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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그분을 뵙게 되리라

  • 등록일
    2009/12/04 02:26
  • 수정일
    2010/10/10 20:15


"거기서 그분을 뵙게 되리라"
- 마태 28, 7 -

주님의 무덤에 나타난 천사는
여인들에게 갈릴래아에서
그분을 뵐 것이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야 비로소 당신을 드러내신다는
마태오 복음사가의 증언은 다른 복음의 기록들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루가 24, 36; 요한 20, 14)

왜, 마태오는 성전(聖殿)의 도시,
왕국의 중심 예루살렘이 아니라,
변방 갈릴래아를 약속의 땅으로
제시했던 것일까요?

어쩌면 그곳이, 아프고 가난한 이들의 터전이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실제로 잦은 외침에 시달렸던 갈릴래아 지방은
이방인의 땅(마태 4, 15)이라 불릴 만큼 소외된 곳이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다른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그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고 마무리되었다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갈릴래아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내밀한 욕망과
이기심이 꿈틀거리는 곳,
죄와 상처와 고통이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우리들의 갈릴래아입니다.

우리 안의 가장 낮은 곳....

예수님은 우리보다 '먼저' 그곳으로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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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폐지..그렇게 오는 눈물의 유토피아

  • 등록일
    2009/12/04 02:21
  • 수정일
    2009/12/04 02:21

이걸 두고 점입가경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외고 폐지론의 불똥이

국제고와 자사고로 튀고 있다.

과열된 사교육을 억제하고, 초등학생때 부터

무한경쟁으로 내몰린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

그 당위를 거스를 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친서민 깃발을 먼저 내리 꼿은 분이나,

빼앗긴 깃발에 당황한 나머지 오버액션으로 내닫는 분들이나

현재 이들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흔한 말로 아웃 오브 안중인 모양이다.

 

당신이 학생이라면,

몇년의 노력 끝에 겨우 입게된 교복 하나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듯 한 경험이 있다면,

그런데 그렇게 들어 왔던 학교의 목숨이, 정치적 원인으로 오늘 내일 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괜찮은 학교라며 몇 안되는 아이들을 들여보낸 죄로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과연 이 학교의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들의 마음은 어떨지....

 

백년지대계를 바로 세운다는데

그깟 학교 하나 세우든 없애든,

과목 몇 개쯤 집어 넣든 빼든 그것이 대수겠는가는 마는

그래도 구캐의원에 장관 나리에 그 무엇 쯤 되신 분들이라면

저 어린 아이들에게 나름의 예의나마 차려 주셨으면 참으로 감사하겠다.

 

그리고 시간이 나시면,

미안하다고, 너희들을 힘들게 해서.

그래도 너희의 동생들, 너희의 아이들은 지금 보다

낳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마디 쯤 하셨으면 좋겠다.

그것이 리더의 도리, 어른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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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생은 상징이다.

  • 등록일
    2005/07/16 16:45
  • 수정일
    2005/07/16 16:45
예레미아서 16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예언자의 생은 상징이다."

예언자의 삶이 상징이라는 사실은
그가 선포한 하느님의 말씀을 증명하는 것은
그의 목숨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유일한 증거는
예수의 낙인(갈라디아 6,17)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골로사이 1,24)을
이렇게 온 몸으로 감당하려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예수의 제자로 살려는 이들에게 이토록 고달픈 삶만이 허락된 것은
실상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오 20,26)는 교훈의 말씀 때문이다.

섬김의 역리는, 복음적 지도력과 세상을 향한 교회의 복음 증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세상에 휘둘리는 것도 교회의 길일 수 없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것 또한
교회의 사명일 수는 없는 것이다.

