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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정국' 단상

지구 반대편 한 구석에서 학교 과제물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신세라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금요일 밤 서울 한복판에 1만명이 모여 촛불 집회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더 참지 못하게 됐다.

 

 

1. 이 사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금요일 밤에 시민들이 1만명이나 모였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집회 장소도 다름 아닌 청계천이라니, 이건 굉장히 상징적이며 아이러니하다. 이쯤 되면 '광우병 정국'이라는 말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다만 이 정국에 정치인들이 없다뿐이다. 그래서 더욱 '정치적인' 사태다. 왜냐하면 요즘 가장 정치적인 상황은 정치가 실종되고 정치가 위기에 처할 때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좀더 풀어서 표현하자면, 시민들이 어떤 위협을 느끼고 정치인들이 이 위기의식에 호응하지도, 반응하지도 않는다고 느끼는 사태, 이것보다 더 정치적인 사태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세계화한 시장의 힘'이 정치를 압도하는 요즘 전세계적 상황 곧 '신자유주의 세계화' 상황에서, 정치의 실종은 특별한 현상도 아니다.

 

이제 바야흐로, 정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실현되지 않으면 안되는 국면에 온 것이다. 이건 정치의 죽음이 아니라 진정한 정치가 살아날 수 있는가 여부를 가를 '결정적 위기 국면'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아주 심한 아이러니로 보이기도 한다. 먼저, 총선의 저조한 투표율, 특히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을 개탄하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하던 '전문가'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게 생겼다. 이른바 '요즘 젊은이들'은 무기력하지도 않으며, 정치 의제를 제기할 능력도 있으며, 비록 소극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촛불집회'라는 정치적 동원을 성사시킬 의지도 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여기서 '요즘 젊은이'는 이른바 '386세대' 이후를 통칭하는 것이다.) 그들은 선거 그리고 정치와 전혀 무관한 다른 상황에서 '정치적인 의지'를 표출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키보드 전사'들을 찬양하는 행위는 곤란하다. 이런 띄워주기는 '천박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2. '광우병 정국'은 어떻게 가능했나?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질문이다. 어떻게 이번 사태가 '광우병 정국'으로 부를 수 있는 상황까지 발전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긴요하다. (우리가 머리 속에 담고 있는 '썩은 정치', 부패하고 더러운 정치라는 이미지는 지워버리자. 지금 논하는 것은, 이미 죽어버린 '기존 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대의제 정치'를 대체할 '급진적 생활 정치", '급진적 참여 정치'쯤이다.)

 

"대통령이 이엠비가 아니었더라도 광우병 때문에 '탄핵'을 운운하는 이 지경까지 왔을까?" 내 대답은 "아니,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태에서 광우병 공포감은 방아쇠일 뿐이라는 뜻이다.

 

지난 몇개월을 되돌아보면 사태의 진전은 분명하다. 영어 교육 논란, 건강보험 논란, 투기꾼 또는 거짓말쟁이 또는 '허공에 떠있는' 부자들이 독차지한 내각 구성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남겨준 것은 한마디로 '배신감'과 '절망감'이다. '말만 떠드는 정부'에 질려서 거짓말쟁이든 투기꾼이든 상관없으니 먹고 살기 편하게만 만들어달라고 표를 찍었더니 돌아오는 건 '배신'뿐이다.

 

잠재되어 있던 '영어 컴플렉스'를 자극하면서 영어로 사교육 부담만 잔뜩 지우겠다고 나서더니, 건강보험이 민영화되어 무지막지한 병원비 부담을 떠안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게다가 알고보니 그들은 온갖 편법 다 동원한 '다른 세상의 갑부'들인 게 들통났다. 이것만으로도 배신감을 참을 수 없는데, 이제는 무시무시한 광우병의 공포 속에서 '값싸고 질 좋은 미국 쇠고기'를 실껏 드시라고 한다. 이쯤되면 더는 참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일은 단순히 '광우병 파문'이 아니다. '우리의 절박한 삶'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나라'에 대한 저항이다.

