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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8/04
    김상철, 개헌 논의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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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8/02
    안수찬, 헌법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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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6/15
    서준식의 생각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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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개헌 논의 유감

뭐,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선을 그을 것 까지야. 헌법이 취하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감한다. 계급/계층적 논의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에 적극 동감한다. 희진 쌤의 논의는 바로 그런 작업 중 하나였다.

 

밝혀둘 것은, 아쉽게도, 헌법 다시보기 모임은 '시민행동 내부의 전문가 그룹'은 아니라는 점이다. 몇몇 운동가들이 논의에 참여하고, 시민행동 상근자들이 스탭 노릇을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연구자들의 모임보다는 지속성이 있을 것이지만, 헌법 다시보기 모임에서 나온 여러 성과나 의견들이 시민행동의 성과나 의견들이라고 보는 건 적절치 않다.

 

아마, 이걸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박명림 쌤 논문의 주장과 헌법 다시보기 전체의 흐름은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그 부분을 구분하여 생각하지 않는, 혹은 구분해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쓴 점, 아쉽다. 15일 토론회의 제안 정도를 '순진하게' 제안할 거라면 헌법 다시보기 모임이 그 모임이 이렇게 지속되고 있지도 않을 거다.

 

 

김상철, 개헌논의 유감 (문화연대 문화읽기 7.21)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로부터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권력구조의 문제에 착목하여 내각제 등의 대안 권력 체제 논의에 집중하는 정치권과 헌법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민주적 ‘헌정체제’ 수립을 모색하는 시민사회단체의 흐름은 차별적이다. 그러나 ‘어떤’ 헌법인가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한 ‘텍스트’로서의 헌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지난 15일 프레스센터에서 창비와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헌법과 사회구조의 비판적 성찰” 토론회는 시민사회단체 내의 ‘헌법개혁’ 논의가 본 궤도에 올라서려 함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토론회가 단순히 ‘헌법’에만 집중을 하는 토론회라기보다는 ‘87년 체제’(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는 조희연의 것으로 기억한다)의 부분으로서 헌법체제 혹은 헌정체계를 다루었다.

 

그럼에도 시민사회 내에서 개헌논의를 이토록 적극적인 의제로 다루었던 적은 없었기에 그 의미는 높다. 특히 창비와 공동으로 이런 주제의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은 시민사회의‘주류’가 어느 정도 개헌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내고 있다는 가시적인 징후로 읽을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체 2부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의 1부는 ‘헌법 논의의 지형을 확대하자’는 주제로 홍윤기, 정희진, 박명림이 각각 발제하였다. 홍윤기는 87년 개헌이 가지는 의미를 ‘권력공학에 압도당한 시민혁명’이라는 말로 풀이한다. 실제로 홍윤기가 지적하듯이 87년 개헌은 그야말로 제도 정치의 야합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85년부터 면면히 이어오던 광범위한 민중투쟁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실제 87년 당시 야당이 민중항쟁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전까지 공공연하게 제헌의회 소집이 주요 구호였던 것을 상기하면 87년 헌법이 당시의 열망과 질적으로 얼마나 차별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이에 홍윤기는 87년 헌법에 대해 “헌정체제 성립의 원동력 부분인 국가시민권과 헌법작성 주체인 정치권이 확연하게 분치되는 형세”로 헌법이 개정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런 한계를 바탕으로 연성형 시민국가 전략에 걸맞는 헌법체제를 제안한다. 그는 국민을 주체로 삼는 헌법은 강성형 국민국가의 표본이었다고 지적하면서 평화적이고 호혜적인 내용을 포괄하는 시민 주체의 연성 국가의 이미지를 헌법에 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특히 헌법에 정치, 경제, 사법 영역에의 시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을 주요하게 지적하고 있다.

 

다음으로 정희진은 기존 헌법의 조문들을 여성 혹은 ‘비국민’의 시작에서 검토하면서 “현재 한국헌법은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서구가 근대시민사회로 진입할 당시의 개념을 그대로 전제하고 있어,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다음으로 박명림은 민주적 실천을 절차와 과정의 수준과 능력 또는 책임과 결과의 영역으로 구분하면서 87년 체제 이후 현재까지 전자에 집중하면서 결과적으로 한 사회의 집합적 삶의 형태를 이루는 주요한 요소로서 실질적인 민주적 요소에 집중한다. 박명림은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왜 ‘모든’ 민주화 이후의 정부들이 항상 중간평가 약속, 3당 합당, 내각제 개헌 약속, 재신임 약속, 탄핵 파동과 같은 ‘(초)헌법적’ 사태에 예외 없이 직면하였느냐”고 물으면서 이는 단순히 대통령들의 무능이나 정략의 결과가 아니라 ‘헌법체제’의 문제점에 기인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매우 정당한 지적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정치의 사법화’를 지적하면서 최근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판결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논의가 급격하게 ‘어떤’ 헌법인가의 문제로 집중되면서 헌법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논의가 모아진다. 그러면서 민주적 원칙을 바탕으로 헌법체제를 견인하고자 하는 기획이 ‘개헌 일정’으로 수렴된다. 박명림이 제안하는 방식은 1차적으로 시민사회 내에서 ‘민주헌법제정 시민사회연대’를 구성하고 국회 내에 헌법개정협의회를 둔다. 이를 통해 헌법제정의 논의를 국민화하며 최종적 채택 권한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주며 마지막으로는 다시 국민투표를 통해 추인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명림의 로드맵은 2007년 하반기가 종료시점으로 상정되어 있다.

