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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 17일, 남아공 주민등록법 폐지


1991년 6월 17일, 남아공은 주민등록법을 폐지함으로써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인종차별 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 전 달에 재판없는 구속과 언론검열을 허용해온 국가보안법을, 그 달 초에는 인종간의 주거지를 구분해 놓은 집단거주지역법과 전국토의 87%를 백인에게 할당한 토지법을 폐지했다) 1950년 제정된 남아공의 주민등록법은 모든 주민을 4개의 인종으로 구분하여 등록하게 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각종 차별을 정교하게 시행했다. 도대체 어떻게 모든 사람을 4개의 인종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사실, 이런 제도의 극단은 나치 시대의 유대인 가족 번호다. 영화 신들러리스트에서 이 제도를 엿볼 수 있다. 유럽에서 일찌감치 국가의 개인정보 수집을 금지해온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리 주민등록법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 주민등록법은 남성과 여성 외의 어떠한 구분도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이 둘 중 하나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양심의 자유란 적어도 주민등록번호 앞에서는 보장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성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번호체계가 만들어지면, 그들은 더욱 고통받을 거다.

 

남아공은 인종차별 폐지투쟁과 함께 주민등록법을 폐지했고, 헝가리는 현실사회주의 독재를 철폐한 후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위헌으로 규정했다. 그러고보면, 주민등록법 뿐 아니라, 지문날인이나 국가보안법도 (비록 모습은 다르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당당히 존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로부터 합헌판결 받아가면서 말이다. 이것이 해방을 경험한 나라와 경험하지 못한 나라 사이의 차이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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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데서 고생하는 정보통신망법...--;;

대통령 비방글을 올린 현직 경찰관이 서울지검 컴퓨터 수사부에 의해 구속되었다. 죄목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상의 명예훼손죄. 최고형이 징역 7년, 자격정지 10년 또는 벌금 5천만원이나 되는 무시무시한 죄목이다. 야간 근무중에 술먹고 취한 김에 정권에 대한 불만을 "대통령이 고정간첩"이니, "미국에 의해 참수될 날이 멀지 않았다"느니 하는 막나가는 표현을 사용하여 표출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정간첩이라니, 물론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공인 중의 공인인 대통령의 활동에 대해 지나친 방식으로 불만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렇다면, 구속까지 하는 것은 취중에 "김일성 만세" 외쳤다 끌려가던 막거리 보안법 시절과 뭐가 다른가? 이미 파면까지 당한 마당에. 참고로,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죄도 징역 7년이다.

 

구속의 과도함과는 별도로 이 사건이 재미있고도 어이없는 것은 우리 공직사회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부 경찰들이 야근 중에 술먹고 근무하고 있음이 분명하며, 규정에는 어긋나는 일이지만 별 문제 아니라고 덮어두는 분위기가 지배적일 것이다. 그러니, 정작 근무 중에 술 먹은 건 놔두고, 명예훼손으로 구속한 것이다. 술 먹은 거야 그럴 수 있지만 (사실 자기들도 맨날 먹는 게 낮술이니까) 감히 경찰이 대통령 욕을 하다니 싶었던 게다. 구속된 경찰도 마찬가지다. 술 먹고 쓴 글임을 자백했을때, 그 심리는 뻔하다. 대통령 비방한 건 중죄라는 생각이 든 반면, 술 먹은 건 별로 큰 죄라고 생각 안했던 거다. 그래서, 술 먹고 한 짓이라고 변명해보고 싶었던 게다. 잡아가둔 쪽이나 잡혀간 쪽이나 의식 수준이 똑같다. 근무기강은 오간데 없지만, 권위주의는 유지된다. 덕분에 정보통신망법이 엉뚱한 데서 고생하게 되었다.

 

참고로 상황은 다르지만 뜻하는 바는 비슷한 이야기 하나..

 

경찰이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 차량을 수색해서 문제가 되었다. 공무원 노조 파업 관련 수배자를 숨겨주었을 거라는 이유에서이다. 파업 와해를 위해 이미 블랙리스트에 위치추적 등 온갖 불법적 수단들이 동원되고 있다고 폭로된 바 있다. 이 경우도 분명 영장이나 본인 동의 없는 불법 수색이었을 것이다. 문제가 되어 마땅하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사건이 보도되는 방식이다. "경찰, 현역 국회의원 차량 수색 파문" .. 국회의원 차량이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강제 수색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설령 범죄용의자의 차량이라도 현행범이 아니고서는 영장없이 수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심검문, 불법 수색이 워낙 만연한 사회다보니, 현역 국회의원 차량 정도 되어야 겨우 파문이 인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웹사이트 <정보인권 레이더> 게재 (200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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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감시의 민주화?

미국의 정보화 이론가인 하워드 라인골드는 지난 해 발표한 저서 「참여 군중 Smart Mobs」에서 일본의 휴대폰 문화를 관찰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이야기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만나기로 약속을 하면, 제 시간에 나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나온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이 늦게 나오는 것에 크게 불만이 없다. 아직 서로 만나지 못했지만, 그들은 문자메시지로 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제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오거나 아니면, 배터리가 닳아서 휴대폰을 받지 않는 것, 이것이 진짜 '잘못'이다."


유비쿼터스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 가능할 정도로 정보통신 그물망이 가득 들어차 있는 세상이 눈앞에 다가온다.


