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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개헌 논의 유감

뭐,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선을 그을 것 까지야. 헌법이 취하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감한다. 계급/계층적 논의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에 적극 동감한다. 희진 쌤의 논의는 바로 그런 작업 중 하나였다.

 

밝혀둘 것은, 아쉽게도, 헌법 다시보기 모임은 '시민행동 내부의 전문가 그룹'은 아니라는 점이다. 몇몇 운동가들이 논의에 참여하고, 시민행동 상근자들이 스탭 노릇을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연구자들의 모임보다는 지속성이 있을 것이지만, 헌법 다시보기 모임에서 나온 여러 성과나 의견들이 시민행동의 성과나 의견들이라고 보는 건 적절치 않다.

 

아마, 이걸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박명림 쌤 논문의 주장과 헌법 다시보기 전체의 흐름은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그 부분을 구분하여 생각하지 않는, 혹은 구분해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쓴 점, 아쉽다. 15일 토론회의 제안 정도를 '순진하게' 제안할 거라면 헌법 다시보기 모임이 그 모임이 이렇게 지속되고 있지도 않을 거다.

 

 

김상철, 개헌논의 유감 (문화연대 문화읽기 7.21)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로부터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권력구조의 문제에 착목하여 내각제 등의 대안 권력 체제 논의에 집중하는 정치권과 헌법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민주적 ‘헌정체제’ 수립을 모색하는 시민사회단체의 흐름은 차별적이다. 그러나 ‘어떤’ 헌법인가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한 ‘텍스트’로서의 헌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지난 15일 프레스센터에서 창비와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헌법과 사회구조의 비판적 성찰” 토론회는 시민사회단체 내의 ‘헌법개혁’ 논의가 본 궤도에 올라서려 함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토론회가 단순히 ‘헌법’에만 집중을 하는 토론회라기보다는 ‘87년 체제’(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는 조희연의 것으로 기억한다)의 부분으로서 헌법체제 혹은 헌정체계를 다루었다.

 

그럼에도 시민사회 내에서 개헌논의를 이토록 적극적인 의제로 다루었던 적은 없었기에 그 의미는 높다. 특히 창비와 공동으로 이런 주제의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은 시민사회의‘주류’가 어느 정도 개헌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내고 있다는 가시적인 징후로 읽을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체 2부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의 1부는 ‘헌법 논의의 지형을 확대하자’는 주제로 홍윤기, 정희진, 박명림이 각각 발제하였다. 홍윤기는 87년 개헌이 가지는 의미를 ‘권력공학에 압도당한 시민혁명’이라는 말로 풀이한다. 실제로 홍윤기가 지적하듯이 87년 개헌은 그야말로 제도 정치의 야합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85년부터 면면히 이어오던 광범위한 민중투쟁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실제 87년 당시 야당이 민중항쟁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전까지 공공연하게 제헌의회 소집이 주요 구호였던 것을 상기하면 87년 헌법이 당시의 열망과 질적으로 얼마나 차별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이에 홍윤기는 87년 헌법에 대해 “헌정체제 성립의 원동력 부분인 국가시민권과 헌법작성 주체인 정치권이 확연하게 분치되는 형세”로 헌법이 개정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런 한계를 바탕으로 연성형 시민국가 전략에 걸맞는 헌법체제를 제안한다. 그는 국민을 주체로 삼는 헌법은 강성형 국민국가의 표본이었다고 지적하면서 평화적이고 호혜적인 내용을 포괄하는 시민 주체의 연성 국가의 이미지를 헌법에 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특히 헌법에 정치, 경제, 사법 영역에의 시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을 주요하게 지적하고 있다.

 

다음으로 정희진은 기존 헌법의 조문들을 여성 혹은 ‘비국민’의 시작에서 검토하면서 “현재 한국헌법은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서구가 근대시민사회로 진입할 당시의 개념을 그대로 전제하고 있어,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다음으로 박명림은 민주적 실천을 절차와 과정의 수준과 능력 또는 책임과 결과의 영역으로 구분하면서 87년 체제 이후 현재까지 전자에 집중하면서 결과적으로 한 사회의 집합적 삶의 형태를 이루는 주요한 요소로서 실질적인 민주적 요소에 집중한다. 박명림은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왜 ‘모든’ 민주화 이후의 정부들이 항상 중간평가 약속, 3당 합당, 내각제 개헌 약속, 재신임 약속, 탄핵 파동과 같은 ‘(초)헌법적’ 사태에 예외 없이 직면하였느냐”고 물으면서 이는 단순히 대통령들의 무능이나 정략의 결과가 아니라 ‘헌법체제’의 문제점에 기인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매우 정당한 지적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정치의 사법화’를 지적하면서 최근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판결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논의가 급격하게 ‘어떤’ 헌법인가의 문제로 집중되면서 헌법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논의가 모아진다. 그러면서 민주적 원칙을 바탕으로 헌법체제를 견인하고자 하는 기획이 ‘개헌 일정’으로 수렴된다. 박명림이 제안하는 방식은 1차적으로 시민사회 내에서 ‘민주헌법제정 시민사회연대’를 구성하고 국회 내에 헌법개정협의회를 둔다. 이를 통해 헌법제정의 논의를 국민화하며 최종적 채택 권한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주며 마지막으로는 다시 국민투표를 통해 추인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명림의 로드맵은 2007년 하반기가 종료시점으로 상정되어 있다.

 

15일 토론회는 그동안 헌법관련 토론회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이론 중심적이었던 점에 비추어볼 때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 매뉴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실질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발제자들도 밝히고 있듯이 ‘함께하는 시민행동’내부에 전문가 그룹이 지속적으로 이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의식의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너무나 순진한 발상에 머물 가능성이 다분하다. 왜냐하면 갈등을 전제하지 않는 개헌 논의와 로드맵이 실현될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헌법에 대한 논의는 헌법수호의 논리와 헌법개혁의 논리로 첨예화되고 있으며 그 경계는 계층 혹은 계급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헌법에 대한 논의는 일차적으로 계급적(계층적) 논의로 확장되고 논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헌법 수호의 논리를 살펴보자. 정희진이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과거 민주화 운동의 법적 정당성은 대개 헌법에서 찾아졌다. 다시 말해 ‘사문화’ 헌법의 내용들이 민주화 운동의 ‘법적’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90년대 초반 토지공개념에 근거한 여러 법률들을 개인의 재산권차원에서 위헌화했던 것도, 작년 대통령 공약으로 제출되었고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던 수도이전 특별법을 위헌화했던 것도 바로 헌법이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헌법의 해석자인 헌법재판소였다). 다시 말해 헌법은 절대로 공명정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행정적 권력이 연성화되고 실질적인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해석이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전경련 산하의 ‘자유기업센터’에서 지난 98년 내놓은 <한국 민주정치와 삼권분립>이라는 책은 자본 측의 ‘헌법활용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뉴얼이다. 이 책의 부제인 ‘사법심사권 확충을 중심으로’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권을 중심으로 소위 문민화된 정부가 추진해왔던 ‘한줌의’ 개혁정책에 대응하자는 내용이다.

 

이러한 성격은 헌법재판소의 구체적인 판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를 테면 지난 2004년 판결된 ‘이라크전쟁 파병과 통치행위’에 대한 결정문에서는 “일반 시민에겐 파병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할 적격이 없다”는 논리가 보이며, 지난 3월 퇴임한 김영일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헌법재판에 대한 시민참여 요구에 대해 “법이 지니는 고유한 의미를 찾아내고 거기에 적용할 헌법조항의 의미와 헌법 정신 등을 해석해 내는 작업이야말로 진정 오랜 세월 법의 해석작업에 임하여 왔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없이 오로지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 헌법 정신을 찾아내어 선포하는 법률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거기에 법을 전공하지도 아니한 어떤 상식인이 법률가를 대체하여 그와 같은 일을 올바로 해낼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반박하는 내용을 보자.

