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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품을 끝낸 후, 사실 가장 난감한 순간은 방금 그 작품을 본 관객들의 면전에 서는 일.

그리고 그들의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하는 일.

영화를 보는 행위라는 것이 매우 개인적인 소비의 형태에서부터 출발했었고

또 만드는 과정 또한 집단적이고 체계적이라기 보단 개인적이고 고집스러웠기에

가타부타 누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불편하고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컴컴한 극장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 처지 속에 그 영화를 보았을 것이고

그래서 인상과 느낌, 감정 또한 그 사람 수 만큼 다양할 수 있음에도

감독이 무슨 학교 선생인양 구구절절히 이야기를 하고 또 고개를 끄덕이는 관객들의

모양새가 옳지 않게 느껴졌던 것...

 

하지만 이번 부산에서의 쥐브이 경험을 통해 다음부터 더욱!!!

(이런 형태의)쥐브이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특히나 지금 이 곳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그걸 공개했다면 더욱 더...

대신 대중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전송규격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많이하게 된다.

잡지가 될 수 있고, 웹 2.0 기반 새로운 미디어의 창출도 될 수 있고...

공간의 적극적인 창출과 활용도 될 수 있고...

(그래서 올 1년 인디스페이스의 실험은 매우 가치있다)

후퇴하는 민주주의 대한 저항의 공간에서의 난장도 될 수 있고...

쨋든 지금의 독립다큐멘터리 소통 체계로는 관객이나, 만드는 이나, 지금의 이 사회나,

불행한 한 시대를 벗어나기 힘든 상태라는 생각...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독립다큐멘터리는 반복적인 관객과의 소통으로

보통의 선한 관객을 늘리긴 했지만 그들의 시선 또한 어느 한편으로  가두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틀이 깨지지 않는 이상 만드는 이는 그들의 갇힌 시선에

응대할 것이고 어두컴컴한 쥐브이 현장에서 암묵적인 고개 끄덕임을 갈구하는 애처로운

현실만을 반복할 것이다. 이럴려고 영화 만드나? 하는 자괴가 들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은가?

 

- 그래서 쥐브이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참석할 일도 별로 없음서...흐흐)

 

영화같은 현실이 벌어지는 이 곳때문에 독립다큐멘터리가 존재하지만

현실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독립다큐멘터리가 만든 야릇한 커뮤니티는

전혀 영화적이지 못한 상황만을 반복하고 있다.

 

 

- 하지만 쥐브이 한 건을 잡아 놓고 있는 이 모순된 상황을 건너가는 중에... 흐흐.. 음.... . .    . 

 

 

 

Alleguro (Instrumental)_One(Michita)

 

다이시댄스나 미치타나... 훗카이도 어느 숲 속 숨어 있는 토토로, 아님 원령공주를

상상하며 음악을 만드는 듯... 오히려 덕화나 진취같은 지금 여기의

아티스트가 가지고 있는 도시적 감수성보다 한참 못하다.(여기엔 홍대가 있잖아~ㅋㅋ)

다만 도시적 감수성이 인스투르멘털을 대표하는 정서는 아니기에

그것이 흠이되지는 않을터... 숲 속 어디선간 슬픈 이야기를 가진 괴물이나 공주를

상상하며 들으면 아주 좋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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