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남기고 싶은 부분들'에 해당되는 글 32건

  1. 한강의 책을 읽다. (3) 2010/09/20
  2. 보편적 시민권이상에 대한 비판 -이리스 영 2010/09/01

한강의 책을 읽다.

from in the book 2010/09/20 12:06

19시 33분 영등포발 무궁화호 열차.

열차를 기다리며 작은 서점에 들어간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였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며칠 간의 청명함 끝에 다시 찾아온 비는 하루종일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걷기 여행, 라오스, 중국, 이런 책들의 책장을 무심히 넘기다가 사실 그다지 살 생각도 없으면서 좁은 책방의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저 구석으로 옮겨 시간을 때우고 있을 무렵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최근에 다가온 어떤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어떤 계기였는지 그 시작은 잊었지만, 붉은 고깃덩어리의 이미지가 어느 순간 나를 짓눌러오고 있었다. 식습관을 바꿨다기보다는 저녁 술자리에서 고기를 먹고싶지 않아졌다는 것 정도가 이후의 변화일까.

책을 집어든 순간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읽었던 그녀의 책이 생각났고,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난 그 책을 놓을 수 없가 없게 되었다.

밤 10시 무궁화호 열차.
책을 읽는 동안 내 옆자리에는 어느 여자가 앉았다가 다시 남자가 앉았다가 다시 여자가 앉는다. 책을 읽던 어느 순간부터 끊이지 않고 내가 울고 있었음을 아마도 그들은 알았겠지만, 사실 어차피 우리는 낯선 사람들이니까, 책을 읽고 울고 있는 옆사람을 보는 일 따위는 사소한 일에 불과할 것이다.

자매의 피.
나는 그 피를 마주한다. 하지만 그 피에 내 옷을 적시지는 않는다. 그냥 바라본다. 명치 끝 어딘가가 답답하게 막혀와서 자꾸 한숨을 뱉어낸다. 어차피 우리의 삶은 폭력으로 가득차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세상의 가득찬 폭력을 바라보는 것과 아마도 사적인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겪어내는 폭력은... 누군가 폭력에 내성이 있다면 그는 정상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느 날 그 내성이 툭... 더이상 견뎌낼 수 없는 지점이 오게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같은 인간의 종임을 지속하고 싶을 수도 있을까. 나는 어쩌면 그녀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쩌면 나무가 될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새가 되고 나무가 되고 인간 종이 아닌 무엇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폭력을 거부한다면 육식은 끊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눈을 감으면 며칠전 뼈째로 씹어먹은 몇 마리의 전어가, 꼬리만 남긴채 내 이에 짓이겨진 그 물고기가 생각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육식을 멈추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추석이고, 나는 집에 내려가고, 그리고 지글지글 기름 위에 전을 부칠 것이고, .......

이런 글을 써내는 작가는 얼마나 속이 아팠을까. 이걸들을 써내려가기 위해 얼마나 아팠을까. 우리는 왜 이 폭력의 그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믿는 건 내 가슴 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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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0 12:06 2010/09/20 12:06

Polity and group Differences
보편적 시민권이상에 대한 비판

이리스 영

보편적 시민권의 이상은 근대 정치적 삶의 해방적 추동력을 만들어왔다. 부르주아지가 시민들을 위한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귀족적 권위에 도전한 이래로, 여성, 노동자, 유대인, 흑인과 그밖의 다른 이들도 그러한 시민권 지위로의 편입을 주장해왔다. 근대 정치이론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평등한 도덕적 가치를 확언하고 있고, 억압당한 자들에 대한 사회적 운동은 이 이론을 법의 평등한 보호 하래 완전한 시민권 지위에 모든 사람들을 편입시키는 것으로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모든 이들을 위한 시민권, 그리고 모든 이들은 시민으로서 같다. 근대 정치적 사고는 모두에 대한 시민권이라는 의미로 시민권의 보편성이 시민권 지위가 특수성과 차이를 초월한다는 의미에서의 시민권의 보편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시민들 사이의 어떤 사회적 또는 집단적 차이라도, 시민 사회의 일상 활동에서 부, 지위, 그리고 파워의 어떤 불평등이라도, 시민권은 모두에게 정치적 대중 속 동료로서의 같은 지위를 준다. 같음으로 간주되는 평등으로, 보편적 시민권의 이상은 모든이들에 대한 시민권의 확대와 더불어 적어도 두가지 의미를 수반한다.