 

다시 말해, 헌법 개정의 논의는 현재 헌법이 취하고 있는 정확한 ‘위치’의 문제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흐르고 있는 계급적(계층적) 차별이라는 요소를 밝혀내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개인의 사적 권리를 우선하고 법 해석의 독점을 정당화는 현재의 헌법재판소의 흐름이 과연 민주주의적인 것인지 판단해야 된다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와 대체될 수 없다. 누가 언급했듯이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상철

 

원문 보기 : http://culturalaction.org/weekly/maynews/read2.php?table=organ&item=2&no=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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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유감 - 카우치 성기노출 사건..

아무리 생각해도 삼성이 MBC에 복수하기 위해 카우치를 사주한 게 아닌가 하는 음모론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ㅋㅋ (이미 많은 네티즌들이 이 가설에 공감하고 있다고 한다) 최소한 엑스파일, 특히 삼성 관련 건을 잠재우는 효과는 가져왔고, 나아가 폭로의 원흉이었던 MBC는 정신 못차리고 있으니. 잘만 하면, 보기 싫던 최문순 날려버릴 수도 있을지도.

 

조중동의 보도 태도를 봐도, 이번 사건의 전선은 명백하다.

 

정연주 KBS 사장은 취임 이후 줄곧 ‘개혁’ 기치를 내걸고 잇달아 ‘미디어 포커스’ ‘한국사회를 말한다’ 등을 만들어 이른바 ‘보수’세력, 일부 신문을 맹공격해 왔다. 보도국·교양국이 사장과 ‘개혁 코드’ 맞추기를 하는 사이 예능국은 헐거워진 규제의 틈을 타 선정적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 KBS가 지난해 팀제로 조직 개편을 한 뒤 중견 방송인들이 대거 물러나면서 경력이 낮은 PD들이 현장을 좌지우지하면서 ‘게이트 키핑’ 기능이 무너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2005.8.2 '막가는 방송'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방송사 내부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이처럼 허술해진 것은 구조적인 원인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KBS의 경우 정연주(鄭淵珠) 사장이 지난해 8월 개혁조치의 하나로 대(大)팀제를 도입한 뒤 팀장 한 사람이 팀원 수십 명을 관리하게 되면서 중간 간부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무력화됐다는 사내외 비판이 제기됐었다. MBC의 경우 최문순(崔文洵) 사장 취임 이후 중간 간부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시청률 경쟁에 따른 일선 제작진의 과잉 의욕과 실수를 걸러 주는 여과층이 약해졌다는 게 중론이다. (동아일보 2005.8.2 "지상파 TV 끄고 싶다")

 

둘 다 똑같이 게이트키핑 기능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혁파 사장들의 책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불상사가 발생하면 통제가 불가능한 생방송 도중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상황이었다는 변명이 MBC의 상투적인 수습책이 아니길 바란다. .. 방송법에 물의를 유발하는 방송사와 출연자를 제재할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중앙일보 2005.8.1 [사설] MBC의 엽기적인 성기노출 생방송)

 

중앙의 사설은 MBC에 대한 복수심이 넘쳐난다. 과연 저 글의 '물의'란 단순히 성기노출 사건일까? 혹시 엑스파일을 보도한 걸 얘기하는 건 아닐까?

그 정겹던 TV는 이제 별 의식 없는 현행범들의 천박한 선전장이자 노리개로 전락했다. TV가 말초적이고 현란한 자극만 좇다 자초한 파국이다. 시청자를 우습게 알고 시청자 위에 군림해 온 업보다. (조선일보 2005.8.2. 태평로 - TV의 무차별 안방 테러)

 

여기서도 현행범이 혹시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이상호 기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더욱 납득할 수 없는게 민언련의 논평이다. 민언련은 인디밴드가 나오는 방송은 녹화방송이어야 한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조중동으로부터 지겹게 들어야 했던 '게이트키핑 기능' 얘기를 민언련에게까지 들어야 하는 걸까?

 

언더그라운드 인디밴드들의 공연 양상은 주류 대중 가수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들의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표현 양식을 방송할 때 제작진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민언련 2005.8.1. MBC 음악 프로그램 <생방송 음악캠프> 성기노출에 대한 민언련 논평)

 

그럼, 생방송을 해도 되는 대중가수는 누구란 말인가? SM이나 싸이더스 같은 기획사들이 돈들여서 키운, 그래서 사고치기에는 스스로 잃을 것이 너무 많은 그런 가수들만 생방송을 해야 한단 말인가? '녹화'를 해도 걸러지지 않는, 날로 도를 더해가는 '주류 대중 가수'들의 선정적 옷차림이나 뮤직비디오 같은 표현 양식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TV의 공공성과 윤리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오직 사후 처벌만을 허용하고 사전 검열은 불허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원칙이다. 누구나 입을 모아 이야기하듯이, 당연히 이 원칙에 따라 카우치의 행위는 잘못이고,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디밴드에게만 녹화방송을 해야 한다는 것은 사전 검열의 정신이다. 지난 시기 함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기억을 민언련이 어느 새 잊어버린 건 아닌가 묻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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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찬, 헌법과 인권

7월 15일 심포에 대한 안수찬 기자의 가장 솔직한 이야기인 것 같다. 심포의 문제의식에 한껏 끌리면서도 헌법의 압도적 위상, 혹은 안수찬 기자 본인 표현으로는 '관습헌법'으로 인한 주저함이 남아있는, 나나 우리 헌법 다시보기 대다수 구성원들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결국 발리바르까지 끌어들이고 나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사실 발리바르가 인권의 정치에 대한 얘기를 한 것도, 유럽 헌법과 연관된 얘기라 한다. 유럽이 만들어지고는 있으나, 혁명, 즉 구성(혹은 제헌) 과정은 없는 (혹은 시민사회와 무관한) 유럽 만들기에 대한 발리바르의 문제의식이 "인권의 정치"라는 문제설정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법·제도와 광장의 이분법이 약간 걸리지만, 아직까지 그 이분법을 명백히 넘어서지 못한 이 쪽의 책임이 더 크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정말 아쉬운 것은, '인권의 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안수찬 기자의 글 어디에서도 정작 정희진 쌤의 논문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헌법과 인권 (안수찬 위원)  

안수찬/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지면을 즐겨 읽는, 적지 않은 수의 법률가 또는 법학자들에게는 죄송하게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법이란 그저 거만한 권위와 고리타분한 구습의 결정체라고 나는 믿었다. 법에 갇히는 순간, 법의 권위에 굴복하는 순간, 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장엄함과 현실의 생동감은 그 빛을 잃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이런 정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개혁진보 진영에서 이어져 내려온 ‘관습 헌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법에 목매달아서는 안 된다는 그 불문율 말이다. (대신 ‘권력’에 목매달았던 셈인데, 생각해 보면 권력이나 법이나 뭐 다를 게 있다고, 그 둘 사이에 넓고 깊은 해자를 파고 법 제도 일반을 ‘사갈시’했는지 모르겠다)

 

법을 폐지하자는 데모는 해봤어도, 실제로 어떤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활동은 그래서 여전히 낯설다. 그것은 길게 잡아야 시민단체들이 제 자리를 잡은 지난 10년 안쪽에 시작된 일이다. 그나마도 여전히 운동의 중심은 ‘법’이 아니라 ‘광장’에 있다는 게 이들 시민단체의 믿음이자 나의 믿음이다.

지난 15일, 한 학술대회에서 나는 그 ‘믿음’이 묘한 균열과 긴장에 놓여 있음을 절감했다. 분명 그것은 민주주의의 에네르기가 광장에서 제도로 전화하는 (또는 전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 ‘역사적 순간’의 도래를 웅변하는 현장이었다. 물론 이때의 ‘순간’이 1-2년 안에 마무리될 리 만무하고, 사실은 앞으로 또 다른 반세기가 더 필요한 ‘긴 과정’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여하튼 민주주의 균형추가 광장에 그늘을 드리우면서 법과 제도를 향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음은 분명해 보였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하루 종일 열린 그 학술대회의 주제는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헌법과 사회구조의 비판적 성찰’이었다. 창비와 함께하는시민행동이 공동 주최한 이 학술대회에는 지난 1년여 동안, ‘헌법의 민주적 개혁’ 또는 ‘(현행 헌법으로 대표되는) 87년 체제 극복’을 고민한 각계 학자들이 함께 참가했다.

