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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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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은 주말이 지나고 한주가 시작되었다.

시민혁명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들의 뜻을 위해 굽히지 않는 신념을 보며

누구도 생각못한 이 놀라운 저항을 보며

민주주의를 본다....

 

80년 5월을 영상으로만 기억하는 내게....

87년 6월 항쟁을 중학생의 시선으로만 기억하는 내게...

2008년 5월에서 6월로 가는 길목은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 힘은 사람에 있고 

아직도 통하는 것은 진심밖에 없다는

진리아닌 진리를 가슴에 새겼다....

 

비야 밤새 내려라....

시민을 향해 발사한 소화기 분말을 씻어다오.

사람을 죽이려고 쏘아댄 물대포의 흔적을 치워다오.

나를 뒤덮고 있던

그 어줍지 않는 오만과 편견을 닦아다오....

 

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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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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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는 안 된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


얼마 전 정부는 아동 성범죄자의 사진과 주소 등의 신상정보를 10년간 인터넷상에서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혜진이, 예슬이의 참혹한 죽음에 이어, 동영상으로 온 국민에게 공개된 일산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아동 성추행 사건처럼 용서받기 힘든 범죄들이 연이어 일어나자 정부가 내 놓은 대책이다. 어린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에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불안에 떠는 부모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과연 우리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을까?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가 법이 정한 벌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성범죄자가 재범할 확률이 50% 이기 때문에 신상공개를 통해 재범을 예방해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재범을 저지르지 않을 50%의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인터넷상에서 검색이 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울 수도 없고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책자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동네 사람들과 일일이 대조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이 제도 때문에 성범죄가 줄었다는 연구결과나 기사를 본 기억이 없다. 실효성 없는 미봉책을 떠들썩하게 발표해서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졸속으로 수사하며 일이 커질까 축소 ․ 은폐해 온 정부의 책임을 가려볼 심산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신상공개가 실효를 거두었을 때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공개된 신상정보가 어떻게 얼마나 악용될지는 짐작도 못하겠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그 또는 그녀의 가족들 이마에 새겨질 “아동성폭행범의 가족” 이라는 주홍글씨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대역죄를 지으면 자식들은 노비가 되어야했고 60~70년대 고문과 조작으로 간첩누명을 쓴 이들의 가족은 “빨갱이의 가족”이란 이유로  함께 끌려가 매를 맞고 옥살이를 했다. 이제 아동 성범죄자를 가족으로 둔 죄로 동네에서 쫓겨나고 학교도 그만두어야 할 판이다. 


범죄의 1차적 책임은 분명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게 있지만 그 범죄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 “내 아이”말고 다른 아이들의 안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 성추행으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 되는 나라,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을 없애 달라” 대통령에게 청하는 기업의 총수들,  회식 후 3차쯤에는 끼리끼리 모여 자연스레 성매매업소를 찾아가는 웃기지도 않는 문화, 과연 우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까?


아동 성범죄자들의 신상공개는 위험하고,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사회의 책임을 범죄를 저지를 개인에게 모두 돌리고 그에게 낙인을 찍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국민을 현혹하는 정부와 일부 언론은 처벌 강화와 신상공개 운운하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를 찾아내야할 것이다. “미국 소고기” 안전하다고 우기고 있을 때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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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은 역시 김철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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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은 역시 김철수가 아니었다

- 송두율 교수에 대한 대법원 무죄 확정에 부쳐 -

 

세계적인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를 지도교수로 삼아 철학박사가 되어 독일의 유명 대학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강의하는 교수, 일곱 권의 독일어 저서와 열권이 넘는 한국어 책을 집필한 저자, 1974년에 독일에서 만들어진 재독 반유신단체 ‘민주사회건설협의회’초대의장, 여섯차례의 남북해외학자통일학술회의를 평양에서 성사시킨 열정의 학자, 37년간 조국의 북쪽도 남쪽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던 말그대로의 경계인, 두아들과 부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환갑의 아저씨, 칭호번호 65번 서울구치소 11동 상층 1방의 미결수, 9개월 만에 출소하던 날 리영희 교수와 포옹하며 아이처럼 웃던 출소자, 쫓기듯 독일로 돌아가 내게 고향은 없었다라며 고향의 봄을 노래한 슬픈 실향민... 내가 들어 알고 2003년부터 송두율 대책위의 한구석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송두율 교수의 단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늘(17일) 재독 사회학자인 독일 뮌스터대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일부 파기 환송이 되어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이 열리기는 하겠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실 이 사건은 이제 다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한 부분들은 모두 원심 그대로 확정했고, 송교수가 독일 국적을 취득한 이후 북한을 방문 한 것에 대해 유죄를 판결한 것에 대해 무죄취지로 원심을 파기하였다. 우선 오늘 판결의 중요한 핵심을 꼭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름을 들먹이기도 싫은 몇몇 일간지의 인터넷 보도는 마치 대법원이 송두율 교수에게 내려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형량이 너무 가벼워 더 높은 형량을 주라는 뜻으로‘원심을 파기 환송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오보 아닌 오보들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송교수를 거짓말쟁이, 빨갱이로 몰게 만든 혐의인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김철수”와 동일인물이라는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것이다. “김철수”의 자격으로 북으로부터 공작금을 받고 지도적 위치에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것도 사실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김일성 주석의 장례에 참석한 것은 단순한 조문에 해당되어 죄가 아니라고 하였고, 독일국적을 취득하고 북을 방문한 것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도 하였다.

