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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 사형폐지 시노래 콘서트

사형폐지기원 시노래 콘서트를 올해로 세번째 개최합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들을 위해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인권단체가 할일이냐고도 하십니다.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해 보았냐며,

당신 딸이 그런 참혹한 범죄의 피해자라도

콘서트를 열것이냐고 다그치는 분들도 계십니다.

 

피해자들을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거들어 이분들이 다시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며,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신문지상에서 떠드는 참혹한 범죄가 내 곁에서 일어난다면

저 역시 쉽게 용서 할 수는 없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인권단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형법을 전면개정하여 보호감호제도를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더 강하고, 더 잔인한 형벌을 도입하는 것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라 믿고 있나 봅니다.

 

 

참혹한 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우리는 예방보다 처벌에만 열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형집행을 막고,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것은

60명 남짓한 사형수들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입니다.

 

사형을 집행한다면

그 다음에는 그것보다 더 강력한 무엇인가를 원하게 될 지 모릅니다. 

생명과 인권을 향한 어렵지만 소중한 한걸음을 내딛습니다.

모시기 어려운 분들이 마음을 모아 주셨습니다.

많은 관심 보여주시고 주변에도 널리알려주기길 부탁드립니다.

 

9월 2일(목) 저녁 7시 서강대 남문 옆 예수회센터 대성당입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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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냥 이런 말도 한번 하고 싶습니다.

 

1년전 2009년 7월 20일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철거민 다섯 분의 시신을 모시고 서울광장으로 가 용산참사 반년 추모대회를 개최하려고 했었습니다.가뜩이나 불에 타 상한 시신이 한 여름 더위에 더 상할까 600만원짜리 중고 냉동탑차를 구입하고 오동나무 관도 다섯 개 빌려두었었습니다. 몇몇만 알고 있는 계획이라 비밀리에 모든 것을 준비하느라 참 신경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납니다.
 
당일 아침, 냉동탑차와 빈과 다섯 개를 본 경찰들은 비상이 걸려고 갑자기 우르르 냉동실앞으로 막아섰습니다. 너무 더운 날이었는데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유족들과 함께 경찰 방패앞에서 울고 소리치고 애원하고 사정을 했었습니다. 유족들이 고인을 보러 가겠다는 데, 유족들이 고인을 모시고 나가겠다는 데 도대체 경찰이 그 길을 막아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경찰들은 생각나는대로 말을 내뱉었습니다. “시신을 시위도구로 쓰려는 거라 막는 것이다.”, “신종플루가 유행이라 위험해서 막는거다.” 는 등 별말들을 다 늘어놓더군요. 그 자리에서 누가 항의하지 않고 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인권활동가라, 유가족들을 지원하고 있는 입장이라, 그냥 맨앞에서 소리치고 구호외치고 방패를 밀치는 일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서야 또 경찰이 절 부르더군요. 공무집행방해치상, 폭력행위등의처벌에관한법률위반,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저를 또 소환해서 조사했습니다. 얼마전 급성 장염과 신경성 위궤양에 걸려 병원을 전전하고 며칠만에 출근을 했는데 성북경찰서의 소환장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저를 조사하던 경찰도 “1년이나 지난 사건인데 기억은 나시나요”로 조사를 시작하더군요. 수십장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저는 그냥 방패를 붙잡고 서있기만 하더라구요. 소리도 지르고 방패를 밀기도 하는 듯해 보이지만 경찰을 때리거나 방패를 발로 차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니 도대체 가격하는 사진도 없는데 왜 나를 이런 혐의로 불렀어요” 하니까“그러니까요. 서울경철청에서 김국장님 조사하라니까 하는 거지.. 저희들도 갑갑합니다” 그러더라구요.
 
나머지 시간은 양천서 경찰 고문 사건, 강북경찰서장의 기자회견.. 이런 이야기 하면서 할당된 조사 시간 채우고 나왔습니다.“더 조사없이 검찰로 송치하겠습니다”란 말을 뒤로 하고 냉방도 안되는 토요일 경찰서에서 땀만 한바가지 흘리고 돌아왔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이제 정말 지겹습니다. 경찰이 가지고 있는 제 기록을 한번 봤습니다. 실형전과 2건, 집행유예전과 1건, 벌금전과 4건, 기소유예 1건, 무혐의 1건, 현재 내사 중 2건.. 총 11건의 형사절차가 제 지난 10년을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더라구요.
 
