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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경배|경희사이버대 교수

 
 

 

 

 

거기 두 개의 광장이 있었다. 하나는 오프라인 공간에 광화문 광장이, 다른 하나는 온라인 공간에 아고라가 있었다. 2008년 봄, 수많은 시민들이 소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며 이 두 개의 광장에 모여들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손에는 촛불이 들려 있었고, 아고라에 모인 사람들의 손은 키보드 위에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무수히 다양한 행동들을 펼쳐 보였고, 무수히 많은 언어들을 쏟아내 보였다. 때로는 분노의 목소리로 외쳤고, 때로는 격정적인 토론을 벌렸다. 또 때로는 흥에 겨워 노래하며 춤추기도 했다. 이런 일거수일투족이 모여 시민참여의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의 위대한 역사가 되었다.


여기 두 권의 책이 있다. 2008년 봄, 그 위대했던 두 개의 광장을 기록한 책이다. 하나는 촛불집회의 진원지였던 온라인 광장 아고라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모아놓은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촛불집회의 의미와 성과, 과제를 성찰적으로 정리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로질러 온 대한민국을 들끓게 만들었던 촛불 현장을 재현하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보기 위한 지적 노력이 맺은 첫 번째 결실이 이 두 권의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촛불의 대장정이 막 일단락을 맺은 직후에 출판된 두 책을 처음 집어든 독자들이라면 흡사 촛불집회에 대한 2종 세트 도서처럼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책장을 넘기다보면 이 두 권의 책에서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단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가 촛불집회가 진행 중이던 당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퍼 담은 1차 자료라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지식인의 눈으로 촛불집회를 사후 평가한 2차 자료라는 점에서 대비된다. 전자가 디지털 공간에서 디지털 언어로 탄생한 담론들을 아날로그 책자로 재구성한 결과물이라면, 후자는 아날로그의 패러다임이 촛불집회라는 디지털 시민운동으로부터 받은 함의와 교훈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보고서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두 책을 구성하고 있는 페이지 이면에 보이지 않게 자리 잡은 정서 역시 사뭇 대조적이다. 두 책의 정서적 차이점은 당장 첫 문장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난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도 폐인이 되었다.” 스스로가 아고라 폐인임을, 바로 자기 자신이 촛불의 주체임을 거침없이 선언한 문장이다.

그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첫 문장은 어떠할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주체가 아닌 관찰자의 입장에서 촛불이 가져다 준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음이 읽혀지는 문장이다. 이렇게 상반된 정서가 이들 두 권의 책 전체를 시종일관 관통하여 흐른다.


두 책의 차이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는 “계몽은 독”이라고 말한다. 아고라 폐인들은 다른 누구의 간섭과 지도를 사절한다. 대신 그들은 끊임없이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면서 지혜를 모은다. 그러다보니 어떤 이는 청와대로 돌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이는 굳이 청와대까지 갈 이유가 없음을 설명한다. 어떤 이가 이제는 어느 정도 물리력 동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변하면, 또 다른 이는 폭력 시위가 촛불의 순수성을 훼손시켜 시민의 참여를 저해할 것이라며 반대한다.

이렇듯 체계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어쩌면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지난 8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과 시민운동으로 단련된 프로급 운동가들이라면 답답해 못 견딜 노릇일 것이다. 그래도 아고라의 네티즌들은 계속 이런 과정을 고집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계몽은 독”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담긴 메시지는 다분히 계몽적이다. 저자들은 촛불에 비추어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이것을 다시 이데올로기, 여성, 교육, 노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리고 각각의 영역에서 향후 진보진영과 시민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전망한다. 먹물 꽤나 먹은 학자들이 독자들을 향해 서, 문건 꽤나 작성해본 운동가들이 조직원들을 향해서 즐겨 써왔던 전형적인 서사 구조이다. 당연히 이 책에서 계몽은 독이 아니다. 오히려 계몽은 애초에 이 책을 잉태하게 만든 목적이었으며, 이 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대한민국


두 책의 제목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대한민국”이란 단어 역시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의 “대한민국”은 광화문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갔던, 그리고 아고라에 접속해 키보드를 두드렸던 바로 그 시민들의 나라이다. 동시에 촛불의 힘으로 보여준 새로운 시민참여 패러다임으로 만들어 나가는 미래의 나라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광화문 광장에서 한 목소리로 외쳤던 “대~한민국”과 맞닿아 있는 여전히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공화국인 것이다. 그래서 아고라의 네티즌들은 “대한민국”을 이렇게 말한다.


“혹, 서로들 얼굴은 보시었소?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모두 보았겠지요.

    일터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버스와 지하철에서, 그리고 광화문에서.

   

    혹, 서로의 출신은 아시오?

    아무도 모르지만 모두 알고 있겠지요.

    경상도, 전라도, 서울, 부산, 충청, 경기…

    초졸, 중졸, 고졸, 대졸

    농업, 어업, 회사원, 교수, 닭집 아주머니…


    당신들 어디 소속이오?

