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식민주의이후론(탈식민주의론)의 이념적 배경을 재미있고 논쟁적이면서도 간략하게 요약한 글을 읽게 됐다. 이른바 포스트 이론들이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의 흔적을 어떻게 지워버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분석이어서 소개한다. 난삽하고 골치 아픈 내용들을 그냥 건너 뛰어서, 요약 정리만 하고 싶은 이들에게 딱 어울린다. (인도 출신의 학자로 유명세를 얻은 가야트리 스피박과 호미 바바를 은근히 비꼬는 부분에서는 웃음을 참기 어렵다. 스피박의 '길고 어려운' [그라마톨로지] 서문, 바바의 라캉 오독 따위를 언급하는 대목, 바바는 기껏 부르주아 작가일 뿐이라는 평가 따위가 그렇다.)
필자는 마르크스 이론으로 성경 분석을 시도하는 학자인 롤런드 보어(Roland Boer)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모나시 대학(Monash University)의 종교 및 신학 연구소(Centre for Studies in Religion and Theology)에 재직하고 있는 학자다. 출처는 2005년에 나온 책 [식민주의이후론(탈식민주의론)적 성경 비판: 학제적 교차점들]에 실린 보어의 글 '마르크스, 식민주의이후론(탈식민주의론), 그리고 성경'이다. (Boer, Roland. 2005. Marx, Postcolonialism, and the Bible. Stephen D. Moore and Fernando F. Segovia (eds). Postcolonial Biblical Criticism: Interdisciplinary intersections. London and New York: T&T Clark International, pp. 166-183.)
여기 소개하는 부분은 167쪽에서 168쪽 앞까지와 168쪽 일부, 169쪽 하반부부터 170쪽 앞부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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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쪽에서 168쪽까지)
여러가지 측면에서 명백한 것을 말하자면, 마르크스 그리고 이어서 레닌은 자신들이 식민주의, 제국주의라고 여러가지 이름으로 지칭한 것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먼저 제기했다. 마르크스가 이 길을 추적했다면 (자본주의가 살아 남으려면 유럽이라는 한계를 넘어 확장하고, 지금도 경제적 성공의 척도인 '성장'을 지속하고 계속 새로운 식민지를 점령해야만 했다는 지적.) 레닌은 자기가 살던 시점까지만 볼 때 가장 진전된 자본주의 최고 단계로서 제국주의 또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를 특히 집중 추적했다. 레닌의 관점에서 보면, 두번의 '세계 전쟁'은 모두 전세계 지배권을 다투는 유럽 제국주의 세력들의 분쟁, 전 지구에 걸쳐서 좀더 많은 땅을 점령하려는 경쟁이 절정에 이른 투쟁이었다. 레닌 이후, 식민주의를 포함한 제국주의적 팽창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고 비판하는 작업은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 이뤄졌다. 무어-길버트의 분류법을 따르자면, 식민주의 이후에 대한 초창기 비판을 이끈 핵심 인물들, 곧 프란츠 파농, W.E.B. 뒤 부아, C.L.R. 제임스 같은 인물들은 모두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식민주의 분석 외에, 그들의 작업에는 두가지 다른 중대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작가 자신들의 위치에서 문학과 기타 문화적 생산물들을 연구하는 작업과 정치에 뚜렷하게 개입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제임스는 크리켓이 식민주의 문화의 힘이자 동시에 반식민주의 문화의 힘으로 작용하는 데 대단히 관심이 많았을 뿐 아니라, 서인도제도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To state what is in many respects the obvious: Marx and then Lenin first developed a critical approach to what they variously called colonialism and imperialism. If Marx traced the way (capitalism for its very survival had to expand, to 'grow' - still very much the benchmark of economic success - beyond the confines of Europe and conquer ever new colonial spaces), Lenin, especially in Imperialism, or imperial capitalism, as the most advanced stage of capitalism up until that point. From a Leninist perspective, both 'World Wars' were conflicts between the European imperial powers, vying for global dominance, the struggle coming to a head in the competition for the conquest of ever more territories throughout the globe. After Lenin, the systematic theorization and critique of capitalist expansion, including colonialism, took place in the Marxist tradition. Key figures of earlier postcolonial criticism, following Moore-Gilbert’s classification, such as Frantz Fanon, W.E.B. Du Bois, and C.L.R. James, were all Marxist critics of colonialism. Apart from the analysis of colonialism, there were two other vital parts of their work: the study of literature and other cultural products from their own locations and a distinct level of political involvement. For instance, James was not only intensely interested in the role of cricket as both a colonial and anti-colonial cultural force, but he was also a central figure in the process towards independence in the West Indies.
