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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어느 게시판에 올려둔 거 찾아옵니다. 운동가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이 글 읽으면서 늘 생각합니다.
서준식의 생각 머리말 2003-03-17
너무 당연한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책을 쓸 때는 서문을 잘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새삼 했습니다. 홍세화, 강준만, 박노자, 진중권 등등의 칼럼 모음집을 왠만하면 사지 않는 제가, 이 책을 사게 된 건 오직 서문 때문이었으니까요. 요즘, 딱딱한 책들 읽으면서 눈물 지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 많겠지만, 한 자 한 자 손으로 (아니, 키보드로) 배껴 어딘가에 담아두고 싶어서 이 곳에 올립니다. 방장님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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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운동가의 글쓰기를 생각하며
이 책은 사실상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산문집이다.
나는 그 흔한 '평론가'도 아니고 '칼럼니스트'도 '자유기고가'도 아니다. 1988년 감옥에서 나온 후로 나는 인권운동밖에 모르고 세상을 살아왔고 나에게 '인권운동가' 말고는 다른 직함이 없었다. 운동가가 자신의 산문들을 모아 출판하는 일을 좀처럼 보기 힘든 우리 사회에서 나는 이렇게 책을 냄으로써 자칫 운동가가 아닌 '글쟁이'로 오해받지나 않을까 마음이 불편하다.
어렸을 때 나는 거의 만능에 가까운 스포츠맨이었다. 일찍부터 땀흘리며 근육을 단련하는 일의 고통 속에 행복을 발견했던 나는 당연히 글쓰기나 책읽기와는 무관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어느새 나는 확실히 단련된 근육이 우리에게 비겁해지지 않으려는 우직함이나 남을 속이지 않으려는 소박함을 선사해준다는 신앙과도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가냘픈 팔과 하얀 손으로 글쓰는 자들을 '문약(文弱)'으로 단정하면서 본능적으로 경멸하곤 했다. 일본에서 문필활동을 하는 아우 서경식은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한 자신의 책에서 당시의 나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한편 워낙 운동능력이 뛰어났던 그는 아닌 밤중에 느닷없이 나약한 나를 단련시키겠다며 왕복 4~5킬로는 족히 되는 오무로의 닌나지까지 달리기를 강요하곤 했다. 나로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성질나면 곧바로 손이 올라가는 성격이었는지라 반항할 엄두도 못내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어린 시절의 나는 그를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子どもの淚> 日本小學館文庫. 72쪽)
그러나 나이를 먹음에 따라 근육 단련은 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짓'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그리고 점점 뼈아프게 실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영세한 가내공장 직공들은 거의가 내일에 대한 희망도 인생설계도 없는 떠돌이들이었다. 그들은 월급을 받으면 그것을 며칠 사이에 술과 오입질에 탕진해버렸고 월초의 일손 부족은 늘 악몽처럼 아버지를 괴롭혔다. 뼈가 다 굵은 아들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애절한 눈길을 외면하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알아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지만 형이나 아우는 잽싸게 도망치기가 일쑤였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한나절을 보낸 나에게 아버지는 정말 고마워하시고 따뜻한 치하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진짜 기대는, 고된 육체노동을 묵묵히 견딘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망쳐 버린 아들들에게 있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사회, '근육'을 단련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고 주변으로 내몰리는 사회에 대한 회의를 떨쳐내지 못한 채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말부터 근육 단련 대신 지성 쌓기를 시도했다. 왠지 올바른 길을 포기하고 나 자신의 믿음을 배신한 것만 같았던 그 때의 쓴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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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 숭배자였던 내가 글쓰기와 친해지게 된 것은 17년의 감옥 생활을 통해서였다.
