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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희오토에 한 노동자가 학력 미기재로 해고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가끔 연락이 오는 후배에게 그 해고된 노동자를 후원하기 위한

모임이 만들어 졌다는 문자를 받았다.

 

단체에 있을때... 그러니까 당시에는 그 동아리에서 유일하게

활동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곳에 있던 선배는 나뿐이었다.

나나 그 단체가 그 활동(!)이라는 이름에 맞게 활동(?)을 했는진 잘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졸업 후의 진로를 나와 같은 영상활동에 목적을 두고

내가 있던 그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싶어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이 녀석은 뭔가 골수의 냄새가 풍겼고

그런걸 내가 좋아했으리는 만무...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때는 선배여자랑

사귄답시고 캠퍼스를 휘둘고 다니는 꼬락서니를 가끔씩 목도 했었으니...

이 또한 내가 좋아했을리가 있겠는가...(왜였지?)

 

하지만... 나 또한 활동을 그만두어야 할때가 도래했고...

그 단체에 빚을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이 친구를 소개, 결국 그 단체에서 활동을 하게되었다.

헌데 이렇게 들여보내 놓고서는 맘 한구석은 편치 않았다.

아무리 이 친구도, 그 단체도 맘에 들지 않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영상에의 재능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영상창작자로서 반짝반짝 빚나는 자질을 가진 이는

몇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었다.

 

예상대로 이 친구는 그 단체에서 오래 있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그놈 잘못이니 선배 잘못이니.. 이러저러한 소리를 들었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그 친구의 영상활동 속에 영상이라는 부분은

바로 그 단체에서부터 지워지기 시작한 것... 아이러니컬 하게도 말이다.

그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울산 어느 대공장 노동조합의 영상간사...

이 역시 그 단체의 영향 아래서 벌어진 일이였기에

게다가 그 놈의 반골 기질과 대공장 노동조합과는 맞을리 있었겠는가?

 

울산 촬영을 갔을때 이 놈에게 많은 빚을 졌는데...

어느 순간 현장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했다.

영상활동으로서 전망 세우기가 힘든 곳이긴 하지만 긴 시간 실헙이 필요하지

않겠는가라는 조심스러운 이야기는 소용없는 말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충청도 어느 곳에서는 비정규직들로만 되어 있는

공장이 있다 하면서 그 곳에서 활동을 하겠다는 말을 이어갔다.

좀 과장된 이야기로 받아들인 나는... 그 친구가 결국 다시 힘든 일을 선택하게한 것에

약간의 빚진 감정을 남긴체 서울로 돌아왔었다.

 

혼자 잘났다고 별의 별짓을 다하고 다니면서...

결국 담달 생활비 계산기 앞에서 웃고 우는 바보가 되버린 나에게...

그러니까 어느 순간 그 문자가 날라왔다.

 

그 녀석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깡패세끼들과 어용 놈들의 내동댕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꿋꿋해 보였다.

다만 그 친구의 손에 카메라 대신 유인물과 찰진 주먹만이 있었던 것...

 

누구에게 빚진 감정을 같는 것은 그 삶의 공허함을 달래주는 마취제일뿐...

지금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이웃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치스러운 감정이라는 거 잘 안다. (표현하는 것도 사실 웃긴거지)

하지만 그 친구의 말처럼 정말 100% 사내하청으로만 만들어진 공장이 있다는 현실 앞에

절망했고 그 절망의 공장을 바꿔내고자 그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골이

사람들 앞에 선 사실 앞에...

당장 여기저기 이동할 수 있는 차비라도 지원하는 것!!

빚 탕감을 위한 자위가 아니라 나 또한 그의 실천에 연대하는 행동일 것이다.

 

또.. 그가 카메라를 들지 못하면... 나라도 들어야 하지 않을까?!

 

 

 

 

the angel and the one - red album(weezer)

 

40이 넘어도 가장 순수하면서도 거친 락을 들려주는 건

이들 뿐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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