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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중요성

독자감성 두드리는 ‘신조어’ 성공시대
 
 
 
한겨레  
 
 
»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플립의 원뜻은 뒤집기, 손가락으로 튕기기다. 두 손가락을 마주치면서 ‘그래 바로 이거야’ 하고 한순간에 깨닫는 것을 뜻한다. 플립스터는 플립을 실행해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플립, 삶을 뒤집어라〉(데이비드 리피 외 지음, 비전하우스 펴냄)에는 그렇게 손가락을 마주치면서 한 순간에 인생을 바꾼 플립스터 66명의 사례가 등장한다. 이 책은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어 혁명, 전환, 변화 등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았다. 역발상의 지혜라고나 할까. 이처럼 책 제목에 새로운 느낌을 주는 단어나 조어를 사용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난다.

〈블루오션〉, 〈블링크〉, 〈디지로그〉,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알파걸-새로운 여자의 탄생〉 〈롱테일 경제학〉 등은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출판기획의 3요소는 책의 가치, 현실성(아무리 우수한 아이디어라도 원고로 만들지 못하면 망상에 불과하다), 판매부수(이익)이다. 과거에 책은 학술적 가치, 인문적 가치 등이 더 중시되었지만, 지금은 임팩트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우수한 내용의 책이라도 독자에게 다가가는 강렬한 임팩트가 없으면 선택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편집자들은 이처럼 새로운 조어를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잡지의 경우에도 특집 제목에 따라 판매부수가 널뛰는 판이라 어떤 제목이나 차례로 독자에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 제목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기에 ‘제목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정의도 가능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 등장 이후 무료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독자의 기호도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어 독자의 최대공약수적 욕구를 파악하는 일도 힘들어졌다. 따라서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강력한 단어를 만들거나 찾아내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 이제 편집자는 독자들이 인터넷 검색으로는 쉽게 찾아낼 수 없는 감정적 테마를 발굴하고 그 테마의 매력을 전달할 수 있는 제목 만들기에 목숨을 건다.

 

과거에는 단지 정보를 얼마나 빨리 전달하느냐가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빠르기로 인터넷을 이길 수가 없다. 종이미디어가 여전히 정보의 신뢰성, 휴대성, 보존성에서 유리하다지만 아무리 좋은 기획이라도 단순히 정보를 나열해서 보여주는 편집 스타일로 만든 책이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알파벳을 사용하는 서양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알파벳은 정보를 빨리 전달하는 데에는 최고의 문자이다. 그러나 같은 글자가 한없이 반복되는 형국이어서 마치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머리글자를 조합하거나 두 단어를 결합하는 등 새로운 조어를 수없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에 비하면 단어 자체에 이미지가 내포된 표의문자인 한자는 무척 행복한 경우이다. 이미지 시대에 동양은 문자만으로도 이미 우위에 서 있는 셈이다. 한글은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이지만 명사의 80%가 한자어일 정도라 문화적 디엔에이(DNA)에 한자가 깊게 새겨져 있다. 경청, 배려, 관심, 용서, 인연, (이기는) 습관, 겸손 등 한자어 명사의 제목에서 독자들은 이미 자기만의 이미지를 수없이 떠올린다. 그런 제목을 기계로 찍어내 디지털적인 차가운 느낌을 주는 타이포가 아니라 감성을 건드리는 아날로그적인 손글씨(캘리그래피)로 표지를 장식했을 때 독자와의 감정적인 교감의 폭은 더욱 넓어지는 것이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기사등록 : 2007-06-15 오후 08: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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