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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비평의 진정한 의의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게 하나 있다면, 번역 비평을 대중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라딘의 ‘서재'를 통해서 수많은 엉터리 번역들이 폭로되고 비판받았다. 그래서 이제 적어도 인문학 또는 철학 서적을 번역하는 번역자들은 ‘수준 높은' 알라딘 비평가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큰코 다치게 된다. (나는 이른바 ‘사회과학' 분야를 번역하기 때문에 예외다. ‘사회과학서'는 ‘번역 비평가'들의 주요 관심 영역이 아니다!!!) 이 현상은 일단 긍정적이다. 엉터리 번역서로 골탕을 먹은 독자들의 통쾌한 반격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돼먹지 못한 번역서 때문에 독자들이 당한 게 얼마인가? 번역자들은 아직 더 당해도 싸다.

 

그런데 최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 번역자가 자신의 번역서를 ‘비판'(또는 ‘비난'?)한 알라딘 이용자 몇몇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이 일에 대한 첫번째 반응은 어이없다는 것이리라. 나 또한 그렇다. 나는 독자라기보다는 번역자로 분류되는 사람이지만, “명예훼손이라니... 참으로 딱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조금 더 생각해볼 여지를 제공해주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번역 비평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먼저 번역자의 심정을 생각해보자. 이 번역자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번역서가 두번째 작업이다. 그리고 그는 ‘전문 번역자'의 길을 선택했다. 어쩌면 이 번역자는 “이제 내 번역자로서의 생명은 끝인가?”라는 심정으로 고소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을지 모른다. 이런 번역자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같은 ‘번역자’여서 번역자를 편드는 게 아니다. 같은 ‘번역자'여서 번역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허약하고, 욕만 먹는 자리인지 알기 때문에, 고소라는 행위는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그 심정만큼은 알 것도 같다.

 

물론 사태가 이렇게 된 책임은 먼저 번역자에게 있다. 하지만 한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번역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에 비하면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은 누워서 떡먹기 같은 일이다. 나는 얼마전에 ‘민주주의 벼리기'라는 책 일부분의 번역을 검토해서 결과를 이 블로그에 적었다. 어떤 이들은 아주 공들인 작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작업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이 분량을 번역했다면 대략 10-20배의 시간을 들였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번역 비평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번역 비평은 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비난'이나 ‘헐뜯기'가 아니라 ‘비평'이려면 한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택광 교수가 잘 지적했다.

 

우리가 만년 이론수입국의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인문학자들끼리 '연대의식'부터 먼저 길러야할 것 같다. 좀 틀렸다고 해서 잡아먹을 듯이 덤빌 이유도 없고, 그 틀린 걸 누가 폭로했다고 해서 발끈할 이유도 없다. 서로 틀렸다면, 인문학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힘을 모아 조금씩 수정해가는 게 올바른 길이다. (출처: 이론수입국의 징후)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한다. 내가 진짜 문제삼고 싶은 것은 번역자와 번역 비평자의 불균형 현상이다. 번역자는 날로 줄어드는 와중에, 번역 비평자는 (아마추어건, 프로건) 많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오역 지적은 책 판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 오역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을 보고, 대부분의 독자가 취할 행동은 딱 한가지다. 책을 사지 않는 것이다. 이미 수없이 당한 경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번역 비평이 책 구매를 부추기기는 어렵지만 책 구매를 억제하는 건 아주 쉽다.

 