 

15일 토론회는 그동안 헌법관련 토론회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이론 중심적이었던 점에 비추어볼 때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 매뉴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실질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발제자들도 밝히고 있듯이 ‘함께하는 시민행동’내부에 전문가 그룹이 지속적으로 이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의식의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너무나 순진한 발상에 머물 가능성이 다분하다. 왜냐하면 갈등을 전제하지 않는 개헌 논의와 로드맵이 실현될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헌법에 대한 논의는 헌법수호의 논리와 헌법개혁의 논리로 첨예화되고 있으며 그 경계는 계층 혹은 계급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헌법에 대한 논의는 일차적으로 계급적(계층적) 논의로 확장되고 논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헌법 수호의 논리를 살펴보자. 정희진이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과거 민주화 운동의 법적 정당성은 대개 헌법에서 찾아졌다. 다시 말해 ‘사문화’ 헌법의 내용들이 민주화 운동의 ‘법적’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90년대 초반 토지공개념에 근거한 여러 법률들을 개인의 재산권차원에서 위헌화했던 것도, 작년 대통령 공약으로 제출되었고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던 수도이전 특별법을 위헌화했던 것도 바로 헌법이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헌법의 해석자인 헌법재판소였다). 다시 말해 헌법은 절대로 공명정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행정적 권력이 연성화되고 실질적인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해석이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전경련 산하의 ‘자유기업센터’에서 지난 98년 내놓은 <한국 민주정치와 삼권분립>이라는 책은 자본 측의 ‘헌법활용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뉴얼이다. 이 책의 부제인 ‘사법심사권 확충을 중심으로’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권을 중심으로 소위 문민화된 정부가 추진해왔던 ‘한줌의’ 개혁정책에 대응하자는 내용이다.

 

이러한 성격은 헌법재판소의 구체적인 판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를 테면 지난 2004년 판결된 ‘이라크전쟁 파병과 통치행위’에 대한 결정문에서는 “일반 시민에겐 파병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할 적격이 없다”는 논리가 보이며, 지난 3월 퇴임한 김영일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헌법재판에 대한 시민참여 요구에 대해 “법이 지니는 고유한 의미를 찾아내고 거기에 적용할 헌법조항의 의미와 헌법 정신 등을 해석해 내는 작업이야말로 진정 오랜 세월 법의 해석작업에 임하여 왔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없이 오로지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 헌법 정신을 찾아내어 선포하는 법률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거기에 법을 전공하지도 아니한 어떤 상식인이 법률가를 대체하여 그와 같은 일을 올바로 해낼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반박하는 내용을 보자.

 

다시 말해, 헌법 개정의 논의는 현재 헌법이 취하고 있는 정확한 ‘위치’의 문제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흐르고 있는 계급적(계층적) 차별이라는 요소를 밝혀내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개인의 사적 권리를 우선하고 법 해석의 독점을 정당화는 현재의 헌법재판소의 흐름이 과연 민주주의적인 것인지 판단해야 된다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와 대체될 수 없다. 누가 언급했듯이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상철

 

원문 보기 : http://culturalaction.org/weekly/maynews/read2.php?table=organ&item=2&no=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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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찬, 헌법과 인권

7월 15일 심포에 대한 안수찬 기자의 가장 솔직한 이야기인 것 같다. 심포의 문제의식에 한껏 끌리면서도 헌법의 압도적 위상, 혹은 안수찬 기자 본인 표현으로는 '관습헌법'으로 인한 주저함이 남아있는, 나나 우리 헌법 다시보기 대다수 구성원들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결국 발리바르까지 끌어들이고 나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사실 발리바르가 인권의 정치에 대한 얘기를 한 것도, 유럽 헌법과 연관된 얘기라 한다. 유럽이 만들어지고는 있으나, 혁명, 즉 구성(혹은 제헌) 과정은 없는 (혹은 시민사회와 무관한) 유럽 만들기에 대한 발리바르의 문제의식이 "인권의 정치"라는 문제설정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법·제도와 광장의 이분법이 약간 걸리지만, 아직까지 그 이분법을 명백히 넘어서지 못한 이 쪽의 책임이 더 크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정말 아쉬운 것은, '인권의 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안수찬 기자의 글 어디에서도 정작 정희진 쌤의 논문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헌법과 인권 (안수찬 위원)  

안수찬/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지면을 즐겨 읽는, 적지 않은 수의 법률가 또는 법학자들에게는 죄송하게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법이란 그저 거만한 권위와 고리타분한 구습의 결정체라고 나는 믿었다. 법에 갇히는 순간, 법의 권위에 굴복하는 순간, 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장엄함과 현실의 생동감은 그 빛을 잃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이런 정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개혁진보 진영에서 이어져 내려온 ‘관습 헌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법에 목매달아서는 안 된다는 그 불문율 말이다. (대신 ‘권력’에 목매달았던 셈인데, 생각해 보면 권력이나 법이나 뭐 다를 게 있다고, 그 둘 사이에 넓고 깊은 해자를 파고 법 제도 일반을 ‘사갈시’했는지 모르겠다)

 

법을 폐지하자는 데모는 해봤어도, 실제로 어떤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활동은 그래서 여전히 낯설다. 그것은 길게 잡아야 시민단체들이 제 자리를 잡은 지난 10년 안쪽에 시작된 일이다. 그나마도 여전히 운동의 중심은 ‘법’이 아니라 ‘광장’에 있다는 게 이들 시민단체의 믿음이자 나의 믿음이다.