 

여기서 시시콜콜 그날의 발제와 토론 내용을 옮길 생각은 없다. 궁금하신 분은 <한겨레>에 쓴 제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다만 그 기사에 온전히 담지 못한 한 ‘장면’을 전하고 싶다.

(기사보기 클릭 ☞ 87년 헌법, 변화된 가치 반영 역부족
                         
‘시민헌법 대토론회’ “개헌 논의는 사회개혁 큰 줄기”
                         
“87년 개헌은 정치세력 임시협정 시민헌법 만들자”)

 

오전 발제에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현행 헌법의 민주적 개혁을 강하게 주창했다. 6월 항쟁의 성과물이지만, 실제로는 그 함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민주주의의 진전에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는 현행 헌법을 정치협약이 아닌 시민의 헌법으로 개혁하자는 게 그 요지였다.

 

그런데 오후 토론에 나선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이를 강력히 비판했다. 민주주의의 진전은 (계급계층에 기반한) 정당정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헌법의 권위에 기대는 헌정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헌정주의는 원래 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인데, 진보개혁 진영이 이제 그 ‘헌정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박명림 교수는 시쳇말로 최장집 교수의 ‘수제자’다. 공개 석상에서 이런 중대 이슈에 대해 그것도 스승이 제자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보기 힘든 장면이다. 한 가지 더. 사실 박 교수의 ‘민주적 헌정주의’ 또는 ‘헌법의 민주적 개혁’은 최장집 교수의 몇몇 저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바 크다. 김대중 정부 시기 <월간 조선>의 마녀사냥에 크게 ‘데인’ 최 교수는 한동안 정치사회적 발언을 아끼다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런저런 글과 말을 집중적으로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는 헌재를 포함한 사법권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 민주주의 심화를 저해하고 있다는 데 모인다. 그리고 이 무소불위의 사법권력은 87년 헌법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박명림 교수는 자신의 헌법 개혁 논의를 ‘민주적 헌정주의’라고 표현한다. 최장집 교수의 이날 비판은 아직 헌정주의로 옮겨갈 단계가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 그 자체에 집중할 때라는 지적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정치학적 논쟁을 더 길게 풀어쓰지는 않겠다. 다만 이들이 고민하는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의 제도화(헌법화)’의 핵심은 바로 인권의 제도화, 정치화의 문제와 잇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박명림 교수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는 ‘인권’의 지향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 ’ 정도가 개인이 갖고 있는 원천적 권리에 대한 규정이라 ‘해석’할   만하다. 다만 그 내용의 상당수는 ‘국가주의’에 기울어져 있다.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고 그에 따른 국민의 지위를 정하는 ‘발상’이 깔려 있다.

 

헌법 제2장에는 모두 29개조에 걸쳐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적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차별금지’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 침해 금지’ ‘통신비밀 보장’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재산권 보장’ ‘교육권’ ‘노동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환경권’ 등이 여기에 모두 명문화돼 있다. 다만 그것은 난삽하고 복잡한 나열에 불과해 보인다. 인권의 여러 양상과 국면을 어떻게 계통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2장 전체를 차지한 여러 권리와 자유는 ‘생동하는 권리장전’이자 ‘민주주의의 고향’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그저 ‘화석화된 문자’로 읽힌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면, 헌법 개혁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기본적으로 이런 인권 조항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박명림 교수와 최장집 교수의 논리를 이 문제에 대입하자면 이렇다.

 

박 교수는 사실상 ‘사문화’돼 있을 뿐 아니라, 인권 개념의 적극적 확장을 막는 현행 헌법을 ‘시민들의 공론장’에서 의제로 설정해, 사문화된 조항은 되살리고, 부족한 조항은 더 강화해 진정한 인권헌법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셈이다.

 

반면 최 교수는 현단계의 문제는 여러 인권 조항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정치 권력과 기관이며, 나아가 헌법 해석의 보수화를 가능케 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왜곡이이며, 궁극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왜곡시키는 정당구조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의 현실은 최 교수의 지적에 힘을 싣는다. 헌법보다 더 큰 권위를 보안법에 부과하는 원천은 헌법 조문이 아니라, ‘정치’다. 그러나 동시에 보안법이 합헌이라고 판단하는 헌재의 권위에 힘을 싣는 것은 헌법 조문이기도 하다. 그 조문을 바꾸는 과정이 곧 민주주의의 실현이기도 하다는 게 박 교수의 이야기다.

 앞에서 민주주의의 추가 ‘광장’에서 ‘제도’로 넘어가고 있다고 감히 말했다.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 교수와 박 교수의 논쟁은 이미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전화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아마도 최 교수와 박 교수의 주장을 가로지르는 지점 어디엔가 합리적 대안의 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것은 이런 것이다. 법학자도 정치학자도, 구체적으로 현행 헌법의 어떤 조항이 ‘인권’의 걸림돌인지, 어떤 조항을 더 확대 강화해야 하는지, 어떤 조항을 새로 추가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

민주적 헌법 개혁의 논의는 인권단체들의 몫이기도 하다. 최 교수의 방법론을 빌리건, 박 교수의 방법론을 빌리건, 인권의 사회화 과정은 현 단계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고리이자 가장 첨예한 대척점이 될 수 있다.

 

이념의 시대는 갔고, 광장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면, 모든 운동과 역사의 출발점은 결국 자유롭고 그래서 무한히 존귀한 개인일 수밖에 없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 그리고 그 총합으로서의 헌정 제도를 고민한다면, 그 출발 역시 ‘인간’ 각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인권은 지금 한국 사회의 ‘말과 글’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를 바로 잡는 데서,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작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띠엔 발리바르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는 ‘인권의 정치’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계급의 정치에 발목 잡힌 좌파의 도그마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내가 보기에 인권의 정치는 대단히 급진적인 구호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헌법을 말한다 할 때, 가장 할 말이 많아야할 사람들도 바로 인권운동가들이어야 옳을 것 같다. 정치학자들은 지금 ‘헌법을 민주주의의 품으로’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헌법을 인권의 품으로’라는 슬로건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민주주의는 그 곳으로 가는 길에 붙여진 이정표다.

 

원문 출처 : 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bal&y_number=25&nne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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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자본감시센터 방문

지난 금욜, 그러니까 7월 31일.

 

회원도 아니면서, 종운이 형의 초대로 투기자본감시센터 회원 모임에 갔다. 사실 요즘 경제학에 대한 내 갈증이니, 종운이 형이 굳이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기꺼이 갔을 거 같다.

 

세미나 형태로 진행된 모임이었다. 어디나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정말 회원들이 직접 결정하고 일하는 단체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그 세미나의 교재가 <<아탁>>이었다. 토빈세라는 가장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운동하기 시작한 아탁이 어떻게 10만의 회원을 자랑하는 대중단체로 발전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한다. 교재 선택 역시 투기자본감시센터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세미나 형태로 진행되었지만, 소중한 출발이라고 믿는다. 

 

얘기 나누던 중에 그런 얘기가 나왔다. 경제학자들이란 사람들이 지독하게 예측을 못한다고. 그 말 한 사람은 이른바 과학적이라는 주류경제학 비판하느라 그 얘기 했겠지만, 내 보기엔 맑스 경제학도 그 점에서 별 차이 없다. 언젠가 한 번 공황이 오는 거나, 언젠가 한 번 수요 공급이 맞아떨어져 (예정조화라고 불리는) 그 분이 오시는 거나. 예정된 파국을 기다리는 것이 운동이라면 휴거를 기다리는 종말론자들과 뭐가 다를까?

