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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되나? 좋은 점이 있나?

생활이 되나? 좋은 점이 있나?


생활은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다. 돈이 안 된다고 해서 생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자동차를 사거나 유지하기 위한 돈이 젼혀 필요하지 않다. 교통비도 들지 않는다. 운동 부족을 고민하면서 운동기구를 사고 헬스클럽을 다닐 돈도 필요하지 않다. 적절한 운동과 안장 위의 명상은 잔병과 번뇌를 잠재우며 병원갈 일을 만들지 않는다. 여가 시간에 이런저런 놀이 거리를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 자전거 메신저라는 일은 일차적으로 노동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 이동이기도 하고, 운동이기도 하고, 치료이기도 하고, 놀이이기도 한 것이다.
또 비용 지출 없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이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경제적 이점을 준다. 같은 물건을 사도 멀지만 싸게 파는 곳에 직접 가서 살 수가 있다. 돌아다니다가 노량진시장에 가면 수산물을 사고, 경동시장에 가면 야채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용산에 들러 전자제품을 사는 식이다. 이런 쇼핑 방식은 자동차를 끌고 대형마트를 가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몇 배는 즐겁다. 집에 잠깐 돌아와서 가장 싸고 맛있고 좋은 밥을 해먹고 다시 나갈 수도 있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싸고 맛있는 식당을 금방 찾아가서 먹을 수도 있다. 옷이 필요한 경우에는 서울 곳곳에서 만나는 중고 옷가게들을 둘러보곤 한다. 책은 오며가며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본다. 그밖에도 도시에는 의외로 가난하면서도 우아하게 살 수 있는 기회들이 종종 있는데, 자전거는 그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집도 자전거를 닮은 열린 집에서 살고 있다. 누구나 와서 서로 만나고 함께 살 수 있는 집. 남산 아래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http://house.jinbo.net)이다. 이 곳은 내가 머무는 집이기도 하고 메신저 사무실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식당도 술집도 극장도 콘서트도 학교나 학원도 거의 가지 않지만 부족함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별로 없다. 서울을 여행하는 자전거 여행자라면 누구나 환영한다. (사실 자전거를 안 타고 와도 환영하긴 한다.) 자전거 메신저를 너무 하고 싶은데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이라면 함께 살아도 좋다. 뉴욕의 메신저들도 서로 모여 살면서 도심의 비싼 집세 부담을 나누고, 새로 메신저 일을 시작하러 뉴욕에 오는 사람에게 기꺼이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하면서 함께 살고 있다.
밀폐되어 있는 잠자는 곳과 일하는 곳, 그리고 이 두 개의 점 사이의 장애물을 없애버리는 자동차라는 또 하나의 밀폐된 점 말고는 아무런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공간을 원하기 때문에 그 점을 더 넓고 크고 비싼 것으로 바꾸려 애쓴다. 하지만 점은 아무리 크고 비싸봐야 점이다. 반면 자전거는 점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한없이 열려진 채로 세상을 달린다. 자전거는 점과 점을 잇는 선으로서의 길 위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꿈틀대고 있는지, 길과 길의 마주침과 펼쳐짐으로 만들어지는 면으로서의 세상이 얼마나 드넓은지, 그 세상 위에 무수한 생명들이 어우러져 집과 마을과 도시와 자연을 이루며 사는 공간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가르쳐준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집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텐트 문만 열면 우리에게 행복한 잠과 꿈을 선물해준 숲, 들, 공터, 공원, 밭, 강, 바다, 마을과 도시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텐트가 좁다는 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처음 만나는 우리에게 각자 자기 집의 마당과 부엌과 하나뿐인 방과 창고와 집 열쇠를 내주고 먹을 것과 마실 것, 즐거운 대화를 선물해준 사람들도 있는데, 집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밖에도 다른 장점들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 다소 늦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불러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좋은 사람들이다. 일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운이고 기쁨이다. 일이 없을 때는 아무데나 앉아서 책을 보거나 자기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친구들을 잠깐씩 만나러 가기에도 좋다. 시작하는데 있어서 투자비용이 거의 필요 없다. 경력이나 숙련도도 필요 없다. 그런 건 타다보면 느는 거니까. 혼자 일할 때는 어렵지만,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쉬고 싶을 때 쉬는 것도 자유로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전거라고 호의적으로 봐 줄 때마다 기쁘기 한량없다. 날씨 좋은 날에 아름다운 길을 달릴 때면, 이렇게 즐거운 일을 하면서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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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돈이 되나?

