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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6월 22일, ILO 주40시간 노동제 협약 체결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35년 6월 22일, ILO는 생활수준의 저하를 초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적용되는 주 40시간 노동제를 채택하자는 협약을 맺는다. 전세계적인 대공황의 해법으로 제안된 이 협약은 그러나, 무려 22년하고도 하루가 더 걸린 1957년 6월 23일에야 단 14개국의 비준으로  발효되었다. 우리 나라가 주40시간제를 채택한 것은 그로부터도 또 46년이 지난 2003년 8월 29일이었다.

 

그러나, 고용없는 성장의 어두운 미래가 날로 분명해지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틀린 건 아니다. 오히려 근로시간은 더욱 단축되어야 한다. 주 20시간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야 실업이 해소되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며 양성간 평등한 경제 시스템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근로시간 단축만으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경제 구조에서부터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인간의 관념까지, 수많은 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 그럼에도, 근로시간 단축이 그 핵심에 있음은 분명하다. 이 고용없는 성장 시대, 지속불가능한 과잉생산 시대에는 말이다.



ILO 협약 제47호

근로시간의 1주 40시간 단축에 관한 협약(1935년)

* 효력발생:1957년 6월 23일 (14개국 비준)


  국제노동기구 총회는,
  국제노동기구 사무국 이사회가 1935년 6월 4일 제네바에 개최한 제19차 회의에서,
  회기 의사일정의 여섯 번째 의제인 근로시간단축 문제를 고려하고,
  실업은 광범하고도 지속적인 것인바 개인의 책임은 없으며, 또한 당연히 구제받아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전 세계 수백만 근로자가 고난과 궁핍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근로자가 근대산업의 특성인 급속한 기술적 진보의 혜택을 가능한 한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고려하고,
  국제노동기구 총회가 제18차 및 제19차 회의에서 채택한 결의에 따라 모든 종류의 근로에 있어서 근로시간을 가능한 한 단축하기 위하여 계속적 노력을 하여야 할 필요성을 고려하여,
  1935년 주 40시간제 협약이라고 부를 다음의 협약을 1935년 6월 22일 채택한다.

[제1조] 이 협약을 비준하는 회원국은 다음의 사항을 약속하며 이를 승인할 것을 선언한다. 
   ㈎ 생활수준의 저하를 초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적용되는 주40시간제의 원칙
   ㈏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조치의 실시 및 조성, 또한 각 회원국에 의하여 비준된 별개의 협약이 규정하는 세부규정에 따라 각종의 근로에 이 원칙을 적용할 것을 약속한다.

[제2조] 이하 표준최종규정(비준등록, 효력발생, 회원국에 대한 비준의 통보, 폐기, 개정의심의, 개정협약의 효력, 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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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6월 21일, 사르트르 출생


 

더 말할 나위 없는 세계의 양심, 사르트르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문학과 철학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그의 삶만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있지만, 그에게는 역시 비판이 어울리지 않는다.

 

- 동서 냉전이 격화되던 시기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사르트르는 즉각 "전쟁의 책임은 미국과 남한에 있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남한 군대가 북한의 군대로 하여금 공격하게끔 유인함으로써 북한이 먼저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도발의 주체는 미국의 사주를 받은 남한 정권에 있다는 것이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82&article_id=0000051455§ion_id=102&menu_id=102


- 또다른 저서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서문을 쓴 사람은 사르트르다. 프랑스에서 정신병리학을 공부하는 동안 파농은 직간접적으로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참가 당시 파농의 사상은 사르트르의 폭력적 혁명노선과 궤적을 같이 한다. http://www.chosun.com/svc/news/www/viewArticle.html?id=199907280487

 

-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지만 ‘부르주아의 상’이라는 이유로 수상을 거절했다. ‘부르주아적 결혼’에 대한 저항으로 보부아르와 ‘계약결혼’으로 평생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했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38&article_id=0000275906§ion_id=102&menu_id=102

 

- 프랑스의 68세대는 사실 중학교 때부터 준비되어 있던 세대라고 대체적으로 평가한다. 68년도에 학생운동을 만들어낸 세대라고 하지만, 실제로 68년의 세상을 바꾼 것은 프랑스에서는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중학생일 때 그들이 장 폴 싸르트르의 ‘존재와 무’라는 책을 탐닉하면서 읽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존재와 무’... 지금 들여다봐도 한 페이지를 온전히 나가기 어려울 만큼 어려운 책이지만, 드골의 제3공화국 속에서 프랑스의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존재와 무를 읽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샤르뜨르를 읽지 않던 아이들은 까뮈를 읽었다. 조금 더 대중적이고 지나친 일반화를 가지고 있지만, 까뮈의 이방인의 테제와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의 테제는 같은 생각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런 거대한 변화가 준비된 것은 중학생들이 샤르뜨르를 읽기 시작할 때의 일이지만, 정작 그 때에는 아이들이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는 이유와 그 징조를 읽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도식적으로만 해석하자면, 이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대학의 문제를 해결했고,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프랑스의 문화와 매체가 변화하였고, 이 아이들이 푸코의 책을 읽으면서 푸코의 지지자가 되었고, 강단해서 추방당하다시피한 데리다를 파리에서 강단에 설 수 있도록 하였다. http://blog.naver.com/wasang2.do?Redirect=Log&logNo=20006481992