20세기 중반, 정보화 사회가 예견되면서 거대한 감시 사회에 대한 공포 또한 예견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감시를 막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도 곧바로 시작되었다. '자기정보통제권,' 즉 자신의 정보를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요구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계약, 즉 개인에게 자기 정보의 사용에 대한 '동의'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프라이버시 이슈가 등장할 때 간간이 언론을 통해 듣게 되는 1980년 'OECD 가이드라인'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그리고 최근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더욱 커져가는 기업 권력의 힘 앞에서, 개인의 동의가 얼마나 무력한지가 명백해졌다. 때문에, 최근에는 감시자에 대한 시민사회의 통제권을 의미하는 역감시권이 제안되었다. 시민사회의 집단적 권력으로 자기정보통제권을 보장할 대항 권력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감독기구를 명문화한 1995년 EU 지침이 그 예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프라이버시가 단순히 권력에 의해 위협받는 것이라면, 지금까지의 해결책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산형 네트워킹을 지향하는 유비쿼터스가 특정한 감시 권력을 확대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역사적으로 감시는 오히려 민주화되고 감시를 행하는 권력은 분산되어 왔다는 것이 많은 사회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오히려, 유비쿼터스 시대의 문제는 감시의 대상이었던 시민사회가 스스로 감시의 주체가 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한 가지 상상을 해 보자. 머지않아 화상 휴대폰이 상용화되면, 누구나 그걸 들고 다니게 될 것이다. 아마도,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그 휴대폰에는 화상이 전송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부착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상대방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고 화상은 전송되지 않았다고 하자.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도대체 뭘 하길래 화면을 꺼 놓은 거야? 어디 못 갈 곳에라도 간 것 아냐?" 화상 전송장치를 끄는 것은 결국 뭔가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본질은 시민사회가 온라인 상태를 강요하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중세 시대의 교회처럼,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의 직장처럼, 유비쿼터스 시대에 온라인은, 가지 않으면 주위 사람으로부터 떳떳할 수 없는 곳이 되어갈 것이다. 때문에, 온라인 상태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 '개인의 선택'이란 의미가 없어진다. 거대 권력이 아닌 시대 정신 자체가 문제인 만큼, 시민 통제 역시 의미가 없어진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감시의 눈길에 몸을 맡기고 자기 검열을 내면화하는 것, 이것이 유비쿼터스 시대에 프라이버시가 겪을 위기의 본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의 선택권'도, '시민통제'도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가? 아직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어떤 법제도적 장치, 기술적 장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행히 시민 사회는 해방을 위한 싸움의 과정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을 발전시켜 왔다. 지금까지 국가 권력에만 요구해왔던 그 원칙을 서로에게 적용할 시점이 온 것이다. 자기 검열이 내면화되는 만큼,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면화해야 한다.

 

중앙대 대학원신문 제190호(2003년 10월 8일)

실제로는 분량이 넘쳐 조금 잘린 채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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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사고, 사고 로이로제 그리고 프라이버시


프라이버시 활동가로 살아가다 보면, "사고 노이로제"에 걸리게 됩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나면 불안에 떨기 시작합니다. 사고가 두려워서? 그게 아닙니다. 대형 사고에 항상 뒤따르는 예의 "안전의 논리"가 두려운 겁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또 어떤 시스템들이 도입되어 사람들에게 감시의 눈을 들이대고 인간 존엄성에 공격을 가할 것인지가 두려운 겁니다.

 

잘 알려지지 않고 지나갔지만,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안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달 초 서울지하철공사가 종합화상정보시스템이란 걸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체 객차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겁니다. 한 번 따져보죠. CC-TV가 있었으면 대구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Privacy International) 대표 사이먼 데이비스(Simon Davies)는 CC-TV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CC-TV의 범죄 예방 효과는 극히 불확실하다. 술이나 마약에 취해 비이성적으로 저질러지는 범죄는 CC-TV가 있어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때, CC-TV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를 추적하는 것일 뿐이다. 반대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면, CC-TV가 설치된 장소를 피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결국 CC-TV로 막을 수 있는 범죄는 소매치기나 좀도둑같은 소수의 기회주의적 범죄들 뿐이다."

 

그런 의문이 가능할 겁니다. 대구 참사 같은 대형 사고 앞에서 CC-TV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이야기하는 건 너무 배부른 소리가 아니냐고요. 어쨌든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다소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래서 프라이버시 활동가는 종종 극단적 개인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취급을 받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권력을 거부하고 분권과 자치·연대의 정신을 존중하는 무정부주의자로 취급받는 것은 프라이버시 활동가에게는 사실 더없는 영광입니다)

 

그렇다면, 이타적인 당신을 위해 사이먼 데이비스가 지적하는 CC-TV의 다른 문제점 하나를 들어보죠. "흔히들 CC-TV는 기계이므로 편견없이 공정한 감시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CC-TV 카메라의 초점은 '특이한 사람'들에 맞추어지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특이한 사람'들의 범죄만이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이는 사회적 편견을 더욱 강화시키고, 실질적인 차별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지하철 참사의 용의자가 정신지체 장애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나온 후 지금까지도 정신지체 장애인들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이 계속됩니다. 그가 실제로는 중풍 환자였으며, 정신지체 장애인의 범죄율이 일반인의 범죄율에 비해 턱없이 낮은 0.2%에 불과하다는 사실들이 보도되었음에도 말입니다.

 

참사 이후 각 전철역에는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승객들 중 부랑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김없이 검문을 합니다. 불심 검문이란 결코 강제될 수 없는 국가 폭력이며 개인에게는 더없는 인격 침해라는 사실은 이 순간 가볍게 무시됩니다.

인터넷 대란이 발생하자 정보통신부는 로그 기록을 조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겠다고 나섰습니다. 로그 기록이 가장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할 통신비밀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이 순간 아무래도 좋습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아랍계 인종에 대한 무차별 검거와 인종 차별이 자행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같은 미국 시민이 아니라 잠재적인 적일 뿐이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한 셈입니다. 프라이버시 활동가들의 "사고 노이로제"는 이같은 "안보 노이로제"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안보"라도 보장되었나요? 그래서 인터넷은 쌩쌩 잘 돌아가나요? 그래서 지하철은 안전해졌나요? 그래서 미국은 평화로워졌나요? 허점투성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놓고 1년에 72번이나 패치를 받을 것을 강요하는 MS의 후안무치함은 그대로인데도. 승객의 목숨을 화물이나 다름없이 취급하는 이윤의 논리도, 한 개인이 끔찍한 범죄를 계획하게 만든 절망적인 경제적 불평등 구조도 그대로인데도.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에는 아랑곳없이 이라크 침략을 강행하는 미국의 안보논리에 세계 시민들의 분노가 날로 높아만 가는데도.

