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 때문에 기자들이 담합한다고?
이 글은 전적으로 나 개인의 의견이다. 내 직장, 내 업무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 “xxx신문의 아무개가 이렇게 썼다”고 인용하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가 중앙 부처 브리핑실(기자실)을 통폐합하려는 것에 거의 모든 언론이 반대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언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더 많다고 한다. 기자와 언론에 대한 일반인의 반감을 잘 알기에,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런데 사태를 냉정하게 볼 거라고 기대한 이들조차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직접적인 계기는 아거님의 '어슬렁 어슬렁 저널리즘'이라는 글이다. 그는 YY님의 '기자실 통폐합=언론자유 위협?'이라는 글을 거론하면서, '기자실 통폐합 = 언론자유탄압'이라는 주장은 “이성에 대한 모욕으로까지 보인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YY님 글의 요점은 기자들의 담합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 담합을 구조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기자실이라는 것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부터 17년동안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기자들을 잘 알기에 기자들을 싫어한다. 한국의 기자뿐 아니라 아메리카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가디언> 같은 이른바 세계적인 신문 기자들도 기본적으로 별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발칸반도에서 서양 언론이 한 짓 | 영국 언론 관련 필독서, '미디어렌즈' | '뉴욕타임스'의 과학 보도에 무엇이 잘못됐나? | '월스트리트저널'을 못믿을 20가지 이유 | 생일 축하합니다 | 교묘한 거짓말. 근거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기자들이 담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담합은 기자실에 모여 앉아 있기 때문에 가능하거나 더 심하다”는 노무현식 논리는 거짓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주장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데, 사태의 본질을 감추기 때문이다.
정부 조처의 내용은 이렇다. 1. 세종로청사와 과천청사 등에 있는 20곳의 중앙정부 브리핑실을 세종로청사와 과천청사에 각각 하나씩으로 줄인다. 2. 서울 일선 경찰서의 기자실 8곳을 없앤다. 3. 청와대, 검찰청, 경찰청, 국방부, 금감위의 기자실은 그대로 유지한다. 4. 기자들의 공무원 업무공간 출입을 막는다.
1. 문제가 되는 기자들은 누구인가?
정부가 문제 삼는 기자들은 서울에 있는 정부부처 출입 기자들이다. (일부 경찰서 출입기자 포함) 좀더 대상을 구체화하자면, 중앙 일간지, 지상파 방송, 일부 경제지 기자들이다. 다시 말해,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한국방송, 문화방송, 서울방송, 기독교방송 그리고 연합뉴스, 매일경제, 한국경제 정도다. 또 지방지 가운데 부산일보, 대구매일신문 쯤을 추가할 수 있겠다.
2. 기자들의 정체는?
취재기자에 한정하자면 이들 대다수는 서울에 있는 이른바 '주요' 대학의 인문계 출신이다. 그리고 어렵다는 언론사 시험을 통과한 이들이니, 대부분은 자신들이 엘리트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임금이다. 언론사의 임금 수준은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추정할 뿐이다. 경향이나 한겨레 같은 곳들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동아, 조선, 중앙은 꽤 많다. 방송도 이 세곳의 신문과 비슷한 수준이다. 돈 있는 매체들은 초봉이 아무리 못해도 2500만원~3000만원은 될 것 같다. 이 소득을 2007년 1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 소득에 맞춰보면 상위 41~50%의 평균 소득 수준이다. 그리고 기자 생활 10년 정도면, 상위 21~30%(월 평균 450만원)에 들어가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금이 적은 신문사의 경우도 기자 생활 15년쯤 하고 맞벌이를 하게 되면 가구 소득이 상위 10~20% 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위 10% 전체의 평균은 월 875만원이지만, 600만원만 되어도 10%에 들어간다.) 더 중요한 것은, 열심히 일해서 간부가 되면 정말로 한국의 상류층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돈 있는 매체의 웬만한 간부는 연 소득 1억원은 받을 수 있다.
이 기자들은 나름대로 권력을 휘두르거나 권력 맛을 알고,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생각하며, 소득 수준은 중상 또는 상류다. 특히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큰 매체의 기자들은 거의 이렇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텃새를 부리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3. 이 기자들이 담합을 한다면 왜 할까?
담합 문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둘 것은 이들의 동질성이다. 언론사별 또는 개인별 편차가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이들은 상당히 동질적인 사람들이다. 소득 수준이 엇비슷하고, 관심사와 이해 관계도 엇비슷하다. 또 하나 염두에 둘 것은 이들의 이념적 동질성이다. 소득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가 비슷하니 이념적으로 비슷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경향이나 한겨레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거의 틀림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4. 기자들이 정말 담합을 하는가?
옛날엔 분명 기자들이 그리고 언론들이 담합했다. 독재 정권과 함께 놀아나면서 그들은 왜곡을 일삼았다. 하지만 한겨레 등 몇몇 새 신문들이 나타나고 언론노조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이 담합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의 구조는 새롭게 만든 구조지, 이어져 내려오는 구조가 아니다.
