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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G20
No G20 Action Korea
2008년 07월 글 목록(총 39 개)

[2008년 07월 28일 17:46] 폭력 휘두르는 경찰의 말로
[2008년 07월 26일 00:00] G8 반대투쟁 활동보고회를 해보자
[2008년 07월 24일 11:47] 켄짱의 후기2
[2008년 07월 15일 16:04] 영화상영회(7월 19일): G8 반대 행동
[2008년 07월 14일 12:47] 안녕하세요. 코기토입니다.
[2008년 07월 13일 17:13] 연행된 친구들을 석방하라
[2008년 07월 12일 22:25] 꿈의세상 용의 소감~~
[2008년 07월 12일 11:29] ただいま~!!!-켄짱의 후기1
[2008년 07월 11일 15:17] 하네다예요...
[2008년 07월 11일 00:18] 제 개인적인 소감들
[2008년 07월 10일 22:53] 켄짱이에요...
[2008년 07월 06일 03:16] 2008/07/06
[2008년 07월 05일 11:05] 홋카이도 신문에 실린 고양이들
[2008년 07월 05일 04:40] 삿포로 국제민중연대 행동의 날
[2008년 07월 05일 02:54] 펑크록커들도 이명박 OUT
[2008년 07월 04일 23:57] 활동보고
[2008년 07월 04일 00:37] 가지 많은 G8회의 열매도 많을까
[2008년 07월 03일 22:54] 세계 언론들과의 인터뷰
[2008년 07월 03일 10:55] 신주쿠 사운드데모 뒷풀이
[2008년 07월 03일 02:00] 신주쿠의IRA입니다
[2008년 07월 03일 00:40] 0702 회의
[2008년 07월 02일 21:55] 활동사진들
[2008년 07월 02일 21:15] 홋카이도대학의 미디어센터 방문
[2008년 07월 02일 16:47] 모두 무사히 삿포로 도착
[2008년 07월 01일 22:42] 비행기 말이에요...
[2008년 07월 01일 13:39] 카라님...
[2008년 07월 01일 03:52] 하하~ 모두에게 안부인사를~ ^^
폭력 휘두르는 경찰의 말로 추천
경찰폭력이 많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나 일본 같은 경찰국가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경찰의 폭력이 큰 문제입니다.
경찰은 인도까지 난입해 시민들을 폭력 연행하는가 하면, 방패를 휘두르며 찍는 것은 다반사에다가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벌이던 인권활동가도 연행해갔습니다.
 
이번 G8 반대활동을 위해 일본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2001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때 이탈리아 경찰이 보였던 만행을 상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삿포로 미디어센터에서 잠을 자면서 어쩌면 일본 경찰이 한밤중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기에 주의해야 했지요.
토요우라 캠프에서 생활할 때에도 언제 경찰이 침입해 폭력을 휘두를지 몰라서 항상 경계를 해야 했습니다.
 
아래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폭력 휘두르는 경찰의 말로, 이탈리아를 보라"
  [촛불의 소리] 2001년 反신자유주 집회 폭력진압 경찰에 유죄 판결
  2008-07-27 오후 2:46:37


  촛불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폭력행사를 비판하는 앰네스티 보고서가 미처 출판되기도 전에, 경찰은 앰네스티가 사실관계를 충실히 담지 못했으며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법적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공포했다.
  
  또한, 경찰은 한술 더 떠서 촛불집회를 '강경하게' 진압해 수많은 인명피해를 남긴 것을 '표창'한다고 한다. 본말이 전보된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지난 여름 거리를 채웠던 수많은 촛불들은 착잡한 심정으로, 국민을 무력하게 만들며 인내심을 극한까지 발휘하게 만드는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과연 최근 촛불시위에 대해 경찰이 취한 적반하장 식 대처를 몇 년 후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그 해답을 암시해주는 사건을 2001년 이탈리아의 여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1년 G8회담이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개최되었다. 전 세계에서 참가한 이십만여 명의 시위대는 무정부주의 단체인 'Black Bloc'의 참가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합법적인 방식으로 반세계화 집회를 진행하였다. 이들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며 항의했다.
  
▲ 디아즈 기숙사에서 연행되는 남녀시민.

  당시 이들 중 일부는 제노바의 디아즈 페르티니 학교 기숙사에 거처하며 회담이 열리는 기간 동안 집회를 이어갔다.
  
  자정이 가까웠을 무렵 기숙사에 머물던 100여 명의 남녀 시위대는 씻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자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 이탈리아의 진압경찰이 홀연 달려들어서 기숙사를 급습했다. 경찰당국은 기숙사에 머물던 시위대들을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한 무정부주의 단체의 조직원들로 이해했다.
  
  하지만 당시 건물 안에 머물던 대부분의 시위대는 평화적인 시위방식을 고수하던 사람들이었다.
  
▲ 영국인 기자 마크 코벨은 극심한 폭력을 당한 후, 한 영국 일간지가 그를 무정부주의 단체의 리더로 왜곡보도하면서 지난 7년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번 판결이 나오는 데는 그가 치열하게 관련 증거를 모은 업적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경찰은 건물에 들어오기 직전 '인디미디어' 기자인 영국인 마크 코벨(Mark Covell)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였다. 코벨은 거듭 이탈리아어로 자신이 기자라는 점을 밝혔지만, 그를 단지 무정부주의 단체의 조직원으로 단정 짓던 경찰은 집단폭력을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날 자행된 폭력으로 인해 14시간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날 밤 극악무도한 수준의 경찰폭력에 희생된 사람은 코벨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은 곧이어 건물로 진입해서 당시 시위대의 안전을 관리하던 벨기에 출신의 시위대 미하엘 기저(Michael Gieser)를 공격하였다.
  
  기저는 처음에는 경찰에게 폭력적인 진압 말고 서로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자고 제의했지만, 경찰은 끄떡도 하지 않은 채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일군의 경찰들이 기저를 무지막지하게 구타하는 사이, 또 다른 경찰들은 침낭에서 자고 있던 스페인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시 68세였던 돌로레스 에레로(Dolores Errero)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두움 속에서 행해진 진압에서 온몸의 부상을 입었다.
  
  이날 부상자 가운데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은 독일인 멜라니 요나쉬(Melanie Jonasch)는 시위에는 직접적으로 참가하지 않은 채 시위대들이 머물던 기숙사에서 자원활동을 도맡았다. 그녀는 이날 경찰의 집중공격 대상자가 되었다. 경찰은 처음에는 진압봉으로 반복해서 멜라니의 머리를 거세게 가격했다. 이에 요나쉬가 마침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경찰은 폭력을 멈추지 않은 채 닥치는 대로 그녀를 구타했다.
  
  당시 현장에 같이 있었던 카트리나 오토웨이(Katherina Ottoway)에 따르면, 당시 시위대는 그녀가 맞아 죽었다고 착각할 만큼 그녀의 상태가 아주 위중했다고 전했다.
  

  
  
  
  
  
  ▲ 당시 무차별적으로 자행된 폭력진압의 결과,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요나쉬 말고도 당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시위대 중에 또 다른 독일인 다니엘 알브레히트(Daniel Albrecht)가 포함돼 있었다.
  
  첼로를 전공하는 알브레히트는 팔과 머리를 집중적으로 맞은 이후 4일간 의식불명사태를 겪을 만큼 상태가 위독했다.
  
  남자친구와 더불어 시위에 참여했던 영국인 니콜라 도허티(Nicola Doherty)는 이성을 잃은 경찰로부터 여자친구를 구해주기 위해 남자친구가 그녀의 몸 위에 누워서 막아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노출된 부위를 집중적으로 가격해서 머리를 감싸던 팔이 골절되도록 만들었고, 니콜라 주변에서 한동안 그녀를 몹시 힐난하며 인격적인 모멸감을 안겨주었다.
  
  독일인 레나 췰케(Lena Zühlke)는 경찰을 피해 복도로 도망가다 붙잡혀서 상상을 초월하는 구타를 당했다. 그녀는 당시 사건을 가리켜 '야생토끼를 쫓아서 물어뜯는 굶주린 사냥개' 같았다고 전했다.
  
  더 이상 저항할 의사도 힘도 없었던 시위대들를 향한 잔인한 폭력은 기숙사를 나서면서도 추호도 중단되지 않았다.
  
  당시 시위대들은 이구동성으로 항복 의사를 강력하게 전달했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들은 아무런 무기도 휴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보다 몇 배 많은 수의 진압경찰들의 폭력을 당해야 했다. 기숙사 여기저기에서는 항복의 뜻을 절박하게 전달하거나, 제발 폭력을 멈출 것을 간곡히 탄원하는 외침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경찰서에 연행되거나 병원에 이송된 뒤에도 기숙사에서 당했던 끔찍한 인권유린 못지않게 더욱 심각한 폭력에 노출되었다.
  
  시위대는 연행 이후 변호사나 대사관 접견권을 거부당했으며, 경찰들은 반복해서 연행된 시위대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침을 뱉거나 언어폭력을 일삼았고, 음식이나 물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허기와 갈증을 유도했고, 수면을 박탈하고, 여성연행자들에 대해서는 성폭행을 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성매매여성으로 비하해서 부르기고 했다.
  
  이들은 특히 장시간 동안 불편한 자세로 서 있도록 강요받았는데, 인공 다리를 갖고 있던 52세의 모하메드 타베흐(Mohammed Tabach)가 장애로 인해 견딜 수 없어 쓰러지자 경찰은 그를 심하게 구타하였다.
  
  독일인 슈테판 바우어(Stefan Bauer)는 이탈리아와 독일이 모조리 유럽연합에 속해 있는 만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자, 경찰은 역시 그를 폭력으로 응대했다.
  
  또한, 마르코 비스따치따(Mark Bistacchia)는 알몸으로 경찰견을 따라하라는 모욕적인 행위를 강요받았으며, 엄청난 공포 속에서 시키는 대로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경찰이 시위 참가 시민 한 명을 구타하고 있다.

  
▲ 부상흔적이 또렷한 여성.

  터키 여성인 에스터 페르치바티(Ester Percivati)는 경찰이 연거푸 그녀를 성을 파는 여성이라고 지칭하며 성기를 건드려서 치욕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또한 그녀는 여경인 바바라 아마데이(Barbara Amadei)에 의해 변기에 얼굴이 담가지는 물고문을 당하였다.
  
  게다가 여성연행자들은 남성경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몸 수색을 당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남성 연행자들을 향해 소변을 누며 파시스트 찬양가를 따라 부르도록 강요했다. 조셉 아졸리나(Joseph Azzolina)는 경찰이 그의 얼굴 바로 앞에서 최루탄을 발사해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사라 바르테사기에(Sara Bartesaghie)는 구치소에서 경찰이 반복해서 구금자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했다고 증언했다.
  

  
  
  
  ▲시위진압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서슬 퍼렇게 자행됐다. 맨 위쪽 사진은 니콜라를 비롯한 영국인 부상자들. 가운데 사진은 부상당한 채 널브러져 있는 한 여성시위대. 맨 아래 사진은 진압봉에 맞아서 온통 부상을 입은 한 시위대의 어깨.

  병원이라고 해서 경찰서에 비해 추호도 안전하지 않았다. 심각한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당시 갈비뼈가 부러져 치료를 요했던 프랑스 인 다비드 라호꿸(David Larroquelle)은 치료도 받지 못했으며 이미 골절된 손으로 서명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코뼈가 부러진 터키인 에스터 페르치바티 역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최근 한국 경찰처럼, 당시 이탈리아 경찰도 적반하장으로 시위대들을 상대로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한 점, 절도, 공격적인 무기 운반, 범죄조직 가입으로 기소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대부분 기각됐다.
  
  당시 이탈리아 경찰 역시 시위대가 고소를 하기 힘들도록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인식표를 착용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경찰의 야만적인 행위 앞에서 거의 모든 연행자들은 변호사나 대사 접견을 하지 못했으며, 이미 부상당한 상태에서 고문에 가까운 가혹행위와 모욕적인 행위를 강요받았으며, 상당수가 이탈리아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역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노바의 만행이 G8회담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강경진압과 불법적, 자의적 구금으로 채워지기 전, 강경일변도의 이탈리아 경찰의 자세는 이미 감지됐다. 경찰은 무정부주의 단체 시위대였던 이탈리아 인 까를로 지울리아니(Carlo Giuliani)가 경찰차를 공격하다 경찰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즉사한 것이다.
  
  얼핏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채 묻힐 듯했던 이 사건은, 엠네스티와 피해자들이 끈질기게 문제를 삼으면서 차츰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당시 경찰은 최소 200여명 이상을 가혹하게 연행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더 이상 저항할 의사가 없는 비폭력 시위대였다. 이들 중에서 최소 62명이 부상을 당하였고, 앞서 언급한 독일의 멜라니와 다니엘, 그리고 영국인 마크를 비롯하여 3명은 중상을 입었다.
  
  구금자들이 차츰 이탈리아 경찰을 고소할 움직임을 보이자, 당시 이탈리아 치안당국은 외국인 연행자들을 즉각적으로 추방하였고, 향후 5년간 이탈리아의 입국을 금지해서 재판의 증인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꾀했다.
  
  당시의 만행을 가리켜 한 이탈리아 경찰은 '멕시코식 정육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2001년 제노바의 거리와 기숙사에서 있던 시위대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극심한 치욕감과 무력감, 그리고 단말마의 공포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외부와 소통할 수 길이 극단적으로 차단된 상태에서 무법천지 같은 이탈리아에서 경찰력에 묵종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었고, 적잖은 미디어는 당시 시위대들의 폭력피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채 이들이 폭력을 일삼는 무정부주의 단체의 조직원들인 것처럼 알렸다.
  
▲ 진지한 표정의 시위대.

  하지만 정의를 찾으려는 부단한 싸움 끝에 마침내 이 사건은 해결을 보게 된다.
  
  고위경찰을 비롯한 기소된 관련자들 중에서, 총 15명의 경찰, 교도관, 의료진들에게 최소 5개월부터 5년까지의 형량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집행유예 처분을 받아서 이들 가운데 실제 징역형을 치러야 하는 사람은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도 '고문'이 불법에 속하지 않아서 재판을 치르는 동안 근본적인 난항을 겪었으며, 최근 만연하고 있는 이탈리아 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을 온전히 막을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이 또 다시 강조됐다.
  
  기소된 사람들 중에는 남녀 경찰이 골고루 포함돼 있었으며, 몇몇 소식통에 의하면 이탈리아 경찰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로 파시스트 조직이나 극우당에 소속돼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예컨대, 구치소에서 시위대들에게 연거푸 파시스트 찬양구호를 외치게 하거나, 진압이 유난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행해진 것도 일종의 증오범죄의 성격이 강하다고 진단하는 의견도 개진된다.
  
▲ 마크 코벨을 비롯한 당시 사건의 고소인들.

  당시 시위에 참여해서 잔인한 폭력에 노출된 시위대들은 여전히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이들 중 몇몇은 이미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악몽을 꾸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을 가장 매섭게 할퀴고 있는 기억은 육체적인 부상을 떠나서, 법과 정의가 사라진 경찰국가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공포와 모멸의 순간에 대한 질긴 상처일 듯하다.
  
  비록 형량이 미미하기는 하지만, 이탈리아 법원이 당시 초강경진압을 야기했던 관련자들에게 법적인 심판을 내리며 희생자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언도한 것은 긍정적인 결과로 주목된다.
  
  촛불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최근, 우리는 수많은 사건을 목격했다. 시위대 바로 앞에서 물대포를 발사함으로써 고막을 파열시키고, 시위 중 쓰러진 여성을 군홧발로 짓밟으며 몽둥이를 휘두르고, 중년의 남성을 연행하면서 단체로 힐난하며 모욕감을 가하고, 누워서 평화적인 시위를 외치던 시위대를 밟고 구타하며 지나가던 경찰의 모습을 생생히 보았다.
  
  국가가 국민을 위협할 때 파시즘은 생생하게 재현되며 시민권은 가차 없이 유린된다. 2008년 거리를 달궜던 사람들은 촛불을 으깬 공권력과 군홧발과 몽둥이, 물대포에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망각하지 않을 것이다.
  
  먼 훗날 다시금 정의가 우리들을 비출 때 질문해야 한다. 당시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보상이 되었는지, 그때 시민을 폭정으로 옭아맨 사람들은 온전히 법의 심판을 받았는지에 관해서 똑똑히 질문해야 한다.

   
 
  박정준/서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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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 반대투쟁 활동보고회를 해보자 추천
약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일본을 방문해 G8을 반대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돌아온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활동보고회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방금 양양으로 출발하기 전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활동보고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들의 활동을 후원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본 활동을 알리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식과 지금 현재 계속 이어지고 있는 여러 상황 등을 공유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일본의 활동가 한 명으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7월 5일에 구속된 세 명의 일본인 활동가들이 석방되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곧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또한 현재 일본의 활동가들이 필리핀의 활동가들과 연대해서 싸우고 있는 사안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정부와 필리핀 정부가 맺으려고 하는 경제동반자협정(EPA,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에 반대하는 활동입니다.
필리핀과 경제동반자협정(자유무역협정보다 더 수준이 높은 협정)을 맺으려는 일본은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폐기물처리장을 필리핀에 몰래 건설하려는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경제동반자협정을 맺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런 민중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이런 더러운 짓을 저지르고 있는 일본과 필리핀의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에 일본 측에서 한국 활동가들의 연대를 요청해오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소식 등을 포함하여 모금활동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일단 올해 G8 반대투쟁에 대한 다양한 영상들이 있습니다.
켄짱이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고, 한국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찍어온 영상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국제활동가들이 찍어서 자신들의 사이트에 올려놓은 영상들도 있고요, 피플파워에 나온 영상도 있습니다.
이런 영상들을 모아서 상영회를 하려고 합니다.
 
또한 길바닥평화행동이 주축이 되어 공연도 펼쳐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과 기타 자료를 가지고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자세한 활동설명을 할 수도 있어요.
 
이런 내용을 가지고 8월 둘째 주 (8월 3일-9일) 사이에 활동보고회 날짜를 잡아보면 어떨까요?
일단 저는 8월 7일 목요일로 제안을 드립니다.
이 날짜가 좀 촉박할 수도 있지만, 너무 늦어질 경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장소는 좀더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괜찮은 곳이 있으면 추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민중의 집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길바닥 엠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추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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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짱의 후기2
욘사마의 글을 보니 마음이 무겁네요...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어느덧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네요...정신줄 놓기 전에 빨리 후기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7월 6일부터...


7월 5일 밤부터 6일 아침 일찍까지 캠프 준비로 매우 분주했다...밤에 들어와보니...에**상은 내가 잠깐 빌려쓰던 미싱으로 아이누아나키스트 깃발을 만들고 있었다...잘 굴러가는 미싱을 보니 흐뭇하기도 하고...(이 미싱은 삿포로상이 길에서 득템한 것인데 아마도 개시를 내가 한 듯. 5일 아침에 완장 만든답시고 미싱을 밟아봤는데 꽤나 잘굴러가는 부라더 미싱이라 완전 감동을 받기도...굉장히 오래된 사양이라고 삿포로상이 알려줬지만 역시 부라더의 힘은 굉장했다)
드디어 캠프로 출발하는 날.

마지막으로 힘차게 자전거를 밟아 대여소에 반납한 다음...
카데루 니나나에서 있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걸었다.
드디어 도착.

이 집회에는 아이누 민족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AWC, 그리고 전빈련에서 오신 아저씨 한분, 독일친구들(다테에서 숙박하기로 되어 있는), 일본 각지에서 온 활동가들이 함께 했다. 사실 뭐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섞인 상태에서 발언들이 지속되었고...(이건 뭐...발언하다 끝나겠네...라고 늘 생각했다...) 실내에서 기자회견 형식(실내 풍경이)의 집회는 처음이라 당황하기도 했다...

거기서 만난 AWC 친구들은 대개 대학생들인데...아시아민족의 연대를 주창하며...(내가 이해하기에) 불타오르는 열혈청년들인듯 했다...자체적으로 한국어 스터디도 하고 있는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신이나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물론 일어와 영어로...) 켄짱 바로 도주...

독일 친구들 꽤나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통역기를 가지고 있었다...한대로 여러명이 돌려듣고 있긴 했지만...

기나긴 발언이 끝나고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거리행진을 마치고 다시 카데루 니나나 앞으로 모이는데 우익들이 등장!!!
이녀석들은 정말이지 끈질기구나...
이미 전날 일본 친구들의 설명으로 돈을 받고 동원된 3류 야쿠자 녀석들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컷 비웃어줬다...

토요라로 갈까 다테로 갈까 고민하는 나고야에서 온 사**상을 꼬드겨서 같이 다테로 가기로 했다.

다테캠프로 향하는 버스.

아마도 네다섯시간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에 급좌절...
기절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옆에 앉아있는 사**상과의 수다로 절반은 보낸 것 같다...
어찌나 재밌던지...나의 짧디 짧은 일본어를 이해해주고 또 5살 수준의 질문을 마구마구 쏟아내어도 쉽게 설명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버스 안에서 슬슬 에**상과도 친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화장실을 위해 멈췄던 곳에서...J8을 홍보하는 포스터를 보았다...
이건 뭥미...혼자서 잔뜩 흥분해서 난리...

중간에 도착한 휴게소...지만 우리나라 국도변에 있는 휴게소와 흡사한 느낌??이랄까...이곳에서
이럴수가...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감자와 버섯이 잔뜩!!!
고로케와 버섯시루를 사서 점심 해결.
곧 출발하려는데...맙소사...
고기에 굶주렸던 우리 독일친구들이 그 와중에 고기를 구워드시고 계셨다...
출발이 30분 정도 지연되었다...그래도...힘들었겠지...자기들도...
먹을 수 있는게 거의 없었으니...

다테캠프에 도착해보니 웬걸...완전 허허벌판 풀밭...
아디다스 모기...뱀...벌레...갑자기 확 무서워지는 느낌...
공동주방은? 공동샤워장은? 토요라하고 소베츠에만 있는겨???

도착해서 각자의 구역에 텐트를 치고 바로 시작한 것이 아이누민족의식.
(우리의 텐트는 에스페란티스토 그룹인 E구역에...쳐졌다)
약간 민족주의의 어둠의 그림자가 느껴졌다...이거 위험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의식의 첫줄이 모두 남자들...이어서 그냥 자리를 비켜서 서있었다...
신에게 바친 술을 모두가 나누어 마시는 형태의 의식...
긴 의식이 끝나고 준비해간 초로 촛불을 켜 들었다...
이어진 전빈련 아저씨의(이분은 이름도 생각이 안나...) 말도 안되는 발언.