 

예측이 어차피 무의미하다면, 그럼에도 허무주의가 아니라 운동을 택한다면, 문제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내가 투기자본감시센터에서 알고 싶은 것도 사실 그 것이다. 도대체 경제적 차원에서 당신들이 생각하는 사람살이란 무엇인지? 그냥 '언젠가 자본주의가 없어지고 나면 이루어질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 그런 거 말고,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내가 함께 실천해야 할 경제라는 건 뭔지? 도대체 당신들의 경제란 저들의 경제와 어떻게 다른 건지? 아쉽게도 그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그 모임에 더 나가게 된다면, 그런 얘기 나눠보고 싶다. 

 

생협이나 공정무역, 사회책임투자가 그래도 끌리는 건 바로 그런 요소 때문이다. 정답이 아닐지는 몰라도 다르게 살아가려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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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 '정보통신 2등국가'도 좋다

유비쿼터스에 대한 나의 고민과 거의 같은 고민. 이주헌 원장, 참 매력적인 사람이다. 현정포럼을 만든 날카로움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정보통신 2등국가도 좋다" 그 슬로건도 좋다. ^^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간다. 다름 아니라 요놈의 컴퓨터 때문이다. 아침에 눈 뜨자 마자 부터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눈 떠 있는 내 곁엔 인터넷 창도 떠 있다. 이메일은 물론 뉴스와 각종 정보취득에 난 철두철미하게 인터넷에 의존하고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서프라이즈까지 서핑하다 보면 시간 낭비도 심하다. 참 잘못된 습관이다. 요놈 때문에 독서량이 대폭 줄었다. 고작 최신 발간된 전문서적을 틈나는 대로 훑어볼 뿐, 연구보고서까지도 PDF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읽는다. 책이라곤 다들 읽었다는 흔해빠진 '다빈치 코드'를 수 개월째 손에 쥐고 있다가 출장 중에야 겨우 읽었다. 무엇보다도 해외에선 인터넷 접속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내 직업이 IT라지만, 이토록 난 심할 정도로 조그마한 정보가 필요하다 싶을 때면 당장 키보드부터 만진다. 네이버의 지식DB를 찾는 경우도 자주 있다. 영화예매, 기차표 구매, 은행업무에, 심지어는 벌금까지 인터넷으로 처리한다. 심하게 IT에 종속된 삶이다.
 
이런 경우를 보고 인터넷 중독이라 하나. 앞으로는 휴대인터넷 WIBRO가 달리는 차에서도 인터넷 이용을 하게 해 준다니 웃어야 되나 울어야 되나 모르겠다. 이것이 내가 추구해 왔던 IT선진국의 모습이었던가. 하하.


내 생활을 지배하는 또 하나는 휴대폰이다. 요놈의 자그마한 단말기는 24시간 나를 지킨다. 침대 옆까지도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이 전화를 통해 난 바깥과 교감하고 산다. 편리하긴 하다. 내 인생을 만드는 가까운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이 번호로 날 자주 찾아주어 고맙다. 사무실로 전화하는 분들과는 달리, 심리적으로 정겨움을 느끼는 친구가, 제자가, 그 외 친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반갑다. 아내와 애들은 회의 중일는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아예 SMS 문자로 대신한다. 애들과 주고 받는 문자를 통해 바쁜 와중에 그래도 난 아빠 됨을 확인하곤 한다. 가끔씩은 MP3음악파일도 다운로드 받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친구 찾기'도 한다. 가족의 소재가 궁금할 때이다. '디카' 사진도 곧잘 찍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가족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한다. 결국 난 휴대폰을 몸에 지니지 않고는 왠지 불안해하는 사람으로 전락되었다. 심히 휴대폰에 종속된 것이다. 다행히 발신자 번호(CID) 서비스가 제공되어서 망정이지, 그래서 급히 받지 않아도 좋을 만한 전화는 나중으로 미룰 수 있어 망정이지, 요즘 판치는 060 스팸 전화까지 몽땅 날 귀찮게 할 뻔 했다. 이제 곧 화상전화가 가능한 휴대폰이 본격 보급된다니, 이 역시 내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는지 모를 일이다. 이것이 진정 내가 바랬던 IT강국의 진면목이었던가.

 

요즘은 주말을 제외하곤 잘 보지는 못하지만 한 때는 TV도 내 시간을 갉아먹는 원흉이었다. 뉴스 프로그램과 축구중계는 물론, 다큐멘터리와 시사토론 프로그램은 일단 눈에 띄어 보기 시작하면 난 중간에 자리를 뜨지 못한다. 특히 구형 TV를 PDP로 바꾼 후에는 그 선명함이 너무 좋아 더욱 시간을 뺏기곤 했다. 바보상자라더니 정말 난 바보의 모습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게다가 2년 전에는 갑자기 꼭 필요하지도 않은 프로젝터와 대형 스크린, 'Home Theater' 스피커들을 설치하고선 DVD영화는 물론 그냥 봐도 좋을 TV프로그램까지 굳이 스크린으로 보곤 한다. 비디오방에 가기가 귀찮은 날이면 프로젝터를 인터넷과 연결시켜 영화를 다운로드해서 보는 일도 종종 있다. 물론 큰 화면에 소리까지 웅장하니 생동감은 넘치지만, 집에서조차 꼭 대형 스크린이 필요하냐는 것이 '기계치'인 아내의 표정인 것도 같다. 앞으로는 영화나 방송을 시청하다가 즉석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사물에 대한 정보를 얻고 필요한 경우 주문까지 할 수 있는 T-상거래 서비스가 개시된단다.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졌다는 소식이나 대문이 잠겨있지 않다는 경고문과 함께 대문 밖을 비추이는 화면이 스크린 구석에 나타나는 홈 네트워킹 시대도 도래한단다. TV보면서, 정보 서핑하랴, 주문하랴, 집 안팎 감시하랴, 어휴, 난 더욱 바쁘게 살 것 같으니 정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이것이 진정 내가 꿈꾸어 왔던 정보통신 일등국가의 문명생활이었던가. 정보통신 이등국가가 차라리 좋지 않았던가? 하하.

 

그래도 현대 컴퓨터와 휴대폰과 디지털TV의 사용에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요놈들이 일단 우리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 손으로 통제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머지 않아 눈에 띄지도 않은 컴퓨터들이 내 주위를 바글거릴 것이란다. 빌 게이츠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된 컴퓨터는 10억 대쯤 되고 2010년까지는 다시 10억대가 넘게 추가로 만들어질 전망이지만, 이 앞으로 생산될 컴퓨터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능 상으로만 컴퓨터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편지지 크기의 회의용 PC, 음악과 영화 감상용 TV식 엔터테인먼트 PC는 물론, 휴대폰이나 자동차의 안의 컴퓨터들과 공항과 소매점에서의 보이지 않은 컴퓨터 등이 생활 곳곳에 있을 것이란다. 이 신형 컴퓨터들이 나도 몰래 날 알아보고 내 가방을 뒤지고 내가 입고 있는 내 건강상태까지도 간파하는 시대도 멀지 않았다. 특히 이들은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사람들은 컴퓨터라고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띌 것이란다. 문자와 언어인식 등 인공지능이 보강되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주변을 맴도는 상황도 예측된다. 이미 선진국 소비자들은 무의식 중에 매일 150개의 컴퓨터 기능이 내장된 전자기기와 함께 있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내일의 모습이다. 오늘이 차라리 행복한가, 아니면 정말 내일을 기대해야 하나. 헷갈린다.