내가 너무나 간략하고 두서없이 요약했지만 이런 역사를 생각할 때, 도대체 어떻게 식민주의이후(탈식민주의) 이론의 마르크스주의적 차원이 실종되고 말았을까?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다양한 핵심 측면들을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로부터 체계적으로 떼어내고 이어서 그 이론의 정치적 잠재력을 부정한, 동시 다발적인 변형 과정을 통해서 이 작업이 이뤄졌다. 이 과정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사용한 것에서 시작한다.
Given this history, which I have sketched far too briefly and haphazardly, how is it that the Marxist dimension of postcolonial theory has been lost? Through a simultaneous process of transformation that systematically detached various key aspects of Marxist theory from Marxism itself and then negated their political potential. The process began with Edward Said's use of Antonio Gramsci’s notion of hegemony.
(168쪽에서 169쪽까지)
식민주의 시대에, 이런 헤게모니는 이념 작업 전반에 관여했다. 곧 인종 이론부터 시작해서 군사 행동, 제국주의 중심지의 우월성을 믿는 신념의 창출을 거쳐, 사이드의 유명한 '오리엔탈리즘'에까지 이르는 전반적인 작업에 관여한 것이다. 그러나 사이드는 권력에 관한 미셸 푸코의 작업, 특히 지정된 자리이자 당연히 예상되는 자리에 머물지 않는 권력 곧 분산되고 모세관처럼 퍼져 존재하는 권력 형태에 관한 작업에 헤게모니를 문제가 많은 방식으로 연결시켰다. 이 연결 고리 곧 분산된 권력과 위협받는 헤게모니의 관계는 볼 수 있지만,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다. 장폴 사르트르의 제자이자 정치 활동가이긴 했지만 말이다. 헤게모니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다른 범주들 곧 계급, 계급 갈등, 정치경제학의 중요한 구실 같은 것들이 결여됐고, 이는 헤게모니 개념이 의미를 확보하는 개념적 맥락에서 떨어져나와 고아처럼 떠돌게 되는 것을 뜻했다. 이렇게 식민주의이후(탈식민주의) 이론에서 마르크스의 유산이 희석되는 첫번째 작업이 이뤄졌다.
In the period of colonialism, such hegemony involved wholesale ideological work, ranging from racial theory, through military action and the production of belief in the superiority of the imperial centre to Said's well-known 'orientalism' (Said 1978). But Said linked this in problematic fashion to Michel Foucault's work on power, specifically the dispersed, capillary forms of power that never reside in the named and expected seats of power. One can see the connection - dispersed power and a threatened hegemony - but Foucault was not a Marxist, despite being a student of Jean-Paul Sartre and a political activist. The absence of other categories crucial to hegemony - such as class, class conflict, and the central role of political economies - meant that the notion of hegemony was orphaned, drifting away from the conceptual context in which it made sense. Thus, the first step in watering down the Marxist heritage in postcolonial theory was made.