그래서 인문학 서적 번역 비평자들은, 자신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인문학 책이 팔리지 않는 데 자신들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 자신들은 무관한 일이라고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인문학 책이 팔리지 않으면, 번역자에 대한 대우는 더 나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번역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일반인은 상상하지 못하겠기에 실례를 들어본다. 나는 대략 1년 정도 작업해서 ‘탈근대 군주론'이라는 책을 번역했다. 429쪽짜리 책이다. 그리고 번역료로 내 손에 쥐어진 돈은 대략 75만원이다. 이렇게 번역료가 적은 것은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정가의 몇퍼센트에 해당하는 액수를 팔린 만큼 받는 조건으로 계약하는, 이른바 ‘인세 계약'의 결과다. 이 경우는 조금 극단적이지만 다른 책들도 인세 계약의 경우 내가 받은 번역료는 기껏해야 150만원을 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 어느 바보가 번역을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남는 번역자는 딱 네가지 부류다. 첫번째는, 돈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자기가 좋아서 계속 번역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부류의 번역자로 남을 것이다.) 두번째는, 번역의 질보다는 번역의 양에 집중함으로써 가능하면 많은 책을 번역해서 일정한 수입을 올리는 ‘전문 번역가'들이다. (이들은 번역료와 판매량이 비례하는 ‘인세 계약' 대신 원고량에 따라 번역료를 받는 이른바 ‘매절'로 계약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보통은 나보다 더 많은 번역료를 확보한다. 어느 정도 인정받는 번역자는 원고지 한장당 3500원 정도의 원고료를 받을 수 있다. 웬만한 책 한권 번역하면 300만원-400만원쯤은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번째는 ‘어떤 실적'이 필요한 일부 ‘교수님'들이고, 네번째는 팔릴 책만 골라서 번역할 수 있는 ‘일류 번역자'들이다. 숫적인 면에서 보자면 ‘전문 번역가'가 압도적으로 많고, 나머지 세 부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 지금 상황 대로라면 한국 인문 출판계에는 결국 ‘전문 번역가'들만 남을 공산이 크다. 그리고 그들은 가능하면 많은 책을 번역해야 한다. 갈수록 책이 팔리지 않고 그래서 번역자 대우도 그만큼 더 나빠지면, ‘전문 번역가'들은 그에 따라 번역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그러니 번역 품질이 향상되기를 기대하는 건 헛된 꿈이다.

 

암울하지 않은가?

 

이것이 암울한 것은 먼저, 외국어를 할 줄 모르는 독자들이 외국의 지적 자산 또는 업적을 제대로 흡수하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만 ‘선진 학문’을 향유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그들은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쌓아갈 것이다.

 

이것이 암울한 두번째 이유는, 오역과 오역에 대한 불신의 상호 작용 속에 한국 인문 출판의 기반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와 무관하게, 불신 받는 책과 불신 하는 독자가 빚어내는 궁극의 결과는 번역서 판매 부진과 독자 감소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독자 대중이 외국의 지적 자산에서 소외당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번역은 조금 거창하게 말해 ‘지식의 민주화'에 기여한다. 이는,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진실이다.

 

그렇다면, 번역서 비평 능력이 있는 이들은 일정한 의무감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의무감을 강하게 느낀다면 직접 번역을 하라!!! 아니면 적어도 당신의 번역 비평이 한국의 번역 수준을 높이는 집단적인 작업에 기여하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번역서에 대한 독자의 불신을 조장하는 것을 넘어서서 좀더 나은 번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촉진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번역 비평의 의미가 아닌가?

 

여담 한가지를 적는다. 요즘 내가 수업을 듣는 과목의 영국인 강사는 보드리야르와 지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지난주 수업시간에 보드리야르 번역에 대해 재미있는 말을 했다. 프랑스 학자인 보드리야르의 책 가운데 하나를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 영어로 번역했는데, 도저히 읽을 수준이 못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어를 어느 정도 하는 이 강사는 프랑스어 원문과 영어 번역본을 비교해봤는데, 번역자가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했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강사, 한마디를 덧붙였다. “프랑스 학자들은 아주 독특해서 번역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프랑스 학자들의 책이라면, 영역본조차 너무 믿지말지어다.

2008/03/10 11:56 2008/03/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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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은행 국유화의 의미

영국 정부가 노던록(Northern Rock)이라는 은행을 국유화하겠다고 2008년 2월17일(일요일) 발표했다. 국유화라니... 국유화라고 말하면 우파는 경악하고 좌파는 흥분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과잉 반응이다. 노던록 문제는 이렇게 볼 사안이 아니다. 한마디로 투기자본의 시대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그 투기자본이 낳은 괴물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이고, 영국으로서는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이 국유화가 상징하는 것이 있다면, 적어도 영국의 지배계급 전반이 미합중국에서 시작된 현재의 금융 위기를 얼마나 심각하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유로 통화권은 그나마 미합중국의 한파로부터 조금 떨어져있지만, 영국은 그 찬바람을 직접 맨 몸으로 맞고 있는 나라다.