 

그러니, 결국 문제는 몇몇 낙오자나 문제아의 존재가 아니라, 위험 사회를 향해 날로 치닫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며, 해답은 누군가를 적대시하는 안전의 논리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아끼고 존중하는 시민들 사이의 연대의식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프라이버시 활동가들의 "사고 노이로제"의 진실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는데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실명제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뉴스를 전해들었습니다. 인터넷의 각종 유언비어나 명예 훼손을 방치할 수 없다고 합니다. 명예 훼손. 물론 중요한 프라이버시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 왜 나의 프라이버시 권리가 위협받아야 하는지요? 그것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 소수자의 인권과 사회문화적 다양성의 기초가 되는 기본권인 익명의 권리가 말입니다. 잘못한 일이 없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냐고요? 되묻고 싶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잘못한 일이 없다면 왜 유언비어나 명예훼손 따위를 두려워합니까? 나에게 바르게 살라고 강요하지 말고 당신이 한 점 부끄럼없이 살면 될 것 아닙니까? 법을 제정할 힘을 가진 당신이!!

 

그래서 많은 경우 프라이버시 문제는 뜯어보면 권력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서준식 선생님이 얼마 전 펴낸 책 머리말에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논리가 관철되어 있으며 …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합니다.

 

주간 문화사회 제31호(2003년 0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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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빛 인생>이란 영화를 기억하시는지요?

90년대 초반에 나온 영화 중에 <장미빛 인생>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요? 영화계 386의 기수였던 김홍준 감독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었습니다. 사고를 친 깡패와 시국사건에 연루된 노동운동가,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쓴 무협지 내용이 공안기관의 비위를 건드려 도망다니는 청년. 이 세 사람이 가리봉동의 뒷골목으로 숨어들면서 벌어지는, ‘80년대’라는 시절의 밑바닥 삶들이 끈적거리면서도 애틋하게 그려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런 영화였습니다.

<만화방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게시판을 만들어놓고서는 왠 영화 타령이냐고요? 센스 있으신 분들은 눈치채셨을 겁니다. 그랬습니다. 그 세 사람이 숨어든 곳이 바로 만화방이었습니다. 낡은 건물 어두컴컴한 계단을 벽면을 장식한 만화 포스터 속 여자들이 드러낸 긴 다리에 시선을 빼앗기면서 내려가면 나타나던 그 만화방. 사면 벽을 빽빽이 메운 낡은 대본소 만화들의 퀴퀴한 냄새와 한 쪽 구석에 틀어놓은 에로비디오의 신음소리로 가득찬 그 만화방. 메인스트림과는 결코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한심한 청춘들이 담배 빡빡 피워대며, 혹은 라면으로 끼니 때우며 하루를 버티는 바로 그 만화방. 보여줘라 만화방.

 

 
(썰렁하네요.. 적합한 장면을 못 찾아서..--;;)
 
아직도 많은 분들이 만화방에 대해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계실 겁니다. 부산에서는 마약 사건 보도가 나올 때마다 무대로 등장하는 곳이 만화방이기도 했었죠. 때문에,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조차도 만화방에 안 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대학 1~2학년 때까지만 해도 단골 만화방이 대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이런 만화방에 갈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많은 경우 낡은 건물 지하실이 깨꿋한 건물 3층으로, 낡은 제본소 만화가 일본으로부터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깔끔한 출판 만화로, TV 속 에로비디오가 대형 화면의 뮤직비디오로 바뀌었습니다. 안락한 소파와 쾌적한 공기청정기에 에어콘까지 완비해둔 것은 물론, 금연도 모자라 여성전용 만화방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금연인 만화방은 절대 안 갑니다만... 여성전용 만화방은 가고는 싶으나 못 가고요...)

며칠 전 옆 자리에 앉은 선배(아래 01누리 방 주인입니다)와 이수역 옆 오래된 시장 골목을 지나가는 데, 선배가 그러더군요. 이런 골목을 보면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을 것 같다고. 제가 가끔씩 버스 터미널이나 역 근처에서 이런 만화방들을 만날 때마다 설레이는 이유도 그런 까닭일 겁니다. 저야 뭐, 어릴 때 점심 시간이면 밥만 싸온 도시락 들고 만화방 가서 컵라면에 밥 말아먹으며 만화보던 기억, 그러다 점심시간 끝나서 선생님한테 혼나던 기억, 성인만화 보다 동네 형들에게 걸려서 돈 뜯기던 기억처럼 사소한 기억들뿐입니다만, 여전히 TV 속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듯이, 정리해고 사실 가족에 숨긴 채 출근 시간 넥타이 매고 집을 나선 후 다른 직장 알아보며 길거리 헤메다 지치면 찾아와 짜장면 먹는 젊은 가장, 소파를 침대삼아 잠들었다 주인 아저씨에게 걸려 쫓겨나는 가출한 중학생 같이 밑바닥 삶들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곳, 왕따들, 사회 부적응자들에게도 쉴 자리 하나 내어주는 곳은 역시 만화방이니까요. 김홍준 감독이 하필 만화방을 무대로 삼았던 것 역시 그래서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직도 만화방에 가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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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돌아보는 법

주변을 돌아보는 법,

30년 넘게 배워도 배워지지 않는다.

 

누군가 어떤 이유로 아파하고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혹시 그런 사실 건너듣더라도, 막상 당사자들이 부정하면,

잘못 알았겠거니 한다. 그들의 부정이, 사실 얼마나 아프고 힘든 부정이었을까.

 

내가 아픈 건,

그들이 아프고 힘들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님, 그들이 아프고 힘들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는 얘기해도 내게는 얘기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인지.

 

- 그만두는 누군가가 있다.

  그가 그만둘 정도로 아프고 힘들어하는 동안 함께 아파하고 마음써온 다른 누군가가 있다.

 

- 형편이 어려운 누군가가 있다.

