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책을 읽다.

from in the book 2010/09/20 12:06

19시 33분 영등포발 무궁화호 열차.

열차를 기다리며 작은 서점에 들어간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였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며칠 간의 청명함 끝에 다시 찾아온 비는 하루종일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걷기 여행, 라오스, 중국, 이런 책들의 책장을 무심히 넘기다가 사실 그다지 살 생각도 없으면서 좁은 책방의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저 구석으로 옮겨 시간을 때우고 있을 무렵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최근에 다가온 어떤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어떤 계기였는지 그 시작은 잊었지만, 붉은 고깃덩어리의 이미지가 어느 순간 나를 짓눌러오고 있었다. 식습관을 바꿨다기보다는 저녁 술자리에서 고기를 먹고싶지 않아졌다는 것 정도가 이후의 변화일까.

책을 집어든 순간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읽었던 그녀의 책이 생각났고,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난 그 책을 놓을 수 없가 없게 되었다.

밤 10시 무궁화호 열차.
책을 읽는 동안 내 옆자리에는 어느 여자가 앉았다가 다시 남자가 앉았다가 다시 여자가 앉는다. 책을 읽던 어느 순간부터 끊이지 않고 내가 울고 있었음을 아마도 그들은 알았겠지만, 사실 어차피 우리는 낯선 사람들이니까, 책을 읽고 울고 있는 옆사람을 보는 일 따위는 사소한 일에 불과할 것이다.

자매의 피.
나는 그 피를 마주한다. 하지만 그 피에 내 옷을 적시지는 않는다. 그냥 바라본다. 명치 끝 어딘가가 답답하게 막혀와서 자꾸 한숨을 뱉어낸다. 어차피 우리의 삶은 폭력으로 가득차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세상의 가득찬 폭력을 바라보는 것과 아마도 사적인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겪어내는 폭력은... 누군가 폭력에 내성이 있다면 그는 정상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느 날 그 내성이 툭... 더이상 견뎌낼 수 없는 지점이 오게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같은 인간의 종임을 지속하고 싶을 수도 있을까. 나는 어쩌면 그녀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쩌면 나무가 될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새가 되고 나무가 되고 인간 종이 아닌 무엇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폭력을 거부한다면 육식은 끊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눈을 감으면 며칠전 뼈째로 씹어먹은 몇 마리의 전어가, 꼬리만 남긴채 내 이에 짓이겨진 그 물고기가 생각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육식을 멈추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추석이고, 나는 집에 내려가고, 그리고 지글지글 기름 위에 전을 부칠 것이고, .......

이런 글을 써내는 작가는 얼마나 속이 아팠을까. 이걸들을 써내려가기 위해 얼마나 아팠을까. 우리는 왜 이 폭력의 그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믿는 건 내 가슴 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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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0 12:06 2010/09/20 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