 

이 사태를 이해하려면 먼저 노던록이 어떤 금융기관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영국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을 파악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1. 노던록은 어떤 금융기관인가?

은행이라고 하니까 한국으로 말하면 제일은행이나 하나은행쯤 되는 걸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노던록은 이런 금융기관이 아니다. 비비시방송 웹사이트에 올려져있는 이 회사 관련 통계를 보면 뭔가 특이한 기관임을 알 수 있다.

 

예금자 100만명, 주택 담보 대출자 80만명, 주주 18만명, 직원 6천명.

 

국민이 6천만명인 나라에서 예금자는 고작 100만명이다. 게다가 대출자보다 20만명 많을 뿐이다. 직원도 6천명에 불과하다. 직원 규모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점이 몇곳 안된다. (2006년 연차보고서를 보면 모든 업무를 하는 일반 지점이 56곳, 주택 담보 대출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지점이 16곳이다.)

 

그럼 이 금융기관은 그냥 동네 마을금고처럼 군소 금융기관인가? 조금 큰 마을금고라고 할 수도 있는 뉴캐슬 인근의 '빌딩소사이어티'(building society, 주택금융조합)에서 출발한 것은 맞지만 하찮은 금융기관은 아니다.

 

차이는, 이 기관이 전통적인 은행과 다르게 아주 '위험한'(투기자본자들 눈에는 '혁신적인') 영업을 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주택 담보 대출 상위 금융기관들은 모두 예금을 유치해서 대출 자금을 마련하지만, 노던록은 다른 방식으로 영업을 해서 주택 담보 대출 기준으로 영국내 5위 안에 드는 기관으로 커졌다.

 

그 방식이란 비용이 많이 드는 예금 유치 같은 '산매'(소매) 방식 대신 금융시장에서 값싼 자금을 '도매'로 빌려다가 집을 사려는 개인들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금리가 싸고 여유 자금이 많을 때 이 방법은 정말 기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반 예금 같은 산매 자금은 전체 자금의 20% 수준밖에 안된다. (자금 흐름(flow) 기준으로 보면 2006년에 14%에 불과하다.) 게다가 신용 상태를 잘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줬다. 집값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문제가 없는 한, 더 빌려줄수록 이익이 나기 때문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러시앤캐시' 뭐 이런 식의 '돈놀이' 전문 기관이라고 할 수도 있을 지경이다.

이 회사가 한동안은 잘 나갔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합중국의 금융 위기 때문에 자금이 마르게 되자, 노던록은 순식간에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금융기관도 돈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대책이 없었다. 중앙은행에 손을 벌리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고, 정부는 즉각 자금을 투여했다. 이 금융기관은 지점이 몇곳 안되기 때문에 예금을 더 열심히 유치해서 구조를 바꾸는 것도 불가능한 기관이다. 금융시장이 얼어붙이니 ‘기발한 자금 조달 방식'은 이 회사를 아무 대책이 없는 골칫덩어리로 만들고 말았다.

 

2.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

노동당 정부가 국유화를 발표하자 대부분의 언론은 '늦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좌파에 해당하는 신문인 '인디펜던트'와 ‘가디언'은 물론이고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도 정부 손을 들어줬다. 보수당 지지 신문인 '데일리 텔레그라프'조차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머독이 주인인 '더타임스'만 '완벽하게 잘못된 일'이라고 광분하고 있다. (사실 요즘 이 신문은 옛날의 '더타임스'가 아니다. 별로 진지하게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판형조차 요즘은 선정적인 신문들과 같은 타블로이드다. 발행부수에서도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한참 못미친다.)

정치권에서는 노동당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으려는 보수당 혼자 난리를 친다. 자유민주당은 벌써 몇달전부터 국유화를 주장했다. 우파라고 할 자유민주당까지 국유화를 이야기할 정도면 이 문제는 우파-좌파간의 오랜 갈등인 '사유화'-'국유화' 논쟁과는 뭔가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3. 왜 국유화밖에 길이 없었을까?