  그 사실을 아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

 

내가 그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는 게, 더 아프다고 힘든 나는,

영원히 주변을 돌아보는 법은 배우지 못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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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년 6월 15일, 마그나카르타 탄생

 

세계 최초의 헌법이라 불리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가 1215년 6월 15일 존 왕에 의해 서명되어졌다.

 

모든 사회계약이 그렇듯이 마그나 카르타는 귀족계급의 이익을 철저히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재판받을 권리, 과세에 대한 의회의 동의권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도입하고 있다. 그같은 귀족 계급의 지도력이 800년에 달하는 오랜 기간 마그나 카르타가 생명력을 유지하게끔 한 힘일 게다.

 

내년 혹은 내후년, 결국 개헌 정국은 열릴 수밖에 없다. 정치판에서는 중임제니 내각제니 하는 권력 놀음에만 매달리겠지만, 정작 싸움은 전경련/삼성경제연구소 대 시민사회다. 119조 2항을 삭제함으로써 삼성공화국을 완성할 것인가, 아니면 21세기의 절대군주에게 새로운 마그나 카르타를 들이밀 수 있을 것인가?



대헌장 MAGNA CARTA

 

신의 은총에 의해 잉글랜드의 국왕 아일랜드의 군주, 노르망디 및 아퀴테인공 앙주 백작인 존은 여러 대주교, 주교, 교구장, 백작, 남작, 판관, 엽림관, 주장, 현령, 관리 및 모든 대관과 아울러 충성된 백성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삼가 신의 계시를 받들어 짐과 짐의 모든 선조 및 자손의 영혼구제를 위하고 신의 영광과 신성한 교회의 번영을 위하며 또 짐의 왕국의 개혁을 위하여 존경하는 여러 사부 즉 캔터베리 대승정, 전잉글랜드 수좌 대승정, 신성한 로마교회 추기경 스티븐, 더블린대주교, 헨리, 런던주교 윌리엄, 윈체스터주교 피터, 배르 및 그래서타운베리주교 조스린, 링컨주교 휴, 워세스터주교 월터, 코벤트리주교 윌리엄, 로체스터주교 베네딕트, 우리 주 교황의 부사제이며 교황청의 일원인 팬덜프사, 잉글랜드의 템플 기사단장 에이메릭형 및 여러 귀한 신분을 가진 분들, 즉 펜브루크백작 윌리엄 마샬, 솔스베리백작 윌리엄, 워렌백작 윌리엄, 안델백작 윌리엄, 스코틀랜드 성주 제로웨이의 알렌, 제럴드의 아들 워렌, 하버드의 아들 피터, 포아튜의 집사 바의 휴버트, 네뷜의 휴, 하바드의 아들 마휴, 토머스 바제트, 애링바제트, 오뷔니의 필립, 롭스리의 로비트, 존 마셜, 휴의 아들 존 및 기타 짐의 충성된 인민의 충언에 의하여,


제 1조 잉글랜드 교회의 자유와 그가 이미 지니고 있는 권리의 완전한 보유와 그리고 그가 향유하는 자유의 불가침을 먼저 신 앞에 밝히고, 짐과 짐의 영구의 후계자들을 위하여 이를 이 헌장에 의하여 확인한다. 짐은 이 헌장이 계속 준수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짐은 짐과 배론 남작과의 사이에 분규가 발생하기 전에, 또한 잉글랜드교회에서 중요하고도 필수불가결한 선거의 자유가 순수한 자의에 기초하여 성립됨을 이 헌장에 의하여 이를 확인하는 바, 이것은 교황 인노센트 3세의 비준을 얻은 것이다. 짐은 이 헌장을 준수할 것이며 짐의 영속적인 후계자들을 위하여 왕국의 모든 자유민은 짐과 짐의 후계자에 의하여 이들 자유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


제 2조 만약 준사적인 역무를 조건으로 하여 짐으로부터 직접 작위를 받은 짐의 백작이나 남작 또는 그 밖의 자가 사망한 경우 그의 사망 당시의 상속인이 성년에 이르러 상속료를 지불해야 할 의무가 발생했을 때, 그 상속인이 종래의 상속료를 지불하면 상속 재산을 취득한 것으로 한다. 이전의 상속료라고 함은 백작 1인 또는 그 이상의 상속인은 백작에게 소속된 모든 남작의 영지에 대하여 100파운드, 기사의 1인 또는 2인 이상의 상속인은 모든 기사의 영지에 대하여 최고 100실링이며 봉지의 종래 습관에 따라 그보다 소액의 지불의무를 가진 자른 적게 지불해도 된다.


제 3조 그러나 전술한 상속인이 성년에 미달하여 후견을 받다가 성년이 되면 상속료와 탄 원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상속재산을 취득하게 된다.

제 4조 미성년 상속인의 토지 후견인은 사람이나 물건을 파괴하거나 황폐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당량의 생산물과 관세 및 역무를 요구할 수 있다. 만일 짐이 위와같은 미성년자의 토지 후견을 그 토지의 생산물과 관련하여 짐에게 책임을 져야 할 주장 또는 기타인에게 위탁한 경우 그가 후견해야 할 토지를 파괴하거나 황폐시키면 그로부터 배상을 받으며 아울러 그 토지는 그 봉지 내의 적법하고도 총명한 자 2인에게 위탁시키고 그 2인의 짐이나 짐이 지정하는 자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한다. 또한 짐이 상기와 같은 토지를 제3자에게 증여하거나 매각하였을 경우에도 그가 토지를 파괴하거나 황폐시키면 그 자는 후견권을 상실함과 동시에 그 봉지 내의 적법하고도 총명한자 2인에게 후견을 이전시키고 2인은 전항과 같이 짐에 대해 책임을 진다.

제 5조 후견인이 토지의 후견권을 가지고 있는 한 가옥, 사냥터, 양어장, 물레방앗간 및 기타 토지의 부속물은 그 토지 자체의 수익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또 상속인이 성년에 달했을 때는 경작기의 시의와 산출물이 허용하는 적절한 한도 내에서 쟁기를 비롯한 경작용구와 함께 모든 토지를 상속인에게 반환해야 한다.

