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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와 군대를 허락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임’ 의 스즈요상과의 만남

기지와 군대를 허락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임’ 의 스즈요상과의 만남

 

통역 : horimy

 정리 : 아링

 

오키나와 여성평화여행의 마지막 일정, ‘기지와 군대를 허락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임’과의 교류이다. 때마침 다음날이 이곳 대표가 후보로 출마한 선거가 있는 날이라 다른 회원들은 선거운동에 나간 상황이고, 공동대표 스지요상과 조용하고 깔끔한 한 아파트(모임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스즈요상은 단정하면서도 멋스러웠고 위엄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여성운동이자 평화운동이라 함은 어떤 운동인가요?

 

우리는 기지와 군대를 허락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임입니다. 이 모임은 1994년부터 계속되고 있고, 구성원은 지금 선거의 후보부터 기자, 학생 등등 다양합니다. 오키나와에서 기지 문제란 군사훈련, 환경, 토지 문제 등으로 제기되고 있고, 군대 문제는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의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어요.  기지와 군대 문제는 함께 이야기 되어야 해요. 그런데 여태까지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는 제기되지 않았고 우리 모임 이전까지는 자료수집 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는 오키나와 주요 문제에서 계속 배제, 제외, 간과 되어 온 것이지요. 한편, 평화운동진영 내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류큐대학에 전쟁 트라우마를 연구하는 교수가 있는데 이 사람이 대학원생을 성희롱 한 일이 있었어요. 지금 재판 중입니다.

평화란 무엇일까요? 누구를 위한 평화이며, 어떤 것이 평화일까요? 전쟁이 없어지는 것이 평화가 아니라 폭력이 없어지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 차별, 배제가 없어져야 평화인 것이지요. 그래서 평화운동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우나이’라는 말이 있어요. ‘여성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985년 우나이 페스티발 이야기를 해볼까요. 1985년은 나이로비에서 제13회 세계여성회의가 있던 해였어요. 나이로비 회의를 기념해 여성방송의 기회가 생겼어요. 12시간 동안 여성에 관한, 여성이 만드는 라디오 방송을 했습니다. 나이로비 여성회의에서 여성들이 1인칭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참 인상 깊었어요. 라디오 프로그램도 1인칭으로 방송을 했었지요. 각본, 감독, 진행, 노래 등등 모든 것을 여자들이 만들었어요. 우나이 페스티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우나이 페스티발은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기지와 군대를 허락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임’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필리핀, 한국 등과 여성평화를 위한 네트워크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미군강간 재판에서 피해여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군성범죄 사건을 공개하면 ‘피해자 때리기’를 목적으로 미국의 방송, 언론이 다 몰려옵니다. CNN을 비롯, 본토(일본)잡지들 까지 몰려오고, 피해자 직장까지 연락해서 피해자를 가해하고 공포를 주는 짓이 빈번하게 벌어집니다. 이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비디오증언을 인정하게끔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어 강습 안내 종이가 저기 붙어있는데요, 어떤 이유에서 베트남어 공부모임을 하시나요? 

 

‘아오바 장학금’이란 것이 있습니다. 13년째 베트남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고, 2년에 한 번씩 방문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베트남전 당시 오키나와는 전투기 출발기지였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과 관련이 있고, 그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군기지 반대’라는 ‘큰 운동’ 내부에서 여성문제를 제기하면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길것 같은데요, 어떤 대화가 오가고 어떻게 해결을 하시나요? 지금은 좀 나아졌나요?

 

평화운동 자체가 남성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에요. 운동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여남평등에 대한 감각은 떨어져요. 여성을 꽃, 접착제, 순수한 여성상 등으로 말하는 수준이이에요. 화내고 지적하면서 이런 상황 지겹다, 연대 그만둘까 하면서 운동을 지속해나고 있어요. 예를들면 앞서 말한 류큐 대학 교수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변호사가 인권운동으로 유명한 변호사들이고, 성폭력 사건에 대한 반응이 “여자가 정말 피해자인가”,“남자 교수가 그럴 리가 없다” 식이에요. 심지어는 헤노코투쟁 내에서도 교수편인 사람들이 있어요.

외부에서 보기에는 오키나와 평화운동이 활발하고 훌륭해 보여요. 하지만 내부는, 특히 리더들의 경우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일본에 ‘언니네’와 같은 여성주의 사이트가 있나요?