영국 국가 차원에서 볼 때, 노던록의 파산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예금자 100만명도 문제지만, 주택 담보 대출 문제도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만약에 주택 담보 대출 5위권의 금융기관이 파산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얼어붙은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은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질 것이다. 동시에 금융 시장 전반도 심각하게 흔들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집값 거품이 엄청나고 금융이 대표 산업들 가운데 하나인 영국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 살리는 수밖에...

 

그런데 다른 기관이 인수하는 것도 그리 간단치는 않았다. 몇몇 기관이 협상을 했지만 워낙 헐값으로 넘기라고 한 것 같다. 사실 노던록을 적당한 값에 사들일 기관은 별로 없을 거라는 분석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금융기관의 영업 방식이 이제는 전혀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은행들처럼 지점을 늘리고 산매 금융을 확대할 수도 없다. 그러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갈 것이고, 이미 추락한 신용 때문에 효과도 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언론이 국유화를 비판하지 않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보수당이 난리치는 건 대중적 지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노동당 정부를 이 참에 무너뜨리자는 정치 공세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합중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미합중국처럼 온갖 투기적 금융 기법들이 판치는 나라인 영국에서는 이 방법이 아마도 최선일 것이다. 그리고 이건 은행 국유화라기보다는, 투기자본의 광기가 낳은 괴물 긴급 처리 문제라고 봐야 한다. 금융 기관의 사회적 책임 따위를 고려한 국유화, 이런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소리다.

 

다만 미합중국처럼 ‘국유화’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정치 문화를 지닌 나라와 좌파 정부의 역사가 있는 영국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 뿐일 것이다.

 

이 사태가 보여주는 진짜 징후는, 세계 금융 위기가 이제 정말 심각한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가 초유의 위기로 향해 가고 있다는 분석을 몇년전부터 계속 내놓고 있는 프랑스의 두뇌집단인 유럽정치예측연구소는 2월16일 미합중국 실물 경제가 2008년 9월께부터 붕괴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는 수준까지 예측 강도를 높였다. 예측은 예측일뿐이지만, 이제는 진지하게 검토해볼 가치가 있는 내용이다. 2월16일치 예측(영문)

2008/02/19 08:56 2008/02/1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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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 있는 번역자

유럽 좌파의 역사를 다룬 두툼한 책이 최근 한국어로 번역되어 꽤 관심을 끄는 것 같다. 제프 일리가 쓴 ‘민주주의 벼리기’(Forging democracy)다. (한국어판 제목은 이상하다. 아예 ‘The left 1848-2000’이라고 영어를 썼다. 원서 제목과도 다른 영어를 쓰다니, 나처럼 ‘번역'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는 기막힐 노릇이다.)

 

이 책이 내 관심을 특히 끈 것은, 분량이 자그마치 1000쪽을 넘는다는 사실이다. 처음 든 생각은 “번역자, 참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책을 번역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1000쪽 짜리 책 번역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내가 보통 번역하는 책이 번역본 기준으로 300에서 400쪽이다. 이 정도 분량도 번역하다보면,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앞 부분과 뒷 부분의 용어가 달라진다거나, 문체의 일관성이 깨진다거나 등등 여러가지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1000쪽이라니 오죽할까 싶다.

 

그래서 찾아보니 번역자가 유강은씨다. 이 사람은 두권짜리 두툼한 책인 ‘미국민중사’도 번역한 분이어서 이렇게 두꺼운 책을 번역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처음은 아니지만 여전히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내가 1990년대말 또는 2000년대초부터 막연한 ‘동지 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다. 국제 정세를 이 땅에 전한다는 ‘운동' 차원에서 번역 작업을 하던 것, 그리고 그러다가 책 번역을 시작하게 됐고, 요즘은 팔리지 않는 이른바 ‘사회과학' 서적 번역을 꾸준히 계속 한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 사람이다.(내 혼자 생각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연히 영어 원문 피디에프(pdf) 파일을 구하게 됐고 그래서 원본과 번역본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알라딘을 찾아보니, 36쪽이나 ‘미리보기'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비교해봤다.