서른 일곱이고 2010년인데...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이렇게 남들한테 나 열심히 살고 있다며 티를 내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윤기진 만기출소가 내년 2월인데 민이랑 겨레 데리고 대전 교도소 특별면회 한번 다녀와야겠다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다시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천연대, 진보연대, 범민련, 연방통추, 사노련 등 공안사건들이 계속 터지고 있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또 잡혀갑니다. 며칠 전에 같이 회의 했던 선배가 또 잡혀갑니다. 
 
1997년, 1999년 같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잡혀가던 그 때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창우형이 잡혀가고, 준석이형이 잡혀가고, 내가 갇혀있는 영등포 구치소에 길원성이 잡혀오고, 정현이가 잡혀오고,  출소 하자마자 재영이가 잡혀가고, 오타와 동규형이 수배되고, 또 얼마간 시간이 지나 진호가 수배되고, 민선이가 수배되고...  이렇게 극반이 살아왔죠.. 더 멋진 선배님들이 우리 이전을 살아오셨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명지를 살아왔고, 서부총련을 살아왔고, 서총련을 살아왔고, 전대협과 한총련을 살아왔죠... 전대협이나 한총련이 아니어도, 잡혀가거나 조사받지 않았더라도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하며 살아왔던 우리들이 있었지요..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이 지긋지긋한 MB의 남은 2년동안, 그 다음 정권에서도....
언제 잡혀가고 또 언제 불려갈지 모르지만...
오늘 밤은 그냥..
오랜만에... 이런 이야기도 한번 하고 싶었습니다..
 
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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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용산참사 유가족 호소문 (고 윤용헌님 미망인 유영숙)

안녕하세요. 고 윤용헌씨 부인되는 유영숙입니다.

 

이렇게 날 좋은 일요일 오후에 많은 분들이 모여주신 것을 보니 우리 유가족들도 힘이 생깁니다. 벌써 일이 있고 12일이 지났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촛불을 들어주신 시민 여러분들의 힘이 아니었으면 우리 유가족들은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우리 아저씨들 이름이 언론에 나왔지만 우리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뉴스에 나온 영상에서도 분명히 불에 타고 있는 망루 밖에 있는 우리 아저씨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었던 분들이 분명히 우리 아저씨는 살아있을 것 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저씨는 새까맣케 탄 시신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시신을 확인했을 때 그 시신의 참혹함에 모두 기절을 할 정도였지만 더 깜짝 놀란 것은 이미 시신의 부검이 끝났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정부는 우리 아저씨를 경찰특공대를 투입해서 죽게하고는 우리 가족들한테 연락한번 없이 부검을 하여 시신을 훼손했습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왜 그렇게 서둘러서 부검을 해야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부검한 것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도 아닙니까? 우리 아저씨들의 시신은 아직도 차가운 냉동고안에 있습니다. 유족 동의 없는 부검에 대해 사과하고 유가족들이 납득할만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마음아프지만 우리 아저씨들의 시신을 인도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경찰이 떳떳하다면 왜 설명하지 못합니까?

 

이 사건의 수사를 맡은 검찰의 행태도 우리 유가족들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이 참혹한 일이 일어난 것이 너무나도 분명한데 왜 우리 철거민들만 구속시키고 전철연을 수사합니까? 누가 불이 나게 만들었는지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아닙니까? 왜 검찰과 한나라당만 아니라고 합니까? 검찰이 경찰과 한나라당 눈치 보는 것 아닙니까? 다 짜고 하는 것 아닙니까? 검찰 조사에 참여하신 변호사님들은 검찰에서도 확실하게 밝혀낸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돌아가신 분들을 두 번 죽이고 그분들의 죽음을 욕되게 합니까. 우리 유가족들도 더 이상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에 항의 할 것입니다. 국민을 죽게 만들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대한민국,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실체입니까? 너무나 원통하고 분합니다.  