 

- 어느날, 현장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당시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 기자 장 모로는 시위대 전면에 섰던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 시몬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경찰에 연행됐다. 그런데 신분을 확인한 경찰은 어떤 제재도 없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뿐만 아니라 이들과 함께 연행된 시위대를 풀어주었다. 경찰의 이같은 결정은 프랑스를 붉은 물결로 뒤덮었던 1968년, “볼테르를 체포하지는 않는다”는 드골 대통령의 선언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드골이 지칭한 볼테르는 바로 사르트르였다. 68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사르트르는 프랑스 정부에게 치외법권이었던 것이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47&article_id=0000057119§ion_id=104&menu_id=104

 

- 심지어 70년대에는 한국에서 김지하 시인이 반공법으로 구속되자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http://blog.naver.com/jinguja.do?Redirect=Log&logNo=80013924221

 

- 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면서도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저지른 1956년의 헝가리, 1968년의 체코 침공에 대해서는 단호한 비판을 할 정도로 자립적 지성의 면모를 보였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범죄 심사를 위해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창안한 국제법정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말년에도 마오이스트계열의 기관지인 '인민의 기치'를 손에 들고 거리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던 사르트르였다. http://db1.chosun.com/cgi-bin/gisa/artFullText.cgi?where=PD=19990902&ID=9909022103

 

- 약 2만 5,000명이 참석하여 매우 성대하게 치러진 그의 장례식은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을 연상시키는 것이었지만, 그의 훌륭한 선임자 위고가 받았던 국장(國葬) 승인은 없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었고, 사르트르가 항상 그의 글로써 권리를 지켜준 사람들이었다. http://preview.britannica.co.kr/spotlights/nobel/list/B11s0046b.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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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6월 20일, 세계은행 발족

 

【워싱턴=로이터/뉴시스】 폴 울포위츠 신임 세계은행 총재가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세계은행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2005-06-08 11:17]

59년 전 세계은행, 정확히는 국제부흥개발은행이 발족했다. 글로벌 익스체인지의 캐빈 대나허가 "50년이면 충분하다"고 외친지도 10년이 지났고, 2000년 4월 워싱턴의 세계은행 반대 시위로부터도 5년이 지나, 최근엔 잦아드는 감마저 있다. 그러나, 폴 월포위츠 같은 네오콘이 총재로 임명된 사실에서 확인되듯이, 개혁은 외면당하고 있다. 이제 60년, 충분함을 넘어 지겹지 않나?

 

글로벌 익스체인지, <왜 세계은행은 개혁되어져야 하며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나?> ...



Why the World Bank Must Be Reformed and How We Can Do It

왜 세계은행은 개혁되어져야 하며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나?

 

1. The globalization of market forces, vigorously promoted by the World Bank, creates greater inequality. Over the past 30 years the globalization of the economy-led by the World Bank,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and transnational corporations-has proceeded at a quickening pace. These institutions have pressured governments to remove barriers to the cross-border flows of money and products. Advances in telecommunications and computer technology have made it possible for trillions of dollars in finance capital to zoom around the world, 24 hours a day, searching for the highest rate of interest.

 

This globalization of market forces has greatly increased inequality. Just 150 years ago there was not great inequality between the standards of living of people in the global north and those in Africa, Asia and Latin America. Now the richest 20 percent of the world's population receives 83% of the world's income, while the poorest 60% of the world's people receive just 5.6% of the world's income. The richest 20% of the world's population in northern industrial countries uses 70% of the world's energy, 75% of the world's metals, 85% of the world's wood, 60% of the world's food, and produces about 75% of the world's environmental pollution.

 

1. 세계은행이 정열적으로 추진한 시장의 힘의 지구화는 더 큰 불평등을 창조한다. 세계은행과 IMF, 초국적 기업 등에 의해 주도된 지난 30년간의 경제적 지구화는 점점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기관들은 돈과 상품의 초국경적 유통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하도록 각 국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통신과 컴퓨터 기술에서의 진보 덕분에 수조 달러의 자본이 하루 24시간 내내 최고의 이율을 찾아 세계를 샅샅이 훑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같은 시장의 힘의 지구화는 불평등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단지 150년 전에 지구 북반구 사람들의 표준적 삶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사람들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지금 세계의 가장 부유한 20%가 세계 소득의 83%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하위 60%는 단지 5.6%만을 받고 있다. 북반구의 산업 국가들의 가장 부유한 20%가 전 세계 에너지의 70%, 전 세계 나무의 85%, 전 세계 식량의 60%를 사용하고, 전 세계 환경 오염의 75%를 생산한다.

 

2. The World Bank is wrong in arguing that economic growth will solve the problems we face. World Bank officials keep reassuring us that if we can just get economic growth rates high enough, these problems will be solved. We regularly hear the refain, "a rising tide floats all boats." But for those who don't own boats or have leaky boats, a rising tide means greater inequality between them and the more fortunate. The data shows that during a period of significant growth in world trade (1960 to 1989), global inequality got significantly worse: the ratio between the richest 20% and poorest 20% of the world population went from 30 to 1 to 59 to 1. We should also remember that unrestrained growth is the ideology of the cancer cell.