제 6조 상속인은 멸시적인 강압을 받음이 없이 혼인할 수 있으나 혼인이 성립되기 전에 그 상속인의 혈연 근친자에게 통고하여야 한다.


제 7조 과부는 그 남편이 사망한 직후 전기한 방해를 받음이 없이 그의 지참금과 상속재산을 취득할 수 있다. 또한 과부는 자기의 재산(남편의 유산중 분할지분)과 지참금 및 남편의 사망 당시에 부부가 소유했던 상속재산에 대해서는 별도의 세금을 부담하지 아니한다. 과부는 남편 사망 후 40일간 남편의 집에 체류해야 하며 그 기간 중에 과부의 재산이 자신에게 양도되어야 한다.

제 8조 과부가 남편 없이 생활하기를 원하는 한 혼인이 강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짐으로부터 수봉된 경우에는 짐의 동의 없이 혼인하지 않을 것과 다른 영주로부터 수봉한 경우에는 그 영주의 동의 없이 혼인하지 않을 것을 보증해야 한다.

제 9조 짐과 짐의 대관은 채무자의 동산이 채무변제에 충분한 경우에 한하여, 채무를 이유로 토지나 그 산출물을 압류하지 않는다. 또한 주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할 수 있는 한 보증인의 재산을 유치하지 않는다. 주채무자가 변제에 충당할 재산이 없어 변제할 수 없을 때는 보증인이 그 채무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보증인이 원한다면 채무자에 대신한 채무변제에 대해 보상을 받을 때까지 채무자의 토지와 그 생산물을 보유할 수 있다. 그러나 주채무자가 당해 보증인에 대해 면책됨을 증명할 경우는 예외로 한다.

제 10조 어떤 자가 다소를 불문하고 유태인에게 채무를 지고 변제하지 못한 채 사망한 경우에는 그의 상속인이 성년이 될 때까지 그가 누구의 수봉을 받았던가를 불문하고 채무에 이자를 계산하지 않는다. 만약 그 채권이 짐에게 들어온 경우에는 짐은 증서에 기재된 원본 이외의 것을 받지 않는다.

제 11조 어떤 자가 유태인에게 채무를 부담하고 사망한 경우 그의 처는 자신과 과부 재산을 취득하며 당해 채무에 대해서는 변제의무가 없다. 또한 사망자의 아들이 미성년일 때는 사망자의 소유 정도에 따라 필수품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잔여분에서 영주에 대한 역무 제공을 제외하고는 채무가 변제되어야 한다. 유태인이 아닌 자에 대한 채무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제 12조 짐의 왕국에서는 왕국의 일반 평의회에 의하지 않고는 모든 부역면제세 또는 상납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짐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한 경우 및 짐의 장남을 기사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경우와 짐의 장녀를 처음으로 혼인시키기 위한 경우에는 타당한 범위에서 부과할 수 있다. 런던시의 상납금에 대해서도 같다.

제 13조 또한 런던시는 모든 고전적인 자유를 향유하며 육로 및 해로를 불문하고 관세를 면제한다. 아울러 짐은 기타 모든 시·읍·면 및 항구가 자유권을 가지고, 관세를 면제할 것을 허용한다.

제 14조 위의 세 가지 경우 이외의 상납금 부과와 부역면제세에 관련하여 왕국의 일반평의회를 개최코자 할 때는 짐이 서명한 개별의 칙서로써 대승정, 승원장, 백작 및 대남작들을 소집한다. 이와 함께 짐에게서 직접 수봉된 자들은 주장과 대관이 총괄적으로 소집한다. 일반평의회는 최소한 40일 경과 후의 일정 일에 일정 장소에서 소집된다. 그리고 짐은 모든 소집칙서에 그 이유를 명시한다. 이렇게 하여 일반평의회가 소집된 경우 전원이 참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회의는 출석자의 협의에 따라 지정일에 진행된다.

제 15조 짐은 앞으로 어느 누구에도 자유인으로부터 상납금을 징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그의 장남을 기사로 만들기 위하여 또는 자녀를 처음으로 혼인시키고자 할 대에는 상당한 범위 안에서 그를 허용한다.

제 16조 어느 누구도 기사의 작위나 기타의 자유로운 작위의 보유에 대하여 그에 수반되는 적절한 정도 이상의 역무를 강요받지 않는다.

제 17조 민사소송은 짐의 궁정에 따라 이동됨이 없이 일정한 장소에서 개정된다.

제 18조 침탈부동산점유회복소송, 상속부동산점유회복소송 및 승직추천권회복소송에 관한 심리는 다음과 같은 방법에 의해 각 주재판소에서 행한다. 즉 짐, 또는 짐이 왕국 밖에 있을 때는 짐의 최고재판관이, 각 주에 2인의 재판관을 연 4회 파견하고, 그들은 그 주에서 선출된 4인의 기사와 더불어 지정일, 지정장소에서 배심재판을 받아야 한다.

제 19조 배심재판을 지정일에 개정할 수 없을 때는 당일 주재판소에 재정한 자 중에서 사건 규모에 따라 재판의 진행에 필요한 일정수의 기사와 자유보유자가 잔류해야 한다.

제 20조 자유인이 경범죄를 범한 때에는 그 죄의 경미함을 고려하여 벌금을 부과하고, 중범죄를 범한 때에는 그 죄의 막중함을 고려하여 벌금이 과해진다. 생계유지에 필요한 재산은 벌금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상의 모든 것은 그들이 자진하여 신체와 재산을 짐의 연민에 맡긴 경우에만 적용된다. 아울러 전술한 벌금은 선량한 이웃의 선서 없이는 부과할 수 없다.
제 21조 백작과 남작은 그들의 동료에 의하고 또한 위법행위의 정도에 따르지 않고는 벌금에 부과되지 않는다.