가격은? 돈이 되나?


가끔 ‘자전거로 배달하니까 가격이 더 저렴한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참 할 말이 없다.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게 없는데 왜 더 저렴해야 하는가? 왜 훨씬 힘들여서 땀 흘리며 달리는데 왜 더 저렴해야 하는가? 물론 전략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오토바이 퀵서비스 요금은 10년전 가격이고 그로 인해서 수많은 라이더들이 무리해서 일하고 그만큼 더 위험하고, 배송 지연 사고는 늘어나고, 당신이 맞이하는 그들의 얼굴은 일그러져간다. 가격으로 경쟁해서 요금이 더 낮아지게 해야만 할까?
반대로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이 받을 셈이냐?’라고 묻는 것이 맞다. 물론 더 받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친환경, 무공해, 녹색상품, 탄소 저감, 윤리적 소비, 사회적 기업 등의 수사를 빌린다면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전거는 정말 좋은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서비스의 질이 더 좋을 것은 없다. 사회와 지구 전체적으로는 분명한 이익이 되겠지만 유기농산물처럼 소비자 개인에게 뚜렷한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를 불러주는 좋은 사람들에게 돈을 더 받고 싶지도 않았다. 또 돈 많은 사람들만 쓸 수 있는 서비스가 되는 것은 더 싫다. 결국 일단은 오토바이 퀵서비스들과 비슷한 요금을 받는다.
돈은 당연히 안 된다. 지금 오토바이 퀵서비스 회사에서 주문을 받아서 자전거로 일하시는 분이 사대문 안에서 하루에 10~15건을 배송하고 한 달에 약 100여만원을 벌고 있는데, 아마도 그 정도가 최고치일 것이다. 퀵서비스 업계의 잘못된 관행상, 사실상 업체에 종속적인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특수고용직 노동자라서 노동3권도 보장되지 않고, 4대보험도 안 된다. 퀵서비스 단가가 오르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수입이 더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일인 것만은 아니다. 알다시피 비정규직 천만, 실업자 및 백수 사백만, 신용불량자 천만, 세대를 초월한 88만원 계급의 시대다. 도로를 달리는 것도 힘들고 위험한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최저 임금 미만의 수입을 얻는 분들도 얼마든지 있다. 등록금은 천만원이 넘어가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편의점과 주유소, 피씨방에서 밤새하는 최저임금의 시급 알바밖에 없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일하면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일들에 비하면 좋아하는 자전거도 타고 여러 가지로 의미도 있고, 또 시간만 잘 관리하면 최저임금보다는 더 벌 수 있는 이 일이 뭐 특별히 열악하거나 비상식적이거나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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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실제로는?