 

아래는 검토 결과다. 이 작업은 전적으로 ‘동지적인'(?) 또는 ‘동업자’ 측면에서의 우호적인 검토다. 그리고 1000쪽 가운데 일부 검토 결과만 가지고 번역의 질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책은 꽤 팔리는 것 같으니, 내 검토 결과를 참고해서 보완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공개한다. (많은 경우 초판을 찍은 뒤에 잘못을 발견하더라도 수정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잘 팔리지 않아서 다시 인쇄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검토한 부분은 ‘서장: 유럽의 민주주의’와 1장의 일부에 해당하는 번역본 29쪽에서 64쪽까지다. 기준으로 삼은 원문은 2002년 초판의 pdf 판본이다. (덧붙임: 검토 결과로 제시한 '대안 번역'은 언뜻 봤을 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부분만 최소한도로 수정한 결과다. 만약 내 번역이라면 이와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내 문체나 번역의 방식이 이 번역자와는 많이 다르다.)

EM님과 이 책 번역자의 지적 등을 수용해서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1. 30쪽.

  1. 번역본: 이러한 권리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정의를 서서히 이동시키고 대중매체를 통해 점차 공적 영역을 활용한 여러 형태의 사회적 동원과 문화적 자기주장을 통해 달성되었다.
  2. 대안: ... 서서히 이동시키고 점점 더 대중 매체라는 매개를 통해 접하게 되는 공적 영역을 ...
  3. 영어 원문: These were achieved by various forms of social mobilization and cultural self-assertion that gradually shifted definitions of public and private and made use of an increasingly mass-mediated public sphere.
  4. 설명: mass-mediated는 대중 매체가 매개가 된다는 뜻이다. 곧 공적 영역을 시민들이 직접 접하는 대신 대중 매체가 전하는 모습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는 뜻이다. 날로 대중 매체의 비중이 커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대중 매체가 표현하는 모습이 일반 시민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2. 31쪽.

  1. 번역본: 민주주의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허락된’ 것이다.
  2. 대안: 민주주의는 ’주어진' 또는 ‘부여받은' 것이 아니다.
  3. 영어 원문: democracy is not “given” or “granted.”
  4. 설명: 원문을 보면, granted는 given을 다시 표현한 것이다. 본문 바로 다음에 conflict가 나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는 투쟁을 통해, 갈등을 통해 쟁취하는 것이다. 번역자의 실수로 생각된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3. 34쪽.

  1. 번역본: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에서 개혁운동이 억압당한 뒤, 지배적인 공산주의는 마침내 진보의 대행자로서 남아 있던 신뢰를 모두 잃어버렸다.
  2. 대안: ... 집권 공산주의는 ...
  3. 영어 원문: governing Communisms
  4. 설명: 여기서는 동유럽의 집권 세력을 뜻하는 듯 하다. 바로 이어지는 문장이 ‘서유럽 공산당들이 소련 모델을 공공연하게 비판하는 독자적인 정치 경로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번역자가 바로 밑부분에서는 ‘governing Socialists’를 ‘집권 사회당들’이라고 번역했는데, Communists가 아니라 Communisms이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집권이라고 하는 게 적당해 보인다.
  5. 대안에 대한 자심감: 중간 이상.

4. 34쪽.

  1. 번역본: 유로코뮤니스트들은 이런 결과로부터 단호한 결론을 이끌어내고는 공산주의의 정체성을 모조리 털어버리기 시작했다.
  2. 대안: 결연하게 마음 먹은 유로코뮤니스트들은 (진로에 대해) 결론을 짓고서는 공산주의의 정체성을...
  3. 영어 원문: Determined Eurocommunists drew their conclusions and began shedding their Communist identities altogether.
  4. 설명: 영어 원문 구조에서는 번역본 같은 번역이 나올 수 없다. determined는 Eurocommunists를 수식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5. 35쪽.