 

2. 경제 성장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 세계은행의 잘못 중 하나이다. 세계은행 관료들은 우리가 충분히 높은 경제성장률만 확보할 수 있다면 이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우리를 쇠뇌시키기를 계속한다. 우리는 "밀물이 차오르면 모든 보트가 물에 뜬다"는 후렴구를 규칙적으로 듣고 있다. 그러나 배가 없거나 물이 새는 배를 가진 사람들에게 물이 차오른다는 사실은 더 부유한 사람들과 그들 사이의 불평등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통계에 따르면, 세계 무역에서 빛나는 성장의 시기였던 1960년부터 1989년까지 지구적 불평등 또한 눈에 띄게 나빠졌다. 상위 20%와 하위 20% 사이의 비율은 30대 1에서 59대 1로 변화했다. 또한 우리는 무제한적 성장이란 암세포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3. The real function of institutions such as the World Bank is not to promote "development" but rather to integrate the ruling elites of third world countries into the global system of rewards and punishments. Because direct colonial control of the third world is no longer tolerated, northern elites need an indirect way to control policies implemented by third world governments. By getting the elites onto a debt treadmill and promising them new cash if they implement policies written in Washington, the World Bank can effectively control third world policies. You can see the effects right next door in Mexico. For more than a decade, Mexican elites have followed the "Washington consensus" of policy reforms designed by the World Bank. This has created some billionaires, yet for most of the 85 million Mexican people life is more difficult now than it was ten or twenty years ago. If the ruling PRI party did not control the police and military, its blatant corruption and disastrous economic policies would not be tolerated for long.

 

3. 세계은행 같은 기관들의 진정한 기능은 "발전"을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제3세계 국가들의 지배 엘리트들을 전지구적 보상과 처벌 체계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제3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식민 지배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북반구 엘리트들은 제3세계 정부들이 수행하는 정책을 간접적으로 통제할 방법을 필요로 한다. 부채의 챗바퀴 위에 제3세계 엘리트들을 세워놓고 그들이 워싱턴의 정책을 따른다면 새로이 현금을 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세계은행은 제3세계 국가들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바로 이웃인 멕시코에서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멕시코 엘리트들은 세계은행에 의해 디자인된 개혁 정책인 "워싱턴 컨센서스"를 따랐다. 이것이 몇 명의 억만장자를 창조했지만, 8천5백만의 멕시코인들 대다수의 삶은 10년이나 20년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여당인 PRI가 경찰과 군을 통제하지 않았다면, 노골적인 부패와 끔찍한 경제 정책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4. Evidence from many countries shows that the policies promoted by the World Bank are disastrous. Whether you look at poor countries such as Somalia, Rwanda and Mozambique or well- endowed countries such as Ghana, Brazil and the Philippines, the policies pushed by the World Bank have worsened conditions for the majority. Evidence from dozens of countries under World Bank tutelage shows a similar pattern: structural adjustment policies may help countries pay off their foreign debts and may create some millionaires but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suffers lower wages, reduced social services and less democratic access to the policy-making process.

 

4. 세계은행이 밀어붙인 정책들이 끔찍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많은 나라에서 발견된다. 소말리와, 르완다, 모잠비크 같은 빈국에서든, 가나, 브라질, 필리핀 같은 자원 부국에서든, 세계은행이 추진한 정책들은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켰다. 세계은행의 감독 하에 있는 수십 개 국가들에서 유사한 양상들이 나타난다. 구조 조정 정책은 대외 부채를 지불하는데 도움이 되고 백만장자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더 낮은 임금, 감소된 사회복지, 의사결정에 대한 민주적 접근 기회의 약화 등으로 고통받는다.

 

5. The World Bank's emphasis on expanding exports has been disastrous for the environment. As part of the standard structural adjustment package, the World Bank encourages countries to expand their exports so they will have more hard currency (dollars, yen) to make payments on their foreign debts. But this leads countries to overexploit their natural resources. They cut down their forests, which contributes to the greenhouse effect. They pump chemicals onto their land to produce export crops such as coffee, tea and tobacco, thus poisoning their land and water. They rip minerals out of the ground at a frantic pace, endangering human lives and the environment in the process. They overfish coastal and international waters, depleting a resource of the global commons.

 

5. 세계은행이 수출 확대를 강조하는 것은 환경에 대한 재앙이다. 세계은행은, 표준적인 구조조정 패키지의 일부로, 각 국가들이 그들의 대외 부채를 갚을 경화(硬貨)를 더 많이 획득할 수 있도록 수출을 확대하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이는 그 나라들이 자연 자원을 남획하게 만든다. 각 국가는 숲을 베어내는데, 이는 온실 효과에 기여한다. 또 그 나라들은 커피나 차, 담배 같은 수출용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토양에 화학 물질들을 뿌리는데, 이로 인해 땅과 물이 오염된다. 또 그 나라들은 미친 듯한 속도로 땅 속에서 광물을 추출해내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삶과 환경은 위협받는다. 그 나라들은 연안과 대양의 물고기들을 남획함으로써, 전지구적 공유재산의 원천을 고갈시킨다.