 

그러나 한편 이와 같은 기술발전은 '글로벌 메가트렌드'일 뿐 아니라 인류의 꿈이 아닐 수 없다. 잘 살고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IT만큼 효과적인 도구는 없으리라.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IT는 국민의 먹거리이자 젊은이들의 희망이고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되었다. 삶이 IT에 종속됨은 생활 습관을 바로 잡아 잘 극복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사실은 정보통신부의 839전략이나 u-코리아 건설계획이 더욱 변화무쌍한 미래를 예측하고 있음을 확인할 때면 더욱 반가울 뿐이다. 통신과 방송과 인터넷과 교통과 금융이 완벽하게 연결되어 편리함을 더해 주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리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고 눈에 보이지도 않은 컴퓨터 칩들이 어느 곳에나 존재하면서 우리 개개인이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던 낱낱이 알아 생활의 도우미가 된단다. 2만불 시대의 주역인 IT는 국가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삶의 편익을 위해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게 만들어 우리나라를 일등 선진국가로 도약시킨다니 얼마나 기대되는가. 아니, 아찔한 전율까지 느낄 만 하지 않은가.

 

그러나 한가지만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름 아니라, 이러한 모든 논의 중에서 사생활이 얼마나 보호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만큼은 불식시켜야 한다. 정부가 국민에 대한 정보를 과다 보유하고 이를 통해 통제하는 조지 오웰의 '빅 브러더'의 탄생을 걱정함은 아니다. 전자정부가 제 아무리 확장되고 시스템 기능이 보완되더라도 전자감시사회의 형성만은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억제해 나가리라고 믿는다. 정부가 시민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났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문제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개인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가 오용하고 악용함이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신원정보보다는 기업이 확보하고 있는 개개인에 대한 경제, 건강, 구매관련 정보 등이 훨씬 더 민감하다. 핸드폰 이용정보나 위치정보 등은 더욱 치명적이다. 사생활이 몽땅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예로, 5m 내외의 정확성으로 위치를 알 수 있는 텔레메틱스나 LBS 서비스가 각종 GPS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면 현재 어디로 이동 중이라거나, 어느 식당에서 식사 중이며, 무슨 호텔 몇 호실에 묵으면서 누구와 통화 중인지 등을 알 수 있다. RFID 기술이 본격 보급되면 언제 어디서 무슨 물건을 구매했는지를 알 수 있고, 홈 네트워킹과 연결되면 즐겨 듣는 음악이 무엇이고, 냉장고에 복용하는 약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 수도 있다. 은행 잔고가 얼마인지, 최근 무슨 영화를 시청했으며 누구와 어디로 여행을 다녀 왔는지, 무슨 법규를 위반했는지, 얼마만큼의 부동산을 보유 중인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모두 가능하다는 말이며, 목적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호기심과 잘못된 본능이 어디선가 꾸물거릴 것이라는 예견이다. 연예인들에게만 X파일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란 말이다.

 

사실인즉 나는 정보화의 역작용 --- 예를 들어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나 스팸메일의 범람, 지적소유권의 침해, 그리고 음란정보의 가정침투 등 --- 에 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 편이다. 금융거래에 필수적인 시스템의 보호와 안전 문제 등도 기술적 대응책이 강구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진정 '따뜻한 디지털세상'이 강조해야 할 것은 정보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제도의 정착일 것이다. 편리함이 다소 줄더라도 외부 시스템들이 나에 관한 정보를 철저하게 오용하지 않을 사회, 익명성이 다소 일시적으로 혼란을 가져 오더라도 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이버 커뮤니티, 생산성 저하효과가 약간 있을지언정 나와 내 가족의 사생활이 절대 침해 받을 수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자, 정보통신 일등국가의 모습이리라. 그래서 철두철미하게 법과 제도로 미리 안전 장치를 만들고 사회적으로는 '신 정보윤리의식'을 뿌리내리게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정부가 앞장서서 제발 신뢰를 심어 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IT복지국가의 기본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의 감시활동도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부터 새로이 준비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보통신 일등국가'는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주장했던 표어이다. IT로 잘 살고 행복하고 튼튼하고 당당한 국가를 건설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핵심은 경제강국보다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는데 있었다. 따라서, 만약에 정보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IT기술문명국가로만 발전한다면 난 차라리 '정보통신 2등국가'로의 회귀를 외치련다. 우리 모두 '따뜻한 디지털세상'의 목표를 바로 세우자.

 

이주헌(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원장의 블루진 에세이 중

원문 : http://www.kisdi.re.kr/kisdi/fp/yard/essay/EssayView.jsp?idx=282&kin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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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파악 못하는 정부

 

최근 몇 년간 한겨레 만평을 보면서 이만큼 만족해본 거 처음인 거 같다. 한나라당이 "정부가 아직도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던데, 그 당이 노리는 바야 정반대겠으나, 그 말만큼은 딱이다. 투기세력만큼은 온 나라가 난개발과 투기판이 된 참여정부 2년 반이 영원하기를 바랄 밖에. 그러고보면 이 정부가 파악못한 것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제 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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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6월 22일, ILO 주40시간 노동제 협약 체결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35년 6월 22일, ILO는 생활수준의 저하를 초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적용되는 주 40시간 노동제를 채택하자는 협약을 맺는다. 전세계적인 대공황의 해법으로 제안된 이 협약은 그러나, 무려 22년하고도 하루가 더 걸린 1957년 6월 23일에야 단 14개국의 비준으로  발효되었다. 우리 나라가 주40시간제를 채택한 것은 그로부터도 또 46년이 지난 2003년 8월 29일이었다.

 

그러나, 고용없는 성장의 어두운 미래가 날로 분명해지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틀린 건 아니다. 오히려 근로시간은 더욱 단축되어야 한다. 주 20시간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야 실업이 해소되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며 양성간 평등한 경제 시스템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근로시간 단축만으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경제 구조에서부터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인간의 관념까지, 수많은 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 그럼에도, 근로시간 단축이 그 핵심에 있음은 분명하다. 이 고용없는 성장 시대, 지속불가능한 과잉생산 시대에는 말이다.



ILO 협약 제47호

근로시간의 1주 40시간 단축에 관한 협약(1935년)

* 효력발생:1957년 6월 23일 (14개국 비준)


  국제노동기구 총회는,
  국제노동기구 사무국 이사회가 1935년 6월 4일 제네바에 개최한 제19차 회의에서,
  회기 의사일정의 여섯 번째 의제인 근로시간단축 문제를 고려하고,
  실업은 광범하고도 지속적인 것인바 개인의 책임은 없으며, 또한 당연히 구제받아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전 세계 수백만 근로자가 고난과 궁핍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근로자가 근대산업의 특성인 급속한 기술적 진보의 혜택을 가능한 한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고려하고,
  국제노동기구 총회가 제18차 및 제19차 회의에서 채택한 결의에 따라 모든 종류의 근로에 있어서 근로시간을 가능한 한 단축하기 위하여 계속적 노력을 하여야 할 필요성을 고려하여,
  1935년 주 40시간제 협약이라고 부를 다음의 협약을 1935년 6월 22일 채택한다.

[제1조] 이 협약을 비준하는 회원국은 다음의 사항을 약속하며 이를 승인할 것을 선언한다. 
   ㈎ 생활수준의 저하를 초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적용되는 주40시간제의 원칙
   ㈏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조치의 실시 및 조성, 또한 각 회원국에 의하여 비준된 별개의 협약이 규정하는 세부규정에 따라 각종의 근로에 이 원칙을 적용할 것을 약속한다.

[제2조] 이하 표준최종규정(비준등록, 효력발생, 회원국에 대한 비준의 통보, 폐기, 개정의심의, 개정협약의 효력, 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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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6월 21일, 사르트르 출생


 

더 말할 나위 없는 세계의 양심, 사르트르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문학과 철학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그의 삶만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있지만, 그에게는 역시 비판이 어울리지 않는다.