국가권력의 비열한 사상전향공작 앞에서 비겁해지지 말아야 하고 굴복하지 말하야 한다는 명제는 당시 나에게 거의 인생목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그곳에서 감행했던 나의 모든 인내와 거부의 몸짓은 십중팔구 단련된 '근육'의 힘에서 나온 것이었을 터이다. 수개월 동안 독서 금지조치를 당해도 책을 보여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끝까지 참았던 나를 당시 광주교도소 전향공작 전담반 요원들은 "성격이 비뚤어진 외고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장기간의 독서 금지와 편지 쓰기 금지, 그 후에 거의 일상화되었던 차입 도서의 마구잡이 불허와 서신 불허는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나의 목마름을 극한까지 몰고 갔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쇠창살과 시멘트 담 안에 갇혀 실의의 날들을 보냈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거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우리들 시대에 바치는 나의 고난의 의미를 확인했고,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내부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편지를 쓰면서 절망적인 고독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다. 편지를 쓰는 일은 나의 논쟁행위였으며 고해성사였으며 절절한 기도였으며 또한 즐거운 놀이였다. 곱은 손에 호호 입김을 불면서, 혹은 봉함엽서 위에 뚝뚝 떨어지는 땀을 손바닥으로 자꾸만 훔치면서 나는 열심히 편지를 썼다. 절망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살아남기 위하여...(<서준식 옥중서한> 야간비행. 20쪽)
그 결과 1988년에 감옥에서 나온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바로 '글쓰기'였다. 감옥에서 겪은 많은 것들, 특히 사상전향에 관한 모든 문제를 남김없이 하나의 대하소설 속에 형상화시켜 보고 싶은 욕심이 나에게 있었다. 출옥직후부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밀려서, 혹은 의리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발을 들여다놓은 인권운동의 바쁜 일상속에서도 나는 한참동안 글쓰기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2년 어느 봄날, 나는 문득 운동과 글쓰기가 양립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눈을 씻고 나의 주변을 봐도 뛰어난 운동가이자 제대로 된 문필가는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김지하나 조영래 같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를 선택행야 했다. 한 달 가량 고민한 끝에 나는 얼마간의 아쉬움을 품은 채 운동가의 길을 택했다.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 이후 전망을 잃은 운동판에서 '운동가'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었고 운동을 떠난 상당수 사람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자유기고가'라는 직함을 달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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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남짓 인권운동에 파묻혀 살아온 나는 이따금 이런 저런 매체에 글을 기고하기는 했어도 언제나 나의 본분은 인권운동이라고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시대에 부끄럽지 않은 인권운동가로 남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글쓰기'라는 외도에 빠져들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따라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대체로 한 가지뿐이었다. 즉 난관에 부딪친 나의 인권운동을 살리기 위하여, 혹은 꺼져 가는 우리 운동에 힘을 불어넣기 위하여... 물론 쓰고 싶은 여러 가지 주제는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쓰고 싶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모니터 앞에서 끙끙거려야 했고 때로는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놓고도 '운동적 고려' 때문에 무참히 도려내기도 해야 했다. 때로는 '전술적으로' 내키지 않는 엄살도 떨어야 했으며 때로는 필화(筆禍)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밤중에 글을 쓰다 말고 '신변을 정리'한 적도 있었다. 나의 글쓰기는 그저 '글쓰기'가 아니라 엄격하게 나의 인권운동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곧 나의 인권운동이었다. 이것을 고집스럽게 강조하는 까닭은 실제로 내가 운동가로서 운동의 절박한 필요에 따라 글을 써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그릇된 세태를 용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운동가(더 정확하게는 '활동가')나 노동자에 비해 일반적으로 지식인, 그리고 그 하나의 형태로 인정되는 '글쟁이'들이 부당하게 높은 대접을 받는 병든 사회이다. 험한 밥을 먹고 몸을 소진시켜가면서 간신히 '근육'으로 이 사회의 최악의 상황을 막아내고 있는 운동가가 글줄이나 하는 지식인이나 글쟁이 앞에서 한결같이 주눅들어야 하는 것이 비뚤어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운동가 인구의 보충은 바라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기존의 운동가 마저 덜 험한 밥과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기 위해 운동판을 떠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한 4~5년 동안 눈 딱 감고 사법시험 공부나 작가수업에 열중한 후 시험에 합격하거나 '등단'할 수 있으면 그들은 하루아침에 그 4~5년 동안을 배고픔과 핍박을 견디며 이 사회의 암흑과 싸워 온 운동가들보다 월등한 사회적 대접을 받을 수가 있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리하여 성공적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그들의 존재는 지적으로 성공할 가망이 없는 '열등인간'만이 운동판에 남는다는 그릇된 편견을 사회에 만연시키는 데 다시 일조를 하면서 운동가들을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고 간다. 나는 젊은 인권운동가들의 선배로서 이런 세태에 앞장서서 저항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글쟁이'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글을 쓰더라도 어디까지나 인권운동으로서의 글쓰기로 일관하고 싶다.
