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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심포에 대한 안수찬 기자의 가장 솔직한 이야기인 것 같다. 심포의 문제의식에 한껏 끌리면서도 헌법의 압도적 위상, 혹은 안수찬 기자 본인 표현으로는 '관습헌법'으로 인한 주저함이 남아있는, 나나 우리 헌법 다시보기 대다수 구성원들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결국 발리바르까지 끌어들이고 나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사실 발리바르가 인권의 정치에 대한 얘기를 한 것도, 유럽 헌법과 연관된 얘기라 한다. 유럽이 만들어지고는 있으나, 혁명, 즉 구성(혹은 제헌) 과정은 없는 (혹은 시민사회와 무관한) 유럽 만들기에 대한 발리바르의 문제의식이 "인권의 정치"라는 문제설정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법·제도와 광장의 이분법이 약간 걸리지만, 아직까지 그 이분법을 명백히 넘어서지 못한 이 쪽의 책임이 더 크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정말 아쉬운 것은, '인권의 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안수찬 기자의 글 어디에서도 정작 정희진 쌤의 논문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헌법과 인권 (안수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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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찬/ 인권연대 운영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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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지면을 즐겨 읽는, 적지 않은 수의 법률가 또는 법학자들에게는 죄송하게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법이란 그저 거만한 권위와 고리타분한 구습의 결정체라고 나는 믿었다. 법에 갇히는 순간, 법의 권위에 굴복하는 순간, 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장엄함과 현실의 생동감은 그 빛을 잃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이런 정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개혁진보 진영에서 이어져 내려온 ‘관습 헌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법에 목매달아서는 안 된다는 그 불문율 말이다. (대신 ‘권력’에 목매달았던 셈인데, 생각해 보면 권력이나 법이나 뭐 다를 게 있다고, 그 둘 사이에 넓고 깊은 해자를 파고 법 제도 일반을 ‘사갈시’했는지 모르겠다)
법을 폐지하자는 데모는 해봤어도, 실제로 어떤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활동은 그래서 여전히 낯설다. 그것은 길게 잡아야 시민단체들이 제 자리를 잡은 지난 10년 안쪽에 시작된 일이다. 그나마도 여전히 운동의 중심은 ‘법’이 아니라 ‘광장’에 있다는 게 이들 시민단체의 믿음이자 나의 믿음이다.
여기서 시시콜콜 그날의 발제와 토론 내용을 옮길 생각은 없다. 궁금하신 분은 <한겨레>에 쓴 제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다만 그 기사에 온전히 담지 못한 한 ‘장면’을 전하고 싶다.
오전 발제에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현행 헌법의 민주적 개혁을 강하게 주창했다. 6월 항쟁의 성과물이지만, 실제로는 그 함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민주주의의 진전에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는 현행 헌법을 정치협약이 아닌 시민의 헌법으로 개혁하자는 게 그 요지였다.
그런데 오후 토론에 나선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이를 강력히 비판했다. 민주주의의 진전은 (계급계층에 기반한) 정당정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헌법의 권위에 기대는 헌정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헌정주의는 원래 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인데, 진보개혁 진영이 이제 그 ‘헌정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는 ‘인권’의 지향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 ’ 정도가 개인이 갖고 있는 원천적 권리에 대한 규정이라 ‘해석’할 만하다. 다만 그 내용의 상당수는 ‘국가주의’에 기울어져 있다.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고 그에 따른 국민의 지위를 정하는 ‘발상’이 깔려 있다.
헌법 제2장에는 모두 29개조에 걸쳐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적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차별금지’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 침해 금지’ ‘통신비밀 보장’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재산권 보장’ ‘교육권’ ‘노동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환경권’ 등이 여기에 모두 명문화돼 있다. 다만 그것은 난삽하고 복잡한 나열에 불과해 보인다. 인권의 여러 양상과 국면을 어떻게 계통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2장 전체를 차지한 여러 권리와 자유는 ‘생동하는 권리장전’이자 ‘민주주의의 고향’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그저 ‘화석화된 문자’로 읽힌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면, 헌법 개혁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기본적으로 이런 인권 조항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박명림 교수와 최장집 교수의 논리를 이 문제에 대입하자면 이렇다.
박 교수는 사실상 ‘사문화’돼 있을 뿐 아니라, 인권 개념의 적극적 확장을 막는 현행 헌법을 ‘시민들의 공론장’에서 의제로 설정해, 사문화된 조항은 되살리고, 부족한 조항은 더 강화해 진정한 인권헌법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셈이다.
이념의 시대는 갔고, 광장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면, 모든 운동과 역사의 출발점은 결국 자유롭고 그래서 무한히 존귀한 개인일 수밖에 없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 그리고 그 총합으로서의 헌정 제도를 고민한다면, 그 출발 역시 ‘인간’ 각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인권은 지금 한국 사회의 ‘말과 글’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를 바로 잡는 데서,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작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띠엔 발리바르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는 ‘인권의 정치’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계급의 정치에 발목 잡힌 좌파의 도그마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내가 보기에 인권의 정치는 대단히 급진적인 구호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헌법을 말한다 할 때, 가장 할 말이 많아야할 사람들도 바로 인권운동가들이어야 옳을 것 같다. 정치학자들은 지금 ‘헌법을 민주주의의 품으로’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헌법을 인권의 품으로’라는 슬로건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민주주의는 그 곳으로 가는 길에 붙여진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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