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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혹은 미미한 은퇴
- 마종기
1
젊은 봄날에 우리는
먼 외국에서 도착했다.
구식이 된 거리의 실내악.
집 잃은 사람은 구라파로 가고
목련이 구름처럼 피어 기가 질리던
그 계시의 영상을 믿기로 했다.
이사 온 나라는 달기만 해서
목련의 색깔은 더 엷어지고
시계 초침 소리는 더 빨라지고
나는 몸을 감추기 시작했다.
단번에 칼처럼 매워지고 싶었지만
정신 나간 목련은 계속 피면서 지고
여름이 되기 전에 맨발이 되었다.
나는 가벼운 물에 떠돌기 시작했다.
2
당신이 같이 걸어주어서
내 길이 얼마나 험했는지
나는 끝까지 모른다.
당신의 이마에서 눈과 목으로
가슴으로, 배로, 그 밑으로
상처 자국의 다리를 쓸어내려도
황막하게 슬프지 않은 곳 어디 있으랴.
젖어서 시리지 않은 곳 어디 있으랴.
지도를 펼쳐보면
기억 나니? 오래전
그 큰 나무 그늘에서 나를 부르던
미열의 연보라색 눈동자.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이 혹시 쉬고 있는 목성과 토성 사이.
오늘도 당신에게 가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표나지 않는
비 오는 날에 보는 목련꽃 벗은 몸.
3
평생을 어딘가에 취해 살았다.
행방이 묘연한 내 살림살이.
꽃을 먼저 피워 날리고 난 후에야
뒤늦게 나뭇잎을 만들어 달고
꽃씨 간직할 방도 마련하기 전에
아이들은 차를 타고 제각각
어색한 언어의 나라로 떠났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가까운 친구는 병이 들었고
일요일에는 낙엽이 날렸다.
낙엽은 나무의 눈물,
쌓인 눈물을 다 씻어낸 뒤에
당신에게 들어가 열매가 되었다.
4
-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구약 시편: 133)
새벽잠 없어진 것이야 나이 탓이겠지만
그래도 서둘러 내 잠 깨운 창 밖의 새는
누가 잃어버린 추운 인연일까.
나는 그래서 매일 아침 몸이 아팠다.
이제 내 짐도 내려놓고
내 하던 일도 내려놓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일탈
국경의 저쪽에 당신 침묵이 보인다.
죽은 꽃나무 짊어지고 산정을 향하는
당신 연민의 옆얼굴이 밝아온다.
피 흘리는 미혼의 집에서
몸부림하던 문들이 열린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말과 글이
당신의 몸에 눌려 질식하고
땅과 바다는 다 걷혀 가버렸다.
한때 사람은 심장으로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나도 가슴이 뛰었다.
기적같이 당신의 극치에 왔다.
세상에 필요한 단 하루의 아침에
내게 확신의 눈길 보내준 당신과 함께.
마종기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한일회담 반대로 조국을 떠나 30년 넘는 미국생활이 무색하게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일까?) 마종기의 모국어에는 늘 옷깃을 여미게 된다.
금화터널을 지나며
강형철
매연이 눌어붙은 타일이 새까맣다
너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 곁에 보 고 싶 다 썼고
나는 정차된 좌석버스 창 너머로
네 눈빛을 보고 있다
손가락이 까매질수록
환해지던 너의 마음
사랑은 숯검댕일 때에야 환해지는가
스쳐지나온 교회 앞
죽은 나무 몸통을 넘어 분수처럼 펼쳐지는
능소화
환한 자리
- 강형철 시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중
예전에 한 사람과 헤어진 후 금화터널을 지날 때마다 버스 창밖을 내다보며 보고싶다고 되뇌었던 적이 있었다. 내 경우는 장소랑 결합된 기억이 참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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