 

- 동서 냉전이 격화되던 시기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사르트르는 즉각 "전쟁의 책임은 미국과 남한에 있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남한 군대가 북한의 군대로 하여금 공격하게끔 유인함으로써 북한이 먼저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도발의 주체는 미국의 사주를 받은 남한 정권에 있다는 것이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82&article_id=0000051455§ion_id=102&menu_id=102


- 또다른 저서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서문을 쓴 사람은 사르트르다. 프랑스에서 정신병리학을 공부하는 동안 파농은 직간접적으로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참가 당시 파농의 사상은 사르트르의 폭력적 혁명노선과 궤적을 같이 한다. http://www.chosun.com/svc/news/www/viewArticle.html?id=199907280487

 

-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지만 ‘부르주아의 상’이라는 이유로 수상을 거절했다. ‘부르주아적 결혼’에 대한 저항으로 보부아르와 ‘계약결혼’으로 평생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했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38&article_id=0000275906§ion_id=102&menu_id=102

 

- 프랑스의 68세대는 사실 중학교 때부터 준비되어 있던 세대라고 대체적으로 평가한다. 68년도에 학생운동을 만들어낸 세대라고 하지만, 실제로 68년의 세상을 바꾼 것은 프랑스에서는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중학생일 때 그들이 장 폴 싸르트르의 ‘존재와 무’라는 책을 탐닉하면서 읽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존재와 무’... 지금 들여다봐도 한 페이지를 온전히 나가기 어려울 만큼 어려운 책이지만, 드골의 제3공화국 속에서 프랑스의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존재와 무를 읽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샤르뜨르를 읽지 않던 아이들은 까뮈를 읽었다. 조금 더 대중적이고 지나친 일반화를 가지고 있지만, 까뮈의 이방인의 테제와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의 테제는 같은 생각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런 거대한 변화가 준비된 것은 중학생들이 샤르뜨르를 읽기 시작할 때의 일이지만, 정작 그 때에는 아이들이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는 이유와 그 징조를 읽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도식적으로만 해석하자면, 이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대학의 문제를 해결했고,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프랑스의 문화와 매체가 변화하였고, 이 아이들이 푸코의 책을 읽으면서 푸코의 지지자가 되었고, 강단해서 추방당하다시피한 데리다를 파리에서 강단에 설 수 있도록 하였다. http://blog.naver.com/wasang2.do?Redirect=Log&logNo=20006481992

 

- 어느날, 현장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당시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 기자 장 모로는 시위대 전면에 섰던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 시몬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경찰에 연행됐다. 그런데 신분을 확인한 경찰은 어떤 제재도 없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뿐만 아니라 이들과 함께 연행된 시위대를 풀어주었다. 경찰의 이같은 결정은 프랑스를 붉은 물결로 뒤덮었던 1968년, “볼테르를 체포하지는 않는다”는 드골 대통령의 선언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드골이 지칭한 볼테르는 바로 사르트르였다. 68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사르트르는 프랑스 정부에게 치외법권이었던 것이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47&article_id=0000057119§ion_id=104&menu_id=104

 

- 심지어 70년대에는 한국에서 김지하 시인이 반공법으로 구속되자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http://blog.naver.com/jinguja.do?Redirect=Log&logNo=80013924221

 

- 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면서도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저지른 1956년의 헝가리, 1968년의 체코 침공에 대해서는 단호한 비판을 할 정도로 자립적 지성의 면모를 보였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범죄 심사를 위해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창안한 국제법정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말년에도 마오이스트계열의 기관지인 '인민의 기치'를 손에 들고 거리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던 사르트르였다. http://db1.chosun.com/cgi-bin/gisa/artFullText.cgi?where=PD=19990902&ID=9909022103

 

- 약 2만 5,000명이 참석하여 매우 성대하게 치러진 그의 장례식은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을 연상시키는 것이었지만, 그의 훌륭한 선임자 위고가 받았던 국장(國葬) 승인은 없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었고, 사르트르가 항상 그의 글로써 권리를 지켜준 사람들이었다. http://preview.britannica.co.kr/spotlights/nobel/list/B11s0046b.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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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6월 20일, 세계은행 발족

 

【워싱턴=로이터/뉴시스】 폴 울포위츠 신임 세계은행 총재가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세계은행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2005-06-08 11:17]

59년 전 세계은행, 정확히는 국제부흥개발은행이 발족했다. 글로벌 익스체인지의 캐빈 대나허가 "50년이면 충분하다"고 외친지도 10년이 지났고, 2000년 4월 워싱턴의 세계은행 반대 시위로부터도 5년이 지나, 최근엔 잦아드는 감마저 있다. 그러나, 폴 월포위츠 같은 네오콘이 총재로 임명된 사실에서 확인되듯이, 개혁은 외면당하고 있다. 이제 60년, 충분함을 넘어 지겹지 않나?

 

글로벌 익스체인지, <왜 세계은행은 개혁되어져야 하며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나?> ...



Why the World Bank Must Be Reformed and How We Can Do It

왜 세계은행은 개혁되어져야 하며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나?

 

1. The globalization of market forces, vigorously promoted by the World Bank, creates greater inequality. Over the past 30 years the globalization of the economy-led by the World Bank,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and transnational corporations-has proceeded at a quickening pace. These institutions have pressured governments to remove barriers to the cross-border flows of money and products. Advances in telecommunications and computer technology have made it possible for trillions of dollars in finance capital to zoom around the world, 24 hours a day, searching for the highest rate of interest.

 

This globalization of market forces has greatly increased inequality. Just 150 years ago there was not great inequality between the standards of living of people in the global north and those in Africa, Asia and Latin America. Now the richest 20 percent of the world's population receives 83% of the world's income, while the poorest 60% of the world's people receive just 5.6% of the world's income. The richest 20% of the world's population in northern industrial countries uses 70% of the world's energy, 75% of the world's metals, 85% of the world's wood, 60% of the world's food, and produces about 75% of the world's environmental pollution.

 

1. 세계은행이 정열적으로 추진한 시장의 힘의 지구화는 더 큰 불평등을 창조한다. 세계은행과 IMF, 초국적 기업 등에 의해 주도된 지난 30년간의 경제적 지구화는 점점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기관들은 돈과 상품의 초국경적 유통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하도록 각 국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통신과 컴퓨터 기술에서의 진보 덕분에 수조 달러의 자본이 하루 24시간 내내 최고의 이율을 찾아 세계를 샅샅이 훑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같은 시장의 힘의 지구화는 불평등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단지 150년 전에 지구 북반구 사람들의 표준적 삶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사람들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지금 세계의 가장 부유한 20%가 세계 소득의 83%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하위 60%는 단지 5.6%만을 받고 있다. 북반구의 산업 국가들의 가장 부유한 20%가 전 세계 에너지의 70%, 전 세계 나무의 85%, 전 세계 식량의 60%를 사용하고, 전 세계 환경 오염의 75%를 생산한다.

 

2. The World Bank is wrong in arguing that economic growth will solve the problems we face. World Bank officials keep reassuring us that if we can just get economic growth rates high enough, these problems will be solved. We regularly hear the refain, "a rising tide floats all boats." But for those who don't own boats or have leaky boats, a rising tide means greater inequality between them and the more fortunate. The data shows that during a period of significant growth in world trade (1960 to 1989), global inequality got significantly worse: the ratio between the richest 20% and poorest 20% of the world population went from 30 to 1 to 59 to 1. We should also remember that unrestrained growth is the ideology of the cancer cell.

 

2. 경제 성장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 세계은행의 잘못 중 하나이다. 세계은행 관료들은 우리가 충분히 높은 경제성장률만 확보할 수 있다면 이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우리를 쇠뇌시키기를 계속한다. 우리는 "밀물이 차오르면 모든 보트가 물에 뜬다"는 후렴구를 규칙적으로 듣고 있다. 그러나 배가 없거나 물이 새는 배를 가진 사람들에게 물이 차오른다는 사실은 더 부유한 사람들과 그들 사이의 불평등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통계에 따르면, 세계 무역에서 빛나는 성장의 시기였던 1960년부터 1989년까지 지구적 불평등 또한 눈에 띄게 나빠졌다. 상위 20%와 하위 20% 사이의 비율은 30대 1에서 59대 1로 변화했다. 또한 우리는 무제한적 성장이란 암세포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3. The real function of institutions such as the World Bank is not to promote "development" but rather to integrate the ruling elites of third world countries into the global system of rewards and punishments. Because direct colonial control of the third world is no longer tolerated, northern elites need an indirect way to control policies implemented by third world governments. By getting the elites onto a debt treadmill and promising them new cash if they implement policies written in Washington, the World Bank can effectively control third world policies. You can see the effects right next door in Mexico. For more than a decade, Mexican elites have followed the "Washington consensus" of policy reforms designed by the World Bank. This has created some billionaires, yet for most of the 85 million Mexican people life is more difficult now than it was ten or twenty years ago. If the ruling PRI party did not control the police and military, its blatant corruption and disastrous economic policies would not be tolerated for long.

