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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는 안된다.

 

주홍글씨는 안 된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


얼마 전 정부는 아동 성범죄자의 사진과 주소 등의 신상정보를 10년간 인터넷상에서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혜진이, 예슬이의 참혹한 죽음에 이어, 동영상으로 온 국민에게 공개된 일산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아동 성추행 사건처럼 용서받기 힘든 범죄들이 연이어 일어나자 정부가 내 놓은 대책이다. 어린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에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불안에 떠는 부모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과연 우리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을까?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가 법이 정한 벌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성범죄자가 재범할 확률이 50% 이기 때문에 신상공개를 통해 재범을 예방해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재범을 저지르지 않을 50%의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인터넷상에서 검색이 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울 수도 없고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책자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동네 사람들과 일일이 대조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이 제도 때문에 성범죄가 줄었다는 연구결과나 기사를 본 기억이 없다. 실효성 없는 미봉책을 떠들썩하게 발표해서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졸속으로 수사하며 일이 커질까 축소 ․ 은폐해 온 정부의 책임을 가려볼 심산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신상공개가 실효를 거두었을 때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공개된 신상정보가 어떻게 얼마나 악용될지는 짐작도 못하겠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그 또는 그녀의 가족들 이마에 새겨질 “아동성폭행범의 가족” 이라는 주홍글씨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대역죄를 지으면 자식들은 노비가 되어야했고 60~70년대 고문과 조작으로 간첩누명을 쓴 이들의 가족은 “빨갱이의 가족”이란 이유로  함께 끌려가 매를 맞고 옥살이를 했다. 이제 아동 성범죄자를 가족으로 둔 죄로 동네에서 쫓겨나고 학교도 그만두어야 할 판이다. 


범죄의 1차적 책임은 분명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게 있지만 그 범죄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 “내 아이”말고 다른 아이들의 안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 성추행으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 되는 나라,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을 없애 달라” 대통령에게 청하는 기업의 총수들,  회식 후 3차쯤에는 끼리끼리 모여 자연스레 성매매업소를 찾아가는 웃기지도 않는 문화, 과연 우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까?


아동 성범죄자들의 신상공개는 위험하고,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사회의 책임을 범죄를 저지를 개인에게 모두 돌리고 그에게 낙인을 찍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국민을 현혹하는 정부와 일부 언론은 처벌 강화와 신상공개 운운하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를 찾아내야할 것이다. “미국 소고기” 안전하다고 우기고 있을 때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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