"촛불은 2002년 효순이 미선이...중략...이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희생...중략...촛불은 반미의 상징..."
!?!!!!?!!??!
헐...언제 촛불이 반미의 상징이 되었지? 나 분명히 2002년 의정부에 있었는데...언제 그런 얘기를 했더라...말도 안되는 민족주의적인 발언들, 반외세, 침략주의반대 발언들이 아저씨의 입에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이내 나와 톰, 코기토는 자리를 떴다...
셋이서 심각하게 텐트로 돌아와서...상의를 시작했다...
저쪽 지역 몽땅 다 민족주의 진영인거 아냐??? 우리 삿포로상의 부탁도 있고 하니까 낼까지만 참고 낼 소베츠나 토요라로 갈까??? 사**상 내일 소베츠간다는데...거기 묻어가면...어쩌고 저쩌고...
사**상과 에**상은 우리 구역에 텐트가 있었기 때문에 의식이 끝나고 돌아온 두친구에게 아저씨의 이야기가 사실은 문제가 있다며 붙잡고 해명을 시작(일본어로 아저씨의 발언이 다 통역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데 막상 설명을 시작하니까...국가주의와 민족주의 두 가지 개념을 내가 혼동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까 발언했던 아저씨는Nationalist...라는 설명을 하기 시작은 했는데...사**상이 가르쳐준 구호도 그렇고...암만 생각해도 여기서는 Nationalism이 국가주의로 쓰이고 있는 듯한 느낌...그래서 다시 정리 시작...민족주의자라고 애써 설명했더니 운동하는 사람들도 Nationalist가 있냐는 질문을 받고 그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NL, PD까지 설명이 들어가야 되는겨?
그래서 쉽게 아주 간단한 도식으로(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크게 보면 두 그룹이 있는데 하나는 일본의 우익 같은, 그리고 하나는 운동을 하는 그룹으로 나눠볼 수 있다고...말해주었다...그렇지만 둘다 말하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민족통일, 조국통일 이런 식이라고...(힘들었어...ㅠ ㅠ)
말도 짧은데...이건 뭐 제대로 설명한 건지 오해를 낳은 건지...

저녁은 채소스프...(먹고 봤더니 생선비린내가...)
각자 해먹어야된다고 들었는데...배급이었다...나야 뭐 생선만 빼면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잘먹었지만...다들 입에 잘 안맞는 느낌...
씻으러 가려고 했는데(바로 옆에 동네 목욕탕) 목욕탕은 9시까지밖에 입장이 안돼서 들어갈 수 없다고...샤워만 하겠다는 우리랑 실랑이가 붙었다...내일은 게다가 정기휴일인데...

텐트에서는 셋이 자기로 하고 욘사마는 다른 텐트로...(욘사마 정말 고마워요!)

7월 7일...
일어나서 행진장소로 향했다...소베츠의 친구들과 만나 함께 행진한단다...다테와 소베츠는 토야코에서 6km떨어져있고...토요라는 20km.
애초에 다테와 소베츠만 허가가 나서 토요라는 불법이나 다름없는 상태라는 것까지 설명을 듣고 팔랑팔랑과 거기 있는 다른 고양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그리고 거긴 20km를 걷는다는...이야기도 들리고...아예 원봉이라는 얘기도 들리고...
도착한 장소에 생각보다 소베츠의 사람들이 많이 보이진 않았다...
어제 저녁 의식 후 떠나간 아이누 사람들도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이건 뭐 기자들의 카메라, 채증카메라...온통 카메라 투성이...
얼른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에스페란토 헬멧 장착.
헬멧에 반해버렸다...나는 검은 두건 위로 빨간 수건을...
길고 긴 발언이 시작되고...행진을 시작했다...
어디선가 커다란 확성기가 왔다...에**상이 그걸 메고 경찰들을 약올리기 시작했다...거의 혼자하는 만담형식이었는데 알아듣는 것도 있고 못알아듣는 것도 있고...거의 못알아들었지만 그 자체로 너무 재밌어서...
그리고 중간 중간 사**상의 퍼포먼스...랩인듯, 노래인듯 신나는 구호들과 오금질 비슷한 걸음새...거기에 손동작까지...
7월 5일 행진에서 과자를 들고 경찰들에게 나눠주더니...역시...사**상...
이때 배운 구호가...
"항~아항~아항 시혼슈기~항~아항~아항~코카슈기~"
사**상이 하면 어쩐지 에로틱해서...느낌이 확!!!!! 살았다...
원래는 'An-Anti Anti Capitalistas An-Anti Anti Nationalistas'인가 뭔가 하는 건데...(이거 맞나? 들리는대로 적은 건데) 사**상이 그 구호가 그냥 들으면 잘 들리지도 않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니까 자기가 쉽게 바꾼거라고 가르쳐줬다...

'에자나이까 에자나이까 에자나이까! 서미또 훈사이 에자니이까! 에자나이까 에자나이까 에자나이까! 나카마 카에세 에자나이까!'(좋지 아니한가 서미트 분쇄 좋지 아니한가 좋지 아니한가 동지를 풀어주는게 좋지 아니한가)

'나이 나이 나이 이미가 나이 G8 서미토 이미가 나이 나이 나이 나이 카치가 나이 ....'(없어 의미가 없어 G8 서미트 의미가 없어 없어 가치가 없어...'
이런 패턴들의 구호를 랩처럼 쏟아놓았다...그리고 그 마른 몸에서 솟아나는 체력...일단 시작하면 따라하기 힘들정도로 오래...
어쨌거나 사**상과 에**상 덕분에 신나게 행진할 수 있었다...
가는 중간중간 에**상은 현지 주민들을 향한 안내방송까지 소화해냈다...어찌나 감칠맛나는 말투이던지...
드디어 도착한 토야코...
윈저는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고...(이건 뭐니...)
분하고 분해서 화가 났다...

돌아와서보니 목욕탕이 문을 열었다...
목욕탕은 온천탕이라...물이 무지하게 좋았다...
씻고 났더니 매끈매끈...감동적인...온천탕...
나오는데 보니...목욕탕이 휴일인데 문을 연 이유는 바로 우리 때문.
아이누 사람들과 AWC가 교류회를 준비한 듯 했다. 그 준비로 목욕탕은 시끌벅적...그 자리에 있기가 영불편해서 나와서 신문과 뉴스롤 보면서 오니기리 하나값인 아이스크림까지...질러주고...캠프장 분위기를 살피자며 텐트로 돌아갔다...

사**상은 저녁에 소베츠로 떠났다...내일 토요라로 간다고...
우리는 내일 토요라로 가자는 중론을 모으고 일단 다시 다테에서 잠이 들었다...밤에 모두 함께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데...우리가 싸온 김을 내놨다...삿포로상이 김을 굉장히 좋아해서 뭐랄까 기뻤달까...게다가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사방이 새까만데...구름 속에 가려져있던 별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흑융단에 박힌 보석이라는 표현이 확 실감날만큼 태어나서 처음보는 아름다운 하늘이었다...매일 이 하늘을 보면서 잠이 들 수 있다면 행복할거라고 생각하면서 누워서 하늘을 보다 깜빡 잠이...(잠에서 깨서 어찌나 후덜덜하던지...뭐라도 물리면 어쩌려고...아무튼 무방비...)

사**상이 없음 행진이 재미가 없을텐데...
오늘은 헬멧을 쓰지 않는단다...
난 쓰고 싶은데...라고 말했더니 에**상이 슬쩍 자기가 몰래 챙겨둔 헬멧을 쓰라고 줬다...모두에겐 비밀이라면서...(이거 굉장히 역사적인 헬멧이라 아마 몰래 챙겨가려고 했던 듯 하다...)
내가 헬멧을 쓰고 나타났더니 삿포로상이 허허허 웃었다...
그렇게 둘째날 집회가 시작됐다...
오늘은 소베츠에서 사람들이 많이 왔다...모**상도...페*상도...
요와 토모도...
소베츠에서 온 사람들이 북을 가지고 와서 엄청 신나는 행진이 됐다...
이 행진에서 켄짱 데뷔...
우리가 개사한 노래...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케사츠와 카에레 카에레' '서미또 훈사이 훈사이' '나카마오 카에세 카에세'를 불렀다...
에**상의 꼬드김으로 내친김에 사**상의 주제가 아항시혼슈기까지 달려주었다...해버렸어...ㅠ ㅠ

중간 중간 캠코더를 든 한사람과 모자를 쓴 한사람이 경찰의 틈을 노리고 대오에서 이탈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중간에 한두번인가 마찰도 있었다...경찰들이 '좃또 마에 구다사이' '마에 마에'라고 하길래...
화가 확 치밀어올라서 같이 '케사츠와 마에 구다사이' '오니짱 마에 마에'로 응수해줬다...우리가 너무 세게 나가면 다 채증된다고 해서 일단 경찰이 치면 연행되는 사람이 없게해야한다는 생각에 몸으로 막자는 각오로...

나중에 북을 하나 얻어서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재밌던지...
칠줄아는 리듬이 하나밖에 없어서...계속 그것만 쳤지만 진짜 재밌었다...어쩌다보니 나중에 북잡이들이 다 여자들이 되어버려서 완전히 신나는 판이었다...혼자 들떠가지고...후훗...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덜 걸었다...
에**상과 에**상의 친구분(일본 목사님이신데 이름을...)의 차를 빌려타고 잠깐 토요라를 방문하기로 했다...
토요라로 가는 길에 잠이든 켄짱...꽤 멀었다...
토요라에 갔더니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도 않고...
물어봤더니 다들 행진하러 나가서 4, 5시쯤 들어온단다...
이런...오늘 다테에서 독일친구들의 마지막 공연이 있어서 다테로 다시 돌아가야 되는데...
반가운 도영을 만났다...
토요라에서 유일하게 수영복을 입고 노천샤워를 하는 도영...
미디어센터는 냄새로 들어가 있기가 괴로웠다...
뺏지랑 티셔츠를 사고 싶었는데 비싸서 사지도 못하고...크흑...
도영이 준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어제 토요라와 관련된 우와사들을 확인하고 안심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다테로 향했다...
도착하니...
장비들을 실은 차가 와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시작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코기토의 다이지나 다**상도 와있었고 소베츠에서 많은 친구들이 왔다...우리 텐트 옆에 귀여운 일인용 텐트에 어디서 많이 보던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아레...아나르코퀴아'
토*상의 텐트였는데 삿포로의 유**상이 일이 많아서 캠프에 합류하지 못한 것을 대신해 유**상의 포스터를 가져왔단다...

허허벌판에서 독일친구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나와 톰은 또 달리기 시작했다...솔직히 무지하게 피곤했지만...
고별공연이기도 하고...이런 척박한 상황일수록 더 뛰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근데 뛰면서 슬쩍 슬쩍 보이는 뒤의 사람들...
허허벌판에 앞에서 밴드가 공연하고 밴드 코앞에 한줄로 서서 미친듯이 뛰고 환호하는 예닐곱명의 사람들...그 뒤로 띄엄띄엄 앉아 있는 사람들...
영상으로 찍으면 대박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이...
코기토가 뒤에서 찍어주고 있었다...
독일 밴드는 스스로 앵콜을 두곡 날려주고 공항으로 떠났고 해프닝이 공연을 이었다...
짧은 즉석 합주도 있었고...
그런데...두둥...어제 교류회에서 노래를 부르던 오키나와의 할아버지가 기타를 메고 나오셔서 공연을 시작하셨다...
처음에는...좀 그랬지만 이윽고 공연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나름 운치가 있었달까...가사도 괜찮은 것 같고...문제는 영감님께서 같이하자면서 혼자 끊어먹고 나가시는 것 정도??

정리하고 저녁을 먹고 목욕을(사실 오늘은 안하고 버틸 생각이었는데 공연 때 너무 흥분해버려서...) 하고 제**상이 자신의 디너파티에 초대해줘서 합류했다...뭔가 즐거운...디너파티...제**상과 나누는 대화는 무언가 100%이해할 순 없지만...어딘가 모르게 다정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저녁 내내 삿포로상이 보이질 않아서 걱정했는데 독일 친구들을 치토세까지 데려다주고 오셨단다...진짜 진짜 힘들텐데...

내일은 토요라와 소베츠, 다테 세 캠프가 함께 행진하는 마지막날...
어느덧 마지막날...이라니 아쉽기도 하고...분하기도 하고...슬프기도 하고...


G8을 넘어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G8을 넘어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피플파워  / 2008년07월19일 14시16분


하주영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사프로젝트 피플파워 하주영입니다. 또다시 미국경제가 금융위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미국 모기지업체인 인디맥이 고객들의 대규모 인출사태로 영업중단조취를 받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국책 모기지 업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긴급 구제책을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헤지 펀드 매니저인 조지 소로스는 생애 최대의 심각한 금융위기라 표현했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로 허덕이는 한국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 생각만해도 아찔한데요, 이미 전세계 민중의 삶을 주무르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금융의 세계화가 만들어내는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3. 현장플러스


G8을 넘어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하주영 / 오늘 현장플러스에서는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해온 국가들의 모임인 G8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 열린 G8정상회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을 이어온 활동가들의 직접행동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영상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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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영상 : S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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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영/ 함께 얘기 나눌 분은 길바닥 문화행동의 조약골 활동가입니다.안녕하세요.


조약골/ 인사








하주영/ 지난 7월 6일부터 9일까지 일본 홋카이도 토야코 호수에서 G8 정상회담이 열렸는데요, G8 정상회담이 어떤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①


조약골/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이 세다는 8개국 정상들이 모여서 세계의 주요 현안들에 대해 결정하는 모임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모여서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고 집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파괴 등의 문제는 지구 차원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하주영/ 이번 G8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무엇이었고,
회담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②



G8 정상회담, 환경문제 중점으로 다뤘으나 구체적 합의 없어


조약골/ 21세기 시작하면서부터 환경재앙이라는 여러 번 들이닥쳤고, 이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래서 이번 2008년 일본 토야코 G8 정상회담에서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주요 의제였습니다. 회담이 진행된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환경이 아름답고 생태계가 잘 보존된 지역이라 회담 개최국인 일본은 그 점을 널리 홍보하면서 생태친화적인 회담을 개최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일본은 2012년으로 끝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환경협약을 이번 G8 회담에서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협약을 참가국들(G8 나라들을 포함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8개국이 이번에 추가로 참석함)의 동의로 이끌어내려고 하였으나, 아무런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회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주영/ 전 세계적으로 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회담이 열리는 일본 홋카이도에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대거 입국하여 여러 가지 반대 행동을 펼친 것으로 아는데요, 이들의 회담 반대의 주요 이유는 어떤 것입니까? ③








G8 정상회담- 세계 전쟁, 빈곤, 환경파괴를 사실상 주도해와


조약골/ G8 정상회담이 스스로 세계정부를 자처하면서 매년 주요한 사안들에 대해 주로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가의 입장에서 정책들을 추진해왔습니다. 지금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시장의 기능강화와 공공부문 민영화, 탈규제, 관세철폐와 자유무역을 통한 시장개방, 외국투기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정책들이 결국엔 전쟁과 빈곤을 강화시키고 환경파괴를 불러왔기 때문에 G8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하주영/ G8 정상회담 반대의 목소리는 돌이켜보면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반대해온 전 세계 운동과 그 맥이 닿아있어 보입니다. 이번 G8 정상회담 반대운동은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까?④


G8 정상회담 반대투쟁,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투쟁의 연장선


조약골/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벌어져온 세계화 반대운동 덕분에 기존의 세계화를 추진해오던 세계은행, IMF, WTO 같은 기구들은 회담 자체를 갖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이들이 어딜 가든 반세계화 시위대가 따라붙었으니까요. WTO는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대세가 되면서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고요, 이제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G8 정상회담이 반세계화 운동가들을 결집시키는 주요 목표가 된 것입니다.








하주영/ 이번 회담이 열린 일본 내에서도 다양한 사회단체 구성원들이 대규모 반대 움직을 보였다는데요, 어떤 활동들이 있었습니까?⑤


조약골/ 이번 G8 반대운동을 위해 지난 1년간 일본의 모든 시민사회단체와 운동단체들이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는 G8 정상회담의 개최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보다 급진적이고 발본적인 입장을 가진 단체들도 있고, G8 정상회담의 대안으로 다양한 세력들이 힘을 모으는 대안회담을 만들어가자는 입장을 가진 단체들도 있습니다.


7월 5일에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에 이들이 모두 모여서 행진을 했어요. 약 5천 여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3개 블록으로 나뉘어서 맨 앞에는 급진적인 세력들과 개인들, 가운데 블록은 일본 공산당, 마지막 블록은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서 행진을 했습니다. 각 블록마다 분위기가 사뭇 달랐던 것 같아요.








하주영/ 일본 현지에서는 다양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정작 이 대열에 함께 하지도 못하고 입국 저지당한 한국 사회 활동가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영상으로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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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2. 입국저지 규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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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영/ 조약골 활동가께서는 이번 G8 정상회담 반대투쟁 현장에 직접 계셨는데요, 주목할 만한 점이나 흥미로웠던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⑥


조약골/ 일본 경찰의 폭력성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7월 5일의 집회와 행진에서 ‘사운드 데모’를 하던 디제이들과 트럭 운전수가 경찰에 연행되었는데요, 최대 23일간 유치장에 갇혀서 조사를 받으면서 변호사 이외에는 면회도 금지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집회를 반드시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경찰이 허가를 내줄 때에도 아주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일일이 간섭을 하고 결정을 해서 통보를 합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어길 경우 심하면 연행을 당하기도 하고, 집회가 끝난 다음날 집회책임자를 찾아내 연행하기도 합니다.
집회 가운데도 경찰이 따라붙어서 카메라와 캠코더로 불법채증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행진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끊임없이 요구를 합니다. 일본 경찰이 허용한 집회만 할 수 있다니, 정말 갑갑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주영/ 일본이 경찰병력을 대규모로 동원한 것은 과거 시애틀, 부산, 홍콩 등지에서 벌어진 WTO와, 아펙 반대투쟁을 과격한 운동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인 듯한데, 일본 당국의 과잉대응을 직접 겪으신 일도 있습니까? ⑦


일본. 대규모 경찰병력을 배치하고 세계 활동가 입국자체 불허해


조약골/ 일본 정부는 신경이 곤두서서 모든 경찰력을 총동원했습니다. 저와 같이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해온 ‘카라’는 이번에 결국 일본 입국이 불허되어 공항에 하루를 억류되어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입국을 하지 않으면, 일단 G8 반대행동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모든 사람은 공항에서 기본적으로 10시간 가까이 억류되어 심문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입국이 불허되어 본국으로 돌려보내지는 경우도 많고, 가까스로 입국이 된다고 해도 통상적인 3개월짜리 비자가 아니라 5일 체류하고 7월 7일 이전에 출국해야 하는 단기 비자가 나오는 식입니다. 민주노총이나 전농의 활동가들이 입국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더나 반세계화 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도쿄에 며칠 있다가 홋카이도는 가보지도 못하고 출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하주영/ G8 정상회담은 이번뿐 아니라 과거에도 특별한 성과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이 정상회담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조약골 활동가는 이번 G8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리고 있습니까? ⑧



홋가이도 G8 정상회담, 립서비스에 그친 합의


조약골/ 한 마디로 립서비스에 그친 합의입니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하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노력하겠다’ 딱 이 두 줄을 합의한 것이죠. 선진국이라는 8개 나라가 모였는데, 큰 틀에서는 이해를 같이 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부분에서 보면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구체적인 부분까지는 합의를 하기 힘든 것입니다. G8 정상회담은 그냥 일 년에 한 번 정상들이 만나서 축배를 드는 비공식 사교모임인데, 스스로 지구 전체를 좌지우지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하주영/ 한국 언론은 이번 G8 정상회담에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의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다고 잔치집 같은 분위기를 냈습니다.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든 사실인데요, 한국이 G8에 참가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⑨



한국의 G8 정상회담 참가,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모임 때문에 간 것


조약골/ 한국이 참가한 것은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이기 때문에 참가한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이외에도 멕시코, 브라질,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참가한 이유는 이들이 G8 다음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환경파괴국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모인 김에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보자고 한 것 같은데, 후쿠다 총리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네요. 온실가스 최대배출국 싹 모아놓으면 뭔가 해결이 되리라 믿었나 봅니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당기면서 사회적 불평등은 거의 폭발수준까지 올라 있습니다. 경제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이런 문제들은 경찰력으로 억누르면서 덮어놓고 가겠다는 것이죠.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는 대통령이 G8에 참가해 샴페인 같이 마셨다고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질리 없습니다.


하주영/ 조약골 활동가, 생생한 현장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인사)


조약골/ 감사합니다.(인사)


피플파워에 G8 반대투쟁이 나옵니다 추천
'시사프로젝트 피플파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참세상 상근자들이 만들고 있는 시사프로그램으로 위성방송과 케이블로 방영되고 있는 RTV에서 방송되고 있습니다. 매주 30분으로 제작되고 있고, 본방과 재방으로 1주 3회 이상 방송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현장플러스'라는 코너에서 이번 G8 반대투쟁을 다뤄보고 싶다고 해서 돕이 연락에 응했습니다.

아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고요, 방송은 위성 방송 RTV를 통해 7.18(금) 오후 11시에 본방송이 나가고요, 일부 지역은 케이블 방송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참세상 www.newscham.net 에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재방송이 2회 정도 더 나가게 된다니까 보실 수 있는 분들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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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7월 6일부터 9일까지 일본 홋카이도 토야코 호수에서 G8 정상회담이 열렸는데요, G8 정상회담이 어떤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이 세다는 8개국 정상들이 모여서 세계의 주요 현안들에 대해 결정하는 모임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모여서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고 집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파괴 등의 문제는 지구 차원으로 퍼져나갔습니다.

2. 이번 G8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무엇이었고, 회담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21세기 시작하면서부터 환경재앙이라는 여러 번 들이닥쳤고, 이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래서 이번 2008년 일본 토야코 G8 정상회담에서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주요 의제였습니다. 회담이 진행된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환경이 아름답고 생태계가 잘 보존된 지역이라 회담 개최국인 일본은 그 점을 널리 홍보하면서 생태친화적인 회담을 개최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일본은 2012년으로 끝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환경협약을 이번 G8 회담에서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협약을 참가국들(G8 나라들을 포함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8개국이 이번에 추가로 참석함)의 동의로 이끌어내려고 하였으나, 아무런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회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3. 전 세계적으로 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회담이 열리는 일본 홋카이도에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대거 입국하여 여러 가지 반대 행동을 펼친 것으로 아는데요, 이들의 회담 반대의 주요 이유는 어떤 것입니까?

G8 정상회담이 스스로 세계정부를 자처하면서 매년 주요한 사안들에 대해 주로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가의 입장에서 정책들을 추진해왔습니다. 지금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시장의 기능강화와 공공부문 민영화, 탈규제, 관세철폐와 자유무역을 통한 시장개방, 외국투기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정책들이 결국엔 전쟁과 빈곤을 강화시키고 환경파괴를 불러왔기 때문에 G8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4. G8 정상회담 반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단순히 G8 정상회담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지난 10여년간 펼쳐졌던 신자유주의 - 세계화 반대 운동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보이는 데요, G8 정상회담 반대 운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의 큰 흐름 속에서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벌어져온 세계화 반대운동 덕분에 기존의 세계화를 추진해오던 세계은행, IMF, WTO 같은 기구들은 회담 자체를 갖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이들이 어딜 가든 반세계화 시위대가 따라붙었으니까요. WTO는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대세가 되면서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고요, 이제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G8 정상회담이 반세계화 운동가들을 결집시키는 주요 목표가 된 것입니다.

