜버릴텐데..

 

트랙백을 쏴 보아요에서 성매매관련 글을 읽다가 순서찾기가 힘들어서 고단했던 기억이 있어서...

 

누구 나랑 같이 놀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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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9 02:19 2004/11/19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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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쓰려면 연필로 쓰세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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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NeoScrum님의 [다시는 정을 주지 않으리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그 옛날 어떤 가수가 이런 노래를 불렀었는데..

 

사랑을 쓰려면 연필로 쓰세요오~~

처음부터 너무 진한 잉크로 사랑을 쓴다면..지우기가 너무 너무 어렵잖아요~~

 

뭐 그런.

 

또 이런 노래도 있다.

조금만 주고, 조금만 받아요오~~

그리하여 슬픔도 작게~~

 

 

연필로 쓴다고 지우개로 지워지는 것이 인간의 감정은 아니겠지만.

조금씩만 주고 받고자 한다고 그게 인간의 의지로 잘 되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저 끝난 뒤의 고통이 너무 힘들것이니 조심하라는 선경험자의 조언이겠지.

 

이런 종류의 노래가 한 동안은 내가 사람을 만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근데 살다보니 그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더라.

 

 

 

 



예전에 내가 관계를 단절하는 방식은 아주 무시 무시했다.

그야말로 상대에 대한 완전한 무시.

그렇게 나는 상대를 무시하고, 잊고, 나는 상처받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데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상대를 죽여버리는 것이 답이 아님을.

그 과정이 내 안에 독으로 퍼지고 있음을.

불완전한 내가 점점 더 불완전해 짐을 느끼게 된다.

 

최근에

예전의 나와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단절하는 몇몇을 보면서.

그 방식이 나와 상대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느낀다.

 

그래서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껌벅이는 커서를 지켜 보면서.

끝내지 못할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 할까?...

 

내가 좋아하는 노래 "끝내는 한길에 하나가 되리"그건 믿음에 관한 노래다.

그리고 또 하나..세월이 약이겠지요~~ 하는 것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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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6 02:28 2004/11/16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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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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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15년동안 함께 살아온 바둑이라는 개가 있습니다.

흰 털에 밤색 점이 점점히 박힌..그야말로 바둑이지요.

 

태어난지 이주만에 우리집으로 입양되서 온갖 사랑을 받고 살았지요.우리 집에 애가 생기기 전까지는.. 물론 그 뒤로도 함께 한 세월 만큼의 우정을 나누었구요.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함께한 정리를 어쩌지 못하고 함께 이사 왔는데

관리실의 협박과 구박을 받으면서도 모로쇠로 일관하며 이제까지 함께 삽니다.

 

그런 바둑이가 요즘 노환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아세요?

개 수명이 15년에서 20년 사이라고 하네요.

 

하루에 스므번쯤 화장실로 뛰쳐들어가서

고작 감씨만한 응가를 하고.

제 똥꼬에 또 감씨만한 응가를 달고 나와서는  아주 아주 미안한 얼굴로 쳐다봅니다.

-개를 키우시는 분들은 아실텐데..개에게도 무궁무진한 표정이 있답니다..-

 

매일 매일 그 응가를 치워야 하는 울 엄마에게는 웬수 같은 일이겠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 나는 유언처럼 아는 사람 모두에게

내가 죽을병에 걸렸거나,

생명이 위독할때 과학의 힘으로 내 생명을 유지시키지 말아라..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일 때

그리고 그 대상이 의사표현을 하지 못할 때 그땐 어째야 하는지..

 

바둑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봐야겠습니다.

근데 그 담엔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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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6 01:01 2004/11/1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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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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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알엠님의 [신선마트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예전에

문열고 10분만 가면 까르프.이마트.그랜드 마트가 버티고 있는 친정동네에 살다가

 **리에 살게 되었을때,

 

먼저 뽀얀이 앉은 설탕,

마트에서보다 몇백원 더 얹어주고 ,

먼지 털어가며 사들고 나오면서

으이구 시골 사니까...하면서 성질을 냈었다.

 

그래서

종종 낮잠 자러 들어 온 남편 등을 떠밀어서 멀리 삼십분씩 운전시켜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한짐씩 사짊어지고 들어오곤 했다.

한꺼번에 돈 십만원씩 써대는 장보기지만,

계산기 튕겨가며 그래도 얼마쯤은 벌었겠거니 하면서 흐믓해 하면서.

 

어느날

또 장보러 나가자는 나에게 남편이 그랬다.

사람들이 다 너 같으면,

나중엔 간장 떨어져서 한병 사려고 해도 삼십분씩 운전해서 가야할꺼다.

그래도 좋으냐?

 

뭐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복잡한 요인과 대안적 해결방안들이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안들었고.

우선 남편한테 무지 쪽팔렸었던 기억이 난다.

나와, 나의 편의가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에 대해선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요즘은 그 생각이 더 자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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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2 04:33 2004/11/1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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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나비에게? 날 두고 떠나지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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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쭌모님의 [날 두고 떠나지마..꽃으로 그린 그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우린 가끔 가능하지 않은 요구들은 하는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곤 실망하지..

역시! 날 사랑하지 않았어 ... 라고. 혹은 사랑하지 않게 되었어...라고 .

 

심지어 늙어가는 아내의 미각의 상실로 김치가 짜졌을지도 모르는데,

사랑이 식은거지 뭐...하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사랑을 하는 어떤 시기에는 상대방만 보이기도 하는데

아주 짧은 그 시간이 지나면

나를 대하는 상대방의 태도만 보이기도 하는것 같고.

 

우린 아직 사랑할 만큼 어른이 되지 못했는지도 모르지.

 

이유가 덜되서, 엄마에게 칭얼거리듯.

엄마라서 무조건 받아주어야 하는 그런 사람이 더 필요해서

곁에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씩 두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자꾸만

내가 모자라서

사랑하지 못하는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모자라는 나를

채워 넣어가면서까지

그 사랑이란걸 해야 하나 귀찮아지기도 하고.

 

그래서 점점 더 썰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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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2 01:32 2004/11/12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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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두고 떠나지마..꽃으로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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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empas.com/yepp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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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0 22:43 2004/11/1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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