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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철학의 확장과 재구성을 위해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가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물론 ‘맑스주의 철학’ 그 자체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저자가 하려는 것은 ‘철학’ 그 자체가 아니다. 맑스 철학의 존재론적인 재구성·확장을 통해 맑스 철학의 현재성을 밝히려는 저자의 시도는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자본주의 현실에 맑스 철학이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대/탈현대, 맑스/탈맑스적 대립을 벗어난 새로운 가능성, 반자본적 운동의 가능성을 창출하는 소통과 연대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_박영균 씀, 456쪽, 18,000원, 2007년 9월 10일 발행

 

 

 

추천의 글
책머리에

 

서론_탈현대적 담론들과 맑스

 

1부 맑스주의의 위기와 ‘정통’ 맑스주의의 형성
철학의 도래와 철학의 빈곤
지식-권력으로서 ‘정통’ 맑스주의와 계보학
맑스와 새로운 철학의 실천, 실천의 철학

 

2부 철학의 근본문제와 유물론적 문제설정
철학의 실천과 실천의 철학: 알뛰세르와 그람시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잘못된 물음
물질-의식의 상호 교통 가능성: 육체
육체에 의한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

 

3부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과 실천 철학
탈현대적 지형에서 철학의 근본문제
유물론의 두 가지 전통과 맑스 철학
         두 가지 전통과 난점들 / 들뢰즈의 스피노자주의와 맑스 철학
실천철학의 두 가지 길과 사회적 노동-사회적 제관계
전통적 유물론의 인식론적 전복과 비철학으로서 실천철학

 

4부 탈현대적 철학 비판과 맑스 철학의 존재론적 재구성
탈현대적 철학과 맑스 철학의 쟁점
탈현대 철학에 대한 맑스 철학의 비판
         차이의 철학과 모순의 철학 / 과학의 해체와 과학의 기획 / 권력이론, 윤리학과 정치학
탈현대적 지형에서 맑스 철학의 존재론적 재구성
육체의 유물론과 모순의 변증법

 

5부 맑스주의 철학의 확장과 철학의 외부
철학의 한계와 철학의 외부
정치적 육체와 감성적 실천의 철학
         맑스의 관계론적 실천철학과 정치적 육체 / 정치적 육체와 감성적 실천 / 감성적 실천의 양식들: 에토스와 파토스 / 생산 양식과 주체화 양식
이데올로기론과 맑스주의 철학의 확장
         맑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론 / 이데올로기론과 탈현대적 지형 / 이데올로기의 최종심급으로서 상품-화폐-자본물신성 / 맑스주의 철학의 확장과 역사유물론적 기획 / 역사유물론의 확장
철학의 위치: 이데올로기/철학-과학/정치

 

결론_맑스 없이, 맑스 앞에서

 

주註
참고문헌
찾아보기

 





'정통' 맑스주의도 폐기되어야 하고, 탈현대적 맑스주의도 아니라면, 맑스주의 철학의 ‘현재성’, ‘실천적 유물론’의 정체성 위에서 새로이 구성해야 할 맑스주의 철학은 과연 어떤 것인가? 저자 본인에게 이에 대한 견해가 있기는 한 것인가? 본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박영균에게 이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아직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저자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반대로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한편으로 ‘정통’ 맑스주의를 폐기하고 다른 한편으로 탈현대적 맑스주의와 정면 대결을 시도하면서 탈현대적 맑스주의마저 넘어서는 새로운 맑스주의 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이제 저자에게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연구서의 이론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탈현대적 맑스주의에 대한 철학적, 특히 존재론적 관점에서의 본격적인 최초의 시도라는 것만으로 이 연구서는 충분한 이론적 가치를 지닌다. 이 책은 앞으로 탈현대적 맑스주의와 본격적으로 논쟁하는 데 있어 그 디딤돌이 될 것이다. 