5. 이번 회담이 일본에서 열리면서 일본의 많은 노동조합, 시민/사회 단체, 학생 등이 조직적인 대규모 반대 움직임을 보였다고 하는데요, 그 움직임이 상당히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내 G8 정상회담 반대 움직임에 대해 소개부탁드립니다.

이번 G8 반대운동을 위해 지난 1년간 일본의 모든 시민사회단체와 운동단체들이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는 G8 정상회담의 개최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보다 급진적이고 발본적인 입장을 가진 단체들도 있고, G8 정상회담의 대안으로 다양한 세력들이 힘을 모으는 대안회담을 만들어가자는 입장을 가진 단체들도 있습니다.
7월 5일에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에 이들이 모두 모여서 행진을 했어요. 약 5천 여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3개 블록으로 나뉘어서 맨 앞에는 급진적인 세력들과 개인들, 가운데 블록은 일본 공산당, 마지막 블록은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서 행진을 했습니다. 각 블록마다 분위기가 사뭇 달랐던 것 같아요.

6. 이번에 회담장 주변에서 펼쳐진 G8정상회담 반대 운동에 직접 참여하셔서 현장의 생생한 장면을 직접 보시고 오셨는데요, 주목할 만한 점이나 흥미로웠던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일본 경찰의 폭력성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7월 5일의 집회와 행진에서 ‘사운드 데모’를 하던 디제이들과 트럭 운전수가 경찰에 연행되었는데요, 최대 23일간 유치장에 갇혀서 조사를 받으면서 변호사 이외에는 면회도 금지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집회를 반드시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경찰이 허가를 내줄 때에도 아주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일일이 간섭을 하고 결정을 해서 통보를 합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어길 경우 심하면 연행을 당하기도 하고, 집회가 끝난 다음날 집회책임자를 찾아내 연행하기도 합니다.
집회 가운데도 경찰이 따라붙어서 카메라와 캠코더로 불법채증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행진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끊임 없이 요구를 합니다. 일본 경찰이 허용한 집회만 할 수 있다니, 정말 갑갑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7. 일본정부는 이번 회담을 준비하면서 과거 99년 시애틀 WTO 3차 각료회의 반대투쟁, 2005년 부산 아펙 및 홍콩 WTO 반대 시위 등을 사례로 들어 ‘반세계화 운동세력의 과격성’을 부각하며 보안을 위해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반세계화 운동 경력’이 있는 활동가들의 입국을 불허하기까지 했는데요, 직접 겪으신 상황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일본 정부는 신경이 곤두서서 모든 경찰력을 총동원했습니다. 저와 같이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해온 ‘카라’는 이번에 결국 일본 입국이 불허되어 공항에 하루를 억류되어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입국을 하지 않으면, 일단 G8 반대행동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모든 사람은 공항에서 기본적으로 10시간 가까이 억류되어 심문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입국이 불허되어 본국으로 돌려보내지는 경우도 많고, 가까스로 입국이 된다고 해도 통상적인 3개월짜리 비자가 아니라 5일 체류하고 7월 7일 이전에 출국해야 하는 단기 비자가 나오는 식입니다. 민주노총이나 전농의 활동가들이 입국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더나 반세계화 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도쿄에 며칠 있다가 홋카이도는 가보지도 못하고 출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8. 이번 G8 정상회담의 성과를 놓고 ‘실행방법 없는 선언적 합의’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뿐 아니라 회담이 열릴 때마다 이런 평가가 내려지고 있고, G8 정상회담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런 평가에 동의하시는지? 직접 이번 G8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내려주신다면?

한 마디로 립서비스에 그친 합의입니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하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노력하겠다’ 딱 이 두 줄을 합의한 것이죠. 선진국이라는 8개 나라가 모였는데, 큰 틀에서는 이해를 같이 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부분에서 보면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구체적인 부분까지는 합의를 하기 힘든 것입니다. G8 정상회담은 그냥 일 년에 한 번 정상들이 만나서 축배를 드는 비공식 사교모임인데, 스스로 지구 전체를 좌지우지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9. 한국 언론은 이번 G8 정상회담을 놓고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후쿠다 총리로부터 초청을 받아 한국 대통령 최초로 G8 정상회담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것이 한국경제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국이 참가한 것은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이기 때문에 참가한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이외에도 멕시코, 브라질,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참가한 이유는 이들이 G8 다음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환경파괴국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모인 김에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보자고 한 것 같은데, 후쿠다 총리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네요. 온실가스 최대배출국 싹 모아놓으면 뭔가 해결이 되리라 믿었나 봅니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당기면서 사회적 불평등은 거의 폭발수준까지 올라 있습니다. 경제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이런 문제들은 경찰력으로 억누르면서 덮어놓고 가겠다는 것이죠.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는 대통령이 G8에 참가해 샴페인 같이 마셨다고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질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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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과 존중의 연대의식으로 뭉친 G8 반대투쟁 추천
참세상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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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과 존중의 연대의식으로 뭉친 G8 반대투쟁


약 2주일 간 일본에 다녀왔다. 지난 7월 7일부터 9일까지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렸던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활동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는 홋카이도에서도 아주 구석에 있는 토야코라는 호수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윈저호텔이었다. 사진이나 지도로 볼 때는 몰랐지만, 그 호텔은 마치 중세 시대의 천혜의 요새를 연상시키듯 산꼭대기에 우뚝 솟아있었다. 멀리서도 잘 보이지만, 사방이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높은 봉우리 정상을 완전히 깎아 만든 곳에 모셔져 있는지라 차량이 없는 일반인들의 접근은 험한 산길을 수풀을 헤치며 올라가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외진 곳에 호텔을 지은 이유는 일본에서도 돈이 매우 많은 자들이 여름 휴양지로 즐겨 찾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예쁜 토야코 호수와 아기자기한 토요우라 마을 그리고 저 멀리 태평양이 바라다보이는 드넓은 원시림의 높은 봉우리 한가운데에 휴양을 온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졌다. 바로 그곳에 이 세상에 전쟁과 빈곤 그리고 환경파괴와 차별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확산시켜온 주범들이 모인다고 들었다. 한번 가서 따져묻고 싶었다. 왜 쥐새끼처럼 그렇게 숨어서 작당모의를 하냐고 말이다. 도둑질을 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그런 고립된 곳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만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세계로 뻗어가면서 세상의 자원을 어떻게 훔칠 것인가 모의하기 위해 권력자들이 모임을 개최할 때마다 성난 시위대가 항상 따라붙었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 모임은 이제 토야코 호수 한 켠에 산을 깎아만든 윈저호텔 같은 곳에서 막강한 경찰력을 동원해 보호받지 않으면 열리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2009년 G8 정상회담이 열리기로 예정된 이탈리아 역시 일반인들의 접근이 무척 어려운 어느 아름다운 섬에 회담 장소를 마련했다고 한다. 권력자들이 세계의 민중이 연대해 펼치는 저항운동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이런 사실 자체가 운동의 성과라고 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어쩌랴, 저들은 여전히 고립무원의 고도를 마다하지 않고 모임을 개최하고 있으니. 애초 나는 그런 곳까지 쫓아가 밥맛 떨어지는 지도자의 얼굴들 면면까지 봐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G8 반대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일본 활동가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준비를 했고, 나는 그들의 성의에 감동을 받아 급기야 일본 입국 시 강제로 지문과 얼굴사진 등의 생체정보를 국가에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행을 결심하게 됐다. 내 삶에 무지막지한 영향을 끼칠 중요한 사항을 왜 쥐새끼들 몇몇이 모여서 죄다 결정해버리느냐고 따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은 무한경쟁의 체제에서 힘든 삶을 강요받고 있는 전 세계 민중들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함이었다.

일본 입국은 쉽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2005년 홍콩 WTO 반대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이나 이와 관련 블랙리스트에 등록된 사람들, 즉 반세계화 운동가들, 또는 저들의 말을 빌면 요인의 신변에 위험을 끼칠 수도 있는 잠재적 위협을 가진 테러리스트들의 정보를 이미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입국을 불허하고 본국으로 추방하는 바람에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일본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대항국제포럼’에 참여해 학술활동을 하기로 한 학자들까지도 일본 공항에서 열 시간 이상씩 억류되었고, G8 반대활동을 독립적으로 기록하고 보도하기 위해 온 미디어 활동가들도 공항에 붙들려 한참을 심문을 받아야 했다. 집회에서 발언을 하기로 예정된 연사나 포럼 발표자들까지 입국을 불허하는 일본 정부의 강경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일본 출입국관리소는 외국에서 온 활동가들에게 회담 개최일인 7월 7일 이전에 일본을 떠나도록 하는 3~5일짜리 임시 체류허가증을 발급하는 등의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회담 시작 전부터 과도한 공권력의 사용으로 비판을 받은 일본은 그야말로 경찰국가의 진면목을 유감 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G8을 반대하는 집회와 행사를 조직하는 일본인 활동가들을 사찰하고 은근히 협박하는가 하면, 모든 집회와 행사에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불법채증을 버젓이 자행했다. 3인이 모여 촛불을 들고 간단한 집회라고 할라치면 어느새 알고 달려온 정보과 형사들이 외국인 활동가들의 신상을 모조리 파악해 향후 입국금지 자료로 활용할 터였다. 모든 집회는 3일전에 경찰의 허락을 반드시 받아야 하며, 시작 시간에서부터 끝나는 시간, 장소와 참가인원 그리고 허가되는 행동과 불허되는 행동의 목록이 자세히 적힌 경찰의 방침에 집회참가자들은 따라야 했다. 예를 들어 행진할 때는 4열을 맞춰 행진해야 하며(군대의 사열이라고 받고 싶은 건가?), 대열 중간에 공백이 생길 경우 얼른 앞으로 달려가 메꿔야 했는데, 경찰은 보통 집회참가자의 수만큼 배치되어 바로 옆에서 같이 행진하면서 쉴 새 없이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하였다. 길바닥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구호를 적는다든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전단지를 뿌린다든가, 1차선 이상을 차지한다든가, 경찰과 신체적 접촉을 한다든가 등등 미리 경찰의 받지 않은 어떤 행동도 불허되었는데, 이를 어길 경우 현장에서 연행을 하기도 하지만 집회가 끝난 후 다음날 조직에 책임을 맡은 활동가들을 찾아내 연행하여 구속을 시키는 등의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일본은 연행될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고도 경찰에 의해 23일까지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될 수 있으며, 이 기간 동안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일절 면회도 금지된다고 한다. 즉 한 번 연행되면 거의 한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판사의 개입 없이 완전 고립된 상태에서 경찰의 심문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일본에서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없으며, 경찰의 감시와 탄압이 일상화되어 있고, 그에 따라 공권력의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하는 저항의 상상력이 메말라버렸다고 보면 된다. 국가에 순응하는 얌전한 시민사회의 활동은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뿌리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원인을 제거하며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저항적 사회운동이 기를 펴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체제가 만들어지는지 곁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권력자들은 법을 통과시키고, 새로운 방침을 마련하면서 시민의 자유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기 때문에 반체제의 자유와 권리는 투쟁하면서 지켜내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 국가체제다.

6월 말부터 교토, 오사카, 도쿄 등지에서 크고작은 집회와 행동 그리고 대항포럼 등이 마련되었고, 7월 5일에는 어떤 식으로든 G8 정상회담을 반대하거나 문제제기 하는 모든 사람들이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에 총집결해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모인 사람이 약 오천 명 정도였다. 오천 명이라면 한국에서 매일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숫자 아닌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몇 달간 일본의 시민사회와 운동권이 발벗고 나선 성과가 겨우 오천 명이라니. 그런데 그렇게 볼 일이 아니었다. 사실 저항적 사회운동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한국도 1-2년 전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이나 비정규직 투쟁에 만 명을 모으기가 쉬운 형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촛불을 끄기 위해 모든 권력을 총동원해 만든 공안정국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앞으로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만 명의 시민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 오천 명이 모였는데,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집회와 행진을 했다. 빨간색, 검은색, 분홍색, 흰색 등 색깔도 다양했고,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두드리며 행진하는 이, 얌전히 깃발을 따라가는 이, 음악에 맞춰 춤추며 가는 이, 피켓이나 허수아비를 들고 걷는 이, 경찰에 도발을 하는 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이 등 제각각으로 보이던 사람들도 ‘G8 반대’라는 구심점에 하나가 된 아름다운 투쟁이었다. 문제는 삿포로에 모인 그 사람들이 모두 토야코 호수까지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상회담이 열리는 곳까지 따라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려는 골수(!)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삿포로 시내에 머물면서 포럼이나 토론회를 열거나 집회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등의 일정을 짰고, 윈저호텔 주변에 가려는 마음을 먹은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대가 등을 바라지 않고 낮은 곳에서 묵묵히 운동을 해온 이름 없는 활동가들이었다. 체제의 일부가 되어버린 일본 공산당은 삿포로 집회에 많은 당원들을 출석시켰지만 그들은 토야코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행진에서는 큰 깃발을 들고 많은 수가 참여해 조직력을 과시했던 어떤 노동조합도 회담장 근처에 가서 활동을 벌일 계획은 없었다. 큰 단체 소속이 아닌 사람들, 또는 느슨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 활동가들, 국제연대라는 이름의 상호부조 이외에는 별다른 자원을 갖고 있지도 않은 풀뿌리 지역 활동가들만이 삿포로에서도 차로 3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토야코 호수 주변에 모여들 고민을 하고 있었다.

회담장 주변은 온통 산지여서 그곳에 반세계화 활동가들이 머물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애초부터 일본 활동가들의 최대 고민거리였던 듯 싶다. ‘천 명’ 정도가 함께 머물면서 낮에는 집회를 하고 밤에는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무리 뒤져봐도 토야코 호수 주변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회담장에서 가깝게는 10km 이상, 멀게는 30km 이상 떨어진 산 속의 몇몇 캠프장에 저항의 근거지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토요우라 캠프와 소벳츠 캠프 그리고 다떼 캠프 등 세 곳이 선정되었다. 이 중 토요우라 캠프는 회담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고, 규모도 가장 큰 캠프장으로 최대 2천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삼림캠핑장이었다. 기본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시위 전력을 가진 국제 활동가들은 대부분 토요우라 캠프로 가게 되었고, 일본 활동가들은 주로 소벳츠 캠프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목초지에 임시로 마련한 다떼 캠프에도 활동가들이 들어가 총 세 곳에서 회담장을 포위, 압박한다는 집회 전략이 짜여지게 되었다. 이 전략은 토야코 호수까지 내려간 사람들이 많을 경우 유효한 방법이었다. 일본 전역의 모든 경찰이 홋카이도로 총집결한 상황에서 회담장 근처에 어떤 압박이라도 가하기 위해서는 반대행동에 참여한 사람이 최소한 몇 천 명은 되어야 했다. 특히 천혜의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윈저호텔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산정상으로 뻗어 있는 유일한 도로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곳은 이미 대테러 특공대가 원천봉쇄하고 있지 않은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없는 일본의 상황도 문제가 됐다. 회담장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 물리적 압력을 가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소벳츠 캠프와 다떼 캠프는 경찰이 행진 허가를 내주었지만, 토요우라 캠프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행진 허가는 마지막까지 경찰이 내주지 않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G8 정상회담을 막으러 텐트며 코펠이며 25kg 이상 짐을 싸들고 그 멀고먼 토야코 호수까지 무진 애를 쓰고 갔다가 경찰의 봉쇄로 캠핑장 정문을 나서지도 못한 채 산 속에 갇힐 뻔한 상황이었다. 결국 토요우라 캠프에서도 행진 허가가 나긴 했지만, 경찰의 그 허가사항이란 것이 참 웃긴 것이었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로는 행진을 할 수 없고, 산길을 돌고돌아 20km를 걸어가면 도착하는, 회담장에서 5km 떨어진 한적한 마을까지만 행진을 허가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토요우라 캠프에 간 사람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허가된 것 같았다.

토요우라 캠프에 도착한 첫날, 이 문제로 주로 국제 활동가들과 일본 활동가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다. 즉 일본 경찰이 허가된 경로로 20km를 넘게 걸어가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6시간을 걸어봤자 회담장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그렇게 해야 하나, 차라리 다른 방법을 동원하면 안되나. 이런 주제를 놓고 새벽까지 이어진 전체모임에서 결국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직접행동을 하자는 의견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에서 경찰이 허가한 행동 이외에 다른 행동을 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었다. 몇 백명이 머리를 맞대고 몇 개 언어로 통역을 거듭하며 합의를 내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일부는 아침에 예정된 행진 코스로 행진을 시작하고, 다른 일부는 좀 시간이 지난 뒤 다른 행동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나 경찰은 다른 행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찰과 마찰을 일으켰다가는 경찰과의 (강요된) 합의를 어겼다는 이유로 애꿎은 일본 활동가들만 모조리 구속될 판이었다. 토요우라 캠프에서는 일부가 행진을 하고 일부는 경찰과 대치하다가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소벳츠 캠프와 다떼 캠프에는 예정된 코스에 따라 행진을 했다. 회담장 가까이 다가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행진의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또한 온갖 언론사의 기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G8 정상회담의 문제점을 행진을 통해 압축적으로 알리는 것도 행진 이유가 되었다. 7월 5일 삿포로 집회에서 사운드 데모를 하다가 부당하게 연행된 DJ들과 트럭 운전사의 석방을 요구한 것도 토야코 호수를 둘러싸고 진행된 행진에서 주요한 이슈였다.

캠프장에서의 첫날이 지나자 문제는 더욱 명확해졌다. 저들이 교묘하게 마련해놓은 윈저호텔 근처로 바짝 다가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회담장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접근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경찰국가가 된 일본이 어떤 식으로 시민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지, 안보라는 이름으로 어떤 식으로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는지 알리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하게 되었다. 애초에 경찰의 저지선을 넘어 회담장으로 접근해 펼침막을 펼쳐보이거나 ‘호텔 인간띠 잇기’ 등의 꿈을 꾸었던 활동가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좌절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세상을 열망하며 10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수 백명의 사람들이 3일간 캠핑장에 모여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그곳에 모였던 이유일 수 있으니 말이다.

윈저호텔에 다가가 이명박이나 부시, 후쿠다 총리 같은 자들의 역겨운 얼굴을 보는 것보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나와 같은 꿈을 꾸며 비슷한 모습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포옹하며 며칠을 같이 보내는 것이 훨씬 즐겁고 행복한 일임에는 틀림 없어 보였다. 쟤네들은 지들끼리 스스로 고립시키라고 하지 뭐. 우리는 이번에 이곳에 모여 다시 한번 부자들만의 세계화를 멈추라고 경고를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가고 있었다. 찐 감자와 주먹밥으로 점심을 같이 먹고 20km 등산을 하며 새까맣게 탄 얼굴로 서로 활짝 웃어주는 사람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우정이랄까 아니면 정감어린 무엇인가가 자라나고 있었다. 연대라는 두 단어로는 세밀하게 표현하기 힘든, 수평적이고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집단의 일부이자 뚜렷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그런 느낌이었다. 2001년 외환위기로 국가경제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아르헨티나의 민중들이 스스로 자치운동을 벌이며 삶을 복원하는 과정도 그런 느낌을 민중들이 공유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런 느낌을, 마리나 싯트린Marina Sitrin이라는 사람은 ‘Horizontalism’이라는 책에서 현지 풀뿌리 주민들의 생생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지난 몇 달간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처음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즉 나에게 중요한 어떤 문제를 남이 결정해버리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해결해가려는 참으로 지난한 과정에 온몸을 내맡긴 사람들만이 서로 느낄 수 있는 애정과 존중의 연대의식 말이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따뜻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반가울 수 있는 힘 말이다. 일본에서 만난 많은 활동가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그런 느낌, 그리고 그런 느낌이 가능해진 배경이 되었던 촛불집회와 길거리 행진에 대해 설명을 하기 위해 애를 썼고,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스페인에, 프랑스에, 홍콩에, 미국에 그리고 일본에도 있었다.

애초 일본 활동가들은 세 개의 캠프를 조직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 캠프에 모든 사람이 몰려 있을 경우 쉽게 말하면 ‘몰살’되기 십상이고, 또한 캠프를 두 군데, 세 군데로 나눔으로써 탈집중화된 투쟁을 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것을 잘만 하면 커다란 힘으로 승화시켜 G8 정상회담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적은 수의 사람들이 토야코 호수에 모였고, 그런 가운데 다시 캠프를 세 군데로 나눔으로써 우리의 힘은 더욱 분산된 역효과도 있었다. 회담장 가까이 간 사람들은 대부분 아나키즘과 자율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사람들이었기에 탈집중적 기획을 한 것은 당연했지만 어떻게 보면 ‘탈집중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런 우려를 나만 느꼈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둘째날의 행동이 끝나고 모인 사람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세 캠프가 결합해 마지막 행동을 하자는데 동의했다.

G8 정상회담은 우리가 가서 막지 않아도 이미 각국 자본가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합의를 내지 못하고 폐막되고 있었다. 홋카이도는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환경이 아름답고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어서, 이곳을 회담장소로 잡으면서 일본 정부는 ‘에코’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등 아름다운 생태계를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해 각국의 합의를 이끌어내기에 ‘에코’는 가장 효과적인 선전구호였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자본가들은 ‘에코 마케팅’을 하지 않고는 제품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모든 제품에 에코를 내세우는 형편이 되었다. ‘이 제품을 사면 환경이 보호된다’는 문구가 광고에 한 두 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해서, 이제 일본에서는 에코라는 것이 운동권의 구호가 아니라 자본가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가치로 변질되고 말았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유행하던 ‘웰빙’이 일본에서 지금 에코가 된 셈이다. 그래서 어떤 활동가는 집회에 나가 큼지막하게 ‘에코 반대’라고 써붓인 피켓을 들고 내내 행진을 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그렇게 에코를 내세워 2012년으로 마감이 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해 2050년을 목표로 삼은 새로운 환경정책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고갈되는 석유와 에너지 위기의 시대에 개발만이 답이라고 여기는 자본가 정부들이 에코의 가치를 위해 산업에 제한을 가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런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각국의 정상들이 샴페인과 산해진미를 즐기던 7월 9일 세 군데 캠프로 나뉘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마침내 토야코 호수 저 너머로 윈저호텔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모여 신나는 행진을 벌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같이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삿포로에 모두 모여 행진하던 사람들이 며칠 간 다른 캠프로 헤어져있다 다시 상봉하는 순간은 박수와 환호성이 가득했다. 경찰은 여전히 귀찮게 굴면서 연행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골칫거리는 되지 못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로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싸움은 진행형이다. 7월 5일에 사운드 트럭을 몰다가 연행된 운전사와 그 트럭 위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며 행진을 할 수 있게 음악을 틀던 DJ 두 명이 아직도 일본 삿포로 중앙경찰서에 감금되어 있다. 이 친구들의 석방과 집회 시위의 자유를 위해 우리는 한국에서, 일본에서 같이 촛불을 들고 행진을 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어디에 있건 다시 만날 것이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억압을 가하기 마련일테고, 나에 대한 억압은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억압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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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영회(7월 19일): G8 반대 행동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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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코기토입니다. 추천

 

G8 액션에 함께 했던 코기토입니다.