지난 15일, 한 학술대회에서 나는 그 ‘믿음’이 묘한 균열과 긴장에 놓여 있음을 절감했다. 분명 그것은 민주주의의 에네르기가 광장에서 제도로 전화하는 (또는 전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 ‘역사적 순간’의 도래를 웅변하는 현장이었다. 물론 이때의 ‘순간’이 1-2년 안에 마무리될 리 만무하고, 사실은 앞으로 또 다른 반세기가 더 필요한 ‘긴 과정’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여하튼 민주주의 균형추가 광장에 그늘을 드리우면서 법과 제도를 향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음은 분명해 보였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하루 종일 열린 그 학술대회의 주제는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헌법과 사회구조의 비판적 성찰’이었다. 창비와 함께하는시민행동이 공동 주최한 이 학술대회에는 지난 1년여 동안, ‘헌법의 민주적 개혁’ 또는 ‘(현행 헌법으로 대표되는) 87년 체제 극복’을 고민한 각계 학자들이 함께 참가했다.

 

여기서 시시콜콜 그날의 발제와 토론 내용을 옮길 생각은 없다. 궁금하신 분은 <한겨레>에 쓴 제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다만 그 기사에 온전히 담지 못한 한 ‘장면’을 전하고 싶다.

(기사보기 클릭 ☞ 87년 헌법, 변화된 가치 반영 역부족
                         
‘시민헌법 대토론회’ “개헌 논의는 사회개혁 큰 줄기”
                         
“87년 개헌은 정치세력 임시협정 시민헌법 만들자”)

 

오전 발제에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현행 헌법의 민주적 개혁을 강하게 주창했다. 6월 항쟁의 성과물이지만, 실제로는 그 함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민주주의의 진전에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는 현행 헌법을 정치협약이 아닌 시민의 헌법으로 개혁하자는 게 그 요지였다.

 

그런데 오후 토론에 나선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이를 강력히 비판했다. 민주주의의 진전은 (계급계층에 기반한) 정당정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헌법의 권위에 기대는 헌정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헌정주의는 원래 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인데, 진보개혁 진영이 이제 그 ‘헌정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박명림 교수는 시쳇말로 최장집 교수의 ‘수제자’다. 공개 석상에서 이런 중대 이슈에 대해 그것도 스승이 제자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보기 힘든 장면이다. 한 가지 더. 사실 박 교수의 ‘민주적 헌정주의’ 또는 ‘헌법의 민주적 개혁’은 최장집 교수의 몇몇 저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바 크다. 김대중 정부 시기 <월간 조선>의 마녀사냥에 크게 ‘데인’ 최 교수는 한동안 정치사회적 발언을 아끼다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런저런 글과 말을 집중적으로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는 헌재를 포함한 사법권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 민주주의 심화를 저해하고 있다는 데 모인다. 그리고 이 무소불위의 사법권력은 87년 헌법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박명림 교수는 자신의 헌법 개혁 논의를 ‘민주적 헌정주의’라고 표현한다. 최장집 교수의 이날 비판은 아직 헌정주의로 옮겨갈 단계가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 그 자체에 집중할 때라는 지적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정치학적 논쟁을 더 길게 풀어쓰지는 않겠다. 다만 이들이 고민하는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의 제도화(헌법화)’의 핵심은 바로 인권의 제도화, 정치화의 문제와 잇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박명림 교수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는 ‘인권’의 지향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 ’ 정도가 개인이 갖고 있는 원천적 권리에 대한 규정이라 ‘해석’할   만하다. 다만 그 내용의 상당수는 ‘국가주의’에 기울어져 있다.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고 그에 따른 국민의 지위를 정하는 ‘발상’이 깔려 있다.

 

헌법 제2장에는 모두 29개조에 걸쳐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적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차별금지’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 침해 금지’ ‘통신비밀 보장’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재산권 보장’ ‘교육권’ ‘노동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환경권’ 등이 여기에 모두 명문화돼 있다. 다만 그것은 난삽하고 복잡한 나열에 불과해 보인다. 인권의 여러 양상과 국면을 어떻게 계통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2장 전체를 차지한 여러 권리와 자유는 ‘생동하는 권리장전’이자 ‘민주주의의 고향’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그저 ‘화석화된 문자’로 읽힌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면, 헌법 개혁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기본적으로 이런 인권 조항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박명림 교수와 최장집 교수의 논리를 이 문제에 대입하자면 이렇다.

 

박 교수는 사실상 ‘사문화’돼 있을 뿐 아니라, 인권 개념의 적극적 확장을 막는 현행 헌법을 ‘시민들의 공론장’에서 의제로 설정해, 사문화된 조항은 되살리고, 부족한 조항은 더 강화해 진정한 인권헌법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셈이다.

 

반면 최 교수는 현단계의 문제는 여러 인권 조항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정치 권력과 기관이며, 나아가 헌법 해석의 보수화를 가능케 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왜곡이이며, 궁극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왜곡시키는 정당구조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의 현실은 최 교수의 지적에 힘을 싣는다. 헌법보다 더 큰 권위를 보안법에 부과하는 원천은 헌법 조문이 아니라, ‘정치’다. 그러나 동시에 보안법이 합헌이라고 판단하는 헌재의 권위에 힘을 싣는 것은 헌법 조문이기도 하다. 그 조문을 바꾸는 과정이 곧 민주주의의 실현이기도 하다는 게 박 교수의 이야기다.

