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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6/20
    엠에게
    호리미
  2. 2010/06/20
    문득
    호리미
  3. 2010/06/02
    한국 자살율.(1)
    호리미
  4. 2010/05/27
    살기
    호리미
  5. 2009/09/16
    엄마가 무거워서 견딜 수 없다... 묘비지키는 딸들의 한탄(2)
    호리미
  6. 2009/08/31
    멈춤(4)
    호리미
  7. 2009/08/07
    심호흡
    호리미
  8. 2009/08/06
    공간 이야기
    호리미
  9. 2009/07/19
    6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참여자 모집 (1)
    호리미
  10. 2009/07/05
    S에게 (2)
    호리미

엠에게

 

내일 또 가는 구나.

가는 걸음이 무겁지는 않은지, 맘껏 보내다 가는 건지 ...

오아시스 같은 시간들이었길 바라며.

 

너랑 헤어지고 나서

충분히 시간이 있었더라면

좀더 서로가 갖고 있는 비전 등을 엮어 봤으면 좋았을 것을 이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좀더 할 이야기가 있었던건 아닌가란

마음도 들었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어 만나자.

 

............................................................

 

내내 그런 마음이 들었다. 우리 좀 더 솔직하자고.

우리의 거리를 좁혀보자고

쑥스러워 하거나 당황해 할까봐 못한 이야기들

뻔한 공간들에 있으면서

모른 척 혹은 안 아픈척 있는 서로가 잠시 답답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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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 단어가 나와서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성폭력말하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이야기고, 들을 이야기이지만, 잊고 지낸다.

 

어제 다큐보고 감독이 어디서든 말하기가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 단어 하나만 펼쳐두면 할 수 있는 이야기고 들을 이야기가 되는데,

몸으로 듣지 못하고,

적절한 말을 떠올리고 싶어하는게 보인다.

 

말하기가 시작될 때,

그 순간 매번 공명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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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살율.

최근 5년새 가장 많아…20세이하도 450여명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지난 한해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사람이 2008년보다 20% 가까이 증가한 1만4천여명으로 집계됐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2009년 자살 사망자는 1만4천579명으로 2008년(1만2천270명)보다 18.8% 늘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2005년 1만4천11명으로 정점에 올랐다가 2006년 1만2천968명, 2007년 1만3천407명, 2008년 1만2천270명으로 주춤하다 4년 만에 다시 1만4천명을 넘어섰다.

연령별로는 61세 이상이 4천614명(31.6%)으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2천770명(18.9%)으로 뒤를 이었다. 30대(17.2%), 50대(16.6%), 20대(12.2%) 순이었고 20세 이하도 3%(452명)에 달했다.

연령대별 증가율은 50대가 31%(575명) 늘어 가장 높았고 20세 이하에서 29%(102명)가 증가했다. 30대도 20.3%(424명) 늘었다.

특히 20대 자살은 2005년 1천428명을 기록하고 2006년 1천148명으로 감소한 뒤 지난 3년간 최대 35% 증가했다.

원인별로는 정신적ㆍ정신과적 문제로 말미암은 자살이 4천123명(28.2%)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3천190명(21.8%)을 기록한 육체적인 질병 문제였다.

이어 경제문제(16.1%), 가정문제(12.5%), 남녀문제(7%),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6%) 순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기관 집계도 지켜봐야겠지만 자살이 상당히 증가한 것 같다. 한두 가지 이유를 꼽기 어려운 만큼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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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단단하게 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몸이 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살자 란 마음이 든다.

 

몸이 원하는게 긴 호흡이지 싶으면서도

당장의 욕구에 맞춰서

바쁜 호흡을 하고 싶다.

