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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원들께 드리는 인사

지난 9월 한국을 떠날 때는 잠시 외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 일은 잊어보려고 했다. 한동안은 잘 됐는데, 얼마전부터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건강보험 관련해서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역시 조바심을 내면 문제가 생긴다.) 민주노동당 동향도 내 조바심을 재촉한다. (그래서 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사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왔다. 당원도 아닌 이가 이러쿵 저러쿵하면 당원들의 심정이 어떨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래도 한마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먼저 이건 어떤 '유명한' 언론인처럼 훈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애증을 동시에 느끼지만, 내가 아는 이들을 포함한 민주노동당원들에 대해서는 존경심 또는 기대감을 지니고 있다. 이 땅에서 그나마 믿을만한 사람들이 그들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이 글은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원들에게 드리는 소박한 새해 인사다.

 

먼저 지금 민주노동당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나는 조금 걱정스럽다. 외부 관찰자가 보기에 논란은 “누구 탓'이냐에 더 쏠리는 것 같다. 나는 “누구 탓”이 아니라 ”무엇 탓”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지금 민주노동당의 문제가 온전히 일부 ”우파”의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용어를 중시하는 사람인데, 자주파니 평등파니 하는 말은 쓰기가 싫다.) 일부 우파의 패권주의를 탓하자면, 일부 “좌파”의 기회주의 또는 무능력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적으로 몇년전 인천 사람들의 서울 용산지구당 접수 시도 사태에 대해 “좌파”들이 당 차원의 확실한 대책을 강제할 수 있었다면, 그 지긋지긋한 패권주의를 적어도 당 내에서는 많이 보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조직의 건강을 유지하는 길은 사람에 의존하기보다 제도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소신 때문이다.

 

패권주의적 작태를 뿌리뽑는 길은 확고한 민주주의 원칙을 설정하고 그 원칙에 따라 모든 사건에 대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주노동당원들은 지도부의 무원칙한 결정이나 무책임을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그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만약에 이것이 가능하다면 민주노동당 안에 ”꼴통”들이 아무리 득실거려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원칙 대로만 하면 아마 알아서 스스로들 물러날 것이다. 아니면 적응하거나.

 

나는 이제라도 훌륭한 민주노동당원들이 원칙을 바로 세우고 이를 관철시키는 일에 나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차피 민주노동당은 당신들의 정당이니 당신들이 책임져야 한다. 지도부나 정파 대표들의 정당이라면 그건 이 땅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진보정당이 아니다.

 

특히 분당 이야기까지 나오는 지금이야말로 민주노동당원들이 행동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결국 분당이 되어 새 정당을 만들더라도 전체 구성원이 원칙을 공유하고 그 원칙의 관철을 책임지지 못한다면, 그 정당 또한 별로 달라질 게 없다.

 

민주노동당원들이 지금부터라도 새 역사를 써낼 수 있다면, 한국 정치도 분명 바꿔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자고 일어났던 당신들을 빼면, 이제 한국에서 기대를 걸어볼 이들은 거의 없다.

올해는 민주노동당원들이 자신들의 힘을 발견하는 한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2008/01/02 03:24 2008/01/02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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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글 삭제

건강보험과 관련한 글을 쓰면서 나는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국가 전체의 의료비 지출은 가장 인색한 한국이 이 정도 상태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건 적어도 현재 한국의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한 의료 제도가 굉장히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총 의료비가 국내 총생산의 6%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지만, 기대 수명 따위로 평가한 건강 상태는 중간 수준이며, 이는 의료제도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펼 생각을 한 것은, 복지를 전공한 교수에게서 들은 말 때문이다. 그는 외국에 가면 한국의 건강보험에 관심을 갖는 학자들이 많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효율적인지 배우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사람들의 관심이 크단다. 그 교수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한국의 건강보험이 꽤 효율적인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나는 그 효율성을 객관적인 자료로 설명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보건학을 하는 어떤 교수분께서 문제를 지적하셨다. 그 내용은 이렇다.

