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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단상

선거철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 때 지방선거였으니 4년 전? 아니 8년 전이 맞을 것이다. 그도 나도 어렸으니.

 

"오빠는 그럼 오빠네 동네에 한나라당이랑 민주당만 나오면 어떻게 할거예요?" 똘망똘망한 눈에 호기심을 가득 담고 물어보던 아이. "그럼 아무도 안 찍어." 부담스러운 눈빛을 피하며 대답하던 나.

 

실제로 그 선거에서 우리동네 구청장이나 시의원에 민노당이나 사회당 후보는 없었고 나는 아무도 찍지 않았다.(당시 구의원에는 당적을 표기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기권의 변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정당에 표를 줄 수는 없다'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상황이 다시 오면 나는 그 때 처럼 기권을 할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민주당은 여전히 내가 지지할 만한 정당은 아니다. '사표론'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치사한 논리라는 생각도 변함없다. 예전과 다른 것은 '나쁜 보수'와 '더 나쁜 보수' 간의 차이가 현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실감했다는 것. 그리고 선거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 어차피 선거가 규정된 링 위에서의 제한된 싸움이라면 그 안에서의 싸움에서 최선을 다하자. 최선도, 차선도 없다면, '차악'이라도 뽑자. 그것이 제한된 링 안에서의 '최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다행히도 구청장이나 시의원에도 진보신당이나 민노당 후보가 나왔다. 고맙게시리 고민할 필요도 없게 단일화를 해서 나왔다. 다만 구의원에는 진보진영 후보가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번엔 민주당 후보라도, 찍어야겠다. 

 

한 때 데모질 좀 하던 친구는 의회정치를 불신하며 투표를 보이콧했다. '모든 사람이 투표하지 않기를 꿈꾼다'던 그 친구가 보기엔 진보정당에 던지는 나의 한 표가 사표였을까? 한 때 내가 잠시 몸담았던 조직에서는 최고의 투쟁 형태는 대중투쟁이며 "선거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행동을 지지하고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북돋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대중투쟁은 운동가나 활동가들의, 너무나 큰 개인적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희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난 대중투쟁보다는 의회에서의 세력확장을 바라는 '의회주의자'가 되었다.

 

다 안다. 선거는 투쟁방식의 하나일 뿐이라는걸. 선거로 세상을 바꾸기도 힘들다는걸. "투표로 말하라"는 둥  선거가 다 인양 떠드는 것이 얼마나 가식적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선거와 의회가 단지 대중투쟁의 '선전연단'이라는 주장은 활동가들의 개인적 헌신과 희생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겠지. 그것이 그들과 나의 차이겠지.

  

이번에 한명숙과 유시민을 공식 지지한 민노당의 행태를 보면 참 실망스럽다. 물론, 'MB심판'을 해야한다는 급박한 심정은 알겠지만, 스스로 '사표론'이나 '비판적 지지론'을 인정한 꼴이 되어버렸다. 이래놓고 다음 대선 후보는 어떻게 내려고 그러나. 민노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면 일부좌파를 빼놓고는 진보신당보다 차라리 민주당에 가깝지 않을까? 차라리 민노당을 해체하고 민주당으로 들어가서 민주당내 좌파세력을 형성하는 것도 괜찮겠다.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것이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아무튼, 이번에 선거자금 후원을 우리동네 민노당 시의원후보에게 하려고 했는데 민노당에 실망했으므로, 나의 세액공제금 10만원은 노회찬에게로... 

 

8년전 나에게 질문하던 호기심에 가득 찬 똘망똘망한 눈의 소녀는 지금도 잘 있는지. 이번 선거에서는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 혹시 일이 너무 바빠 투표도 못하고 출근하는 건 아닌지... 소녀는 나이 꽉찬 처녀가 되었을테고 청년은 재미없게 사는 아저씨가 되었다. 아아, 무상한 세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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