그럼 요즘은 어떤가? 조선일보 기자와 한겨레 기자가 담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심전심'으로 통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실에 모여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부류이기에 모여있지 않아도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그러니 세상을 똑같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이 사회가 날로 양극화하고 언론사들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수많은 기자들을 해고한 이후 점점 심해지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담합을 할 여건도 못된다. 언론사간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중-동을 한축으로 하고 한-경을 한축으로 하는 이념적 대립이 더 심해지면서, 담합의 조건은 더 나빠지고 있다. 기자들은 담합이 아니라 경쟁사 기자 '물먹이기'에 더 관심이 많다. '선택받은 지위'를 지키려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기자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언론사들이 '담합'한다. 언론사가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위해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뿐이다. 문제는 그들이 모두 기득권층이라는 데 있지, 기자실 같은 하찮은 데 있지 않다.
기자실 통폐합으로 남는 건, 기자들의 공무원 접촉을 최소로 막는 것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공무원들과 만나지 않을 것 같은가? 고위 공무원들이나 힘있는 기자들이나 모두 똑같은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를 끊는 건 가능하지 않다. 노무현 정부는 지금 엉뚱한 짓을 하면서, 제 수명만 단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5. 진짜 할 일은 뭔가?
진짜 필요한 것은,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기자가 되고, 언론을 만들고, 기자 월급은 사회 평균을 유지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대변하게 하는 것이다. 필요한 건 진짜 '대안 언론' 육성을 고민하는 것이다.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하는, 돼먹지 못한 조처를 '언론개혁'이라고 칭찬할 일이 아니다.
5월25일 추가: “고위 공무원과 힘있는 기자의 관계”가 오해를 부르는 군요. 이 대목에서 말하는 “힘있는 기자”는 일부 부자 신문 기자들을 지칭하는 겁니다. 그들을 막으려는 조처가, 사실은 그들에겐 별 영향이 없고 다른 엉뚱한 언론에게만 피해를 준다는 뜻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노무현 정부가 오래전부터 일부 보수 언론과 고위 공무원의 결탁을 문제로 여겨온 것을 잘 알지만, 일반인은 잘 의식하기 어렵다는 걸 간과했군요. 나머지 반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를 모두 서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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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기자실의 폐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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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5 00:37
기자실 통폐합 = 언론자유 위협?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제가 드는 근거자료는 모두 제 위키 페이지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글을 쓴 뒤에 보니 ‘공무원 개별 취재 금지 조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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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기자정신과 공무원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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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5 14:06
marishin님의 [기자실 때문에 기자들이 담합한다고?] 에 관련된 글. 정신이 없어서 다른 님들 글만 쬐끔씩 읽고 가기도 벅찬 시기지만 이건 좀 짚고 가야겠다. 청와대가 발표한 기자실 폐쇄건으로 인해 언론도 시끄럽고 블로거들도 설왕설래한다. 그 덕분에 요즘들어 화두로 떠오른 의제가 바로 '알 권리'다. 이 대목에서 노무현정권이 지난 4년 여동안 유일하게 일구어낸 치적이 바로 헌법에 대한, 특히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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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노무현은 과연 고삐풀린 망아지들에 재갈을 채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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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5 14:18
이 글은 marishin님 글에 대한 답글이지만, 글의 일부 내용은 marishin님 개인에게 드리는 말씀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언론 전반에 대한 인상 비판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드립니다. marishin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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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기사실 통폐합 논의 : 블로기즘과 '한국형' 저널리즘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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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5 17:40
0. 기성언론의 자기반성을 우선 촉구합니다. 기성 언론, 소위 메이저 언론에 대해 한마디 합니다. '기자실 통폐합' 문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사안입니다. 그런데 딱히 어떤 입장을 세우기 어려운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아는게 없었습니다. 거기에 오랜만에 '당파성을 떠나'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기자실 통폐합'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으니까요. ('기자실 폐쇄'가 아니라 '기자실 통폐합'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실..
행인 2007/05/25 14:16
참 답답한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을 트랙백 했습니다. 에혀...
세라비 2007/05/25 15:51
그렇다면 반대할 이유도 별로 없네요.
marishin 2007/05/25 16:25
“고위 공무원과 힘있는 기자의 관계”가 오해 부르는 군요. “힘있는 기자”는 일부 부자 신문 기자들을 지칭하는 겁니다. 그들을 막으려는 조처가, 사실은 그들에겐 별 영향이 없고 다른 엉뚱한 언론에게만 피해를 준다는 뜻입니다.
hypnodisc 2009/10/25 18:50
2년 후에 이 글을 읽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2년 전과 지금의 상황이 많이 바뀌어서 그런 것일까요. 그나저나, 이 글에 이어지는 글 써 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marishin 2009/10/26 09:46
무슨 감회가 새로우신지, 어떤 의미에서 이 글에 이어지는 글을 써볼 생각이 없느냐는 건지, 전혀 모르겠으니 답을 못하겠군요.
그리고 달라진 것은 전혀 없는데요, 제가 보기에. 기자실 복원하겠다는 현 정부도 복원하지 않았습니다. 고위 공무원과 힘있는 신문 기자의 담합은 여전하고요. 주요 언론 기자 대부분은 여전히 기득권층이라서 민중의 삶과 동떨어진 기사를 쓴다는 점도 변함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