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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여성이 행복해야 포항 사람이 행복하다

 

포항 여성이 행복해야 포항 사람이 행복하다




여성노동자


  어느 직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백여 명이 넘는 가입 대상자 중에 겨우 세 사람만으로 조합이 명맥을 유지한다. 사용자의 탄압에 바로 맞설 용기가 없는 대다수는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기만 한다. 물론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술자리에서는 조합원들의 기개와 헌신성, 그리고 신성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거품을 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가끔 후원회비와 투쟁기금을 몰래 건네주는 이도 있다.

  이 직장에는 여성이 지극히 적다. 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전에는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여성도 많았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는 결혼을 이유로 여성 직원을 함부로 내쫒지는 못했다. 비록 노동조합에 여성 조합원이 한 명도 없지만 그랬다. 결혼과 함께 해고 위기에 빠졌던 여성이 노동조합에 도움을 청한 적도 있었다. 노동조합에서는 상급단체에 보고하여 함께 여성 노동자의 해고를 막기 위해 나섰고, 당시 포항여성회와 여성부 등에도 다리를 놓아주어서 결국 해고를 막았다. 그 여성은 노동조합에 감사했다.

  이 직장엔 남성이 90% 이상 차지하다보니, 한동안 여성 화장실조차 없었다. 소수자인 여성은 관리자에게 감히 여성 화장실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조차 못했다. 윗사람들 눈밖에 나서 좋을 게 없다는 여성들의 의견이었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이 나서서 여성 전용 화장실을 만들어주었다. 여성들은 노동조합에 감사했다.

  몇 년이 지나도 노동조합원은 한 명밖에 늘지 않았다. 그만큼 사용자 측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과 각종 음해가 심했다. 결국 상급단체 일을 하던 한 조합원을 말도 안되는 사유를 들어 해고하였다. 사용자는 조합원을 해고하기 위해 비조합원들을 동원하였다. 비조합원들은 ‘사사건건 원칙대로’ 하기를 주장하는 한 조합원 때문에 최고 관리자가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직원 사이 위화감을 조성하므로 노동조합원을 중징계하라는 연서명을 했다. 이 서명에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았던 여성 노동자들도 모두 참여하였다. 결국 소수자인 여성들은 자신들보다 더 열세인 노동조합에 대해 함께 칼을 잡고 내친 일에 나선 것이다.

  제 4회 포항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알게 될 거야>는 비정규직 여성 교육노동자(계약직 교사)가 중학교 여학생을 상대로 벌이는 일종의 게임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나마 자기보다 더 힘없는 여학생을 쥐꼬리만한 권력으로 억압하는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은 교사보다 낮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밀리고, 여성은 남성에 억눌리는 게 현실이다. 영화는 가상의 극으로 구성되었지만, 위에서 말한 이야기는 2007년 현재 포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으로 실화다. 영화보다 현실은 더 슬프고 극적이다.


  포항을 벗어나보자. ‘이 랜드 그룹은 비정규직법의 시행에 즈음하여 80만원 월급으로 10년 넘게 부려먹은 비정규직 노동자 등 1천여 명(주로 여성 노동자)을 마구잡이로 해고하였다. 특히 비정규직 발효 시점을 역산하여 남은 기간에 따라 계약을(심지어 일주일 혹은 하루 계약까지 했다) 맺고 이를 해고의 합법적인 근거로 제시하는 악덕 기업주의 전형을 볼 수 있다. 그룹 회장은 교회에 헌금으로 130억 원을 갖다 바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 랜드 상황을 아신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교육노동자 ㅅ 의 글 중에서)

  이런 상황에서 여성주의(페미니즘)는 이런 생존의 위기에 처한 노동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랜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돕기 위해 ’남편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이 함께 풀어갈 때,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연대하여 함께 동참할 때, 학부모, 교사, 학생들이 주체가 될 때 해결되는 법이다.


  이주 여성

  

 ‘베트남 여성,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은 농촌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래카드다. 이 플래카드는 지난 6월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보고서’에 공개되어 한국의 수많은 국제 결혼 부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결혼 중개업자가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동안 막상 국가나 시민단체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에 대하여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충남 당진군의 사례는 이런 불유쾌한 기사에서 모처럼 희망을 찾게 해준다.

  <이주여성이 만드는 여성영화제작 워크숍>은  당진군에 거주하는 이주 여성자들을 모아서 미디어 교육을 하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감독, 연출, 촬영, 출연해서 만들게 된 작품이다. 상업적 제작 시스템을 거부하고 아주 적은 예산으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독립영화(인디 다큐)를 만든 것이다.

  이들의 짧은 작품을 보면서 베트남,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꿈(파랑새)을 찾아 머나먼 이국 땅에 온 여성들이 겪었던 외로움과 문화적 갈등, 소통의 부재를 절감한다. 심지어 십년 이상 한국 생활을 하면서도 아직 한국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이주 여성들 대부분은 농촌 지역에서 집에만 갇혀 있는 일이 일상이다. 우리는 동남아시아 인과 맺는 국제 결혼에 대해서 비판만 하고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을까?

  비록 서울여성영화제에서 기획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후원하여 짧은 기간에 만든 인디저널리스트 교육이지만, 그 결과의 반향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교육 기간 내내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와 비슷한 이주 여성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웃고 울며 행복하였다. 게다가 낯선 컴퓨터를 배우고 영화까지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생애 최고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동한 한국을 원망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했을 이주여성들에게 작으나마 보람과 긍지를 가지게 한 기획이라고 보인다. 환상을 쫒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타개해 나갈 적극적 의지를 길어주는 무기가 되었다.


포항, 그리고 여성


  포항에는 이주 여성이 없을까? 성매매와 관련된 한터 여성들이 하고 싶은 얘기는 없을까? 밤늦도록 자율학습에 시달리고,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사춘기 소녀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이른 아침 통근열차에 짐을 싣고 번개 시장에 농산물을 팔러 나오는 농촌 할머니들의 삶의 애환은? 사랑을 찾아 밤거리, 나이트 클럽을 찾는 중년 여성들의 외로움과 하소연을 들어줄 이는 없을까?

   이번 포항여성영화제의 주제가 <그녀․ 우리․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제에 참여하면서, 다음 영화제에서는 좀더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지역 여성 얘기보다 <포항 여성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였다. ‘포항 여성’의 얘기를 통해 포항이 바뀌고, 포항이 바뀌므로 세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성희롱 예방 교육용으로 만든 <화기애애>는 중고등학생들이나 노동조합, 직장, 단체에서 상영하고 토론을 겸한 교육을 하면 좋을 것이다. <생리해서 좋은 날>도 여성은 물론 여성과 함께 살아야 하는 남성들이 보고 여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게 하는 영화다. <애니메이션 모음>은 여성주의 시각에서 만든 독특한 애니메이션으로 포항에서 접하기 어려운 영상을 소개한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잘돼 가? 무엇이든>과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도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을 재미있는 극으로 만들어서 볼만 했다.

  네 번째로 맞는 포항여성영화제가 해가 거듭할수록 내용과 진행 면에서 진보하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포항여성회 활동이 그만큼 지역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이주여성센터 활동이 활발해지고 한미 FTA 반대 운동, 지역의 노동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등 진보적 여성운동에 앞장서고 있으므로 포항 시민들이 가진 기대는 더 클 것이다. 첫날 개막식에 참여한 여러 단체들의 관심은 그것을 반영한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을 기대한다. 포항여성영화제를 위해 노력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포항 여성이 행복해야 포항 사람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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