봉사하는 것,
자발적 포기와 낮은 삶을 선택하는 것,
그 역설이 불러 일으키는 경이로움...
그것이 십자가로 부활을 드러내신,
그 분의 길을 따르는 모습일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교회는 섬기는 대신 가르치려 하고,
비우는 대신, 채움으로 세상과 맞서려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6월 18일자로 주교회의 생명 윤리위원회로 임명된 이들 중
어느 교수님의 경우, 과연 그의 신학적 태도와 신앙이
주교회의 생명 윤리위원으로서 타당한 정도에 이르렀는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모 신부님이 자신의 저서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했을 정도로
그의 신앙과 교회관은 극단적이다.
교회와 사회 안밖의 소수자들에 대한 저주와 증오에 가까운
비난을 고려해 볼 때, 그러한 사람을 생명 윤리위원으로 임명했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처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단지 교수라는 이유만으로,
그저, 교황청에까지 지명도가 있는 유력한 평신도라는 이유만으로
주교회의 의사 결정에 참여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면 더욱 비극이라 할 밖에...

최근 들어 교회가 세상을 향해 점점 더 권위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교수나, 변호사라는 까닭에 주교회의로 불려 들어가고
연예인을 내세운 마케팅 전략이 선교라고 소개되는가 하면
저출산의 사회 구조적 요인을 등한시 한 채
무조건 많이 낳으라는 식의 활동만을 벌인다면
그것은 결코 섬기는 이의 자세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선포를 뒷받침 하는 것은 신자들의 머릿수도 아니고
유력하고 똑똑한 엘리트 계층의 조언이나 협력도 아니며
무슨 무슨 위원회를 만들어 치밀한 대 언론 활동을 벌이는 일일 수도 없다.

말의 진정성은 삶에서 나온다.
유아와 임산부들을 위해 그 어떤 구체적 활동도 하지 않는 교회가
저출산을 홀로 근심하는 양, 매스컴을 타는 행위는 위선일 뿐이다.

야훼의 뜻을 받들어 온 생애를 걸고 조국의 멸망을 경고했던 예레미야의 최후는
머나먼 이집트 땅에서의 외로운 죽음이었다.

예레미야의 길, 바오로의 길
십자가의 복음과는 남다른 길은 복음과는 무관한
전략적이고 전술적인 선택일 뿐이다.

예언자의 생, 교회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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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 16세라는 재난

  • 등록일
    2005/04/21 02:33
  • 수정일
    2005/04/21 02:33


독일 가톨릭 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개혁 운동 단체인 '우리가 교회 운동'이 대변이 베네딕도 16세의 취임을 '재난'이라고 묘사했답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구호인 '우리가 교회 운동'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교회 안의 진보 진영이 겪고 있는 좌절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신임 교황의 전력, 특히 신앙 교리성 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몇 몇 사례들은 이러한 불길한 예감을 더욱 확실한 것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무엇보다, 종교 재판의 사실상의 부활을 겪으며 유능한 신학자들에게 재갈이 물려졌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방신학자인 보프는 물론이거니와 앤소니 드 멜로 신부 같은 이들에게까지 내려졌던 각종 제재와 경고 조치들은 학문의 자유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더욱더" 은총의 힘을 믿어야 할 때라는 말씀만을 드릴 뿐입니다. 혹시 회개한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 교회의 상징으로 불렸던 로메로 신부가 대주교로 지명되었을 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고 계십니까? 로메로에 대한 교황청의 지명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회 참여의 길로 접어 들고 있었던 엘살바도로 교회 사제들의 반발과 냉소만을 불러 일으켰을 뿐이었습니다. 그 만큼 로메로는 이질적인 인물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 권력자들의 압력과 교황청의 타협이 빚어낸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바람은 바오로를 거쳐 로메로에게 이르렀고, 그 예외 없는 성령의 힘은 새로운 교황께도 예외 없이 미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역시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는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그의 기질을 교회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효과적으로 다스려 왔었고, 이러한 통합과 자제의 지도력을 그의 충실한 조언자였던 베네딕도 16세에게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충성은 어둠의 시기에 더욱 요구 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인해 좌우되는 믿음은 신념일 뿐이지 신앙은 아닙니다. '재난'에 대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새벽의 필연을 믿는 성실한 교회의 사람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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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왕은 카이사르 밖에는 없습니다."(요한 복음 19, 15).