  1. 번역본: 그러나 이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어 앞서 조정된 기둥들 - 케인즈주의 경제학, 폭넓은 복지국가와 확장되는 공공부문, 코포라티즘과 강력한 노동조합 등 -
  2. 대안: 그러나 이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어 앞서의 타협을 떠받치던 기둥들 곧 케인즈주의 경제학...
  3. 영어 원문: But in this new period, the pillars of that earlier arrangement - Keynesian economics, comprehensive welfare states and expanding public sectors, corporatism and strong trade unions
  4. 설명: arrangement를 ‘조정된'으로 번역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전후 번영의 시기에 이뤄진 타협(바로 앞 문장에 ‘자본주의적 축적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도 완전고용, 실질임금 상승, 관대한 복지국가 등과 같은 사회민주주의의 목표들이 확보된 바 있었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이라고 봐야 한다. arrangement는 배열, 배치가 첫번째 뜻이며 이렇게 봐도 큰 무리는 없지만, ‘타협'이 더 맥락을 분명히 보여주는 듯 하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6. 뒤늦게 덧붙임: '타협' 대신 번역자가 쓴 '조정'이라는 단어를 써서 '앞서의 조정을 떠받치던 기둥들'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사실 '타협'은 조금 강한 번역이다.

6. 35쪽.

  1. 번역본: 여기에는 나치즘의 패배라는 가혹한 시련 속에서 벼려진 1943-49년의 범유럽 차원의 반파시즘 대중 합의가
  2. 대안: 여기에는 나치즘의 패배라는 (격변의) 도가니 속에서...
  3. 영어 원문: Here the pan-European antifascist popular consensus of 1943–49, itself forged in the crucible of the defeat of Nazism,
  4. 설명: ‘in the crucible of’는 가혹한 시련 속에서라는 뜻의 숙어이지만 여기의 문맥에는 맞지 않는다. 반파시즘 세력에게 나치즘의 패배가 ‘가혹한 시련'일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니 crucible의 첫번째 뜻 곧 쇳물을 녹이는 도가니로 보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중간 정도.

7. 35쪽.

  1. 번역본: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국가 차원과 대중문화의 관용 모두에서 정당성을 누리는 매우 확고한 것이었음이
  2. 대안: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국가 차원의 정당성과 대중문화 속에 널리 퍼져있는 상태를 동시에 확보한, 매우 ...
  3. 영어 원문: this societal consensus proved extremely robust, enjoying both legitimacy at the level of the state and breadth in popular culture.
  4. 설명: breadth를 마땅한 말로 번역하기가 어렵다. 다만 both에 걸리는 것은 legitimacy and breadth로 봐야 마땅해보인다. 사회적 합의가 정부 차원의 정당성뿐 아니라 대중들 속에 널리 퍼져있었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중간 수준.

8. 38쪽.

  1. 번역본: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낳은, 노동계급의 남성성이라는 강하게 젠더화된 이상을 둘러싼 사회주의 정치의 모순이 이러한 결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2. 대안: ... 노동계급의 남성성이라는 강하게 젠더화한 이상 주변으로 축소된 사회주의 정치의 협소함(축소 지향성)이 ...
  3. 영어 원문: The contraction of socialist politics around strongly gendered ideals of working-class masculinity, with discriminatory and exclusionary consequences for women, was the most important of these effects.
  4. 설명: 내가 기준으로 삼은 pdf가 맞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contraction을 contradiction으로 착각한 단순 실수로 생각된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중간 이상.
  6. 뒤늦게 덧붙임: EM님의 지적을 수용해 번역 약간 수정함.

9. 39쪽.

  1. 번역본: 노동운동은 거대한 민주적 성과를 산업화의 공으로 돌리기도 했다.
  2. 대안: ... 민주적 성과를 자신들의 공으로 돌리기도 ...
  3. 영어 원문: those movements also chalked up huge democratic achievements to their credit.
  4. 설명: 영어 원문의 ‘their’를 볼 때, 이는 단수인 ‘산업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인 ‘those movements’를 지칭하는 걸로 봐야 한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노동운동이 민주적 성과를 산업화 덕분이라고 말할 리가 없다. 자신들의 투쟁의 결과라고 볼 게 뻔하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6. 뒤늦게 덧붙임: 번역자와 댓글을 주고 받은 결과, '자신들의 공으로'인지 '산업화의 공으로'인지는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됨.

10. 40쪽.