 

 

3.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거리에 나섰나?

 

"천박하다고 비아냥 거리고 '정치의식'이라곤 없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좋으니 먹고 살기 좀더 편해지고 싶다. 너희들이 해준 게 뭐냐? 양극화를 해결했냐?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비정규직 천국을 개선했냐? 역사 바로잡기도 좋고, 남북 관계 개선도 좋지만,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을 만큼 불안하고 힘들다."

 

이것이 바로 '보수화했다'는 한국 유권자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심정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눈 딱감고 '이메가'를 믿어봤다. 그런데 알고보니 상황이 더하면 다했지 나아길 조짐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동안 질리도록 본 '가볍고 즉흥적인 막말에만 능한 대통령'보다 별로 나을 게 없는 '가벼움'과 '천박함'까지 보여준다. 얼마전 일본 국왕과 악수하면서 고개 숙인 한장의 사진이면 족하지, 뭐가 더 필요한가?

 

이제는 먹고 살만해졌고, 배낭 여행으로 유럽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눈도 높아졌고', 그래서 일본이나 미국에도 꿀리지 않는 '당당한 대한민국', '고상한 대한민국', '세련된 대한민국'을 꿈꾸는 이들이 요즘 젊은 세대다. (사실 젊은 세대만의 바람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의 바람이다.) 그래서 경제적 상황이 좋아지기를 더욱 더 갈망하는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잘 살지 못하면 당당하고 고상하고 세련될 방법이라곤 없음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런 그들에게 눈앞의 현실은 '독재 시대'를 겪으면서 이전 세대가 느낀 절망감보다 결코 약하지 않은 좌절감을 가져다 준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한, 요즘 한국 사회의 역동적이리만치 '엽기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여론의 흐름,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광우병 정국'은 새로운 정치의 희망과 가능성이기 이전에, '한국 사회'가 안에서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내파'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아주 분명하며 불길한 징후다. 기성 세대는, 제도권 정치는, 그리고 언론은 이 요구과 현실의 괴리를 이해하고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내파하고 말 것이냐, 아니면 4.19혁명과 70-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잇는 '강고하고 끈질긴 정치 투쟁의 나라'로 되살아날 것이냐, 이것이 진짜 문제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젊은이들이 광우병 촛불집회를 새로운 참여 정치의 공간으로 발전시킬 상상력과 감성을 발휘하고, 전략과 전술을 개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또 그들과 적극 연대하고 그들을 지원할 세력이 존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낡은 감성과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한, 좌파 세력이 끼어들 자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2008/05/03 01:54 2008/05/03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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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론에서 마르크스 내쫓기

우연히 식민주의이후론(탈식민주의론)의 이념적 배경을 재미있고 논쟁적이면서도 간략하게 요약한 글을 읽게 됐다. 이른바 포스트 이론들이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의 흔적을 어떻게 지워버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분석이어서 소개한다. 난삽하고 골치 아픈 내용들을 그냥 건너 뛰어서, 요약 정리만 하고 싶은 이들에게 딱 어울린다. (인도 출신의 학자로 유명세를 얻은 가야트리 스피박과 호미 바바를 은근히 비꼬는 부분에서는 웃음을 참기 어렵다. 스피박의 '길고 어려운' [그라마톨로지] 서문, 바바의 라캉 오독 따위를 언급하는 대목, 바바는 기껏 부르주아 작가일 뿐이라는 평가 따위가 그렇다.)