(169쪽에서 170쪽까지)
가야트리 스피박이 비록 마르크스주의가 자신의 이론적, 정치적 위치의 일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름 아니라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1976) 번역 작업 그리고 특히 스피박이 쓴 길고 어려운 이 번역본 서문이야말로 식민주의이후(탈식민주의) 이론으로 형성되는 복합물에 해체(주의)를 주입하는 구실을 했다. 이에 뒤 이어 스피박의 [다른 세상에서](1988)이 등장하면서, 데리다식 해체론이 사이드를 거쳐서 들어온 그람시 및 푸코와 나란히, 새로운 접근법을 벼려내기 원하는 비평가들이 취할 수 있는 이론적 맥락의 하나로 더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해체와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여성주의를 결합시키려는 스피박의 시도를 잠깐 진지하게 따져보자면, 데리다식의 마르크스는 실로 이상한 마르크스다. 데리다의 책 [마르크스의 유령들](1994)이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듯이, 이 마르크스는 중도좌파에서 약간 왼쪽으로 기운 자유주의자와 더 흡사해 보인다.
Even though Gayatri Spivak claims Marxism as part of her own theoretical and political position, it was her translation of Derrida's Of Grammatology (1976) and especially the long and difficult introduction that she wrote, which brought decontruction into the mix of what was becoming postcolonial theory. The subsequent appearance of her In Other Worlds (1988) reinforced the prominence of Derridean deconstruction, along with Gramsci and Foucault via Said, as one of the theoretical strands available for critics wanting to forge a new approach. But a Derridean Marx - taking for a moment Spivak's effort to combine deconstruction, Marxism, and feminism seriously - is a strange Marx indeed, looking more like a slightly left-of-centre liberal, as Derrida's own Specters of Marx (1994) showed only too well.
마르크스를 식민주의이후(탈식민주의) 이론에서 추방하는 마지막 단계는 호미 바바의 작업, 특히 그의 책 [문화의 위치](1994)와 함께 왔다. 이 책은 라캉의 정신분석을 마르크스주의를 탈색시킨 바흐친과 함께 식민주의 관련 글들을 읽는 데, 곧 인도에서의 성경 읽기부터 이빨 빠진 프란츠 파농 읽기까지의 다양한 독해에 도입했다. 비록 바바가 많은 식민주의이후론(탈식민주의론)자들의 본보기가 됐지만, 바바의 돌고 돌리는, 특이한 양식과 라캉 오독이 라캉으로 하여금 제 자신을 배반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한 것인지, 또는 바바가 (라캉과) 다른 길들을 다루고 있는 건지 결코 확신할 수 없다. 맨처음 바바에게 매혹됐던 급진주의 비평가들 가운데 적어도 한명 이상이 경악하면서 깨닫게 됐듯이, 바바는 확고한 부르주아 작가다. 그에겐 자유주의가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이념적 위치인 것이다. (이 시기 이후 그의 예술 및 문학 비평을 보라.) 그럼에도, 바바와 함께 라캉식 정신분석과 바흐친의 변증법적 독해 전략은 식민주의이후(탈식민주의) 이론의 모순적인 잡종물을 이루는 한 부분이 됐고, 이제 헤게모니 및 해체론과 함께 흉내내기, 잡종성, 경계 넘기 같은 용어들이 식민주의적 마주침의 글들을 재해석하는 열쇠들이 됐다.
The final step in the banishment of Marx from postcolonial theory came with Homi Bhabha's work, especially The Location of Culture (1994), which introduced Lacanian psychoanalysis along with a demarxified Bakhtin into the reading of colonial texts that range from the Bible in India to a de-fanged Frantz Fanon. Although he has become a model for so many postcolonial critics, one is never sure whether the looping and idiosyncratic style and the misreadings of Lacan all designed to turn Lacan against himself, or whether Bhabha is covering other tracks. As more than one radical critic first mesmerized by Bhabha has found out to her or his dismay, Bhabha is a solid bourgeois writer for whom liberalism is the only possible ideological position (witness his later art and literary criticism). Yet, with Bhabha, Lacanian psychoanalysis and Bakhtin's dialogic reading strategy became part of the contradictory hybrid of postcolonial theory, and now, along with hegemony and deconstruction, terms such as mimicry, hybridity, and border crossing become the keys to reinterpreting the texts of colonial encounters.