 

6. The "free market" economic model being pushed on third world governments is not one the industrial countries used to develop themselves. All the wealthy countries-the USA, Japan, Germany, England, France and the recent success stories such as Taiwan and South Korea-used a heavily state-interventionist model that had government play a strong role in directing investment, managing trade and subsidizing chosen sectors of the economy. The United States was in many ways the "mother country" of protectionism, showing other wealthy countries how to do it. Would we have a big electronics industry or nuclear power industry were it not for the massive government subsidy program called the Pentagon?

 

6. 제3세계 정부에 강요되는 "자유시장" 경제 모델은 산업국가들이 그들 스스로를 발전시키는데 사용한 모델이 아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최근의 성공담의 주역인 대만과 한국 등 모든 부유한 국가들은, 정부가 투자 지시와 무역 관리, 특정 경제 분야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의 강력한 역할을 하는 국가 개입주의 모델을 매우 큰 비중으로 사용했다. 미국은 다른 부국들에 본을 보여준 보호주의의 모국이다. 펜타곤이라는 이름의 대량 정부 보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거대 전력 산업 혹은 핵발전 산업을 갖고 있을까?

 

7. Globalization-from-above is being rejected and millions of people all over the world are struggling to build globalization-from-below. Globalization-from-above is controlled by wealthy elites and driven by a hunger for more wealth and power. But there is another form of globalization made up of grassroots alliances of human rights activists, trade unions, women's organizations, environmental coalitions and farmers organizations. This people-centered form of globalization does not have the amount of money or guns possessed by the elites but it does have moral authority. Just think about the contrast between the dominant system's focus on greed and our focus on meeting human needs. This alternative vision calls for more openness and accountability by institutions such as the World Bank and transnational corporations. It calls for raising wages, health and safety standards in the third world to bring them up to first world levels, rather than driving first world standards downward. It calls for stewardship of natural resources that will preserve something of the environment for our grandhcildren to enjoy. It seeks to redefine self- interest so that it is more in line with the common interest of humanity. The problem confronting us is how to get the leaders of the World Bank to listen to our demands for reform.

 

7. 위로부터의 지구화는 기각되고 있으며 전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부유한 엘리트들이 위로부터의 지구화를 통제하고, 더 많은 부와 권력에 대한 굶주림이 그것을 추동한다. 그러나 인권 활동가들, 노동조합들, 여성운동 조직들, 환경단체들과 농민 조직들 같은 풀뿌리의 동맹으로 구성되는 또다른 형태의 지구화가 있다. 이 민중중심적 지구화는 엘리트들이 소유한 많은 돈이나 총이 도덕적 권위만을 갖는다. 탐욕에 대한 지배 시스템의 초점과 인간적 필요 충족에 대한 우리의 초점의 극명한 대조를 생각해보라. 이 대안적 비전은 세계은행이나 초국적 기업들 같은 기관들에게 더 많은 개방성과 책임성을 요구한다. 제1세계의 기준 아래로 전락하지 않고 그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임금 인상과 제3세계에서의 건강 및 안전 기준 등을 요구한다. 또한 우리 자손들이 환경의 일부를 누릴 수 있도록 천연 자원을 보존할 책무를 요구한다. 그것은 인류의 공동 이익과 일치할 수 있도록 자기 이익을 재정의할 것을 추구한다. 우리가 그 문제에 맞서는 것은 세계은행의 리더들이 우리의 개혁 요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방법이다.

 

An Easy Way to Pressure the World Bank for Change

세계은행이 변화하게 압력을 넣는 손쉬운 방법

 

The World Bank gets most of its capital by selling bonds to wealthy investors. If we could pressure large institutional funds (e.g., university endowments and state worker pension funds) to stop buying World Bank bonds as a way to protest the Bank's destructive policies, we could exert serious pressure on the Bank.

 

Just think about the huge impact the divestment campaign had on South Africa's white minority rulers during the closing days of apartheid. The divestment struggle also raised a key question: who controls how capital is invested and why isn't it a more democratic process?

 

Many institutions such as universities and retirement funds purchase bonds issued by the World Bank. The name appearing on the bonds will be the World Bank's formal nam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These are fixed rate securities which are sold by underwriters such as Goldman Sachs, Fidelity, First Boston, Credit Suisse and many Japanese banks. The bonds pay a good rate of return and are considered safe investments because they usually carry a triple-A rating. They are not officially insured by the U.S. government but, as one bond trader told us, the U.S. government would not stand by and let the World Bank default on its bonds. In other words, the U.S. taxpayer is the ultimate insurer of these bonds-just as we were forced to bail out the Wall Street speculators and Mexican financiers during Mexico's crash in early 1995.

 

세계은행은 그 자본의 대부분을 부유한 투자국가들에게 채권을 팔아서 마련한다. 세계은행의 파괴적 정책에 저항하는 한 방식으로, 우리가 (대학 기부금이나 주 노동자 연금 같은) 거대 기관 투자가들로 하여금 세계은행 채권 구입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세계은행에 중대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아파르헤이트가 끝날 무렵 동안 매각 운동이 남아공의 소수 백인 지배자들에게 미친 거대한 영향에 관해 생각해보라. 이 매각 투쟁은 핵심적 의문을 떠오르게 했다. 자본이 어떻게 투자되는지를 누가 통제하는가, 그리고 왜 그것이 더 민주적인 과정이 되지 못하나?