생각해보자. 서울이 넓다지만, 남산을 중심으로 2km 동심원 안에 사대문은 다 들어온다. 5km 동심원 안에는 강북의 주요지역들이 대충 다 포함된다. 10km로 넓히면 강서구, 강동구, 금천구, 도봉구, 노원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울 지역과 구리시, 고양시, 과천시의 경계까지도 포함된다. 20km 안쪽에는 구리, 고양, 부천, 과천, 하남, 성남, 광명, 안양의 중심부가 포함된다. 실제 거리는 물론 더 많이 나오겠지만, 어쨌든 대략 중심부에서 15km 정도 달리면 서울의 어지간한 곳까지는 갈 수 있다.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의 평균 속력은 14km/h인데, 웬만한 자전거도 그 정도는 된다. 결국 한 시간 정도면 어지간한 곳에 다 갈 수 있는 셈이다.
다음은 2008년 10월부터 2009년 1월까지 내가 달린 실제 주행기록이다. 물건을 받아서 자전거를 굴리기 시작할 때부터 멈추고 난 직후까지의 기록으로서 신호대기, 정체, 길찾기 시간 등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중복배송은 하지 않았다. 보시다시피 전체 거리가 10km 이하인 경우가 69%이고 20km를 넘는 경우는 5%에 불과하다. 평균 거리는 9.2km. 일단은 주문 자체가 그다지 장거리인 경우가 많지 않다. 그리고 걸린 시간으로 보면 30분 이내에 배송 완료한 경우가 58%이고 1시간을 넘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평균 시간은 32.4분이다. 그리고 평균속력은 가장 느렸을 경우가 8.3km/h, 가장 빨랐을 경우가 25.3km/h, 전체 평균은 17.0km/h였다.

내가 빠른 게 아니다. 도로에서 자전거 타는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무리하지 않아도 이 정도 속력은 나온다. 한강 자전거 도로에 가면 나를 추월해서 달리는 자전거들이 적지 않게 있다. 도로용 싸이클이나 고정기어 자전거를 좀 타는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나보다 빠른 것 같더라. 조금 여유있게 달릴라 치면 손잡이에 장바구니를 걸고 달리는 아주머니가 앞질러 가시기도 한다. 사람들이 정말 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데, 자전거는 생각보다 빠르다. 자전거가, 자전거 타는 사람이 원래 그 정도는 된다.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지배되어 있지 않은 사람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이상의 거리가 되면 오토바이의 속도가 빛을 발하기 시작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 한 회사에서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병행하는 곳이 있다. 대략 거리로는 8~10km 시간으로는 한 시간 안쪽은 자전거가 전담한다. 위 주행기록으로 보면 10km 이상은 31%, 한 시간 이상은 고작 10%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90%의 오토바이는 자전거보다 속도나 효율성 면에서 그다지 월등한 것도 아니면서 기름 낭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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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 않나?

느리지 않나?


물론 자전거는 오토바이보다 느리다. 고속도로 같은 길에서 경주를 한다면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도시에서 물건을 배송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당신이 보내는 물건이 배송지에 도착하는 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친다. 회사에서 적절한 기사를 배정하는 시간, 신호 대기 시간, 코스 선정에 따른 지연 시간, 시내 교통 상태에 따른 추가 시간, 정체 시에 차 사이를 빠져나가는 시간, 목적지 근처에서 해당 건물을 찾는 시간, 발송자 및 수령자와 통화하는 시간, 주차하는 시간, 또 걷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발송자가 포장하고 주소 적고 요금 내는 시간, 수령자의 상황 또는 수령자가 있는 건물의 규정에 따른 추가 시간, 때로는 식사 시간까지. 이 시간들을 모두 고려하면 오토바이의 빠른 속력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는 시간의 비율은 그리 크지 않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 비율은 더 줄어든다.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단순히 이동수단의 속력을 비교해서 퀵서비스의 속도를 비교하는 것은 얼마나 순진한 것인가?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물건을 받자마자 목적지까지 바로 달렸을 경우를 가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하는 퀵서비스 라이더는 거의 없다. 보통 두세 개 많게는 대여섯 개까지 물건을 동시에 들고 배송한다. 오토바이가 한두 곳만 더 들렀다가도 곧장 가는 자전거보다 빨리가기는 쉽지 않다. 결국 하나의 물건을 빠르게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이동수단의 속도와 함께 주문자와 수령자의 협조, 퀵서비스 회사의 시스템, 라이더의 상황, 도시의 교통 시스템 등이 종합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따라서 왜 이리 늦느냐고 기사에게 짜증을 부리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봐야 서로 감정만 상하지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전혀 없다. 왜 물건을 여러 개씩 들고 배송하느냐고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해봐야, 당신이 지불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퀵서비스의 가격은 10년전 그대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라이더가 도착하기 전에 바로 보낼 수 있는 모든 준비(물건 포장, 주소와 전화 번호 적기, 약도 출력 등)를 다해 놓고 운이 좋아서 다른 곳 몇 군데 안 거치고 가기를 기대하는 것뿐이다. 사실 가장 빠른 것은 직접 물건을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누구나 다 갖고 있기는 어렵고 면허도 따야 하고 유지비도 든다. 그렇다면 가까운 거리의 경우 직접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은 가장 빠르고도 쉽고 간편한 현실적인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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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메신저는?