 

필자는 마르크스 이론으로 성경 분석을 시도하는 학자인 롤런드 보어(Roland Boer)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모나시 대학(Monash University)의 종교 및 신학 연구소(Centre for Studies in Religion and Theology)에 재직하고 있는 학자다. 출처는 2005년에 나온 책 [식민주의이후론(탈식민주의론)적 성경 비판: 학제적 교차점들]에 실린 보어의 글 '마르크스, 식민주의이후론(탈식민주의론), 그리고 성경'이다. (Boer, Roland. 2005. Marx, Postcolonialism, and the Bible. Stephen D. Moore and Fernando F. Segovia (eds). Postcolonial Biblical Criticism: Interdisciplinary intersections. London and New York: T&T Clark International, pp. 166-183.)

 

여기 소개하는 부분은 167쪽에서 168쪽 앞까지와 168쪽 일부, 169쪽 하반부부터 170쪽 앞부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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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쪽에서 168쪽까지)

 

여러가지 측면에서 명백한 것을 말하자면, 마르크스 그리고 이어서 레닌은 자신들이 식민주의, 제국주의라고 여러가지 이름으로 지칭한 것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먼저 제기했다. 마르크스가 이 길을 추적했다면 (자본주의가 살아 남으려면 유럽이라는 한계를 넘어 확장하고, 지금도 경제적 성공의 척도인 '성장'을 지속하고 계속 새로운 식민지를 점령해야만 했다는 지적.) 레닌은 자기가 살던 시점까지만 볼 때 가장 진전된 자본주의 최고 단계로서 제국주의 또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를 특히 집중 추적했다. 레닌의 관점에서 보면, 두번의 '세계 전쟁'은 모두 전세계 지배권을 다투는 유럽 제국주의 세력들의 분쟁, 전 지구에 걸쳐서 좀더 많은 땅을 점령하려는 경쟁이 절정에 이른 투쟁이었다. 레닌 이후, 식민주의를 포함한 제국주의적 팽창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고 비판하는 작업은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 이뤄졌다. 무어-길버트의 분류법을 따르자면, 식민주의 이후에 대한 초창기 비판을 이끈 핵심 인물들, 곧 프란츠 파농, W.E.B. 뒤 부아, C.L.R. 제임스 같은 인물들은 모두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식민주의 분석 외에, 그들의 작업에는 두가지 다른 중대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작가 자신들의 위치에서 문학과 기타 문화적 생산물들을 연구하는 작업과 정치에 뚜렷하게 개입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제임스는 크리켓이 식민주의 문화의 힘이자 동시에 반식민주의 문화의 힘으로 작용하는 데 대단히 관심이 많았을 뿐 아니라, 서인도제도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To state what is in many respects the obvious: Marx and then Lenin first developed a critical approach to what they variously called colonialism and imperialism. If Marx traced the way (capitalism for its very survival had to expand, to 'grow' - still very much the benchmark of economic success - beyond the confines of Europe and conquer ever new colonial spaces), Lenin, especially in Imperialism, or imperial capitalism, as the most advanced stage of capitalism up until that point. From a Leninist perspective, both 'World Wars' were conflicts between the European imperial powers, vying for global dominance, the struggle coming to a head in the competition for the conquest of ever more territories throughout the globe. After Lenin, the systematic theorization and critique of capitalist expansion, including colonialism, took place in the Marxist tradition. Key figures of earlier postcolonial criticism, following Moore-Gilbert’s classification, such as Frantz Fanon, W.E.B. Du Bois, and C.L.R. James, were all Marxist critics of colonialism. Apart from the analysis of colonialism, there were two other vital parts of their work: the study of literature and other cultural products from their own locations and a distinct level of political involvement. For instance, James was not only intensely interested in the role of cricket as both a colonial and anti-colonial cultural force, but he was also a central figure in the process towards independence in the West Indies.

 

내가 너무나 간략하고 두서없이 요약했지만 이런 역사를 생각할 때, 도대체 어떻게 식민주의이후(탈식민주의) 이론의 마르크스주의적 차원이 실종되고 말았을까?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다양한 핵심 측면들을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로부터 체계적으로 떼어내고 이어서 그 이론의 정치적 잠재력을 부정한, 동시 다발적인 변형 과정을 통해서 이 작업이 이뤄졌다. 이 과정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사용한 것에서 시작한다.