 

대학과 퇴직연금 같은 많은 기관들은 세계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구매한다. 채권에 나타난 이름은 세계은행의 공식 명칭 : 국제부흥개발은행일 것이다. 이는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퍼스트 보스턴, Credit Suisse, 그리고 많은 일본 은행들 같은 보증인들에 의해 팔리는 고정 비율 증건이다. 그 채권은 회수율이 높고 그들이 대개 트리플 A 등급을 갖기 때문에 안전한 투자로 고려되어진다.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미국 정부에 의해 발행되지 않지만 어떤 채권 거래인이 우리에게 말했듯이 미국 정부는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세계은행이 그 채권들에 대해 채무불이행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1995년 초반 멕시코 위기 동안 월스트리트 투기꾼들과 멕시코 자본가들에게 긴급 융자하도록 강요받았듯이, 미국 납세자들은 이 채권들의 궁극적 보증인이다.

출처 : 글로벌 익스체인지 웹사이트

http://www.globalexchange.org/campaigns/wbimf/reformWorldBan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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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권리, 알릴 권리, 알리지 않을 권리

정보인권, 그 다양한 영역들

정보인권이라는 표현이 NEIS 논쟁과 함께 등장하면서, 흔히 정보인권이라고 하면 감시와 검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정보인권에는 매우 다양한 문제들이 포함된다. 사실 정보인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표현이다. 국제적으로 정보인권과 비슷하게 사용되는 용어로는 커뮤니케이션 권리(communication rights)가 있다. 말 그대로 의사소통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 표현의 자유와 정보 및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정보인권은 이렇게 다양한 인권 문제들과 맞닿아 있다.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이 개인의 정치적•경제적 능력을 결정하기 때문에 정보가 독점되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글리벡 문제다. 글리벡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약품이지만, 이 약품의 제조법을 노바티스라는 다국적 제약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보니 약값이 지나치게 비싸 많은 환자들에게 그림의 떡이 돼 버렸다.

정보 격차 문제도 매우 중요해진다. 농촌이나 산골, 도서벽지는 정보통신 인프라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다. 설치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인구가 적어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보에 접근하는 문턱의 높낮이는 더욱 큰 차이로 벌어진다. 이 외에도 미디어나 정보통신 영역에서 독점기업의 문제, 국가간•지역간•계층간의 정보격차 문제, 국가나 기업의 정보공개 문제, 저작권 문제나 오픈소스 문제 등 다양한 정보인권 이슈가 발생한다. 다만 커뮤니케이션 권리 개념으로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같은 프라이버시권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1996년 6월 일군의 NGO들이 모여 제정한 커뮤니케이션 권리 강령의 경우, 커뮤니케이션과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사회의 민주화에 공헌하게 할 것”과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제도, 과정을 민주화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보인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다양한 표현으로 정보화 시대의 인권 문제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시민단체인 진보네트워크센터의 경우 일찍이 “알 권리, 알릴 권리, 알리지 않을 권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2002년에는 ‘정보기본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이를 표현의 자유, 정보접근권, 정보공유의 권리, 반감시권, 자기정보통제권이라는 다섯 가지 권리로 세분하기도 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초기에 정보화 시대의 시민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를 ‘공적 정보의 공개와 사적 정보의 보호’라는 표현으로 설명했으나 이 개념이 너무 협소하다고 판단, 최근에는 ‘의사소통의 권리와 프라이버시 권리’로 확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자기정보결정권이 취약한 이유

사실 자기정보결정권, 혹은 자기정보통제권은 다른 정보 인권들에 비해 더욱 중요하게 취급될 필요가 있다. 여타의 다른 권리들은 정보화 사회가 확대되면서 함께 발전한다. 하지만 자기정보결정권은 정보화 사회가 발전할수록 점점 더 취약해진다. 다양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해서 개인들의 생각과 생활을 파악하고 향후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다. 최근에는 개개인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고 있다. 현재 개발중인 RFID(전자바코드)라는 기술이 확장되면 모든 물건의 움직이는 위치도 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기록할 수 있는 빅 브라더(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감시나 자기정보결정권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구체적 이슈가 발생할 때 외면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CCTV 설치를 둘러싼 논란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떳떳하다면 촬영 당한다고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냐?”고 되묻는다. 성범죄나 수능시험 부정과 같은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면 늘 “개인의 작은 권리보다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면서 유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도 구축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감청도 허용된다. 물론 개별 사안만 놓고 보면 그런 주장이 옳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도입되는 감시 기술은 그 사안에만 쓰이지 않는다. 유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는 직장이나 보험 가입 때 수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질병 보유자라는 이유로 차별하게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들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감청이나 CCTV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행동이 위축되게 마련이다. 국가기관의 검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감시하는 일이다.