  • 등록일
    2005/03/27 02:37
  • 수정일
    2005/03/27 02:37


오늘 우리는 요한 복음 사가를 통해 예수님의 최후를 접하게 됩니다. 요한 복음의 저자는 18, 1-19, 42까지의 기록을 통해 마지막 시련 앞에 직면한 예수님과 그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서의 이 대목은 다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즉, 첫 대목은 대사제 예수님의 체포와 가야파의 집에서 일어난 일들이고 두 번째 대목은 빌라도의 심문과정,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십자가형과 그 직후에 일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순서에 따르면 이미 예수님은 제자로부터 배반을 당하신 후였지만, 실제로 그분에 대한 거부는 가야파의 심문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너희의 왕을 십자가형에 처한 말이냐?"고 묻는 가야파 앞에서 군중은...사실은 우리 모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 밖에는 없습니다."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목숨처럼 여긴다던 율법을 어겼습니다. 신명기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자리를 잡으면, 이내 주변에 있는 모든 민족들처럼 왕을 세우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너희는 반드시 너희 하느님께서 골라 주시는 사람을 왕으로 세워야 한다. 같은 동족을 왕으로 세워야지, 동족이 아닌 사람을 왕으로 세워서는 안 된다."(신명기 17, 14-15)

과월절의 부정을 피하기 위해 빌라도를 밖으로 끌어냈던 이들이(요한 18, 28) 이번에는 예수님을 못박기 위해 율법을 짖밟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율법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흔히 유대인들이 율법을 위해 예수님을 박해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군중 속에서 율법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을 찾아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은 그들이 예수님을 박해한 동기가 율법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님을 극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율법은 어디까지나 거룩하고 정당하고 좋은 것이며(로마 7, 12), 죄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구실을 합니다.(갈라 3, 19) 그러나 율법의 이 모든 올바름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가 율법을 정당하게 다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갈라 3, 19)

그렇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유대인들은 율법을 정당하게 다루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알며 지키노라 했지만 결국 그들이 지켰던 것은 자기 삶의 질서였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과월절 음식에는 주목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해방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래 율법의 목적은 자유와 해방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을 전제 군주의 압제 밑에 신음하던 다른 모든 백성으로부터 구별되는 계약 공동체로 만들어 주는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이 정해주신 왕만을 섬겨야 한다는 신명기의 율법은 주권은 하느님께 있으며 지상의 통치자들은 모두 그분의 도구일 뿐임을 선언하는 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백성은 선택의 순간에 이르러 그 자유의 법을 빌려 예수님을 배척하고 카이사르로 대변되는 식민지의 현실에 안주하는 길을 선택해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그러한 실패로부터 자유롭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우리 교회의 제도와 계율이,
사람들과 세상을 자유롭게 해 주는 힘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만의 거짓된 평화를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 밖에는 없습니다."(요한 복음 1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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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죽음, 그리고 영원한 생명

  • 등록일
    2005/03/27 02:29
  • 수정일
    2005/03/27 02:29


교회는 안락사에 반대한다. 안락사란 존재할 수 없으며 그것은 사실상의 살인에 불과하다는 것이 교회의 견해다. 생명을 지키는 교회는 생명을 통해 그 주인되시는 하느님을 섬긴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되는가? 그 어떠한 상태에서도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그 삶의 무게에 철저히 파괴될 지도 모르는 인생의 의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행복하고 사랑하기 위해 사는 것이지 살기 위해 행복과 사랑을 쫒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교회는 일시적인 것들 대신에 영원을 바라보라고 요구한다. 영원을 향한 믿음이야 말로 고통에 대한 참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교회는 오로지 '치료 중지'만을 허락하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의 임박이라는 전제 하에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어떤 측면으로는 고통을 가중 시킬 뿐인 그런 종류의 치료를 거절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말기암으로 죽음을 몇 일 앞둔 사람이나 그 가족이 심폐 소생술을 거절하는 것은 안락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가톨릭 신자들의 일반적 경향과는 반대로 내가 안락사에 대한 교회의 믿음을 지지하는 것을 알게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죽음이 일상화 되고 손쉬운 해결책에 대한 유혹이 만연한 이때에 고통의 가치와 어차피 사멸할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의 숙명을 겸허히 받아 들이라고 가르치는 교회의 자세는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의 연장 선상에서 나는 교황의 조기 퇴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체로 여러가지 불확실한 소문들(연로한 교황을 제쳐 놓고 교황청 관료들이 교회 정책을 지배하고 있다는)에 근거한 교황 퇴진론을 지지하기 보다는 차라리 몸소 겪는 노화와 질병을 통해 하느님을 증거하겠노라는 그분의 말씀에 더 크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늙었다는 것이 불편함을 너머 죄로 여겨지고, 병들었다는 것이 태만의 탓으로 받아 들여지는 이 때에 고통의 기나긴 터널을 지냐야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슴을 고백하는 교회의 태도는 참으로 신앙의 열매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만일 이 모든 것이 나와 내 가족의 일이 된다면 어떨까....끔찍한 통증과 싸우며 마지막 순간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정말 그때도 나는 믿음대로 살 수 있을까?

