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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찾아오는 손님들

 
  밭을 가꾸다보면 내가 씨 뿌리고 심고 가꾸는 건 식물인데, 막상 밭에는 식물뿐만 아니라 많은 동물들도 함께 서식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작은 텃밭에도 많은 손님들이 찾아온다. 씨를 뿌리면 제일 먼저 새들이 날아온다. 까치와 참새, 비둘기가 제일 눈에 잘 띈다. 까투리와 장끼도 용케 땅 속에 숨어 있는 맛있는 씨앗을 찾아낸다.
  채소 잎들이 나기 시작하면 작은 애벌레와 곤충들이 많아진다. 배추를 갉아먹는 애벌레가 눈에 잘 보인다. 케일에도 진드기와 벌레들이 많이 모여든다. 그러다보니 개미와 무당벌레도 무척 바삐 이곳 저곳 다닌다.
  고추이파리를 돌돌 말아 숨어 있는 벌레도 있다. 물론 땅 속에는 많은 지렁이와 굼벵이가 숨어 있고, 공벌레는 그늘 습한 곳에 어김없이 몸을 숨기고 있다. 요즘처럼 습기가 많은 장마철엔 민달팽이가 많이 나타난다.
  내가 수확하려고 하는 야채를 야금 야금 갉아먹는 녀석들이지만, 이들을 잡기 위해 아직까지 약을 친 적은 없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녀석은 내 손에 걸리면 짧은 일생을 마감해야 한다. 여러 종류 벌도 날아들고 노린재는 역한 냄새를 풍긴다. 해바라기 잎 아래 그늘에는 시커먼 곤충이 꼭 붙어있는데 이름을 아직 모르겠다. 그외 벌레와 곤충은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그런데, 나에게 직접 해를 끼치는 않는 이들과 다른 녀석들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산모기다.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작은 녀석들은 내가 밭에 갈 때면 어김없이 손과 발, 목덜미, 얼굴에 사정없이 달려들어 애를 먹인다. 심지어는 엉덩이를 물어서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산에다 모기약을 뿌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미운 녀석이 고라니다. 작년부터 우리 밭을 자신의 특별 레스토랑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고추가 조금 자랄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고추순을 막 잘라먹는다. 채 꽃도 피지도 못하고 앙상한 줄기만 남은 고추 나무가 불쌍하다. 아직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밭 주변에서 이 녀석을 본 목격자가 여럿 있다. 고라니는 고추순만 아니라 여린 호박순도 잘라 먹고, 심지어 상추, 쑥갓도 뜯어먹는다. 사람들은 고라니를 잡기 위해 덫이나 올무를 놓자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고 울타리를 치는 것으로 견디고 있다. 매일 고라니에게 습격당하여 망가지는 밭을 보면서 인내심의 한계를 기다리고 있다. 멧돼지와 마찬가지로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고라니 소탕 작전을 펴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세 번째로 토끼다. 귀여운 토끼 이미지로만 생각하면 잘못이다. 어제 저녁 내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감히 토끼란 녀석이 겁도 없이 나타나 야금 야금 채소를 뜯어먹고 있었다. 몸통은 갈색 털에 귀가 쫑긋하니 섰다. 내가 보고 있는데도 도망갈 생각도 안한다. 토끼가 나타나니 주위에는 까치와 또 다른 새들이 야단이다. 얼마 전 상추 밑동까지 싹뚝 잘라먹는 녀석이 아무래도 토끼인 것 같다. 고라니는 키가 있어 주로 고추 윗순을 잘 뜯어먹는데, 토끼는 앉아서 상추 밑동을 먹었을 것이다. 
  현재로는 배추벌레, 모기, 고라니, 토끼가 내 밭을 망치거나 나를 괴롭히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가끔 나를 놀라게 하는 놈을 빼놓을 수 없다. 얼마 전 맨손으로 땅위에 떨어진 나뭇잎을 긁어내다가 깜짝 놀랐다. 색깔도 알록달록 고운 뱀이 미끈한 몸체를 드러낸 것이다. 갑자기 등골을 타고 소름이 끼쳤다. 이 녀석은 소리도 없이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한다. 작대기로 걸어서 다른 쪽 산으로 집어던졌다. 내 밭에서 뱀을 본 게 벌써 두 번이나 된다. 요즘은 밭에 갈 때 한 손에 막대기나 연장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어제는 붉은 양대와 흰 양대를 심었다. 서울에서는 강낭콩이라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양대’라고 부른다. 지금 심으면 추석 지나고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콩을 심으면 또 콩을 좋아하는 벌레와 곤충이 나타날 것이다. 날로 무성해지는 텃밭에 새로운 벌레와 곤충을 만나는 일도 즐거움의 하나다.
  지금 막 피기 시작하는 모감주나무의 금빛 꽃망울 밑에서 식물과 곤충, 벌레와 만나는 시간은 참 행복하다. 혼자 있어도 뻐꾸기 소리와 꾸루룩 거리고 파드득 거리는 여러 새들의 움직임이 있어 외롭지가 않다. 어차피 이 땅에서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함께 사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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