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다시읽기] ‘사화’ 판치던 절망시대 정치권력 정당성 묻다

고전 다시읽기 / 조식 <남명집>



지·리·산이란 ‘앎이 다른 산’(智異山)이다. 앎이 다르면 꿈이 달라지고, 꿈이 다르면 삶이 달라진다. 이미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은 도회나 들에서 살 수가 없다. 지리산은 앎과 삶이 다른 사람들을 품어온 산이다. 파르티잔, 이현상과 남도부가 지리산으로 숨어든 까닭도 그 산이 ‘앎이 다른’ 이들을 품어온 이력 때문이리라.


16세기 조선 중엽, 도회(서울)와 들(김해)을 벗어나 지리산 밑으로 파고든 이가 있었다. 짱짱한 유교의 시대였음에도 짐짓 ‘다른 생각’을 품은 <장자>에서 이름을 따 남명(南冥)으로 자호한 이였다. 조식(1501~1572)! 이황과 한 해에 태어난 유자가 그였다. 하나 고작 책상물림의 백면서생은 아니었다. 방울을 옷 춤에 달아 거기서 나는 소리로 제 행동거지를 단속한(敬) 엄한 ‘선비’였으면서 동시에 칼로써 정의(義)를 세우려던 ‘사무라이’이기도 했다. 곽제우가 그의 제자였음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유자로서의 그의 삶을 결정적으로 비틀어버린 것은 연이은 사화였다.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송인수를 비롯한 많은 벗들이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겪으며 몰살을 당했다. 그에게 이 시대는 실로 절망의 시대였다. 마치 ‘광주사태’가 1980년대 젊은 지식인들에게 물었듯, 연속된 사화는 당시 살아남은 유자들에게 물었다. “정당한 권력이란 무엇이냐?” 라고.


적어도 이황과 조식에게 중년이후의 삶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이황이 스스로 퇴계, 즉 ‘골짜기로 물러난 사람’으로 정의하고 긴장된 삶을 살았다면 조식은 남명, 즉 딴 세상으로 떠난 사람으로 규정했다. 이황이 정권으로부터 물러서긴 했으나 돌아서지는 않았다면, 조식은 끊고서 다시는 돌아서지 않았다. 미진한 듯 도회에 끈을 남긴 동년배, 이황을 그가 힐난한 것도 그래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이 사태는 유자였던 조식에게 몇 가지 선택적 질문으로 와 닿았다. 첫째, 개인적 차원에서 아버지와 숙부를 죽인 정권에 충성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 사이에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유교이념에 따르면 부모와 자식 관계는 천륜(운명)이요, 국가와 신민의 관계는 인륜(계약)이다. 부모를 죽인 정권에 저항은 못할망정 참여하는 것은 유교의 기본원리에 어긋난다. 이것이 조식이 유자였으면서도 장자풍의 은둔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었다. 유교적 이념에 충실할수록 도교적 실천으로 빨려드는 아이러니, 아마 이것이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만든 또 다른 이유였을 것이다.


둘째, 정치사상의 차원에서 사화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연이은 살육의 사태에 대한 궁극적 책임자는 누구인가. 조식은 그 근원적 책임이 군주에게 있다는 점을 단단히 못 박는다. 숨어사는 그에게 음식물을 하사하면서 손길을 내민 군주에게 이런 날선 언어로 응대한 터다.


“나랏일은 벌써 결단이 났소이다. 신하와 관리들은 둘러서서 쳐다보기만 할 뿐 구할 생각은 하지도 않소. <논어>에서 말하듯 ‘어쩌면 좋을까’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시점은 진작 지나가버린 거요. 그런데도 임금이 이 꼴을 보고서도 모른 척한다면 장님이요, 알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임금은 이 나라의 소유자가 아닌 것이외다.”(“음식물을 베풀어준 것을 기화로 올리는 상소문”)


정책 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는 자가 아무도 없는 무주공산의 형국이라는 것. 유교이념에 의하면 군주란 ‘하늘 아래 자기 땅이 아닌 데가 없고, 인민 가운데 자기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는’ 국가의 소유권자다. 또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정책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한데 지금 조선의 국왕은 정책적 결과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중종, 명종, 선조는 옳은 군주가 아니다. 섭정의 명목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문정왕후(명종의 모친)에 대해 “궁궐 속의 한낱 과부에 불과하다”(즉 책임은 지지 않고 권한만 행사하는, 사적 존재다)라는 파격적인 비판을 행할 수 있었던 것도 ‘정치가는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인식의 선상에서 나온 발언이다.