제 22조 승려의 세속적 소유재산에 벌금을 과할 경우는 제21조와 같은 방법에 의하며 교회의 재산에 대해서는 본조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제 23조 기존의 법적 의무에 의거하지 않는 한 어떠한 촌락과 개인도 교량의 건설에 강제부역을 제공하지 아니한다.

제 24조 주장, 성주, 시체검사관 기타의 짐의 대관은 왕좌재판을 개정할 수 없다.

제 25조 모든 주와 백호촌과 군은 전례와 같은 지대만을 부과할 수 있으며 이를 증액할 수 없다. 그러나 짐의 직할장원은 예외로 한다.

제 26조 짐으로부터 봉토를 받은 자가 사망한 경우 주장이나 짐의 대관은 사망자가 짐에게 부담하고 있던 채무에 대한 짐의 최고특허장을 제시하고 법정지정인의 입회하에 채무액의 한도내에서 그 속봉에 속하는 동산을 압류하고 그 목록을 작성할 수 있다. 채무의 완전 변제시까지는 어떠한 물건도 이동시킬 수 없다. 잉여물이 있을 때에는 사망자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그것을 유언집행자에게 위탁해야 한다. 한편 사망자가 짐에 대해 채무가 없다는 사실이 판명된 경우에는, 그 동산은 사망자의 처와 아들에게 배당될 합리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고인에게 귀속한다.

제 27조 자유인이 유언없이 사망했을 경우, 그의 동산은 교회의 감시하에 사망자의 근친과 친구에게 분배된다. 단, 사망자가 타인에게 진 채무는 예외로 한다.

제 28조 성주, 기타의 대관은 즉시 현금을 지불하거나 또는 매도자의 의사에 따른 지불유예를 받지 않고는 어느 누구의 곡물이나 동산도 취득할 수 없다.

제 29조 기사가 몸을 바쳐 성을 경호할 의사가 있는 경우나 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자신이 못하고 적당한 타인에게 대행시킬 의사가 있는 경우에는 그 기사에게 성의 경호대금을 강요할 수 없다. 또한 짐이 그 기사를 원정에 소집하거나 파견했을 때는 당해 원정 기간 중 성에 대한 경호 의무가 면제된다.

제 30조 주장, 기타의 대관은 자유인의 말 또는 마차를 당해 자유인의 의사에 반해서 징발할 수 없다.

제 31조 짐이나 짐의 대관은 성이나 기타 짐을 위한 용도로 타인의 재목을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징발할 수 없다.

제 32조 짐은 중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자의 토지를 1년 1일 이상 유치하지 않으며 그 이후는 당해 지주에게 반환한다.

제 33조 데임스, 메드웨이 및 모든 잉글랜드 지역의 어망은 제거한다. 그러나 해안에 있는 것은 예외로 한다.

제 34조 '프레치페'라는 영장은 앞으로 토지의 소유에 관한 자유인의 장원재판소에서의 재판청구권을 상실케 할 목적으로 발급될 수 없다.

제 35조 짐의 전국토를 통해 포도주, 맥주 및 곡물에는 '런던쿼터'라는 단일 척도가 사용되어야 하며, 역색포, 조포 및 루세트와 기타 직물에는 단일쪽으로서의 직물 야드 단위가 적용되어야 한다. 형량에 관해서도 같다.

제 36조 생명 및 수족에 관한 영장(유한과 증오에 관한 영장, 구금이유심사 영장)의 발급을 위하여는 앞으로 어떠한 물건도 주고받는 일이 없고, 이 영장은 무료로 발급되며 또한 발급이 거부되지 않는다.

제 37조 짐으로부터 유료자유보유, 농업봉사보유 또는 자치읍 토지보유의 형태로 토지를 소유하거나 타인으로부터 기사역무를 대가로 토지를 보유하는 자가 있는 경우, 당해 보유를 근거로 하여 짐은 그 상속인에 대한 후견권이나 타인의 소유에 속하는 토지에 대한 후견권을 갖지 않는다. 당해 유료자유보유, 농업봉사보유, 또는 자치읍 토지보유가 기사의 역무제공 의무를 동시에 부담하고 있지 않을 때는 후견권을 갖지 않는다. 짐은 소도, 시 기타의 물품을 공납하는 봉사로 짐으로부터 소봉사(Parva sergenteria petty sergenty)를 보유하고 있는 자의 상속인에 대하여도 그를 근거로 한 후견권을 갖지 않으며 기사 역무의 제공으로 보유하는 토지에 대해서도 그를 근거로 한 후견권을 갖지 않는다.

제 38조 앞으로 대관은 사건에 관한 신빙할 만한 증인이 없이 진술만을 근거로 재판한 수 없다. 

제 39조 자유인은 동료들(동등한 사람들, equals)의 적법한 판결에 의하거나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되지 아니하며 재산과 법익을 박탈당하지 아니하고 추방되지 아니하며 또한 기타의 방법으로 침해되지 아니한다. 짐은 이에 뜻을 두지 아니하며 이를 명하지도 아니한다.

제 40조 짐은 어느 누구에게도 권리 또는 재판을 팔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이를 거부 또는 지연시키지 아니한다.

제 41조 모든 상인은 판매를 위하여 악질 과세 아닌 종래의 정당한 관세에 의하여 안전하게 전 잉글랜드를 출입하고 체재할 수 있으며 육로 및 수로를 불문하고 국내에서 이동할 수 있다. 단, 전시에 우리와 전쟁상태에 있는 나라 사람은 예외로 한다. 만약 그러한 자가 전쟁개시 때에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경우에는 그 당시 우리 나라와 전쟁 상태에 있는 나라에서 우리 나라 상인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짐과 짐의 재판관이 알 때까지 신체와 재산에 손해를 끼침이 없이 그를 억류한다. 우리 나라 사람이 타국에서 안전하며 우리 나라에서도 타국인은 안전하다.