 

그동안 참 많은 분들이 조문을 와주시고 많은 언론에서 관심도 가져주셨습니다. 여기 계신 국회의원님들 중에서도 오신 분들이 계셨고 평소 TV에서나 보던 유명한 분들도 와 주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야당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이 추모대회를 준비해 주시고 많은 분들이 와 주신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철거민들이 용역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고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것은 하루이틀일이 아닙니다. 경찰에 고발하고 관청에 호소해 봤지만 모두 법을 들먹이며 용역편만 들었습니다. 우리가 수십년 먹고자고, 장사하던 곳에서 보상금 한푼 못 받고 쫓겨날 때도 우리의 절박한 처지를 이해해 준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 야당 의원님들이 여당 의원이실 때 과연 우리 철거민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나 생각해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왜 꼭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야 그 대책을 세운다고 하고 법을 만든다고 호들갑을 떠십니까? 일이 생기기 전에 조금만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면 우리가 오늘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언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철거민들이 당한 일들은 보도하지 않으시고 철거민들이 폭력적이라고만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재개발 지역에서 몇 년동안 사람취급도 못 받고 무시당하고 두들겨 맞을 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힘으로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힘없는 철거민들끼리 모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살기위해서 모인 것이 죄라면 우리 유가족들도 다 잡아가십시오. 우리도 다 전철연회원입니다. 돈없고 집없는 것이 죄라서 나가라면 길거리로 쫓겨 다니며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낫겠습니다. 우리도 다 잡아가세요.

 

이 자리에 계신 분들께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우리 철거민들 너무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그 날도 그렇게 외롭게 싸우다가 다섯명이나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우리 이 일의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처벌받을 때 까지 함께 해주세요. 경찰, 검찰, 정부 모두가 우리 철거민들 편이 아닙니다. 우리 편을 들어주실 분들은 오직 국민 여러분들 뿐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은혜 앞으로 우리 현구, 상필이랑 열심히 살면서 꼭 갚겠습니다. 우리 유가족들 다 한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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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유가족 호소문

저는 고 이상림님 딸 이현선이라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참사가 발생한 20일부터 설연휴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고 우리 아버지들을 추모해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눈앞이 캄캄했던 우리 유가족들은 여러분들이 들어주신 촛불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 참혹한 일이 우리 유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시는 일이기에 우리 유가족들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요즘 장례는 3일장을 치루는데 저희들은 벌써 열흘이 넘었습니다. 열흘이 넘게 영안실을 지키고 있는 일이 막상 해보니 보통 큰일이 아니더라구요. 유가족들 모두 잠도 부족하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지만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 조문과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는 많은 분들 덕분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어머님들과 함께 고인들의 자녀들도 나와 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집회란 곳에 나와 보는 것이 오늘이 처음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아마 평생 집회에 나오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집회나 시위에서 제가 이렇게 마이크를 잡고 많은 분들 앞에서 발언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해 봤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용산 4지구에서 3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해 오신 평범한 한 아버지셨습니다. 재개발을 하면서 4지구니, 5지구니 자기들 마음대로 구역을 나누었지, 제가 어렸을 때에는 4지구니 하는 말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은 식당 일을 하시면서 우리 3남매를 키우셨습니다. 한자리에서만 30년 동안 장사를 하셨으니 저희 부모님들도 참 대단한 분들입니다. 아버지께서 일흔을 넘기시며 식당을 호프집으로 리모델링하고 우리 3남내의 막내부부가 호프집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2년전입니다. 막내동생이 바로 용산 4지구 철대위원장으로 어제 구속된 이충연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장사는 막내 부부에게 맡기셨지만 그 호프집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모릅니다. 30년 동안 아버지 손길이 묻었던 곳이니 오죽하셨겠어요. 매일 새벽가게 주변을 청소하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밤늦게까지 장사하느라 제대로 치우지도 못하고 집에 들어간 막내 부부를 대신해서 쓰레기통을 비우고 테이블을 손수 닦으시고 나서야 아침식사를 하셨던 분이십니다.

 

재개발을 한다며 가게를 비우라고 통지를 받기 전까지, 용역회사 직원들이 가게를 빨리 비우라며 가게 앞에 쓰레기를 한가득 부어놓기 전까지, 용산구청에서 “생떼거리”를 쓴다며 아버지를 문전박대 하기 전까지, 우리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상하시고 따뜻한 아버지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비록 가난했지만, 집한칸 마련하지 못한 사글세 신세였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이었습니다. 누가 우리 아버지를 거리로 내몰고 죽음으로 내 몬 것입니까?