 앞에서 민주주의의 추가 ‘광장’에서 ‘제도’로 넘어가고 있다고 감히 말했다.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 교수와 박 교수의 논쟁은 이미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전화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아마도 최 교수와 박 교수의 주장을 가로지르는 지점 어디엔가 합리적 대안의 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것은 이런 것이다. 법학자도 정치학자도, 구체적으로 현행 헌법의 어떤 조항이 ‘인권’의 걸림돌인지, 어떤 조항을 더 확대 강화해야 하는지, 어떤 조항을 새로 추가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

민주적 헌법 개혁의 논의는 인권단체들의 몫이기도 하다. 최 교수의 방법론을 빌리건, 박 교수의 방법론을 빌리건, 인권의 사회화 과정은 현 단계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고리이자 가장 첨예한 대척점이 될 수 있다.

 

이념의 시대는 갔고, 광장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면, 모든 운동과 역사의 출발점은 결국 자유롭고 그래서 무한히 존귀한 개인일 수밖에 없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 그리고 그 총합으로서의 헌정 제도를 고민한다면, 그 출발 역시 ‘인간’ 각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인권은 지금 한국 사회의 ‘말과 글’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를 바로 잡는 데서,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작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띠엔 발리바르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는 ‘인권의 정치’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계급의 정치에 발목 잡힌 좌파의 도그마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내가 보기에 인권의 정치는 대단히 급진적인 구호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헌법을 말한다 할 때, 가장 할 말이 많아야할 사람들도 바로 인권운동가들이어야 옳을 것 같다. 정치학자들은 지금 ‘헌법을 민주주의의 품으로’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헌법을 인권의 품으로’라는 슬로건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민주주의는 그 곳으로 가는 길에 붙여진 이정표다.

 

원문 출처 : 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bal&y_number=25&nne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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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 '정보통신 2등국가'도 좋다

유비쿼터스에 대한 나의 고민과 거의 같은 고민. 이주헌 원장, 참 매력적인 사람이다. 현정포럼을 만든 날카로움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정보통신 2등국가도 좋다" 그 슬로건도 좋다. ^^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간다. 다름 아니라 요놈의 컴퓨터 때문이다. 아침에 눈 뜨자 마자 부터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눈 떠 있는 내 곁엔 인터넷 창도 떠 있다. 이메일은 물론 뉴스와 각종 정보취득에 난 철두철미하게 인터넷에 의존하고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서프라이즈까지 서핑하다 보면 시간 낭비도 심하다. 참 잘못된 습관이다. 요놈 때문에 독서량이 대폭 줄었다. 고작 최신 발간된 전문서적을 틈나는 대로 훑어볼 뿐, 연구보고서까지도 PDF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읽는다. 책이라곤 다들 읽었다는 흔해빠진 '다빈치 코드'를 수 개월째 손에 쥐고 있다가 출장 중에야 겨우 읽었다. 무엇보다도 해외에선 인터넷 접속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내 직업이 IT라지만, 이토록 난 심할 정도로 조그마한 정보가 필요하다 싶을 때면 당장 키보드부터 만진다. 네이버의 지식DB를 찾는 경우도 자주 있다. 영화예매, 기차표 구매, 은행업무에, 심지어는 벌금까지 인터넷으로 처리한다. 심하게 IT에 종속된 삶이다.
 
이런 경우를 보고 인터넷 중독이라 하나. 앞으로는 휴대인터넷 WIBRO가 달리는 차에서도 인터넷 이용을 하게 해 준다니 웃어야 되나 울어야 되나 모르겠다. 이것이 내가 추구해 왔던 IT선진국의 모습이었던가. 하하.


내 생활을 지배하는 또 하나는 휴대폰이다. 요놈의 자그마한 단말기는 24시간 나를 지킨다. 침대 옆까지도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이 전화를 통해 난 바깥과 교감하고 산다. 편리하긴 하다. 내 인생을 만드는 가까운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이 번호로 날 자주 찾아주어 고맙다. 사무실로 전화하는 분들과는 달리, 심리적으로 정겨움을 느끼는 친구가, 제자가, 그 외 친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반갑다. 아내와 애들은 회의 중일는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아예 SMS 문자로 대신한다. 애들과 주고 받는 문자를 통해 바쁜 와중에 그래도 난 아빠 됨을 확인하곤 한다. 가끔씩은 MP3음악파일도 다운로드 받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친구 찾기'도 한다. 가족의 소재가 궁금할 때이다. '디카' 사진도 곧잘 찍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가족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한다. 결국 난 휴대폰을 몸에 지니지 않고는 왠지 불안해하는 사람으로 전락되었다. 심히 휴대폰에 종속된 것이다. 다행히 발신자 번호(CID) 서비스가 제공되어서 망정이지, 그래서 급히 받지 않아도 좋을 만한 전화는 나중으로 미룰 수 있어 망정이지, 요즘 판치는 060 스팸 전화까지 몽땅 날 귀찮게 할 뻔 했다. 이제 곧 화상전화가 가능한 휴대폰이 본격 보급된다니, 이 역시 내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는지 모를 일이다. 이것이 진정 내가 바랬던 IT강국의 진면목이었던가.