보편적 다수의 권리에서 다양한 소수의 권리로

지금까지 얘기한 정보인권은 사실 일반 시민들의 권리, 즉 보편적 다수자의 권리다. 그런데 인권 일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보화 사회의 진전에 따라 정보인권에서도 소수자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장애인들의 경우 정보접근권이 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때 정보접근권이란 단순히 컴퓨터와 인터넷 접속 회선을 보유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의 유형에 따라 정보접근권의 문제도 서로 다르다. 손이 없거나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체할 기기가 필요하다.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점자 키보드와 점자를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가 필요하다. 또한 시각 장애인들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식도 전혀 다르다. 시각 장애인 전용 프로그램에서는 웹 상의 글자들을 읽어 주는 방식으로 웹 페이지를 읽게 된다. 상당수 웹사이트들이 하위 메뉴를 이미지 파일로 만들거나 심지어 웹사이트 전체를 플래시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제3세계와 관련한 정보인권도 문제다. 서구의 많은 지식들이 사실은 제3세계의 토착 지식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식들을 특허라는 이름으로 독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수천 년에 걸쳐 자신들이 발전시켜 온 지식을 어느 날 갑자기 외국 기업에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약품이나 농산물 종자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매우 심각해진다. 갈취 당하지는 않더라도 경제성이 없거나 근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토착 문화나 지식, 언어들이 무수하게 많다. 이런 까닭에 2003년 스위스에서 열린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는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았다.

정보화 사회가 진전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소수자 문제, 다양성의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정보인권 역시 이러한 시대 변화에 걸맞게 보편적 다수의 권리에서 다양한 소수의 권리로 점점 더 풍부하게 발전해야 할 것이다.

 

월간 인권 200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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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시민자치정책센터 지음,『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 자치운동의 현재와 미래』(갈무리, 2002)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자라려면 그 뿌리가 튼튼해야 하고, 그 뿌리를 이루는 것이 바로 ‘시민자치운동’이다. 뿌리에서 뿜어올리는 영양분 없이는 아름다운 꽃도, 푸르른 잎새도, 빼어난 줄기도 있을 수 없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진중권은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 자치운동의 현재와 미래』(갈무리, 2002)의 표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런데, 정말 자치운동은 뿌리일 뿐일까? 아름다운 꽃이랑 푸르른 잎새랑 빼어난 줄기는 다른 데 있을까?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난 이 소개글이 이 책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자치운동은 작은 풀꽃이다. 뿌리뿐 아니라, 잎도 줄기도 꽃도 다 갖춘 작은 풀꽃이다. 해바라기나 코스모스처럼 사람들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키큰 꽃들이 아니라, 땅바닥에 붙어사는 짐승들, 곤충들에게 정작 소중한 작은 풀꽃이다.


이 책이 안타까워하는 현실은 “지역 사람들끼리 모여도 지역 현안 얘기할 때는 하품하다가 대선 주자들의 동향과 같은 전국적 이슈, 9·11 테러 같은 세계적인 정세에 관해서 토론할라치면 밤을 새며 불꽃튀는 논쟁을 전개”하는 현실이다. “한편으로 그 관념성 탓에,” “다른 한편으로 중앙파적 사고 탓에” 실천적인 실용주의 정신이 질식하고, 탈중앙적 활동이 천시받는 우리 운동의 현실이다. 이 책은 단언하기를 “관념성과 중앙파적 사고, 정확하게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계급이니 민족이니, 민중이니 시민이니, 진보적 민주주의니 사회민주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대립적 개념들도 동전의 양면일 따름이다. “90년대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운동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인간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도 바꾸기로 전환된 것이다. 옷을 바꿔입긴 했지만 80년대 변혁론의 관점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이다.”

 

이미 2년 전에 쓰여진 책인지라, 이 책이 소개한 사례들은 이미 많이 전파되었으며, 더욱 희망적인 사례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마포 성미산 사람들이 그렇고, 뉴타운 광풍에 맞서고 있는 풍동 지구도 그렇다. 전국을 뒤흔든 삼보일배도, 부안 방폐장 반대 투쟁도 지리산 사람들과 공동체와 부안 주민운동에 빚지고 또 빚갚고 있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런 유의미한 사례들은 만들어지고 전파되지만, 그 사례들로부터 이 책이 끄집어내려던 이야기들은 얼마나 전파되고 있을까? “낮 시간을 지역사회 밖에서 보내야 하는 남성들은 반일시민(半日市民)이고, 지역에서 생활하는 전업주부인 여성이 전일시민(全日市民)”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사회적인 변화가 서서히 이루어지는 반면, 관여하는 개인의 일상이 아주 혁명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자랑하는 자치운동의 가치는 얼마나 전파되고 있을까?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사례가 아니라, 이 책이 말하고자 했던 가치들, 그리고 그 가치들을 품고 키워가는 사람들이 모인  시민자치정책센터(http://www.grassroot.or.kr)라는 단체를 우리 지구당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민주노동당 관악갑지구당 소식지 창간준비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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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6월 19일, 제1회 세계여성대회

1975년 6월 19일, ‘평등·발전·평화’를 캐치프레이즈로 한 세계 여성대회가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다.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대회에는 반다라나이케 스리랑카 총리와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테레슈코바 등 세계 138개국에서 2000여명이나 되는 여성들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공통의 목표는 같았지만 국가마다 여성이 처한 상황이 달라 관심분야에 큰 편차를 보였다. 여성대회였음에도 35명의 대회 최고위직 중 여성은 사무총장이 유일할 정도로 주요직을 남성들이 차지한 것도 문제가 됐다. 특히 멕시코는 남성을 대표로 파견하고 그를 대회 의장으로 선출해 빈축을 샀다.