    허허, 당신들이 바로 대한민국이었구려.”


촛불 시민들이, 그리고 아고라의 네티즌들이 분노하며 광장으로 모여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당장은 검역주권의 상실로 국민들이 광우병 위험에 노출되었으며, 보다 궁극적으로는 아고라 게시판에 올라온 한 여고생의 글처럼 “우리 아빠가 지하 취조실에 끌려가 온갖 고문과 심문을 견뎌내며 이뤄낸 민주화”를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대한민국”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의 공화국이었기에 아고라의 네티즌들은 경찰청 홈페이지로 당당히 몰려가 “내가 안단테다. 잡아가라”며 자수 운동을 벌일 수 있었다. 그리고  TV 토론에 나온 여당 국회의원의 “그렇다고 대통령을 바꾸겠습니까?”라는 발언을 두고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럼 국민을 바꿔요?”라고.


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의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이다. 책 제목 말미에 붙어있는 물음표는 이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의미심장한 기표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촛불의 광장에서 무수히 많이 불렀던 바로 그 노래,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가사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정말로 그러한가?”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유신체제, 그것의 재편인 전두환 정권과 같은 공개적 독재체제 아래서도 <헌법 제1조>는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것은 고문에 찢기고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민주화 정권 10년이라 말하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어땠는가? 이 책은 그때도 민주 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의 노동자들은 해외매각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이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조합 활동을 제지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위진압 경찰의 무차별적인 폭력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 뒤를 이은 이른바 ‘참여정부’인 노무현 정권 또한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이전 및 건설을 반대하며 삶의 터전을 보존해 달라는 대중들의 요구를 강제 진압하기 위해 정규군을 동원하기조차 하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대한민국”은 지금껏 자랑스러운 시민들의 공화국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 엘리트와 부르주아의 나라, ‘그들만의 공화국’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촛불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온 이유도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와는 다르게 해석된다. 즉 민주 공화국이라는 상상적 공동체와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형성된 대중적인 공분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촛불 이후의 촛불


이처럼 두 책은 여러 가지 점에서 많이 다르다. 그러고 보면 촛불 광장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명박산성을 가운데 두고 마주선 정부와 시민들 사이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과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진보 언론 간의 논조 차이만 존재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촛불집회 반대에 나선 고엽제 전우회나 특수임무수행자회 같은 우파 단체와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아고라의 네티즌들 사이에만 입장 차이가 있었던 것 역시 아니었다. 우리는 이 두 책을 통해 촛불 진영 내에서도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실제로 촛불을 대하는 태도, 촛불을 해석하는 방식, 나아가 촛불 그 이후의 전망에 대해서도 이미 꽤나 다른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촛불로 표출된 직접 민주주의와 운동정치의 한계를 지적하고 정당정치의 정상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또 다른 일각에서는 정당정치 수렴론이 “광장에서 이론을 구성하지 않고, 이론에서 광장을 유추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운동 진영도 마찬가지이다. 시민단체들은 두 개의 광장에서 연출된 새로운 시민참여의 흐름에 충격과 경의를 표하고, 여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다. 닭장차 투어와 신호등 놀이 같은 유쾌한 도발을 선보인 시민들의 창의성을 어떻게 시민운동으로 끌어들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시작됐다. 시민단체 간부들이 뒤늦게 웹2.0을 공부하고 블로그를 개설해 운영할 궁리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촛불 시민들과 아고라의 네티즌들은 더 이상 시민단체를 매개하려 들지 않는다. 시민 단체를 신뢰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가 시민운동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연대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직접 참여에 나서려 한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동호회 회원들이 아예 시민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촛불은 꺼졌다. 그리고 촛불에 화들짝 놀란 ‘그들만의 공화국’의 반격이 곧바로 이어졌다. 시민단체에 대한 압수 수색이 자행되었고, 인터넷 공간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들이 준비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편집에 참여한 아고라 논객 ‘권태로운 창’이 구속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촛불 자동차 회원 25명이 무더기로 운전면허 취소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또 그러는 사이에 국회의원이란 직업을 가진 국민의 대표가 국정감사장에서 유모차 부대 어머니를 향해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며 호통 치는 어이없는 일도 일어났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반팔 옷차림으로 조계사에 들어간 8인의 촛불 수배자들은 긴팔 옷을 갈아입고 차가운 겨울 공화국을 건널 채비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여전히 변함없이 민주 공화국이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공화국’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상상의 공동체를 제 멋대로 주무르고 있는 ‘그들만의 공화국’이다.

촛불 그 이전과 이후 사이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아주 많은 것이 달라졌다. 촛불은 잠시 꺼졌을 뿐이라는 것, 그래서 촛불은 언제고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민들도, 아고라의 네티즌들도, 심지어 명박산성 저 너머에 웅크린 채 <아침이슬> 노래를 들었다던 그들조차도 말이다.
  (월간 황해문학 2008.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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