Given this history, which I have sketched far too briefly and haphazardly, how is it that the Marxist dimension of postcolonial theory has been lost? Through a simultaneous process of transformation that systematically detached various key aspects of Marxist theory from Marxism itself and then negated their political potential. The process began with Edward Said's use of Antonio Gramsci’s notion of hegemony.

 

 

(168쪽에서 169쪽까지)

 

식민주의 시대에, 이런 헤게모니는 이념 작업 전반에 관여했다. 곧 인종 이론부터 시작해서 군사 행동, 제국주의 중심지의 우월성을 믿는 신념의 창출을 거쳐, 사이드의 유명한 '오리엔탈리즘'에까지 이르는 전반적인 작업에 관여한 것이다. 그러나 사이드는 권력에 관한 미셸 푸코의 작업, 특히 지정된 자리이자 당연히 예상되는 자리에 머물지 않는 권력 곧 분산되고 모세관처럼 퍼져 존재하는 권력 형태에 관한 작업에 헤게모니를 문제가 많은 방식으로 연결시켰다. 이 연결 고리 곧 분산된 권력과 위협받는 헤게모니의 관계는 볼 수 있지만,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다. 장폴 사르트르의 제자이자 정치 활동가이긴 했지만 말이다. 헤게모니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다른 범주들 곧 계급, 계급 갈등, 정치경제학의 중요한 구실 같은 것들이 결여됐고, 이는 헤게모니 개념이 의미를 확보하는 개념적 맥락에서 떨어져나와 고아처럼 떠돌게 되는 것을 뜻했다. 이렇게 식민주의이후(탈식민주의) 이론에서 마르크스의 유산이 희석되는 첫번째 작업이 이뤄졌다.

In the period of colonialism, such hegemony involved wholesale ideological work, ranging from racial theory, through military action and the production of belief in the superiority of the imperial centre to Said's well-known 'orientalism' (Said 1978). But Said linked this in problematic fashion to Michel Foucault's work on power, specifically the dispersed, capillary forms of power that never reside in the named and expected seats of power. One can see the connection - dispersed power and a threatened hegemony - but Foucault was not a Marxist, despite being a student of Jean-Paul Sartre and a political activist. The absence of other categories crucial to hegemony - such as class, class conflict, and the central role of political economies - meant that the notion of hegemony was orphaned, drifting away from the conceptual context in which it made sense. Thus, the first step in watering down the Marxist heritage in postcolonial theory was made.

 

 

(169쪽에서 170쪽까지)

 

가야트리 스피박이 비록 마르크스주의가 자신의 이론적, 정치적 위치의 일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름 아니라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1976) 번역 작업 그리고 특히 스피박이 쓴 길고 어려운 이 번역본 서문이야말로 식민주의이후(탈식민주의) 이론으로 형성되는 복합물에 해체(주의)를 주입하는 구실을 했다. 이에 뒤 이어 스피박의 [다른 세상에서](1988)이 등장하면서, 데리다식 해체론이 사이드를 거쳐서 들어온 그람시 및 푸코와 나란히, 새로운 접근법을 벼려내기 원하는 비평가들이 취할 수 있는 이론적 맥락의 하나로 더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해체와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여성주의를 결합시키려는 스피박의 시도를 잠깐 진지하게 따져보자면, 데리다식의 마르크스는 실로 이상한 마르크스다. 데리다의 책 [마르크스의 유령들](1994)이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듯이, 이 마르크스는 중도좌파에서 약간 왼쪽으로 기운 자유주의자와 더 흡사해 보인다.