언젠가 그분을 뵙게 되면 먼저 묻고 싶다.
왜 사랑의 하느님께서 십자가 없는 부활은 허락치 않으셨는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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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도서관을 살펴 보면

  • 등록일
    2005/03/27 02:26
  • 수정일
    2005/03/27 02:26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칠성사를 놓고 각각의 성사를 다룬 책과 학위 논문 등을 놓고 비교해 보면 성체 - 세례 - 성품 - 고백 - 견진 - 병자 - 혼인의 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성사로서의 혼인을 다룬 책이나 논문은 전무하다 시피 하지요. 영성신학 파트에 가 보면 더 희한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 데 성사도 아닌 수도자의 서원이나 사제의 독신을 연구한 책들은 책장이 부셔져라 쌓여만 가는 데 정작 결혼 생활의 영성을 다룬 책들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국도 같더군요..)

 

성사적 가치를 지닌 혼인 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교회법이지요..심지어 신학교에서는 그 귀한 시간을 쪼개어 혼인법만을 별도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차디찬 외면과 무관심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왜 혼인이라면 우선적으로 통제와 규율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 것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왜곡의 근원은 교회 안에서 신학 담론을 생산하는 이들의 절대 다수가 사제와 수도자들이라는 데서 연유합니다. 아울러 혼인한 평신도들의 목소리, 스스로의 필요를 자각하고 교계제도에 대해 봉사를 요구하려는 자의식의 결핍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혼인의 영적 의미와 혼인을 통해 이루시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통찰의 결여는 결국 "죽음 이상의 고통이 아니라면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혼인 생활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영적 분별을 할 수 없다면, 결국 드러나는 것은 혼인의 유효성과 불가해소성이라는 법적 관념들 뿐이라는 말입니다.

 

물질적 희생과 영적 봉사를 통해 교회를 지키고 사제와 수도자들을 부양하는 평신도들은 그들로  부터 봉사 받을 권리가 있고 신학자들은 평신도들이 나날이 겪어야 하는 삶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자들, 대다수가 성직자와 수도자들인 그 신학자들의 안목을 넓혀주고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삶 안에서'만' 거룩함을 발견하는 영적 자위행위에 빠져 있는 자들이 어떻게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삶의 형태 안에 담겨 있는 신비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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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조선스러운 한겨레....

  • 등록일
    2004/09/29 23:48
  • 수정일
    2004/09/29 23:48

*** 한겨레신문 2004.9.23.자
==================================================================
"김추기경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 전략 )


“김 추기경이 바뀌었다고들 말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김 추기경은 옛날부터 매우 귀족적이었요. 정치적이기도 하고요. 독재정권과 싸울 때도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과 이돈명 유현석 변호사 등 원로 평신도들이 잘 이끌었기에 본래와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게 아닌가 싶어요.”

김 추기경의 ‘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는 적지않다. 직선제 개헌투쟁때 적전분열을 야기하고 전두환 정권에 유착했던 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를 두고 김 추기경은 “참으로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거나 “이런 사람이 돼야 나라가 편해진다”고 상찬했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서는 지극한 애정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없는 비판정신을 보였다. 최근 두 차례의 대통령선거때 이회창씨를 열심히 지지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머냐~ 이 현란한 기법은!! 교묘한 인용 부호 사용을 통해 기자의 주관적인 판단을 호인수 신부님의 말씀 사이에 교묘히 섞어 넣은 이 절정의 신공은....싸우면서 닮는 다는 말이 다시 떠 오른다...