 

여기있는 저희들이 아버지들을 이 참혹한 일로 잃고나서야 이렇게 처음 집회에 나온 것처럼, 아버지도 집에서 쫓겨나고, 30년동안 장사하던 터전에서 내쫓기게되시고야 처음 집회에 나가셨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용역들의 폭력을 피해  옥상망루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운동권”은 바로 이 사회와 부자들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용산에 재개발이 시작되기전에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아왔던 저희 아버지, 어머니, 막내동생 부부가 재개발이 시작되고 운동권이 되는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수천도의 화염 속에서 돌아가시고, 무릎 뼈가 다 으스러진 우리 막내가 목발을 집고 감옥에 갇히게 될 줄을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요즘 저희 유가족들은 아예 TV나 신문을 보고 나면 두통약을 한알씩 먹어야 할 지경입니다. 어제도 이명박 대통령이 나온 프로그램을 보고 우리 유가족들은 분통이 터져서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용산 참사 이야기가 나오자 이명박 대통령은 “법치주의”를 들먹이며 동문서답을 하시더군요. 말이 좋아 법이지요. 도대체 누구에게 어떤 법을 지키라는 말을 하는 겁니까?

 

 

30년동안 장사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사람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게 하는 법, 서민들 쫓아내고 비싼 아파트 지어서 수백억, 수천억을 벌어들이는 재벌 기업들을 위한 법, 용역 깡패들이 주민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력을 퍼붓고 가게 담벼락에 시뻘건 페인트로 목매달린 시체를 그려놓아도 내버려 두는 법, 우리 아버지들의 시신을 우리 유가족들이 한번 보기도전에 아무런 동의도 없이 부검을 한답시고 난도질 하고도, 검사가 법대로 한일이니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고 하는 법, 국민 다섯명을 죽이고도 정부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법, 그런 법도 법이라고 지키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인테넷에는 참 별의 별 말들이 다 올라와 있더군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은 그냥 여러분들과 똑같은 서민들이셨습니다. 많이 배우시거나 특별한 능력을 가지신 분들도 아닙니다. 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것이 부당하니 부당하다고 말하고 살기위해 싸우신 것 밖에는 없습니다. 혼자 싸우기 힘에 벅차니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함께 싸운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번 참사는 재개발이 주범입니다. 재개발을 부추기는 정부와 재개발로 돈 버는 일에만 열안이 되어 있는 재벌 기업들이 주범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충실히 해온 경찰과 용역들이 주범입니다. 여러분들게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주범들은 가만히 두고 검찰은 우리 철거민들만 구속시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돌아가신 분들에게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우리 아버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끼리는 할 수 없지만 여러분들의 힘이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들도 여러분들이 함께 있어주시는 한 지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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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희생자 유가족 호소문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 호소문

 

설날 연휴가 시작되는데 이렇게 많이 추모회에 모여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유가족들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다 아는 너무나 참혹한 사건으로 한순간에 남편을 잃고나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머릿속이 새카맣게 다 타버렸습니다. 우리 아저씨들이 과연 어떻게 돌아가시게 되었는지, 왜 우리 유가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시신을 훼손하고 부검을 했어야만 했는지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 또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 이 나라 입니까? 자기 집 없고 건물 없는 사람은 나가라면 엄동설한에도 집에서 쫓겨나고 수십년동안 장사한 가게도 고스란히 내어 놓고 조용히 물러나야 하는 것이 이 나라입니까? 어떤 사람이 좋아서 농성을 하고 좋아서 옥상에 올라가겠습니까? 우리는 큰 욕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세끼 밥 먹고 자식들 공부시키는 생계를 위해 먹고 살게만 해달라는 것 밖에 우리는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세상은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더 힘들고 가혹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다섯 가족 모두 하루 아침에 가장을 잃었습니다. 어린 자식들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벌써부터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의 진상을 밝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우리가 왜 이렇게 죽어갔는지 온 세상이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 우리가 쫓겨났다고 신문에서 써준 적이 있습니까? 언제 우리가 통곡한다고 텔레비전에 비춰 준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살게만 해달라고 호소할 때 기자님들이,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오늘 같은 일이 없었을 겁니다. 우리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국회의원, 정치인들도 찾아오고 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를 한번만 돌아봐 주었으면 우리 아저씨는 안 죽어도 되었을 겁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하루종일 우리 유가족들은 시신이 어디있는지 알 수도 없었고 시신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왜 내가 내 남편 시신을 보겠다는데 경찰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왜 우리를 경찰이 방패를 들고 막아섭니까? 싸우고 싸워서 간신히 시신을 확인한 우리 유가족들의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짐작도 못하실 겁니다. 새까맣게 불에 그을린 시신은 이미 부검이 되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뭐가 그리 무서워서 뭐가 그렇게 찔리는 게 많아서 몇시간만에 그렇게 서둘러 부검을 해야했을까요? 어떤 기자분이 그러시더군요. 법적으로는 가족동의 없이 해도 아무문제가 없다고요. 무슨 법이 그렇습니까? 무슨 놈의 법이 그렇게 야박합니까? 그 시신이 우리 철거민들 시신이 아니라 돈 많고 높은 사람 시신이었어도 그럴 수 있었을까요? 아닐겁니다. 절대 아닐겁니다. 우리는 집주인한테 무시당하고 정부한테 버림받았습니다. 우리도 장사하면서 세금내고 장사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란 말입니까?