Even though Gayatri Spivak claims Marxism as part of her own theoretical and political position, it was her translation of Derrida's Of Grammatology (1976) and especially the long and difficult introduction that she wrote, which brought decontruction into the mix of what was becoming postcolonial theory. The subsequent appearance of her In Other Worlds (1988) reinforced the prominence of Derridean deconstruction, along with Gramsci and Foucault via Said, as one of the theoretical strands available for critics wanting to forge a new approach. But a Derridean Marx - taking for a moment Spivak's effort to combine deconstruction, Marxism, and feminism seriously - is a strange Marx indeed, looking more like a slightly left-of-centre liberal, as Derrida's own Specters of Marx (1994) showed only too well.

 

마르크스를 식민주의이후(탈식민주의) 이론에서 추방하는 마지막 단계는 호미 바바의 작업, 특히 그의 책 [문화의 위치](1994)와 함께 왔다. 이 책은 라캉의 정신분석을 마르크스주의를 탈색시킨 바흐친과 함께 식민주의 관련 글들을 읽는 데, 곧 인도에서의 성경 읽기부터 이빨 빠진 프란츠 파농 읽기까지의 다양한 독해에 도입했다. 비록 바바가 많은 식민주의이후론(탈식민주의론)자들의 본보기가 됐지만, 바바의 돌고 돌리는, 특이한 양식과 라캉 오독이 라캉으로 하여금 제 자신을 배반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한 것인지, 또는 바바가 (라캉과) 다른 길들을 다루고 있는 건지 결코 확신할 수 없다. 맨처음 바바에게 매혹됐던 급진주의 비평가들 가운데 적어도 한명 이상이 경악하면서 깨닫게 됐듯이, 바바는 확고한 부르주아 작가다. 그에겐 자유주의가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이념적 위치인 것이다. (이 시기 이후 그의 예술 및 문학 비평을 보라.) 그럼에도, 바바와 함께 라캉식 정신분석과 바흐친의 변증법적 독해 전략은 식민주의이후(탈식민주의) 이론의 모순적인 잡종물을 이루는 한 부분이 됐고, 이제 헤게모니 및 해체론과 함께 흉내내기, 잡종성, 경계 넘기 같은 용어들이 식민주의적 마주침의 글들을 재해석하는 열쇠들이 됐다.

The final step in the banishment of Marx from postcolonial theory came with Homi Bhabha's work, especially The Location of Culture (1994), which introduced Lacanian psychoanalysis along with a demarxified Bakhtin into the reading of colonial texts that range from the Bible in India to a de-fanged Frantz Fanon. Although he has become a model for so many postcolonial critics, one is never sure whether the looping and idiosyncratic style and the misreadings of Lacan all designed to turn Lacan against himself, or whether Bhabha is covering other tracks. As more than one radical critic first mesmerized by Bhabha has found out to her or his dismay, Bhabha is a solid bourgeois writer for whom liberalism is the only possible ideological position (witness his later art and literary criticism). Yet, with Bhabha, Lacanian psychoanalysis and Bakhtin's dialogic reading strategy became part of the contradictory hybrid of postcolonial theory, and now, along with hegemony and deconstruction, terms such as mimicry, hybridity, and border crossing become the keys to reinterpreting the texts of colonial encounters.

 

 

번역: 신기섭

2008/03/26 07:55 2008/03/26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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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라는 대중적인 현상

지난주 화요일(3월18일) 내가 다니는 영국 리즈대학에서 슬라보예 지젝의 강연회가 열렸다.(지젝이 누군지 모르는 이들은 알라딘 같은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저자 소개 검색해보면 충분할 것이다. '먹물들의 연예인'이라고 할 철학박사다.)

 

나는 지젝이 무슨 소리를 떠드는지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내가 듣는 과목의 강사가 열심히 추진한 강연이라 참석했다. 부활절 휴가가 막 시작되어 학교가 한산한 편인데, 강연에는 500명이 훨씬 넘는 이들이 몰렸다. 청중은 20대의 젊은 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교수까지 다양했다. 지젝의 인기를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강연회장 입구에 학생회가 설치한 지젝 책 판매대 바로 옆에 '사회주의노동자당'(영국의 국제사회주의자들이다. 한국의 다함께가 이들과 아마 자매단체쯤 될 것이다.)이 책 판매대를 설치했다는 점이다. 지젝도 여기서는 '급진 좌파' 계열에 드는 듯 하다.