 

(후략 )


곽병찬 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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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상식에 대한 짧은 고민....

  • 등록일
    2004/08/24 23:24
  • 수정일
    2004/08/24 23:24

1. 처음에는 환청이거나, 소문에 듣던 휴거가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새벽 5시, 귀청을 찢으며 울리는 찬송소리에....중후한 중저음 베이스임에도, 거의 100m 가까이 떨어진 대로를 지나 제 창문을 흔드는 찬송가 소리에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원흉은 길 건너 상가에 있는 모 교회에서 올리는 새벽 찬송이라더군요.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더구나 밤새 도록 휘황하게 빛나는 네온 사인이란~^^; 그 불빛에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신 저희 어머님께서 전화를 드리자, 자매님도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실 생각이 없으시냐'고 물었다더군요.

상식이 없는 교회, 오로지 복음만을 앞세우고 시민 상식은 결여한 교회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잠시 고민을 해 봤습니다. 하긴,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는 말씀을 생각해 볼 때, 그 교회의 복음이란 것도 조금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요.

2. 우연찮게 관여하게 된 단체에 자매님이 한 분 계십니다. 한 눈에 그 선한 품성을 알아챌 정도로 다정다감하고 예의 바른 그 자매님이 얼마전에 구원의 길을 제게 알려주시겠다고 장담을 하시더군요.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 보다 그곳이 이른바 '구원파'라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마나 저야 가톨릭 신자에 나름대로 신학 전공자라는 사실이 아셨기 때문에 그 권유가 더 계속 되지는 않았지만 같이 일하던 몇몇 개신교 신자분들은 그 자매님과 함께 성서 세미나에 몇 차례 다녀오시더군요.

쩝....가톨릭 신자인 제가 나서서 그걸 막는 다는게 왠지 주제 넘은 짓인 듯 하여 그냥 지켜만 봤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착찹한 마음이 들더군요. 만약에 제가 저 자매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그 곳은 이단이니 성당을 가라거나 아니면 개신교회를 찾아가라고 권유했다면, 공부만 아니라 신앙 생활에도 지름길은 없으니 그저 여러분이 속한 교회를 더 열심히 섬기라고 충고를 했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제 말에 귀를 기울였을까요?

그곳이 구원파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차마 그 자매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뭐 씹은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서던 분들을 떠올려 보면 이 물음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과연 '증인'으로 불리웠고 그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자원한 나는 어떤 종류의 징표를 드러내고 있었을까요?

3. 감히 시민 상식이란 것을 복음에 견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구원은 상식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상식이 없는 복음이란 이빨빠진 호랑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름대로 가톨릭에 정통하셨을(그 자매님 무슨 신학교를 나오셨다더군요. 신학교에서 붙잡고 씨름하던 성서학 책들을 통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구원의 확신을 박옥수 목사를 통해 체험하셨답니다...^^;) 분이 목에까지 차올랐을 가톨릭 논박을 가까스로 참아내는 모습을 재밌게 지켜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통의 이름으로 복음주의의 깃발을 들고 저를 칼빈의 법정에 세우려던 분들을 하도 많이 겪어서 인지 그 분의 '힘겨운' 예의 바름이 훨씬 아름답게 다가 왔다는 말입니다.

4. 교의적 정통성과 실천의 올바름을 겸비한 교회와 그리스도인....
힘들지만 늘상 꿈꿔야 할 미래일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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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묵시록

  • 등록일
    2004/08/18 02:15
  • 수정일
    2004/08/18 02:15


1. 다시 안중근을 생각하다.

