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희소성의 시대에 부쳐

2008/03/23 01:19
 

난 우석훈의 글을 즐겨 읽는다. 새만금 문제 때문에 종교인들이 삼보일배를 해서 사회적으로 생태문제에 대한 분위기를 띄울 때, 그때 쯤 우석훈이 ‘비나리’라는 아이디로 ‘새만금을 뒤벼주마’라고 쓴 글을 보고 나서 부터다. 자신의 지식을 삶의 감성과 일치해서 글을 쓰는 지식인이다. 최소한 거짓이나 조작이 없고, 허세도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땡기는 것은 솔직하게 글을 쓴다는 것이다. 글의 깊이도 상당하다. 많이 배우고 싶다.

 

'로망 중에 가장 큰 로망 중의 하나는 액션 로망이다. 솔직히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사는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 입에 밥들어가는 것만 걱정하고, 멋진 연애 한 번 해봤으면 하는 생각만 하다가 죽었다고 하면, 로망의 인생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건 개돼지도 다 가지고 있는 로망이다.'

 

우석훈의 블러그 '우리는 액션, 대로망!' (http://fryingpan.tistory.com/)에서 퍼온 것이다.


[한겨레] '희소성의 시대'에 부쳐

스탱 쪼각글 2008/03/05 20:12 posted by 우석훈

[야!한국사회] '희소성의 시대'에 부쳐/ 우석훈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우리나라에서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열 명보다는 많고, 50명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가끔이라도 국민들이 <국부론>과 <도덕감성론>이라는 두 책의 관계를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든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송구스러울 수도 있지만, 많은 경제학 전공자들은 <국부론>이라는 책이 금세기에 출간되었다면, 노벨경제학 대신에 노벨문학상을 탔을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경제학상을 탈 수 없는 이유는, 경제학을 학문으로 만든 이 책에는 수학공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애덤 스미스는 '이코노미스트'라는 표현을 '경제학자'가 아니라 '수전노' 즉 돈 몇 푼에 손을 발발 떠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국부론> 1권 9장에는 세상이 과연 마지막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고민이 나오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임금은 더 오르지 않고, 이윤도 오르지 않고, 나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그 상태라도 유지하려면 또 모두 죽도록 일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 스미스는 '우울한 상태'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고, 후대 경제학자들은 이런 스미스의 이론을 '정체상태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오는 이유는 지대 요소, 즉 자연이 더는 커져나간 경제상태에 맞추어 증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고전학파 경제학의 우울한 미래에 대한 예언은 맬서스, 리카도를 거쳐 사실상 고전학파의 막내인 존 스튜어트 밀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다만 차이점은, 이 명랑하고도 당돌하며 겁이 없었던 경제학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돈을 더 벌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역사에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므로, 이 상태가 우울한 상태가 아니라 '조화 상태'(harmonized state)라고 해석하였다.


유가가 오르고, 석유를 대체하기 위해서 옥수수를 연료로 투입하면서, 옥수수의 대체재인 밀과 쌀값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단일 자원시장에서 '갑절'씩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모든 원자재가 두 배를 기본단위로, 기분만 좋으면 세 배든, 네 배든 올라가게 되는 그런 시기를 우리는 맞게 되었다. 이건 국제 자원시장에 선물시장이 도입된 이후 처음 생겨난 변화이고,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상태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들은 많았는데, 애덤 스미스가 그랬고 가깝게는 최근에 작고한 로마클럽의 집필자, 도넬라 메도가 이런 상태를 예견했다. 정말 <국부론>과 같은 교과서나 아니면 100년짜리 장기 시뮬레이션에서나 보던 그 상태를 정말로 금세기에 살아서 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이를 요즘 학자들은 '희소성의 시대'라고 부른다.


한국의 거시경제 기조, 경제정책, 그리고 사회문화적 체계까지 모두 '풍요의 시대'에 맞추어져 디자인되어 있다. 돈만 주면 뭐든지 살 수 있고, 또 그런 공산품의 가격도 계속해서 몇 년마다 절반씩 떨어진다는, 풍요 시대의 패러다임 위에 한국이 서 있다. 그러나 지금 이제 우리는 '희소성의 시대'로 간다. 바로 <국부론> 1권 9장의 세계가 펼쳐지는 셈이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풍요'라는 70년대 이후의 패러다임을 머리에서 지우고, '희소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탑재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 모두 망한다.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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