 

먼저 지젝의 강연회 모습 따위를 찍어 편집한 영상이 상영됐다. 지젝이 알몸으로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서 철학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대목도 나온다. (참 안쓰럽다. 이렇게까지 해야 먹고 사는가.) 아주 재미있는 영상이었다. 지젝은 코미디언으로 나서도 될 듯 하다.

 

오후 6시쯤 지젝이 직접 등장해서 거의 두시간쯤 말을 했다. 우선 이 연예인, 사람 혼을 빼놓는 데 특기가 있다. 말을 하면서 거의 1분에 한번 꼴로 자기 코를 만진다. 또 약 3-4분에 한번 꼴로 옷을 만진다. 게다가 영어 발음은 죽음이다. 나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정말 고역이다. (예컨대 '폼(form)'을 '포름'이라고 발음한다.) 정신이 사나워서 집중이 안된다. 게다가 이 사람 정말 수다쟁이다. 딱히 표현하기 어렵지만, 말을 참 수다스럽게 한다. 그리고 사용하는 영어 단어는 꽤 한정되어 있다. 영어가 외국어니 어쩔 수 없다. 덕분에 나같은 사람도 금방 적응이 됐다.

 

이 강연에서 내가 느낀 것은, 이 사람이 라캉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마르크스 팔아먹기, 재미있는 농담으로 청중 웃기기, 영화 이야기로 흥미 유발하기를 적절히 결합해서 자신의 무기로 삼는다는 것이다.

 

먼저 마르크스 팔아먹기다. "내가 너무 나이브하게 마르크스주의자로 말하는 것 같죠", "나는 프로이드-마르크스주의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따위의 주장으로 자신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가깝다는 걸 암시한다. "모든 포스트주의는 이론이 아니라 언론의 이름 붙이기에 불과하다" 따위의 주장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거리를 두는 것도 '정통 마르크스주의자' 이미지 형성 효과를 발휘한다.

 

급진적이고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가깝지만 고루하거나 꽉 막히지 않은 좌파, 그러면서도 '불온하거나 과격하지 않은 좌파' 이것이야말로 지젝의 판촉 핵심이고, 지젝이라는 '서양 먹물들의 대중적인 열기'의 본질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른바 포스트주의자들이 결정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다. (이제 누가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을 좌파라고 하는가!)

 