톰과 저도 어제 저녁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분이 서울로 떠나고

11일날은 톰과 저는 저희 일정을 진행하고

12일날 그동안 만났던 일본친구들을 만나려고 연락을 돌렸는데

 

도쿄에서 우리에게 잠잘 곳을 제공해주었던

일본활동가는 경찰의 감시가 심해서 삿포로에서

도쿄로 오지 못한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걱정도 많이 되고 마음도 아프고 그랬습니다.

아노상한테 연락을 했더니 12일날 집회가 있다고 해서

어떤 집회인지 전화통화여서 정확히 모르고 갔는데

 

연행자 석방을 위한 집회였습니다.

톰과 저도 12일날 도쿄 코엔지에 있었던

연행자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같이 했구요.

 

그 곳에서 그동안 만났던 활동가들을 다시 만나고

같이 집회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집회가 마지막쯤에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다같이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치는데

 

눈물이 핑돌 정도로 짠했어요.

연행자들이 하루 빨리 석방됐으면 좋겠네요.

로이터기자는 하루만에 로이터회사의 전화로

인해서 풀려났다고 하던데 진짜 화나고 열받네요.

 

12일날 일본집회에서의 사진도 찍고 했으니

지금까지 사진들이랑 영상들을 정리해서 올릴 수 있도록

빨리 저 스스로를 재정비해야 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잘 돌아왔지만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감시받고 있는

활동가나 삿포로에서 우리에게 숙식을 제공한

활동가를 도쿄활동가들이 다 걱정하고 있던데

 

저도 참 많이 걱정되네요.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잘 활동하고

무사히 꼭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서울에서 연행자 석방요구 행동을 해주신 분들

너무 멋있구요. 언젠가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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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된 친구들을 석방하라 추천
2008년 7월 5일 삿포로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반대 집회에서 부당하게 연행된 일본인 활동가 3인의 즉각 석방과 경찰폭력 중단을 위한 공동 행동이 7월 12일 토요일에 일본 주요 도시와 서울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열렸습니다.
서울에서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미리 피켓을 준비하여 우리의 요구조건을 알렸습니다.
비가 하루종일 내렸지만 약 2만 여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우리들은 원천봉쇄된 서울시청을 돌아 시내 행진을 했습니다.
앞으로 일본 경찰의 폭력에 반대하는 국제 행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G8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가보자
G8, 누가 이기는지 한번 끝까지 해보자!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한번 해보자
이명박, 누가 이기는지 한번 끝까지 가보자!
강제로 연행해간 우리의 친구들을 즉각 석방하라!
강제로 연행해간 우리의 친구들을 즉시 석방하라!
경찰은 닥치고 당장 물러가라!
경찰은 닥치고 당장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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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세상 용의 소감~~ 추천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이 없다.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이 했던 이야기다. 물론 맞는 이야기다. 젊은 시절 난 그렇게 믿고 활동해왔고 많은 것을 고민했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다. 혁명적 사람 없이 혁명적 이론이 없으며 또한 혁명이 없다.

 

그렇기에 난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관계이다.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돈의 관계보다는 사람의 관계를 더 소중히 하는 사회를 우리는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일과 돈보다는 가장 우선인 사람을 바라보아야하지 않을까...

 

언어가 달라도 난 뜻이 같다면, 진심이 같다면..통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그런 점이 좋았다. 아주 힘든 상황속에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사실 난 일본어를 하나도 모른다. 겨우 스미마센, 아리가또, 곤 니찌와, 곰바와,,,정도...

영어 완전 초보다. 에스페란토 더 초보다...

하지만 주눅들지 않았다. 나에게는 나만의 장점인 바디랭귀지와 늘 사람을 빨리 사귈수있는 힘이 있으니까..

 

처음 한두번의 집회에 참석했을때 정말 놀랬다. 이정도 사람밖에 없을줄이야...허걱...

그리고 처음 외국에 온 나로서는 더욱 어색했다. 지독한 길치는 나의 행동반경을 더 좁게 만들었다..한국어로 써여있어도 서울가면 항상 헤매는 나인데....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정말 친절했다. 스미마센.... 한마디에 정말 친절하게 가르쳐 주더군..거리는 깨끗하고 지정된 장소에서만 담배를 필수 있고 여행하는데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일본....

 

그런데 자유주의자인 나에게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부산에서 문화활동을 하시는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일본에서는 몇십년 전부터 욕이 없어졌다. 그 전에는 있었는데...그런데 욕이 없으면 좋을 것같지만 그렇지 않다. 너무 무미건조하고 답답해졌다. 그렇다. 너무 많은 욕이 남무하는 한국이지만 그래도 기분나쁘면 욕이라도 실컷 할 수 있지 않는가....

지하철에서 이상한 사람을 찾기위해 두리번 거리는 일본경찰의 모습에서, 집회장에서 차량위에 올라가 방송하는 일본경찰을 보면서, 집회의 숫자보다 더 많이 몰려와 한사람 한사람 숫자까지 가까이 와서 세는 정보경찰의 모습에서 국민을 주눅들게 만들고 하나의 억압된 질서속에 가두어 두려는 일본정부의 모습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욕구는 늘 억눌려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없으리라...살면서 방귀한번 시원하게 뀌는 속에서 인간의 정을 느낄 수 있으며 나의 실수를 포용해줄 수 있는 이는 또한 다른 사람의 실수를 서로 매꾸어 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다른 형태의 집회분위기와 너무 다른 정파의 모습들 속에서 그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보다는 분절된 개개인의 모습이 아쉬웠다. 가령 집회때 전체적으로 모이는 것은 몇번 되지 않았다. 캠프도 좁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넓은 장소에서 3개의 캠프를 운영하였으며 그 캠프 또한 이틀동안 각기 행동을 하였으며 겨우 마지막날에서 같은, 그것도 절반만 같은 행동을 하였다.

 

일본의 활동가 모...상이 그렇게 말하더군. 자신이 대학때 정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선배에게 맞았다고.

정파가 아닌 종파의 극단적인 모습에 안따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한국은 그렇게 죽일듯 싸워도 한 자리에서 함께 싸우는 경우가 참 많지않는가...

 

여러현장에서 많은 부분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행진을 하면서 사운드 데모는 참 보기 좋았지만 집회의 분위기가 하나의 지점으로 가끔 한번씩은 모였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지점으로 한 목소리로 함께 낼때는 내고, 또 자유롭게 할때는 자유롭게 하고.....

 

쓰고보니 너무 나쁜점만 이야기 했나?? ---ㅋㅋ

이것 하나는 분명하게 한국에서도 지켰으면 좋은 점 하나...

물론 이것도 나쁜 점도 있겠지만..집회 시작 시간 하나는 정확하게 지킨다는 것..다만 행진시간까지 너무 지나치게 지키는 것은 너무하더구만~~

 

그리고 집회에서 나이 많은 연로? 한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모습, 그리고 전혀 권위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한국의 자리만 차지하려고 하는 노땅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늘 일반 활동가들 속에서 함께 했고 작은 부분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늘 열정적인 그들에게서 운동의 큰 무게감과 역사를 느낄 수 있수 있었다.

 

추신)

한국에서 넘어온 그리고 처음 본 친구들 고생하셨습니다. 언제 귀국할지는 모르겠지만 인연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다시 만날 그 날을 위해...늘 건강하세요..........

일본에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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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된 일본인 활동가 석방촉구 집회 안내 추천
7월 5일 삿포로에서 열린 G8 반대 집회에서 부당하게 강제연행된 3명의 일본인 활동가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국제연대 공동집회가 7월 12일 일본을 비롯해서 세계 여러 곳에서 일제히 열립니다.
일본에서는 삿포로(오도리 공원), 도쿄(코엔지 남쪽 공원), 오사카 등지에서 오후 3시부터 집회가 열립니다.
부당한 경찰의 폭력은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7월 12일 저녁 촛불집회 때 일본인 활동가들의 자유와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저녁 8시에 서울 광화문  근처 촛불집회 하는 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각자 요구사항을 적은 피켓을 들고 오면 좋겠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피켓과 촛불을 들고 사진을 찍고, 그 사진들을 수십 장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하나의 파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간단히 영어나 일본어로 설명을 붙여서 일본과 세계 활동가들에게 뿌리면 좋을 것 같아요.
아래는 인디미디어에 실린 기사입니다.

J12: International call for solidarity actions against G8 repression

 



Free the arrestees! Protest against police state and capitalist summit! Take simultaneous actions on Saturday 12th July (en) (日本語)

Three of our friends were unjustly arrested at the demonstration against the G8 summit on 5th July 2008. One of the arrested (vid,ja) is an indymedia activist who is organizing sound actions and a member of the G8 Media Network. The police used overwhelming violence. For instance, they stopped the sound truck forcefully, three [1] [2] [3] policemen broke the truck window with their clubs, (vid,ja) and they viciously dragged out the driver. This situation was exposed as Japanese police brutality once again, reported by independent media.

While most of the Japanese media coverage focussed on the summit, a homeless activist in Osaka was quietly, unfairly arrested on the 4th. Allegedly, his mobile phone ownership and user had different names. Even though his group from Osaka had planned to come and join the poverty and labour unit of the counter G8 Action Network, they cannot because they must rescue him, just after the liberation of another activist who was also arrested for a tiny bureaucratic mistake last month. All of these bureaucratic errors are unreasonably trivial things. This is obviously suppression of dissent.

We denounce the repression at the 5th July sound demonstration and of the homeless activists (ja) by the police, and demand immediate release of all. On 12th July, simultaneous protest actions will be taken at 3pm (GMT+9) in Sapporo, Tokyo, Osaka, etc. against police capitalism. We appeal for international solidarity! Take action simultaneously! Protest against unjust arrests, police violence and the capitalist summit.

July5th Relief Association for Sapporo Sound Demonstration (ja) (j5solidarity (at) riseup.net), in solidarity with Indymedia Japan.

VIDEO: cameraman arrested [file] | policemen smash window [file] | Indymedia activist arrested/Declare Independence
STATEMENTS: international activists | Lawyers (WATCH) | No Vox   G8 LINKS
G8 MEDIA: G8 Media Network [video] | No-G8 | Alt-G8 | IMC Japan | Teiko (ru) | J5 Solidarity (ja)

 

Protest statement against J5 police suppression / 7・5弾圧抗議声明(日本語)

One of the arrested is ALSO an indymedia activist, PROTEST!

2008/07/08(火) 14:28

Though the peacewalk was permitted to include a sound demonstration where some people get on the loading platform of the track for manipulating sound systems, four people were arrested in the situation where riot police and secret officers were mixed together for an attack on the demonstration. The Challenge the G8 Summit, "Peacewalk of 10,000" was done in Sapporo City on July 5. Various people participated in the rally held in Odori Park, and the walk became large-scale, eventually reaching 5,000 people.

However, with extraordinary violence, police charged the sound demonstration in the peacewalk where people gathered around music being played from the loading platform of a truck built up with sound systems. Though the peacewalk was permitted to include a sound demonstration where some people get on the loading platform of the truck for manipulating sound systems, four people were arrested in the situation where riot police and secret officers worked together and attacked the demonstration.

policeman 1 breaks window policeman 2 breaks window policeman 3 breaks window

The police tried to justify their violence, that concentrated on the sound demonstration done within the limits of the officially accepted application to demonstrate, with the charges of "Violation of the Road Traffic Law", "Violation of the Sapporo City demonstration ordinance", and "crime of obstructing the performance of official duty". The arrestees are just DJs playing or driving the truck, so they have no reason to be arrested. The Reuters camera person was accused of kicking the police, but media related personnel, one of eyewitnesses, deny it.

We appeal for international solidarity in denouncing the repression at the 5th July sound demonstration and of the homeless activists (ja) by the police, and in demanding immediate release of all. On 12th July, simultaneous protest actions will be taken at 3pm (GMT+9) in Sapporo, Tokyo, Osaka, etc. against police capitalism. Take action simultaneously! Protest against unjust arrests, police violence and the capitalist summit. Thank you to the network of Anti-G8 protesters from various autonomous groups and collectives who already held a silent protest in front of the Japanese Embassy in Manila, Tuesday noon 8th July, by unfurling banners denouncing police violence and corporate free trade at the G8 Summ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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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だいま~!!!-켄짱의 후기1
켄짱 잘 다녀왔습니다...
후기예요^ ^
스크롤의 압박 장난 아니니까 각오하시고 클릭하셔야 해요...
기사는 사진하고 같이 간단하게 해서 따로 정리해보려고요...

도쿄에서의 집회를 경험하고 고민했던 것은 일본에서의 투쟁은 일단, 일본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서의 내가 그곳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가...였어요...

폴리스라인을 넘는 것과 법이 정해놓은 질서에 따라가는 것과 관련된 여러가지 고민들은 이미 한국에서도 계속 되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경찰국가인 일본에서 더 깊어졌습니다...내가 이곳에 온 목적, 내가 이곳에서 해야하는 일, 나의 액션과 일본행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일단,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G8을 막기 위해 무슨 짓을 하든지 그들은 모이고야 말았고 매번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는다는 것이에요...

일본의 액션을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것은...무엇보다도 G8의 의미와 왜 반대해야하는지를 삿포로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 그리고 일본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무리하게 현지 활동가들의 연행을 감수하고서까지 액션을 하는 것은 현지의 지속적인 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나름의 선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어쨌거나 나는 잠시 여기에서 액션을 하다 돌아갈, 웬만해서는 연행되지 않을 외국인의 입장이니까요.

어쨌거나 일본에 있는 내내 숨이 막힐 것 같은 법의 굴레 속에서 몸부림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하고 힘겨운 삶을 마땅히 살아내고 있는 일본의 활동가들을 만났고 마음에 담았습니다.

한 꼬뮤니스트이면서 생디칼리스트인 활동가와 삿포로에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네요...그 친구는 자신은 꼬뮤니스트고 생디칼리스트이지만 아나키즘이든 소셜리즘이든 맑시즘이든 그런 것들은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어요.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친구들이고 동료들이지 이념이 아니다...
우스갯소리고 그럼 캐피탈리스트도 상관없냐고 물었는데...그친구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요...진지하고 슬픈 눈빛으로 나의 농담에 진지하게 답해줬어요...
주머니에 있던 돈을 전부 꺼내보이면서 이것이 나의 전 재산이다. 그래서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다녀야 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캐피탈리즘이다. 정말 엿같다. 자신은 건물을 부수거나 만드는 일을 하는데 대기업의 일이고 캐피탈리스트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만 한다.
진심으로 그친구는 괴로워 했어요...고뇌하는 그 친구와 맞부딪히면서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서 그 친구는 이 말을 덧붙였지요...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떠한 이념과 주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なにを やるか?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지금을 살아보자고 고민하고 있는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말이었어요...
일본에서의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힘들어하고 있던 상황에서 그 말은 큰 힘이 되었어요...지금을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도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계속 고민하겠지요...

스크롤 압박 꽤 쎄니까...긴장하시고...싫으신 분은 안읽으셔도 돼요...
쓰다보니까 궁시렁 궁시렁 길어져서...2편까지 가야될 것 같아요...

7월 5일까지...


디온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생애 첫 일본여행이고...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들뜰 뻔 했지만 검열과 억류의 소식들이 속속 들어오면서...긴장되기 시작했다...
처음 비행기에서 내려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생각보다 더 끔찍한 지문날인 때문이었다...
사진까지 찍어대던 그 입국장에서...컴퓨터와 카메라를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지만...일단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참아야만하는 입국자의 입장이 답답해졌다...

직업-학생, 방문목적-친지방문, 아라시 콘서트

물어보는 것도 없이 그냥 지문과 사진만 찍고 바로 통과...
괜히 겁먹었군...하고 나오는데 불쑥 팔랑팔랑이 나타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모**상의 집에서 보낸 도쿄의 시간들은 그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처음 집에 들어섰을 때 나를 맞이하던 그 수많은 검고 작은 생명체들 때문에 과연 내가 여기서 생활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시부야에서의 첫 시위.
내가 들어왔던 날, 사운드데모가 있었다고 했다...한국에서 간 고양이들은 그 사운드데모가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길바닥이 생각나서 모두가 함께 왔으면 좋았을텐데...아쉬움을 달래며 집회를 시작했다...
놀랐던 것은 길고 긴 연대발언, 그 중에 고양이들의 발언이 제일 길었지만...어쨌거나 한국에서도 연대발언을 듣지 않던 나였기 때문에 참 힘들었다...
카라님의 말대로 거리행진은 정말 정말 준법적으로 이루어졌고 경찰들은 쉴새없이 미안하다며 떠들어댔다. 아아...일본은 이런 분위기구나...

끝나고 오***상이 우리를 초대해주어서 샤워할 수 있는 큰 도움을 받았다...
도쿄에서 만난 활동가들 모두 자신의 삶을 사르고 있었고 잠깐이나마 찾아온 우리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다...

영어는 전혀 되지 않고 좃또 스꼬시 니홍고만 가능한 나 때문에 모두 애를 먹었다...그래도 영어공부할 생각이 들지 않는 나 자신이 뜨악했다...

삿포로로 들어가는 날.
팔랑팔랑이 국내에서의 이동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일본인들의 말을 전해왔다.
2,000엔의 우치와가 짐이 되어버릴 줄이야...

삿포로에 도착해서 훗카이도상을 만났고...짐을 풀었다.
치토세에서 나오면서 확인한 경찰병력만 해도 광화문에 깔렸던 애들만큼 되었던 것 같다...치토세로 들어가는 길목은 이중 삼중의 검문과 검색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아직 며칠이나 더 남았는데도...아마도 2MB가 들어올 때 마중 나오는 것을 불가능하지 않을까...바로 연행?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자전거를 빌리고 일정들을 각자 계획했다...
주로 언어가 약해서 서로 절충해야하는 세명이 함께 움직였다...
자전거로 한시간 이상의 거리를 매일 왕복하면서...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누비는 것을 떠올려보다 바로 포기...
도쿄와는 비교도 안되게 많이 깔려있는 경찰들...이건 뭐 일본의 모든 경찰들이 다 온거야?
셋은 컨벌전 센터를 기점으로 움직였는데 일단 언어로 인한 의사소통의 문제와 우리가 접촉할 수 있는 활동가들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거기서 일정을 시작했다...그곳에서 만난 활동가들과 숙소에서 만난 활동가들과 계속해서 함께 생활했다...

7월 3일.
저녁에 있는 펑크밴드의 공연에 참석했다. 아나키의 깃발을 펄럭이며 그들은 NO G8과 반자본주의를 외치며 열광했다. 과격한 슬래밍과 액션들 속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도 음악과 함께 소통하고 연대했다. 유럽 활동가들의 냄새 때문에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슬래밍할 때 주로 닿았던 오른쪽 팔에 냄새가 배였을 정도...) 7월 5일에 오오도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7월 4일.
집회가 있었다. 이날의 집회는 크게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데 이유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환영회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노래를 개사해서 경찰은 물러가라, G8은 물러가라 이런 노래들을 일본어로 불렀다. 근데 이게 5일인지 4일인지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다. 아...4일인가 보다. 솔직히 그자리가 어쩐지 불편해서...텔레비전타워 아래의 벤치에서 오***상과 유**상, 그리고 누구였더라...아무튼 다섯명이 이야기와 맥주를 나누었다...오***상은 내가 도쿄에서 술을 잘 못한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포카리를 뽑아주었다. 포카리가 일본의 음료수라는 것을 알려주면서...미국게 아니었단 말이지...