  1. 번역본: 이 책에서 나는 다시금 불러내서 정당한 평가를 제시해 마땅한 사회주의의 역사를 다루고자 한다.
  2. 대안: 이것이 바로 되찾아 정당하게 평가해야 마땅한 사회주의의 역사다.
  3. 영어 원문: This is the history of socialism that needs to be recovered and given its due.
  4. 설명: 먼저 이런 식의 이른바 ‘의역'은 옳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일종의 ‘왜곡’이다. 그리고 바로 앞 문장(186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두 정당은 광범위한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끄는 활발한 중심을 형성했다.)을 생각할 때 번역문의 뉘앙스도 본문과 거리가 있다. 원문은 앞 문장의 내용이 바로 사회주의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번역문은 바로 앞 문장과의 연결 고리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11. 41쪽.

  1. 번역본: 그러나 사회주의가 좌파에서 가졌던 중요성이 이제는 그것을 가능케 한 조건들이 해소되어버린 사회역사와 정치형태의 강력한 연계 속에 자리매김될 수 있다면,
  2. 대안: 그러나 사회주의가 좌파에서 가졌던 중요성이 이 특정한 시기에, 이제는 그것을 ...
  3. 영어 원문: But if socialism’s importance for the Left can be located in this particular period, in a powerful nexus of social histories and political forms whose possible conditions had dissolved
  4. 설명: 원문의 ‘in this particular period’를 빼먹고 번역했다. 앞 문장을 보면 이 시기는 ‘1860-1960년’이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12. 41쪽.

  1. 번역본: 민주주의를 한층 더 확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대안: 민주주의를 한층 더 확대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3. 영어 원문: How can further extensions of democracy take place?
  4. 설명: 뉘앙스가 다르다.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방법이 뭐냐고 묻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만들어온(forge, 벼려온) 사회주의가 철 지난 것이라면 곧 1860-1960년대라는 특정한 시기에 한정된 문제라면 사회주의가 사라진 현재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확장이 가능하지 않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13. 47쪽.

  1. 번역본: 사우스런던에 있는 사설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말았다. 블랜드퍼드 박사의 설명에
  2. 대안: ... 집어넣고 말았다. 그녀가 항의했음에도 병원 담당자는 정식으로 그녀를 입원시켰다. 블랜드퍼드 박사의 ...
  3. 영어 원문: delivered her to a South London private asylum. Despite her protests, the medical officer duly admitted her. The goal was
  4. 설명: 한 문장을 빼먹고 번역했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6. 뒤늦게 덧붙임: 번역자와 댓글을 주고받은 결과, '정식으로' 보다는 '아니나 다를까'가 적당해보임.

14. 51쪽.

  1. 번역본: 급진파는 의장 자리에서 볼 때 의회 왼쪽에 자리잡아 오른쪽에 자리잡은 보수파와 마주보았다. 이런 자리 배치가 뚜렷해지면서, ‘왼쪽', 즉 ‘좌파'는 ...
  2. 대안: ... 이런 자리 배치가 뚜렷하게 보여주듯이, ‘왼쪽', ...
  3. 영어 원문: As this alignment clarified
  4. 설명: 원문은 be 동사가 생략된 수동태로 보기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중간 수준.
  6. 뒤늦게 덧붙임: 번역자의 설명을 들으니 원래 번역문이 수긍이 됨.

15. 53쪽.

  1. 번역본: 온정주의적인 정부에 의해, 그렇지 않으면 독립 생산자들의 자치 단위 사이의 교환 연합이나 합동조합이라는 급진적인 미래상을 통해 가능할 터였다.
  2. 대안: 온정주의적인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
  3. 영어 원문: if not by a paternalist government then via
  4. 설명: if not ... then의 구조로 봐서 만약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면 교환 연합이나 합동조합을 통해서 ‘소규모 생산이라는 전통적 형식을 보호하고 복구’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뜻으로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중간 이상.

16. 54쪽.

