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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_'대입경쟁'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녀

대입경쟁’,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녀

 

송경원_민주노동당 교육분야 정책연구원

 

 

간혹 동네 어귀를 ‘민족사관학권’봉고차가 지나간다. 특목과 자사고가 명문대 진학의 지름길로 여긴지 오래이니, 강원도 저 멀리의 민족사관학교를 빗대어 학원 이름을 ‘민족사관학원’이라고 붙였구나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필시 자기 학원을 다니면 특목고와 자사고에 갈 수 있고, 당연히 명문대 진학도 문제없다는 무언의 계시일 것이다.

그렇게 학원들은 오늘도 대입경쟁에서의 승리를 광고하고 불안한 학부모는 아이를 봉고에 밀어넣고 아이는 정작 쓸데없는 지식들을 머리에 넣기 위해 스스로를 고문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이기는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한해 2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입시로 인해 자살하겠는가. 헌데 사실 ‘대입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동네의 그 많은 학원에 아이들이 넘쳐나고 엄마와 아빠는 사교육 때문에 등골이 휘는데, 정작 대입경쟁이 없다니, 이 무슨 소리인가.

원리는 간단하다. 2006년 고등학교 졸업생은 57만 명이었다. 그런데 대학 정원은 4년제와 2년제 합해 60만개다. 이때의 대학 정원에는 방통대 등은 빠졌는데 이를 포함시키면 70만개가 넘는다. 그러니까 2006년의 경우 57만 명이 60만개의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경쟁률은 0.95대 1로 ‘1대 1’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아무나 원하면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더더군다나 이런 상황은 2006년 들어 발생한 게 아니다. 2003년부터 대학정원이 고교 졸업자보다 많아졌으니, 올해까지 딱 5년째이다. 여기에 고교졸업자 중 진학 희망자만 놓고 보면, 대학정원이 진학희망자보다 많아진 것은 10년도 휠씬 넘었다.

불행은 그 다음이다. 산술적으로 볼 때, 대입경쟁은 오래 전에 없어졌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입경쟁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가정경제를 질식시키는 사교육비증가가 그 증거다. 왜일까. 답은 대학서열화에 있다.

60만개의 대학정원은 똑같은 정원이 아니다. 이중에는 4천개의 초특급 슈퍼 울트라 진골 학벌 서울대가 있고 약2만개의 울트라 성골학벌 상위 5개대가 있다. 반면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서 갖다버리고 싶은 4두품 학벌도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러니까 57만 명의 고교졸업생은 60만개의 대학정원 놓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최대 2만개 최소 4천개를 놓고 친구는 죽이고 나는 살자 게임을 하고 있는 게다.

이런 의미에서 ‘대입경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대입경쟁이 아니라 일류대 경쟁이나 진골학벌 경쟁은 존재한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정확한 표현을 쓰자.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모여 상식과 신화가 되고 그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를 자학하면서 점점 힘겨운 경쟁의 나락으로 빠져드니 말이다.

이제 막 출간된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은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다. 교육과 관련된 일반의 상식과 신화가 과연 정말인지 따져 보고 있다. 57만 명의 고교 졸업생이 4천개에서 2만개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은 공정할까. ‘학교는 공정하다’는 믿음처럼 말이다.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의 첫 번째 꼭지가 홍세화 선생님의 “학교는 평등하고 중립적이다?”이다. 공동저자인 까닭에 염치없지만, 읽기를 권한다.

 

출처_<주간 진보정치 제 3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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