번역: 신기섭
의지도 능력도 관심도 없다는 점에서 저들은 사이코패스와 동질의 심리를 가진 인간들입니다. 사실 4.19도 진보 이념보다는 생활상 정서-못살겠다 엎고 보자는 데서- 시작된 운동이었습니다. 이번에 이것을 정치적 승리로 가져갈 핵은 강기갑 같은 분인데 마침 시위 현장에 계셨다 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글 잘 읽었습니다.
어제 광화문에 다녀왔는데, 이 괴생물체같은 무리들이 어떻게 진화해나가게 될지 궁금해졌드랬습니다. 사건이 터지긴 했는데... 하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드랬는데, 님 글을 보니 시원하네요.
많은 부분 동의하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대통령이 이엠비가 아니었으면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대통령이 범노무현계 사람 중 하나 였다면 비슷한 일들이 있었을 경우 양상은 매우 달랐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외국에 있어서 더욱 이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한국이 어떤 임계점에 이른 것이 아닌가 참으로 걱정됩니다.
그리고 독자님, 제 생각을 조금만 부연하자면 이런 겁니다.
이엠비가 아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 거라는 제 말은, 이엠비는 '이젠 개혁도, 남북 교류도 다 일단 제쳐두고 먹고 사는 게 조금 나아지면 좋겠다'는 많은 이들의 바람이 투사되어 집약된 존재라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기대를 배반하니 반감은 더욱 크다는 거구요. 만약 범노무현계가 대통령이 됐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만사 제쳐놓고 먹고 살기'로만 집약된 인물은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이 정도의 배신감은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또 따라서 양상도 전혀 달랐겠죠. 한마디로 이엠비는 요즘 한국 사회의 가장 절박한 요구(먹고 살기 좀 편해지기)가 투사된 집약체이어서 대통령까지 됐는데, 바로 이 점이 그의 발목을 아주 심각하게 잡는 거죠.
그런데 이 괴리감을 기득권층은 전혀 이해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무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가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상당수는 노무현과 그로 대표되는 세력이 싫어서 마구 씹었을 뿐이죠) 한국 대다수가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고 그 때문에 얼마나 큰 불안감과 상처에 시달리는지 저들은 상상도 못합니다. 제가 '한국 사회의 내파'를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아무튼 여러분 모두 촛불집회 열심히 나가셔서 '새로운 길거리 참여 정치'를 실현하시길...
네. 설명 감사드립니다. 저는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안티MB 내지는 안티 한나라로 몰고가려는 친노무현 세력이 지금의 흐름에 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치공세적 측면도 분명히 있구요.
marishin 님과 논쟁을 하려는 건 아니고 그런 측면도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에선 노동당이 참패했다던데 시간 날 때 영국의 정치 환경에 관해 글을 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하시는 일 좋은 성과를 거두시길,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저랑 현 정국에 대한 생각이 여러 부분 겹치는 글이라 반갑네요. 다만 저는 표현할 재주가 없고 marishin님은 그 재주가 있는 것의 차이겠네요. ^^;(묻어가는 foog)
한동안 글이 없으시다 했는데, 좋은 글이 올라왔군요. 잘 보았습니다.
공부하기 싫은애들이 태반인듯...물론 공부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행복하게 살수있는 세상이어야하죠. 쇠고기값낮추고, 한우농가 살리고, 쇠고기값 낮춰야 하는게 현실입니다
독자/ 독자님과 논쟁을 하려는 건 아니고 그런 측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_- 촛불시위에서 배포되는 피켓에 찍힌 단체 로고 가지고 조중동따위에서 배후세력이니 어쩌니 시비걸까봐 오늘 사람들 로고만 찢어버렸습니다. 뭘 보시는겁니까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