7월 5일.
데모는 세그룹으로 나뉘어졌고 그룹마다 경찰이 둘러싸 그룹간의 소통조차 쉽지 않은 상황 속에 데모가 시작됐다...아나키의 검은 깃발들이 휘날리고 그 속에 함께 출발했다...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첫그룹인 사운드데모 그룹. 주로 젊은 일본 활동가들과 외국인 활동가들이 많은 그룹. 그 뒤의 그룹의 상황은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엔 뒤쪽의 밴드들과 함께 시작했지만 어느새 사운드트럭 바로 뒤로 와있었다...
신나는 리듬과 구호에 자연스럽게 몸은 들썩이고 목소리는 높아져 갔다...
검은 깃발 가운데 반가운 깃발, 에스페란토 아나키스트의 깃발도 함께 휘날리고 있었다...고양이 분장을 하고 등에 구호를 달고 손에 방울을 들고 춤도 아니고 스텝도 아닌 동작을 하며 신나게 행진했다. 경찰의 채증이 너무 심해서 중간에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지만...
경찰들은 땀을 뻘뻘흘리면서 일본인 활동가들이 경찰들을 약올리는 멘트에 자기들도 웃기도하고 대꾸도 하면서 함께 행진했다...그 속에 섞여서 나도 들고 있던 구호가 적힌 부채로 부쳐주기도 하면서...
이런 시간들도 잠깐, 한 외국인 활동가가 가면을 쓰고 사운드트럭에 올라타자마자 갑자기 경찰이 치고 들어왔다...영문도 모르고 일단 트럭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긴장했고 위에 있던 사람들은 다 뛰어 내려왔다...갑자기 들어온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게 됐고 찍고 있던 캠코더를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나중에 영상을 보면...)
순식간에 상황은 정리되고 다시 행진이 시작됐는데...이때는 연행된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없었던 듯하다...
트럭 뒤에 손을 올리거나 기대거나 하면서 다시 행진이 시작됐지만 경찰들이 갑자기 쳤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얼마나 행진했을까...갑자기 경찰이 다시 트럭을 쳤는데...트럭의 앞유리를 깨고 운전수를 끌어내려고 하고 있었다...내 기억에는 이때 경찰이 트럭의 앞부분을 치면서 동시에 트럭의 뒤와 위로 진입했다...눈 앞에서 앞좌석이 엉망이 되고 트럭 위의 DJ들이 연행되고 트럭을 빼앗겼다...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やめろ!!!라는 고함과 욕설, 그리고 트럭 안에 실려있던 깃발과 물건들을 경찰의 눈을 피해 끌어내고 경찰 손에서 빼앗는 것 뿐이었다...도쿄의 한 사무실 주소가 적힌 택배물, 여러 단체의 깃발들, 활동가의 가방...이런 것들을 트럭 안의 깃대로 끌어내고 막으려는 경찰과 신경전을 벌이고...
마음 같아서는 뛰쳐올라가고 싶었지만...우리가 집회에서 벌인 난동은 그대로 채증되어 남아있는 일본 활동가들을 연행하는데 쓰인다는 팔랑팔랑의 말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액션들, 이를테면 유카타를 입고 고양이 분장이라든지는 시간의 이유로, 또 바닥에 글씨를 쓰는 액션들은 불법이라는 리걸팀의 충고로, 경찰의 가슴에 꽃을 다는 것은 자칫 위험해지거나 불리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한 활동가의 충고로 아예 시도도 못했다. 가지고 갔던 종이꽃비폭죽을 긴장의 순간에 뿌려보았지만 오히려 경찰의 화만 돋군듯 하기도 했고...(화약이 일단 터지니까...이건 불법이 아니라는 리걸팀의 조언으로 실행에 옮겼다)
경찰과의 신경전을 뒤쪽에서 벌이고 있던 두명은 일본의 이 상황 자체가...(도쿄에서부터) 바닥부터 끓어올라 부글부글대고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가운데 연행은 진행됐고 일본어로 외치다 열받은 나는 한국에서도 쓰지 않는 쌍욕들을 해대기 시작했다...(나중에 확인해보니 울면서 욕해댄게 영상에 다 녹음되어 있어서...찍히지 않은게 어찌나 다행인지)
말레이시아에서 온 활동가 한명이 흥분해서 뛰어들었다 경찰에 포위되어 있던 것을 다**상이 끌어내어왔다. 연행된 운전수는 다**상의 친구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의 과격한 진압을 항의하던 로이터의 현지 카메라맨이 함께 연행됐다고 한다...총 4명 연행.
차 안에 들어있던 기기들, 들어내려다 경찰의 제지로 포기하고 결국 트럭주변에서 항의하다 다시 행진을 시작했다...한국이라면 납득할 수 없는 상황.
당시에는 그 누구도 연행의 이유를 알지 못했고 경찰쪽에서도 연행사유를 밝히지 않았다...행진을 마무리하고 모두 다시 중앙경찰서로 항의방문을 했다...
여기서도 연행의 위험 때문에 진입은 꿈도 못꾸고 도로 건너편에서 항의를 계속했다...유럽의 활동가들은 입에 NOG8스티커를 붙이고 침묵 농성을 할 것을 제안했지만 일본의 활동가들은 계속해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오오도리파크로 돌아가야한다고 말했다...그 과정에서 유럽의 활동가들과 약간의 의견마찰이 있는 듯했다...
외국인 활동가들은 일본의 이 상황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워 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아마도 연행된 사람들의 친구인 일본의 젊은 활동가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표정은 이미 충분히 끔찍하게 일그러져있었고 분노에 차 있었다.
함께 있던 일본인 활동가가 일본의 법적 상황을 설명해줬고 그 중에 만난 디온님과 희선님도 그런 상황들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삿포로에서 캠프로 쓰고 있는 토우베츠에서 자체적으로 미디어컨트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우리쪽에서도 조심하게 되었다.
일본은 영장 없이 최장 23일까지 구금이 가능하고 심문하는 동안 변호사를 제외한 일체의 면회가 금지된다. 검사의 허가만 있으면 경찰쪽에서 구금기간을 계속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되는 기간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같이 연행된 사람들끼리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나게 힘든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이렇게 연행되는 것 자체가 엄청난 타격을 주고 또, 사회생활에서도 큰 곤란을 겪게 된다고 한다.
집회에서 일본경찰의 채증은 정말 가공할만한데 충돌이 있으면 경찰쪽에서 캠코더와 디카가 사방에서 십수대가 올라와 찍어댄다. 깃발로 가려도 소용이 없다. 정말 사방팔방에서 찍어댄다. 마치 한국에서 기자들과 시민들이 찍는 것을 방불케할 정도로.
이렇게 채증한 것들을 토대로 연행자들을 심문하는데 어느게 유도심문이고 어느게 증거자료를 가지고 심문하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고 한다. 도쿄에서는 일본 경찰들이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 한국보다 훨씬 영악하고 사악했다.

모든 게 끝나고 저녁에 도*님이 준비한 레이저 태깅이 시작됐다.
현지 기기의 문제와 지형적인 상황으로 좀 지연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6일이 캠프로 출발하는 날.
올나이트 공연에 원래 참여할 생각이었지만 캠프로 가야할 짐을 꾸려야하고 또 낮의 상황으로 체력이 소진되어 있었기 때문에 캠프에서의 액션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토우베츠에서는 여러가지 회의들과 논의들이 연일 계속되는 분위기였는데 내가 있는 숙소에서는 주로 머무는 활동가들과의 교류가 중심이 되었다.
원래는 토요라캠프로 갈 예정이었지만 훗카이도상의 제안으로 닷테캠프로 네명의 캠프를 변경했다. 팔랑팔랑은 예정대로 토요라로 가기로 했다.

5일까지의 상황들을 보내면서 캠프에서의 집회나 액션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윈저는 커녕 토야코 근처도 못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앞섰다. 일단 소우베츠와 닷테는 집회허가가 났지만 토요라는 허가가 없는 상황이라 어떤 문제가 생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 게다가 유럽의 활동가들이 주로 토요라로 가기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도 감돌았다.




하네다예요...

지금 하네다 공항이에요...

어제 오늘 완전히 삽질만 잔뜩하고...

삿포로에서 하루 더있어도 되는데...괜히 요꼬소 요금을 끊어버려서 어제는 민박비까지...써버리고 말았어요...

토무와 세균맨이 입국이 일요일이라...요코하마에 있는 단체를 방문해야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쪽에서 일정을 잡아버려서 아무튼...일요일에 들어와서 그 사진들과 영상들까지 받아서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길바닥 다음주네요...

 

일본 활동가들에게 받은 이메일로 한국의 상황과 감사메일을 보내야 되는데...

일본어로 보내야 돼서 걱정이 태산...ㅠ ㅠ

게다가 훗카이도상에게는...덥썩 에스페란토를 공부해서 꼭 에스페란토 메일을 보내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말아서...ㅠ ㅠ

어쨌든...

 

오늘 마지막으로 토무와 세균맨을 만나서 시간 되는대로 후기를 작성해서 올려달라고 이야기 했고... 욘사마는...아무래도 아직 삿포로라...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훗카이도상의 집에서 인터넷이 되니까...

훗카이도상의 집으로 전화를 해서 말을 해야겠어요...

 

활동보고와 후기는 집에 가서...천천히 올릴게요...

 

한국에서 봐요



[프레시안] G8 "바이오연료, 비식용작물로 만들자" 추천
G8 "바이오연료, 비식용작물로 만들자"
CSM "유럽, 바이오연료 증산 목표 후퇴"
2008-07-10 오후 5:46:00



전세계적인 식량가격 폭등의 주범이 바이오연료 산업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에 '제2세대 바이오연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관련 기사:"바이오연료 산업은 사기극" )

제2세대 바이오연료란 옥수수와 콩, 식물기름 등 식용가능한 작물로 만드는 바이오연료와 달리, 식용이 불가능한 작물이나 식용작물에서 줄기나 짚 등 사람이 먹지 않는 부위로 만드는 바이오연료를 말한다. 바이오연료의 원료로 사용 가능한 대표적인 비식용작물로는 자트로파가 꼽힌다. 자트로파는 아프리카 등 열대지방에서 저절로 자라거나 특별한 영농기술 없이 식용작물을 재배할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주요 8개국(G8) 정상들도 일본에서 열린 이번 정상회의에서 '제2세대 바이오연료'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하지만 제2세대 바이오연료 생산이 산업화되기까지는 기술개발 등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과 특히 미국이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 일본에서 열린 G8 정상회의를 겨냥해 한 시위자가 옥수수 복장을 한 채 바이오연료 산업에 항의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유럽의 정치적 흐름이 바이오연료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크리스천사이언스모티터(GSM)>는 최근 "유럽에서는 바이오연료 증산 목표에서 후퇴하고 있다"고 전해 주목된다.

당초 유럽연합(EU) 27개국은 자동차연료에 바이오디젤 등 바이오연료 혼합비율을 현행 2.5%에서 2020년 10%까지 높이는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유럽의회는 올해말 이 목표치를 '2015년 경 4%'로 낮추는 안건을 표결에 붙일 계획이다.

환경단체 '지구의 친구들'의 에이드리언 벱은 CSM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정치적 흐름이 바이오연료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소중한 땅을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작물을 기르기 위해 사용한다는 발상이 미친 짓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깨닫고 있다. 식용작물로 바이오연료를 만드는 움직임이 급격하게 후퇴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은 옥수수와 사탕수수로 에탄올을 주로 만드는 미국과 달리 식물기름으로 바이오디젤을 주로 생산해 왔다. 미국은 전체 옥수수의 3분의 1을 에탄올에, EU는 식물기름의 50%를 바이오디젤 생산에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을 명분으로 한 바이오연료는 그 자체는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지만, 생산과정에서 오히려 온실가스가 더 많이 배출된다는 연구보고서가 잇따르고, 식량가격 폭등을 불러온 주범이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부시 행정부, 세계은행 보고서 폭로로 곤혹

특히 지난 4일 영국의 <가디언>이 폭로한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바이오연료가 식량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3%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왔으나, 세계은행이 은폐해온 이 보고서는 "바이오연료가 식량 값 폭등에 75%의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이 보고서 내용을 전하면서 "세계은행이 지난 4월 이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부시 미 대통령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 세계은행 고위관계자의 말까지 덧붙였다. 현재 세계은행 총재 로버트 졸릭은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사실상 부시 대통령이 지명해 자리에 앉힌 인물이다.

부시 행정부가 바이오연료 산업에 정부보조금까지 지원하며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거대 식량기업들을 살찌우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떨치기 힘들 게 하는 정황이다.


이승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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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인 소감들 추천
6월 29일 일요일에 일본으로 떠나 7월 8일, 그저께 서울로 돌아왔다.

하루가 3-4일은 되는 듯한 빡빡한 일정들을 소화하면서 생에 첫 일본행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은 금새 깨져버렸지만,
동경에서의 발표, 그리고 회담장 근처에서의 회담반대 투쟁들을 조직하는 과정들은
그만큼의 밀도와 강도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열흘간의 일정을 대충 정리하면6월 29일 도쿄에 도착,
7월 1일 G8 반대 포럼에서 대추리 투쟁에 대한 발표,
그리고 7월 2일 훗카이도로 이동해 포럼에 참석,
7월 4일 토배츠 캠프,
7월 5일 삿뽀로 시내에서의 큰 집회,
7월 6일부터 8일까지 소베츠 캠프에서의 회의와 대안마을 구성 등이 될 것이지만
좋은 사람들, 다양한 운동 문화들을 접하고, 혼자 고민하던 몇몇 주제들에 대해
내 나름의 고비들을 넘었다는 생각도 든다.
돌아오자마자 빨래들을 하고, 텐트와 짐들을 정비하고
연구실에 나와 사람들과 세미나도 하고 이야기 봇다리를 풀고 있는데
아직 여독이 다 풀리지 않아, 계속 잠만 쏟아진다.
책도 잘 안 읽히고.그래도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써야 할 것들.

1. 일본에서 테러리스트 되기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미리 출발한 연구원들과 활동가들이 일본 공항에서 억류되거나 추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헐. 도대체 이진경, 고병권 선생님은 왜 잡힌 것일까.
8시간이 넘도록 공항에 잡혀 심문을 받은 이야기를 듣고,
나와 동행인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서 촛불집회 때 받은 찌라시들을 함께 들고 촛불시위를 하자고 제안하려 했기 때문에,
김포공항에까지 찌라시와 자료들을 들고 갔지만,
세관검사 때 G8관련 문서가 발각되면 저렇게
억류, 혹은 추방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 때문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공항에서 연구실로 다시 자료를 반송시켜버리고.

그리고 일본행. 일본 공항에서는 감시와 검문이 삼엄했다.
너무나 친절하게 얼굴 사진에, 지문까지 받아내는 저들. 배알이 꼴렸지만 어쩌랴.
철저히 관광객 모드로 이 모든 굴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마지막 세관검사를 할 때, 우리들의 짐이 관광객치고는 너무 컸던지라
그 직원이 질문을 던졌다. 산에 가시오? 후지산에?
몇 마디로 대충 때워 넘겼는데, 가방 보여달라고 하더라...
자료들 반송시키길 잘 했다... 결국 무사 통과.
밖에서는 마중나온 친구가 거의 울듯이 반가워했고, 억류될까봐 많이들 걱정했다고 했다.

어쨌든 이렇게 들어가는 일부터가 일이었다.
사방에 경찰들이 군데군데 있고.
그래, 우리 테러리스트다. G8반대하러 우리가 왔삼. 속으로 외치며
어정쩡하게 관광객 행세를 했다. ㅡ,.ㅡ;;

삿뽀로로 갈 때에도 큰 배낭과 텐트 때문에 의심받을까 살짝 조마조마 하였지만
잘 통과.
삿뽀로에서 토배츠 캠프 갈 때, 여경들이 따라붙었다는 것인데
그냥 무시해줌으로써 이 역시 통과.
근데 너무 웃겼던 것은,
캠프장 근처 역에서 내려서 둘러보는데,
개찰구 앞에 흰 수트를 입은 한 사내가 수첩을 들고 뭔가를 적더라는 것이었다.
아니, 저건 명백한 정보과 형사.
너무도 드러나게 뭔가를 적고, 우리 일행을 따라와 사람들을 쳐다보는데, 약간 어이가 없었다고나 할까, 귀여웠다고나 할까.
일본 사람들은 그런 형사들에게 가서 따지거나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자기네 일들을 하더라는 것도 약간 놀라운 모습.
일본의 시위대도, 그리고 경찰들도
협상범위 이외의 것을 시도하거나 경험해본 적이 너무도 오래되었거나,
그런 적이 없는 듯 보였다.
다른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이 조금 과격한 직접행동을 제안하고
그런 활동을 하려할 때 일본 활동가나 조직가들이 낯설어하고 당황스러워하는 모습들에서
그냥 유추할 뿐이긴 하지만.

가장 큰 집회였던 삿뽀로 시내에서의 시위 때, 찌라시를 높은 빌딩에서 뿌려보고자 했으나
일본 활동가들인 한 할아버지뻘 아저씨께서는
그건 일리걸 하다.. 불법이다. 너무 위험하다, 연행될거다, 걱정된다 했었는데
내가 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재밌을 거다 했지만, 사방에서 말리는 모습들.
물론 준비도 부족하긴 했지만, 상황 자체가 당최 적응이 되지 않았었다.
이후 법적인 내용을 알고 나서 그들의 반응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지만.
일본인의 경우 한 번 연행되면 최대 23일까지 구금이 가능하고,
그 사이에 변호사 외에 접견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48시간 내에, 그것도 하루 3번까지 외부인과의 면회가 가능한 반면
일본에서는 일단 잡히면 23일동안 외부와 완전히 고립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거의, 집회 시위의 자유는 엄따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니 이후에도 일본 조직자와 시위자들은 계속 경찰의 허가 유무에 따라 활동을 제한하게 되었고, 다른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이 이에 불만을 품고 언쟁을 하기도 했다.
연행의 위험성이 커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시위 조직자들이 내부검열하는 상황이 되니
일본이 경찰국가라는 말이 실감이 갔다.
한국에서 온 한 미디어 활동가의 말,
“한국의 집시법이 자유롭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일본에는 다시 오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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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짱이에요...

양군님 사진과 기사와 동영상은 한국에서 모두의 것을 취합해서 정리해서 올릴게요...

여기선 인터넷이 느려서 안되겠어요...

제가 정리기사를 쓰기로 했으니까 정리해서 올릴게요...

지금 도쿄의 민박집인데...훗카이도에서 나오기 싫어서 진짜 슬펐어요...

일본에서 만났던 활동가들과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다시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왔어요...완전 짧은 일본어를 이해해준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캠프에서는 동영상을 찍지 못해서...

닷테와 소우베츠 캠프가 행진했던 동영상은 일본의 활동가분께 한번 부탁드려보려고요...주로 5일 행진 중심으로 영상이 있는데...

두번의 연행상황이 다 담겨있어요...그렇지만 경찰과 트럭뒤에서 몸싸움 하느라 바닥이랑 목소리만 녹음되어 있어서...대략 난감한 상황이에요...그땐 미처 캠코더를 신경쓰질 못해서요...갑자기 치고 들어왔거든요...

캠프에서의 행진도...

윈저호텔 근처도 못가고...이틀은 안개와 구름 때문에 아예 호텔이 안보이고...

어제는 겨우 윤곽만 보이더라고요...

진짜...분통이 터져서...

 

캠프에서의 행진에서 저는 3일동안 에스페란토 헬멧을 쓰고 행진했어요...

나중에 그 헬멧을 선물로 받았는데...

아마도 보물 1호가 될 듯해요...

 

어제 밤에는 같은 캠프에 있었던 오사카와 교토의 활동가들과 여성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어요...전 영어가 안돼서 주로 일본활동가들하고만 대화를...

 

오늘 치토세 공항에서 모두 함께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는데...

눈물이 나서 기둥 뒤로 숨어버렸어요...

티켓을 찢어버리고 싶은 정도로 오기 싫더라고요...

 

아마도 이번 일본에서의 시간들은 지금까지 저에게 있어 최고의 순간들이 아닐까 싶어요...앞으로 이런 시간들을 더욱 많이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그리고 쏭님이 집회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신나게 즐길 수 있었음 좋겠다고 하셨었는데...사운드데모가 그랬어요...망할 케사츠 오마와리들이 다 빼앗아가버려서 결국 중간에 멈춰버렸지만...정말 좋았어요...

우리도 트럭이 필요할 거 같은데...ㅋㅋ

 

아무튼...자세한 것은 다시 정리해서 올릴게요...

 

모두들 보고 싶어요~~!!



Water Cannons, Candlelight Vigils and Rebellion in the Streets 추천
http://www.alternet.org/blogs/peek/89425/

G8 Dispatches: Water Cannons, Candlelight Vigils and Rebellion in the Streets

Posted by Marina Sitrin and David Solnit and Asha Colazione and Sarah Lazare, AlterNet at 11:22 AM on July 3, 2008.

Citizens of the world are not invited to the G8 meetings in Tokyo, but global civil society is crashing the party.

July 3
(See below for previous dispatches.)

The following is a conversation with South Korean activist Dopehead Zo and the Just Words Collective -- Sarah Lazare, Marina Sitrin, David Solnit and Asha Colazione.

The anti-G8 mobilizations have been bringing together inspiring organizers and activists from all over the world. Japanese precarious temp workers, calling themselves "Freeters", South Korean anti-military base organizers, Spanish media activists, Farm workers from Via Campesina, Australian human rights activists, German direct action organizers, and many others from North America, Asia, and Europe, have all come together to share stories, struggles, ideas, and to network and plan actions. At The Counter G8 International Forum in Tokyo, we met one organizer whose story is so compelling we needed to share it as soon as possible. The following is a selected transcription of our conversation.

Dopehead Zo is an activist who has been heavily involved in the South Korean demonstrations against the US beef import deals. Beginning in late May 2008, mass protests have rocked Seoul and other cities in South Korea, bringing hundreds of thousands, and at times over a million protesters together into the streets. These are some of the biggest mobilizations South Korea has seen for over two decades. These are both mass demonstrations and places for the creation of new social relationships between people. As one flyer put out by activists there reads: "Candlelight Vigils Evolving to a Street Rebellion Calling for Direct Democracy - We've Got the Power"

At issue is the decision taken by the new South Korean president - Lee Seok-haeng - to ease restrictions against US beef imports, most of which had been banned in 2003 after mad cow disease was discovered in the United States. The ban was a blow to the US beef industry, as South Korea was its third largest importer of US beef. Critics see the lifting of the ban as an effort to appease the United States at the expense of South Korean public health, and the trade deal has awakened broader feelings of discontent with the government's pursuit of neoliberal reforms and close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The overwhelming public response has virtually paralyzed Lee Seok-haeng's government and has caused him to start backpedaling on the agreement. Meanwhile, protests, rallies, and candlelight vigils continue to fill the streets of Seoul. Perhaps other forms of democracy are on the people's agenda.

Dopehead Zo spoke with us for hours, sitting on the floor together after the forums of the day had finished. He shared his experience protesting in the streets of Seoul and described a new kind of social movement that is taking form. A movement comprised of, as he calls them, "common people." He describes forms of mass democracy in the streets, and the joy of being together to create new ways of relating to one another. He also explains what all of this has to do with the G8 protests and places it in the context of an overall struggle for social justice.

Q: Can you describe what it is like right now on the streets of Seoul?

A: People are holding candlelight vigils every night, with a minimum of 10,000 people in Seoul and several thousand in other cities. On weekends, we have 50 thousand or 100 thousand people participating. When it began, it was anti-US beef imports by the Korean government. The newly elected, right-wing neoliberal ex CEO South Korean president, wanted to give some good gifts or presents to the US. The first thing the new South Korean president did was to visit the US and beg for a good relationship, and for all kinds of things. Or go to Sarkozy. I hate to mention the president's name. The gate to the US beef industry was the imports of US beef, every part of the cow - spinal cord, intestines, heart - the parts that other people usually don't eat.

I am a vegan myself, but many Koreans cook these parts and then they eat it. According to most calculations, the US beef industry would massively profit from beef imports, and once South Korea opens its markets to beef imports, other Asian countries will do the same. Talks between the two presidents took place in April, and before the talks, the two governments made an agreement and then it became known to the public in early May. As people heard more about the details of the agreement, they realized it was really unfair. Everyone could tell it was for the profit of the US beef industry, not the health of the South Korean people. If mad cow disease is in the US, there is no way to stop it with the import of US beef.

The agreement was really messed up. The general public found out about it and started a candlelight vigil. South Korean people started to pressure the government by taking to the streets every night with candlelight vigils. The government didn't listen to us, of course. At first it was 2000 people then 20,000 then 100,000 ... and then more and more people ... People got angry and took to the street.

Eventually the government listened to it. The pressure got bigger. The Korean government knows how to control the movement people, because the resistance or the movement has been going on for 20 or 30 years, so there is kind of a pattern as to what we do when we do rallies or demonstration. Riot police know how to respond to these situations. But this new candlelight vigil - police do not know what to do. Because when police try to stop the rally, they don't stop. They continuously move to another street. Before, back then, we had one clear target. Let's say it was the US embassy in Seoul or the police headquarters or the presidential residence.

Now, people, common people, who didn't actually know about the free trade agreement before or hadn't heard of neoliberalism, like young couples with a babies, they come out into the streets with their baby in a stroller, or old people come out. So, you can see a whole new demonstrator. And there was no set pattern for when they were blocked by the police. The tactic that police used to block a road so that people cannot go in the path that they want to. In May and June, the people just started to flow, and the police realized they couldn't contain the demonstrators if they used the ways they were used to, so they brought out a new way - water cannons. We haven't seen water cannon for 5 or 10 years.

Q: Water cannon against the candlelight vigils?

A: Yes. Not only water cannons, but batons, shields and physical violence against people like me, with nothing - no weapons, no helmets. They also use fire extinguishers. Tear gas was kind of banned.

Q: What does the fire extinguisher do?

