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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리 복도 없는 것들

 

23일 목요일 아주 늦은 시각, 나는 또 파병연장반대 농성장을 찾았다. 천막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동화씨는 노트북을 두드리며 ‘캬~ 이게 얼마만에 쓰는 농성일지냐!!’ 하며 감탄사를 터뜨리고 있고, 상열씨는 뒹굴거리는 자세로 책을 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전기불이 들어 와 있다.

“어? 오늘은 어쩐 일로 전기가 들어 온대?”

“키키. 형이 온다고 준비 했지”

짜식, 넉살만 늘었다 ^^


내가 농성장으로 간 것이 꽤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우린 잘 준비를 했다.

어제 했던 잘 준비

1.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그제 밤에 나하고 우주가 너무 냄새 많이 난다고 구박 줘서 그런지 동화씨가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도한다. 천막 안에 공기가 않좋다는 핑계로 내가 안 올까봐 걱정 되었나 보다 ㅋㅋ

2. 담배는 바깥에서. 셋이서 덜덜 떨면서 담배를 폈다. 천막안의 공기를 위해. “여러부운~~~ 담배는 실외에서 핍시다~~~”

3. 주변 정리. 천막 안에 있던 이런저런 것들을 주변으로 치운다.

4. 침낭 셋을 깔고 남은 하나를 길게 펴서 그 위에 덮는다.


그리고 마지막, 이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바로 난로.

‘자나 깨나 불조심’

‘형 조심해 침낭 탈지도 몰라’

‘그래도 난로가 있으니깐 따뜻하다 ^---------^’

이런 말들로 우린 흐뭇해하면서도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불상사를 대비해서 난로를 한 3cm 뒤로 옮기고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갔다. 상열씨와 동화씨는 아주 용감하게 양말까지 벗어 던지면서... 아주 흐뭇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23초 뒤에 내 귀를 때리는 소리

‘어! 난로 꺼졌다’

ㅠㅠ

‘뭐? 아·~~ 안 돼~~~’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깐. 아슬아슬 하더라니’

‘아까 가스 시킬 걸’

하지만 후회해도 안타까워해도 12시가 넘은 시각에 가스를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 하고, 다만

‘형 걱정마. 자다가 정 안되면 장애인이동권연대 천막으로 가자’라는 동화씨의 위로를 마음의 온기로 삼아 우린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 갔다.

그렇게 우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추워서 다들 몇 번씩 몸을 뒤척였을 거다.

 


아침 7시 30분.

‘형 기상 시간이야’

‘어..엉...’

‘자 가자 따뜻한 곳으로’

그렇게 우리는 침낭을 챙겨 놓고 뛰기 시작했다. 아침 운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따뜻한” 곳으로 가기 위해. 다다른 곳은 ‘맛나 식당’. 오늘은 동창이 아니고 맛나다. 동화씨는 콩나물국을 먹고 나와 상열씨는 아욱국을 뜨끈하게 먹고 다시 거리로 나왔고 각자 자기 갈 곳으로 갔다.


이렇게 지지리도 복도 없는 것들의 하룻밤이 지나갔다.


겨울에 농성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리고 침략군은 모두 이라크를 떠났으면 좋겠다.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점령과 억압이 멈추고 자유, 평등, 평화가 마구 넘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전범민중재판에 모여던 힘들의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라도 앞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라크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활동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바램이다.

 

아참, 1월 20일에 부시가 취임식을 한다고 한다.
그때 굿을 한판 벌이면 좋겠다.
잡귀를 쫓고 억울한 혼을 달래는 굿을...
그렇게 해서 망자가 다 못한 삶을 우리라도 부지런히 살아보자.
우리가 열심히 사는게 먼저간 혼을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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