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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밤새 운전을 하고 갔다.

소록도, 정말 멀더만.

녹동 선창장에 도착을 하고, 코앞엔 소록도가 보였다.

약간 낯설고, 약간은 떨리고, 조금 설레기도 하고.

 

 

어리버리 첫날- 자원봉사

 

대단한 영미씨다. 소록도까지 일감을 싸갖고 오다니!

영미씨는 컴터앞에 앉아 일을하고, 그런데님과 나는 자원봉사자 회관을 찾아갔다.

 

- 며칠간 하실 거죠?

"3일이요"

-단기로 하실 거니까 좀 힘든 일이어도 괜찮죠?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네."

(어, 이게 아닌데. 우린 자봉도 하지만 실컷 놀기도 할건데 이래서야...)

 

그런데님은 중환자병동에, 난 정신병동에 배치됐다.

 

잠도 못자서 몽롱한데, 무엇을 할지 몰라 어리버리한 첫날이었다.

한센병환자도 처음이고, 정신병동도 처음이고.

가자마자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씼겨주란다.

처음 씼겨드린 할아버지는 한센병 때문에 눈도 없고, 손가락도 없다.

아니, 씼겨드리기 전에 한 일이 있구나.

할아버지께서 소변을 보시겠다고 했고, 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하죠?"

 

주로 한 일은 씼겨드리기(제일 힘든 목욕시키기는 전날 했다고 한다.),

식사시키기(식사시간도 약간의 전쟁이다. 눈이 안보여도 혼자 드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떠먹여드려야 하는 분도 있다.), 기저귀 갈기, 소변 받기, 옷갈아입히기, 등등.

 

가장 나를 긴장시킨 것은 손톱깍아 드리는 것이었다. 그냥 손톱만 보면 무지 긴데,

손톱 밑을 보면 살과 늘러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만 잘못하면 피가 나기 때문이다.

손톱이 너무 두꺼워져 손톱깍기가 아예 안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3일간을 주로 병동에서 보냈는데 병동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 사진은 없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지 않았다해도 안찍었을 것 같다. 사진찍으러 간 것도 아니었고.

 

첫날 사진은 없다. 너무 피곤했고, 다음날 새벽 4시반에 일어나기로 했기 때문에

저녁에 선영씨집에 돌아오자마자 잠을 잤다. 그런데...

 

 

밤9시가 좀 안되서 영미씨가 깨웠다. 밤바다에 나가자고.

나나 그런데님이나 밤바다에 가고 싶었겠는가?

너무너무 일어나기 싫었는데 그래도 일어났다.

하루종일 혼자 있었던 영미씨와 놀아줘야겠다는^^ 의무감 땜시.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밤바다 좋은 줄도 잘 몰랐는데, 선영씨집에 돌아와 술을 먹으니 좀 말똥말똥해졌다.

송환 얘기도 하고, 소록도 얘기도 하고...

 



그런데님의 셀프샷. 자신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겠다나 뭐라나.


둘째날 점심시간에 선영씨집앞에서.


병동 바로앞 바다에서 


옛날에 사용했던 검시실 내부


일제시대때는 강제로 정관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 수술대

 

단종대 (이 동)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차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짱박혀 담배피기


그런데님보다 내 점심시간이 30분 더 길어서 영미씨와 좀 돌아다녔다.

 

 

둘째날

 

둘째날 자원봉사는 훨씬 수월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이젠 어리버리 단계를 지나 뭘 해야할지 감이 잡혔기 때문.

하루 자봉한 주제에, 새로온 자원봉사자들에게 뭘해야 할지 교육도 하고. ^^

 

홍구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셨는데 어깨를 몇 번 주물러 드리곤 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께서 내게 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자신의 침대에 와서 앉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곤 창밖의 바다를 보라고 한다.

정신병동이라 창문에 비록 쇠창살이 쳐져 있지만 창밖의 바다는 아름답다.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우시는 거다.

난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는데 간호사 지나가다 그런다.

"그 할아버지 원래 그래요."

 

그냥 혼자 생각해 보았다.

이 할아버지는 정신이 말짱한 편이었고, 나이는 여든이 넘으셨다.

혼자 걷지도 못하고, 기저귀를 차고 사신다.

자신이 이 병동에서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란 걸 아시고 계실게다.

그런 저런 생각이 들면 울음이 안나오겠는가?

 

 

두 번째 밤바다

 

이날은 정신을 좀 차려서 카메라도 챙기고, 폭죽도 챙겨서 바다로 나갔다.

물론 맥주와 안주도 가지고 나갔다.

깜깜한 바다가에서 핸드폰 불빛을 이용해 나뭇가지를 찾아서 긁어 모았다.

그런데님의 집념으로 제법 그럴 듯한 모닥불을 피우고.

맥주로 병나발도 불고.

이게 뭔 사진이냐고?

믿거나 말거나 밤바다 사진이다.

낸들 어떻게 하나? 뵈는 게 없는데 어찌 찍냔 말이다.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잔잔한 파도소리는 들린다.

못온 사람들 부러워하라고, 무지 재미있는 척?하며 폭죽놀이를 했다.

 

 

마지막날

 

영미씨는 아침에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에 일을 하고 긴 아침식사 시간을 이용해서 사진도 찍고 영미씨 배웅도 했다.

선영씨 집이고,

선영씨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 이런 풍경이다.

선영씨가 일하는 어린이집.

말그대로 선영씨집 코앞에 있다.

두 번째 셀프샷. 뭐 바뀐게 있나?

 

거실에서 기념촬영

집앞에서도 기념촬영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며.

내가 찍은 그런데님 사진 중에 이게 젤로 맘에 든다.

 

드디어 배가 오고

혼자 씩씩하게 배를 타러가는 영미씨.

어제밤에 얼핏 사슴 한 마리를 본 게 전부였는데

오늘은 떼거지로 등장했다.

뻘에서 꼭 한 장 찍어야겠다기에.

근데 어두워서 셔터속도를 늦게 했더니 좀 흔들렸다.

뽀샾으로 보정을 좀 하긴 했는데...

어두워지는 바닷가에서 선영씨에게 요술풍선 강습.(그런데님 촬영)

자신의 컴터 바탕화면으로 쓰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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