강연은 미합중국의 이라크, 이란 정책 비판으로 시작해서(별 내용은 없다. 그저 흔한 이야기다.), 역시 영화 이야기로 이어진다. 1988년 존 카펜터가 감독한 미합중국 영화 '데이 라이브(They live)'를 언급했다. 이 영화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가난한 노동자 이야기다. 어떤 색안경을 쓰면 미합중국 자본주의의 본질이 보인다는 내용이다. 색안경을 쓰는 순간, 거리의 화려한 광고판에 '복종하라'는 메시지가 보인다는 것이다. 지젝은 이를 두고 "전통적으로 철학은 눈을 가리는 막을 벗어야 진실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안경을 써야 진짜 자본주의 이념이 보인다고 말한다"고 논평했다. (카펜터 감독이 심오한 생각에서 이렇게 만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로스앤젤레스의 거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안경을 벗으면 세상의 진실이 보인다는 걸 표현하기는 곤란하다. 이런 난점을 극복하려고 살짝 비틀어서 우연히 얻은 색안경을 쓰니 진실이 보인다고 한 게 아니겠는가? 여기에 무슨 대단한 진실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조금 우스꽝스럽다. 이미 이 세상은 자본주의 이념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안경을 쓴다는 행위는 존재 조건인 자본주의 이념을 벗어버리고 '진짜 맨 눈'으로 보는 것의 영화적 장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어서 자신이 최근에 쓴 책 '폭력'에 대해 약간 언급했다. 주장의 핵심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올바름' 또는 '관용'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것', '서로 거리를 두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상대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고 떠드는 것, 그것이 진짜 폭력이라는 이야기다. 밑바닥의 인종 차별적 인식을 감추는 은폐 도구로서 '관용', '포용' 대신 솔직하게 서로 다르다는 걸,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자는 이야기다. 다만 이 거리두기는 브레히트가 말한 소격화의 의미에서 거리두기라고 한다. (이 부분은 약간 흥미있다. 다만 '정치적 올바름'에 지치다 못해 진저리를 치는 '1990년대 서양 사회'라는 아주 특정 시기, 특정한 맥락에서만 그렇다. 아직도 생짜배기 '폭력'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 그리고 생짜배기 폭력이 '테러리즘'이라는 초강력 무기를 들고 다시 등장하고 있는 요즘의 미합중국과 유럽 사회에서는 턱도 없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시효가 끝났다. 지젝은 너무 늦게 깨달음을 얻은 듯 하다. 아니면 요즘 미합중국이, 영국이 어떤지, 서유럽이 어떤지 진짜 따져들어가는 건 '너무 불온'하기 때문일까?)

 

이어서 지젝은 프랑스 학자 카트린 말라부(Catherine Malabou)를 언급했다. (이 학자는 지젝이 비판하는 자크 데리다의 제자이고, '헤겔의 미래'라는 책을 썼다. '말라부는 데리다의 후속판이다'는 말까지 나온다는 것 같다.) 솔직히 지젝이 말라부에 대해서 한 말은 잘 모르겠다. 말라부에 대해 내가 아는 게 없어서 그렇다. 그저 말라부의 분석이 일리가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는 정도다. 강연을 들을 때는 대강 어느 부분을 비판하는지 감을 잡는 정도였는데, 메모를 해둔 것도 없고 지금은 기억이 전혀 없다. 지젝이 데리다와 '각을 세우려고'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라부를 언급하는 맥락을 짐작할 수 있다. 말라부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다음의 인터뷰를 읽어보시라. 영어로 된 것이다. (말라부 인터뷰(pdf 파일))

 

마지막으로 지젝은 역시 마르크스를 '전유'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었다. 그는 마르크스에게 프롤레타리아트는 빼앗긴 존재이고, 다시 표현하면 '실체 또는 본질 없는 주체'(subject without substances)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세가지 프롤레타리아트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생태 측면에서 박탈당하는 존재, 두번째는 상징적으로 박탈당하는 존재, 세번째는 내적 의식 측면에서 박탈당하는 존재다. 한마디로 말해 21세기 인간의 조건은, 생태적으로 착취당하고, 상징적으로(권력과 미디어의 상징 조작 때문에) 착취당하고, 마침내 의식 내부 차원에서까지 착취당하는, 무산계급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더는 이대로 세상이 지속될 수 없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한데, 그게 뭔지는 나도 솔직하게 모른다." 그리고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반세계화주의자들의 행사인) 세계사회포럼의 일각이 주장하는 '작은 지역 공동체의 회복'은 해법이 아니다. 작은 공동체를 회복하기는 너무 늦었다. 보편적이고 큰 싸움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내가 공감한 딱 두가지 대목 가운데 하나다. 다른 한 대목은 "포스트주의는 이론이 아니라 언론의 이름 붙여주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마지막으로 지젝 숭배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지젝은 자신의 적수를 기껏 주디스 버틀러로 설정하고 있었다. (자기 입으로 '에니미(enemy)'라고 직접 말했다.) "어떤 좌파가 주디스 버틀러를 두려워하랴!"

2008/03/24 23:51 2008/03/2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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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