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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 활동가로 살아가다 보면, "사고 노이로제"에 걸리게 됩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나면 불안에 떨기 시작합니다. 사고가 두려워서? 그게 아닙니다. 대형 사고에 항상 뒤따르는 예의 "안전의 논리"가 두려운 겁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또 어떤 시스템들이 도입되어 사람들에게 감시의 눈을 들이대고 인간 존엄성에 공격을 가할 것인지가 두려운 겁니다.
잘 알려지지 않고 지나갔지만,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안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달 초 서울지하철공사가 종합화상정보시스템이란 걸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체 객차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겁니다. 한 번 따져보죠. CC-TV가 있었으면 대구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Privacy International) 대표 사이먼 데이비스(Simon Davies)는 CC-TV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CC-TV의 범죄 예방 효과는 극히 불확실하다. 술이나 마약에 취해 비이성적으로 저질러지는 범죄는 CC-TV가 있어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때, CC-TV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를 추적하는 것일 뿐이다. 반대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면, CC-TV가 설치된 장소를 피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결국 CC-TV로 막을 수 있는 범죄는 소매치기나 좀도둑같은 소수의 기회주의적 범죄들 뿐이다."
그런 의문이 가능할 겁니다. 대구 참사 같은 대형 사고 앞에서 CC-TV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이야기하는 건 너무 배부른 소리가 아니냐고요. 어쨌든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다소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래서 프라이버시 활동가는 종종 극단적 개인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취급을 받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권력을 거부하고 분권과 자치·연대의 정신을 존중하는 무정부주의자로 취급받는 것은 프라이버시 활동가에게는 사실 더없는 영광입니다)
그렇다면, 이타적인 당신을 위해 사이먼 데이비스가 지적하는 CC-TV의 다른 문제점 하나를 들어보죠. "흔히들 CC-TV는 기계이므로 편견없이 공정한 감시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CC-TV 카메라의 초점은 '특이한 사람'들에 맞추어지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특이한 사람'들의 범죄만이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이는 사회적 편견을 더욱 강화시키고, 실질적인 차별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지하철 참사의 용의자가 정신지체 장애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나온 후 지금까지도 정신지체 장애인들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이 계속됩니다. 그가 실제로는 중풍 환자였으며, 정신지체 장애인의 범죄율이 일반인의 범죄율에 비해 턱없이 낮은 0.2%에 불과하다는 사실들이 보도되었음에도 말입니다.
참사 이후 각 전철역에는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승객들 중 부랑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김없이 검문을 합니다. 불심 검문이란 결코 강제될 수 없는 국가 폭력이며 개인에게는 더없는 인격 침해라는 사실은 이 순간 가볍게 무시됩니다.
인터넷 대란이 발생하자 정보통신부는 로그 기록을 조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겠다고 나섰습니다. 로그 기록이 가장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할 통신비밀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이 순간 아무래도 좋습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아랍계 인종에 대한 무차별 검거와 인종 차별이 자행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같은 미국 시민이 아니라 잠재적인 적일 뿐이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한 셈입니다. 프라이버시 활동가들의 "사고 노이로제"는 이같은 "안보 노이로제"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안보"라도 보장되었나요? 그래서 인터넷은 쌩쌩 잘 돌아가나요? 그래서 지하철은 안전해졌나요? 그래서 미국은 평화로워졌나요? 허점투성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놓고 1년에 72번이나 패치를 받을 것을 강요하는 MS의 후안무치함은 그대로인데도. 승객의 목숨을 화물이나 다름없이 취급하는 이윤의 논리도, 한 개인이 끔찍한 범죄를 계획하게 만든 절망적인 경제적 불평등 구조도 그대로인데도.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에는 아랑곳없이 이라크 침략을 강행하는 미국의 안보논리에 세계 시민들의 분노가 날로 높아만 가는데도.
그러니, 결국 문제는 몇몇 낙오자나 문제아의 존재가 아니라, 위험 사회를 향해 날로 치닫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며, 해답은 누군가를 적대시하는 안전의 논리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아끼고 존중하는 시민들 사이의 연대의식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프라이버시 활동가들의 "사고 노이로제"의 진실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는데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실명제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뉴스를 전해들었습니다. 인터넷의 각종 유언비어나 명예 훼손을 방치할 수 없다고 합니다. 명예 훼손. 물론 중요한 프라이버시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 왜 나의 프라이버시 권리가 위협받아야 하는지요? 그것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 소수자의 인권과 사회문화적 다양성의 기초가 되는 기본권인 익명의 권리가 말입니다. 잘못한 일이 없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냐고요? 되묻고 싶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잘못한 일이 없다면 왜 유언비어나 명예훼손 따위를 두려워합니까? 나에게 바르게 살라고 강요하지 말고 당신이 한 점 부끄럼없이 살면 될 것 아닙니까? 법을 제정할 힘을 가진 당신이!!
그래서 많은 경우 프라이버시 문제는 뜯어보면 권력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서준식 선생님이 얼마 전 펴낸 책 머리말에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논리가 관철되어 있으며 …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합니다.
주간 문화사회 제31호(2003년 0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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