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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신규 교수가 돌아갔다니..

뉴욕대학교 경영학과 양신규 교수가 지난해 7월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한다. 뒤늦게 알아서 더욱 충격적이다. 명복을 빈다.

 

온갖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른바 논객으로 열심히 글로 싸운 분으로 기억한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불꽃’처럼 살다 간 어느 정직한 리버럴리스트의 죽음 이 글을 보시면 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추모를 하더라도 무조건 좋게만 이야기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정직한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라고 말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모두 게시판에서 한 때 양 교수와 쌍소리까지 해가며 싸워본 내 경험으로 볼 때, 자유주의자라는 건 턱도 없는 소리다. 내 경험의 범위 내에서 보면 '폭력적 글쓰기'가 그로부터 곳곳으로 번져나갔다.

 

아무튼 양 교수가 이젠 편안하시기를 기원한다. 양신규 추모 게시판 가기

2006/01/13 11:23 2006/01/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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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사건의 뒷면

지난해 12월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법의학의 세계>(이윤성, 살림지식총서 35, 살림출판사, 2003(초판 1쇄), 2005(초판 3쇄), 3300원)를 샀는데, 93쪽밖에 안되는 이 책에 뜻밖의 사실들이 담겨있었다.

 

1991년에 한 대학생이 시위 도중에 사망한 사건이 생겼다. 강군은 학교 앞에서 시위하던 도중에 '전경한테 붙들려 뭇매를 맞고 사망하였다.'...(12쪽)

 

강군의 이마 왼쪽에 찢어진 상처가 있었는데, ... 모두들 그것이 전경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생긴 것이며, 그 때문에 뇌에 손상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 (13쪽)[저자는 검찰쪽 의뢰를 받은 부검의였다고 한다.]

전신을 모두 CT 검사를 하고 보니 역시 머리에서는 손상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사망원인이라고 할 만한 소견이 하나 나왔다. 혈심낭이었다... 강군의 가슴 CT 사진에서는 심장운동을 억누를 정도로 액체가 차 있는데 그 액체는 혈액인 것같았다... 유가족과 대책위원회는 이제 사망원인을 알았으니 “부검은 필요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부검은 필요했다.(14-15쪽)

 

상황을 보건대 심낭에 혈액이 고인 이유가 외상 때문이라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혈심낭'을 만든 외상이 분명하지 않았다.(16쪽)

 

젊은 사람에서는 심장이나 주변 혈관에 병이 생기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드물지만 그럴 수도 있다.(이제는 추측에다 비약까지 덧붙인다.) 어릴 때 감기라며 지나친 카와시키병 후유증으로 심장의 관상동맥 일부분에 꽈리처럼 부푼 동맥류가 생겼다... 부검을 해서 확인하지 않았으니 추측에 비약임을 다시 밝힌다. 만약 이 비약대로라면 강군 스스로 지닌 병도 사망원인에 일부 책임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타살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17, 18쪽)

 

아래 부분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같다. 마지막 부분을 잘 읽어야 오해가 없다.

 

1987년 1월 14일, 이른바 “탕!”하고 책상을 치니까 “억!”하고 쓰러졌다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생겼다... 만약 박군의 사망원인이 '폐결핵'이고, 사망기전은 폐결핵 병소에서 비롯한 '폐출혈이 기관지를 막은 질식'이라고 했다면 우리 나라 현대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아마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근거가 있다. 부검결과에는 '폐출혈'이 있었다. 이 '폐출혈'의 원인은 - 아마 박군 자신도 모르고 있던 - 폐결핵이었다. 박군의 오른쪽 폐에는 활동성 폐결핵이 있었고 (아마도 고문 도중에 급격한 호흡 때문에) 결핵이 있던 자리에서 출혈하기 시작하여 적어도 몇 번은 속으로 혈액을 흡입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부검의사는 목 근육에 있던 출혈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폐결핵 병소에서 나온 출혈을 부수적인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부검의사가 목에 있던 흔적을 못보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더라면 박군의 사망원인은 '폐결핵'이 되고, 사망의 종류는 '병사'이므로 실제 부검에서 밝혀진 것처럼 물고문 도중에 목을 압박하여 사망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게 된다.(33-34쪽)

 

눈길을 끄는 사건이 하나 더 있다.

 

1989년에 어느 저수지에서 경찰이 쫓던 대학생이 부패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당연히 “권력이 고문하다가 죽으니까 저수지에 갖다 버렸다”는 주장과 “아니다”라는 주장이 있었다... 직접 관여하지 않아서 정확한 것은 모르겠으나... 수사 결과는 '혈액에서 알코올이 검출된 점과 기타 등등을 고려할 때, 변사자는 술을 마시고 저주시 근처에서 발을 헛디뎌 익사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결과에서 전제가 된 '혈액에서 검출된 알코올'은 주검이 부패하면서 생긴 알코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변사자가 술을 마시고 사고로 익사하였다는 수사 결론에서 '술을 마시고'라는 전제 부분도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부패한 주검에서 검출된 알코올은 달리 생각해야 한다. (51-52쪽)

 

이 책은 값도 비싸지 않으니 한 권씩 사서 보시길 추천한다.

2006/01/04 17:23 2006/01/0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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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매그도프 숨지다(1913-2006)

미국 진보잡지 <먼슬리 리뷰>의 편집인 해리 매그도프(Harry Magdoff, 1913-2006)가 2006년 1월1일 평화롭게 숨졌다고 한다. 지난 2004년 이 잡지의 주역 폴 스위지가 숨진 데 이어 그마저 돌아감으로써 이 잡지의 초창기 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제 <먼슬리 리뷰>는 완전히 세대 교체가 된 셈이다. 앞으로도 젊은 세대가 이 잡지의 전통을 잘 이어가기를...

 

정부 기관의 경제 분석가 등의 경력을 지닌 매그도프는, 폴 스위지와 함께 이 잡지를 창간한 리오 후버만이 숨진 바로 다음해인 1969년에 이 잡지 편집인에 합류해 지금까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이제 이 잡지 편집인으론 생태 사회학자 존 벨라미 포스터 혼자 남았다.

 

존 벨라미 포스터의 추모 글 (영문)

2006/01/02 17:15 2006/01/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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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