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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18
    <장미빛 인생>이란 영화를 기억하시는지요?
    minik

<장미빛 인생>이란 영화를 기억하시는지요?

90년대 초반에 나온 영화 중에 <장미빛 인생>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요? 영화계 386의 기수였던 김홍준 감독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었습니다. 사고를 친 깡패와 시국사건에 연루된 노동운동가,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쓴 무협지 내용이 공안기관의 비위를 건드려 도망다니는 청년. 이 세 사람이 가리봉동의 뒷골목으로 숨어들면서 벌어지는, ‘80년대’라는 시절의 밑바닥 삶들이 끈적거리면서도 애틋하게 그려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런 영화였습니다.

<만화방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게시판을 만들어놓고서는 왠 영화 타령이냐고요? 센스 있으신 분들은 눈치채셨을 겁니다. 그랬습니다. 그 세 사람이 숨어든 곳이 바로 만화방이었습니다. 낡은 건물 어두컴컴한 계단을 벽면을 장식한 만화 포스터 속 여자들이 드러낸 긴 다리에 시선을 빼앗기면서 내려가면 나타나던 그 만화방. 사면 벽을 빽빽이 메운 낡은 대본소 만화들의 퀴퀴한 냄새와 한 쪽 구석에 틀어놓은 에로비디오의 신음소리로 가득찬 그 만화방. 메인스트림과는 결코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한심한 청춘들이 담배 빡빡 피워대며, 혹은 라면으로 끼니 때우며 하루를 버티는 바로 그 만화방. 보여줘라 만화방.

 

 
(썰렁하네요.. 적합한 장면을 못 찾아서..--;;)
 
아직도 많은 분들이 만화방에 대해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계실 겁니다. 부산에서는 마약 사건 보도가 나올 때마다 무대로 등장하는 곳이 만화방이기도 했었죠. 때문에,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조차도 만화방에 안 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대학 1~2학년 때까지만 해도 단골 만화방이 대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이런 만화방에 갈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많은 경우 낡은 건물 지하실이 깨꿋한 건물 3층으로, 낡은 제본소 만화가 일본으로부터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깔끔한 출판 만화로, TV 속 에로비디오가 대형 화면의 뮤직비디오로 바뀌었습니다. 안락한 소파와 쾌적한 공기청정기에 에어콘까지 완비해둔 것은 물론, 금연도 모자라 여성전용 만화방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금연인 만화방은 절대 안 갑니다만... 여성전용 만화방은 가고는 싶으나 못 가고요...)

며칠 전 옆 자리에 앉은 선배(아래 01누리 방 주인입니다)와 이수역 옆 오래된 시장 골목을 지나가는 데, 선배가 그러더군요. 이런 골목을 보면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을 것 같다고. 제가 가끔씩 버스 터미널이나 역 근처에서 이런 만화방들을 만날 때마다 설레이는 이유도 그런 까닭일 겁니다. 저야 뭐, 어릴 때 점심 시간이면 밥만 싸온 도시락 들고 만화방 가서 컵라면에 밥 말아먹으며 만화보던 기억, 그러다 점심시간 끝나서 선생님한테 혼나던 기억, 성인만화 보다 동네 형들에게 걸려서 돈 뜯기던 기억처럼 사소한 기억들뿐입니다만, 여전히 TV 속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듯이, 정리해고 사실 가족에 숨긴 채 출근 시간 넥타이 매고 집을 나선 후 다른 직장 알아보며 길거리 헤메다 지치면 찾아와 짜장면 먹는 젊은 가장, 소파를 침대삼아 잠들었다 주인 아저씨에게 걸려 쫓겨나는 가출한 중학생 같이 밑바닥 삶들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곳, 왕따들, 사회 부적응자들에게도 쉴 자리 하나 내어주는 곳은 역시 만화방이니까요. 김홍준 감독이 하필 만화방을 무대로 삼았던 것 역시 그래서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직도 만화방에 가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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