 

너무 억울하고 너무 답답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리 아저씨, 아니 우리 철거민들 죽음의 진실을 꼭 밝혀낼 겁니다. 진실을 밝혀내고 우리 아저씨의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 우리는 절대로 죽지도 못할 겁니다. 국민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힘을 보태주세요. 가난한 우리들 힘으로는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기자님들 제발 양심 좀 찾으세요. 왜 불쌍한 우리를 두 번 죽이십니까? 특히 조중동 기자님들 제발 그러지 마세요. 경찰 특공대는 우리 아저씨를 죽였지만 여러분들은 우리 유가족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 유가족들은 경찰이고 정부 사람이고 누구한테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부탁드리겠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만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드시지 마세요. 돈 없고 빽 없는 우리 철거민들 같은 사람들도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세요. 다시는 우리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됩니다. 국민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제발 우리들의 이 절박한 심정을 알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부는 사과해라, 책임자를 구속해라, 우리 아저씨를 살려내라 목소리 높여 외치고도 싶지만 오랜만에 명절에 고향가시는 분들 편히 가시라고 소리 지르지는 않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뿐입니다. 여러분들 다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월 23일 서울역에서 열린 추모대회에서 고 이성수씨의 미망인 권명숙씨께서 낭독하신 호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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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내려라

 

전쟁같은 주말이 지나고 한주가 시작되었다.

시민혁명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들의 뜻을 위해 굽히지 않는 신념을 보며

누구도 생각못한 이 놀라운 저항을 보며

민주주의를 본다....

 

80년 5월을 영상으로만 기억하는 내게....

87년 6월 항쟁을 중학생의 시선으로만 기억하는 내게...

2008년 5월에서 6월로 가는 길목은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 힘은 사람에 있고 

아직도 통하는 것은 진심밖에 없다는

진리아닌 진리를 가슴에 새겼다....

 

비야 밤새 내려라....

시민을 향해 발사한 소화기 분말을 씻어다오.

사람을 죽이려고 쏘아댄 물대포의 흔적을 치워다오.

나를 뒤덮고 있던

그 어줍지 않는 오만과 편견을 닦아다오....

 

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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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는 안된다.

 

주홍글씨는 안 된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


얼마 전 정부는 아동 성범죄자의 사진과 주소 등의 신상정보를 10년간 인터넷상에서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혜진이, 예슬이의 참혹한 죽음에 이어, 동영상으로 온 국민에게 공개된 일산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아동 성추행 사건처럼 용서받기 힘든 범죄들이 연이어 일어나자 정부가 내 놓은 대책이다. 어린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에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불안에 떠는 부모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과연 우리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을까?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가 법이 정한 벌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성범죄자가 재범할 확률이 50% 이기 때문에 신상공개를 통해 재범을 예방해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재범을 저지르지 않을 50%의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인터넷상에서 검색이 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울 수도 없고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책자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동네 사람들과 일일이 대조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이 제도 때문에 성범죄가 줄었다는 연구결과나 기사를 본 기억이 없다. 실효성 없는 미봉책을 떠들썩하게 발표해서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졸속으로 수사하며 일이 커질까 축소 ․ 은폐해 온 정부의 책임을 가려볼 심산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신상공개가 실효를 거두었을 때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공개된 신상정보가 어떻게 얼마나 악용될지는 짐작도 못하겠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그 또는 그녀의 가족들 이마에 새겨질 “아동성폭행범의 가족” 이라는 주홍글씨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대역죄를 지으면 자식들은 노비가 되어야했고 60~70년대 고문과 조작으로 간첩누명을 쓴 이들의 가족은 “빨갱이의 가족”이란 이유로  함께 끌려가 매를 맞고 옥살이를 했다. 이제 아동 성범죄자를 가족으로 둔 죄로 동네에서 쫓겨나고 학교도 그만두어야 할 판이다. 