 

요즘은 주말을 제외하곤 잘 보지는 못하지만 한 때는 TV도 내 시간을 갉아먹는 원흉이었다. 뉴스 프로그램과 축구중계는 물론, 다큐멘터리와 시사토론 프로그램은 일단 눈에 띄어 보기 시작하면 난 중간에 자리를 뜨지 못한다. 특히 구형 TV를 PDP로 바꾼 후에는 그 선명함이 너무 좋아 더욱 시간을 뺏기곤 했다. 바보상자라더니 정말 난 바보의 모습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게다가 2년 전에는 갑자기 꼭 필요하지도 않은 프로젝터와 대형 스크린, 'Home Theater' 스피커들을 설치하고선 DVD영화는 물론 그냥 봐도 좋을 TV프로그램까지 굳이 스크린으로 보곤 한다. 비디오방에 가기가 귀찮은 날이면 프로젝터를 인터넷과 연결시켜 영화를 다운로드해서 보는 일도 종종 있다. 물론 큰 화면에 소리까지 웅장하니 생동감은 넘치지만, 집에서조차 꼭 대형 스크린이 필요하냐는 것이 '기계치'인 아내의 표정인 것도 같다. 앞으로는 영화나 방송을 시청하다가 즉석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사물에 대한 정보를 얻고 필요한 경우 주문까지 할 수 있는 T-상거래 서비스가 개시된단다.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졌다는 소식이나 대문이 잠겨있지 않다는 경고문과 함께 대문 밖을 비추이는 화면이 스크린 구석에 나타나는 홈 네트워킹 시대도 도래한단다. TV보면서, 정보 서핑하랴, 주문하랴, 집 안팎 감시하랴, 어휴, 난 더욱 바쁘게 살 것 같으니 정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이것이 진정 내가 꿈꾸어 왔던 정보통신 일등국가의 문명생활이었던가. 정보통신 이등국가가 차라리 좋지 않았던가? 하하.

 

그래도 현대 컴퓨터와 휴대폰과 디지털TV의 사용에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요놈들이 일단 우리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 손으로 통제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머지 않아 눈에 띄지도 않은 컴퓨터들이 내 주위를 바글거릴 것이란다. 빌 게이츠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된 컴퓨터는 10억 대쯤 되고 2010년까지는 다시 10억대가 넘게 추가로 만들어질 전망이지만, 이 앞으로 생산될 컴퓨터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능 상으로만 컴퓨터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편지지 크기의 회의용 PC, 음악과 영화 감상용 TV식 엔터테인먼트 PC는 물론, 휴대폰이나 자동차의 안의 컴퓨터들과 공항과 소매점에서의 보이지 않은 컴퓨터 등이 생활 곳곳에 있을 것이란다. 이 신형 컴퓨터들이 나도 몰래 날 알아보고 내 가방을 뒤지고 내가 입고 있는 내 건강상태까지도 간파하는 시대도 멀지 않았다. 특히 이들은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사람들은 컴퓨터라고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띌 것이란다. 문자와 언어인식 등 인공지능이 보강되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주변을 맴도는 상황도 예측된다. 이미 선진국 소비자들은 무의식 중에 매일 150개의 컴퓨터 기능이 내장된 전자기기와 함께 있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내일의 모습이다. 오늘이 차라리 행복한가, 아니면 정말 내일을 기대해야 하나. 헷갈린다.

 

그러나 한편 이와 같은 기술발전은 '글로벌 메가트렌드'일 뿐 아니라 인류의 꿈이 아닐 수 없다. 잘 살고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IT만큼 효과적인 도구는 없으리라.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IT는 국민의 먹거리이자 젊은이들의 희망이고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되었다. 삶이 IT에 종속됨은 생활 습관을 바로 잡아 잘 극복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사실은 정보통신부의 839전략이나 u-코리아 건설계획이 더욱 변화무쌍한 미래를 예측하고 있음을 확인할 때면 더욱 반가울 뿐이다. 통신과 방송과 인터넷과 교통과 금융이 완벽하게 연결되어 편리함을 더해 주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리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고 눈에 보이지도 않은 컴퓨터 칩들이 어느 곳에나 존재하면서 우리 개개인이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던 낱낱이 알아 생활의 도우미가 된단다. 2만불 시대의 주역인 IT는 국가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삶의 편익을 위해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게 만들어 우리나라를 일등 선진국가로 도약시킨다니 얼마나 기대되는가. 아니, 아찔한 전율까지 느낄 만 하지 않은가.

 

그러나 한가지만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름 아니라, 이러한 모든 논의 중에서 사생활이 얼마나 보호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만큼은 불식시켜야 한다. 정부가 국민에 대한 정보를 과다 보유하고 이를 통해 통제하는 조지 오웰의 '빅 브러더'의 탄생을 걱정함은 아니다. 전자정부가 제 아무리 확장되고 시스템 기능이 보완되더라도 전자감시사회의 형성만은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억제해 나가리라고 믿는다. 정부가 시민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났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문제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개인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가 오용하고 악용함이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신원정보보다는 기업이 확보하고 있는 개개인에 대한 경제, 건강, 구매관련 정보 등이 훨씬 더 민감하다. 핸드폰 이용정보나 위치정보 등은 더욱 치명적이다. 사생활이 몽땅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예로, 5m 내외의 정확성으로 위치를 알 수 있는 텔레메틱스나 LBS 서비스가 각종 GPS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면 현재 어디로 이동 중이라거나, 어느 식당에서 식사 중이며, 무슨 호텔 몇 호실에 묵으면서 누구와 통화 중인지 등을 알 수 있다. RFID 기술이 본격 보급되면 언제 어디서 무슨 물건을 구매했는지를 알 수 있고, 홈 네트워킹과 연결되면 즐겨 듣는 음악이 무엇이고, 냉장고에 복용하는 약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 수도 있다. 은행 잔고가 얼마인지, 최근 무슨 영화를 시청했으며 누구와 어디로 여행을 다녀 왔는지, 무슨 법규를 위반했는지, 얼마만큼의 부동산을 보유 중인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모두 가능하다는 말이며, 목적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호기심과 잘못된 본능이 어디선가 꾸물거릴 것이라는 예견이다. 연예인들에게만 X파일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란 말이다.

