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남의 고통을 볼 수 있는 길

현상적 세계의 총체성을 드러내주는 계몽은, 우리가 먼저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때만 주어진다. 모든 사회 운동은 전체 고통의 부분적 관점만 제공한다. 홀로그램의 파편처럼, 각각은 특정 관점에서 비롯된 굴절된 전체의 모습만을 담고 있다. 한 개인은 이 고통을 보고 그것이 노동자 착취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두번째 사람은 그것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로 본다. 그리고 세번째 사람은 그것을 다른 인류를 노예로 삼고 대량 학살하는 것으로 본다. 이 가운데 누구도 잘못 본 것이 아니다. 각각은 전체 억압의 특정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측면을 지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 방에 모여서 각자의 전망을 공유하게 되면, 각자 총체성에 빛을 비춰줄 자신의 ‘촛불’을 들게 되면, 그들은 실천 행위 속에서 서로 의존적인 전체에 대한 다른 사람의 공통 작업을 보게 된다. 하나로 뭉칠 때만, 그들의 서로 다른 지각 영역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다. 함께 그들은 전체의 지도를 그릴 수 있고 그럼으로써 권력의 양식들, 공통의 저항 전통, 자신들의 이념적 통일을 지각할 수 있게 된다. 사회주의자들은 여성들의 대상화가 노동자의 대상화와 같다는 걸 보게 된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노동자들의 굴욕과 불명예가 동성애자 폄하와 같다는 걸 보게 된다. 유대인들과 유색인들은 동물을 노예처럼 다루고 폭행하고 고통을 주는 학대가 바로 자신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것의 논리적 지평이자 전형적인 실습 행위임을 보게 된다. 핵심은, 이들 각자 나름의 관점들을 결합하는 것만이 서로 흩어진 저항 세력들이 자신들 앞에 놓인 현실적인 문제와 정신적 도전 과제를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John Sanbonmatsu, The Postmodern Prince,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04), pp. 201-202.
2005/01/27 11:11 2005/01/27 11:11
댓글0 댓글
트랙백1 트랙백

제국과 다중의 개념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초국적 기구들, 민족국가들, 지역 연합들, NGO들의 네트워크 권력인 제국 (내부의 갈등과 위기이다.) (‘악의 축’ 3국이 미국과 갈등하고 있는 제국 내의 강대 세력인 유럽, 중국, 러시아를 상징한다면) ‘테러’는 무엇보다도 다중(multitude)을 상징한다. 테러에 대한 전쟁이란 곧 다중에 대한 전쟁을 의미한다. 왜 다중이 제국의 눈에 테러 집단의 모습으로 보여지는가?

 

-- 여기서 ‘악의 축’ 3국이란, (“친유로 정책을 취한”) 이라크, (중국의 위안화 세력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러시아와 루블화를 견제하기 위한 상징적 지역”인) 이란이다. 유로, 위안, 루블과 달러의 대비... 재미있는 상상을 촉발한다.

 
조정환, ‘한국 개혁, 진보세력이 은폐한 질문들‘, 월간 말, 2005년 2월호, 224, 225쪽.
2005/01/24 15:57 2005/01/24 15:57
댓글0 댓글
트랙백0 트랙백

부르주아의 걱정

언어 단일화 옹호자들은, 이 세상에는 서로 직접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이 있는데 의사소통 능력을 제약하는 끝없이 많은 언어들이 넘쳐나는 걸 걱정한다. 이는 국제주의적인 걱정이 아니라 세계주의적인(코스모폴리탄) 걱정이다. 사업 또는 여가를 위해 여행하는 부르주아들의 걱정이고, 정착해 생산하는 시민들의 걱정이 아니라 유목민들의 걱정이다... 그들은 시공간내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으로 융통성 없는 언어를 인공적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안토니오 그람시, '하나의 언어와 에스페란토어'(La Lingua unica e l'esperanto), 1918.
2005/01/14 11:11 2005/01/14 11:11
3 댓글
트랙백0 트랙백

앞으로 뒤로

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