외국의 메신저는?


자전거는 초창기 1860년대에 효율적인 이동수단으로써 개발된 것과 동시에 운송수단으로도 쓰였다. 1870년대의 파리 증권교환소에서는 이미 지금과 유사한 의미의 자전거 메신저가 활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0년대 미국에서 자전거 붐이 일어나면서 운송업체가 뉴욕을 비롯한 인구밀집지역에서 메신저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최초의 메신저 회사가 설립되었고, 이후 점차로 체계화된 메신저 회사들이 미국 주요 도시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한편 유럽에서는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운송수단으로써의 자전거는 점차로 잊혀져갔다. 현대적인 의미의 자전거 메신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3년 영국 런던에서 'On Yer Bike'와 'Pedal-Pushers'라는 개척자들이 나타난 이후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런던 중심에서 자전거 메신저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되고, 유럽 대륙에서도 미국과 런던에서 자극받은 기업가들이 메신저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전거 메신저의 수는 점점 늘어서 1993년에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최초의 '세계 자전거 메신저 챔피언십'에는 각국에서 400명이 넘는 메신저들이 참가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영화 <메신저>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도쿄의 자전거 메신저 회사 '티서브(T-serv)'가 단 두 명의 메신저로 출발한 것이 1989년의 일이다. 2평짜리 사무실을 설치한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다. 2001년에는 비율제에서 시급제로 전환했고, 메신저 전원의 사고 보험을 완비하고 있으며, 현재는 하루 수주 건수가 4000건을 넘는 일본 최대의 메신저 회사로 성장했다. 티서브는 10km를 기준으로 그 이상은 오토바이를 이용하지만 순수하게 자전거만을 쓰는 회사들도 있다. 도쿄 말고도 오사카, 요코하마, 후쿠오카, 교토 등의 대도시에서 자전거 메신저들이 활약하고 있다.
메신저들이 사용하는 자전거는 로드바이크, 산악자전거, 하이브리드, BMX, 경주용 자전거 등 갖가지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메신저들의 자전거로 잘 알려진 고정기어 자전거는 오히려 소수의 메신저들만이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의 메신저들은 이른바 '메신저백'으로 알려진 어깨 끈 하나짜리 가방을 사용한다. 자전거 짐받이와 바구니, 또는 트레일러가 사용되기도 하고, 어떤 회사는 커다란 트렁크를 달고 있는 세발짐자전거를 특별히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다.
대도시 별로 있는 여러 메신저 단체들은 도시 내에서 메신저의 권리와 안전과 이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다시 국가별로 국제적으로도 연대해서 교류와 협력을 하고 있다. 1993년부터 시작한 자전거 메신저 챔피언십은 대륙과 국가를 오가며 매년 치러지는 가장 큰 행사다. 메인 종목은 선수들 각자가 곳곳에 있는 몇 개의 물건들을 수집하고 이동시키는 복합적인 경주인데 빨리 달리는 것은 물론 효율적인 루트를 결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밖에도 단거리 스프린트, 무거운 짐 갖고 달리기, 자전거 높이뛰기, 정지자세로 오래 버티기, 급정거시켜서 타이어 자국 길게 남기기, 멈추거나 뒤로 가지 말고 천천히 달리기, 페달로 가는 보트 경주,  자전거 폴로 시합 등이 있다. 이 대회는 올해 2009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
자전거 메신저들의 노동조건은 국가나 도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다들 힘들기는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퀵서비스 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독립적 계약자로서 수입의 일부를 커미션으로 지불하는 조건으로 자전거 메신저 회사와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경우 노동자로서 고용되는 것과는 달리 각종 보험이나 사회보장을 받지 못한다. 사고 위험도 높아서 가장 위험한 직종의 하나로 꼽힌다. 미국에서 1년에 보통 한 명 이상의 메신저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런던에서는 1989년과 2003년 사이에 여덟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메신저의 사고에 대해서 육체적 정신적 회복을 돕는 기금을 모으는 단체가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높은 사고 위험과 하루에 8시간씩 일하고, 거리로는 60~100km 이상 달리는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하면 보수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확한 통계 자료는 구하기 힘들지만, 2006년 영국에서의 한 조사에 따르면 자전거 메신저들이 평균적으로 45~65파운드를 버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최저임금이 시간당 5.52파운드니까 8시간 일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물론 최저임금이 우리나라에 비해서 훨씬 높긴 하지만 말이다. 일본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는데, 시급 1000~1200엔에서 시작해서 최고 등급의 메신저는 시급 1600엔 이상의 수입을 얻기도 한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766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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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아닌가?