범죄의 1차적 책임은 분명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게 있지만 그 범죄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 “내 아이”말고 다른 아이들의 안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 성추행으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 되는 나라,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을 없애 달라” 대통령에게 청하는 기업의 총수들,  회식 후 3차쯤에는 끼리끼리 모여 자연스레 성매매업소를 찾아가는 웃기지도 않는 문화, 과연 우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까?


아동 성범죄자들의 신상공개는 위험하고,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사회의 책임을 범죄를 저지를 개인에게 모두 돌리고 그에게 낙인을 찍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국민을 현혹하는 정부와 일부 언론은 처벌 강화와 신상공개 운운하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를 찾아내야할 것이다. “미국 소고기” 안전하다고 우기고 있을 때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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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은 역시 김철수가 아니었다

 

송두율은 역시 김철수가 아니었다

- 송두율 교수에 대한 대법원 무죄 확정에 부쳐 -

 

세계적인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를 지도교수로 삼아 철학박사가 되어 독일의 유명 대학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강의하는 교수, 일곱 권의 독일어 저서와 열권이 넘는 한국어 책을 집필한 저자, 1974년에 독일에서 만들어진 재독 반유신단체 ‘민주사회건설협의회’초대의장, 여섯차례의 남북해외학자통일학술회의를 평양에서 성사시킨 열정의 학자, 37년간 조국의 북쪽도 남쪽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던 말그대로의 경계인, 두아들과 부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환갑의 아저씨, 칭호번호 65번 서울구치소 11동 상층 1방의 미결수, 9개월 만에 출소하던 날 리영희 교수와 포옹하며 아이처럼 웃던 출소자, 쫓기듯 독일로 돌아가 내게 고향은 없었다라며 고향의 봄을 노래한 슬픈 실향민... 내가 들어 알고 2003년부터 송두율 대책위의 한구석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송두율 교수의 단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늘(17일) 재독 사회학자인 독일 뮌스터대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일부 파기 환송이 되어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이 열리기는 하겠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실 이 사건은 이제 다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한 부분들은 모두 원심 그대로 확정했고, 송교수가 독일 국적을 취득한 이후 북한을 방문 한 것에 대해 유죄를 판결한 것에 대해 무죄취지로 원심을 파기하였다. 우선 오늘 판결의 중요한 핵심을 꼭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름을 들먹이기도 싫은 몇몇 일간지의 인터넷 보도는 마치 대법원이 송두율 교수에게 내려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형량이 너무 가벼워 더 높은 형량을 주라는 뜻으로‘원심을 파기 환송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오보 아닌 오보들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송교수를 거짓말쟁이, 빨갱이로 몰게 만든 혐의인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김철수”와 동일인물이라는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것이다. “김철수”의 자격으로 북으로부터 공작금을 받고 지도적 위치에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것도 사실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김일성 주석의 장례에 참석한 것은 단순한 조문에 해당되어 죄가 아니라고 하였고, 독일국적을 취득하고 북을 방문한 것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도 하였다.

 

거기에 대해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상 탈출이란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는 행위나 대한민국의 국민에 대한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상태를 벗어나는 행위인데, 외국인이 외국에 살다가 반국가단체 지배 지역(북한)에 들어가는 행위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송두율 교수가 독일 국적 취득 전에 북한을 방문한 것은 국가보안법상 제6조 1항 '탈출'에 해당하지만, 독일 국적 취득 뒤 북한을 방문한 것은 외국인의 신분으로 방문한 것이므로‘탈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되돌려보냈다. 이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완전히 뒤집는 판결로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 따라, '외국인의 북한 방문도 국보법상 특수탈출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온 기존 판례를 변경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분단된 조국의 남과 북, 동양사상과 서양사상, 부자나라와 가난한나라 등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서로를 아루르고 공존하는 제3의 공간을 열고자 하며 스스로 경계인으로 살고자 했던 송두율 교수는 독일로 돌아간 후 많은 상념에 잠겼을 것이다. 독일로 돌아간 이후 발간한 송교수의 저서에서 그는 37년 만에 찾았던 고향에 대해 “그리던 고향은 아니었네”라는 유행가 가사를 빌어 표현했고 2003년 가을부터 2004년 여름까지의 짧은 한국 생활을“미완의 귀향”이라고 말했다.