(a)일반성: 보편성은 특수성에 반대되는 일반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시민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다른지에 반대된다.
(b)동등한 대우: 모두에게 같다고 말하고 같은 방식으로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과 규칙의 관점에서의 보편성. 법과 규칙은 개인과 집단의 차이는 보지 않는다.

19세기와 20세기에 분노한, 때로는 피를 흘리는 정치적 투쟁에서 배제되고 불이익받는 많은 이들이 와전한 시민권 지위를 얻는 것, 즉 동등한 정치적 그리고 시민적 권리를 얻는 것이 그들의 자유와 평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20세기 후반에 시민권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집단에게로 형식적으로는 확대되었다. 그러나 몇몇 집단들은 여전히 그들 스스로를 이등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억압받고 배제된 집단의 사회운동은 최근 왜 동등한 시민권의 확장이 사회적 정의와 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는지를 질문해왔다. 질문의 일부는 직접적으로 맑시스트에서 나온다: 개인과 집단의 지위를 대부분 결정하는 사회적 활동은 무정부적이고 과두정치적이다; 경제적 생활은 집단의 불평등한 지위와 처우에 영향을 미칠만큼 충분히 시민들의 통제하에 있지 않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왜 동등한 시민권이 억압을 제거하지 않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고 보지만 이 에세이에서는 다른 이유, 훨씬 근대적인 사고로 표현되는 정치와 시민권의 의미에 대한 더 본질적인 다른 이유를 숙고해보려고 한다.

모든 이들을 위한 시민권과 두가지 다른 의미의 시민권- 다른 시민으로서 같은 방식으로 대우받고 공동의 삶을 사는 것- 사이의 가정된 연관그 자체로 문제이다. 억압된 이들의 동시대적 사회운동은 이 연결을 약화시켰다. 그들은 동화의 이상에 반대하여 집단 특수성의 긍정성과 자부심을 옹호했다. 그들은 또한 정의가 항상 법과 정책이 모든 집단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완전한 시민권으로의 모든 이들의 포섭과 참여를 현실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 차별화된 시민권의 개념이 이 도전에 싹을 틔웠다.

이 에세이에서 나는 모든 이들의 포섭과 참여의 관점에서 시민권의 보편성이 근대 정치적 이상에 체현되어 있는 다른 두가지 의미의 보편성과 긴장관계에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서로를 함축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성으로서의 보편성, 그리고 평등한 대우로서의 보편성. 먼저, 시민권의 활동이 집단 소속, 위치, 그리고 관심의 특수한 차이들을 초월한다는 일반의지를 표현하거나 창조한다는 이상은 실천적으로 일반적인 관점을 채택할 수없다고 판단되는 집단들을 배제시켜왔다. 일반의지가 시민권의 동질성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고 표현되어지는 시민권의 이상... 다시 활기를 띄는 시민권의 동시대적 지지자들은 일반의지와 공동 삶의 이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그들은 함축적으로 같은 배제와 동질성을 지지한다. 따라서 나는 공적 토론에의 모든 이들의 포섭과 참여와 의사결정은 집단 대표의 메카니즘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두번째, 능력, 문화, 가치와 행동 스타일들의 차이가 집단들 사이에 존재하는 곳에서 이들 집단의 일부는 특권층이고, 동등 대우의 원리에 강한 지지는 억압이나 불이익을 영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정치적 제도 내에서 모든 이들의 포섭과 참여는 그러므로 때때로 억압과 불이익을 침식하기 위하여 집단의 차이에 주목하는 특수한 권리의 분절을 필요로 한다.

일반성으로서의 시민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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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18:12 2010/09/01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