A: You use it and then demonstrators cannot breath so we have to pull back and disperse. The fire extinguisher fills the whole area instantly. We couldn't do anything on the police buses. Some of the direct action we do is that we paint a lot of graffiti on police buses or the streets. At first the police started to arrest people, and beat people, and then it got such bad media coverage because like you said, it was a nonviolent protest, and so then the police responded with civil violence and they were criticized very badly. So then the new strategy that the police started to use was to block the whole area where any protesters could go. The streets of central Seoul became neutralized every night. No traffic at all.

Q: Could you describe a little bit of what it is like in the streets when there are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do they sing together, talk together, are they friends, what does it look like?

A: We try to do everything. I am a singer myself, so I perform three or four nights a week, five or six hours each night. I get exhausted. I sleep all day and then get up again in the morning. People who have never met before talk to each other and start talking about what we should do to make our voices heard. Amazing things have been created, like huge squares or spaces. We cook, we talk, we make a speech, and when we rally, we do that kind of thing too. And we dance.

Q: Can you talk a little more about the dissatisfaction with the relationship to the US and what that might have to do with the G8?

A: The newly elected right wing president had a big wish. They think that the neoliberal way is the only way, and the market is their god. The president is the ex CEO of Hyundai. He thinks that a working economy means that there is construction, buildings being built. Environmental activists think this could be a disaster. It was this new administration that made the general public realize that everything is related in the name of neoliberalism... We are taking this opportunity to spread this ideology - the idea that in order to become a leader we have to receive ideas in the name of neoliberalist policies. In the name of neoliberalism, we have to open our markets. The reason we have to open our Korean markets is that if we don't do it, we will be a backwards country. That is a term that the ruling class loves to use. At first it was the US beef import issue, but then it was the government trying to impose its neoliberal policies at the same time. The president was rushing to realize his dream. The right wing loves him. These policies could affect peasants lives, or farmers lives, or small businesses.

Q: Does it feel like people are talking about that, like in grocery stores or schools?

A: Yes. It's very natural for Korean people to talk about the US beef issue, and once you start talking about US beef the subject becomes linked to other related issues, like opening markets through FTAs [Free Trade Agreements], like with Japan, Korea, the EU, Chile, with the US, with China and privatization, because that is the big plan for the government. The government is promising that we are going to go "forward". That's the major policy.

Q: How are things organized at night? Are there political parties? Unions? How do people know where to go?

A: The internet is amazing. I am really addicted to it. Internet is the main tool that we have been using. Text messages. Since the beginning, it was middle school and high school students who constituted the demonstrators, like ten thousand high school students and middle school students in their uniforms, and what they do is exchange text messages, like two thousand text messages every day to everyone: "tomorrow, 2:00, city hall square, let's go, be there with a candle."

Q: The image that sometimes people have of unions or political parties taking charge is not true?

The candlelight vigil started with normal people and then they realized that no matter what the people did, the government would not listen to them. And then when the crowd began to take more to the streets, that is when the labor unions got involved. KCTU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is a big labor union with about 700,000 union members and university student activists. They wanted to join and then some of them wanted to become the leaders of the movement and wanted to control the flow of the actions or rallies and then the general public started to yell at the wannabe leaders - "who do you think you are to try to control our movement. It is a people's movement, not the movement of the elitist union members". It is for the common people. Every time professional activists try to regulate or suffocate the energy, the vibe, they fail. Miraculously, people succeeded in continuing their actions every day and every day. They didn't get exhausted. Why, because they have never experienced something like this. When we have marches with big unions, it is often really boring, with all of us marching in line and the same old songs being played.

I play new protest songs. Those professional organizers get exhausted. They think it is not fun if you have thirty consecutive days of street demonstrations. But for these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experiencing this, it was fun. Every day they realize something. Some of them even voted for the right wing president, when he said that he would make them all rich. But then they realized it was all lies. Then they got more angry and tried to find ways to make their voices heard.

The presidential residence was protected by a high mountain and armies of police. But then people started to infiltrate those blocs and then later we succeeded in gathering in front of the residential place. We could not do anything three miles near the presidential place. Accidentally on the part of the police bloc, we opened it, then lots of people went through a small hole, and then later, we gathered. It was early in the morning. It was thirty thousand people in early June it was first a large crowd demonstration in front of presidential palace since the people's uprising in 1960.

I have been long-time activist since early 1990s.

Q: Does this feel different?

A: For me, not really different. I have been active in the movement for a long time. I don't have any bad feelings regarding my comrades, but the way we do it is different. I am an anarchist myself, and the political movement in Korea has been influenced mostly by Marxism and the way that they organize.

Q: Do you think anarchism makes more sense to people now?

A: Definitely. Union leaders and organizers have been using their conventional ways of organizing and want to use them on the common people. People feel it is authoritative and don't like it. If you have someone telling you what to do, you say, we don't want that. In that sense, these are conventional movement people who think this new situation is anarchistic. We don't use the term anarchist or anarchy. I can tell the way they do it is anarchistic, but it doesn't matter, the ideology that you give yourself.

The president and the whole government, they are not willing to step down or anything, and the day before I came to Japan, police brutality was really incredible. Now the government and the whole right wing have made up their mind to crush the "violent" uprising. They say it is violent because we take over the streets. The government is using scare tactics - six water cannons at the same time - it is really scary. Fire extinguishers are used and it makes it hard to breath. Participation has been smaller after June 10, the nation wide day of action, when the government started to oppress us really heavily. The ministry of education, for example, sent orders to every school that no students could participate in the candlelight vigils.

Q: What are the demands of the people in the streets?

A: First, renegotiation with the US about beef imports, which the Korean government denied, they said that if we renegotiate, the credit of South Korea will be hurt in the international market. Lots of trade experts pointed out that it was all lies. It would not harm the Korean government if we renegotiate with the US. That is the first demand that we are still asking. The legal process is over, and now Korean importers are inspecting the US beef. The first demand is still in effect.

Second demand: the president publicly apologize or resign. Now it is becoming more and more for the resignation of the government. The whole cabinet offered to resign to the president, but the president did not accept the resignation.

Q: Is there any formal organization of demonstrations?

A: There is a temporary organization of organizations.

The committee of all the organizations has a broadcasting truck with a big speaker, and when the rally begins, the truck plays protest music or they say something. If the police respond and approach the demonstrators, then the committee truck says something. If the common people don't like it, like if the truck says ok, we have to pull back, and then it's just gone, then the people do not leave, they just stay there.

The thing is, nobody knows what's going to happen. For 30 or 40 days, the police didn't do anything and just let the people do whatever in the open space, and then people started to talk together about tactics, "do we use violence or nonviolence?" Every day, some people try to pull down police buses so that we can make our way to the presidential place. Some people yell that harming police property is a violent thing, or that repercussions from mass media will be big. Other people say police presence is violence itself so we should remove it.

There are some really exciting tactics that those organizers have never thought of, like making a styrofoam mountain so that we can cross over the police buses. It is decided in open meetings, every night, in small groups and large groups.

The sandbags - that was an amazing thing we witnessed one week ago - There was a huge construction site three miles away from where we were. Of course we were surrounded by police buses. We were talking about how to deal with this situation, and someone said, "ok, three miles away we have a construction site with huge piles of sand". Someone said, "how are we going to carry huge piles of sand?" We lined people next to each other from the construction site to presidential residence, then they carried sandbags, passing them from each person to each person. After three hours, we piled three huge mountains of sandbags and then we could go over the police buses.

Q: Did you go over?

A: No, because once you get to the roof of the police bus, they hit you with water cannons. Many people got over with their flags. Symbolic resistance.

Q: What about food and water?

A: It's incredible. People just pitch in money. Water, tea, coffee, sushi, kimpa, free every night. You can eat as much as you want. Street cafés open. Like one person drives a truck near the people and says this is a candlelight tea house and anyone can have cup of hot water or tea, and there is a cash jar and anyone can pitch in. For bathrooms we use nearby buildings or bathroom trucks.

Q: What would be your dream scenario?

A: The president steps down, and then, I don't know. I don't have a big dream. If everyone has his or her own small dream and we have our own small dreams and we can think about our way to make our dreams come true ... I don't picture a large model of society. It is created together. It is the kind of thing you can imagine through cooperation. The small group I have been working with is called blood sisters. I sew cotton pads and we sell reusable, washable menstruation pads, with organic cotton.

For the last ten years, I have been working on many issues and things that I think are really important that would affect people's lives. For example, we try to get the word out about the FTA. We have been trying to spread it, we wished that people would know about it, but we couldn't - we couldn't control people's thinking. But then, after the autonomous voluntary movement, people started to figure out everything by themselves. It was really, really amazing. Somehow it was a kind of miracle. Everything we talked about came true - all of a sudden.

vigil

*****

July 1

Four simultaneous marches and rallies took place on July 29th in Tokyo and Sapporo, characterized by vibrant and colorful voices of resistance and a suffocating police presence. The marches in Tokyo weaved through the streets, complete with rolling sound systems blasting protest music. People chanted in various languages, waved flags from around the world, and joyfully displayed banners and puppets exclaiming what they are against as well as what they are for.

Eight puppets with heads of Group of Eight (G8) leaders and bodies of skeletons moved through the crowds. Each held a yellow and red sign with a word such as hunger, global warming, poverty or privatization of resources, to indicate things the G8 is creating with its current policies. At the same time, shimmering yellow birds made of painted cardboard and satiny cloth symbolized freedom, each with a word or drawing of something demonstrators desire in the world, from clean water and air to freedom of expression to real democracy. People brought banners and flags indicating the places and groups they are from, including the CNT in France, the Freeters Union in Japan, and the Wobblies in the US.

The street protests made apparent how little political breathing room the anti-G8 organizers have in which to function. Many hundreds of police flanked the demonstration route, crowding protesters into a thin line occupying less than one lane of traffic, and physically pushing those in the rear, as well as everyone who let more than a few feet of empty space grow in front of them. Hundreds more "public security" forces, a police agency in Japan that can work in an undercover political police capacity, lined the sidewalks and peppered the march, taking photographs, notes, and sometimes even setting up ladders to focus a photo on the face of an organizer.

"All of these tactics are clearly part of an effort to intimidate people and limit our imaginations as to what could be possible in organizing," one participant said. "The feeling on the street is one of being constantly surveyed, and literally being pushed if you get out of line. But despite the repressive tactics, people march and sing. We refuse to allow the intimidation to silence our voices or our bodies."

Repression Against Local and International Activists

As the G8 meeting approaches, the Japanese government is waging an escalating battle of repression and control against Japanese and international grassroots organizations and movements.

Our first indication of the level of political police repression came just after arriving in Japan last week, when we participated in an alternative media seminar in Osaka. A tall, thin man in a suit visited our laid-back guesthouse, asking to see a copy of our passports. Hostels are required to keep a photocopy of each guest's identification, but the manager declined to show them to the plainclothes police agents. They did, however, tell them how long we were staying, as required by Japanese law.

Local Repression

A wave of harassment and arrests of activists and organizers is taking place throughout Japan. Stories proliferate of people being arrested and held for many days under pretenses such as failure to inform the government of an address change, or alleged bicycle traffic violations.

A little over two weeks ago, the police raided a day laborers' union office and arrested a well-known organizer on absurd charges--receiving social benefits several years prior without the correct paperwork. It was one of the incidents that sparked the first riots in Japan since the 1990s in Osaka's low-income day laborer neighborhood of Kamgasaki. During the riots, which spanned several nights, neighborhood day laborers and youth fought to defend their neighborhood from water-canon-wielding riot police.

Four nights ago, an organizer with G8 Action Network briefed a group of international participants. He explained that they expected thousands to participate in the anti-G8 demonstration in Sapporo on the eve of the annual G8 meetings. He shared detailed stories about the excruciating amount of negotiations, permits, and government control they had to navigate to simply publicly express their opposition to the G8. Camps for participants in Sapporo had to be cancelled because police demanded to set up identity checks within the camp. Every demonstration requires a police permit. He told the internationals, many of whom are veterans of mass direct actions in Europe, Asia, North America and Australia, just how little political breathing space there was for anything remotely disobedient. As an organizer, his hands were tied by the politically controlling and repressive government. At a public forum yesterday, plainclothes police moved through the crowd taking notes.

Harassment of Internationals

Many foreign participants in the Counter-G8 International Forums and protests have been harassed and detained. From Hong Kong to Europe to the US, grassroots organizers and intellectuals--such as movement scholar David Graeber--have been held and interrogated for a half-day or more, and allowed to enter the country only after pressure and negotiations by the local legal team. Lisa Fithian, a United for Peace and Justice Steering Committee member and longtime labor and global justice organizer, was detained and questioned for eleven hours in what she describes as "blatant discrimination against global justice activists." She and others have been ordered to leave the country before the G8 meetings are to take place.

"What is the so-called democratic government of Japan so afraid of?" she asked. The authorities told Lisa that she was held because she could not tell them exactly where she would be every day.

Lecturer and policy expert Susan George was detained and questioned for six hours. Activists and organizers from Hong Kong were detained overnight, not receiving basic amenities such as food and beverages. While many of the organizers from Korea are yet to arrive, a number of those who have attempted to enter Japan have already been refused entry.

We Will Not be Intimidated

Each attempt to silence and intimidate local and international activists is being met with organization and resistance by the local organizers of the protests. A new generation of smart, creative, and dedicated young Japanese organizers are building networks in the face of the repression that some say may be the biggest challenge to Japan's elites since the since the militant old "new left" of the 60s and 70s.

Rally

*****

June 27

Like many other foreigners, we arrived in Japan holding stereotypes of Japan as a prosperous country, not one where tens of thousands of people live in the streets. Surprised by the level of visible poverty and homelessness we saw, we realized our assumptions were wrong. The next question was how to write about the issues of homelessness and displacement with relation to the policies of the G8 and 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 Last night the answer to this question appeared.

Under the bright-as-day glow of bustling Shibuya Square, we had the honor of meeting organizers from Miyashita Park. Used for a wide range of activities by the community and activists during the day, Miyashita Park is home to dozens of people by night. But change is on the horizon for the park: it has been sold by the municipality to Nike.

Yup, Nike. The brand name, the sneaker, the swoosh that just does it. Nike has bought the park. It is private now, no longer the domain of the people of the neighborhood. Nike is in the process of building walls to keep out the community, and of course closing it at night so it is no longer anyone's home. Privatization of parks by international corporations, causing more displacement and homelessness - thanks, Nike, for helping us make the connection.

The Japanese economy is characterized by free market trade policies, an overwhelming private sector, low tax rates, and a minimal social safety net. At virtually every bump in the road over the past several decades, from the world oil crisis of 1973 to the bubble burst and economic recession of the 1990s, the Japanese government has responded with aggressive privatization measures. Safety nets for the poor and elderly have been stripped away while public goods and spaces have been sold off to large corporations. Such policies have made Japan the darling of transnational organizations like the G8, WTO, IMF, and World Bank, who claim that Japan's aggressive pursuit of neo-liberal policies have transformed it into a prosperous nation.

Yet, as Japan's bare free market trade policies have increased, so too has the underclass of low-wage precarious workers, underemployed youth, and homeless people. The rise in neo-liberalism has seen a shift towards under and partial employment, especially among young people, and day laborers find it increasingly difficult to get steady work. A staggering 30,000 people live on the streets of Japan, most of whom are single, older men. Not only are they faced with precarious working conditions and diminished welfare programs, but the Japanese government works aggressively to hide them away, forcibly removing them from the parks, sidewalks, and other public spaces where they live. In addition, private developers and corporations run massive work programs which "hire" these same people who have been displaced, to work on job sites where they have to pay for every meal as well as their housing. At the end of a job, workers often have little or no money left, having spent all of it to pay for the meager living conditions they were provided.

In response to these conditions, several communities of homeless people have organized amongst themselves, building tight-knit encampments where people look out for each other, share resources, and fight against government attempts at eviction. In some cases, NGOs have joined in the chorus of voices advocating for the rights of the homeless to maintain their communities.

The organizers we met last night took us to the site of a government "beautification" project. They explained that over the past year, the government has been trying to "clean up" the area around Miyashita Park, commissioning art students to paint the walls beneath a nearby bridge where homeless people sleep. Of course this entailed evicting the residents of the neat row of cardboard boxes that lined the underpass. But homeless organizers fought the eviction and eventually won back their camp.

As we walked under the bridge, we were struck by the orderliness of the cardboard houses, some beautifully decorated by their inhabitants with dangling chimes or painted images. One cardboard house - belonging to a homeless activist - was built out of Nike boxes, with painted yellow stars covering the black swooshes.

Nike Boxes

Behind these houses loomed a government-commissioned mural of the "beautification" attempt: a "cheery," flowered landscape in bright pink and blue hues. The contrast was striking: this was a war of appearances, a struggle over who gets to define the beauty and function of a space.

The G8 protests are fundamentally about how public goods and spaces are used, and who gets to decide. Should land, water, and public space simply be sold off to the highest bidder, or should communities have control over the decisions that affect their lives?

Last night, while we were meeting with the activists who showed us around the homeless encampment, one organizer wrote "No G8" in English and Japanese on a piece of paper. We all looked at it and one woman asked, "What do we want instead of a G8?" After a bit of discussion, the young man pulled out a new piece of paper, and in English and Japanese, wrote: "We are the real G8." Then he changed it to "We are the real G-8 billion." Then, after thinking about it for a few moments longer, he crossed that out and changed it to "We are the real G-infinity."

Real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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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5

We are four friends who just flew across the world for a meeting we were not invited to. Why would we feel compelled to do such a thing? It is exactly because we were not invited to the 2008 Group of Eight (G8) Summit that we feel we must go.

The G8 meetings bring together world superpowers once a year to set global economic, environmental, and political policies. You are invited to this meeting if you are the leader of a rich, powerful country interested in colluding with other governments to consolidate the power of the global wealthy elite. You are not invited if you are a citizen of the world, from either a "rich" or "poor" country, who is interested in building communities based on mutual aid, human needs, and respect for the environment. We think this is a recipe for an unjust world, and we plan to crash their party.

The G8 meetings were conceived in the early 1970s in response to a burgeoning economic recession. Initially just the G6 (consisting of six member states) the meetings brought together world superpowers to talk about how to respond to the crisis and establish economic security for themselves. The summit eventually expanded to include a total of eight member states - the UK, US, France, Russia, Germany, Japan, Italy, Canada, plus the president of the EU, and today the G8 presents itself as a forum for establishing world economic stability and tackling global problems, such as climate change, hunger, and disease, and poverty.

When the richest, most powerful leaders of the world come together, is it really to talk about how to help the poor? And why is it that after every annual meeting, all they ever seem to accomplish is further consolidation of their power and securing of their economic advantage? In reality, the G8 meetings have been a part of a general trend towards international neo-liberal economic policies that privilege corporate interests at the expense of the world's poor. The policies instituted by G8 member states do the exact opposite of the G8's stated "humanitarian" goals; they give "aid packages" that trap the poorest countries into debt while removing social programs. They wage wars and commit military atrocities, from the invasion or Iraq to the funding of Israeli bombers. They maintain the oil and coal-based energy systems that cause climate change. And they perpetuate corporate power at the expense of direct democracy.

But there is another story simultaneously being told--one of resistance, alternative organizing, and people coming together to create a more just society. In response to the G8, as well as other transnational institutions that generate neo-liberal policies, a global resistance movement has blossomed. From Italy to Calgary, Switzerland to Japan, people have come together to try and prevent the G8 from making any more decisions that will adversely affect people's lives. In the most recent meeting of the G8 in Germany, global activists physically blockaded the G8 meeting entrances and set up eco-camps outside of the summit, where they sought to model alternative social structures by providing earth-friendly food and housing for international activists.

Even on our first day of Japan, the area of Kamagasaki in Osaka was witnessing a riot, one of many in the past years, in response to the precariousness of work and survival. All over Japan, homelessness and poverty has been on the increase, especially over the last ten years as the Japanese government has imposed neo-liberal market policies and privatization measures on its population. Just as there has been a rise in homelessness and poverty, there has been a rise in resistance. From the organization of precarious workers to homeless encampments to the expansion of alternative media, people in Japan are fighting back.

The G8 summit is undemocratic at its core, setting policies that affect the world, while denying the input of most of the global population. But alongside the G8 meetings will be a powerful counter-summit, where a diverse gathering of people from around the world will come together to discuss alternatives to this system of hierarchical power and greed. The four of us, the Just Words Collective, will be sending out regular accounts of our experiences in Japan, including interviews with social justice organizers, reports on the anti-G8 actions, and pieces of the discussions on how we might work together to build a bett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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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ged as: g8, japan

The Just Words Collective is a group of four friends who are engaged in various global justice struggles and believe in the power of words and action to chang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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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6 추천
 

2008년 7월 5일, 조용한 발라드 음악과 애틋한 러브스토리의 주요 무대가 되어 왔던 조용한 도시 일본 삿포로에서 반란이 시작되었다. 2008년 7월 7일부터 이 곳에서 열릴 G8정상회담에 반대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내던 시민단체 등 수많은 활동가들이 삿포로의 중심 오도리공원으로 모여들었고 5000명 이상이 집결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오늘의 집회를 위해서 6월말부터 한국인 활동가를 포함한 수많은 외국인 활동가들이 일본으로 집결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전역의 활동가들 또한 G8정상회담기간에 발맞추어 삿포로로 집결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외국인 활동가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입국거부를 당하는 등의 진통을 앓았다. 한국 서울에서 길바닥평화행동 등을 진행하며 G8정상회담 반대목소리를 만들어왔던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여 일본정부의 반인권적 행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가 있다. 이 성명서에서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본정부의 반인권적 행위를 폭로하고 활동가들에 대한 입국거부는 사상의 자유를 공권력으로써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 연대의 틀을 갖춘 이 날의 집회는 평소 일본 집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5000명 이상의 인원을 동원함으로써 G8정상회담 반대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보여주었다. 경찰 또한 대규모집회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일본 전지역의 경찰들이 삿포로로 집결되어 있는 상태이며 불신검문을 강화하는 등 G8정상회담 반대의 목소리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날 또한 헬기를 동원하는 등 집회인원 참가자 수와 비슷한 경찰들이 오도리공원 주변을 에워쌌다. 이렇게 일본 정부가 입국거부와 경찰력 동원 등의 다양한 방해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활동가들은 넓은 공원을 가득 메웠으며 티베트독립을 지지하는 움직임 등 다양한 세계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대로 녹아들어 국제 연대의 장을 마련했다.