그는 그 책임의 소재를 더욱 분명히 한다. “내가 권할 말씀은 단 한 마디, 군의(君義)라는 글자올시다. 이 글자로써 임금의 몸을 닦고 나라를 잡는 근본으로 삼기를 권하외다.”(상동) 여기 ‘군의’, 즉 “임금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은 거꾸로 ‘임금이 의롭지 못해 빚어진 사태에 대해 통절히 반성하라, 또는 문제의 핵심은 곧 임금이 의롭지 못한데 있음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임금이 정의로워야 한다’라는 이 한마디에 그의 정치 생각이 응축되어 있다. 당시 정치의 실패와 천륜 파괴의 궁극적 책임이 ‘임금의 불의’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조식에게 정치는 적법한 행정절차, 분배의 정의, 사건 처리의 효율성 따위가 아니었다. 정의와 불의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도덕적 행위였다. 이것은 군주뿐만 아니라 정치참여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그가 “선비의 가장 큰 일은 정치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그 순간에 있을 따름”이라고 지적한 것도 정당성에 대한 판단과 선택에 정치성의 핵심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선비들을 다 죽여 놓고도 뻔뻔하게 왕정의 이념을 내건 정부와 그런 정부에 눈을 질끈 감고 꾸역꾸역 참여하는 지식인(선비)들의 몸짓, 두 방면에 대한 문제제기다.


셋째 ‘폭력집단으로 타락한 국가에 대해 지식인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라는 실천적 질문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선택을 가상할 수 있다. 망명, 혁명 그리고 은둔의 길이다. 첫째, 망명이란 춘추전국시대처럼 유동성이 강한 사회는 몰라도 반도의 갇힌 지형에다 이미 중앙 집권력이 강고해진 조선에서는 불가능한 선택이다. 둘째, 혁명은 내심으로야 강한 충동을 가졌을지 모르나(그의 ‘칼’에 대한 깊은 욕망을 두고 보건대) 실제로는 행동으로 드러낼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소극적이긴 하지만 은둔 외에는 정치적 불만을 표현할 길이 봉쇄되어 있었다.


흥미롭게도 은둔은 정치적 영향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힘을 발휘할 계기일 수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는 조선이 유교경전을 통치정당성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부터 비롯된다. 조식의 행동이 근거하고 있는 경전 구절은 “천하에 도가 있으면 출사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논어>)는 대목인데, 이것은 권력자에게 당혹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은둔 자체가 ‘도가 없음’ 곧 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시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숨은 선비가 신망을 얻을수록 권력의 부당성은 더욱 짙게 채색된다. 즉“정당하면 나아가고, 부당하면 곧 숨는다”는 선비의 출처(出處) 구도는 은둔자의 도덕적 파워에 따라 정권의 정당성이 결정되는 곤혹스런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둔은 겉으로는 도피일지 모르지만, 안으로는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 된다.


요컨대 조식의 행동과 언설은 여러모로 정치사상적 문제를 제기한다. “유교국가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어디서 비롯하는가”라는 주제 아래 (1) 충성과 효도 사이의 선택문제, (2) 정치적 실패(사화)에 대한 책임의 문제, 그리고 (3) 부당한 권력에 대해 신민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문제가 그것들이다.


조식은 저술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호한한 연구를 남긴 이황에 비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도리어 그는 글에 파묻히는 것을 경계하였다. 각인이 처한 시공간 속에서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지식인의 본령이라고 믿었다. 현인이 남긴 전적이나 성인의 경전마저도 나의 성찰과 실천을 위한 참고자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이런 실천지향의 노선은 그에게 ‘칼을 찬 유학자’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넉넉한 것인데, 임진왜란을 맞은 그의 제자들이 각처에서 의병으로서 활동한 것도 이런 가르침 때문이리라. 본시 스스로 남긴 자료가 적은데다, 훗날 광해군 정권에 참여한 그의 제자들이 몰락하는 와중에 또 남은 글마저 덧칠을 당하면서 그의 생각의 전모를 알기 어렵게 된 점은 몹시 아쉬운 일이다.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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