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技藝)/기예(氣藝)  “암적인 리좀과 창조로 나아가는 리좀”

- 이정우 (철학자)

 

 

개체들은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만 氣는 잠재성이다. 잠재성은 현실성으로 분화(分化)된다.

이것은 곧 개체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예컨대 생명은 생명체와 구분된다. 생명은 개개의 생명체들로 분화된다. 그러나 생명은 개체들을 넘어서는 잉여이고 이 잉여가 ‘진화’를 가능케 한다. 이 과정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두 요소가 특이성과 강도이다. 즉 氣는 그 안에 지도리들을 내장하고 있고(그러나 역동적으로 변해 가는 지도리) 또 강도의 차이들을 통해서 운동한다.(이 부분은 들뢰즈 철학의 핵을 이루고 있으며, 『차이와 반복』의 4, 5장을 숙독해야 한다)

또 하나, 특히 주의할 것은 노마디즘이 제시하는 구분들에 가치들을 실체적으로 부여하는 일이다.

리좀은 좋은 것이고, 수목형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 다른 경우들도 마찬가지이다. 매끈한 공간은 좋은 것이고, 홈 패인 공간은 나쁜 것인가? 몰적인 사유는 나쁜 것이고 분자적 사유는 좋은 것인가?

이런 식의 가치론적 이분법이 속류 노마디즘을 낳는다. 리좀이 기존의 분절선들을 극복하고 창조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때로는 마약 같은 ‘기관들 없는 신체’로 갈 수도 있고 또 파시즘 같은 암적인 리좀으로 갈 수도 있다. 무조건 분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맥락에 따라서는 몰적으로 사유해야 할 때도 있다. 창조적 삶을 위해서는 리좀적 사유를 해야 하지만, 리좀적으로 사유한다고 해서 꼭 창조적 삶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구분들은 우리가 ‘상관적 정도(correlative degrees)’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을 이룰 뿐이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맥락에 따라 사유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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