 

그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고 그의 저서에 서명을 받으려 줄을 서던 이들이 한순간에 등돌리는 순간 그 노학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자신을 독일까지 와서 억지로 억지로 설득하여 한국에 데려온 기관과 그 사람들이 “송두율이 김철수인줄 알았다면 부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가‘국정원에 가서 조사 받을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초청했다라고 하며 발뺌을 할 때 송교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준법서약서를 쓰거나 국정원의 조사를 받을 것이었다면 송교수가 한국에 들어올 기회는 그 이전에도 많았다. 송교수도 서울행 왕복 비행기 티켓 정도는 살 수 있는 경제력도 있었다. 그는 아마 자신을 한평짜리 독방에 가두어 둔 한국의 공권력과 법원보다 자신을 그 한평짜리 독방으로 친절히 안내하고도 냉큼 돌아선 이들이 더 밉지는 않았을까? 이성의 지혜는 엄숙하고 아릅답다고 말하며 결코 송두율을 옹호하거나 송두율을 위해 변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일부 학자들은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국가보안법이라는 녹슨 칼이 세계가 존경하는 학자이자, 조국을 사랑하는 ‘한국인’을 다시“경계인”으로 만들어 37년 만에 찾아 왔던 조국을 떠나게 했다. 오늘의 이 판결이 송교수나 그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우연의 일치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12월 19일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이들의 보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사회과학서점에 대한 사찰과 20년간 진행해온 민가협 목요집회에 대한 감시가 시작되었다. 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평화통일의 시대가 다가오는 듯 했지만 남북은 다시 험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의 살얼음판을 걷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냉전과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권력을 보위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국가정책에 반하면 무조건 잡아 가두는 신공안정국의 도래를 걱정해야하는 답답한 시절이 다시 오고 있다. 이런 시기 대법원이 임동규 전 범민련 광주전남의장이 2001년 평양축전에 참석하여 북측 범민련 인사들과 미리 보고 되지 않은 회의를 한 것에 대해“탈출·동조죄”를 인정한 원심을 무죄취지로 파기한 판결은 그래도 작은 희망을 보게 한다.

 

흐르는 물을 산꼭대기로 끌어올려 뱃길을 만들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이란 칼을 다시 빼어드는 것은 국민의 뜻과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송두율 교수에 대한 무죄판결이 계기가 되어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국가보안법이 반인권, 반통일 악법이기도 하지만 너무 재미없고 너무 자존심 상하는 법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국가보안법, 이제 좀 제발 없애자고 말하고 싶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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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에 침 뱉기....

6년째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녹을 먹으며

인권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게 6년째다...

 

아주 가끔 TV에 내 얼굴이 나오고 신문에 내 글이 실리는 것이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부질 없음은 진작 알았지만,

6년째 한결같이 내일을 한심하게 생각하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TV에 나오는 내모습을 좋아하시니

그저 가끔 영감님 기나 살려드렸으면 하고 생각하고는 산다.. 

 

군의문사 유족, 인혁당 유족, KAL 858기 실종자 가족,

대추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십수명의 노충국들, 

조작간첩사건 피해자들, 청송감호소의 감호자들,

농성하던 이주노동자들, 해고되어 거리로 몰린 노동자들,

교도소의 수용자들, 개목걸이를 차고 일할 뻔한 공익근무요원들,

전의경들, 전역병들, 일병 이병 상병 병장들...

 

내가 직접 당한 일만큼 열심히야 했겠냐마는 

뜨거운 태양아래서, 얼음장같은 아스팔트 위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소리치고 뒹굴고 끌려가며 살아왔다...

한 순간도 그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한다고 잘난 척 한적 없었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머뭇거려 본 적 없다...

 

그런데 지금 내게 드는 이 회한은 무언가....

이 끔찍한 배신감은 도대체 무언가...

그들에게 '우리들'이란 존재는

간절하고 절박할 때 호되게 쓰임 당하고,

뜻과 맞지 않을 때는 뒤로 제껴지고,

일이 잘 되면 밥 먹는 자리에도 부를 필요없는,

그런 소모품 같은 것이었던 것인가....

 

난 안다..