 

사실인즉 나는 정보화의 역작용 --- 예를 들어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나 스팸메일의 범람, 지적소유권의 침해, 그리고 음란정보의 가정침투 등 --- 에 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 편이다. 금융거래에 필수적인 시스템의 보호와 안전 문제 등도 기술적 대응책이 강구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진정 '따뜻한 디지털세상'이 강조해야 할 것은 정보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제도의 정착일 것이다. 편리함이 다소 줄더라도 외부 시스템들이 나에 관한 정보를 철저하게 오용하지 않을 사회, 익명성이 다소 일시적으로 혼란을 가져 오더라도 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이버 커뮤니티, 생산성 저하효과가 약간 있을지언정 나와 내 가족의 사생활이 절대 침해 받을 수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자, 정보통신 일등국가의 모습이리라. 그래서 철두철미하게 법과 제도로 미리 안전 장치를 만들고 사회적으로는 '신 정보윤리의식'을 뿌리내리게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정부가 앞장서서 제발 신뢰를 심어 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IT복지국가의 기본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의 감시활동도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부터 새로이 준비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보통신 일등국가'는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주장했던 표어이다. IT로 잘 살고 행복하고 튼튼하고 당당한 국가를 건설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핵심은 경제강국보다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는데 있었다. 따라서, 만약에 정보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IT기술문명국가로만 발전한다면 난 차라리 '정보통신 2등국가'로의 회귀를 외치련다. 우리 모두 '따뜻한 디지털세상'의 목표를 바로 세우자.

 

이주헌(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원장의 블루진 에세이 중

원문 : http://www.kisdi.re.kr/kisdi/fp/yard/essay/EssayView.jsp?idx=282&kin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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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의 생각 머리말

2003년 어느 게시판에 올려둔 거 찾아옵니다. 운동가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이 글 읽으면서 늘 생각합니다.

서준식의 생각 머리말 2003-03-17

 

너무 당연한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책을 쓸 때는 서문을 잘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새삼 했습니다. 홍세화, 강준만, 박노자, 진중권 등등의 칼럼 모음집을 왠만하면 사지 않는 제가, 이 책을 사게 된 건 오직 서문 때문이었으니까요. 요즘, 딱딱한 책들 읽으면서 눈물 지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 많겠지만, 한 자 한 자 손으로 (아니, 키보드로) 배껴 어딘가에 담아두고 싶어서 이 곳에 올립니다. 방장님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머리말

운동가의 글쓰기를 생각하며

이 책은 사실상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산문집이다.
나는 그 흔한 '평론가'도 아니고 '칼럼니스트'도 '자유기고가'도 아니다. 1988년 감옥에서 나온 후로 나는 인권운동밖에 모르고 세상을 살아왔고 나에게 '인권운동가' 말고는 다른 직함이 없었다. 운동가가 자신의 산문들을 모아 출판하는 일을 좀처럼 보기 힘든 우리 사회에서 나는 이렇게 책을 냄으로써 자칫 운동가가 아닌 '글쟁이'로 오해받지나 않을까 마음이 불편하다.

어렸을 때 나는 거의 만능에 가까운 스포츠맨이었다. 일찍부터 땀흘리며 근육을 단련하는 일의 고통 속에 행복을 발견했던 나는 당연히 글쓰기나 책읽기와는 무관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어느새 나는 확실히 단련된 근육이 우리에게 비겁해지지 않으려는 우직함이나 남을 속이지 않으려는 소박함을 선사해준다는 신앙과도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가냘픈 팔과 하얀 손으로 글쓰는 자들을 '문약(文弱)'으로 단정하면서 본능적으로 경멸하곤 했다. 일본에서 문필활동을 하는 아우 서경식은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한 자신의 책에서 당시의 나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한편 워낙 운동능력이 뛰어났던 그는 아닌 밤중에 느닷없이 나약한 나를 단련시키겠다며 왕복 4~5킬로는 족히 되는 오무로의 닌나지까지 달리기를 강요하곤 했다. 나로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성질나면 곧바로 손이 올라가는 성격이었는지라 반항할 엄두도 못내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어린 시절의 나는 그를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子どもの淚> 日本小學館文庫. 72쪽)