 

천천히 연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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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무거워서 견딜 수 없다... 묘비지키는 딸들의 한탄

엄마가 무거워서 견딜 수 없다... 묘비지키는 딸들의 한탄

 

노부사요코 

 

 

폭력은 고통이나 공포만을 낳는 것이 아니다. 몸에 전해지는 체온과 감각을 신체의 기억과 함께 타자와 표현하기 힘든 관계를 만들어 낸다. 상처를 입히는 폭력적인 사랑을 만든다는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은 인간관계를 뒤덮는다. 이것을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아내폭력 등의 가족내 폭력을 다룰 수 없는 일이다.

 

엄마와 딸

1. 딸과는 동성관계이다. 딸의 결혼은 엄마와의 관계를 방해하기는 커녕, 여자의 인생을 산 선배인 엄마의 지위는 더 굳건해질 뿐이다. (권력이 더 강화된다는 거겠지)

2. 아들이 아빠에게 대들어서 엄마를 옹호할때, 그 시선은 둔각인 반면에, 딸은 예각이다. 강한 남자(?)가 약한 엄마를 보호한다는 구조와 약한 엄마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엄마의 기대대로 엄마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딸(더욱 약자인)과는 차이가 있다.  엄마는 딸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하고, 딸은 엄마를 지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는다. 딸은 이렇게 엄마의 지배하에 있고, 엄마의 존재를 무거워한다.

3. 엄마가 어디까지 자각하는가 이다. 아들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약자이니까 보호나 보살핌을 끌어낼려고 한다. 그러나 딸에 대해서는 자각하지 않는다. 동성이고, 아들처럼 결혼해서 부인이 생겨, 라이벌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딸이 경제력을 갖게 된다고, 권력관계가 역전할 경우도 적다. 인생의 선배인 엄마에게 영원히 딸은 따라갈 수 없다. 이렇게 엄마는 딸과의 거리를 취할 필요를 느끼지도 못하고, 강자로서 지배하는 위치가 된다.

 

자기 희생이라는 가치

 

모성의 특징으로서 자신을 허무해하고 아이들 만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즉 자기희생을 들 수 있다. 자기 희생적 태도가 모성애의 발로인 것처럼 말해지는 것이 여러가지 문제점을 만들어 낸다.  <널 위해서야.>,< 난 어떻게 되어도 괜찮아.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날 위해서가 아니라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같은 답답한 말들로 희생적 태도를 강조하는 엄마도 있다.

자식이 먼저라는 것은 자신을 허무하게하고 고통을 견디게 하는 일이다. 견디고 참는 엄마가 되는 것이겠지.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 까?  자신이 허무한 것은 눈앞에 있는 아이와 공기처럼 일체화 되는 것이다. 이 일체감은 엄마만 갖는 것이다. 나이도, 경험도 때로는 체격, 경제력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엄마가 자신을 허무해하고 아이와 일체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자성의 부재이다. 모성신화의 구성요소(엄마는 자기 자식을 모두 사랑한다)가 발동되어서 엄마의 사랑이라는 환상이 따라온다. 한편으로 타자성이 결여된 억압은 엄마의 사랑으로 변환되어 코드화 되고, 동시에 모성신화의 구성요소( 아이는 친부모를 사랑한다)로 코드화된다.

 

엄마의 사랑, 애정 -> 지배, 컨트롤, 공의존    리라벨링하기  

 

세대간의 경계를 침범하면 문제가 발생된다.   

 

딸들을 위한 처방전

묘비지키는 딸들이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과혹한 로드 레이스였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수고했다고 전하고 싶다.

그치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왜냐면 레이스 주자는 딸은 혼자이기 때문이다. 경기 자체가 엄마의 손바닥위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원하는 끝은 자신의 생각대로 딸이 움직여주는 것이다. 엄마는 그게 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법외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왜냐면, 엄마의 주변 사람들이나 상식, 세상에서는 엄마의 가치관이 지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스의 관중 모두가 엄마를 지지한다면 엄마는 단단한 바위이다. 

 

1. 분노에 눈을 뜨자

2. 죄책감은 필요경비 - 엄마에게 너무 소중한 나 라는 환상 ,

3.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를 만나자.