시간을 통해 겪어 봐서 알게된 것이다....

무슨 무슨 위원회가 생기고, 무슨 무슨 제도가 생기면

그동안 진심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은 뒤로하고

우르르 몰려가 어깨에 힘주고 으시대지만

결국 벽에 부딪히고 나면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오늘 이렇게 내 뒷통수를 치고, 내 발등을 찍었다가도,

내 멱살을 거세게 잡아채고, 육두문자를 내 뱉고도

얼마 안 있어 언제 그랬냐는 듯,

180ml 쥬스 열두병 든 박스를 하나 들고,

명동 구석 천주교인권위 사무실 좁은 계단을 오를 것이란 것을.... 

 

그럼 난...

그들을 향해 퉁명스럽게 몇마디 던지고 나서는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그들의 하소연을 두시간 동안 듣고 있겠지...

그리고 다시 해보자고, 힘들지만 같이 해보자고

그렇게 그들을 위로하고 돌려보낼테지....

몇일 밤을 새고 머리를 500바퀴는 돌려야 할 수 있는

난제들을 다시 내 책상위에 던져놓을테지...

 

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열세번씩 차오르지만

이 길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내가 여기서 사라지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일들은 다 내가 선택의 결과이다.

그러니 모든 일이 나로부터 발생했고,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 이렇게 된 것일 뿐이다...

결국 이런 말들은 내 얼굴에 침뱉기인 것을...

 

차가운 아스팔트 농성장에서 흘린 눈물보다

수백명 넋이 다년간 추모제 국화앞에서 흘린 눈물보다

대추리 집들이 포크레인에 찍혀 무너질때 흘린 눈물보다

국가보안법 십년 수배자 기진이 구속때 흘린 눈물보다

오랜도록 사랑했던 사람에게 밀쳐지고 흘린 눈물보다

오늘 내 책상 옆 파티션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여진이와 성준이 몰래 얼굴 묻고 흘린 눈물이 더 아프고 아프다....

 

마음에게 물어본다

이게 옳은 길인지...

내가 할 수 있는지...

후회하지 않을 건지...

 

마음은 대답해주지 않는다...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음을 마음은 아는 듯...

 

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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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중심에서 독립을 외치다

LA 중심에서 독립을 외치다 !!

 

 

전국의 인권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 직속 기구화를 반대하며 명동성당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고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기구 보장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요구는 더욱 강력하다. 이미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공식 서한이 17대 대통력직 인수위원회에 전달되었고, 국제앰네스티, 아시아인권위원회, 포럼 아시아 등의 국제인권단체들 역시 대통력 직속기구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명박 당선자의 지지층으로 알려진 보수성향의 시민단체들도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력직속화만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헌법학자들을 비롯한 학계의 대표적 인사들도 각종 언론 기고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독립기구여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기구는 독립기구여야 한다는 유엔 총회의 의결인 파리원칙이 아니더라도, 국가인권기구가 행정부 또는 입법부의 소속일 때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경찰은 행자부산하이고, 검찰이나 교도소는 법무부 소속입니다. 여전히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공권력이 자행하는 인권침해에 대해 대통령 소속의 국가인권위원회가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고 6년이 지났다. 부족한 점도 많치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6년간 우리 사회의 의식과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조직의 독립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도 자신의 판단대로 "인권"의 기준을 변화 시킬 수 없으며 "인권"은 정치적 고려 따위에 흔들려서는 안돼는 너무나도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그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기구가 대통령 소속이 되어서는 안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명동성당에서 노숙농성 중인 인권활동가들을 응원하고 한국사회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미국의 한인들에게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독립기구여야 하는지를 알리기 위해 현재 LA에 체류중인 본인은 현지시간 1월 29일 오전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 까지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주LA 한국 총영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전국인권활동가들이 작성한 의견서를 민원실에 접수하였습니다. 오후 2시부터 20여 분간 한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형 마켓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오가는 한인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명동성당에서 매일 노숙을 하고 촛불을 밝히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의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뜨거운 연대의 응원을 보냅니다. 모두 아프지 말고 끝까지 싸워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을 지켜내고 포기할 수 없는 인권의 가치를 확인합시다. 이자리를 빌어 이번 1인 시위의 언론 조직 등을 도와주신 남가주한인노동상담소 박영준 소장님과 피켓 제작을 도와주신 서광미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

 

주 LA 한국 총영사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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