 

3. 세계은행 같은 기관들의 진정한 기능은 "발전"을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제3세계 국가들의 지배 엘리트들을 전지구적 보상과 처벌 체계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제3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식민 지배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북반구 엘리트들은 제3세계 정부들이 수행하는 정책을 간접적으로 통제할 방법을 필요로 한다. 부채의 챗바퀴 위에 제3세계 엘리트들을 세워놓고 그들이 워싱턴의 정책을 따른다면 새로이 현금을 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세계은행은 제3세계 국가들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바로 이웃인 멕시코에서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멕시코 엘리트들은 세계은행에 의해 디자인된 개혁 정책인 "워싱턴 컨센서스"를 따랐다. 이것이 몇 명의 억만장자를 창조했지만, 8천5백만의 멕시코인들 대다수의 삶은 10년이나 20년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여당인 PRI가 경찰과 군을 통제하지 않았다면, 노골적인 부패와 끔찍한 경제 정책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4. Evidence from many countries shows that the policies promoted by the World Bank are disastrous. Whether you look at poor countries such as Somalia, Rwanda and Mozambique or well- endowed countries such as Ghana, Brazil and the Philippines, the policies pushed by the World Bank have worsened conditions for the majority. Evidence from dozens of countries under World Bank tutelage shows a similar pattern: structural adjustment policies may help countries pay off their foreign debts and may create some millionaires but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suffers lower wages, reduced social services and less democratic access to the policy-making process.

 

4. 세계은행이 밀어붙인 정책들이 끔찍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많은 나라에서 발견된다. 소말리와, 르완다, 모잠비크 같은 빈국에서든, 가나, 브라질, 필리핀 같은 자원 부국에서든, 세계은행이 추진한 정책들은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켰다. 세계은행의 감독 하에 있는 수십 개 국가들에서 유사한 양상들이 나타난다. 구조 조정 정책은 대외 부채를 지불하는데 도움이 되고 백만장자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더 낮은 임금, 감소된 사회복지, 의사결정에 대한 민주적 접근 기회의 약화 등으로 고통받는다.

 

5. The World Bank's emphasis on expanding exports has been disastrous for the environment. As part of the standard structural adjustment package, the World Bank encourages countries to expand their exports so they will have more hard currency (dollars, yen) to make payments on their foreign debts. But this leads countries to overexploit their natural resources. They cut down their forests, which contributes to the greenhouse effect. They pump chemicals onto their land to produce export crops such as coffee, tea and tobacco, thus poisoning their land and water. They rip minerals out of the ground at a frantic pace, endangering human lives and the environment in the process. They overfish coastal and international waters, depleting a resource of the global commons.

 

5. 세계은행이 수출 확대를 강조하는 것은 환경에 대한 재앙이다. 세계은행은, 표준적인 구조조정 패키지의 일부로, 각 국가들이 그들의 대외 부채를 갚을 경화(硬貨)를 더 많이 획득할 수 있도록 수출을 확대하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이는 그 나라들이 자연 자원을 남획하게 만든다. 각 국가는 숲을 베어내는데, 이는 온실 효과에 기여한다. 또 그 나라들은 커피나 차, 담배 같은 수출용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토양에 화학 물질들을 뿌리는데, 이로 인해 땅과 물이 오염된다. 또 그 나라들은 미친 듯한 속도로 땅 속에서 광물을 추출해내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삶과 환경은 위협받는다. 그 나라들은 연안과 대양의 물고기들을 남획함으로써, 전지구적 공유재산의 원천을 고갈시킨다.

 

6. The "free market" economic model being pushed on third world governments is not one the industrial countries used to develop themselves. All the wealthy countries-the USA, Japan, Germany, England, France and the recent success stories such as Taiwan and South Korea-used a heavily state-interventionist model that had government play a strong role in directing investment, managing trade and subsidizing chosen sectors of the economy. The United States was in many ways the "mother country" of protectionism, showing other wealthy countries how to do it. Would we have a big electronics industry or nuclear power industry were it not for the massive government subsidy program called the Pentagon?

 

6. 제3세계 정부에 강요되는 "자유시장" 경제 모델은 산업국가들이 그들 스스로를 발전시키는데 사용한 모델이 아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최근의 성공담의 주역인 대만과 한국 등 모든 부유한 국가들은, 정부가 투자 지시와 무역 관리, 특정 경제 분야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의 강력한 역할을 하는 국가 개입주의 모델을 매우 큰 비중으로 사용했다. 미국은 다른 부국들에 본을 보여준 보호주의의 모국이다. 펜타곤이라는 이름의 대량 정부 보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거대 전력 산업 혹은 핵발전 산업을 갖고 있을까?

 

7. Globalization-from-above is being rejected and millions of people all over the world are struggling to build globalization-from-below. Globalization-from-above is controlled by wealthy elites and driven by a hunger for more wealth and power. But there is another form of globalization made up of grassroots alliances of human rights activists, trade unions, women's organizations, environmental coalitions and farmers organizations. This people-centered form of globalization does not have the amount of money or guns possessed by the elites but it does have moral authority. Just think about the contrast between the dominant system's focus on greed and our focus on meeting human needs. This alternative vision calls for more openness and accountability by institutions such as the World Bank and transnational corporations. It calls for raising wages, health and safety standards in the third world to bring them up to first world levels, rather than driving first world standards downward. It calls for stewardship of natural resources that will preserve something of the environment for our grandhcildren to enjoy. It seeks to redefine self- interest so that it is more in line with the common interest of humanity. The problem confronting us is how to get the leaders of the World Bank to listen to our demands for reform.

 

7. 위로부터의 지구화는 기각되고 있으며 전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부유한 엘리트들이 위로부터의 지구화를 통제하고, 더 많은 부와 권력에 대한 굶주림이 그것을 추동한다. 그러나 인권 활동가들, 노동조합들, 여성운동 조직들, 환경단체들과 농민 조직들 같은 풀뿌리의 동맹으로 구성되는 또다른 형태의 지구화가 있다. 이 민중중심적 지구화는 엘리트들이 소유한 많은 돈이나 총이 도덕적 권위만을 갖는다. 탐욕에 대한 지배 시스템의 초점과 인간적 필요 충족에 대한 우리의 초점의 극명한 대조를 생각해보라. 이 대안적 비전은 세계은행이나 초국적 기업들 같은 기관들에게 더 많은 개방성과 책임성을 요구한다. 제1세계의 기준 아래로 전락하지 않고 그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임금 인상과 제3세계에서의 건강 및 안전 기준 등을 요구한다. 또한 우리 자손들이 환경의 일부를 누릴 수 있도록 천연 자원을 보존할 책무를 요구한다. 그것은 인류의 공동 이익과 일치할 수 있도록 자기 이익을 재정의할 것을 추구한다. 우리가 그 문제에 맞서는 것은 세계은행의 리더들이 우리의 개혁 요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방법이다.

 

An Easy Way to Pressure the World Bank for Change

세계은행이 변화하게 압력을 넣는 손쉬운 방법

 

The World Bank gets most of its capital by selling bonds to wealthy investors. If we could pressure large institutional funds (e.g., university endowments and state worker pension funds) to stop buying World Bank bonds as a way to protest the Bank's destructive policies, we could exert serious pressure on the Bank.