 

첫 대회인 탓에 눈에 띄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세계 여성이 처음 한자리에 모였고 미스·미세스로 불리던 여성을 ‘미즈’로 통일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대회였다.

 

- 조선일보 2003년 6월 19일자 중

 

그렇게 쓰고 있으나, 이 대회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부르주아 여성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이상의 수준으로 나아갔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을 이루고 교육과 기회의 제공과 경제적 권리에서 성차별을 받지 않도록 세계행동계획(a World Plan of Action)을 채택하였던 정도의 성과는 있었다.

 

UN 여성대회가 본격적으로 성주류화의 관점으로 나아간 것은, 나이로비의 제3회 대회였으며, 이후 제4회 북경대회에서는 더욱 발전된 행동강령을 작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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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목련, 혹은 미미한 은퇴

목련, 혹은 미미한 은퇴

                          - 마종기 

1
젊은 봄날에 우리는
먼 외국에서 도착했다.
구식이 된 거리의 실내악.
집 잃은 사람은 구라파로 가고
목련이 구름처럼 피어 기가 질리던
그 계시의 영상을 믿기로 했다.

이사 온 나라는 달기만 해서
목련의 색깔은 더 엷어지고
시계 초침 소리는 더 빨라지고
나는 몸을 감추기 시작했다.
단번에 칼처럼 매워지고 싶었지만
정신 나간 목련은 계속 피면서 지고
여름이 되기 전에 맨발이 되었다.
나는 가벼운 물에 떠돌기 시작했다.

 

2
당신이 같이 걸어주어서
내 길이 얼마나 험했는지
나는 끝까지 모른다.

당신의 이마에서 눈과 목으로
가슴으로, 배로, 그 밑으로
상처 자국의 다리를 쓸어내려도
황막하게 슬프지 않은 곳 어디 있으랴.
젖어서 시리지 않은 곳 어디 있으랴.

지도를 펼쳐보면
기억 나니? 오래전
그 큰 나무 그늘에서 나를 부르던
미열의 연보라색 눈동자.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이 혹시 쉬고 있는 목성과 토성 사이.

오늘도 당신에게 가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표나지 않는
비 오는 날에 보는 목련꽃 벗은 몸.

 

3
평생을 어딘가에 취해 살았다.
행방이 묘연한 내 살림살이.
꽃을 먼저 피워 날리고 난 후에야
뒤늦게 나뭇잎을 만들어 달고
꽃씨 간직할 방도 마련하기 전에
아이들은 차를 타고 제각각
어색한 언어의 나라로 떠났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가까운 친구는 병이 들었고
일요일에는 낙엽이 날렸다.
낙엽은 나무의 눈물,
쌓인 눈물을 다 씻어낸 뒤에
당신에게 들어가 열매가 되었다.

 

4
              -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구약 시편: 133)

 

새벽잠 없어진 것이야 나이 탓이겠지만
그래도 서둘러 내 잠 깨운 창 밖의 새는
누가 잃어버린 추운 인연일까.
나는 그래서 매일 아침 몸이 아팠다.

이제 내 짐도 내려놓고
내 하던 일도 내려놓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일탈
국경의 저쪽에 당신 침묵이 보인다.
죽은 꽃나무 짊어지고 산정을 향하는
당신 연민의 옆얼굴이 밝아온다.

피 흘리는 미혼의 집에서
몸부림하던 문들이 열린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말과 글이
당신의 몸에 눌려 질식하고
땅과 바다는 다 걷혀 가버렸다.

한때 사람은 심장으로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나도 가슴이 뛰었다.
기적같이 당신의 극치에 왔다.
세상에 필요한 단 하루의 아침에
내게 확신의 눈길 보내준 당신과 함께.

 
             마종기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한일회담 반대로 조국을 떠나 30년 넘는 미국생활이 무색하게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일까?) 마종기의 모국어에는 늘 옷깃을 여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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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 금화터널을 지나며

금화터널을 지나며

                                강형철

 

매연이 눌어붙은 타일이 새까맣다

너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 곁에 보 고 싶 다 썼고

나는 정차된 좌석버스 창 너머로

네 눈빛을 보고 있다

손가락이 까매질수록

환해지던 너의 마음

사랑은 숯검댕일 때에야 환해지는가

스쳐지나온 교회 앞

죽은 나무 몸통을 넘어 분수처럼 펼쳐지는

능소화

환한 자리

 

          - 강형철 시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중

 

 

예전에 한 사람과 헤어진 후 금화터널을 지날 때마다 버스 창밖을 내다보며 보고싶다고 되뇌었던 적이 있었다. 내 경우는 장소랑 결합된 기억이 참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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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6월 18일, 과테말라 쿠데타

 

[과테말라=EPA]31일(현지시간) 과테말라 시에서 1980년 1월 스페인 대사관 대학살 희생자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모형 관들 사이를 한 소년이 지나고 있다. 과테말라의 도나르도 알바레즈 전 내무부장관은 당시 원주민들이 스페인 대사관을 점거농성하자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39명이 사망하고 스페인과 단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과테말라 내전의 원인은 사회전반의 빈부 격차와 이데올로기 갈등때문이다. 정부의 군부 우익세력과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촌 및 산악지역의 원주민과 농민들을 대표하는 좌익게릴라 세력이 서로 충돌한 것이다.