제 42조 왕국의 공동이익을 위해 전시중의 최단기간 이외에는 앞으로 모든 사람이 짐에 대하여 충성을 지키는 한 육로 및 수로를 불문하고 우리 나라를 출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단, 왕국의 법률에 따라 구금된자, 법익을 박탈당한 자, 짐의 적대국에서 온 자는 제외되며 이에는 적대국과 거래하는 상인도 포함된다.

제 43조 짐의 수중에 있으며 한편으로 남작령인 몰수령(예컨대 워링포드, 노팅검, 블로뉴, 랭커스터 명예령)에서 토지를 소유한 자가 사망한 경우 그의 상속인은 당해 남작령이 남작의 수중에 있으며 남작에게 지불해야 할 금액 이상의 상속료를 내지 않으며 그 외의 역무를 짐에게 제공하지도 않는다. 짐은 남작이 그를 보유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 남작령을 소유한다.

제 44조 사냥터 밖에 있는 자는 앞으로 일반소환장에 의해 짐의 사냥터 관리관 앞에 출정되는 일이 없다. 단, 엽림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된 자나 엽림사건으로 억류되어 있는 1인 또는 그 이상의 보증인은 제외된다. 

제 45조 짐은 왕국의 법에 능통하고 아우러 그를 잘 준봉할 의사가 있는 자가 아니면 판관, 성주, 주장 또는 대관으로 임명하지 않는다.

제 46조 수도원을 창설한 남작으로서 그 승려에 관한 잉글랜드 국왕의 특허장을 가진 자, 또는 예전부터 그 수도원을 보유한 자는 승려직 중 공석이 생긴 경우 당연히 그에 대한 후견권이 있다.

제 47조 짐의 시대에 새로이 지정된 모든 사냥터는 즉시 그 지정을 해체한다. 짐의 시대에 매사냥지구로 지정된 하안에 대해서도 같다.

제 48조 엽림과 수렵지, 엽림관과 수렵지관, 주장과 그 부하직원, 하안과 그 관리인들과 관련된 악관습은 각주의 정직한 사람들에 의해서 선출된 12인의 그 주 기사에 의하여 선서 후 심사되고, 심사종료 후 40일이내에 다시금 복구되는 일이 없도록 제거되어야 한다. 단, 짐이 잉글랜드에 있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 짐의 법관에 통보한 후 행하여야 한다.

제 49조 짐은 평화와 충실한 근무의 담보로 잉글랜드의 인으로부터 짐에게 인도되었던 인질과 증언 문서를 모두 즉시 반환한다.

제 50조 아테의 제랄드 일족, 즉 시고네의 제랄드, 샨소의 피터기 및 앤드류, 필립과 마크의 형제 및 그의 생질 제프리, 그리고 그들의 모든 자손들은 앞으로 잉글랜드 내에서는 대관직을 가질 수 없게끔 완전히 대관직에서 추방한다.

제 51조 짐은 말과 무기를 가지고 와서 왕국에 해를 끼친 외국의 기사, 석궁의 사수, 하수인 및 용병을 평화가 회복된 뒤에는 왕국에서 추방한다.

제 52조 짐은 그 동료의 적법한 판결이 없이 토지, 성, 자유, 또는 권리가 짐에 의하여 탈취된 경우에는 이를 즉시 그 자에게 반환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분쟁이 발생될 경우에는 다음에 정하는 평화보증의 항에 기술된 25인의 백작재판의 판결로 이를 해결한다.

제 53조 짐의 부왕 헨리 2세나 짐의 형 리처드 1세에 의해서 지정된 사냥림에 대한 지정해제 여부의 재판, 또는 기사역무의 제공으로 보유하는 토지를 근거로 짐이 종래 타인의 토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후견권에 관한 재판 또는 타인의 토지에 창설된 승원으로서 지주가 그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관한 재판의 경우에는 짐이 전조와 같은 방법으로 이를 유예한다.

제 54조 어느 누구도 여자의 고소로 체포, 구금되지 아니한다. 단, 그 고소가 그 아내의 남편에 관할 것일 때는 예외로 한다.

제 55조 짐을 위하여 부당히 그리고 정당한 법의 절차에 반하여 부과된 모든 벌금과 부당히 그리고 정당한 법의 절차에 반하여 부과된 모든 특별벌금은 완전히 이를 면제하거나 아니면 후술하는 평화의 보증에 관한 항에 기재되어 있는 25인의 남작 또는 그의 과반수에 상기 캔터배리 대주교 스티븐이 출석할 수 있을 때는 스티븐과 그가 이 목적으로 소집하기 바라는 인원을 합하여 열린 재판에서 결정한다. 그러나 스티븐이 출석 불능일 때라도 재판은 계속하여 진행된다. 만약 전기 25인 중 1인 또는 수인이 직접 당해 분쟁의 당사자인 경우에는 그 재판에 한하여 제척되고 전기인 중의 잔여자에 의하여 타인이 보충되며 그는 당해 재판을 위해서만 선출되고 선서를 해야 한다.

제 56조 짐이 웨일즈 인 동료의 적법한 판결 없이 토지, 자유, 기타의 것을 약탈한 경우에는 그것이 잉글랜드 지역 내이거나 웨일즈 지역이거나를 불문하고 즉시 반환한다. 그러나 만일 그에 관한 분쟁이 있을 때는 그들 동료의 판결에 의하여 이를 결정한다. 이때 잉글랜드의 토지의 보유에 대하여는 잉글랜드 법에 따르고 웨일즈의 토지의 보유에 대하여는 웨일즈 법에 따르며 경계지의 토지의 보유에 대하여는 경계지의 법에 따라 경계지에서 결정한다. 웨일즈 인도 짐과 짐의 신민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제 57조 그러나 짐의 부왕 헨리 2세나 짐의 형 리처드 1세가 웨일즈 인으로부터 그들 동료의 적법한 판결 없이 탈취된 토지, 성, 자유 또는 권리로서 현재 짐이 보유하고 있는 것 또는 짐이 담보의 책임을 지고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십자군의 통상기간까지 짐이 반환을 유예한다. 단, 짐이 십자군에 참가하기 이전부터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과 그 이전에 짐의 명령으로 심리된 것은 제외한다. 그러나 짐이 귀환할 때, 또는 짐이 해외원정을 중지했을 때는 즉시 웨일즈의 법과 상기 지역의 구별에 따라 그들에게 완전한 재판을 행한다.

