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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20
    알 권리, 알릴 권리, 알리지 않을 권리
    minik

알 권리, 알릴 권리, 알리지 않을 권리

정보인권, 그 다양한 영역들

정보인권이라는 표현이 NEIS 논쟁과 함께 등장하면서, 흔히 정보인권이라고 하면 감시와 검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정보인권에는 매우 다양한 문제들이 포함된다. 사실 정보인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표현이다. 국제적으로 정보인권과 비슷하게 사용되는 용어로는 커뮤니케이션 권리(communication rights)가 있다. 말 그대로 의사소통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 표현의 자유와 정보 및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정보인권은 이렇게 다양한 인권 문제들과 맞닿아 있다.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이 개인의 정치적•경제적 능력을 결정하기 때문에 정보가 독점되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글리벡 문제다. 글리벡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약품이지만, 이 약품의 제조법을 노바티스라는 다국적 제약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보니 약값이 지나치게 비싸 많은 환자들에게 그림의 떡이 돼 버렸다.

정보 격차 문제도 매우 중요해진다. 농촌이나 산골, 도서벽지는 정보통신 인프라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다. 설치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인구가 적어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보에 접근하는 문턱의 높낮이는 더욱 큰 차이로 벌어진다. 이 외에도 미디어나 정보통신 영역에서 독점기업의 문제, 국가간•지역간•계층간의 정보격차 문제, 국가나 기업의 정보공개 문제, 저작권 문제나 오픈소스 문제 등 다양한 정보인권 이슈가 발생한다. 다만 커뮤니케이션 권리 개념으로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같은 프라이버시권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1996년 6월 일군의 NGO들이 모여 제정한 커뮤니케이션 권리 강령의 경우, 커뮤니케이션과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사회의 민주화에 공헌하게 할 것”과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제도, 과정을 민주화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보인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다양한 표현으로 정보화 시대의 인권 문제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시민단체인 진보네트워크센터의 경우 일찍이 “알 권리, 알릴 권리, 알리지 않을 권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2002년에는 ‘정보기본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이를 표현의 자유, 정보접근권, 정보공유의 권리, 반감시권, 자기정보통제권이라는 다섯 가지 권리로 세분하기도 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초기에 정보화 시대의 시민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를 ‘공적 정보의 공개와 사적 정보의 보호’라는 표현으로 설명했으나 이 개념이 너무 협소하다고 판단, 최근에는 ‘의사소통의 권리와 프라이버시 권리’로 확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자기정보결정권이 취약한 이유

사실 자기정보결정권, 혹은 자기정보통제권은 다른 정보 인권들에 비해 더욱 중요하게 취급될 필요가 있다. 여타의 다른 권리들은 정보화 사회가 확대되면서 함께 발전한다. 하지만 자기정보결정권은 정보화 사회가 발전할수록 점점 더 취약해진다. 다양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해서 개인들의 생각과 생활을 파악하고 향후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다. 최근에는 개개인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고 있다. 현재 개발중인 RFID(전자바코드)라는 기술이 확장되면 모든 물건의 움직이는 위치도 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기록할 수 있는 빅 브라더(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감시나 자기정보결정권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구체적 이슈가 발생할 때 외면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CCTV 설치를 둘러싼 논란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떳떳하다면 촬영 당한다고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냐?”고 되묻는다. 성범죄나 수능시험 부정과 같은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면 늘 “개인의 작은 권리보다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면서 유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도 구축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감청도 허용된다. 물론 개별 사안만 놓고 보면 그런 주장이 옳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도입되는 감시 기술은 그 사안에만 쓰이지 않는다. 유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는 직장이나 보험 가입 때 수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질병 보유자라는 이유로 차별하게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들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감청이나 CCTV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행동이 위축되게 마련이다. 국가기관의 검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감시하는 일이다.


보편적 다수의 권리에서 다양한 소수의 권리로

지금까지 얘기한 정보인권은 사실 일반 시민들의 권리, 즉 보편적 다수자의 권리다. 그런데 인권 일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보화 사회의 진전에 따라 정보인권에서도 소수자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장애인들의 경우 정보접근권이 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때 정보접근권이란 단순히 컴퓨터와 인터넷 접속 회선을 보유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의 유형에 따라 정보접근권의 문제도 서로 다르다. 손이 없거나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체할 기기가 필요하다.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점자 키보드와 점자를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가 필요하다. 또한 시각 장애인들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식도 전혀 다르다. 시각 장애인 전용 프로그램에서는 웹 상의 글자들을 읽어 주는 방식으로 웹 페이지를 읽게 된다. 상당수 웹사이트들이 하위 메뉴를 이미지 파일로 만들거나 심지어 웹사이트 전체를 플래시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제3세계와 관련한 정보인권도 문제다. 서구의 많은 지식들이 사실은 제3세계의 토착 지식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식들을 특허라는 이름으로 독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수천 년에 걸쳐 자신들이 발전시켜 온 지식을 어느 날 갑자기 외국 기업에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약품이나 농산물 종자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매우 심각해진다. 갈취 당하지는 않더라도 경제성이 없거나 근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토착 문화나 지식, 언어들이 무수하게 많다. 이런 까닭에 2003년 스위스에서 열린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는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았다.

정보화 사회가 진전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소수자 문제, 다양성의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정보인권 역시 이러한 시대 변화에 걸맞게 보편적 다수의 권리에서 다양한 소수의 권리로 점점 더 풍부하게 발전해야 할 것이다.

 

월간 인권 200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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