 

이 날 오후 1시 30분부터 시작된 집회는 각국의 활동가들이 자유발언을 통해 G8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를 모아 갔으며 자유발언 이후 문화공연을 함께 한 뒤에 오후 3시부터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시작된 행진은 시작부터 경찰들과 마찰을 빚었다. 폴리스라인을 철저히 준수하는 일본인 활동가들과 달리 외국인 활동가들이 폴리스라인을 벗어나가기 시작하면서 경찰들과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다행히 무장경찰들이 동원되지는 않아 큰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쥐(G)를 잡겠다는 의미로 고양이분장을 하고 행진에 참여했다. 이들이 다른 나라 활동가들에게 고양이 분장의 의미를 설명하자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즐거워했으며 일부는 꼭 쥐를 잡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행진 시작 30분 후쯤 무장경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거리에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대오의 중심에서 즐거운 음악을 틀고 함께 하던 트럭에 흥분한 외국인이 올라서자 경찰이 트럭에 세 명이상 올라설 수 없는 규정을 위반했다며 대오를 막아서고 트럭 위로 뛰어 올라가면서부터 경찰들과의 몸싸움이 시작됐다. 집회참가자와 경찰들이 가벼운 몸싸움을 벌였고 대치상황이 벌어 졌으나 곧 다시 행진을 시작됐다. 일본의 집회규정상 경찰은 집회참가자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허용되나 집회참가자는 경찰에게 손끝하나 댈 수 없는 상황이기에 큰 마찰은 벌어지지 않았다. 곧 다시 행진이 시작되었고 즐거운 음악에 몸을 맡긴 참가자들의 행진이 계속됐다.


그러나 오후 4시 30분, 행진이 마무리되고 있을 무렵 경찰들이 몰려와 트럭운전석의 문을 부수고 운전자를 연행하면서부터 행진을 하던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연행되어 가는 동료를 붙잡고 우는 등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졌다. 경찰들은 대오의 앞길을 막아서고 물리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행진참가자들은 스크럽을 짜고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경찰들은 곧장 트럭에 올라서서 트럭 전체를 압수했으며 트럭 내부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압수하기 시작했다. 이 트럭에는 그동안 G8정상회담을 반대하던 단체와 개인들의 정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물건 압수를 막기 위한 참가자들의 항의행동이 이어져 한동안 대치상황이 벌어졌다. 대치상황이 해제되고 곧 행진참가자들은 오후 5시쯤 행진목적지에 도착했으며 그 곳에서 주최 측은 트럭운전사와 트럭 위에 있던 두 사람 등 총 3명이 연행되었다고 밝히며 자신들도 정확한 연행이유를 알 수 없다며 자세한 사정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집회참가자들의 물리력 행사는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불법행위 또한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 모두가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이 휴식을 취한 후 상황을 공유하고 곧장 중앙경찰청사로 항의방문을 가기로 결정하고 그 곳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앙경찰청사에는 외국인 활동가를 포함한 200여명이 모여들었으며 경찰의 반인권적인 연행을 규탄하고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했다. 30분간의 항의를 마친 뒤, 자국 내의 엄격한 법의 잣대를 알고 있는 일본인활동가들은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다시 처음 집회장소인 오도리공원으로 돌아가길 제안했고 반대로 외국인활동가들은 강경하게 그 곳을 지키며 계속 할 것을 제안하면서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그 상황 속에서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도에 앉아서 기타반주에 맞추어 평화에 관한 노래를 부르며 평화행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입에 ‘G8’을 쓴 테이프를 붙이고 침묵항의에 함께 하기도 했다. 결국 참가자들은 다시 오도리공원으로 돌아가 앞으로의 투쟁에 대해서 토론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오도리공원으로 이동했다.


오후 7시 오도리공원을 향하던 참가들 앞에 일본 우익단체에서 동원된 방송차량이 나타나서 다시 긴장감이 고조됐다. 방송차량에서는 집회참가들을 총살하라는 등 극단적인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집회참가자들이 흥분하면서 물리적 마찰이 예상되었으나 무장경찰이 방송차량을 에워싸고 경호하기 시작하면서 큰 마찰은 없었다. 방송차량은 G8정상회담의 성공개최를 주장하며 집회참가자들에게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항해서 집회참가자들은 G8정상회담반대를 외쳤다. 오도리공원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이후 일정을 공유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서 각자 흩어졌다.


이들은 7월 6일부터는 정상회담장소 근처에 만들어진 캠프에서 함께 머물며 전쟁과 빈곤, 폭력과 환경파괴를 심화시키는 G8 정상회담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계속 낼 예정이다. 그러나 경찰 또한 이에 대응하여 캠프장 주변전부를 둘러싸는 등 강경한 진압을 예고하고 있어 참가자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결국 오늘 집회로 인해 총 4명이 연행되었으며 앞서 밝힌 세명과 로이터 기자 한명이 더 연행되었다고 한다. 경찰은 트럭운전사 등을 연행한 이유로 트럭을 통해서 경찰을 공격하려 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집회참가자 어느 누구도 그 사실에 동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이 트럭위로 올라가 참가자를 진압하고 있는 상황.


집회 마지막 경찰이 트럭 전체를 압수 점거하고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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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G8 반대 삿포로 행진 사진모음 추천

2008년 7월 5일.

이제 토야코 호수에서의 8개국 정상회담이 이틀 남았습니다.

이곳 삿포로에서 G8에 대한 반대의 열기도 점점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총집중의 날입니다.

 

G8 잡는 고양이들 역시 이 집회에 참여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총 5천여 명 가량이 참여한 이번 집회에서 일본 경찰은 다시금 강압적인 탄압을 가했습니다.

사운드 데모를 하던 트럭을 경찰이 갑자기 기습하여 운전석 문을 부수고 들어와 운전자와 디제이 그리고 춤을 추던 사람 등등 4명을 강제로 연행했습니다.

경찰 말로는 사운드 트럭이 뒤로 후진하면서 경찰에게 위협을 가했기 때문에 운전자와 디제이 등을 연행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트럭 바로 뒤를 잡고 행진하고 있던 사람에 의하면 트럭은 후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 경찰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강제연행한 일본인 활동가 4명을 즉각 석방하라!

 

다음 사진은 7월 5일 삿포로 총집중집회와 이후 벌어진 행진의 모습을 모은 것입니다.

특히 일본 경찰이 사운드 트럭 운전자와 디제이를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일본의 산케이 신문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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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신문에 실린 고양이들 추천

2008년 7월 5일자 홋카이도 신문(北海道 新聞)에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데모 사진이 실렸습니다.

전날 홋카이도 시내에 있는 오도리 공원에서 시작해 시내를 약 2km 정도 돌면서 G8을 반대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외치던 모습은 아래 올린 글에 자세히 나와 있죠?

 

우리의 모습이 이곳 일본에서 여러 언론들에 의해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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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국제민중연대 행동의 날 추천

2008년 7월 4일 일본 삿포로에서 국제민중연대 행동의 날 집회가 열렸습니다.

G8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오후 4시부터 열린 이 집회에 참가해 한국 상황을 알렸습니다.

 

특히 민주노총과 전농 등 수십 명의 한국인 활동가들이 일본 입국이 거부되어 공항에서 억류되어 있거나 심지어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 영어와 일본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에 발언을 한 각 나라의 활동가들은 공항에 억류되어 있는 한국인 활동가들의 즉각 석방을 외치면서, 일본 정부의 인권말살을 규탄했습니다.


 

이날 국제민중연대 집회에는 일본 내에서도 다양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불안정고용에 반대하는 노동운동가들이 행진 내내 들고 다닌 펼침막입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임시직 아르바이트 등 언제나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 노동(precarious labor)'이 커다란 사회 이슈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여러 사회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도 바로 이들 불안정 노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만든 펼침막 곳곳에 고양이가 등장하고 있는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한국에서는 쥐박이와 쥐8을 잡기 위해 고양이들이 등장했는데, 일본에서 G8 정상회담을 막기 위해 등장한 고양이들은 무슨 맥락인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일본어를 못해서 물어보진 못했습니다.


 

일본의 선주민인 아이누족에서 한 분이 나와서 아이누 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일본정부의 강제적인 동화정책과 민족말살정책 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살되고 있는 선주민들의 권리를 위해 경계를 넘어선 민중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아이누의 언어가 아닌 일본어로 말을 하셔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당당하고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탁(ATTAC) 프랑스와 그밖의 여러 세계민중운동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전 조지.

이 사람도 일본 정부가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 바람에 공항에서 한동안 갇혀 있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일본 정부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요?

수전 조지는 일본 여러 도시를 돌면서 강연회를 가질 예정이었는데, 공항에 갇히는 바람에 강연회가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일본 공항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특히 한국인 활동가들이 연행되거나 억류되어 있는 지금 상황에 대해 더욱 커다란 목소리로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구호를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참가자들은 일본어와 영어로 "억류된 한국인 활동가들을 석방하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집회장 주변에 연대(連帶)라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연대라는 것은 말 그대로 띠들을 연결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더이상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G8 같은 임의적인 모임을 만들어 세계를 멋대로 조종하려는 자본가권력이 도사리고 있는 한 국경을 넘은 민중들의 연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 띠들을 이어가야 합니다. 


 

제3세계가 선진국들에 지고 있는 빚은 조건 없이 당장 모두 탕감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무력을 사용한 제국주의 약탈에서 비롯된 불평등한 경제체제에서 자유무역을 하면 할수록 부자 나라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게 되고, 가난한 나라들은 더 많은 빚을 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채탕감 없이 지속되는 자유무역은 남반구 나라들의 경제와 환경을 빼앗아가는 강도짓에 다름 아닙니다. 

서구 선진국들이 G8 같은 모임을 통해 시장개방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는 이유가 바로 글로벌 자본가들의 이윤을 지속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함입니다.


 

세계 농민들의 운동조직인 Via Campesina(농민의 길) 회원들이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글로벌 경제체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식량주권을 빼앗아버리는 매우 혹독하고 폭력적인 체제라는 것이 이들 농민들의 주장입니다.

각 지역에서 자급경제를 유지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던 소농들이 시장개방을 강요하는 초국적 대기업농들의 무차별 공세 때문에 사라져가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에 따라 식량주권은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극소수 글로벌 식량재벌들이 각 나라의 먹거리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광우병 쇠고기와 유전자조작 농산물 등 강대국 농업자본이 이미 한국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지 않은가요?

이에 따라 검역주권과 식량주권은 사라지고, 소농은 몰락하고 있으며, 이윤만을 위해 생산된 먹거리에서 안전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고 있습니다.

농민이 몰락하면 세계가 망하게 됩니다.

이윤을 위한 농업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한 농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비아 캄페시나'의 외침이 오래도록 귀에 울립니다.  


 

오늘의 국제민중연대 집회에는 참 다양한 집단들이 참여해 제 색깔을 맘껏 뽐내고 있습니다.

퀴어 아나키스트들의 깃발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G8을 막고자 퀴어 아나키스트들도 집회에 참여해 행진을 합니다.

 

 

흑적기도 보입니다.

흑적기는 급진적 노동조합 운동의 상징입니다.

모든 회사와 공장 그리고 학교와 마을 단위를 구성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조합으로 재조직하는 운동입니다.

사장이나 교장 또는 가장, 시장 등 모든 -장(長)들은 없어지고 대신 구성원들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운영회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고 이런 모임들이 밑바닥에서부터 만들어져 비로소 큰 사회를 이뤄가자는 정신이 흑적기에 담겨 있습니다.   

 

 

흑적기의 정신인 아나코-생디칼리즘을 대중적으로 펼치고 있는 프랑스의 노동총연맹(CNT)도 참여해 함께 삿포로 거리를 행진하고 있습니다.


 

행진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우리들도 신나게 구호를 외칩니다.

 

 

 

참가자들 가운데는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빈곤과 환경파괴를 불러오는 G8을 반드시 막아내자는 주장을 들고 신나게 행진을 합니다.

저런 신발을 신고 몇 시간 걸어다니기 쉽지 않을텐데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름답습니다.


 

G8을 반대하는 한 사람이 내건 구호입니다.

직역은 아니지만, 세계를 멋대로 쥐고 흔드는 소수가 내린 결정을 왜 우리가 따라야 하는가! 이런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정치상황과 사회운동에 일본 언론들은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두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민중들의 투쟁이 일본에서는 무척 신기한 모양입니다.

인터뷰를 하자는 요청이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행진을 하고 있는 중간에도 우리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사람들도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들에게 여전히 팔레스티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의 폭력과 만행에 대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없어졌습니다.

모든 집회는 사전에 일본 경찰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3일 전에 미리 일본 경찰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고 벌어지는 모든 집회는 불법이며, 일본 경찰에게 허락을 받을 때 세세한 부분까지, 즉 행진의 코스와 끝나는 시간까지 모두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어길 경우 일본 경찰은 바로 강제력을 동원해 제재를 합니다.

웃긴 것은,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로 나와 행진할 때 마치 군인들이 열을 맞춰 걷는 것처럼 한 줄에 반드시 4명이 열을 지어서 행진하도록 일본 경찰이 끊임 없이 감시하고 명령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한 줄에 3명이 되거나 또는 5명이 되거나 하면 즉시 일본 경찰은 4열로 맞추라며 소리를 지르고, 이에 반항하면 밀거나 행진 자체를 막아서기도 합니다.

자칫하다가 바로 연행될 수도 있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경찰이 시도때도 없이 관리하는 이런 집회는 정말 짜증이 많이 납니다.

 

민중이 나서서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으면 우리의 자유는 점점 더 축소되고 맙니다.

그렇게 조금씩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앗아간 일본 경찰은 더욱더 제재를 가하고, 결국엔 일본의 모습처럼 경찰의 관리와 안내를 받는 형식적인 시위밖에는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지금 한국에서 경찰이 불법집회를 엄단하겠다고 연일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는데, 이에 굴복하게 되면 앞으로 참 암담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일본에 와서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한번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권력자들에게 양보하고 내주기 시작하면, 권력자들은 결국 우리의 모든 자유를 야금야금 빼앗을 것입니다.


 

집회를 관리하려는 일본 경찰에 맞서 국제연대를 위해 모인 사람들은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경찰이 열을 맞춰 행진하라고 명령하면서 우리를 밀면, 우리도 이에 밀리지 않으려고 몸을 맞대고 저항합니다.

조금씩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곧 경찰들이 길거리를 장악해버리고 행진은 도보로 쫓겨나고 마침내 사라지게 됩니다.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당당하게 펼침막을 들고 삿포로 거리를 행진합니다.

빼앗기고 짓밟힌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일본 전역의 경찰들이 모두 홋카이도로 모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행진을 막아서고 있는 경찰들 역시 멀리 오사카에서 온 경찰들입니다.

우리들은 오사카 경찰들은 오사카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영장 없이 경찰들은 열심히 채증을 일삼습니다.

비디오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든 채증경찰들이 대놓고 우리들의 얼굴을 불법채증 합니다.

알고 보니, 일본에서는 영장이 없어도 경찰들이 채증을 해도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고 합니다.

경찰의 논리가 헌법에 나온 시민의 논리(초상권은 일본 헌법에도 나옵니다)를 이긴 판결입니다. 

권력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자유와 권리를 야금야금 빼앗기고 만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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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록커들도 이명박 OUT 추천

일본의 펑크록커들도 한국의 촛불집회에 연대의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힘내요, 촛불!

7월 5일에는 일본에서도 커다란 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Shut Down G8!

G8을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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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고

어디까지 알렸는지 모르겠네요...

날짜감각이 없어지고 있어요...ㅋㅋ날짜를 맨날 일어로 말하니까...

그저께는 열심히 밤늦게까지 작업해서 아침에서야 찌라시를 완성했어요...

하나는 우리가 했던NO G8활동이고 하나는 두장짜리로 만든 한국의 촛불정국을 알리는 삐라시예요...급하게 카라님이 보내준 사진들을 묶어서 몇가지 문구를 붙여 만들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미디어센터에도 비치해두었어요...

오늘 보니까 다 나가고 없어서 내일 또 복사해서 둘 생각이에요...

토무가 광우병 관련된 (외국활동가들이 광우병에 대해서 선지식이 거의 없더라고요...) 내용들을 영어로 정리하고...고쌤이 일어로 번역해서 만들기로 했어요...전 지금 그 영어 내용을 포토샵으로 편집하고 있고요...(여기 미디어센터들은 모두 문서편집을 워드에서 하기 때문에 너무 어려워요...)

 

어제는 오전오후 내내 고쌤의 전시를 도우면서 미디어센터로 오는 활동가들에게 우리의 상황과 활동들을 알렸어요...대운하라든지...민영화라든지...촛불정국에서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그 과정, 그리고 경찰과 정부의 대응, 그리고 G8을 반대하는 활동, 한국 시민의식의 변화와 성장 등에 대해서도요...

여기 활동가들은 한국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또 모르면 몰랐던 대로 우리의 이야기와 사진에 놀라곤 했어요...요즘 세계적으로 이렇게 오랜기간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행동을 지속하는 일은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니까요...

특히 일본활동가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우리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조금 겁나기도 해요...

미디어센터에서 사쿠라상을 만났는데 즐거운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고 도움도 받았어요...짧은 일어로 사쿠라상에게 이것 저것 설명하고 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어요...일단 일본어 문법에 영어를 섞어가면서 되지도 않는 말들을 하는데도 대화와 마음이 통한다는 것에 놀라고 있어요...

사쿠라상은 나고야의 NPO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였어요...굉장히 유쾌한 사람이에요...그분의 노트북을 빌렸는데...OS가 맥이어서 어찌나 당황했던지...

본인도 자신의 노트북으로 워드편집을 해본적이 없어서 일본어 MS워드를 쓰느라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고 말았지요...

그렇게 하고서 같이 숙소에 있는 독일친구들의 초청을 받아서...

Counter Action이라는 클럽에서 있었던 NO G8



진보넷 참세상에 뜬 G8관련 기사 두개 소개합니다. 추천

길게 이어 붙이면 읽기 힘드니까, 그냥 링크만 걸도록 하겠습니다. ^^

 

G8 잡는 고양이들 일본에 가다!

[기고] "G8 정상회담은 현란한 쇼비즈니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8677

 

 

일본, 'G8반대 목소리' 줄줄이 입국 불허

전농 19명 등 공항에 장시간 억류..일부는 출국조치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8686

 

기조글 올라왔습니당~ 훗~^^

일본에간 고양이들의 맹활약을 기대할께요~

모두모두 으랏찻찻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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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로 웹하드 개설했습니다. 사진 등 용량 큰 파일은 여기로 올려주세요. 추천
자세한 내용은 비밀글로 올립니다. 양해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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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 정상회의 `자국 잇속 챙기기’만 급급

G8 정상회의 `자국 잇속 챙기기’만 급급




한겨레 | 기사입력 2008.07.03 22:01 | 최종수정 2008.07.03 22:41

 

[한겨레] 바이오연료·투기자금 규제 등 각국 시각차 뚜렷

온실가스 배출량 축소 목표치 설정도 어려울 듯

일본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오는 7~9일 열리는 주요 8개국(G8) 확대 정상회의는 여느 때보다 전 지구 차원에서 대처해야 할 숱한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식량·유가 폭등, 지구 온난화, 그리고 세계적인 경기 후퇴 등 정상회의 의제들은 참가국들의 이해가 고차원 방정식처럼 얽히고 설켜 어느 것하나 뾰족한 해법을 도출해내기 쉽지 않다. 더욱이 의장인 후쿠다 야스오 총리를 비롯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물론, 초청 받아 참석하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주요 정상들은 하나같이 자국 내에서 지지율 저하로 '죽'을 쑤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의 최대 난제인 곡물가와 유가 폭등을 잡으려고 하면, 바이오연료 정책으로의 전환이나 투기머니 유입 억제 등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데 각국의 이해 관계가 복잡하다. 지난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국제식량농업기구의 '식량 서미트'는 도야코 서미트의 결론을 미리 보여줬다.

개발도상국들은 바이오연료의 주 원료인 옥수수 가격 폭등에 대해 "식량으로 엔진을 돌리지말라"고 비판했지만, 미국과 브라질 등 주요 추진국가들은 "온난화 대책에 공헌하고 있다"고 맞섰다. 바이오연료 개발에 제동을 걸면, 이산화탄소 삭감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바이오연료를 늘리자니 식량난이 가중될수 있는 모순된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결국 참가국들은 공동성명에서 바이오연료 정책 수정을 "검토 과제"로 애매하게 처리하고 말았다.

투기머니 규제를 둘러싼 주요 국가 간 입장 차이도 뚜렷하다. 지난달 중순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8개국 재무장관 회담에서 투기는 곡물가와 유가 상승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됐다. 주요 국가의 저금리 정책으로 불어난 투기 자금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유발한 신용 경색 이후 갈 곳을 잃고 원유나 곡물 시장으로 유입돼 가격을 끌어올린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신흥 경제국가들의 주식시장마저 폭락해 투기자금의 상품시장 유입은 더욱 가속화돼, 각국에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경기침체 현상을 낳고 있다. 베트남의 물가상승률은 25%에 달하고, 미국과 유럽권도 4%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주요 선물시장을 보유한 미국과 영국은 "주범은 수요"라며 상품시장 규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은 또 달러화 약세를 반전시키려고 하지만, 경기후퇴를 우려한 다른 나라들은 협조적이지 않다.

원유 가격 문제도 산유국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일본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지구온난화 대책의 구체적인 수치 목표 설정도 사실상 물건너갔다. 후쿠다 총리가 2050년까지 온실효과 가스 배출량을 60~80%까지 축소하자며 '후쿠다 비전'까지 내걸고 있으나 주요 국가와 신흥 경제국 사이의 의견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온실가스 주요배출국회의에서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은 장기목표를 둘러싸고 가스삭감의 분담을 요구했으나 중국과 인도 등은 "온실화의 주범은 주요 국가"라며 양보하지 않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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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참가국 中·印 등 5국 추가 G13으로 확대 추진

G8참가국 中·印 등 5국 추가 G13으로 확대 추진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07.04 00:15

 

도야코 G8 정상회의의 또다른 관전포인트는 참가국 확대 문제다. 기존 8개국에 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남아공 등 신흥 경제국 5개국을 포함시켜 13국 체제(G13)로 확대하자는 안건이 정식 의제로 논의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참가국 확대에 대한 최종 결론이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G8 확대론에 불을 지핀 것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올해 초 인도 방문 때 G8을 G13으로 개편하는 구상을 밝히고 이를 강력히 주장해 이번 회의의 의제로 만들었다고 지난 1일 보도했다. "중국·인도 등 5개국을 정식 회원국으로 넣지 않으면 기후 변화와 빈곤 등 세계적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 사르코지의 논리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5개국 편입에 긍정적이다. 미국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중국의 입김이 커지는 것이 달가울 리 없는 일본은 극력 반대하고 있다.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에서까지 영향력 강화를 꾀하고 있는 중국이 회원국에 포함될 경우 일본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유일의 G8 멤버라는 독점적 위상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반대 이유 중 하나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사르코지 대통령으로부터 확대론을 직접 제안받았지만 "G8 정상회의는 국제사회에 큰 책임을 공유하는 소수의 정상이 솔직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라며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산케이신문은 "G13 확대 문제가 도야코 정상회담에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계속 검토 과제'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사르코지 대통령과 브라운 총리의 대응 방향에 따라 확대론에 전향적 흐름이 생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 도쿄 | 조홍민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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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많은 G8회의 열매도 많을까

가지 많은 G8회의 열매도 많을까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8.07.03 09:18

 

[동아일보]
○ 세계 경제난 ○ 기후 온난화 ○ 阿개발 지원 ○ 핵확산 방지

■ 7일부터 日서 22개국 확대회의
날로 더워지는 지구, 석유와 식량 가격의 급등, 핵 확산 방지….
7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도야코(洞爺湖)에서 개막하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는 이 같은 난제들의 해법을 찾기 위해 8개국 정상을 포함해 모두 22개국 정상이 각종 확대회의에 참석한다.