혼자 아닌가?


자전거로 물건을 싣고 다니는 것은 전혀 새로운 생각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오토바이 퀵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자전거 메신저가 당연한 것이다. 케빈 베이컨 주연의 <퀵실버>라는 영화를 보라. 가까운 일본에도 오토바이와 경쟁하는 자전거 메신저가 있다. 쿠사나기 츠요시(초난강) 주연의 영화 <메신저>를 보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처럼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인 곳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북경 자전거>를 보라.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쌀, 우편, 신문, 우유, 야채 등등은 자전거가 도맡아서 배달했다. 넓은 지역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재래시장에는 이른바 ‘쌀집자전거’를 이용해서 화물을 나르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오토바이에는 많은 짐을 싣고 다닐 수가 없어서 자전거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쌀집자전거는 시장과 오랜 역사를 함께한 자전거포에서 화물용으로 완벽하게 커스터마이징되고 튜닝되어서 많게는 4~500킬로의 짐을 실을 수 있다. 그 덕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아서 10년 넘은 중고 자전거도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좁은 의미에서 퀵서비스만 따진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 수차례 자전거 메신저가 시도된 바 있다. 자전거를 같이 타던 몇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시작했던 적도 있고, 오토바이 퀵서비스 회사에서 시도했던 적도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은 운영을 중지했다. 하지만 그 용기와 열정으로 가득 찬 도전의 역사는 기억하고 싶다. 내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들은 일부분에 불과하겠지만, 그 역사가 담긴 이름들이다. ‘페달과 사람들’, ‘그린사이클택배’, ‘Bike Errand’, ‘LK 택배’, ‘Quick Bike’, ‘대리넷’, ‘자전거퀵’.
한편 자전거 메신저라는 이름을 내건 것은 아니지만, 오토바이 퀵서비스 회사에서 오토바이와 똑같이 주문을 받고 자전거로 움직이는 분들이 있다. 한 분은 무려 8년 동안이나 이 일을 하고 계신다. 그 분 말씀에 따르면 자기 말고도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 더 있다고 한다. 간단히 오토바이로만 바꿔 타도 수입이 두 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전거를 고집하시는 분들이다. 자전거로 일한다는 사실조차 사람들이 전혀 알아주지 않아도 단지 자전거로 일하는 게 좋아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정말 존경스런 분들이다.
이런 분들에 비하면 블로그 하나 열고 고작 6개월 정도 슬렁슬렁 자전거 타고 다녔을 뿐인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소비자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자전거 메신저는 한국에서 나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하는 데까지는 해 볼 생각이지만,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 자전거 메신저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자전거가 있는 한 자전거 메신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자전거는 자전거 메신저를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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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메신저?

자전거 메신저?