4. 이해해줄 것이라는 것을 단념하자.

5. 노!!는 엄마를 위한 서비스 - 거절하기

 

아이 의 탄생 - 필립스 아이에스 ---참고서적.

 

요즘 모녀관계안에 권력과 지배적 언설들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비문의 남발이지만, 잊어버리기 전에 옮겨본다.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시는데, 그 것까지는 못 옮기고 끝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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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

거울이 되어 주는 친구들.

 

친구들의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에

현실을 직면하지 못하는 내가 보이고,

내 처지는 몸이 보인다.

 

기운을 받아서, 나도 

 

가벼워지기.

맑아지기.

충분하기.

시작하기.

맞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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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흡

심호흡하면서

온몸에 퍼져있던 그 느낌이 느끼고,

다시 그 느낌을 받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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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이야기

여러 사람들이 소근소근거리는 소중한 공간이 있다,

조금더 자신을 잘 알고자 길을 떠나자, 

갑자기 그 공간에  사람들이 소리가 뚝하고 끊어진다.

 

누군가가 살며시 와서

"똑똑, 이 공간 제가 좀 사용해도 될까요?."

라고 목소리를 낮춰서 정중하게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답을 구하듯 머묻거리다,

"텅비었다고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공간은 공간을 만들었던 이들이 쓸 수 있는 것이에요. 

이렇게 찾아온 당신도 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미안하지만, 얼마든지 자리는 있으니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보세요," 

라고 거절한다.

 

찾아온 이는 다시 한번 물어본다..

" 공간이 남는데 어찌그러세요,  제가 그 기운을 채워볼께요.

그러면 아마 곧 그 공간이 생기가 있어질꺼에요."

 

애틋한 목소리로,

"지금은 텅비었지만,

제가 더 튼튼하게 공간에 참가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면

그 공간에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생기가 넘칠꺼에요.

당신이 새롭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생기면,

그 공간을 통해서 제가 또다른 행복을 느낄꺼에요, 

공간을 지금까지 지키는 이유를 설명한다.

 

찾아온 이는

" 그러시군요.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그 공간,잘 지켜나가길 바래요.

저도 제 공간을 만들어볼께요."

하면서 손을 잡아준다.

 

눈을 마주치면서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언젠가는 제가 더 맑아져서 공간을 나누지 않고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올꺼 같아요. 

지금 물러나주는 당신의 애정, 깊이 간직할께요."

하면서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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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참여자 모집

 

올해도 말하기 대회가 있어요.

워크샵이 다채롭게 있네요.

 

친구중에 박미라님이 하는 글쓰기 좋다고 한 친구가 많았어요. 

좋은 여정이 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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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에게

늘 말을 나눌 상대가

자기 곁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는 당신 자신 속에서

상대를 찾아야만 합니다.

 

 

-잘랄 앗 딘 알 루미-

 

 

블로그를 알려준 몇 안되는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같은 글들을 쓰게 되네.

아무리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이라도 외롭고 막막한 그런 시절 혹은 시간들을 보내지 않고 지낼 수 는 없겠지. 다만, 그 시간에 자신을 잘 보살피거나,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겠지.

요즘 난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애도를 한참 더 하고 있어. 이 깊은 상실감을 바라보고 통과하는 것은  '어둠의 강'을 걸아나가는 거 같아. 몇년전에,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둠의 강을 걷고 있는 이미지가 떠올랐어.

너무 그 길이 아득해서 멈추고 싶기도 하고, 좀더 안락한 곳을 찾고 싶어지지만, 가끔은 춤추기도 노래하기도 하면서 이 '어둠의 강'을 걸어가고 있는더라구.

설령, 내가 끝내지 못하더라도 또 다른 이가 걸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러는 사이에 강이 끝나겠지. 그 강이 끝날 때까지 걸어야하는 숙명같은 존재. 

깊은 애도와 사랑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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