 

거기에 대해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상 탈출이란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는 행위나 대한민국의 국민에 대한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상태를 벗어나는 행위인데, 외국인이 외국에 살다가 반국가단체 지배 지역(북한)에 들어가는 행위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송두율 교수가 독일 국적 취득 전에 북한을 방문한 것은 국가보안법상 제6조 1항 '탈출'에 해당하지만, 독일 국적 취득 뒤 북한을 방문한 것은 외국인의 신분으로 방문한 것이므로‘탈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되돌려보냈다. 이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완전히 뒤집는 판결로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 따라, '외국인의 북한 방문도 국보법상 특수탈출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온 기존 판례를 변경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분단된 조국의 남과 북, 동양사상과 서양사상, 부자나라와 가난한나라 등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서로를 아루르고 공존하는 제3의 공간을 열고자 하며 스스로 경계인으로 살고자 했던 송두율 교수는 독일로 돌아간 후 많은 상념에 잠겼을 것이다. 독일로 돌아간 이후 발간한 송교수의 저서에서 그는 37년 만에 찾았던 고향에 대해 “그리던 고향은 아니었네”라는 유행가 가사를 빌어 표현했고 2003년 가을부터 2004년 여름까지의 짧은 한국 생활을“미완의 귀향”이라고 말했다.

 

그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고 그의 저서에 서명을 받으려 줄을 서던 이들이 한순간에 등돌리는 순간 그 노학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자신을 독일까지 와서 억지로 억지로 설득하여 한국에 데려온 기관과 그 사람들이 “송두율이 김철수인줄 알았다면 부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가‘국정원에 가서 조사 받을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초청했다라고 하며 발뺌을 할 때 송교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준법서약서를 쓰거나 국정원의 조사를 받을 것이었다면 송교수가 한국에 들어올 기회는 그 이전에도 많았다. 송교수도 서울행 왕복 비행기 티켓 정도는 살 수 있는 경제력도 있었다. 그는 아마 자신을 한평짜리 독방에 가두어 둔 한국의 공권력과 법원보다 자신을 그 한평짜리 독방으로 친절히 안내하고도 냉큼 돌아선 이들이 더 밉지는 않았을까? 이성의 지혜는 엄숙하고 아릅답다고 말하며 결코 송두율을 옹호하거나 송두율을 위해 변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일부 학자들은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국가보안법이라는 녹슨 칼이 세계가 존경하는 학자이자, 조국을 사랑하는 ‘한국인’을 다시“경계인”으로 만들어 37년 만에 찾아 왔던 조국을 떠나게 했다. 오늘의 이 판결이 송교수나 그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우연의 일치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12월 19일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이들의 보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사회과학서점에 대한 사찰과 20년간 진행해온 민가협 목요집회에 대한 감시가 시작되었다. 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평화통일의 시대가 다가오는 듯 했지만 남북은 다시 험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의 살얼음판을 걷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냉전과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권력을 보위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국가정책에 반하면 무조건 잡아 가두는 신공안정국의 도래를 걱정해야하는 답답한 시절이 다시 오고 있다. 이런 시기 대법원이 임동규 전 범민련 광주전남의장이 2001년 평양축전에 참석하여 북측 범민련 인사들과 미리 보고 되지 않은 회의를 한 것에 대해“탈출·동조죄”를 인정한 원심을 무죄취지로 파기한 판결은 그래도 작은 희망을 보게 한다.

 

흐르는 물을 산꼭대기로 끌어올려 뱃길을 만들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이란 칼을 다시 빼어드는 것은 국민의 뜻과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송두율 교수에 대한 무죄판결이 계기가 되어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국가보안법이 반인권, 반통일 악법이기도 하지만 너무 재미없고 너무 자존심 상하는 법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국가보안법, 이제 좀 제발 없애자고 말하고 싶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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