자전거를 타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달리는 사람이다. 자신을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달려가서 만나고, 그 사람이 만나야할 다른 사람을 찾아서 또 달린다. 멀리 떨어진 사람과 사람을 잇고, 물건이 마땅히 있어야할 적절한 곳으로 물건을 움직인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사람과 물건으로 이루어진 환경을 만들고 세상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일종의 메신저다. 무엇을 교통수단으로 삼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직업적으로 하느냐가 다를 뿐.
어떤 이는 휠체어를 타고 어떤 이는 걷는다. 어떤 이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고 다른 이는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운전한다. 또 어떤 이는 더 크고 비싼 자동차를 열망하고 또 다른 이는 남의 차를 몰며 산다. 나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가장 즐거웠기 때문이다. 자전거 메신저가 만드는 세상이 제법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발짝만 더 내딛었을 뿐이다. 내 삶의 시간 중 상당 부분을 이 일에 투여해도 충분히 좋지 않겠나 하고. 내 선택이 이상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교통수단을 선택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당신은 지금 즐거운가? 혹시라도 무엇을 선택할 만큼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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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전거 메신저의 꿈

한 자전거 메신저의 꿈

지음

어느 날 사무실 마당 구석에 낡고 녹 슬은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바퀴는 휘었고 브레이크는 헐거웠다. 무심코 그 자전거에 올라타고 골목길을 달려봤다. 바람이 시원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지하철역 세 정거장 거리의 집까지 타고 와봤다. 한 시간이 걸렸다. 자전거는 도로를 달려야 하는 차라는 것을 배웠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절반으로 줄고 또 다시 절반으로 줄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발바리 떼잔차질을 나가봤다. 자전거가 한 차선을 가득 메우고 달리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동해로 여행을 떠났다. 자전거로 수백킬로를 달리고 산맥을 넘어다니는 게 특별한 사람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짝과 함께 동남아시아와 유럽으로 1년여의 여행을 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배고프면 길가에서 버너와 코펠로 밥을 해 먹었다. 매 끼니마다 최고의 맛이었다. 옷은 자전거 타기 좋은 것으로 두어 벌이면 적당했다. 나머지는 피로를 더하는 불필요한 무게에 불과했다. 자전거 타고 가다가 어두워지면 길 가에서 텐트를 치거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초대해준 집에서 잤다. 언제나 단잠을 잤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즈음 문득 발견한 사실. 나의 몸은 이미 변해 있었다. 움직이고 먹고 입고 자는 것이 모두 자전거에 맞춰진 것이다. 변해 버린 나의 몸은 익숙하고 편안한 이 삶의 방식을 버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걸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처음 자전거와 마주 대한 후로 대략 7년이 흘렀다. 지금 나는 서울의 자전거 메신저다. 나는 아직도 내가 자전거 메신저가 된 것인지, 아니면 자전거가 나를 메신저로 만든 것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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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자동차 공장을 영구 인수할 때

콜린 원드, <자영사회>,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중

171p

 