 

Just think about the huge impact the divestment campaign had on South Africa's white minority rulers during the closing days of apartheid. The divestment struggle also raised a key question: who controls how capital is invested and why isn't it a more democratic process?

 

Many institutions such as universities and retirement funds purchase bonds issued by the World Bank. The name appearing on the bonds will be the World Bank's formal nam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These are fixed rate securities which are sold by underwriters such as Goldman Sachs, Fidelity, First Boston, Credit Suisse and many Japanese banks. The bonds pay a good rate of return and are considered safe investments because they usually carry a triple-A rating. They are not officially insured by the U.S. government but, as one bond trader told us, the U.S. government would not stand by and let the World Bank default on its bonds. In other words, the U.S. taxpayer is the ultimate insurer of these bonds-just as we were forced to bail out the Wall Street speculators and Mexican financiers during Mexico's crash in early 1995.

 

세계은행은 그 자본의 대부분을 부유한 투자국가들에게 채권을 팔아서 마련한다. 세계은행의 파괴적 정책에 저항하는 한 방식으로, 우리가 (대학 기부금이나 주 노동자 연금 같은) 거대 기관 투자가들로 하여금 세계은행 채권 구입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세계은행에 중대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아파르헤이트가 끝날 무렵 동안 매각 운동이 남아공의 소수 백인 지배자들에게 미친 거대한 영향에 관해 생각해보라. 이 매각 투쟁은 핵심적 의문을 떠오르게 했다. 자본이 어떻게 투자되는지를 누가 통제하는가, 그리고 왜 그것이 더 민주적인 과정이 되지 못하나?

 

대학과 퇴직연금 같은 많은 기관들은 세계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구매한다. 채권에 나타난 이름은 세계은행의 공식 명칭 : 국제부흥개발은행일 것이다. 이는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퍼스트 보스턴, Credit Suisse, 그리고 많은 일본 은행들 같은 보증인들에 의해 팔리는 고정 비율 증건이다. 그 채권은 회수율이 높고 그들이 대개 트리플 A 등급을 갖기 때문에 안전한 투자로 고려되어진다.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미국 정부에 의해 발행되지 않지만 어떤 채권 거래인이 우리에게 말했듯이 미국 정부는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세계은행이 그 채권들에 대해 채무불이행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1995년 초반 멕시코 위기 동안 월스트리트 투기꾼들과 멕시코 자본가들에게 긴급 융자하도록 강요받았듯이, 미국 납세자들은 이 채권들의 궁극적 보증인이다.

출처 : 글로벌 익스체인지 웹사이트

http://www.globalexchange.org/campaigns/wbimf/reformWorldBan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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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권리, 알릴 권리, 알리지 않을 권리

정보인권, 그 다양한 영역들

정보인권이라는 표현이 NEIS 논쟁과 함께 등장하면서, 흔히 정보인권이라고 하면 감시와 검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정보인권에는 매우 다양한 문제들이 포함된다. 사실 정보인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표현이다. 국제적으로 정보인권과 비슷하게 사용되는 용어로는 커뮤니케이션 권리(communication rights)가 있다. 말 그대로 의사소통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 표현의 자유와 정보 및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정보인권은 이렇게 다양한 인권 문제들과 맞닿아 있다.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이 개인의 정치적•경제적 능력을 결정하기 때문에 정보가 독점되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글리벡 문제다. 글리벡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약품이지만, 이 약품의 제조법을 노바티스라는 다국적 제약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보니 약값이 지나치게 비싸 많은 환자들에게 그림의 떡이 돼 버렸다.

정보 격차 문제도 매우 중요해진다. 농촌이나 산골, 도서벽지는 정보통신 인프라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다. 설치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인구가 적어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보에 접근하는 문턱의 높낮이는 더욱 큰 차이로 벌어진다. 이 외에도 미디어나 정보통신 영역에서 독점기업의 문제, 국가간•지역간•계층간의 정보격차 문제, 국가나 기업의 정보공개 문제, 저작권 문제나 오픈소스 문제 등 다양한 정보인권 이슈가 발생한다. 다만 커뮤니케이션 권리 개념으로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같은 프라이버시권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1996년 6월 일군의 NGO들이 모여 제정한 커뮤니케이션 권리 강령의 경우, 커뮤니케이션과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사회의 민주화에 공헌하게 할 것”과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제도, 과정을 민주화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보인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다양한 표현으로 정보화 시대의 인권 문제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시민단체인 진보네트워크센터의 경우 일찍이 “알 권리, 알릴 권리, 알리지 않을 권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2002년에는 ‘정보기본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이를 표현의 자유, 정보접근권, 정보공유의 권리, 반감시권, 자기정보통제권이라는 다섯 가지 권리로 세분하기도 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초기에 정보화 시대의 시민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를 ‘공적 정보의 공개와 사적 정보의 보호’라는 표현으로 설명했으나 이 개념이 너무 협소하다고 판단, 최근에는 ‘의사소통의 권리와 프라이버시 권리’로 확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자기정보결정권이 취약한 이유

사실 자기정보결정권, 혹은 자기정보통제권은 다른 정보 인권들에 비해 더욱 중요하게 취급될 필요가 있다. 여타의 다른 권리들은 정보화 사회가 확대되면서 함께 발전한다. 하지만 자기정보결정권은 정보화 사회가 발전할수록 점점 더 취약해진다. 다양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해서 개인들의 생각과 생활을 파악하고 향후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다. 최근에는 개개인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고 있다. 현재 개발중인 RFID(전자바코드)라는 기술이 확장되면 모든 물건의 움직이는 위치도 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기록할 수 있는 빅 브라더(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감시나 자기정보결정권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구체적 이슈가 발생할 때 외면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CCTV 설치를 둘러싼 논란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떳떳하다면 촬영 당한다고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냐?”고 되묻는다. 성범죄나 수능시험 부정과 같은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면 늘 “개인의 작은 권리보다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면서 유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도 구축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감청도 허용된다. 물론 개별 사안만 놓고 보면 그런 주장이 옳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도입되는 감시 기술은 그 사안에만 쓰이지 않는다. 유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는 직장이나 보험 가입 때 수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질병 보유자라는 이유로 차별하게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들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감청이나 CCTV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행동이 위축되게 마련이다. 국가기관의 검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감시하는 일이다.


보편적 다수의 권리에서 다양한 소수의 권리로

지금까지 얘기한 정보인권은 사실 일반 시민들의 권리, 즉 보편적 다수자의 권리다. 그런데 인권 일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보화 사회의 진전에 따라 정보인권에서도 소수자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장애인들의 경우 정보접근권이 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때 정보접근권이란 단순히 컴퓨터와 인터넷 접속 회선을 보유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의 유형에 따라 정보접근권의 문제도 서로 다르다. 손이 없거나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체할 기기가 필요하다.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점자 키보드와 점자를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가 필요하다. 또한 시각 장애인들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식도 전혀 다르다. 시각 장애인 전용 프로그램에서는 웹 상의 글자들을 읽어 주는 방식으로 웹 페이지를 읽게 된다. 상당수 웹사이트들이 하위 메뉴를 이미지 파일로 만들거나 심지어 웹사이트 전체를 플래시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제3세계와 관련한 정보인권도 문제다. 서구의 많은 지식들이 사실은 제3세계의 토착 지식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식들을 특허라는 이름으로 독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수천 년에 걸쳐 자신들이 발전시켜 온 지식을 어느 날 갑자기 외국 기업에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약품이나 농산물 종자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매우 심각해진다. 갈취 당하지는 않더라도 경제성이 없거나 근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토착 문화나 지식, 언어들이 무수하게 많다. 이런 까닭에 2003년 스위스에서 열린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는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았다.

정보화 사회가 진전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소수자 문제, 다양성의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정보인권 역시 이러한 시대 변화에 걸맞게 보편적 다수의 권리에서 다양한 소수의 권리로 점점 더 풍부하게 발전해야 할 것이다.

 

월간 인권 200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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