분명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글이 과잉하고 행동이 과소한 시대이다. 범람하는 가지각색의 매체들을 꽉 메우는 글, 글, 글... 우리 사회의 글에 대한, 혹은 글쓰는 자에 대한 동경은 말 그대로 비정상적이다. 상업적인 이유로 계속 부추겨지는 이런 세태 속에서 글쟁이들은 당연히 오만하다. 그들의 글에서 행동하지 않는 자의 부끄러움, 고난받지 않는 자의 죄책감, 악한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자의 슬픔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들의 글을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십중팔구 '근육'을 경멸하고 '입'을 숭상하게 되어 있다. 물론 그들이 현란하게 펼치는 주장 속에 경청할 만한 이야기가 적지 않게 담겨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온갖 레토릭과 해박한 지식으로 포장되어 있는 글의 알맹이는 의외로 단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그들이 굳이 글을 쓰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대충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글로써 주장하는 바를 몰라서가 아니라 행동이 과소하기 때문인 것이다.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글쟁이들은 가끔 이런 주장을 한다. "글쓰기도 운동의 한 형태다. 우리도 운동가다." 그들의 이런 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해주고 싶지 않다. 그것을 고스란히 인정해버린다면 누가 고달픈 운동판에 남아 있으려 할 것인가? 나의 생각으로는 운동가(혹은 활동가)가 운동을 하는데 절박하게 필요해서 쓴 글은 운동의 일부이지만 글쟁이의 글은 그저 글일 따름이다. 기껏해야 좋은 글일 따름이다. 좋은 글을 쓰고 호평을 받으면 그것으로 행복해 해야 한다. '근육'으로 하는 행동 없이 운동가의 명예까지도 깡그리 차지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닌가? 고문과 가혹행위의 공포가 가득한 감옥에 몸을 둔 운동가는 말할 것도 없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운동을 조직하고 다니면서도 차비를 걱정해야 하는 운동가, 항상 감옥에 갈 준비를 해놓고 집회에 나가야 하는 운동가, 국회의사당을 멀리 바라보면서 자신이 조직한 고작 2~30명의 시위대와 함께 '악법 철폐!'를 외치다 닭장차에 실려 가는 실의에서 언제나 다시 일어서야 하는 운동가... 글쟁이가 자신의 글쓰기와 그들의 삶이 운동이라는 점에서 '같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만의 극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글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지나칠 때 그것은 미신이 된다. 즉 글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위험한 미신일 수 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나 글쟁이들이 만들어내는 미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원리가 관철되어 있으며 글로써 사회가 변할 만큼 이 사회는 아직 신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땅 위에 그어놓은 금 안에서만 놀아라!' 이것이 이 사회의 '룰'이며 그 금을 넘어가면 반드시 피를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진보적' 글쟁이들의 글이란 '금 안에서만 노는' 글이다.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망각하는 모든 글쓰기는 미망(迷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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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데는 많은 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은 나의 오래된 믿음이다. 나는 체계적인 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고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도 아니고 치밀한 논리를 갖춘 사람도 아니다. 따라서 이 책에는 현실에 대한 운동가의 감수성과 험한 현실 속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운동가의 고통과 운동에 대한 희망에 관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나의 글은 운동가의 글로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 이상의 가치를 바라는 것은 분명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번 권유가 있었음에도 책을 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은 일상의 활동이 바쁜 까닭도 있었지만 이런 나의 글들이 왠지 초라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2001년 8월에 인권운동사랑방 대표를 사임하고 운동 일선에서 물러나게 됨으로써 약간의 시간 여유가 생겼다. 적어도 일상의 활동이 바빠서 책을 못 낸다는 핑계는 써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인권운동 10년의 결산을 할 필요도 나름대로 느꼈다. 그리하여 결국 농담처럼 오가던 책을 낸다는 이야기가 진담이 되고 현실화되어 여기까지 와버렸다.
과거에 모아두었던 원고들을 검토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사과박스를 뒤졌을 때 나는 '참 쓰기도 많이 썼다'는 감개를 금할 수가 없었다. 칼럼은 물론이고 성명서, 진정서, 보고서, 토론 기록, 강연 원고에다 논문 흉내를 낸 것까지... 나는 내가 과거에 쓴 글들을 정리하면서 세상에 상품으로 내놓을 이런 책 따위에 실을 글들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인 활동의 결과물인 글들이, 운동가의 땀과 눈물 어린 고된 활동의 결과물인 글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물론 나는 그런 글들을 이 책에 싣지 않는다. 실어봤자 '재미'있는 글에 길들여진 독자들에게 '상품'으로 다가가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활동가의 글들은 단지 상품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재미'없다는 이유로 햇빛을 보지 못한다. 이는 사회가 경박하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나는 나의 후배 활동가들이 만들어낸 그 훌륭한 운동의 결과물들 대신 나의 잡문들이 책으로 출판된다는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 책이 나의 후배 활동가들이 진보주의와 인권운동의 문제에 대해 생각을 심화시키는 디딤돌이 되기를 원한다. 그들이 이 사악한 사회에서 일상의 삶에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 이 책을 보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곧 나의 모든 글을 읽을 수 있게 될 내 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03년 1월 30일
명륜동 작업실에서
서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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