<노동과 잉여>라는 탁월한 논문에서 키스 페이턴은 노동자들이 자동차 공장을 영구 인수할 때 일어날 일들을 추측해본다. "혁명의 축제가 끝나면, 작업을 재개하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GNP를 늘리라는 지시나 호소에 부응하는 습관으로 되돌아간다면, 소기의 성과를 내버리는 것밖에 안 된다. 물론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뭔가' 토대가 필요하다. 어떤 토대가 필요할까? 결국 '어떤 종류의 일'인가의 문제로 돌아온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조립라인을 재가동시키는 대신 - 젋은 노동자들이 조립 라인을 부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 두 달 동안 토론을 벌이며 앞으로 할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 일을 하려면 조직을 어떻게 편성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자가용 승용차? 왜 사람들은 항상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걸까? 지금 있는 곳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자동차는 일상을 벗어날 필요를 창출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한편, 자동차를 사용하면 과연 편리한가?. 교통정체에 시달리는 것이 편리한가? 국가 손실이 얼마인가? 국가 손실? 웃기지 마라. 국가 손실이나 국가 이익 같은 말은 다 헛소리다. 혼잡한 도로를 건너가려는 노인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보행자가 얼마나 불편한가? 자동차를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기 때문인가? 자동차가 비싸면 사람도 비싸지나? 오히려 반대다. 자동차를 소유하면 정말로 시간이 절약될까? 제조업 평균노동시간은 얼마인가? 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주당 45.7시간. 가정에서 일주일동안 자동차에 들어가는 돈은 얼마인가? 가계 총 수입의 10.3%. 평균이 그렇지, 사실은 20%에 가깝다. 우리 중 절반은 차가 없기 때문이다. 45시간의 25%는 얼마인가? 세상에. 9시간! '시간 절약'을 위해 쓰기에는 더럽게 긴 시간이다!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데는 분명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버스? 좋다. 그렇다면, 버스를 만들자. 하지만, 공해는 어쩌나? 텔레비전에서 봤던 전기 자동차는 어떨까? 기타 등등.

 

전기 자동차가 쓰는 전기 역시 결국은 화석연료나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걸 생각한다면... 

당연히 전기 자동차도 대안은 아니다.

물론 조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좀 더 진전이 된다면...

자동차 자체를 줄이는 것...

자동차 공장을 줄이고, 자동차를 위한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

자동차 공장을 자전거 공장으로 바꾸는 것...

노동자가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생산하기 위한 노동을 선택하고...

노동 시간 대신 자유 시간을  선택하는 것...

사람들이 일상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도피하기 위한 수단을 원하는 대신...

자신들이 살아가는 바로 그 공간을 살만한 공간으로 바꾸어 내는 것...

이런 것들이 가능해지지 않겠는가?

 

'어떤 종류의 일'을 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토론이 필요하다.

 

 

암튼 재밌는 상상이고 멋진 작업장이다.

두 달 동안 공장 세워놓고 토론하는 노동자들...

조립 라인을 부숴버린 '젋은 노동자들'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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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일상성 2

 

메신저님의 [자동차와 일상성] 에 이어서...

 

앙리 르페브르, <<현대세계의 일상성>> 중

 

198p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자동차는 단순히 어떤 기술성이 부여된 물질적 물체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수단이고 환경이며, 요구와 강제들의 담지자이다. 자동차는 등급들을 야기한다. 지각될 수 있고 감각될 수 있는 등급(크기, 동력, 가격)은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한 등급, 즉 행위 수행의 등급과 쌍을 이룬다. 

이 두 등급의 작용은 유연하다. 그것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것들 사이에는 하나의 주변, 하나의 사이가 있다. 다시 말하면 대화와 논의와 논쟁의 장소가 있다. 한마디로 담론을 위한 장소이다. 물질적 단계에서 확정된 위치와 행위수행의 단계에서의 위치는 일대일로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단계를 뛰어올라 점수를 딸 수도 있다. 소그룹 안에서 나는 (몇 분간 또는 며칠간) 챔피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물론 나에게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어디일까? 내가 만일 좀 더 동력이 큰 자동차를 추월한다면 나는 한단계 높은 등급으로 내 위치를 수정시킨다. 이 등급은 과감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교묘함, 술책 따라서 자유에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특히 내가 모험을 감행했는지에 대해 통행인 및 친구들과 함께 오랫동안 자랑스럽게 토의할 것이다. 이런 조건 속에 등급은 더 이상 억압적이 아닌 듯이 보인다. 그것은 통합적으로 된다. 

자동차라는 물체의 신분이 스포츠와의 관계 속에서의 인간의 육체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거기에는 물리적 등급(무게, 힘, 크기 등)이 있으며, 행위 수행의 등급이 있고, 두 차원의 충돌이 있다. 