도마 안중근이라는 영화가 촬영 중이라고 한다. 서세원씨가 이 영화의 제작자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음으로 양으로 교회가 이 영화의 제작을 뒷받침 하고 있다는 후문에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물론 “신부수업” 같은 허접한 3류 멜로 영화에 이름을 빌려 주고는 “젊은이들에 대한 선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찬하는 것 보다야 낳은 일일 테지만 안중근 토마스라는 인물의 후광을 되살려 교회를 치장하려는 노력을 볼 때마다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사람들의 후손에 불과하다’는 주님의 책망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3장 29~32)

2. 안중근의 그림자 그 사이로 보이는 어떤 것.

당대 가톨릭 교회가 탄환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거사를 앞두고 성사와 기도를 올렸던 안중근 토마스라는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관해서는 이미 꽤 알려져 있다. 뮈텔주교는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뜻을 거슬러 안중근 의사에 대한 마지막 성사를 집전한 빌렘 신부를 소환하고 심지어 성무집행정지라는 중벌로 다스렸던 것이다. 하긴 비서들을 대동하고 이토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몸소 일본군 병사를 방문한 뮈텔 주교의 그 후 처신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태도는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한동안 교회의 이름으로 살인죄의 오명을 뒤짚어 써야 했던 안중근 의사는 이제 신원되었다. 오랫동안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 조차 왠지 껄끄러웠던 안중근 토마스를 이제 교회는 당당하게 한국 가톨릭 교회의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길게 드리워진 안중근의 영광으로도 가릴 수 없는 오욕의 한국 가톨릭 교회사가 여전히 적지 않게 남아 있다. 가톨릭 교회는 단지 ‘오해’나 ‘무지’로 안중근을 처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하고 올바른 것으로 받아 들였다는 증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뮈텔 주교는 1906년도 파리 외방 전교회로 보낸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통감부 설치로 시작된 정치 상황이 이 나라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 진보, 과학 등 문명을 상징하는 모든 것에 열중합니다” 이어 두세 신부는 1908년 보고서에서 “조선은 일본인들의 지도 아래 발전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하여 일제의 통감정치가 조선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고 했던 것이다.

1910년 발생한 경향신문 필화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뮈텔주교가 내뱉었던 그 유명한 말, “천주교회는 정부와 군인, 경찰 행정당국의 편에 서 있다”는 발언은 바로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교회의 해명은 분명하다. 조선의 현실에 무지했던 선교사들이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벌였던 과잉충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적지 않은 조선교회의 평신도들 또한 장상들의 이러한 망동을 제지하기기 보다는 그에 부화뇌동해 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서병조라는 인물이다. 독립협회의 회원이자 국채보상운동의 지도자였던 부친(서상돈)의 이름을 더럽힌 이 인물은 영광스럽게도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대표적 친일 부역자 708인에 포함되는 영예를 누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가문이 지금의 대구 교구를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구 교구의 대표적인 성지 가운데 하나인 성모당의 토지를 기부했던 것이 바로 이들이었던 것이다.

3. 안중근 묵시록, 봉인이 열릴 때.

과연, 이러한 과거를 지닌 교회가 안중근을 기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안중근에 대한 교회의 기억과 체험은 일종의 묵시록이다. 그것은 과거의 체험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규정하고 예고하는 현재화된 사건의 일종인 것이다. 진실로 과거를 기억하려는 공동체는 자신의 치부에 직면할 용기를 가져야 하고 그 용기가 가져올 진통에 정직한 태도로 맞설 수 있어만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생략한 추억과 기념은 주님께서 지적하신 바로 그 위선에 다름 아닐 뿐이다.

싫든 좋든 최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이를 더욱 재촉하고 있다. 역사의 거울 앞에 서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를 회피할 수 없다면 공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특히 교회에 더욱 무겁게 주어질 수 밖에 없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되, 사랑안에 뿌리 박은 공의를 믿는 교회야 말로 과거사 규명의 참된 주체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지난 대희년을 앞두고 유행처럼 행했졌던 입에 발린 참회가 아니라 역사의 엄중한 무게를 깊이 체감하는 가운데 교회가 거듭 날 수 있다면 혼탁한 정치판과 갈라진 세상에 대한 새로운 봉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는 감출 수도 없고 미화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만이 내일에 대한 교훈으로 자래매김 할 수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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