 

1944년 오랜 군사독재로부터 벗어나 민주정부가 수립된 과테말라는, 그러나 국민의 2%가 국토의 72%를 소유할 정도로 사회적 모순이 극심한 나라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대지주는 정작 미국 기업인 유나이티드 푸르츠 컴퍼니(UFCO)로 대서양 연안에 22만 헥타르의 땅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 중 85%를 이용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그 회사는 과테말라의 철도를 장악하고 있었다.

 

1951년 65%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된 야코로 아르벤스 구스만은 민주주의의 강화, 불공정한 경제체제 및 토지분배의 개혁을 추진했다. 1952년 6월 27일 발표한 훈령 900호는 모든 이용하지 않는 땅을 유상 수용, 재분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 자신의 땅을 포함하여 총 60만 헥타르가 국유화되었고, 그 수용 비용으로 830만달러가 소요되었다. 62만 8천불의 국채를 받고 8만5천 헥타르의 땅을 몰수당한 UFCO는 본국에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는 1,590만 달러의 보상을 요구했다.

 

아르벤스가 이 요구를 거절하자, 아이젠하워 정부는 과테말라를 소련의 동맹국으로 낙인찍기 시작한다. 53년 8월 미 정부는 아르벤스 정부 전복을 위한 비밀공작 비용으로 270만 달러를 푼다. 결국 주변국과 자국 대지주들도 아르벤스 정부에 등을 돌린다.

 

민주정부 수립 후 온두라스로 망명을 간 군부 지도자 카스티요 아르마스는 망명군을 창설해 조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아르벤스 정부는 국방을 강화하고자 했으나 미국은 과테말라의 무기 수입을 봉쇄한다. 결국 아르벤스 정부는 체코와 협력했으며, 이는 아르벤스 정부를 친공 정부로 낙인찍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54년 6월 18일 아르마스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미 CIA는 라디오 방송국과 일부 정부 기관을 접수하여 쿠데타를 돕는다. 군대도 정부에 협력하지 않자, 6월 27일 아르벤스는 망명의 길을 떠난다.

 

아르마스는 무자비한 우익 독재를 펼치면서, 아르벤스의 사회개혁 조치들을 무효화했다.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농민 및 좌익 반란군이 35년간 미국과 정부군에 맞서 끈질긴 내전을 벌였다. 이 내전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1994년 6월 23일 오슬로에서 설립된 역사규명위원회가 18개월간의 조사를 통해 1999년 발표한 보고서 "과테말라 : 침묵의 기억"은 과테말라 정부가 마야 부족의 말살 및 여타 시민들에 대한 학살과 인권침해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위원회에 확인된 바에 따르면 약 20만명이 사망 및 실종되었고, 확인된 대량학살 현장만도 630건에 달했다.

 

그 학살 중 1980년 1월 31일 스페인 대사관 점거 시위에 참가했다가 불타 죽은 마야 부족 우스판탄 부락의 족장 비센티노 멘추의 딸인 리고베르타 멘추는 당시 정부군의 잔학상을 생생하게 증언해 세계 여론을 움직이고 과테말라의 민주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공로로 그는 1993년 노벨상을 타게 된다. 

 

1991년 세라노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3월에 과테말라 민족화해위원회(CNR)와 과테말라 민족혁명연합(URNG) 사이에 평화협상이 시작되었으나, 군부의 반발로 실패를 거듭하고, 결국 1994년 1월 10일 정부와 URNG간의 평화협상이 재개되어, 3월 인권관련 합의 및 6월 난민송환 합의, 1995년 3월 원주민의 정체성과 권리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 냈다. 1996년 1월 평화협정을 우선 정책으로 둔 아르수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이에 힘입어 3월에는 교전 중단을 합의하였고 그 해 12월29일 마침내 영구평화 정착에 합의함으로써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내전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 1997년 5월, UN 군사참관단의 입회하에 URNG의 무장해제가 완료됨에 따라 과테말라 정부도 총 군전력의 33%를 감축하였다. 따라서 1962년부터 1990년까지 총 10만명의 사망자와 5만명의 실종자, 20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내전이 끝나게 되었다(UN위원회는 20만명 이상이 내전기간중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9년 1월, 과테말라 민족혁명연합(URNG)은 11월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정당을 설립하고 등록하였다.

 

그러나 1998년 4월에 교회 차원에서 정부의 만행을 심층 연구한 보고서를 발표했던 후앙 호세 게라르디 주교가 군부에 의해 살해되었다. 2001년 이 사건에 관련된 3명의 군인이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이 재판에 관련된 판사와 검사, 증인들이 협박을 받고 국외로 도피한 것은 과테말라 민주화의 길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아직까지 보수 정당의 정권이 유지되고, 중남미에서도 특히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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