그런데 이 이중의 등급은 사회적 등급과 그대로 일치한다(부적절하게, 따라서 아주 유연한 방식으로, 그것이 모든 사람들, 즉 분석자들에게는 흥미 있는 일이다). 사회적 생활 수준의 등급과 자동차의 등급 사이에는 유사성(엄격한 동질성이 아니라)이 있다. 그 등급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결정적 정지의 지점을 찾지 못한 채 끊임없이 한 등급에서 다른 등급으로 이동한다. 결코 정의되지 않고 또 정의될 수도 없으며 항상 역전 가능하고 언제나 재검토의 대상이 되지만,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이 분류의 성격이 많은 수의 조합, 대립, 예측을 허용한다. 

 

교통의 기구이고 운행의 도구인 자동차의 실용적 존재는 결국 사회적 존재의 일부분이다. 정말로 특별한 이 물체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강한 이중성을 가진 강력한 이중 존재이다. 즉 그것은 감각의 대상인 동시에 상징적이며, 실용적이고도 상상적이다. 등급화는 상징에 의해 동시에 말해지고, 의미되고, 지지되고, 심화된다. 자동차는 사회적 신분의 상징이고 위엄의 상징이다. 자동차에서는 모든 것이 안락과 힘과 위엄과 속도의 상징이며 꿈이다. 실제 사용에 기호들의 소비가 중첩된다. 물건은 마법의 것이 된다. 그것은 꿈속으로 들어간다. 이 물건에 대한 담론은 수사에 의해 풍요롭게 되고 상상을 감싸 안는다. 그것은 의미적 총체(언어, 담론, 수사와 함꼐) 안에서의 시니피앙적 물체이다. 소비의 기호들과 기호들의 소비, 행복의 기호들과 기호들에 의한 행복이 서로 한데 얽히고 서로 강화하고 상호 중화시킨다. 자동차는 역할들의 축적이다. 그것은 일상성의 강제들을 요약한다. 자동차는 중개물 또는 수단에 부여된 사회적 특권을 극단까지 밀고 간다. 동시에 자동차는 일상에 게임과 모험과 의미를 덧붙여 줌으로써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압축시킨다. 

 

이 물체는 자신의 법규를 가지고 있다. 도로교통법이 그것이다. 아무런 주석도 필요없다. 도로교통법에 대한 의미론적, 기호학적, 기호론적 해설들은 이미 여러권을 채웠다. 그것은 강제적 '하위법규'들의 원형이다. 그 중요성은 오히려 의미의 부재와 사회의 일반법규의 부재를 은폐해 준다. 그것은 기호들의 역할을 보여준다. 자동차에 대한 기호론적(그리고 사회학적) 탐구를 끝까지 밀고 갈 결심을 한 해설가가 의존할 수 있는 '문집'이 있다면 그것이 이 법규를 넘어서서 다른 자료들, 예컨대 법률, 언론, 문학 텍스트들과 안내광고 등을 병합시킨 것이어야 할 것이다. 자동차라는 첨단 물품은 교통 체계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계를 사용하고 또 그 체계에 봉사하는 조직과 제도들까지도 활성화 시켰다.

 

 

 

339p

 

다시 한 번 유토피아 사상에 대해서 말해야 겠다. 일상생활에 관한 한 최소한의 변화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일상생활에 관해 어떤 것을 문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중대하고 불안한 일로 여겨진다. 자동차의 운행체계나 자동차 자체에 대해 하찮은 수정을 가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전문적인 지식과 자격을 겸비한 전문가들은 수많은 결과들을 예상해 가면서, 값이 너무 비싸게 먹힌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이것을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판정할 것이다. 무엇을 증명하는가? 일상성 전체를 다시 문제 삼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인), 호모 파베르(homo faber, 공작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인)는 결국 '호모 코티디아누스(homo quotidianus, 일상인)로 귀착된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인간(homo)의 자질마저 잃어 버린다. 일상인은 아직 사람인가? 그것은 잠재적으로 하나의 로봇이다. 그가 인간의 자질과 성질을 되찾기 위해서는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일상성에서부터 출발하여 일상을 극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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