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군 번암면 대론리 221번지

2008/02/04 12:22

장수군 번암면 대론리 221번지

 

내가 잠시 머물렀던 곳.

출장 다녀 오는 길에 사진에 담아왔다

이제는 애틋한 기억만 남아있다

 

 

논실마을 학교이다

지금은 겨울이어서 깨끗하지만 봄부터 시작해서 가을까지는 풀이 운동장에 가득했다

어느 때 여름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갈매기 선생님은 학교 운동장을 걷다가 뱀을 보았다고 했다

여름에 학교 운동장을 멀리서 보면 잔디밭 같지만, 학교에 손님이 오거나 수련회 따위를 오면 풀 베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내가 남원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형수가 운동장 한켠에서 쪼그려 앉아 풀베는 모습이 기억난다

운동장에 비하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교실이나 숙소를 청소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규모가 크다 보니 여러 사람의 손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전라도 말로 '테'가 나는 곳이다

 

 

내가 살았던 관사이다

별과 달이 그려져 있으며, 방이 두개인데, 난 달이 그려진 방에서 살았다

별과 달은 성매매 여성들이 학교에 와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뒤 편에 보이는 화장실과 관사에 그린 것이다

내부에는 화장실이 있고 싱크대가 있어 밖에 나가지 않고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겨울에는 방안의 수도관은 물론이고 화장실 물까지 모든 것이 얼어버린다

밤에 술을 먹고 관사 앞에서 운동장을 눈 밑으로하여 하늘을 보면 별이 너무 좋다.

검은 밤의 빛나는 별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뚜렷하다

 

출근시간에는 용화나 용창이가 달려와서 나를 깨웠고,

늦은 밤에는 전주나 남원, 장수시내를 나갔다가, 5인승 1톤 트럭의 뽕짝 테이프 음악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조선배가 들러서 하루 일을 간단하게 이야기 하는 곳이었다

형수가 동네 어른들 몰래 담배 피는 장소이기도 했다.

 

 

 

현관 앞에 앉아 있으면 햇볕이 참 따뜻하다

겨울에는 그 고마움이 더하고, 초봄에는 그 느낌이 너무나 좋아 그냥 지금 여기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가끔 바람이 불면 생각도 같이 날라간다

교실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보니, 풀을 베거나 청소를 할때도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곳이다

풍경이 달려있어 바람이 불면 그 소리가 청정한데, 나른한 봄날 오후에 담배 피기에는 지구에서 최적의 장소라 생각된다

 

이제 이 모든 기억이 저편으로 넘어갔다

학교를 떠나면서는 혼자 속으로, '언젠가는 다시 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 생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공간은 시간과 함께 변하며, 시간은 그것을 재거나, 영위하는 인간이나 생물들과 함께 변한다

언뜻보면, 그대로 인 것 같지만, 이제 공간과 시간과 사람이 변하여 사뭇 낮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情)은 사람이나 키우는 개들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땅이나 건물과도 나누는 것인데, 이제 내가 매정하게 이별했으니 할 말이 없다.

 

20008. 2. 1. 점심때를 약간 넘은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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