제 58조 짐은 뤠린의 아들과 웨일즈로부터의 모든 인질 및 평화의 보증으로서 짐에게 교부된 증거문서를 즉시 반환한다.

제 59조 스코틀랜의 왕 알렉산더에 대하여는, 짐이 잉글랜드의 다른 남작에게 대우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의 자매 인질의 반환, 왕의 자유 권리에 관하여 결정을 한다. 단, 그의 부친 스코틀랜의 전왕 윌리엄(사자왕)으로부터 짐이 받는 증거문서에 따라 별도의 조치를 필요로 할 때는 예외로 한다. 그러나 상기 결정은 짐의 재판소에서 그들 동료의 판결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제 60조 짐이 짐의 왕국내에서 짐의 신민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준수해야 할 일로 허용한 상기의 여러 관습과 자유는 승속을 불문하고 짐의 왕국내에 있는 자는 누구나 그와 그의 밑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준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 61조 짐은 신을 위하고, 또한 짐의 왕국을 개혁하고 짐과 짐의 남작 사이에 발생한 분쟁을 더욱 완화시키기 위하여 상기의 모든 사항을 인정한 것이므로 짐은 이 모든 것이 영구히 침해됨 없이 완전하게 향유되기를 바라면서 남작에 대하여 다음의 보증제도를 확립하고 이를 승인한다. 즉 남작들은 그들이 바라는 바에 따라서 평화와 이 특허장으로서 짐이 남작들에게 허용하고 확인한 여러 자유를 전력을 다하여 준수하고 또한 준수시킬 의무를 지닌 25인의 남작을 선출한다. 만일 짐이나 짐의 판관, 대관 또는 관리 중의 어떤 자가 누군가에 대해 불법을 범하거나 평화의 조항과 보증을 유린하여 상기 25인의 남작 중 4인의 남작에게 그 불법이 제시된 경우에는 그 4인의 남작이 짐에게 짐이 왕국밖에 있을 때는 짐의 판관에게 그 위반을 적시하고 그 위반이 지체없이 개선되도록 요구한다. 짐이 왕국 밖에 있을 때에는 짐의 판관에게 위반 사실이 지적되고 그로부터 40일 내에 짐이나 짐의 판관이 그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에는 상기한 4인의 남작이 25인의 남작 중 잔여인에게 그 사건을 회부한다. 이 25인의 남작은 전국의 평민과 함게 성, 토지, 재산의 압류 기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이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짐에게 책임을 묻고 강압을 가할 수 있다. 단, 짐과 짐의 왕비 및 짐의 아들의 신체는 그러한 강압수단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그리고 위반사실이 개선되면 짐과의 종전관계는 회복되어야 한다. 또한 원하는 자는 누구나 위의 일을 실행하기 위해 25인의 남작들의 명령에 따라 그들과 함께 가능한 한 짐에게 강압을 가한다는 뜻을 선서할 수 있다. 짐은 그러한 선서를 원하는 자에 대해 공개적이고도 자유로운 의사로 그를 허가하며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선서하는 일을 금하지 아니한다. 한편 자신의 발의로 25인과 더불어 짐에게 강압을 가하는 것을 선서하고자 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짐의 명령을 따라 전기한 선서를 강제할 수 없다. 25인의 남작 중 사망자나 왕국을 떠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전기한 여러 사항을 실행할 수 없는 자가 발생했을 때는 25인의 잔여인이 그들의 판단에 따라 새로운 자를 선출하고 그 선출된 자는 다른 사람과 같은 방법으로 선서한다. 25인의 남작에게 실행이 위임된 모든 사항과 관련하여 어떤 사항에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 또는 몇사람이 소집에 응하지 않고 출석하지 않거나 혹은 출석할 수 없을 경우 출석한 다수인이 결정하거나 명령한 것은 25인 전부가 그에 의견이 일치된 것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확정적이다. 전기 25인은 전술한 모든 사항을 충실하게 준수할 것이며 가능한 한 타인에게도 준수시킬 것을 선서해야 한다. 짐 또한 짐 스스로나 혹인 타인을 통해서거나 전술한 여러 가지 특권과 자유를 취소하지 않을 것이며 그 효과를 감소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그 자체가 무효이며, 짐 스스로가 타인을 통해서거나 결코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제 62조 또한 분쟁이 있은 후 짐은 승속을 불문하고 짐과 신민 사이에 발생했던 일체의 악의, 분노를 모두 철회하고 사면한다. 그밖에 짐의 치세 제16년의 부활제로부터 평화가 회복될 때까지에 있었던 분쟁을 원인으로 한 모든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짐은 승속을 불문하고 모든 자에 대해서 소추를 중지할 것이며 특히 짐에 관한 위법행위는 완전히 사면한다. 더욱이 그에 대한 보증 및 전술한 여러 가지 양해 사항과 관련하여,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븐 더블린 대주교 헨리를 비롯한 전기한 여러 주교 및 펜덜프 사의 개봉증거장을 작성하게끔 했다.

제 63조 이와 같이 짐은 잉글랜드의 교회가 자유임과 함께 우리나라의 모든 백성이 전기한 자유 권리 및 양해 사항들이 그들 자신과 후손을 위해 짐과 짐이 후계자로부터 모든 사항, 모든 장소에서 올바르고도 평화롭게, 자유롭고도 평온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영구히 보유 유지할 것을 희망하며 또한 확실하게 언약한다. 더욱이 짐과 남작측은 전술한 모든 것을 성의있게 또한 악의없이 준수한다는 뜻을 선서했다. 위의 사람들과 기타 다수인을 증인으로, 윈저와 스테인즈 사이에 있는 러니미드(Runnymede)라고 불리는 초원에서, 짐의 치세 제17년 6월 15일 짐의 손으로 이 장전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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