  1. 번역본: 그러나 이런 급진 민주주의가 1848년에 정점에 다다랐을 때도 그 토대는 손상되지 않고 있었다.
  2. 대안: 정점에 다다랐을 때 이미 그 토대는 손상되어가고 있었다.
  3. 영어 원문: Yet even as this radical democracy reached its climax in 1848, its bases were being undermined.
  4. 설명: 단순한 착각으로 보인다. were being이 아니라 weren’t being으로 본 듯 하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17. 56쪽.

  1. 번역본: 남부와 동부의 주변부에서는 훨씬 뒤의 시기까지 이어진다. 사회주의 정치인들이 이전의 민주적 전통에 빚진 것은 무엇이고 이런 전통이 더는 제공할 수 없는 것이
  2. 대안: 이어진다. 이 더 오래된 급진적 유산은 1917-1918년에 와서야 마침내 버려지는데, 이 작업은 18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극적인 정화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인들이 ...
  3. 영어 원문: That older radical heritage was only finally left behind after 1917–18 via processes of dramatic clarification going back to the 1890s.
  4. 설명: ‘이어진다.'와 ‘사회주의 정치인들이' 사이에 있는 위의 한 문장을 빼먹고 번역했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18. 58쪽.

  1. 번역본: 민주주의 경제학은 19세기 전반기 내내 좌파가 일관되게 몰두하는 분야가 되었다.
  2. 대안: ... 19세기 후반기 내내 ...
  3. 영어 원문: The economics of democracy became the Left’s insistent preoccupation in the second half of the nineteenth century.
  4. 설명: ‘second half’를 ’first half’로 본 단순 착각이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19. 59쪽.

  1. 번역본: 19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에
  2. 대안: 19세기의 마지막 33년 동안에
  3. 영어 원문: By the last third of the nineteenth century
  4. 설명: 이런 표현은 번역하기 참 까다롭다. 번역서의 다른 대목에서는 ‘last third’를 그냥 ’말기’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어렵지만 가능하면 정확하게 번역하는 게 좋다고 본다. ‘마지막 33년' 또는 ‘마지막 3분의 1’ 정도로 번역하면 어떨까 싶다. 물론 ‘마지막 30년'이 틀렸다고 말할 것까지는 없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중간 이하. (그냥 일종의 제안)

20. 61쪽.

  1. 번역본: 그러나 남성 참정권이 이미 성공을 거둔 경우에
  2. 대안: ... 참정권이 이미 널리 퍼져있는(보편화한) 경우에
  3. 영어 원문: But where manhood suffrage already prevailed
  4. 설명: ‘prevail’을 ’성공을 거둔’으로 번역하기는 곤란하다. 참정권이 성공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참정권이 널리 보편화됐다는 뜻이다.
  5. 대안에 대한 자신감: 아주 강함.

기타 용어 문제.

1) ‘continuing’을 ‘영구적인”으로 번역한 대목이 몇군데 있다. 의아스러운 용어 선택이다. 이 단어는 분명 perpetual과 구별된다. ‘지속되는' ‘이어지는' 정도가 적당해보인다.

2) 42쪽 등 몇 대목에서 ‘민주적 재화’라는 말이 나온다. ‘democratic goods’를 번역한 것인데, ‘민주적 재화'는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는 여기서 ‘goods’는 선(善)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민주주의적 선’으로 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이 부분은 나도 자신이 없다. (뒤늦게 덧붙임: 번역자의 지적 그리고 이 책의 다른 부분들을 검토한 결과, '선'은 아니라고 판단됨. goods가 제도적 성과나 결과를 지칭한다고 판단되니, 물건을 뜻하는 '재화'보다는 다른 번역어를 찾아보는 게 좋다고 생각됨.)

3) 42쪽에서 ‘localized’를 ‘국지적인’으로 번역했다. 별로 적합해보이지 않는다. local은 여러가지 뜻이 있는데, ‘국지적인'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해서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지역 토착적인'이라는 느낌을 주는 단어를 골라야 할 것 같다. 물론 문맥에 따라 ‘국지적인'이라는 뜻도 가능하지만, 이 책의 문맥에서는 ‘지역적인’ 정도가 무난한 선택으로 보인다.

*** 덧붙임: 내 검토 결과에 대한 반박 또는 논평은 대환영이다.

2008/02/09 10:22 2008/02/0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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