 

‘키코의 일기’라는 사이트가 있어요.('일다'에 소개된 적이 있다) 이 사이트에는 평화운동, 여성운동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이 관심을 가지는 패션에 대한 이야기도 올라와요.

 

이 곳, 오키나와의 기지촌 문제는 어떤가요?

 

요즘은 기지촌 여성들이 관광객을 상대하는 추세입니다. 기지 주변에는 bar 등이 있고, 여성들 다수는 고리대금업 등의 채무관계에 놓여있어요. 오키나와 여성이 다수이고 러시아, 필리핀 여성들이 있어요. 지금 주둔해있는 미군들은 가난해요. 기지촌 여성들을 성구매 할 수 있는 20달러의 여유도 없는 셈이에요.  예전에는 스테이크에 맥주를 마셨다면 지금은 콜라에 타코야끼를 먹어요. 다수가 봉급을 본국에 송금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래서 나이트클럽에 가서 이 곳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데이트성폭력을 저지릅니다. 이 곳 여성들에게 정말 예쁘다고 계속 칭찬을 하면서 접근해요.  여성들은 밥값, 데이트 비용 모두를 지급하면서 섹스까지 해주는 상황이에요. 여성이 임신하면 미군 남성은 훈련있다고 말하고 잠적한 뒤 두달 후면 미국으로 가버립니다. 여성들은 사랑한다고 얘기하는데 미군 남성들은 여성을 ‘놀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어요. 미국 유학을 다녀온 여성들의 경우 영어 활용 등의 이유로 미군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2002년 선진국 정상회담 당시 미군병사들은 체육관에 집합했어요. 회의 주최측에서 기간중에 미군들이 범죄를 저지를까봐 우려해서 체육관에 모아둔것이에요. 체육관에서는 댄스파티가 벌어졌고, 오키나와 여성들이 초대되었어요. 미군 병사들은 “오키나와 여성들은 바보다”식으로 떠들며 놀았고, 영어를 잘했던 한 여성이 성희롱이라고 따지자 미군들은 “미안하다, 당신이 미국사람인줄 몰랐다”라고 말하며 사과를 했어요. 미군들이 오키나와 여성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지요.

미군에 의한 여성범죄도 심각합니다. 95년도 12살 소녀 성범죄 사건의 경우, 미군들은 렌트카를 빌려 콘돔과 입막을 테이프를 준비해서 여성을 찾아다녔어요. 콘돔을 준비한건 자기들이 에이즈나 성병에 걸릴까봐 우려했기 때문이에요. 2002년에는 가정집에 침입한 미군이 있었고, 2004년도에도 비슷한 범죄가 있었는데 동일인물로 추정하고 있어요.

 

나이든 기지촌 여성들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지원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트라우마가 심해서 2주 이상 한 아파트에서 거주하지 못해요. 누가 쳐들어올까봐 겁내며 하루종일 거리를 배회하죠. 다른 일은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15명의 social worker(사회복지사)들이 행정적인 부분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일본은 기지촌 근처에 여성단체가 없거든요.

 

여성평화운동가로서의 일상에서의 생활 수칙이나 습관이 있으시면 소개 및 조언 부탁드립니다.

 

한 개인에게 괴로움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개인의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이것이 공통의 문제라면 이는 사회의 문제이고 사회 구조의 문제이지요. 때문에 한 사람의 고민, 괴로움부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키나와에 오기 10년 전, 동경에서 성폭력 문제 상담원을 하던 때였어요.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집회에 나갔는데 누군가가 “이제 평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보네요”라고 얘기했어요. 아주 놀랐죠. 어떤 운동으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운동이 인권운동이자 평화운동이죠.  

 

스즈요상과의 대화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상황-운동 사회의 가부장성-이 어쩜 이렇게도 비슷한지 놀랍고 진절머리났다. 일본의 70년대에 여성운동이 활발했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가부장성이 너무도 공고하여 다시 한번 그 가부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여성운동이 최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쉽사리 변하지 않을 사회라는 생각이 들자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일정까지 완벽하게 통역해주신 horimy님께 정말 감사. :) 오키나와 여성평화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직접 오키나와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인데 horimy님의 통역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감동’ 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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