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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에 침 뱉기....

6년째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녹을 먹으며

인권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게 6년째다...

 

아주 가끔 TV에 내 얼굴이 나오고 신문에 내 글이 실리는 것이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부질 없음은 진작 알았지만,

6년째 한결같이 내일을 한심하게 생각하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TV에 나오는 내모습을 좋아하시니

그저 가끔 영감님 기나 살려드렸으면 하고 생각하고는 산다.. 

 

군의문사 유족, 인혁당 유족, KAL 858기 실종자 가족,

대추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십수명의 노충국들, 

조작간첩사건 피해자들, 청송감호소의 감호자들,

농성하던 이주노동자들, 해고되어 거리로 몰린 노동자들,

교도소의 수용자들, 개목걸이를 차고 일할 뻔한 공익근무요원들,

전의경들, 전역병들, 일병 이병 상병 병장들...

 

내가 직접 당한 일만큼 열심히야 했겠냐마는 

뜨거운 태양아래서, 얼음장같은 아스팔트 위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소리치고 뒹굴고 끌려가며 살아왔다...

한 순간도 그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한다고 잘난 척 한적 없었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머뭇거려 본 적 없다...

 

그런데 지금 내게 드는 이 회한은 무언가....

이 끔찍한 배신감은 도대체 무언가...

그들에게 '우리들'이란 존재는

간절하고 절박할 때 호되게 쓰임 당하고,

뜻과 맞지 않을 때는 뒤로 제껴지고,

일이 잘 되면 밥 먹는 자리에도 부를 필요없는,

그런 소모품 같은 것이었던 것인가....

 

난 안다..

시간을 통해 겪어 봐서 알게된 것이다....

무슨 무슨 위원회가 생기고, 무슨 무슨 제도가 생기면

그동안 진심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은 뒤로하고

우르르 몰려가 어깨에 힘주고 으시대지만

결국 벽에 부딪히고 나면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오늘 이렇게 내 뒷통수를 치고, 내 발등을 찍었다가도,

내 멱살을 거세게 잡아채고, 육두문자를 내 뱉고도

얼마 안 있어 언제 그랬냐는 듯,

180ml 쥬스 열두병 든 박스를 하나 들고,

명동 구석 천주교인권위 사무실 좁은 계단을 오를 것이란 것을.... 

 

그럼 난...

그들을 향해 퉁명스럽게 몇마디 던지고 나서는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그들의 하소연을 두시간 동안 듣고 있겠지...

그리고 다시 해보자고, 힘들지만 같이 해보자고

그렇게 그들을 위로하고 돌려보낼테지....

몇일 밤을 새고 머리를 500바퀴는 돌려야 할 수 있는

난제들을 다시 내 책상위에 던져놓을테지...

 

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열세번씩 차오르지만

이 길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내가 여기서 사라지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일들은 다 내가 선택의 결과이다.

그러니 모든 일이 나로부터 발생했고,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 이렇게 된 것일 뿐이다...

결국 이런 말들은 내 얼굴에 침뱉기인 것을...

 

차가운 아스팔트 농성장에서 흘린 눈물보다

수백명 넋이 다년간 추모제 국화앞에서 흘린 눈물보다

대추리 집들이 포크레인에 찍혀 무너질때 흘린 눈물보다

국가보안법 십년 수배자 기진이 구속때 흘린 눈물보다

오랜도록 사랑했던 사람에게 밀쳐지고 흘린 눈물보다

오늘 내 책상 옆 파티션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여진이와 성준이 몰래 얼굴 묻고 흘린 눈물이 더 아프고 아프다....

 

마음에게 물어본다

이게 옳은 길인지...

내가 할 수 있는지...

후회하지 않을 건지...

 

마음은 대답해주지 않는다...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음을 마음은 아는 듯...

 

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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