 
보건학도들이 잘 인용하는 "건강 결정 요인"으로 인체 생리, 생활 습관, 환경, 의료 제도가 있습니다. (Lalonde, 1974)
한 학자는 사망 수준에 미치는 네 요인의 기여도를 각각 19%, 43%, 27%, 11%로 계량화한 적도 있습니다. (Dever, 1980) (수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중은 대략 비슷합니다.)
즉, 의료 제도가 한 나라 사람들의 건강 수준에 미치는 영향은 기대보다 작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료비 지출이 적은 우리나라의 건강 수준이 중간쯤이라는 것을, 의료 제도가 효율적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건강 수준에 의료 제도가 끼치는 영향은 많아야 10% 안팎이라는 소리다. 다른 조건 곧 인체 생리, 생활 습관, 환경이 불변이고 이 부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이 모두 같다고 전제할 때만, 내 주장은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내 주장은 근거가 없다.

 

부정확한 글로 혼란을 끼친 점을 죄송하게 생각한다. 앞으로는 좀더 정확하게 알고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글은 삭제한다.

2008/01/02 02:38 2008/01/02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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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이들에게 드리는 새해 인사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뭔가 허전하고 허탈하며 막막한데다가 불안하기까지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위로가 없다. 앞날이 걱정된다. '신자유주의 좌파'가 망가뜨려놓은 것들을 더 망치고, 그들이 건드리지 않은 새 영역까지 개척해 망가뜨릴 것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환호하겠으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더 절망과 고통 속으로 떠밀려 들어갈까? 그러니 절망감, 허탈감, 불안감을 느끼고도 남는다.

 

게다가 투표자의 50%에 가까운 대중이 이명박을 지지하지 않았는가?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뭔가 모를 감정은, 이들 '대중'들에 대한 공포다. 저들이 어쩌자고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들의 이 결정이 어떤 끔찍한 변화를 가져올까?

 

사실 이 대중은 한 무더기가 아니다. '계급 이해에 철저한 일부 계층', 그리고 이들의 감언이설에 속은 이들, 그리고 그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막무가내의 심정으로 동조한 이들로 나눌 수 있을 테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생각이 정확한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심정은 또 다시 배신당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은 다시 구경꾼으로 돌아가 술자리에서나 불만을 털어놓으며 더 나을 것 없는 삶을 이어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정치 구조, 언론 구조, 사회 구조가 그들에게 '선거 때만 작동하는 한표'로 만족하라고 끝없이 설득하고 압박하는 탓이다. 특히 뉴스, 오락 따위의 미디어를 통한 '프로파간다'가 결정적이다. 언론만 바뀌어도 이런 일은 계속되지 않는다.

 

그러니 '무지한 대중'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현명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현명하지 못한 것은 그들 탓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촘촘하게 얽어매어서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구조의 무서운 힘 앞에서, 모래알 같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선거 때만 작동하는 '주권자'로 남는 것이 얻을 수 있는 최대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디에서나 똑같다.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 대부분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20세기의 민주주의'가 가져다준 최대치가 이것이다.

 

그래서 이명박이 아니라 정동영이 되었어도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민주 사회의 프로파간다'를 강화시키는 가장 세련된, 또는 가장 냉소적인 작업 방식이다. 정동영이 되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말에는 사람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논리가 숨어있다. '선거만으로 뭔가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의 이데올로기' 말이다.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이데올로기 곧 '하지만 선거로 뭔가가 바뀌지 않는 게 또한 세상사'라는 '절망의 이데올로기' 말이다. 이 논리야말로 '주권자'들을 '선거 때의 한표'로 묶어두는 가장 강력한 프로파간다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허탈하고 막막하고 불안하다는 것, 뭔가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감정이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것, 이것이야말로 변화의 출발점이다. 다만 이 감정이 연말 연시 바쁜 일상 속에 봄눈 녹듯 사라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5년동안 이 감정을 계속 유지하면서, 구경꾼이기를 거부하자.

 

절망하는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당신의 그 절망감이 현실을 바꿀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건 역설도 말장난도 아니다. 진실이다.

 

리오 후버만은 1956년 미국 진보진영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우리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정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자. 우리의 신념을 선언하고 가르치자. 어디에서든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든지, 소수의 사람 앞에서든지. 우리의 운동 규모가 적다고 걱정하지 말고, 운동의 질을 더 생각하자. 연구하자. 열심히 노력하자. 복음을 널리 전하는 투쟁을 벌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을, 전체 진실을 이야기하자.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말고 진실을 쟁취하기 위해 직접 행동하자!”

 

우중충하고 낯선 땅에서, 두고온 땅과 사람을 그리워하며 드리는 새해 인사다.

2007/12/20 20:15 2007/12/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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