일본 외무성이 밝힌
회의 의제는 크게 △세계경제 △환경과 기후변화 △아프리카 개발 △핵 확산 방지와 평화 구축 등 네 가지. 이들 문제는 서로 복잡하게 엉켜 있는 데다 하나같이 시급한 것들이어서 "이렇게 논의할 의제가 많은 G8 회의는 처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과연 세계 정상들은 이런 고차 방정식을 풀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 온실가스 삭감목표 최대 쟁점
주요 이산화탄소(CO₂) 배출국 회의에는 기존 G8에 한국 중국 인도 브라질 등 8개국이 합류한다. 시한이 2012년인 교토의정서 대신 2013년부터 적용될 '포스트 교토의정서'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최대 이슈는 온실가스 배출량 삭감 목표를 어디까지 잡을 것이냐는 문제.
유럽연합(EU)은 세계 각국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앞으로 10∼20년 뒤의 중기 배출량 목표를 국가별로 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도 지난달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중국 인도 등 신흥 국가들의 반응은 매우 조심스러울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EU와 미국 사이에 온실가스 배출량 문제를 둘러싸고 주도권 다툼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지적했다.

○ 경제난 해법 한목소리 낼듯
G8 정상회의에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세계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하고 G8 차원에서 일치된 메시지를 낼 계획이다.

고유가와 관련해서는 산유국에는 석유 증산을 위한 투자의 필요성을, 소비국에는 에너지 절약과 대체에너지 추진 등을 호소할 방침이다. 유가 급등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는 투기자본 문제에 대해서는 시장의 투명성 향상이 열쇠라 보고 데이터 수집능력을 높일 것을 제안할 계획이다. '석유자원의 정치적 이용 배제 원칙'도 재확인할 예정이다.

폭등하는 곡물가격 문제에 대해선 앞으로 워킹 그룹을 가동해 난민이나 빈곤층에 식사를 제공하는 '단기 과제'부터 2009년 이후 생산량 확보와 농업생산성 향상 등 '중기 과제'까지 논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곡물 수출 규제를 자제하고 비축 식량을 방출하는 방안도 논의한다.

때마침 러시아가 1일 곡물수출세를 완화하는 조치를 내리자 일본 언론들은 "이번 정상회의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환영했다.

○ 브릭스 등 5개국 추가 G13 확대도 논의
G8 참가국을 현재의 8개국에 신흥 5개국(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더해 13개국 체제로 확대하는 방안도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방안은 올해 1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처음 제기했고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들 신흥국을 정식 멤버로 영입하지 않으면 지구온난화와 빈곤, 자원문제, 국제 상거래 등 세계 주요 현안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아시아의 리더'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하는 일본은 G8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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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언론들과의 인터뷰 추천
도쿄와 삿포로에 모인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촛불행동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6월 30일과 7월 1일 도쿄에서 열린 국제포럼과 7월 3일 삿포로에서 열린 국제포럼에서 발표를 했고, 이후 미국의 [얼터넷], 일본 텔레비전 방송국, 스페인의 안티캐피탈리스타스 등등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고 계속 인터뷰를 진행중입니다.

한국의 정치상황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본에서의 활동이 끝나면 한국에 방문하려는 국제 활동가들도 많습니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희들은 개인적으로 여러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포럼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고,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한국의 사회운동이 G8 반대운동에 긴밀히 결합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동시에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회운동과 연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여러 언론에 실린 우리들의 활동소식은 곧 이곳에 원문이나 링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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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사운드데모 뒷풀이 추천

이까상. 행진할때 열심히 춤을 추며 신나게 행진을 했던 이까상. 너뮤 순수하신 분이예요.

 

 


일행이 가져 온 단소를 부르는 일본 활동가들... 한국인도 불기 힘들다는 단소...

뜻대로 잘 안되도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 너무 아름다워요

 


 


라이타로 병따기... 라이타로 병을 딴다는 사실에 너무 신기해서 너도 나도 해보는중...

 


 


일본의 맥주와 한국의 진로 소주, 이까상 어머니가 만드신 매실주 와 이동막걸리

안주도 우리가 만든 부대찌개와 족발, 일본 활동가들이 만들어준 음식들... 너무 맛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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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의IRA입니다 추천
ㅂㅂㅂ

계속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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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회의
만나는 활동가들의 이메일을 받아서 한국의 상황과 우리의 활동들을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했어요...그날그날 들어와서 보내기로 했고 토무가 수고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켄짱이 지금 카라님이 보내준 사진과 시부야에서 활동한 사진들을 정리해서 찌라시를 만들어 내일부터 만나는 활동가들에게 상황을 알려주기로 했고요...
우리가 준비해간 찌라시에 붙여서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내일 팔랑팔랑이 포럼에서 짧게 발표를 하기로 했고...
훗카이도를 통해서 인터뷰요청이 왔는데 그건 아마 오후가 될 것 같아요...
통역이 가능하다고 하니까 팔랑팔랑이 바쁘더라도 인터뷰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해요...

일단 내일 오전 집중센터를 방문하고 거기서 정보를 좀 더 수집한 다음에 포럼과 인터뷰 이후의 활동들을 전개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만든 찌라시는 여기도 올리도록 할게요...

말이 안통하니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지금 실의에 차 있어요...
아무튼 할 수 있는한 해보려고요...
사진 자료들은 양군님 이멜로 보낼게요...


활동사진들 추천

7월 1일 시부야 미야시타공원에서의 G8을 반대하는 집회에서...

고양이귀를 달고 촛불과 배너를 들고 있는 모습이에요...

이날 한시간동안 연대발언들로 집회를 함께하고 시부야의 거리를 행진했어요...

간간이 한국관광객들이 촛불과 손피켓을 보고 반가워했지요...


 

단독샷...

 


 

행진을 시작하고 있어요...


 

사복경찰들의 모습...

육교위의 사람들이 몽땅 사복경찰들이에요...일본공안경찰이죠...경찰국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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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대학의 미디어센터 방문

켄짱이 우겨서 홋카이도대학의 미디어센터에 토무와 세균맨 셋이서 걸어서 다녀왔습니다...4키로 정도 되는 거리였어요...올때는 물론 지하철을 탔지만요...

미디어센터에 갔더니 자전거를 대여해준다고 하는군요...

3박4일에 2천엔이었어요...내일 아침에 전화하면 배달해준다고 하니까...나오토상을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거 타고 이곳저곳 다닐 수 있어서 기분이 한껏 업된 상태예요...

일본은 지도만 있으면 정말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돌아왔더니 독일 뮤지션들이 잔뜩 있네요...

 

순간 굳어버린 켄짱...

씻고 나서 용기를 내어봐야겠어요...

9시에 풍자만화를 그리시는 선생님께서 오신대요...

일러스트나 만화에 관심이 많은데...참 잘 됐어요...

 

홋카이도대학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어요...손바닥만한 학교를 다닌 저로서는 놀라웠다는...그곳에서는 많은 분들이 액션을 위해서, 그리고 전세계의 활동가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어요...

 

내일은 아침에 자전거를 빌려서 이곳저곳 곳곳의 포럼과 센터들을 다녀봐야겠어요...

미디어센터에서 얻어온 자료에는 영화를 보여주는 곳도 있고 여러가지 흥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잔뜩 있는 듯 해요...자세히 읽어봐야 알겠지만요...

 

서울의 상황이 많이 걱정이 되긴 해요...

오늘아침까지 확인했을 때는...완전히 강경대응인 것 같아서요...

어쨌거나 한국에서든 이곳에서든 열심히 해요...우리...^^



모두 무사히 삿포로 도착 추천
모두 무사히 자유에스페란토협회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부터 우리들을 맞이해주신 홋카이도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좀더 자유롭게 인터넷을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까지 올리지 못했던 소식들을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비공개로 올리는 활동소식은 저희들이 충분히 고민한 결과,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므로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홋카이도의 맑은 날씨와 이곳 활동가들의 따뜻한 환대에 우리들은 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 있네요.
7월 3일부터 홋카이도에서 공식일정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도쿄에서 매우 바쁘게 지냈는데, 오랜만에 약간의 휴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삿포로에서 정치풍자 만화를 그리고 있는 분과 만남과 교류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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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말이에요...
지금 아까의 집회에서 만난 분의 집에 와 있어요...
씻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고 해서 고마워하면서 따라왔는데 교통비가 아마도 목욕비만큼 나오지 않을까 싶지만...맛있는 데리야끼소바와 삼겹살, 과자, 오사케와 맥주, 럼주에 콜라를 탄 칵테일을 대접해주셔서...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다들 씻는 동안에 인터넷을 쓰도록 배려해주셔서 지금 쓰고 있는데...
아까 집회에서 홋카이도와 통화를 했어요...그런데...
카라님이 긴급하게 답글 다신 것이 그 이후인가요???
편명을 알려달라고 하셔서 전화로 알려드렸는데...
그게 언제쯤일까요???
갑자기 급불안해하고 있어요...비행기가 없다고 해서...ㅋㅋ

그리고 짱돌님한테 연락해서 오늘 찍으려고 했던 캠코더...테입을 넣고 돌렸는데...
비디오가 찍히질 않네요...
녹화버튼을 눌렀는데도 파란화면인채로 있어요...
메모리카드도 없고요...

카메라나 메모리버전으로 돌릴 때는 화면은 나오는데 브이시알버전으로 돌리면 파란화면만 나오고 녹화가 되질 않는다고 이유를 알려달라고요...

오늘 시부야에서 있었던 집회는 여러 일본의 단체들이 모여서 한 것은데 주최측이 훗카이도 문화강좌(??)라고 합니다...

일본의 집회는 참가 단체가 다 연대발언을 하는 것이 분위기인가봐요...
그래서 저희 셋도...(세균맨은 촬영) 나가서 발언을 했는데...
갑자기 하게 된 발언이고 사코다 상이 통역을 해주기도 했지만...
전 생각해놓은 것들을 잘 말하지 못해서 속상했어요...
우리말로 하는데도 이렇게 못하다니 자책하고 있어요...

어쨌든 가지고 간 손피켓도 깔고 고양이 귀도 달고 촛불과 배너를 들고 집회를 했고...
시부야 거리를 행진했어요...
그런데 재밌는 것이 집회 참석자보다 경찰이 거의 배이상 많았어요...
이유가 집회가 많이 줄어들면서 공안경찰들이 짤리지 않기 위해 이런 집회에 다 몰려나오는 것이라고 하는군요...아무튼 사복을 입은 공안경찰 수만 시위대만큼 됐구요...시위대를 감시하는 경찰들도 그만큼 숫자가 됐어요...카라님 말처럼 정말 시위가 폴리스라인을 벗어나질 못하더라고요...조금만 뒤로 쳐지면 경찰이...
좃또 마에!!
라고 말해서 어이가 없었달까...인도에도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시민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막더군요... 그리고 중간에 한명이 뒤로 나오거나 하면 세줄 서는 것으로 약속했기 때문에 세줄을 서야 된다면서 빈자리를 채울 것을 강요하기도 하고요...(알아들은 것이 꽤나 신기...ㅋㅋ)

우리가 손에 들고 있었던 피켓을 보고 한국관광객들이 굉장히 반가워 했어요...

원래 얼굴에도 분장을 할 생각이었는데 제가 실수로...미야시타 공원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미야 뭐라고 하는 공원을 미야시타공원으로 착각하고 계속 거기 있다가 합류해서...물론 시작하기 전에 합류하긴 했지만...얼굴에 분장할 시간까진 없었어요...
그리고 시위 자체도 딱 공원에서 한시간, 행진 30분을 준수하더라고요...

역시나 나온 구호들은...
지에잇토야코서미트 분쇄
토야코 서미트 분쇄하자
를 비롯해서(제가 알아들은 게 여기까지...)
아시아의 민중과 연대하여 투쟁하자...라든지...
아이누족의 인권문제라든지 북해도 선주민을 위한 법제정이라든지 북방영토의 날 제정 반대(일본본토에서 북해도로 북진한 것을 기념하는 날인데 휴일로 제정하려고 한다고 해요...북해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누족들이 학살되었는데도 말이죠...그리고 그 후손들이 지금도 차별받고 살고 있는데 말이죠...)라든지...그런 내용의 구호들도 있었구요...
북해도에서 전언을 보내서 그 전언을 읽기도 했어요...

얼굴에 분장을 하지 않은 상태라 손수건을 쓰고 있었는데...
사복경찰들이 어찌나 사진을 찍어대는지 손수건을 쓰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지금 아래층에서 유메센세가 인터내셔널가를 우리말로 부르고 있네요...

세균맨이 동영상으로 오늘 집회를 촬영한 것을 한국에서 보내주기로 했어요...
제 카메라로 찍은 것은 내일 훗카이도에서 옮겨서 올리든지 할게요...

이 컴퓨터에 에스디카드를 읽는 곳이 없네요...맥인데...

집회에서 만난 분들 중에 여자분이 있는데...
그분도 아라시를 좋아한다고...(다행이에요...ㅠ ㅠ 완전 오타쿠로 몰릴 뻔 했는데...)
수줍게 계셨었는데 아라시 이야기가 나왔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역시...ㅋㅋ어딜가나 적응 잘하는 켄짱...

암튼...전 이제 씻으러 가겠어요...

정말이지 매일 씻을 수 있고...걱정없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맙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이야기????

켄짱이에요...

양군님...맞죠?? 별로 걱정 안하셔도 돼요...

쏭님...공개로 올렸는데 문제 없겠죠???? 근데 왜 운영자가 아닌거지???

어제는 하라주쿠에서 소식을 올린 후 신주쿠에서 IRA로 갔었어요...

엄청 걸어다녔어요...

도쿄는 길이 잘되어 있어서...골목골목 구불구불한 길이 별로 없어서요...

내가 서 있는 장소와 가야할 방향만 확실하면 대충 찾아갈 수 있어요...

교통표지판이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또 역이 많아서 전차역들을 참고하면서 방향을 잡으면 더 쉽지요...

그래서 대충의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지...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녁의 시부야도 하라주쿠에서 걸어갈 생각이에요...

어제 하라주쿠에서 본 신궁이 이세신궁이 아니라 메이지 신궁이래요...

메이지천황의 유골이 묻혀있대나 뭐래나...

어쨌거나 이렇게라도 인터넷을 할 수 있는게 참 다행이네요...

저녁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샤워와 머리를 감았습니다...목욕탕에서...

대강의 샤워시설만 있을 줄 알았더니 탕도 있고 꽤 쾌적했어요...

남탕과 천정이 연결되어 있어서...벽으로 끝까지 막아져있질 않아서 옆탕의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어요...뭐 나름 재미있었다고나 할까...

왜 사우나를 하는지 알 것도 같았어요...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지요...ㅋㅋ

정말이지 제대로 씻은 게 일본 들어와서 처음이니까요...

아...그리고 그 전에 주인님의 테레비로 게츠구를 봤어요...

일본에서는 월요일 저녁 아홉시 드라마를 최고의 황금시간대라고 해서 게츠구라고 불러요...한국에서 항상 다운받아서 보던...체인지를 실시간으로 봤어요...

그리고 주인과 친구들이 와서...

같이 가벼운 술 한잔씩 하면서 즐거운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오다가 한국과 일본의 농촌, 농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한참 이야기 했지요...하면 할수록 암담해서 마음이 우울했어요...눈물날 정도였어요...

화도 나고...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 -;;;; 결론이 난 것은 켄짱은 오타쿠...였어요...

어째서...결론이 저런 건지...ㅠ ㅠ

주인과 친구들이 오타쿠의 레볼루션을 일으키라고 용기를 주었지요...

도대체...내가 왜...

어쨌거나 뭐...재밌었어요...

일본에서는 농민들의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서 자민당이 지원금을 줬다고 해요...

일본에서 최고의 표밭이 농촌이라 농촌에 대한 지원을 꽤 했다나봐요...

그래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돈을 주고 땅을 놀리는...

식량자립도가 떨어져가고 있고 농업이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산니즈카의 사진들을 보면서 설명을 들었어요...

지금도 그 옆에서 계속 투쟁하고 있다고...

평택이 생각나서 서글펐습니다...

켄짱의 짧은 일드 일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성게군이 통역을 해주고...

정말이지...이제까지 크게 문제된 일은 없었지만 의사소통이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유메센세의 전자수첩...일명 수퍼콤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곳으로 걸어오면서 중간중간 들려오는 한국어에 깜짝 놀라곤 했어요...

정말 여행객이 많더라고요...

학생으로 기입하길 잘했어요...지금이 시즌이라 학생들이 많이 들어온대요...

물가가 정말 비싸긴 해요...

빵이 100엔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아예없어요...

웬만하면 다 2, 300엔이 넘어가지요...

밥은 500엔 이상 주지 않으면 먹기 힘들고요...

어떻게 생활이 가능한 것일까 물어봤는데...

시급이 만엔에서 만천엔정도 한대요...

그러니까 와서 돈을 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우리는 힘들 수 밖에 없는 거죠...ㅋㅋ

어제도 빵 하나와 라면하나로 버티고

오늘도 빵하나로 버티다가 어지러워져서 에너지 음료를 큰맘먹고 먹었지요...ㅋ

저의 체력에 감사할 뿐이에요...

장마기간인데 어제부터 날씨가 개어서 매우 화창하고 더워요...

일본엔 경찰서가 굉장히 많더라고요...다니면서 보니까...

근데 항상 입구쪽에 사람들이 한 둘씩은 나와서 거리를 감시하고 있었어요...

무서운 동네인 것 같아요...

일본에서의 집회는 오늘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굉장히 떨리네요...

오늘은 전기공이 숙소로 검침하러 왔었는데 다들 먼저 나가고 제가 막 나가려고 하던 참이었거든요...첨에 하이바만 보고 경찰인줄 알고 진짜 쫄았었지요...ㅋㅋ

이제 카라님에게 전화를 하러 가봐야겠어요...

국제전화카드를 사오질 않아서 편의점에 가야하는데 얼마나할지...

아마 내일은 소식을 늦게 올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내일 이동하니까요...



카라님...

여기서 팔랑팔랑이 말했던 영상...이 필요해요...

언저리님이나 동소심, 혹은 지금 이름이 바로 생각이 안나는데 빨간 다마스로 우리에게 무한전력을 공급해주셨던 분이 공연을 동영상으로 찍은 것..., 또 촛불축제에서 찍은 것

그런 거 동영상 파일을 보내주셨음해요...아마 이 블로그에는 올리기 힘들 것 같고...

되도록이면 오늘안에 받아야 되는데...사진도 같이 원본파일로 보내주세요...

좀따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전화할게요...

참고로...오늘도 프리인터넷을 하기 위해 하라주쿠까지 또 걸어온 켄짱...

점점 튼튼해지고 있어요...

메일 주소는 darkshit@hanmail.net 이에요...

안되면 링크라도 걸어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현재 한국의 촛불 정국을 간단하게 정리해주셨음 좋겠어요...카라님이 혼자 다하긴 힘들 것 같구...하실 수 있는 분들이 조금씩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제 포럼에 참석했던 팔랑팔랑이 여러 언론들과 인터뷰도 하고 또 포럼에 참석한 세계의 활동가들에게 한국의 상황을 알렸다고 해요...그래서 그 활동가들이 이번 일본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가겠다고 약속한 사람도 꽤 되는 것 같아요...

저도 토요일 이후의 상황을 인터넷으로 확인하겠지만...매일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아무튼 부탁드려요...

그리고 오늘의 일정은...

팔랑팔랑은 대추리에서 함께 했던 일본의 활동가들과 디온과 함께 약속이 있어서 지금 신주쿠에 나가 있고...저녁 포럼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토무와 유메센세, 세균맨은 일본으로 원정투쟁와있는 노동자분들을 취재하기 위해 우에노로 갔구요...저는 일정을 알리고 필요한 자료들을 받기 위해 하라주쿠로 왔습니다...

팔랑팔랑이 노트북을 가져갔으니까 저녁 6시 30분부터는 아마 무선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포럼에 관해서는 그때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카라님이...참세상에 기조기사를 올리기로 했었잖아요??

그건 그대로 카라님이 해주셨으면 좋겠고...

도착해서 어제까지의 활동은 유메센세가 정리했고 팔랑팔랑이 정리해서 올릴거예요...

그리고 포럼에서 팔랑팔랑이 특별히 발언 시간을 얻었다고 해요...발표자가 아닌데도 말이죠...그래서 그 자리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고 합니다...그 내용들은 팔랑팔랑이 정리할 거예요...

오늘 시부야의 미야시타 공원에서 집회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따 세명과 합류합니다...

시부야에서 집회하는 것을 캠코더로 촬영도 하고...사진도 찍고 또 고양이 분장을 하고 액션할 생각입니다...찌라시들도 챙겼어요...

토무가 숙소 근처의 마트에서 초를 사오기로 했고 어제 유메센세가 종이컵을 사서...

그자리에서 촛불집회도 함께 하기로 했어요...

현장에 사복경찰들이 많아서 고양이분장은 반드시 하기로 했어요...그건 지금 제가 챙겨서 함께 가지고 있고요...사진이 찍히더라도 훗카이도에 들어갈 때 문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이상 하라주쿠에서 켄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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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모두에게 안부인사를~ ^^ 추천

오늘 카라님 잠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듣고 온 길이랍니다~

 

다들 무사히 도착한거 같아(카라님을 제외하고~ ^^:) 다행이다 싶고 일본에서의

 

활동소식 글로 올라온거 보니깐 반갑구 그렇네요~

 

근데.. 한가지..

 

일본 입국 전에야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지만

 

입국 후에는 어차피 공개적인 활동들을 펼쳐야 될텐데

 

소식들이 계속 비밀글로만 올라와서 조금 그렇네요.

 

물론 조금 개인적인 글들이기는 하지만,

 

공개한다구 해서 크게 문제될건 없다고 생각되는데..

 

가령 이곳 진보넷 블로그홈에만 해도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 다녀갈텐데

 

좀더 우리의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가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듭니다.

 

 

그리고..

 

켄짱~

 

환송식 제대로 못해줘 미안요~ ^^;;

 

실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 자리 함께 하지 못했는데.. 조금 미안하구 그렇네요.

 

 

암튼, 모두 모두 화이팅 입니다.

 

일본에서의 활동 열심히 힘내시구요~

 

에또.. 소식들 가능한 많이 많이 올려주시길 부탁드릴께요~ ^^

 

물론, 한국에 남아있는 고양이들도 열심히 싸울 수 있도록 노력할께요~

 

하하, 그럼..

 

다시 만날때까지 모두 으랏찻찻 힘내서 열심히 싸워봅시당~ 아자~ ^^

 

 

 

 

ps. 켄짱.. 카라님이 없어서 많이 힘들거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소식들 책임지고 맡아줄 사람 켄짱 뿐인거 같네요.

 

수고하시구요.. 에또.. 힘내세요!!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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