그러나 나이를 먹음에 따라 근육 단련은 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짓'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그리고 점점 뼈아프게 실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영세한 가내공장 직공들은 거의가 내일에 대한 희망도 인생설계도 없는 떠돌이들이었다. 그들은 월급을 받으면 그것을 며칠 사이에 술과 오입질에 탕진해버렸고 월초의 일손 부족은 늘 악몽처럼 아버지를 괴롭혔다. 뼈가 다 굵은 아들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애절한 눈길을 외면하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알아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지만 형이나 아우는 잽싸게 도망치기가 일쑤였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한나절을 보낸 나에게 아버지는 정말 고마워하시고 따뜻한 치하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진짜 기대는, 고된 육체노동을 묵묵히 견딘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망쳐 버린 아들들에게 있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사회, '근육'을 단련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고 주변으로 내몰리는 사회에 대한 회의를 떨쳐내지 못한 채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말부터 근육 단련 대신 지성 쌓기를 시도했다. 왠지 올바른 길을 포기하고 나 자신의 믿음을 배신한 것만 같았던 그 때의 쓴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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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 숭배자였던 내가 글쓰기와 친해지게 된 것은 17년의 감옥 생활을 통해서였다.
국가권력의 비열한 사상전향공작 앞에서 비겁해지지 말아야 하고 굴복하지 말하야 한다는 명제는 당시 나에게 거의 인생목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그곳에서 감행했던 나의 모든 인내와 거부의 몸짓은 십중팔구 단련된 '근육'의 힘에서 나온 것이었을 터이다. 수개월 동안 독서 금지조치를 당해도 책을 보여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끝까지 참았던 나를 당시 광주교도소 전향공작 전담반 요원들은 "성격이 비뚤어진 외고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장기간의 독서 금지와 편지 쓰기 금지, 그 후에 거의 일상화되었던 차입 도서의 마구잡이 불허와 서신 불허는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나의 목마름을 극한까지 몰고 갔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쇠창살과 시멘트 담 안에 갇혀 실의의 날들을 보냈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거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우리들 시대에 바치는 나의 고난의 의미를 확인했고,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내부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편지를 쓰면서 절망적인 고독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다. 편지를 쓰는 일은 나의 논쟁행위였으며 고해성사였으며 절절한 기도였으며 또한 즐거운 놀이였다. 곱은 손에 호호 입김을 불면서, 혹은 봉함엽서 위에 뚝뚝 떨어지는 땀을 손바닥으로 자꾸만 훔치면서 나는 열심히 편지를 썼다. 절망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살아남기 위하여...(<서준식 옥중서한> 야간비행. 20쪽)

그 결과 1988년에 감옥에서 나온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바로 '글쓰기'였다. 감옥에서 겪은 많은 것들, 특히 사상전향에 관한 모든 문제를 남김없이 하나의 대하소설 속에 형상화시켜 보고 싶은 욕심이 나에게 있었다. 출옥직후부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밀려서, 혹은 의리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발을 들여다놓은 인권운동의 바쁜 일상속에서도 나는 한참동안 글쓰기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2년 어느 봄날, 나는 문득 운동과 글쓰기가 양립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눈을 씻고 나의 주변을 봐도 뛰어난 운동가이자 제대로 된 문필가는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김지하나 조영래 같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를 선택행야 했다. 한 달 가량 고민한 끝에 나는 얼마간의 아쉬움을 품은 채 운동가의 길을 택했다.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 이후 전망을 잃은 운동판에서 '운동가'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었고 운동을 떠난 상당수 사람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자유기고가'라는 직함을 달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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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남짓 인권운동에 파묻혀 살아온 나는 이따금 이런 저런 매체에 글을 기고하기는 했어도 언제나 나의 본분은 인권운동이라고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시대에 부끄럽지 않은 인권운동가로 남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글쓰기'라는 외도에 빠져들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따라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대체로 한 가지뿐이었다. 즉 난관에 부딪친 나의 인권운동을 살리기 위하여, 혹은 꺼져 가는 우리 운동에 힘을 불어넣기 위하여... 물론 쓰고 싶은 여러 가지 주제는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쓰고 싶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모니터 앞에서 끙끙거려야 했고 때로는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놓고도 '운동적 고려' 때문에 무참히 도려내기도 해야 했다. 때로는 '전술적으로' 내키지 않는 엄살도 떨어야 했으며 때로는 필화(筆禍)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밤중에 글을 쓰다 말고 '신변을 정리'한 적도 있었다. 나의 글쓰기는 그저 '글쓰기'가 아니라 엄격하게 나의 인권운동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곧 나의 인권운동이었다. 이것을 고집스럽게 강조하는 까닭은 실제로 내가 운동가로서 운동의 절박한 필요에 따라 글을 써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그릇된 세태를 용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운동가(더 정확하게는 '활동가')나 노동자에 비해 일반적으로 지식인, 그리고 그 하나의 형태로 인정되는 '글쟁이'들이 부당하게 높은 대접을 받는 병든 사회이다. 험한 밥을 먹고 몸을 소진시켜가면서 간신히 '근육'으로 이 사회의 최악의 상황을 막아내고 있는 운동가가 글줄이나 하는 지식인이나 글쟁이 앞에서 한결같이 주눅들어야 하는 것이 비뚤어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운동가 인구의 보충은 바라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기존의 운동가 마저 덜 험한 밥과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기 위해 운동판을 떠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한 4~5년 동안 눈 딱 감고 사법시험 공부나 작가수업에 열중한 후 시험에 합격하거나 '등단'할 수 있으면 그들은 하루아침에 그 4~5년 동안을 배고픔과 핍박을 견디며 이 사회의 암흑과 싸워 온 운동가들보다 월등한 사회적 대접을 받을 수가 있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리하여 성공적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그들의 존재는 지적으로 성공할 가망이 없는 '열등인간'만이 운동판에 남는다는 그릇된 편견을 사회에 만연시키는 데 다시 일조를 하면서 운동가들을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고 간다. 나는 젊은 인권운동가들의 선배로서 이런 세태에 앞장서서 저항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글쟁이'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글을 쓰더라도 어디까지나 인권운동으로서의 글쓰기로 일관하고 싶다.