-<추천의 글> 가운데_이성백/서울시립대, 철학

 


그렇다고 맑스와 탈현대적 논의들을 대립시키거나 ‘맑스를 넘어선 맑스’를 추구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나는 한편으로 탈현대적 논의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모색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맑스의 철학과 이들 철학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규명하려 노력했다. 여기서 나는 이중의 전략을 사용했다. ‘정통’ 맑스주의와 관련하여 ‘탈현대적 논의’들, 특히 ‘육체’라는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것이 맑스 철학의 확장을 위한 나의 모색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탈맑스적 철학’들과 차이를 명확히 하려고 했다. 이것은 맑스주의의 정체성 또는 현재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현재성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맑스 철학의 확장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지평에서 맑스 철학의 현재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나는 맑스가 현재의 맑스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맑스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그것은 내가 읽는 맑스이며 내가 말하는 맑스이지 않을까? 따라서 이 책에서 그려지는 맑스와 맑스의 탈현대적 대화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 <책머리에> 가운데


<출판사 서평>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 맑스철학의 확장과 재구성을 위해

 

 

맑스주의 철학, ‘부재’와 ‘해체’의 20여년

 

1980년대 후반에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그 충격으로 80년대 변혁적인 조직운동이 청산되고 해체됐을 때, 무너지고 청산되고 해체된 것은 ‘조직’과 ‘운동’만이 아니었다. 80년대 변혁운동을 사상적으로 밑받침했던 ‘철학’ 역시 무너지고 청산되고 해체됐다. 그 폐허 위에서 한편으로는 고집스럽게 ‘정통’맑스주의 철학을 움켜쥐고 가고자했던 소수가 아직까지 남아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탈현대적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정통’맑스주의 -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유물론 - 를 본격적으로 해체하려는 시도들이 거침없이 이루어져 왔다.
지난 20여 년간 변혁운동을 고민했던 자들에게 ‘철학’은 변화하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는 고집스러움이거나, 해체해서 내팽겨 버려야 할 그 무엇이었다. 무엇보다도 지난 20여년의 세월은 ‘탈현대적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청산’과 ‘해체’가 주도한 시대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해체되고 청산된 것은 철학만이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을 극복하려는 모든 운동 역시, 철학과 함께 해체되거나 청산됐다.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현대판 자본축적인 ‘신자유주의’였고, 자본축적의 합리화와 보조를 맞춰간 ‘탈권위주의’적 저항의 흐름이었다. 

 

이후 20여 년간,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자본 논리가 전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과잉 유동자본에 따른 부동산 거품과 붕괴 위험, 기업·산업·수출과내수·재산과소득·교육·지역 등 경제와 사회 전부문에 걸쳐 양극화와 불균형의 심화, 내수와 수출의 연계고리의 단절 및 수출 주도의 경제로 인한 환율과 유가의 불안정성에 노출, 고용 없는 성장에 따른 실업과 비정규직화 그리고 대중빈곤의 심화, 저출산·고령화 등 노동력 재생산의 위기, 카드빚에 따른 신용파산자 양산 등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2007년 대선에서 드러나듯이, 많은 국민들은 다시 한 번 경제 성장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사로잡혀 있다. 신자유주의 자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진보적인 흐름은 있지만 여전히 국민 다수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민주화’의 진전을 통해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소위 포스트론자들에 의한 ‘탈현대적 비판’은 ‘자본’ 자체에 대한 문제 설정 대신에 ‘전체주의의 해체’ 그 자체에 몰두했다. ‘정통’마르크스주의는 변화하는 현실을 조망할 수 있는 혜안을 주지 못한 채 과거 그 자체만을 부등켜 안고 있을 뿐이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 맑스철학의 확장과 재구성

 

박영균의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는 바로 이러 현실을 넘어서고자 한 철학적 시도이다.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가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물론 ‘맑스주의 철학’ 그 자체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저자가 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 그 자체가 아니다. 맑스 철학의 존재론적인 재구성과 확장을 통해서 맑스철학의 현재성을 밝혀보려는 필자의 시도는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자본주의 현실에 대해 맑스 철학이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 시도는 아직 첫걸음에 불과하다.

필자가 <책머리에>에서 소망하듯이,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는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자본운동에 대한 철학적 수준에서 비판의 첫걸음이지만, “오늘날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대/탈현대, 맑스/탈맑스적 대립을 벗어난 새로운 가능성, 반자본적 운동의 가능성을 창출하는 소통과 연대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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