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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저항과 사회적 화해의 가능성, 구체적이지 않다

 
 
 
 
 
 
저항과 사회적 화해의 가능성, 구체적이지 않다
>>『과거사 청산, ‘민주화’를 넘어 ‘사회화’로』 김영수 지음 | 메이데이 | 2008
 
2008년 03월 10일 (월) 10:56:38 교수신문 editor@kyosu.net
 

한국사회에서 과거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서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존속 시한이 2년 남은 진실화해위원회로 통폐합한다고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포괄적 과거사 청산을 내걸고 2005년 12월 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정리의 대상이 돼버렸다.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시도돼 왔던 과거사 청산이라는 과제는 또 다시 좌절과 망각 속으로 사라져갈 위기에 처해 버렸다.


이러한 시점에서 최근 『과거사 청산, ‘민주화’를 넘어 ‘사회화’로』라는 제목을 달고, 과거사 청산의 문제를 보다 폭 넓은 사회운동론의 맥락에서 차분하게 살펴보는, 그러나 완고하게 민중적 관점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책이 나왔다.


한국사회에서 과거사 청산의 문제는 단순한 역사적 논쟁과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사 청산이란 지난 역사의 사실 속에 숨어 있는 사회적 함의를 이끌어내고, 이에 기초해 앞으로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가치와 지향을 결정하는 발전과 통합의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해방 이후 지속된 과거사 청산 시도는 각각의 시기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현실 문제와의 관계 속에서 이뤄져 왔다.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과거사 청산은 새롭게 출발하는 국민국가의 역사적 정당성 확보와 새로운 국가형성 주체의 문제를, 87년 민중항쟁과 더불어 제기된 반민주적 행위에 대한 과거사 청산은 군사독재의 어두운 터널을 넘어 민주주의를 사회적 의제로 제시한 것이다. 2005년의 과거사 청산은 시민·노동자·농민과 같이 아래로부터 제기된 기본권으로서 인권의 확립과 사상적 편견으로 굴절된 비뚤어진 역사의 바로잡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거사 청산 시도가 모두 미완의 과제로 남겨져왔다는 경험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 기초한 거시적이고 이론적인 분석과 평가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저자의 이 책은 직접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보아온 경험적 사실에 기초함과 동시에 정치학자로서의 이론적 분석을 곁들여 과거사 청산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이 책의 장점은 과거사 청산의 주체와 대상의 문제를 민주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장기지속의 과정으로 제기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국가주도의 위로부터의 과거사 청산 시도가 과거사 청산이라는 역사적 미래지향적 과제를 지배엘리트의 내부권력투쟁으로 변질시키는 효과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과거사 청산이라는 사회적 의제가 국가와 이해당사자 사이의 관계로 축소돼, 보편적인 사회적 의제로 자리 잡지 못하게 된 한계를 지적한다.


그 결과 과거사 청산은 민주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사회운동으로부터 분리돼, 사실관계의 파악에 기초한 피해자 보상과 화해로 귀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지난 2년을 포함해 현재까지의 첫째 역사적 평가와 과거사 청산의 주된 대상인 국가가 중심이 돼, 둘째 총체적인 과거사 청산이 아닌 사건 위주의, 셋째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청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과거사 청산의 새로운 지향으로 과거사 청산의 ‘사회화’를 제시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사회화’란 지난 시기의 과거사 청산의 한계로부터 과거사 청산 작업의 주체를 국가에서 사회(운동)로, 과거사 청산의 대상을 개별 사건과 희생자 개인이 아닌 국가권력의 성격변화와 사회적 희생자로 과거사 청산 작업을 재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거사 청산의 ‘사회화’는 결국 과거사 청산활동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감시와 과거사 관련 국가기구의 탈관료화 및 자율성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외국의 다양한 과거사 청산 사례를 국가기구의 성격과 권한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동시에 민주화와의 관련성을 따져본다(외국의 과거사 청산에 대해서는 『세계의 과거사 청산 - 역사와 기억』, 김남섭 외, 푸른역사, 2005를 참조).


이 책은 과거사라는 역사적 사실관계와 과거사 청산이라는 정치적 권력관계를 한국사회의 구조변동이라는 거시적 틀 속에 용해시켜, ‘사회화’를 과거사 청산운동의 새로운 지향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다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는 새로운 방향설정에 있어 풀어야할 숙제로 보인다. 우선, 저자는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과거사 청산의 방향을 ‘사회화’로 제시하며, ‘사회화’를 진실규명운동과 민주국가 수립운동 및 사회체제 변혁운동의 전개로 연계시키고 있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 활동과 민주국가 수립 및 사회체제 변혁 운동은 현실운동 속에서는 수많은 매개 고리를 통해서만 연결될 수 있다. 사회적 희생자의 정신과 이념이 현실운동에서 하나의 정신과 이념으로 묶이기에는 현실 사회운동의 지형 역시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둘째로, 진실규명 - 배·보상 - 화해를 이야기하고, 사회적 배·보상과 사회적 화해를 통한 사회통합을 주장하지만, 사회적 배·보상의 의미가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지배세력에 대한 저항과 사회적 화해가 어떻게 동시에 가능한지도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 논리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과거사 청산 활동의 사회적 의미와 맥락, 진단 및 평가, 그리고 대안적 접근을 구체적인 체험과 다양한 자료에 기초해 누구라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해낸 것은 전적으로 저자의 뛰어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협 / 한국노동교육원·노동사회학

필자는 독일 튀빙겐대에서 ‘독일과 일본의 산업민주주의와 참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및 미국의 자동차산업 단체협약』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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