분명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글이 과잉하고 행동이 과소한 시대이다. 범람하는 가지각색의 매체들을 꽉 메우는 글, 글, 글... 우리 사회의 글에 대한, 혹은 글쓰는 자에 대한 동경은 말 그대로 비정상적이다. 상업적인 이유로 계속 부추겨지는 이런 세태 속에서 글쟁이들은 당연히 오만하다. 그들의 글에서 행동하지 않는 자의 부끄러움, 고난받지 않는 자의 죄책감, 악한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자의 슬픔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들의 글을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십중팔구 '근육'을 경멸하고 '입'을 숭상하게 되어 있다. 물론 그들이 현란하게 펼치는 주장 속에 경청할 만한 이야기가 적지 않게 담겨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온갖 레토릭과 해박한 지식으로 포장되어 있는 글의 알맹이는 의외로 단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그들이 굳이 글을 쓰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대충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글로써 주장하는 바를 몰라서가 아니라 행동이 과소하기 때문인 것이다.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글쟁이들은 가끔 이런 주장을 한다. "글쓰기도 운동의 한 형태다. 우리도 운동가다." 그들의 이런 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해주고 싶지 않다. 그것을 고스란히 인정해버린다면 누가 고달픈 운동판에 남아 있으려 할 것인가? 나의 생각으로는 운동가(혹은 활동가)가 운동을 하는데 절박하게 필요해서 쓴 글은 운동의 일부이지만 글쟁이의 글은 그저 글일 따름이다. 기껏해야 좋은 글일 따름이다. 좋은 글을 쓰고 호평을 받으면 그것으로 행복해 해야 한다. '근육'으로 하는 행동 없이 운동가의 명예까지도 깡그리 차지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닌가? 고문과 가혹행위의 공포가 가득한 감옥에 몸을 둔 운동가는 말할 것도 없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운동을 조직하고 다니면서도 차비를 걱정해야 하는 운동가, 항상 감옥에 갈 준비를 해놓고 집회에 나가야 하는 운동가, 국회의사당을 멀리 바라보면서 자신이 조직한 고작 2~30명의 시위대와 함께 '악법 철폐!'를 외치다 닭장차에 실려 가는 실의에서 언제나 다시 일어서야 하는 운동가... 글쟁이가 자신의 글쓰기와 그들의 삶이 운동이라는 점에서 '같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만의 극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글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지나칠 때 그것은 미신이 된다. 즉 글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위험한 미신일 수 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나 글쟁이들이 만들어내는 미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원리가 관철되어 있으며 글로써 사회가 변할 만큼 이 사회는 아직 신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땅 위에 그어놓은 금 안에서만 놀아라!' 이것이 이 사회의 '룰'이며 그 금을 넘어가면 반드시 피를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진보적' 글쟁이들의 글이란 '금 안에서만 노는' 글이다.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망각하는 모든 글쓰기는 미망(迷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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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데는 많은 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은 나의 오래된 믿음이다. 나는 체계적인 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고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도 아니고 치밀한 논리를 갖춘 사람도 아니다. 따라서 이 책에는 현실에 대한 운동가의 감수성과 험한 현실 속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운동가의 고통과 운동에 대한 희망에 관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나의 글은 운동가의 글로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 이상의 가치를 바라는 것은 분명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번 권유가 있었음에도 책을 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은 일상의 활동이 바쁜 까닭도 있었지만 이런 나의 글들이 왠지 초라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2001년 8월에 인권운동사랑방 대표를 사임하고 운동 일선에서 물러나게 됨으로써 약간의 시간 여유가 생겼다. 적어도 일상의 활동이 바빠서 책을 못 낸다는 핑계는 써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인권운동 10년의 결산을 할 필요도 나름대로 느꼈다. 그리하여 결국 농담처럼 오가던 책을 낸다는 이야기가 진담이 되고 현실화되어 여기까지 와버렸다.
과거에 모아두었던 원고들을 검토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사과박스를 뒤졌을 때 나는 '참 쓰기도 많이 썼다'는 감개를 금할 수가 없었다. 칼럼은 물론이고 성명서, 진정서, 보고서, 토론 기록, 강연 원고에다 논문 흉내를 낸 것까지... 나는 내가 과거에 쓴 글들을 정리하면서 세상에 상품으로 내놓을 이런 책 따위에 실을 글들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인 활동의 결과물인 글들이, 운동가의 땀과 눈물 어린 고된 활동의 결과물인 글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물론 나는 그런 글들을 이 책에 싣지 않는다. 실어봤자 '재미'있는 글에 길들여진 독자들에게 '상품'으로 다가가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활동가의 글들은 단지 상품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재미'없다는 이유로 햇빛을 보지 못한다. 이는 사회가 경박하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나는 나의 후배 활동가들이 만들어낸 그 훌륭한 운동의 결과물들 대신 나의 잡문들이 책으로 출판된다는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 책이 나의 후배 활동가들이 진보주의와 인권운동의 문제에 대해 생각을 심화시키는 디딤돌이 되기를 원한다. 그들이 이 사악한 사회에서 일상의 삶에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 이 책을 보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곧 나의 모든 글을 읽을 수 있게 될 내 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03년 1월 30일
명륜동 작업실에서
서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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